디지털 시민광장

캠페인즈를 후원해 주세요.

후원하기

주목할 이슈

더보기
오늘의 캠페이너
뭉게구름
구독자 7명
0_0
구독자 12명
이선우
구독자 93명
AI 윤리 레터
구독자 61명
애증의 정치클럽
구독자 35명
[6411의 목소리] 나는 몸으로 일한다
나는 몸으로 일한다 (2024-05-19) 김정임 | 물류업 종사자 직원들이 물류 창고에서 발송할 책을 찾고 있다. 필자 제공 우리 회사는 몸으로 일하는 곳이다. 거래처의 물건을 위탁 관리하며 출고 주문이 오면 물건을 찾아서 포장한 뒤 서점으로 배달하거나 개인 택배 발송을 하는 물류센터이다. 파주의 특성답게 주 종목이 책이고, 수험서 택배 발송이 주 업무이자 수입원이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읽는, 지식의 보고이자 마음의 울림을 주는 책이 우리 현장에서는 그냥 물건일 뿐이다. 크고 두껍고 무거우면 ‘어이구’ 소리가 절로 나오는 짐덩어리 물건이다. 그런데 “도서 물류업을 해요” 하고 나를 소개하면 왠지 “필통 보관업을 해요” “쓰레기통을 보관하지요”보다 뭔가 나은 걸 하는 듯한 우쭐한 기분이 든다. 광고 이른 아침 사장님이 가장 먼저 회사에 나와 문을 열고 주변 정리를 하면 오전 여덟시부터 직원들이 출근한다. 사무실 프린터에서 주문서와 택배 송장이 쉼 없이 쏟아져 나오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제작된 도서를 실은 큰 차가 수시로 회사 마당에 도착하면, 지게차가 오가며 물건을 내리고 들인다. 늘 안전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사람 몸을 다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주문서대로 물건을 찾아서 스캔 검수 후 포장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조금만 주의력이 흩어지면 택배 송장을 바꿔 부착하는 등의 실수로 이어진다. 출고 작업량은 상황별, 이슈별, 시즌별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불규칙하다. 그날의 출고 주문은 그날 모두 마쳐야 한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룰 수가 없다. 거래처의 물건을 위탁 관리하며 발송하는 물류센터의 업무 특성이다. 고객사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도 마감을 해내는 책임감과 직원들의 업무 숙련도 그리고 팀워크다. 인공지능(AI)도 로봇도 대체할 수 없는, 오직 사람의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광고 광고 책을 스캔하고 상자 포장을 하다 보면 책 먼지, 상자 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쓴다. 먼지뿐만 아니라, 몸으로 일하기 때문에 팔, 다리, 허리, 온몸이 쑤시고 아픈 건 당연지사다. 작업을 마치고 장갑을 벗어 온몸을 툭툭 치면서 먼지를 털다가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부모님은 평생 시골살이를 하시면서 과수원 농사, 텃밭을 일구셨다. 농사라는 게 말 그대로 오롯이 자기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들일을 마치고 집에 오시면 현관 밖에서 장갑이나 수건으로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셨다. 집 안에서 숙제를 하다가도 툭툭 옷 터는 소리가 나면 밖을 내다보곤 했다. 툭툭 먼지 터는 소리. 내가 온몸으로 일하고 있다는 그 소리에 마음 한곳이 저릿해진다. 엄마에게 나는 당신의 꿈이자 기쁨이었다.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기쁨을 드리는 일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기보다는 엄마의 기쁨을 위해 공부하는 딸, 남이 볼 때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 시골 살림에 비싼 4년제 사립대학 등록금을 대주셨지만, 대학에 가서 나는 흔들리고 방황하며 여기저기 기웃대기만 했다. 졸업 후에는 그저 그런 직장들을 다니다가 서른살에 결혼했다.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 뒤 밑바닥 현장에서부터 온몸으로 일해온 사람이었다. 인생에 대해 자신이 없고 불안했던 나는 확신 있고 추진력 있는 그에게 끌렸다. 광고 5년 전 남편은 20년 직장 경험을 살려 파주 외곽의 공기 좋은 시골에서 물류 사업을 시작했다. 몸으로 일하는 만큼 직원들이 불편한 건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염려하며 일하고 있다. 온몸으로 일하다 보면 당당하고 정직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열심히 살고 있어요, 정말 행복해요”라고 말씀드려도,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이나 여기저기 아파하며 끙끙대는 내 모습을 보면 부모님은 속상해하실지도 모르겠다. 우리 딸은 나처럼 옷에 먼지 묻는 일을 하지 않기를 기대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가끔은 마음 한편이 저리기도 하다. 어쩌면 길었던 이십대의 방황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나의 자격지심일 것이다. 부모님은 늘 그렇듯 그저 자식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기도하실 텐데 말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산을 관리해주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안전하게 보내주는 나의 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몸에 훈장처럼 근육통을 안고 사는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현장을 가꾸기 위해 오늘도 나는 달린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새 이슈 제안
·
1
·
[6411의 목소리] 밤 9시는 칼퇴, 11시는 되어야 야근…저기요, 노동부 장관님?
밤 9시는 칼퇴, 11시는 되어야 야근…저기요, 노동부 장관님? (2022-08-03) 신명재 | 화섬식품노조 스마일게이트지회 수석부지회장 2018월 6월 어느 늦은 밤,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의 한 게임 회사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안녕하세요. 저는 11년차 게임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입니다. 최근 ‘첨단산업은 노동시간을 더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장관님 발표를 보고 가슴이 답답해져 몇 자 적어 봅니다. 아마 2011년이었을 거예요. 제가 처음 게임회사에 들어온 해가요. 그때만 해도 전자오락이나 만드는 괴짜 회사 이미지였는데 요즘엔 4차 산업과 메타버스, 스마트함의 대명사가 되었죠. 하지만 시대 인식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마치 우아한 백조가 물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발을 버둥거리는 것처럼 말이죠. 광고 제가 본 게임회사 직원들의 현실은 오후 9시는 ‘칼퇴’, 11시는 되어야 ‘야근’이라고 말하는 그런 곳이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모두가 그랬어요. 야근수당 같은 건 없었죠. 그렇게 밤에도 늘 회사에 불이 밝으니 ‘구로의 등대’, ‘판교의 오징어잡이 배’라는 별명이 생겼나 봐요. 저도 한번은 일이 너무 많아서 한달이 넘게 택시만 타고 다닌 적이 있었어요. (저는 운이 좋아 회사에서 새벽에 출퇴근하면 택시비가 지원됐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데 문자가 하나 와 있더군요. 바로 월급 입금 문자였어요. 여태 지난달 월급을 1원도 쓰지 못했는데 다시 한달이 지나 월급을 받은 거죠. 기분이 묘했어요. ‘나는 대체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싶어 ‘현타’라는 게 오더군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저 같은 엔지니어들은 매주 새벽 3~4시에 시작하는 정기 점검/업데이트를 해야 해요. 사람들이 잠을 자느라 접속률이 가장 낮을 때인 새벽이 게임 노동자들에게는 바쁘게 일해야 하는 노동시간인 거죠. 새벽부터 네트워크, 서버, 디비 등 각 직무별 순서대로 작업하는데, 누구 한명이라도 빠지면 그날 작업 전체를 취소해야 해요. 그럼 고객님과 한 업데이트 약속을 못 지키게 돼 큰일이 나죠. 그래서 그 전날은 불안감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해요. 30분 자다 깨고, 30분 자다 깨고를 반복하다 새벽에 집을 나서게 되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게임은 24시간 쉬지 않잖아요? 그러니 ‘장애’가 나지 않도록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어딜 가든, 심지어 휴가 때도 노트북은 필수품이죠. 광고 광고 불과 몇 년 전이네요. 구로에서 ‘과로’로 생을 달리한 동료 기사를 본 게요. 모두들 ‘어쩌다 이런 일이’가 아니라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반응이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모두를 덮쳤죠. 그 뒤로 몇 번 더 비슷한 일이 있고는 ‘주 52시간제’가 시작되었어요. 심지어 몇 곳은 노조도 생기며 우리도 앞으로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봤죠. 게다가 노조가 생긴 곳은 ‘포괄임금제’가 없어지면서 처음으로 ‘야근수당’이란 것도 받아봤고요. 아직도 첫 야근수당을 받은 그날 15년차 개발자가 한 말씀이 기억나요. ‘내 야근의 값어치가 이렇게 컸구나. 난 15년 동안 뭘 했던 거냐?’ 그 말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물론, 아직 스타트업이나 규모가 작은 곳은 제가 겪었던 과거에서 많이 좋아지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는 만들어졌네요. 이제 겨우 조금 숨통이 틔고 좋아지려는 찰나에 “노동시간이 부족하다, 유연화를 해야 한다”는 장관님의 말씀은 우리 업계 노동자 모두를 화나게 했어요. 왜냐하면 그건 그나마 천천히 좋아지고 있는 이 상황을 다시 예전으로 돌리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죠. 자연히 트라우마가 된 ‘과로사’ 공포도 떠올랐고요. 맞아요. 사실 우리는 동료를 또 잃을까 무서워요. 광고 그거 아세요? 이제 게임업계 평균연령이 예전 같지 않아요. 30, 40대가 주축이 되어가고 있죠. 이제 좋은 게임 하나만 바라보며 나를 갈아 넣던 청년에서 누군가의 배우자, 아빠, 엄마가 되기도 했죠. 이분들이 최소한 내 아이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 퇴근해서 아이와 소중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건,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국가 경제 순위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사는 저 같은 국민의 행복이 최우선되는 것이 아닐까요?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당장 생각이 안 나시면 우리와 이야기하며 더 좋은 방법을 찾으면 어떨까요? 우리는 일을 하는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기도 하니까요. 어려운 시기에 고민이 많으시겠지만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셨으면 해요. 노동조합 출신이시니 누구보다 더 잘 아실 거라 믿어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일 조금만 하세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새 이슈 제안
·
1
·
남자의 나라 한국 - ‘‘개저씨’’가 너무 많아요
1   2024년 4월 25일,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민희진 대표의 언설은 장안의 화제를 넘어, 케이팝 붐을 타고 전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그 중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들었던 “씨***들“이라는 욕을 실제로 들었다고 감격한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또 하나 화제가 된 말은‘개저씨’였다. ‘개저씨’라는 말이 쓰인 지는 꽤나 오래 되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저렇게 나온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자회견을 통해 방시혁 대표를 중심으로 한 하이브가 민희진을 쫓아내려고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은 능력있는 여성을 남성연대가 어떻게 견제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걸그룹이 이렇게나 많은 한국 연예계에서 여성 사업가나 여성 기획자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확인할 수 있었다. 2   2024년 5월 16일, 국회의장으로 4선 우원식 의원이 선출되었다. 보통 국회의장은 제1당의 최다선 의원이 선출되는 게 관례이고, 그래서 6선의 추미애 의원이 될 것을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당 안에서도 일반 당원들은 추미애가 국회의장이 되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있었다. 그런데 관례를 깨고 4선의 남성 의원이 당선된 것이다. 우원식 의원 개인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선 수도 가장 많고 법관과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사람, 그것도 비례대표 없이 지역구 선거로만 6선을 한 사람을 두고 관례를 깨가면서 4선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한 국회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개저씨’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3   민희진이나 추미애를 요즘 말로 ‘올려칠’ 생각은 없다. 문제 많은 한국 연예게에서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민희진이나, 과거 노조법 개악을 담당했던 추미애를 무작정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더 없을지 모르는 최고의 기세를 누리고 있는 한국 연예계에서도, 한국 정치계에서도 여성이 고위직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두 사건을 나란히 비추어 보며, ‘아! 한국은 남자의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주의계열 페미니스트였던 야마카와 키쿠에(山川菊枝, 1890~1980)는 남자벌(男子閥)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벌(閥)은 비합법적인 이익 집단을 말한다. 재벌(財閥), 학벌(学閥), 군벌(軍閥)처럼, 이 세상에는 남자벌이 있음을 이번에 아주 여실히 알게 되었다. 4   나 역시 중년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고,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중년이 될 것이다. 나라고 ‘‘개저씨’’가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니 스스로 조심이야 하겠지만, 세상의 구조란 그런 것이 아니라서 나 한몸 조심한다고 한들 결국 어느 순간에는 ‘개저씨’ 남자벌의 일원 혹은 곁다리 조력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개저씨’도 그냥 ‘개저씨’가 아니라, 도무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도, 언제가 자신이 약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조차 할 줄 모르는, 공감능력 떨어지는 이성애자 중산층 고학력 중년 도시 남자들이다. 이 남자들과 공통점이 별로 없는 약자의 입장에서는 윤석열도 민주당도 방시혁도 모두, 강력한 힘을 옹졸하게만 쓰는 다 같은 이익집단들이라는 느낌만 받게 만드는 요즘이다. 민주당 중년 남성 당원들은 부인하지 마라! 박지현 대표를 비판하면서 ‘어린 게’ ‘여자애가’라고 했던 것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의원내각제를 꿈꾸는 양심없는 국회의원들!!   이번 두 가지 사건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나라에 희망이 생길까’라는 깜깜한 전망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한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가려고 이러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자벌에 끼지 않으려면 이민이나 자살 말고는 답이 없는 것일까! 여러모로 암담한 세상이지만 이 두 사건은 그 암담함을 더욱 어둡고 답답하게 만들어주었다. 새벽이 가까이 올 것이기에 더욱 어두운 밤이 되었다고 자위하면 되는 것일까? 
성평등
·
3
·
안전한 AI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안전을 넘어서는 AI 윤리의 필요성 by. 🤔어쪈 ‘AI 윤리 (Ethics)’보다 ‘AI 안전 (Safety)’이 훨씬 더 많이 보이는 요즘입니다. 물론 AI 안전이 새로운 용어는 아닙니다. 안전은 분명 AI 윤리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가치죠. AI 윤리를 표방하는 유행어 역시 신뢰할 수 있는 (trustworthy) AI, 책임있는 (responsible) AI 등을 거쳐오긴 했지만, 안전한 AI가 거론되는 맥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표현만 바뀐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적으로 작년 11월 영국에서 열린 「AI 안전성 정상회의」와 뒤이어 일어난 일들을 살펴볼까요. 당시 발표된 블레츨리 선언은 인권 보호, 투명성과 설명가능성, 공정성 등의 여러 가치를 언급하면서도 작금의 ‘프론티어 AI 시스템’에서는 특히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천명했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다음주 한국에서 개최되는 후속 행사에서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2월에 착수한 <AI 안전 국제 과학 보고서>를 발표하고, AI 안전을 위한 국제 공조 방안을 논의한다고 하죠. 이미 영국과 미국은 발빠르게 AI 안전 연구소를 설립한 바 있습니다. 앞서 여러 차례 소개했던 백악관의 AI 행정명령 역시 안전을 가장 먼저 앞세우고 있죠. 기업들 역시 이러한 관심에 발맞춰 AI 안전을 강조하는 중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위와 같은 국제 협력이 착수되기 전부터 이미 AI 안전을 키워드로 홍보하고 있었죠. 현재 AI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앤스로픽 등은 모두 회사 홈페이지에 안전을 내걸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 역시 마찬가지로 그동안 AI 윤리라는 이름 아래 보인 행보를 AI 안전을 위한 노력으로 재포장하는 모습입니다. 구글 딥마인드, 앤스로픽, 오픈AI 공식 웹사이트 갈무리 이토록 모두가 AI 안전에 신경쓰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고 또 환영할 일입니다. 그런데 잠시만요. 각국 정부나 기업이 말하는 AI 안전이란 무엇일까요? AI 안전에 집중된 논의가 놓치는 지점은 없을까요? AI 안전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을 식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죠. 블레츨리 선언과 후속 논의를 살펴보면 크게 3가지 위험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오작동, 악용, 통제 불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고 AI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채택되고 있는 방안은 ‘기술에 대한 연구와 평가’입니다. AI 안전 연구소를 설립해서 기술 인력을 확보하고, 기술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AI 기업들과의 협력이 주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죠. 기업들의 AI 안전을 위한 활동 역시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최근 오픈AI가 그동안의 AI 안전 및 정렬(alignment)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발표한 ‘모델 사양 (Model Spec)’을 살펴볼까요. 모델 사양은 AI 모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입니다. 다시 말해 챗GPT가 어떤 질문이나 요청에 어떻게 답변하거나 하지 않을 것인지를 적은 문서죠. 예컨대 오픈AI의 AI 모델은 (방지하기 위한 것처럼 물어 대답을 유도하지 않는 이상) 범법 행위에 대한 정보를 출력해선 안되고, (설사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을 가졌더라도) 이용자의 생각을 바꾸려 들면 안됩니다. 대다수의 AI 기업이 AI 안전을 위해 채택하고 있는 레드티밍(red-teaming)이라는 방법 역시 이와 결을 같이 합니다. 어떤 질문이나 요청에 생성형 AI 모델이 잘못된 출력을 하진 않는지 살펴보며 문제점을 찾는 레드티밍 기법은 AI 기술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생성형 AI 레드팀 챌린지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AI 윤리 레터에서 다뤄온 문제들은 결코 AI 기술의 기능이나 사양에 국한된 논의만으로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오작동하지 않고 악용되지 않는,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AGI 내지는 초지능이 아닌 ‘안전한’ AI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안고 있거나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많습니다. 월요일에 소개한 사업장 및 공공장소의 안면인식 출입시스템을 생각해볼까요. 모든 얼굴을 제대로 식별하고 회사나 경찰이 보안과 공공 안전을 위해서만 쓴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로 인해 위축효과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안면인식 기술이 통제 불가의 AGI가 되진 않겠죠.) 기술을 우리가 갖고 있던 불편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하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방법으로 바라본다면, AI의 사양이나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를 논하기 전에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AI인지, 또 어떤 AI를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AI 안전은 분명 AI 윤리 논의를 구성하는 주요 가치입니다. 하지만 안전한 AI를 개발하는 것이 곧 AI 윤리 논의의 종착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안전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와 같은 원론적인 질문까지 던지지는 않더라도, 누구에게 안전한지만을 묻더라도 AI 안전 역시 기술 그 자체에 대한 논의만으로는 확보되기 힘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AI 안전 확보를 위한 노력이 AI 윤리 논의에서 언급되는 다른 가치들과 함께 추구되기를 바랍니다. 댓글 🍊산디: 실제 정책적 논의 또한 구현된 기술 자체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술이 개발되는 과정과 방향에 대한 논의는 점차 뒷전이 되는 것 같구요. ‘윤리’라 하니 노잼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누가 어느 지점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건 흥미로운 작업인데 말이죠! AI 개발 무한 경쟁 속 윤리는 뒷전 by. 🎶소소  AI 기업들이 강조하는 AI 윤리는 실상 기업 내부에서 우선순위가 높지 않습니다. AI 기업들이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끊임없이 더 빠르고 더 나은 성능의 AI 개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죠. 경쟁 속에서 고객이나 윤리를 우선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주요 AI 기업의 개발자들이 이러한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쥐 경주(rat race)’ 속에 지쳐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빅테크뿐 아니라 정부 AI 연구소, 스타트업할 것 없습니다. 미국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상황도 마찬가지죠. 어느 한 회사가 새로운 AI 모델 성능을 발표하면, 바로 다음 추격이 시작됩니다. 상대 기업보다 먼저 AI 서비스를 발표하기 위해 불시의 기습 컨퍼런스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경쟁사에 집중될 이목을 우리 회사로 돌리기 위함이죠.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서로를 옥죄고 있습니다. ChatGPT에게 시연자의 얼굴 표정을 읽어달라고 하는 모습(24:00), '구글 I/O' 하루 앞두고 GPT-4o를 기습 발표한 OpenAI 발표 화면 갈무리 이러한 무분별한 AI 개발 경쟁의 가장 큰 문제는 AI의 부작용을 고려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발 과정에서 충분한 평가와 검증이 이루어질 시간 없이 AI가 제품화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일례로 구글은 2023년 생성형AI 바드 시연에서 잘못된 답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내부 개발진의 “급했다. 망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구글은 이미지 생성AI 제미나이가 아이슈타인을 흑인으로 그리는 등 역사 속 인물을 유색 인종으로 표현한 오류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기능을 일시 중지하기도 했습니다. 한 엔지니어는 이러한 상황을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비행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엔지니어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거죠. AI 분야 연구자들은 몇 달 간 이어지는 긴급한 업무 일정 속에 번아웃을 경험하며 다른 직업으로의 전환을 고려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AI를 개발하는 걸까요? 이렇게 더 좋은 성능만 강조하는 풍토에서 AI 산업은 지속 가능할까요? 적어도 AI 개발자들이 AI 개발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AI 기술의 발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이에요.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
오늘의 코멘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