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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5일,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민희진 대표의 언설은 장안의 화제를 넘어, 케이팝 붐을 타고 전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그 중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들었던 “씨***들“이라는 욕을 실제로 들었다고 감격한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또 하나 화제가 된 말은‘개저씨’였다. ‘개저씨’라는 말이 쓰인 지는 꽤나 오래 되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저렇게 나온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자회견을 통해 방시혁 대표를 중심으로 한 하이브가 민희진을 쫓아내려고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은 능력있는 여성을 남성연대가 어떻게 견제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걸그룹이 이렇게나 많은 한국 연예계에서 여성 사업가나 여성 기획자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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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6일, 국회의장으로 4선 우원식 의원이 선출되었다. 보통 국회의장은 제1당의 최다선 의원이 선출되는 게 관례이고, 그래서 6선의 추미애 의원이 될 것을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당 안에서도 일반 당원들은 추미애가 국회의장이 되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있었다. 그런데 관례를 깨고 4선의 남성 의원이 당선된 것이다. 우원식 의원 개인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선 수도 가장 많고 법관과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사람, 그것도 비례대표 없이 지역구 선거로만 6선을 한 사람을 두고 관례를 깨가면서 4선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한 국회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개저씨’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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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이나 추미애를 요즘 말로 ‘올려칠’ 생각은 없다. 문제 많은 한국 연예게에서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민희진이나, 과거 노조법 개악을 담당했던 추미애를 무작정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더 없을지 모르는 최고의 기세를 누리고 있는 한국 연예계에서도, 한국 정치계에서도 여성이 고위직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두 사건을 나란히 비추어 보며, ‘아! 한국은 남자의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주의계열 페미니스트였던 야마카와 키쿠에(山川菊枝, 1890~1980)는 남자벌(男子閥)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벌(閥)은 비합법적인 이익 집단을 말한다. 재벌(財閥), 학벌(学閥), 군벌(軍閥)처럼, 이 세상에는 남자벌이 있음을 이번에 아주 여실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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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중년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고,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중년이 될 것이다. 나라고 ‘‘개저씨’’가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니 스스로 조심이야 하겠지만, 세상의 구조란 그런 것이 아니라서 나 한몸 조심한다고 한들 결국 어느 순간에는 ‘개저씨’ 남자벌의 일원 혹은 곁다리 조력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개저씨’도 그냥 ‘개저씨’가 아니라, 도무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도, 언제가 자신이 약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조차 할 줄 모르는, 공감능력 떨어지는 이성애자 중산층 고학력 중년 도시 남자들이다. 이 남자들과 공통점이 별로 없는 약자의 입장에서는 윤석열도 민주당도 방시혁도 모두, 강력한 힘을 옹졸하게만 쓰는 다 같은 이익집단들이라는 느낌만 받게 만드는 요즘이다. 민주당 중년 남성 당원들은 부인하지 마라! 박지현 대표를 비판하면서 ‘어린 게’ ‘여자애가’라고 했던 것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의원내각제를 꿈꾸는 양심없는 국회의원들!!
이번 두 가지 사건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나라에 희망이 생길까’라는 깜깜한 전망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한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가려고 이러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자벌에 끼지 않으려면 이민이나 자살 말고는 답이 없는 것일까! 여러모로 암담한 세상이지만 이 두 사건은 그 암담함을 더욱 어둡고 답답하게 만들어주었다. 새벽이 가까이 올 것이기에 더욱 어두운 밤이 되었다고 자위하면 되는 것일까?
코멘트
4분노가 느껴져서 더 공감되는 글이었어요! ㅎㅎ 기자회견의 많은 발언이 밈이 되기는 했지만 "미안하지만 개저씨들이"는 저도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쓰게 되더라구요..
여성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남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지요... 남자벌(男子閥)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남자벌’ 공감합니다. 여성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많이 봐왔고 직접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남자벌’을 깨야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신을 펼치고 부조리가 줄어들 것 같아요.
공평한 사회구조에 대해 대화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