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낙검자 수용소 ‘몽키하우스’, 민주주의에서 빗겨 선 그 곳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 인터뷰   낙검자 수용소를 낮춰 부르는 말 '몽키하우스'는 미군들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단어에는 동양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섞여있고, 이후 한국인들이 함께 사용했는데 여기엔 차벌과 낙인이 담겨 있지요. '성병관리소'는 공식 명칭이지만 이 건물을 통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맥락이 가려져 있어요. 그래서 성병관리소 철거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곳을 보건소처럼 여겨 그렇게 주장합니다. 보건소 건물이라면 굳이 보존할 이유가 없다고요. 실제 성병관리소는 강제 감금시설로 개인적으로는 '수용'보다는 '감금'이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낙검자 수용소' 용어 사용에 대한 김대용 공동대표의 말  소요산 자락에 위치한 낙검자 수용소. 감금된 한국 여성들이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 쇠창살 너머로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원숭이 같다고 하여 미군들은 이곳을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   가만히 서있어도 절로 땀이 흐르는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벌써 1년 하고도 반이 지난 작년 여름, 피스모모 사무국과 해외에서 방문한 활동가 몇몇이 동두천을 방문했습니다.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의 안내로 미군기지의 흔적들을 또렷하게 마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 노동자 윤금이씨가 살던 집, 그리고 그 옆에 들어선 한미우호의 광장이라는 역설과, 여전히 거대한 드론이 뜨고 내리는 미군 기지의 담벼락으로 뚝뚝 끊겨버린 땅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번듯한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뒤뜰에 숨바꼭질하듯 자리한 낙검자 수용소(일명 몽키하우스)의 모습도요. 그리고 지금, 낙검자 수용소는 철거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더슬래시는 근 30년간 방치되어있던 낙검자 수용소를 철거하고 호텔을 세우겠다는 동두천시의 일방적인 계획에 맞서 100일이 넘게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대용 공동대표의 이야기를 “캠프페이지” 기획으로 담습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경기 북부에서 지속되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 기지촌 역사와 여성들의 인권침해 역사를 기록하고 보관하고자 2017년에 시작됐습니다. 김대용 공동대표는 2015년에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최희신 공동대표와 함께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와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폭력의 실태를 알리고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1965년부터 미국은 기지촌 여성에게 유행한 성병을 ‘관리 및 정화’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했는데요. 이에 한국정부는 기지촌 주변에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미군 기지촌 여성들은 강제로 실시된 성병 검사에서 탈락하거나, 검진을 기피하거나, 성병에 걸린 미군에게 지목되면 '낙검자'로 분류되어 완치될 때까지 낙검자 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이 여성들에게는 미군 남성을 표준으로 한, 여성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양의 페니실린이 강제로 투약되기도 했다고 알려집니다.  “동두천과 의정부, 파주 등 경기도만해도 여섯 곳이 있었어요. 부산이랑 군산에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러다가 쥐도 새도 없이 사라졌죠. ‘몽키하우스’가 유일하게 남은 곳이에요.”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는 1973년에 세워져 1996년에 폐쇄된 채 방치되었습니다. 소요산 등산로를 곁에 두고 있지만, 소요산이 개발되고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소요산 주변 상가의 상인들이나 주민들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두천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대부분 몰랐죠.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으니까요. 거기에 잡혀 온 여성들의 두려움은 상상하기도 어렵죠. 주변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만 ‘양색시’들이 벌거벗고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봤다고들 해요.” 동두천시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는 2023년 2월, 동두천시가 급하게 마련한 예산으로 낙검자 수용소 부지를 사들이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학교법인 신흥학원의 소유였던 이 부지는 휴양지로 설정되었던 탓에 20년 넘게 방치되었다가, 공시지가의 2배인 29억원에 매입되었는데요. 시유지로 매입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지방재정이 20억원 이상 투자되는 사업은 예산 편성 전에 투자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보통 1년 이상 소요되고, 천재지변의 경우가 아니라면 다음 회계연도에 시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1 하지만, 동두천시의회는 2023년 1월 임시의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을 승인했고, 바로 다음 달에 낙검자 수용소 부지를 매입했습니다.2 투자심사의 경우 이해당사자가 심사에 참여하지 않아야 하는데,3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신흥학교 재단 교수 2명이 해당 투자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에 더해 지난 9월 6일에는 철거 예산(2억2000만 원)을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해 통과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거예요. 새벽에 그럴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4”  동두천시는 2023년 상반기에만 신흥학원 소유의 부지 세 곳을 총 157억원을 들여 매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전·현직 의원 중 신흥학원 출신이 다수 있어 동두천시와 신흥학원의 특수관계가 의심되기도 합니다.5 이러한 맥락에서 김대용 공동대표는 낙검자 수용소를 두고 빗겨 난 결정들을 공정하게 되돌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낙검자 수용소 부지 매입 과정에서 부정은 없었는지 감사원이 조사해 달라는 취지의 공익감사 청구 서명 운동을 진행하면서요.6 낙검자 수용소 철거 여부를 놓고 실시된 시민여론조사 또한 편향된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제대로 된 공론장이나 시민들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소통도 시장과의 면담도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동두천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힘으로 눌러왔어요. 주민들 안에도 권력에 승복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도리어 시의 사업을 찬성하는 그룹들이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험담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그림: 이동수    김대용 공동대표는 낙검자 수용소의 무조건 보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지역의 개발을 위해 불편한 기억을 일방적으로 제거하는 것보다 그러한 불편함이 승화되는 민주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요. 오랜 기간 침묵으로 대체되었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피해를 알리고, 그에 동조하며 직간접적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한 공동체와의 관계가 회복되며,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왜곡된 사회적 시선이 그대로 전시되는 그런 공간이 필요한 것이라고요.   “이걸 철거하냐 보존하냐 하는 과정에서 서로 숙의하는 과정,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이 지역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두천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주민들이 참여와 관심을 끌어내는 과정들을 통해 지역의 비전을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고요. 보존과 개발이 같이 잘 이어질 수 있는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주>   1)투자심사는 다음 회계연도부터 시행하는 투자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긴급히 국가시책사업을 추진하거나 연도 중에 사업을 시행하여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해 회계연도 사업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천재지변에 의한 시설물 신축, 국비지원 사업으로 예산안 심의과정에 반영되거나, 지원대상이 당해 연도에 정해져 추진하는 사업 또는 이에 준하는 경우로 제한한다. 출처: 행정안전부(2024). 지방재정투자사업 심사 및 타당성 조사 매뉴얼. 16쪽 2)동두천시는 2022년 12월 13일부터 2023년 2월 6일까지, 감정평가 - 토지매입계획 내부승인 - 예산계획 수립 - 공유재산심의위원회 결정 - 투자심사위원회 결정 - 시의회 승인 – 매입 결정 과정을 석달 만에 벼락 치듯이 완료되었다. 출처: 양상현(2024년 10월 21일). 동두천 성병관리소 부지 매입 논란, 신흥학원 이해관계자 개입으로 법적 무효. 내외경제TV. https://www.nbntv.co.kr/news/a... 3)지방재정법 제37조의3 제6항과 제7항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투자심사를 할 때 ‘위원이 속한 기관이 해당 심의 대상 안건과 관련하여 용역·자문을 수행하는 등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안건의 심의’에서 제척과 기피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처: 상동 4)10월 13일 새벽 4시에 동두천시가 포크레인으로 몽키하우스를 기습 철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활동가들과 시민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출처: 민성진(2024년 10월14일). '성병 관리소' 새벽 기습…시민들 "동두천 시장 나와라". 세상을바꾸는시민언론민들레. https://www.mindlenews.com/new... 5)동두천시는 노인회관과 장애인회관을 짓겠다며 지난 1월 생연동과 보산동에 걸쳐 있는 신흥학원 소유 신흥유치원 부지(5필지 3,980㎡)를 42억8천만원에 매입했다. 2월에는 소요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며 신흥학원 소유의 성병관리소 부지(상봉암동 3필지 6,406.8㎡)를 29억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동두천시는 5월26일 제3회 공유재산심의위원회를 열고 생연동 523-1 외 7필지 토지(6,131㎡)와 건물 4동(2,790.68㎡)을 86억원(공시지가의 2배)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유종규(2023년 5월 26일).‘동두천시-신흥학원 특수관계?’ 86억에 또 부동산 매입. 경기북부시민신문.http://simin24.com/?doc=news/r...  6)김연정(2024년 11월6일). ‘흉가체험 명소’ 앞 5성급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진실탐사그룹셜록. https://campaigns.do/discussio...         /가연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까라면 까? - 12.3 비상계엄령이 원했던 생각하지 않는 군인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살면서 이 말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농담으로든 진담으로든,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듣고, 또 하곤 합니다. 좀 더 길게 풀어보자면 이런 식이죠. “하라면 하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말이 많은 사람들은 욕을 먹게 됩니다. 방해되니까요. 일을 느리게 만드니까요. 자꾸만 딴지를 거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말이 많다는 건 곧 생각이 많다는 겁니다. 결국 저 따옴표 안의 말들은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라는 뜻인 거죠. 우리는 이것을 ‘상명하복’으로 여기곤 합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군대의 작동 원리죠.  이를 증명하듯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12.3 내란 사태 당시의 방첩사 활동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여 전 사령관은 거듭 강조합니다. “위기 상황이니까 1분, 2분, 10분, 20분 사이에 파바박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진짜 많다. 저희는 내려온 명령을 ‘맞나 틀리나’ 따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여 전 사령관이 이끌던 방첩사의 중간 지휘관과 법무장교들은 달랐죠.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방첩사 요원들의 선관위 진입 및 서버 복사·압수 명령을 실행하기에 앞서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법무관들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7명의 영·위관급 법무관들이 절차적 위법성 문제를 제기하며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들은 정 처장은 현장의 부대원들에게 “절대 건물에 들어가지 말고 원거리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짧은 회의 덕분에 선관위 서버는 불법 유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군인이 그러진 못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취재한 707 특수임무단 및 1공수여단 부대원들의 인터뷰에는 하루아침에 계엄군이 되어버린 이들의 당혹감과 혼란, 두려움, 좌절감, 배신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국회 구조도 파악하지 못한 채 착륙했고, 국회의원을 다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 명령이라 일단 따랐지만, 무장하지도 않은 민간인을 상대로 707이 이사카(샷건)까지 들고 쳐들어가는 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일부러 뛰지도않고 걸어 다녔다. (707 특임단 소속 A) 주변에서 ‘우리가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하려고 이렇게 고생했느냐’ ‘군인을 그만두고 싶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707 특임단 소속 B) 국회 보좌진이 군인들에게 “불법을 저지르지 말라” “국회에 진입하면 나중에 처벌될 것”이라고 했다. 비무장 시민을 마주한 부대원 일부는 ‘패닉’에 빠졌다. … 부대원들이 시민들에게 “제발 가까이 오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 민간인 상대로 작전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1공수여단 소속 C) 버스에 탈 때까지도 도착지를 몰랐는데, 내리고 보니 국회였을 때 상부에 배신감이 들었다. … 국민들께 너무 죄송하고, 저희를 보고 놀란 시민들의 얼굴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 실제 전쟁 상황이었으면 우리는 다 죽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릴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1공수여단 소속 D) 이들 계엄군을 이송하는 데 동원된 육군 특수작전항공단에서도 “조종사들이 자신들의 임무 수행 결과를 뉴스를 통해 확인하며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고 호소했다”라는 반응이 나왔죠.   이런 가운데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 특수임무단장은 12월 9일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국민 여러분께 무거운 마음으로 깊이 사죄드린다”라면서,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김 단장은 자신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이라며,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며, 부대원들이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며 부대원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곡하게 청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요. 미워하고 원망하더라도 707 부대와 부대원들을 버리진 말아달라고요. 이상현 1공수여단장 역시 장병들이 불안해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김 단장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현장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국민들은 장병들을 많이 위로하고 격려해달라고요. 비난하지 말고 끌어안아 달라고요.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부하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지휘관을 따른 죄뿐이다. 책임은 내게 있다.’ 이는 한편으로 지휘관으로서 응당 보여야 할 모습이겠지만, 그렇다고 정말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서 그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그럴 순 없을 겁니다. 달리 보면 그 지휘관들 역시 거대한 ‘상명하복’ 연쇄 고리의 일부였으니까요.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부대원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든 지휘관들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겠죠. 그렇지만 지휘관 몇 명을 처벌하는 걸로 끝내거나, 온 군대와 모든 군인을 악마화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방첩사의 요원들이 적극적으로 명령의 ‘부당성’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 유가족 사찰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대비 계엄령 검토가 문제가 되어 이루어진 ‘기무사 해체’로부터 비롯합니다. “당시 760명의 간부가 조직에서 쫓겨난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방첩사 요원들 사이엔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았다”, “두 번 다시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부대원들의 결기가 상당하다”라는 한 군 관계자의 말에 실마리가 보입니다. 이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생각하지 않고 따른 명령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현 정부가 원했던 것이 ‘생각하지 않는’ 군인이었다는 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지난해 군인들이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권한’과 관련한 정책을 폐기한 바 있죠. 문재인 정부 시기 만들어진 ‘군인복무기본정책서’에는 “상관의 명령이 위법한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복종은 범죄”이며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했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기무사 계엄문건 사태를 계기로 지난 정부에서 신설됐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을 올해 들어 없앤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사회에서의 민군관계, 헌법정신, 시민 불복종이나 운동에 있어서 군의 역할에 대해 가르쳤던 해당 수업은 ‘육사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군사법과 형법 등 법학 중심 수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일종의 예고편 혹은 복선이었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요?  이번 내란 사태를 지켜보며, 아마 모든 군인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의 위험을 깊이 새겼을 겁니다. 이제는 방첩사뿐 아니라 707 특임대도, 1공수여단도, 다른 많은 부대들도 부당한 명령 앞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겠죠. ‘몰라서 그랬다’라거나 ‘시키니 따랐을 뿐이다’라는 핑계도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겁니다. 몰랐다는 이유로, 항명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태를 온 국민이 보았으니까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 발표 직후, 전군 지휘관에게 관련 내용을 전파하며 “명령 불응시엔 항명죄가 된다”라고 언급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그 항명죄에 있습니다. 군형법 제44조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이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불복한 사람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군인이라도 위법한 명령에 대해선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죠. 정당한 명령인지 어떻게 아냐고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양심을 준거로 삼아야겠죠.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고요? 그러니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죠. 전군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법률 교육, 민주시민교육, 군인 기본권 교육, 그 밖에 진짜 ‘제복 입은 시민’을 키워낼 여러 방안까지요.  이것은 비단 군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긴박했던 12월 3일 밤의 대치 상태를 둘러싸고 떠도는 많은 말들에서, 시민이기보다 군인인 사람들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군인에게 총기는 목숨인데 그 총기를 잡는 것은 총기 탈취이고, 이는 죽여달라는 행위나 다름없다. 저러다 죽어도 할 말 없다’라고 단언하는 댓글들을 보며 민간인과 군인, 전시와 평시도 구분하지 않고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게 됐거든요. ‘제복 입은 시민’이 가능하기 위해선, 시민이 먼저 ‘군복만 벗은 군인’이 아니어야만 합니다.  바라건대, 이번 내란 사태는 결국 ‘생각하지 않는’ 상명하복의 연쇄 고리를 끊어낼 계기가 될 겁니다. 부당한 명령을 생각 없이 따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위험을 무릅쓰고 부당한 명령에 불복한 이들을 보호하고, 그럼으로써 앞으로도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요. 그러다 보면 군인에게도 더 ‘안전한’ 군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군인도 그럴 수 있는 사회라면, 시민들도 그럴 수 있을 테고요. 그렇게 만들 의무가 이제 우리 시민들에게 있습니다.   <참고문헌> 「군형법」 고유찬·장윤. “"대북 작전으로 알고 나섰는데... 내려보니 국회였다"” (조선일보, 2024.12.06.) 김경준. “"계엄군 선관위 투입, 방첩사 법무장교 7명 모두 반대했다"” (한국일보, 2024.12.10.) 김명진. “'비상계엄' 지휘 김용현, 軍지휘관들에 "명령불응시 항명죄"” (조선일보, 2024.12.05.) 문재연. “육사, 올해부터 계엄에 대해 가르쳤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 없앴다” (한국일보, 2024.12.10.)연합뉴스TV. “[특보/생중계] 김현태 특전사 제707 특수임무단 단장 기자회견|"707은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 (2024.12.09.) 우태경. “"위법한 명령에 복종은 범죄"라 했던 국방부, 정권 바뀌니 내용 삭제” (한국일보. 2023.09.13.)윤예솔. “특수작전항공단 “영문도 모른 채 계엄군 이송, 자괴감”” (국민일보, 2024.12.09.) 차장희. “상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계엄군, 처벌 대상?...대법원 판례 보니” (매일경제, 2024.12.07.) 최서인·양수민. “1공수여단장 "장병들 불안해한다, 국민이 안아달라"” (중앙일보, 2024.12.07.) 홍제표. “707단장 "우리는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종합)” (CBS노컷뉴스, 2024.12.09.) 홍지인·김정진. “여인형 "맞든 틀리든 군인은 명령 따라야…체포명단 기억안나"” (연합뉴스, 2024.12.07.)       /김엘림언론정보학과 북한학에 발을 담그고 미디어, 사회, 젠더, 통일, 평화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화를 더 배워보겠다며 시작한 국제정치학 공부 중에 전쟁과 젠더의 교차에 눈길이 머무르면서, 6.25 전쟁기 여성의 전쟁 경험을 연구했다.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 연구소와 함께하고 있다.    
작은 군들을 위한 시: 지역에 살으리랏다!
우리 사회에 스며든 인구감소 문제는 정말 심각하죠. 때로는 ‘0.72’라는 출산율이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정말 홀로서기조차 불가능한, 소멸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도시보다 인구와 인프라가 적은 지역에서는 이 바람이 더욱 매섭습니다. 저출생 문제에 대도시 쏠림 현상까지 중첩되었기 때문이죠.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월 24일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 분과세션 1 ‘기로에 선 지역, 위기를 기회로’에서는 인구감소 시대에서 한일 양국 지역 사례와 정책을 다뤘습니다. 관계인구, 지역순환경제, 시민참여 에너지 정책 등 양질의 일자리와 탄소중립 실현,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동체가 탄탄한 삶터로서의 지역을 만들기 위한 도전과 사례들로 가득 찬 시간이었습니다.   ‘관계인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기조발제를 맡은 다나카 데루미 일본 시마네현립대 교수이자 <관계인구의 사회학> 저자는 “인구가 줄어들어도 지역은 재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2016년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관계인구’는 ‘특정 지역에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관여하는 외부인’을 뜻합니다. 관광과 정주 사이에 있는 사람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나카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알고 보니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정이었어요. ‘자녀들이 도시로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요. 그런데 다나카 교수는 이것이 문제라고 말해요. 정서적 고립이면서 지역의 진정한 문제라고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여겼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다나카 교수는 외부인, 즉 외부에 있는 인재에 주목합니다. 외부인은 지역에 5가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하는데요, ①지역을 재발견하고 ②주민들의 자부심을 함양하고, ③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④지역 변화를 촉진하고, ⑤지역에 얽매임이 없기에 보다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시마네 현 오난초 아스나 지구의 사례를 한번 볼까요? 이 600명 정도 규모의 작은 마을에는 지상에서 높이 20m에 있는 ‘천공의 역’이라 불리던 우즈이(宇都井)역이 있었습니다. 2018년 JR산코센이 영업 종료로 이 특별한 역이 폐허가 될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이나카 일루미네이션’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나카’는 일본어로 시골이라는 뜻으로,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일루미네이션을 함께 즐기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손수 진행하는 작은 행사였지만, 연간 2천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고령의 주민들은 행사 진행이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결국 행사를 폐지하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때 주민들은 ‘관계인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관광객들은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것에 그치지만, 관계인구는 축제의 준비부터 진행, 뒷정리까지 함께하기로 한 거예요! 지난해에는 시마네 현립대학 학생들을 포함한 60여명의 관계인구가 축제 전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뒷정리가 너무 힘들어 행사의 꽃(!)인 뒤풀이도 없었는데, 지난해에는 관계인구들과 즐거운 뒤풀이까지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이제 관계인구를 위해서라도 축제를 그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하셨다고요.😀  다나카 교수는 관계인구가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강조합니다. 바로 ‘지역 재생 주체의 형성’이죠. 외지에서 온 관계인구와 함께하며 지역 주민들이 정서적 고립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의 주체로 거듭난 것입니다. 관계인구의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주민들의 주체성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지역 쇠퇴의 악순환이 지역 재생의 선순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주민과 관계인구의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① 신안군: 햇빛과 바람, 그리고 연금 우리나라 지자체 중에 섬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 알고 계세요? 바로 전라남도 신안군입니다. 인구 3만8천여명 규모의 신안군은 대한민국 전체 약 3천여개 섬 중 천여개 섬을 가지고 있대요. 또한 전국 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자랑하는 지역이기도 하고요. 섬과 햇빛, 바람이라는 지형적 조건을 활용해 신안군은 태양광과 지주식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뭔가가 더 있습니다.😎 신안군은 2018년 10월 전국 최초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이 조례의 핵심은 태양광 발전을 통한 개발이익을 지역 주민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햇빛과 바람은 자연이 준 것이니까요.😀 구체적으로는 발전회사가 수익의 30%를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면, 사업 인허가와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익을 주민들과 나누는 제도가 바로 ‘햇빛연금’이에요. 2021년 첫 지급액 17억원을 시작으로 3년 만에 지급 총액이 100억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햇빛연금은 지역화폐로 지급되기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네요. 나아가 신안군은 이 조례를 바탕으로 ‘햇빛아동연금’ 제도를 신설하고, 농협과 협력하여 관련 전용 상품도 개발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구 고령화와 지방소멸 위기 고위험군에 포함된 신안군 인구가 햇빛연금 수혜 지역을 중심으로 소폭 증가했습니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해, 2023년 9월까지 248명이 순증가했다고 합니다.  ② 영암군: 로컬상생과 수평적 경제로의 전환 인구 5만여명의 전라남도 영암군은 여느 지역처럼 지역소멸 문제로 고민하는 곳입니다. 영암군에는 ‘대불국가산단’이 있습니다. 1997년부터 가동한 대불산단은 현재 2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재직하며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입니다. 하지만 재직자 절반 이상이 인근 남양과 목포시에 거주하고 있어요. 영암에서 돈을 벌어 다른 지역에서 돈을 쓰는 셈이죠. 농업 분야의 양극화도 심각합니다. 영암군 5만여명 중 1만2천여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전체 농가 중 7%에 불과한 대규모 농가(5만 헥타르 이상)가 영암군 전체 농지 면적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 때문에 영암군은 지역의 부(富)를 증식하고, 지역공동체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지역소멸이 단순한 인구감소를 넘어 지역사회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이 무너지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암군은 ‘로컬 상생과 수평경제로의 전환’을 기조로 하는 지역순환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협약을 맺고 계속 교류하고 있는 영국 프레스턴의 ‘부유한 지역공동체 만들기(Community Wealth Building: CWB, 공동체자산구축)’ 모델을 참고하여 ‘영암형 지역순환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 영암군은 사회적 가치가 있는 물품의 판매와 구매를 통한 일자리 창출, 사회적 가치 기반의 경제조직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어요. 또 지자체 자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예산이잖아요? 예산을 지역경제 순환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예컨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에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영암 지역에 있는 자재와 인력을 활용하는 업체인 경우 다음번 계약 시 해당 사항을 반영하는 등의 방식이죠. 나아가 공공조달시스템이나 ESG 관련해서 주변 시군과 광역 공공조달권도 함께 추진해 볼 예정이라고 해요.  ③ 부여군: 지역화폐로 순환경제 박차 인구 약 6만여명의 충청남도 부여군. 백제의 수도로 널리 알려진 역사도시라 꽤 친숙하실 텐데요. 부여 역시 다른 농촌 지자체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 이로 인한 소비 침체, 그리고 인근의 대전, 세종, 천안으로의 역외 유출과 같은 문제들이요. 특히 농업과 자영업 종사자 비중이 높은 부여군의 특성상, 인구도 돈도 바깥으로 나가니 남아있는 주민도 떠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 있는 것이죠.😥  이러한 유출을 막고 지역 안에서 부(富)를 불리기 위해 부여군은 지역화폐 ‘굿뜨레페이’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여군의 인구가 6만명인데 굿뜨레페이 가입자는 7만5천명을 넘어섰어요. 이는 인근 지역 주민들도 부여의 지역화폐를 활발히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지역화폐가 실질적 효과를 내려면 골목상권,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 쪽으로 돈이 흘러가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부여 굿뜨레페이는 부여군 내 가맹점 비율이 94%에 달하고, 사용액도 2020년에 47억에서 2023년에 56억원으로 골목상권에서 사용되는 비중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과 뒤에는 행정의 많은 노력이 숨어있습니다. 소상공인 매장 이용 시 최대 10%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신용카드와 겸용을 제한하는 한편, 독자적인 블록체인 시스템을 따로 개발·관리해 굿뜨레페이 가맹점 수수료는 0원이라고 합니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지역화폐 없이 살아가기 불편한 지역으로 확 바꿨다”고 표현할 만큼 굿뜨레페이에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혁신적인 접근을 보여줍니다. 관계인구를 통한 일본의 지역 축제 활성화, 신안군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이익 공유 모델, 영암군의 부유한 지역 공동체를 위한 수평적 경제로의 전환, 부여군의 지역화폐 활성화 등 각 지역의 노력이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산업단지나 대기업 유치와 같은 기존 문법이 아닌,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잘 파악하고 활용한 맞춤형 정책이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은 지역 문제의 핵심을 “경제·사회적 불평등으로 시민들의 삶이 침해받고, 이러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이고 복합적으로 목격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지역의 삶의 질 저하는 인구 유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지역 쇠퇴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느리지만, 천천히 지역의 자산과 가치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는 지역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다양한 지역 전환 사례를 발굴, 확산하기 위해 ‘지역 조사 및 평가’(가칭)를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환경, 보건복지, 경제와 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량·정성적 조사를 진행하려 해요. 단순히 줄세우기식 순위 발표가 아니라 지역의 인구 규모와 인프라 등을 감안하고, 지역 특색에 맞춰 노력하고 성과를 보이는 곳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조사 항목에는 삶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과 고용 안정은 물론 사회연대경제 활성화까지 포괄한 경제, 삶의 튼튼한 안전선인 복지, 각자의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는 사회 등 폭넓게 살펴볼 예정이라네요. 아마 2025년 상반기에 결과를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역의 공간적, 기능적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지역 정책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날 토론에서 서재교 우리사회적경제연구소 소장은 주민들의 생활권, 정책 범위, 공공조달의 역할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했어요. 지역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적절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할 텐데요. 특히 앵커 기관과 사회적경제, 지역순환경제 간의 상호작용과 경제적 승수효과를 면밀히 보고 지역과 중앙정부가 서로 협력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주 120시간 일하라던 윤석열, 조폭 때려잡듯 노동자들 몰아쳤다. (2)
편집자주: 1회 업로드 할 수 있는 용량 문제로, 이번 콘텐츠는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립니다. 2편입니다. [민주노총×슬로우뉴스 공동 기획]  적대적 노동관이 부른 시스템의 붕괴… 안정성은 후퇴, 양극화는 심화. ③ 습관적 ‘가짜 출근’ 윤석열의 노동 정책:  윤석열 탄핵 이후의 과제. 안전운임제가 폐지되면서 화물 노동자들 소득이 크게 줄고 노동시간은 크게 늘었다. 한겨레가 만난 화물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안전운임제 시행 때는 운임이 건당 44만7000원이었는데, 지금은 31만 원으로 떨어졌다. 월 소득도 400만 원에서 200만~250만 원으로 줄었다. 소득을 메꾸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해서 과속에 과로할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이 2022년 378만 원에서 2023년 241만 원으로 줄었다. 월평균 노동 시간은 264.5시간에서 309.2시간으로 늘었다. 응답자의 70%가 졸음운전이 늘었다고 답변했고 66%는 과속이 늘었다고 답변했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조사에서는 운수사의 98%가 운송료가 줄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이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표준운임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건폭 몰이 이후 건설 현장은 초토화되다시피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에서는 2022년과 비교해서 연간 소득이 평균 86만 원 가까이 줄었다. 퇴직공제부금 가입자도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올해 6월 기준으로 10만 명 가까이 줄었다. 많은 현장에서 “노조 조끼를 벗고 오라”며 노골적인 노조 탄압이 일상화됐다. 철근콘크리트연합회 등 사측은 노임 단가를 2만 원 삭감하겠다고 요구하고 있다. 최악의 노동 지표, 무너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올해 8월 기준 38.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취업률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65세 이상 취업률이 늘어난 효과가 크고 청년들 가운데 비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5~34세 청년층 ‘쉬었음’ 인구가 지난해 3분기 33.6만 명에서 올해 3분기 42.2만 명으로 늘었다. 자발적 사유가 28%, 비자발적 사유가 72%였다. 한국은행은 비자발적 사유의 ‘쉬었음’이 늘어난 이유를 고용의 질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우니 구직 활동을 포기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영구 이탈하거나 니트족화 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올해 임금체불액은 사상 처음으로 2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 이미 지난 7월까지 체불액이 지난해 1조 7846억 원의 70% 수준에 이른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01년 2748명에서 2023년 2016명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날마다 5명 이상이 일터에서 죽고 있다. 한국의 산재 사망자 수는 OECD 최고 수준이다. 해마다 등락이 있지만 여전히 10만 명당 5명 안팎으로 멕시코나 튀르키예와 비슷한 수준이다. 비정규직 비율도 크게 늘었다.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임금노동자 38%에 이른다. 임시 일용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179만 원으로 정규직 노동자 421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300인 이상 사업장과 그 이하 사업장의 임금 격차도 크다. 중위소득 밑도는 최저임금, 위험 수준. 최저임금 인상률도 역대 두 번째로 낮았다. 첫째, 내년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률에 못 미친다. 위험한 수준이다. 중위 소득을 밑돈다. 2018년에 잠깐 넘었지만 다시 2010년 초반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둘째, 여전히 공익위원들의 역할이 너무 크다. 노동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 공익위원이 각각 9명인데 공익위원들이 들고 온 안이 결론이 된다. 셋째, 최저임금이 을들의 문제로 변질됐다. 주휴 수당과 쪼개기 알바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은 “자영업자가 어려운 근본적 원인과 구조적 환경은 도외시하고 현상을 본질인 것처럼 호도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이라는 건 그 자체로 협상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하층부 노동자를 돕기 위한 비시장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개입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 제도 자체는 최저임금 당사자의 협상력을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장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그 낮은 하층 노동자의 협상력을 보완하는 제도다. 그래서 그 제도적 기초를 제대로 쌓아 놓는 게 중요하다. 다른 논의는 모르겠지만, 법적‧제도적‧정책적 기초를 제대로 쌓아야 한다. 그건 ‘사회적인 책임’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2년 연속 하락.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의 영향이 컸다. 노동조합 조합원 수는 지난해(2023) 기준 274만 명, 전체 가입 대상 2103만 명의 13.0%로 줄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 각각 116만 명과 109만 명이다. 특히 건설노조 조합원은 지난해 1월 7.3만 명에서 올해 12월 4.5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2023년 8월 기준 2.77%까지 떨어진 상태다. 윤석열 정부 2년 7개월, 노동자들의 삶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어렵게 구축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사회적 연대 구조도 바닥부터 무너졌다. 결론: 노란봉투법부터 다시 시작하자. 비상계엄과 탄핵은 윤석열의 자폭에 가까웠지만 윤석열 정부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른바 4대 개혁은 뭐 하나 제대로 추진된 게 없고 노동 개혁은 퇴행을 거듭했다. 우리는 이제 탄핵 이후 대선 국면에서 새로운 노동 의제를 제안하고 노동 개혁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노란봉투법을 다시 논의해야 하고 안전운임제를 복원하고 확대 적용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최소한 물가 상승률 이상을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플랫폼 노동자 보호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라는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날 세계
12/22 한남동 대통령 관저 부근, 집회 막바지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따라 불렀다. 가사를 흥얼거리다 집회의 순간을 정리해보았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눈 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중략)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가사 중 12/21일 동짓날 남태령. 그 곳에서 긴 밤 지새운 이들을 떠올린다. 영하 6도, 사방에 어둠으로 가득하고 경찰차 바리케이트가 쳐진 날이다. 이 곳에 고립된 시민들은 날이 밝기까지 긴 밤을 지샜다. 이대로 꼼짝없이 고립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찰나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일제히 남태령고개로 넘어와 집회에 자리했다. 28시간 뒤,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경찰차 바리케이트는 시민들의 힘으로 물러갔다. 동학농민이 넘지 못한 우금치를 후대가 넘은 순간이자 시민들의 승리를 눈으로 목도한 순간이기도 하다. 트랙터를 몬 농민들은 남태령을 지나 대통령 관저 부근 한남동으로 향했다. 시민들의 호위와 응원을 받으며 끝까지 시위에 참여했다. 광장에 모인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농민, 동물권, 장애인, 어린이, 참사유가족, 노인 등. 다시 만날 세계를 만나기까지 가사처럼 숱한 슬픔을 지나온 이들이다. 윤석열 정부 이후 이들이 나아갈 미래의 벽은 막막하여 빛을 볼 수 없었다. 지나가지 않을 깊은 어둠을 마주했다. 그보다 차가운 현실정치의 냉담함을 오롯이 홀몸으로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아랑곳않고 함께 연대했다. 먹을 것으로, 발언으로, 후원으로, 손난로로, 자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서로를 돌보았다. 보이지 않던 빛이 어둠을 밝히고 추위는 견딜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촛불을 넘어 꺼지지 않는 LED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추위에 아랑곳 않고 다시 광장에 모였다. 아니 모인 곳 어디든 광장이 되어 계엄령으로 무너진 민주주의의 본질을 회복했다.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고개 그리고 한남동 관저 어디든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목소리 외쳤다.  산 자는 죽은 자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내는 이들이다. 산 자는 목격한 이들이고 역사를 만들어간다.  불평등에 억눌린 여성들의 분노와 연대를. 성소수자가 섰던 시청광장을 극우개신교에게 내어주며 차별을 보인 서울시청의 폭력을. 20년 넘는 시간동안 이동권 투쟁을 하며 변화의 물결을 이어오던 전장연을. 세월호 폭우로 숨진 세 모녀를 이태원과 아리셀 그리고 채상병 등 참사를 겪은 유족들에게 사과없이 거부권을 남발한 채 등한시하던 윤석열의 타자화를. 서울로 넘어오던 농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찰들을. 기후위기의 악당이 되었음에도 이를 등한시하던 정부의 소홀함을 산 자는 광장을 통해 목격하고 역사를 이어나갔다. 나 역시 이들을 보며 지역농민들의 목소리에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물, 전기, 가스를 비롯농산물 등 지역의 자원을 착취하는 서울 중심주의를 돌아보고, 이주노동자와 원주민의 문화나 언어 차이에 이질감에 불쾌를 표하던 때를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변화는 나와 나를 마주한 세계를 돌아볼 때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옆에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응원봉을 들고 다만세를 따라부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50대가 20대였던 시절에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금의 20대가 따라 부르고 20대를 지나 50대가 된 이들이 응원봉을 들고 다만세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생경하면서도 이미 다시 만난 세계에 접어든 것 같았다.  나이에 권위를 부여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이로만 여겼던 중년도 변화의 물결에 따라가고 있음을 보았다. 작은 변화는 아주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었다. 광장은 다시의 장이겠다.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세대의 벽이 허물어지고, 의제를 만나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잃었던 기회를 얻고 광장에서 ‘다시‘ 만난 이들 은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엄혹한 사회의 전언을 부수고 다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고로 이 시대에 광장이 꼭 필요하다. 기회를 잃은 이들이 다시 기회를 갖고 발언하기 위해, 연대하기 위해선 광장이 필요하다. 단, 그저 광장에 있었다는 만족감에 머물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이 자리에 내려오고 차기 대선 후보가 대통령 자리에 앉았을지라도 세상은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후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의 괴리가 일어났다. 탄핵에 쏠려 정치,경제,노동, 기후위기,이주노동자, 어린이, 여성,소수자 등의 의제가 일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광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수 천명이 모이지 않아도, 꼭 물리적 광장이 아닐지라도 적은 수로나 온라인에서도 광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가 아님을 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기에 우린 가능성을 염두한다. 가능성이란 빈 틈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틈을 메우는 시도가 광장에서 이뤄지기에. 감정적인 혐오를 지양하고 오늘날 집회에서 낸 목소리를 더욱 의제로 빌드-업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시민들의 관심과 목소리를 내려는 동력이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다시 만난 세계는 앞으로 다시 만날 세계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다시 만날 세계가 다시 절망으로 빠지지 않도록, 시민은 지금도 변화한다는 사실을 염두하며 상처입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길 바란다.  우리는 탄핵 이후의 삶을 그려야 할 것이다. 희미한 빛을 쫓아가 기회는 자신이 품은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때 마주할 때 생긴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금투세 폐지와 자사주 매입은 삼성전자 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올 한 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연말이 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신경 쓰고 있는건 ‘자산 포트폴리오 재정비’입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고민거리인 항목은 2021년 동학개미운동이 일어났을 때 매수한 ‘삼성전자’인데요. 주가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소들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 포트폴리오 정비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겠습니다. 📉비상계엄, 상속세율 등으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이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되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최근 생각지도 못한 사태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입증되었습니다. 지난 3일 한밤중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6시간 만에 해제되는 사태가 있었는데요. 4일 외국인들은 5,300억원 이상을 순매도했습니다. 이로 인한 여파는 지속되고 있어 주가 하락과 더불어 회사채 시장도 얼어붙고 있어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갑작스러운 사태 외에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문제인 ‘상속세’ 문제도 있는데요. 가장 높게는 60%에 이르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주주 환원에 적극적인 밸류업 기업에 투자하면 배당소득 증가분을 낮은 비율로 분리 과세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등이 발의되었었는데요. 11일에 부결 처리되어 밸류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금투세 폐지와 자사주 매입으로 인한 주가 상승 기대 국회는 10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가 핵심인 소득세법 개정안을 전격 통과시켰는데요. 금투세는 투자로 얻은 연간 수익이 국내주식/채권 5,000만원, 해외투자 250만원 등을 넘으면 20~25%만큼 부과하는 세금을 말합니다. 이는 2023년 1월부터 도입하기로 했지만 2년이 미뤄져 25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또다시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11월 14일 4년 5개월만에 4만전자가 등장하면서 삼성전자는 자사주를 10조 매입하기로 했는데요. 삼성전자는 앞서 자사주 소각으로 주가 상승 효과를 본 경험이 있는데요. 2015년 말 11조4000억원, 2017년 초 9조 3,000억원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었고, 2017년의 경우 자사주 매입 계획 발표 이후부터 주가가 계속 오름세를 보이며, 9개월여 만에 50%가량 상승했었습니다. 반도체 전망은 대체로 맑지만 뒤처진 시간을 따라잡는 것이 관건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은 "내년 글로벌 반도체 설비투자는 주요국들의 반도체 지원책에 힘입어 올해 대비 7.9% 증가한 1,872억 달러로 전망된다"라고 밝혔는데요. 삼성전자 송명섭 연구원은  “반도체 재고가 넘쳐나서 업황이 좋지 않다”라고 밝혀 전망에 대한 의견은 견해에 따라 조금 나뉘는 것 같아요. 하지만, AI와 양자컴퓨터 등의 산업이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반도체 산업 전망은 대체로 맑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경쟁업체들의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조금은 버거워 보이는데요. 일례로 엔비디아는 당초 2026년 출시 예정이었던 AI 가속기 ‘루빈’을 최대 6개월 앞당겨 빠르면 내년 3분기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위기로 느끼고 국장을 떠나고, 누군가는 저가로 매입하는 기회로 삼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저는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고민 중 입니다. 여러분의 자산 포트폴리오는 어떠신가요?  삼성전자와 국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자유로운 의견 남겨주세요.  
주 120시간 일하라던 윤석열, 조폭 때려잡듯 노동자들 몰아쳤다. (1)
편집자주: 1회 업로드 할 수 있는 용량 문제로, 이번 콘텐츠는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립니다. 1편입니다. [민주노총×슬로우뉴스 공동 기획]  적대적 노동관이 부른 시스템의 붕괴… 안정성은 후퇴, 양극화는 심화. ③ 습관적 ‘가짜 출근’ 윤석열의 노동 정책:  “한 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2021년 7월, 윤석열이 대선 후보 시절 했던 말이다. “2주 바짝 일하고 그 다음에 노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지만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고 이듬해 3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주 120시간 발언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윤석열 정부 노동 정책은 원칙도 철학도 없었다. 이 글은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첫째, 오락가락했던 노동 시간 정책과 둘째,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에 대한 집요한 공격, 셋째, 노동 정책의 퇴행을 살펴본다. “바짝 일하고 쉬라고? 그러다 죽어요.” 주 120시간이면 5일 동안 24시간 연속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요일에 죽고 일요일에 장례식을 치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을 정도다. 휴일 없이 일한다고 치면 하루 17시간씩 일해야 한다. 2차 대전 때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노동시간이 주 98시간이었고 산업혁명 시절 영국의 노동시간도 100시간을 넘지 않았다. 전태일 열사 시절 1970년대 한국도 하루 15시간 정도였다. 민주당이 “쌍팔년도 퇴행적인 인식”이라고 비난하자 윤석열은 “발언의 취지와 맥락을 무시하고 특정 단어만 부각해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어 안타깝다”고 반박했다. 정작 윤석열은 ‘가짜 출근’ 쇼. 청와대에서 하루도 자지 않겠다며 집무실과 관저를 각각 용산과 한남동으로 옮긴 윤석열은 정시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출근이 늦을 때면 관저에 대기하고 있던 빈 차를 먼저 보내고 윤석열은 몇 시간 뒤 다른 차를 타고 뒷문(남문)으로 출근하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심지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에도 위장 출근 행렬이 8대나 8시52분에 출발했고 정작 윤석열이 탄 차를 별도로 9시42분에 출발했다. 11월29일에는 가짜 출근 행렬이 9시2분에 출발했고 진짜 출근 행렬은 오후 1시9분에 출발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한 달 동안 정상적으로 출근한 날은 이틀밖에 안 됐다. ‘가짜 출근’ 쇼는 경찰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위장제대’라는 은어도 있었다. 전직 경찰 고위 간부가 이런 말을 했다. “2022년 11월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 늦게 출근하는 날이 늘었다. 그때부터 차량 행렬을 두 번씩 내보내기 시작했다.” 불길한 징후. 윤석열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면 주 52시간 제도가 경직적이라 인력 운용에 어려움이 있으니 월간 단위로 총량을 정하고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다. 52시간씩 4주면 208시간이니 몰아서 쓸 수 있게 하자는 의미다. 논란이 확산하자 연장 근로를 1주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나 분기 또는 반기 단위로 늘려서 관리할 수 있게 하되 총량을 줄인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바짝 일한다”는 당초 취지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연장 근로 총량을 월 52시간이나 분기 140시간으로 정하면 주 69시간까지 가능하다는 개편안을 내놓기도 했다. 노동 시간 단축의 흐름에 역행하는 데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축할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주 60시간 근무만 해도 고용노동부의 과로사 기준을 초과한다. 주 60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의 뇌혈관계 질병 산재 승인율은 93%에 이른다. 52시간 이하에서 승인율은 10~20% 수준인 것과 비교된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20∼2022년까지 3년 동안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뇌심혈관계 질환)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883명, 같은 질병으로 숨진 1458명의 61%였다. 52시간 규제를 적용받지 않은 소규모 기업에서 과로사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돌아보면 이날 윤석열의 발언은 윤석열 정부 노동 정책의 방향을 예감할 수 있는 불길한 징후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이전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지만 주 120시간은 명실상부 윤석열의 노동 공약 1호였고 2년 반 동안 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120→92→69→60시간 오락가락 정책.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어든 게 2003년이다. 법정 근로시간과 최장 근로 시간은 별개였다. 2018년까지는 주 68시간을 넘지 못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주 52시간으로 줄었다. 주 68시간일 때는 법정 근로 40시간에 연장 근로 12시간과 휴일근로 16시간까지 가능했다. 하루 2~3시간 야근에 주말 이틀 출근까지 가능한 구조였다. 그런데 최장 근로 시간이 52시간으로 줄면서 연장 근로와 휴일 근로를 합쳐 주 12시간까지만 가능하게 됐다. 2021년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윤석열의 120시간 발언은 이때 나왔다. 실제로 정권을 잡자마자 노동부가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고 1주일에 최장 92시간까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한발 물러서는 것 같았지만 92시간이 80.5시간으로 줄었고 다시 69시간으로 줄었을 뿐 퇴행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윤석열이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보완을 지시해서 나온 안이 ‘64시간 상한 캡’이었고 다시 ‘60시간 상한 캡’으로 줄었다. “120시간 바짝 일하고”가 “60시간 바짝 일하고”로 줄어들었다. OECD 평균보다 150시간 더 일한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2022년 기준으로 연간 1901시간, 2023년은 1874시간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OECD 평균보다 150시간 이상 길다. 윤석열 정부는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연장 근로를 확대하겠다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올해 들어 총선 패배와 김건희 이슈 등으로 정책 동력을 소진하느라 진도를 뽑지 못했다. 화물연대의 끝나지 않은 싸움. 화물연대는 윤석열의 적대적 노동 정책의 첫 희생양이었다. 화물연대는 2022년 6월 안전운임제를 확대 적용해 달라며 파업에 돌입했다. 윤석열은 “안전운임 확대하라”는 요구를 업무 개시 명령으로 찍어 눌렀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 노동자의 과로와 과속, 과적을 방지하고 적정 운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2020년 1월, 한시적으로 도입됐다가 3년 일몰 기간이 다 돼 종료됐다. 윤석열은 “화물연대 파업은 북핵 위협과 같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참모들과 회의에서는 “불법 행위와 폭력에 굴복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업무 개시 명령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업무 개시 명령을 발동할 수 있지만 윤석열은 단순히 파업을 찍어 누르기 위해 발동했다. 업무 개시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화물연대는 결국 그해 12월 조합원 62%의 찬성으로 파업 철회를 결정하고 복귀했다. ILO(국제노동기구)는 보고서를 내고 “한국 정부는 화물 노동자의 작업 중단이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위험에 빠뜨렸는지 설명하지 못했다”면서 “한국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 발동은 파업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infringed)한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표적 수사와 프레임 조작, 건설 노조 때리기. 화물연대를 찍어 누른 윤석열은 건설노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건폭’은 윤석열이 만든 용어다. 2023년 2월, “임기 내 건설 현장 갈취·폭력 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선언한 뒤 경찰이 나서서 특별 단속을 시작했다. 건설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고 1000명 이상의 조합원들을 소환 조사했다. 윤석열이 “노조 부패는 공직·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다”라고 했고 원희룡(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맞받아서 “건설노조는 노조의 탈을 쓰고 돈을 뜯어가는 약탈집단”이라고 비난했다. 명백한 표적 수사였고 정당한 노조 활동을 범죄로 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찰은 건설노조가 회사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한 게 강요라고 봤다. 다른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였다. 구조적 문제를 봐야 한다. 한국의 건설업은 계약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을 알음알음 소개로 채운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84%의 노동자들이 인맥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6%가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왔다. 건설 현장은 가뜩이나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다. 건설노조가 채용 교섭을 맡게 된 건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협의가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건설 현장에서 결원이 발생하면 노조에 통지하거나 지원자를 배치하도록 요구한다. 고용 불안정을 해소하고 불법 하도급과 중간착취를 줄이는 해법이다. 윤석열이 문제 삼은 타워크레인의 월례비도 마찬가지다. 월례비는 밤샘이나 돌발 작업 등을 의뢰하면서 추가로 지급하는 위험수당이라고 할 수 있다. 연장 근로 수당과 급행비 등을 더한 개념이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2023년 11월 논평을 내고 “건설노조에 대한 수차례 압수수색, 고액의 과징금 부과, 조합원 구속 등 사법적 괴롭힘과 낙인찍기를 포함해 노조 활동을 심각하게 탄압했다는 보고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양회동의 죽음이 말하는 것. 2023년 5월 경찰 조사를 받던 양회동(건설노조 강원지부 지대장)이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양회동은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글을 남기고 몸에 불을 붙였다. 피해 업체들이 협박과 강요가 없었다는 탄원서를 냈는데도 수사가 계속됐다. 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는 양회동 영결식에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고통받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사람을 위로하는 잔인한 현실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양회동의 분신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CCTV 영상을 조선일보에 유출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양회동의 부인 김선희는 윤석열 탄핵 소추안 가결 직후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작 이런 사람 때문에, 남편이 그랬다는 게…, 더 화가 났어요.” 노동자들의 숙원, 노란봉투법에 거부권 행사.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이다. 노란 봉투는 원래 쌍용차 파업 때 경찰이 낸 손배를 시민들이 나눠 내자며 노란 봉투에 후원금을 담아 보낸 데서 유래했다. 파업 노동자에 손배와 가압류 폭탄을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2015년 정의당 주도로 발의됐다가 폐기됐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폐기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21대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22대 국회에서 다시 통과됐지만 역시 거부권을 행사해서 폐기된 상태다. 윤석열은 “교섭 대상을 무리하게 넓히고 손해 배상 책임에 예외를 둬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고 불릴 정도”라고 비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논란이 간과한 사실. 중대재해 처벌법은 2022년 1월 5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됐다가 2년 뒤부터 확대 적용됐다. 윤석열은 확대 적용을 유예하자고 주장했으나 국회를 설득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시행이 마치 영세·중소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며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산업재해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은 오히려 중소기업들에 더 시급한 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50명 이상 기업(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의 중대재해 사망자 가운데 65%가 하청 노동자라는 집계도 있었다. 다행히 적용 유예는 무산됐지만 여전히 의무와 책임이 모호하고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중대재해 처벌법 도입 이후 2년 동안 실형 선고는 27건 가운데 4건밖에 안 됐다. 나머지는 모두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났다. 한국제강은 사망 사고가 반복됐지만 법정 하한선인 징역 1년에 그쳤다.
“사채왕이 남긴 건 번아웃이 아니라 Q저널리즘상!” [셜록 이야기]
“사채왕 프로젝트는 제게 번아웃을 남겼죠.” 지난가을이었나. ‘사채왕’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조아영 기자가 남긴 말이었다. ‘T’인 조 기자의 성격상, 저 답변은 진심에 아주 가까울 것이다. 지난 2월 처음 제보를 접했을 때, 꼭 영화 같은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대출브로커 조직이 벌이는 금융사기 범죄를 다룬 영화 <원라인>도 떠올랐고, 금융사 직원 김재민 대리가 ‘사채왕’의 손발로 일하며 검은 돈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는 대목에선 <돈>이 떠올랐다. 김상욱이 정치권과 검찰에 줄을 대고 있다며 으스대는 데선 <범죄와의 전쟁>이 연상됐다. 2023년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를 몰고 온 1500억 원대 불법대출 사건. 결국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았다. 금융기관 하나를 망하게 한 천문학적 액수의 불법대출 사건 뒤에는, 이른바 ‘사채왕’으로 불리던 한 남자가 있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제보자에게 건네받은 2000여 개의 녹음파일과 문서 자료를 분석하고, 현장 취재와 피해자 인터뷰 등을 통해 청구동새마을금고를 개인금고처럼 주무르던 ‘사채왕’ 김상욱의 실체를 밝혔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다섯 명의 셜록 기자 모두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투입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 두 달 동안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모두에게 참 고된 시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상욱과 김재민의 통화 녹음파일만 약 900개. 범죄 ‘자백’에 가까운 그 파일들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진행될 수 없었다. 녹음파일을 모두 듣고 내용을 정리하는 건 정말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다. 사기수법을 파악하고 그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발급받은 신탁원부만 약 200통. 상자 다섯 개를 채우고도 넘쳤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부동산 물건지를 직접 확인하고, 사기 피해자들을 설득해 입을 열게 하는 일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두 달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은 끝에 ▲불법대출 수법을 낱낱이 밝힌 기사부터 ▲대출사기 피해자들의 기막힌 사연들 ▲김상욱의 공범 매수 방법 ▲김상욱 일당 3인방 각자의 역할과 실패한 ‘배신’ 이야기 ▲제보자의 입을 막기 위해 김상욱 일당이 벌인 사기극 ▲‘사기꾼’ 김상욱의 화려한(?) 과거까지 많은 이야기를 준비했다. 지난 4월 17일 첫 보도 이후 9월까지 20편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사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감사원에 행정안전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고, 기자회견도 함께 진행했다. 이후 KBS와 MBC, 뉴스타파 등도 보도에 나섰다. 셜록이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사기범죄 수법을 낱낱이 공개한 것은,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고민의 결과이기도 하다. ‘명의를 빌려줬으니 너희도 공범 아냐?’‘순수한 피해자는 아니잖아?’ 피해자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이들을 또 한 번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런 시각은 언뜻 냉정하고 객관적인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사기범죄’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전국적 사기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한 김상욱 일당과, 그의 손발이 된 금융기관 직원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고는, 빚 독촉장만 날리는 금융기관까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들만 인생의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김상욱 일당은 당연히(?)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사기꾼의 개인금고로 전락한 새마을금고 역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믿고 맡긴다”는 신탁(信託)이란 말이 무색하게, 범죄자 일당에게 자동문처럼 활짝 열려버린 무궁화신탁 역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무궁화신탁은 “마음먹고 범죄 저지른 사람 하나 잡는다는 게, 조직원 100명을 동원해도 못 잡는 게 범죄”라는 소리를 변명이랍시고 늘어놓았다. 새마을금고는 본인들은 오직 ‘채권자’일 뿐이라는 식으로, 대출사기 피해자들에게 부지런히 독촉장을 날렸다. 우리는 김상욱 일당의 거짓말에 속아서,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한 빚 수억 원을 뒤집어쓴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어렵게 찾아낸 그들을, 더 어려운 설득을 거쳐 말문을 열게 했다.(관련기사 : <유흥주점 텐트에서 잠드는 아이… “사채왕이 망친 삶”>) “저는 8억 7000이란 숫자를 그때 태어나서 처음 적어봤어요. 동그라미를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아주 까마득하더라구요.” 한 사기 피해자의 말이다. 김상욱 일당의 대화를 듣다 보면, 1억 원이 무슨 구멍가게 거스름돈처럼 느껴졌다. 그놈들이 그렇게 하찮게 입에 올리는 그 돈은 누군가의 피눈물이었다. 김상욱과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 전종남, 무궁화신탁 대리 김재민은 모두 구속돼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사채왕’ 일당은 감방에서 셜록 기자 전원을 고소했다.(관련기사 :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셜록의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보도는 23일, 제2회 Q저널리즘상(심층기획 부문)을 받았다. 젊은 기자 130여 명으로 구성된 공부 모임인 ‘저널리즘클럽Q’가 만든 언론상. 셜록은 지난해 ‘로드킬 : 남겨진 안전모’ 보도로 수상한 데 이어 2년 연속 상을 받았다. “특히 실명보도를 전제로 한 끈질긴 취재가 돋보였다. 한 심사위원은 “익명으로 처리될 법한 주제를 실명과 사진을 통해 보도한 용기 있는 기사였다”고 했다.”(지난 17일 Q저널리즘상 선정 보도자료 중) 김상욱 일당의 범죄 수익금은 현재까지 경찰 수사로 확인된 것만 약 100,000,000,000원, 천억 원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번 만져보기는커녕 손으로 적어보지도 못할 돈. 하지만 Q저널리즘상의 가치보다 빛날 순 없다. 이번 수상으로 셜록은, 우리가 매일같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 같다. ‘기자의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셜록의 일은 무엇인가.’ 0의 개수를 세는 것도 무의미한 ‘무한대’의 보람이 가슴에 번진다. ‘언론 같지 않은 일을 하면서, 가장 언론답게 일하는 언론.’ 셜록이 듣고 싶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국외훈련 논문을 표절한 검사를 권익위에 고발하고,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간이 녹은 청년의 부모님과 함께 겨울 거리에 서고, 정신질환자로 몰려 해고당한 신부와 함께 교황청의 문을 두드리며 일한다. Q저널리즘상은 셜록의 어제에 대한 인정이자, 오늘에 대한 신뢰이며, 내일에 대한 기대라 여기며, 그 뜻을 감사히 간직한다. 그리고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것. ‘셜록의 친구’ 왓슨(유료독자)의 존재다. 왓슨들의 무한한 신뢰가 없었다면 기자 전원이 두 달의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결정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언컨대 ‘셜록 이놈들 후원금만 받아먹고 두 달 동안 새 기사는 안 쓰고 대체 뭐하고 있나’라고 항의한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셜록 지면이 조용한 걸 보니 뭔가 열심히 취재하고 있나보군’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 덕분에, “끈질긴 취재”로 “용기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왓슨의 마음과 셜록의 땀으로 함께 이룬 결과다. 지난가을 ‘사채왕은 번아웃을 남겼다’며 탄식하던 조아영 기자. Q저널리즘상 선정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전향적(!)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사채왕이 남긴 건 번아웃이 아니라 Q저널리즘상!”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직접 선보이는 전자책 시리즈, ‘셜록 뉴스북’ 첫 번째 이야기다. 길고 또 깊은 셜록의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투르지만 정성껏 준비했다. 여러 온라인서점에서 절찬리(?)에 독자 분들을 만나게 되길 고대하고 있다. ☞ 알라딘 http://aladin.kr/p/IRGZM☞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0255997☞ 교보문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10758698☞ 리디 https://ridibooks.com/books/754043758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열었다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화염병이 촛불로, 촛불이 응원봉으로 변하기까지 40년이 지났다. 격렬한 저항의 시대를 지나 평화로운 시위가 자리 잡았고, 이는 다양한 시민 참여로 발전했다. 이 모두가 시민이 만들어낸 성과이자 역사이다. 6공화국의 과제와 한계 :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시민이 광장에서 계엄군을 설득하고 탄핵을 이뤄내는 광경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시민이 서로 따뜻한 커피와 식사를 나누고, 아이들과 함께 온 이들을 위해 버스를 대절하며, K-팝 음악에 맞춰 춤추고 구호를 외치는 광경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광경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내재화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권위주의 시대를 경험한 지도자들이 오랜 준비 끝에 추진한 계엄조차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만을 경험한 젊은 세대는 계엄 자체를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6공화국의 성적표는 실망스럽다. 6공화국의 대통령들 가운데 3명이 탄핵 소추를 당했고, 이 중 2명은 탄핵이 인용되었으며, 2명은 감옥에 갔다. 가족이 감옥에 간 사례도 2건이나 된다. 군인, 정치인, 기업인, 변호사, 검사라는 대통령의 출신을 보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40년 전에 있었던 과거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87년 이전을 살아온 정치, 경제, 관료 엘리트 집단 간 갈등은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로 포장되어 국민을 갈라치지만, 이는 국민의 일상과는 무관하다.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 행사는 사회, 경제, 안보,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요인으로까지 증명되었다. 시민 중심 민주주의로의 전환 : 시민의회 민주주의의 여정에서 1987년에 독재자의 권력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넘어간 것은 커다란 변화이자 성취였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주의를 내재화한 국민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한 단계 더 발전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2016년 첫 번째 탄핵의 상징이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었다면, 2024년 두 번째 탄핵의 상징은 다채로운 응원봉이었다. 이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러 역경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힘을 믿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제 국민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방향을 제도화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행정과 의회의 권력은 시민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분산되어야 한다. 8년 전 촛불 시위 이후 잠시 열렸던 시민 참여와 협력의 공간을 다시 확대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정권 교체로 중단되었던 정부, 지자체, 마을, 시민사회 등 사회 곳곳에서 시민 공론장과 공론화, 시민 참여 플랫폼과 민관 협치의 장을 다시 열고 더욱 성숙시켜야 한다.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대화하는 단계를 넘어, 이를 정책과 사업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론화 사업과 같은 프로그램의 높은 비용과 형식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 및 의제별로 상시 운영되는 시민의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구 구성을 반영해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들이 주요 현안과 미래 과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숙의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시민의회는 다양한 방식과 기간으로 운영되며, 행정과 의회를 견제하고 협력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시민의회를 통해 공개하는 정보와 숙의를 통해 발견한 다양한 관점은 우리 사회를 더욱 성숙시키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더불어 계엄과 탄핵의 순간에 국민이 가졌던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군인들이 국회의 창을 깨고 본회의장으로 난입한 순간 어떤 국민은 "왜 국민이 스스로 계엄을 해제할 수 없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본회의장에서 탄핵을 의결하려던 때 나타나지 않는 국민의힘 의원을 보며 "왜 국민은 저들에게만 의결을 맡겨야 하는가? 그리고 왜 국민의 뜻에 반하는 국회의원을 지켜만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국회의 순간이 끝나고 헌재의 시간이 왔다고 모두가 이야기하던 순간에 "왜 헌재의 결정을 다시 기다려야 하며 국민 투표로 결정하지 않는가?"라는 의문도 생긴다. 이 의문의 답도 우리는 다시 찾아야 한다. 다채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과제 또한, 사회를 분열시키는 플랫폼과 알고리즘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시민이 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첫 국가로 만들었다. 허위 정보와 혐오 발언을 확산하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미얀마에서 소수민족의 대학살을 초래하기도 했다. 혐오와 여론 조작에 취약한 플랫폼이 분노를 증폭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상황을 막으면서도, 시민이 서로 연결되어 협력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사회 현안에 대해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대화의 장을 여는 공간, 시민이 이슈를 모으고 팩트체크를 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안전한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영향력 있는 시민 광장으로서의 플랫폼이 절실하다.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도 필수적이다. '국민'과 '비국민'을 제멋대로 규정하고 갈라치는 세력을 단호히 처단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대화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가 직면한 사회, 경제, 국제, 기후 위기와 같은 거대한 문제는 시민의 참여와 협력 없이는 극복할 수 없다. 혐오와 갈등, 무관심과 각자도생을 극복하고, 신뢰와 협력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시민의 힘으로 우리 사회에 축적해야 한다. 시민이 만드는 민주주의의 미래 촛불이 흑백이라면, 응원봉은 다채롭다. 민주주의를 내재화하고 미래를 살아가는 시민의 열망 속에서, 우리는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기회를 맞이했다. 한편, 지금은 비인간과 결합한 신인류를 상상하는 기술 엘리트들의 세상을 막고, 존중과 포용, 신뢰와 협력으로 이루어진 인류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판가름하는 문명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응원봉을 든 시민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며, 동시에 시민 스스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기회는 발전한 자본주의, 제도화된 민주주의, 자의적인 법치주의의 한계를 경험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민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다. 연결하고 협력하는 시민이 나서서 멋진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자.
김용현 응원하고 전두환 추모하는 육사 ‘동지회’ [윤석열을 감옥으로]
2030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국회를 향할 때, 퇴역 군인들은 꽃으로 계엄을 옹호했다. “김용현 장관 구국의 영웅”(육사 28기 구국동지회)“구국의 결단! 영웅입니다!”(육군사관학교 구국동지회원 일동)“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육군학사장교 구국동지회원 일동) 서울동부구치소 앞엔 12.3 내란사태의 주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응원하는 화환이 줄지어 설치돼 있었다. 셜록이 지난 18일 직접 확인한 화환 개수만 58개다. 화환을 보낸 이들은 주로 ‘육사(육군사관학교) 구국동지회’. 육사 19기, 21기, 26기, 28기, 29기, 30기, 35기, 39기 등 기수도 다양했다. 해군OCS-해병대장교-육군학사장교-국군간호사관학교-공군사관학교-해군사관학교 구국동지회원 일동도 화환을 보내왔다.(관련기사 : <김용현 수감 구치소, 육사 ‘동지회’ 응원 화환 행렬>) ‘육사 구국동지회’, 도대체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의 탄생에 대해 알기 위해선 7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육사 구국동지회는 2017년 2월 2일 결성됐다. 같은 해 2월 4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처음으로 ‘육사 구국동지회’ 깃발이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이들은 전두환 추모제, 광복회장 사퇴 촉구 집회, 윤석열 탄핵 무효 집회 등 우익 집회를 주도하거나 동참해왔다. “원래 육사 출신 현역 및 예비역은 자동적으로 육사 총동창회 회원이 된다. 총동창회는 관군(官軍)적 성격이 있는 단체다. 관군적 성격의 단체는 시위나 집회에 나서지 않아 온 것이 관례였다.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도 총동창회가 오히려 대다수 애국동지들의 적극적 행동에 걸림돌이 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반해 구국동지회는 녹봉과 명령이 없어도 싸울 수 있는 의병단체로 결성되었다.”(2017년 4월호 월간조선 <[나는 이래서 태극기를 들었다] 육군사관학교 총구국동지회 이한구 사무총장>) 김용현도 내란 혐의로 구속된 후 첫 입장 발표에서 ‘구국’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구국의 일념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끝까지 싸우자. 대통령과 함께 싸워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겠다.”(2024. 12. 17. 김용현 변호인단 발표) 그동안 ‘육사 구국동지회’는 우익 집회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전두환 추모제다. 올해로 벌써 3주기 ‘구국추모제’를 진행했다. 12.12군사반란의 핵심 인물이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도 추모제에 매년 참여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이른바 ‘건국일(1948년 8월 15일)’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이종찬 광복회장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무효대회’에도 ‘육사 구국동지회’ 깃발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서울동부구치소 등에 ‘내란 혐의자’들을 향한 응원 화환을 보내고 있는 걸까. 셜록은 23일 김덕수 육군3사관학교 구국동지회 회장과 통화했다. “김용현이 힘내라고 (응원화환) 보내드렸어요. ‘당신을 옹호한다. 비상계엄 하는 건 맞았다.’ 김용현 장관이 그렇게 결단을 하고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겠다고 했잖아요. 그것에 대해 호응을 한다는 뜻으로 보낸 겁니다.” 기자가 “김용현을 ‘구국의 영웅’이라 표현한 건 국민 상식에 어긋나지 않냐”고 묻자, 김 회장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지금 국민들은 잘 몰라요. 우리나라 90%가 공산화되고 있습니다. (…) 부정선거 때문에 고도의 정치적인 통치행위로서 비상계엄을 한 겁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이 우리나라의 90%를 장악하고, 민노총, 법원 판사, 전교조가 전반적으로 다 (포진)돼 있어요.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큰 재난이 옵니다.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구국동지회에서 하는 거예요.” 박정희와 전두환. 12.3 내란사태 이전 한국 현대사에 남은 두 차례 ‘군사 쿠데타’의 주범들은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육사 출신인 ‘구국동지회’가 내란 혐의자 김용현에게 응원 화환을 보내는 행위가, ‘국민들’에게 군사독재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요. 그건 좌파 국민들이 생각하는 거고. 일반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려는 그런 국민들의 생각과는 틀려요(달라요). 무조건 ‘국민들’이라 하면 안 됩니다. 국회에서 하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에요. 계엄을 선포해서 국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군인이) 들어가는 건 문제가 없다고 나는 생각해요.“ 육사 구국동지회 활동을 보면서 12.12 군사반란의 주축이었던 ‘하나회’를 떠올리는 국민들도 있다. “지금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먹게 하는 것이 언론이고 ‘개딸들’이고, 좌파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구국동지회가) 활동하는 측면도 있어요. 국민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응원화환을 보내는 자금의 출처는 어떻게 될까? “(육사 3사 구국동지회는) 서울동부구치소는 안 보냈고, 국방부 (대통령실 인근) 도로 옆에 있잖아요. 무자비한 어떤 좌파가 불 지른 사건 일어난 거기에 우리 화환도 있어요.다 개인들이 호주머니 털어가지고 화환 보내잖아요. 지금 중앙선관위도 보내야 하고, 대법원도 보내야 하고…. 보내야 할 곳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우리 돈이 없어서 다 못해요.” 셜록은 이두호(육사 25기) ‘육사 구국총동지회’ 초대 회장에게도 연락을 해봤다. 이 전 회장은 “현재는 육사 구국총동지회 소속이 아니”라면서 아래와 같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화환 리본에 적힌 문자로 해석해주세요.”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대표는 육사 구국동지회의 활동에 우려를 표했다. “한국사회에서 군과 관련해서 제일 엘리트 그룹인 육사(구국동지회)가 지금의 상황을 전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제대로 된 군인정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군인은 정당한 명령에 복종을 해야 하고, 상관은 정당한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겁니다. 김용현 전 장관은 정당하지 않은 명령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잖아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자각이 없는 걸로 보입니다. “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작지만 단단한, 비영리의 재발견
예전에는 영리 조직을 만들 것인지 비영리조직을 만들 것인지 선택이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고 이익을 내려는 사업을 시작한다면 영리기업을 만듭니다. 시급한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영리단체를 만들고요. 비영리단체라고 하면 외부의 후원을 통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동물보호 활동을 하는 등 일반적인 기업과 비슷한 점이 거의 없었죠. 하지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생깁니다. 많은 비영리조직이 영리기업과 경쟁할만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영리기업도 재무적 수익과 함께 사회적 수익을 고민하거든요. 비영리조직은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들은 혁신적인 접근법으로 돌파구를 만들어냅니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작지만 강한 조직들입니다. 지난 12월 3일, 서울 성수동에서 그 조직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살펴볼까요?😊 의생활 속 제로웨이스트 실천 문화를 제안하는 ‘다시입다연구소’, 아동·청소년에게 나다움을 찾는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유스보이스’,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무의’,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안전한 일거리를 제공하며 사회변화를 꿈꾸는 ‘러블리페이퍼’.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조직들입니다. 이들을 영리와 비영리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들에게 붙은 이름이 바로 ‘비영리 스타트업’입니다. 비영리조직과 스타트업의 합성어로 최근의 사회적 변화와 요구를 반영해 등장한 개념이죠. 스타트업이 빠른 성장과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면, 비영리 스타트업은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춥니다. 비영리스타트업은 기업가정신과 혁신, 기술과 경영을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초기 단계의 작은 조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비영리 부문도 시대에 대응하는 변화와 성장이 요구됐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비영리 부문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실험이 나타났어요.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가 충분치 않기에 일부에서 이를 돕고 있습니다. ‘루트임팩트’, ‘브라이언임팩트’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지난 3년여간 두 곳에선 임팩트 생태계 조성을 위해 인재 채용을 돕는 프로그램(임팩트커리어NPO)과 공간 입주비용은 물론 이들 조직의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헤이그라운드 비영리 멤버십)을 함께 운영했습니다. 이러한 후원과 지원을 통해 성장한 비영리조직의 경험과 배움을 공유하기 위해 ‘2024 루트임팩트x브라이언임팩트 비영리 콘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루트임팩트 성장지원팀 정승구 팀장은 “참가자 모집 며칠 만에 300여명이 신청해 모든 세션이 마감됐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나보다 딱 한발 앞선 조직과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싶어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덧붙였어요. 그래서 스피커스도 값진 경험으로부터 인사이트를 얻고자 콘퍼런스에 참여했습니다. 그 이야기의 일부를 구독자분들께 전달하려 합니다. ① 빠른 성장보다 의미 있는 지속성을 스타트업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죠. ‘빠른 성장’, ‘대규모 투자’, ‘공격적인 확장’...하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10년을 걸어온 조직이 있습니다. 29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크지 않은 조직이지만, 매월 10만명의 시민이 찾는 플랫폼을 만든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이하 빠띠)’가 그곳입니다. 권오현 빠띠 이사장은 “지금이 아니면 기술이 시민들을 더 고립시킬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작했죠”라고 말합니다. 2015년 시작한 빠띠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민들이 서로 협력하며 공동체를 함께 운영하는 기반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확산하는 것이 목표였죠. 하지만 비영리 스타트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일반 스타트업처럼 투자를 받아 빠르게 성장하는 대신, 그들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시민들의 필요가 생길 때마다 작은 실험을 하고, 그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갔죠. 지엠오(GMO) 완전표시제를 위한 시민입법 프로젝트부터 사회적 의제를 놓고 전문가, 활동가, 정치인, 일반 시민이 모여 토론과 투표로 해결 방안을 찾는 참여형 의사결정 플랫폼까지.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본질은 잃지 않았습니다. 투자를 받지 않았기에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운 대신 성장은 더뎠지만, 빠띠는 이런 방식에서 오히려 강점을 발견했습니다. 구성원 모두 진정한 동료로 함께 성장할 수 있었고,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었죠. 10년이 지난 지금, 빠띠는 ‘실험을 마치고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작지만 단단한 이 조직이 앞으로 어떤 혁신을 만들어갈지, 그들의 항해가 다른 비영리조직에 어떤 영감을 줄지 기대됩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일을 현실화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 기운이 나는 일이더라고요.” 권 이사장의 이 말처럼, 작은 조직의 꾸준한 도전이 만드는 변화의 힘을 주목해봅니다.😊 ② 당사자가 만드는 변화 2014년 설립한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에이유디)’은 ‘농난청인 의사소통과 사회참여 불평등 해소’를 목적으로 한 조직입니다. 에이유디의 박원진 상임이사는 발표를 시작하며 용어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농인(Deaf),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난청인(Hard of Hearing)이라 표현합니다. 이는 ‘청각장애인’이라는 표현 대신 각 개인의 특성과 필요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용어입니다. ‘장애’가 아닌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거든요. 그래서 ‘농난청인’이라는 용어 사용에는 이들의 권리와 접근성을 높여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에이유디가 제공하는 대표적인 서비스는 문자통역입니다. 문자통역사가 발제자의 발언을 실시간으로 타이핑하면, 참석자들은 스마트폰, 노트북, 빔스크린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자막을 확인할 수 있죠. 박원진 상임이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회고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했던 시기인 동시에 국가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게 한 시기였다고 말합니다. 당시 대학가가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농난청인 학생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강의실에서 제공받던 노트북 대필이나 문자통역사의 타이핑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됐거든요. 수업을 듣기 어려우니 휴학을 선택한 농난청인 학생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 에이유디는 발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에이유디가 가진 원격 문자통역 서비스 ‘쉐어타이핑’ 라이선스를 23개 대학교에 무상으로 제공한 것입니다. 덕분에 학생들은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코로나 이후에도 이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졌습니다. 의도치 않게 새로운 잠재고객을 확보한 셈이 된 거죠. 이제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디서든 실시간 통역을 받을 수 있는 이 서비스는 필수 지원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당사자가 직접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하는 시대입니다.” 박원진 상임이사의 이 말에는 중요한 관점의 전환이 담겨 있어요. 농난청인을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닌, 스스로의 필요를 해결하는 혁신의 주체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2023년 시작한 ‘에이유디 펠로우십’입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어갈 농난청인 리더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지난해 2명을 시작으로 올해도 2명의 펠로우를 선발했습니다. 최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음성인식 자막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원진 상임이사는 여전히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고령자나 복합적인 요구를 가진 분들을 위해서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③ 콜렉티브 임팩트로 더 큰 임팩트 만들기 “3천만원을 갖고 재난 현장에 들어가면 일주일이면 다 써요.” 24년간 26개국의 재난 현장을 누빈 ‘사단법인 더프라미스’의 김동훈 상임이사가 말합니다. 그는 작은 규모 비정부조직(NGO)의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협력의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한국에서는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최대 효과를 위한 최소 협력’이라는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각 단체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방법을 찾은 겁니다. 예를 들어, 현장에서는 각자의 유니폼을 번갈아 입으며 활동합니다. 후원 기업들의 홍보가 골고루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그렇게 각자의 이해관계를 존중합니다. 현장에서는 일에만 집중해 성과를 냅니다. 재난 현장에서 서로 다른 조직이 함께 일하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모두 감안하고, 사업 진행 중에는 오직 사업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나중에 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일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성과를 내다 보니 참여 단체의 만족도가 높고, 그래서 지금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쌓은 협력의 결과는 시스템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가 설치됐고, 대구에서는 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전체적인 체계가 갖춰졌습니다. 김동훈 상임이사는 “사회혁신의 최종 목표는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1섹터(정부), 2섹터(민간영리), 3섹터(시민사회)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각 섹터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해야 하는데, 이때 새로운 실험에 나선 3섹터가 압도적인 역량을 보여줘야만 1섹터와 2섹터에서 자원을 투입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물론 이러한 협력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겠죠. 김동훈 상임이사는 협력을 위한 세 가지 실용적 조언을 제시합니다. 첫째, 평소에 신뢰 관계를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서도 서로 믿고 협력할 수 있죠. 둘째, ‘실수를 허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도전적인 시도에는 실수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셋째, 명분이 아닌 실제 효과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효과가 있을 때 협력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장에서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해외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우리 현실에 맞는 협력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행사가 열린 헤이그라운드는 서울 성수동에 있습니다. 헤이그라운드에는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비영리스타트업 등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 100여개가 넘는 조직들이 모여 있어요. 해결하려는 사회적 문제나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같습니다. 지난 2년간 루트임팩트와 브라이언임팩트는 헤이그라운드를 중심으로 비영리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실험을 해왔습니다. 단순히 사업비를 지원하는 것이 아닌, ‘공간’과 ‘사람’이라는 두 가지 핵심 자원을 지원하며 조직의 근본적인 역량 강화를 도모한 것입니다. “7개의 공간을 떠돌다가 드디어 안정을 찾았어요.” 젊은 정치인의 도전과 성장을 돕는 일을 하는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는 헤이그라운드에 자리 잡은 후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2명으로 시작한 팀이 5명으로 성장했고, 월 정기후원액이 2배 증가했으며, 비영리 임의단체에서 사단법인으로 전환하는 등의 성과를 이뤘어요. 무엇보다 비영리조직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자연스러운 협력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였습니다. ‘사단법인 공감인’ 장보임 사무국장은 “버티는 시기였지만, 내부가 점점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구성원들의 자신감이 성장한 기간이었죠”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공감하고 공감받는 마음이 연결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미션으로 한 공감인은 지난 10년간 솔루션의 고도화에 집중해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솔루션도 조직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지원을 받는 기간 동안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더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임팩트커리어를 통해 만난 새로운 동료들은 이제 조직의 핵심 멤버가 되어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요.  한국모금가협회 황신애 상임이사는 더 큰 그림을 보여줍니다. 황신애 상임이사는 “헤이그라운드 안에선 따뜻한데, 한 걸음만 나가도 차갑습니다. 함께 모여 있을 땐 ‘우리’인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 ‘혼자’가 됩니다”라고 말해요. 이는 작은 규모의 비영리조직이 성장하기 위해선 개별 조직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는 이어 “좋은 임팩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긴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그만큼의 기다림이 부족합니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라는 압박을 보면, 실패한 게 아니라 단지 축적의 시간이 부족했을 수 있죠”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비영리 생태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 더 긴 호흡으로 기다려줄 수 있는 지원 체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개별 조직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함께 비영리조직을 둘러싼 환경의 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  구독자분들께서 어떤 마음으로 지금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지 묻기 어려운 요즘입니다. 분노와 불안의 한 가운데 서 있기 때문일까요. 일상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사회변화를 위한 비영리조직들의 꾸준한 도전과 변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은 위안이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의 겨울을 견디고 나면 다가올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됩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지난 6일 기자회견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시 읽어봅니다.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때로는 ‘희망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얼마 전부터, 몇 달 전부터, 아니면 그 전부터일지도 모르겠는데,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스피커스와 함께 희망의 씨앗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탄핵 트라우마’라는 말 좀 그만해 😠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9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지난 주말도 바쁘게 보내셨을 독자님, 어김없이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 간밤에 아프신 곳은 없는지, 무리하고 계시진 않은지 걱정입니다. 긴 투쟁이 될지라도 지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잊지 말고 휴식은 꼭 챙기셔야 해요. 탄핵 가결의 기쁨도 잠시, 이제는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내란은 없다. 헌정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결단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죠. 탄핵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고,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꾸준히 실천하고 권력을 감시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탄핵 이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들려옵니다.  오늘은 이 질문에 단초가 될 기사를 소개합니다. 표결 불참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말했던 ‘탄핵 트라우마’가 얼마나 모순적인 단어인지, 탄핵 정국에서 2030 여성들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떠올랐음에도 동덕여대 시위나 여성이 겪는 성차별에는 여전히 이중잣대가 작동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 봅니다. 현 정치 정국이 모든 이슈를 삼키고 있는 와중,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지역의 기획취재도 마지막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폴라리스와 함께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상상해 볼까요? 1. 연재·기획: 44년 만에 치유 받은 첫날, 또 계엄이 터졌다 “계엄으로 우리 가족이 풍비박산 났는데, 이 땅에 다시는 없을 거로 생각한 역사가 또 반복됐다.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충격받았다"✍🏻 최서은 기자, <경향신문> ⓒ 연합뉴스 계엄령 선포 이후 여러분은 어떤 일상을 살고 계시는가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탓에 조금은 피로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단체 불참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좌절된 그날, 국민의힘은 박근혜 대통령 때 겪었던 ‘탄핵 트라우마’를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것을 표결 불참의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얼마 뒤 윤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에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누구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으며, 계엄 선포도 자유 헌정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탄핵 트라우마와 절박함이라는 서사를 활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트라우마와 절박이란 말은 아무 때나 수단처럼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트라우마는 통상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 사건이 남긴 심리적・정서적 상처를 말합니다. 절박함은 어떤 일이나 때가 가까이 닥쳐 몹시 급한 백척간두의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죠. 트라우마와 절박을 말해야 할 주체가 잘못되었습니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이 아닌 국민들이 했어야 하는 말입니다. 경향신문의 <탄핵이 절박하다> 시리즈는 계엄 선포 이전부터 이미 절박했던 국민들과 계엄 이후 더 절박해진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보도입니다. 윤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의 대남방송, 오물 풍선 등 도발에 시달려온 접경지 주민과 삼청교육대 피해 유가족,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연말특수를 잃어버린 자영업자까지. 국민들이 마주한 계엄 트라우마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윤 대통령의 탄핵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지 조명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만을 기다리며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독자분들도 같은 심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정국이 안정되길 바라며, 기사의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2. 오피니언: 여자들은 뒤통수에도 눈을 달고 산다 바바리맨 사건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성별에 따라 갈렸다. "괜찮느냐"고 걱정해준 사람들과 "에이, 설마"라면서 믿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 조금도 안전하지 않은 세계와 이만하면 안전한 세계. 무신경해지면 큰일나는 세계와 한껏 무신경해도 무탈한 세계. 성범죄자가 아무데서나 튀어나오는 세계와 그럴 리 없는 세계.✍🏻 최문선, <한국일보> ⓒ 영국 BBC 유튜브채널 영상 갈무리 ‘계엄 정국’에서 경계해야 할 일 중 하나를 꼽자면, 지나치게 차기 대선을 언급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명백한 내란을 헌법재판소에서 무슨 수로 부정하겠느냐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다 보니 현 대통령의 탄핵은 기정사실처럼, 이미 이뤄진 일처럼 다뤄지기도 하는데요. 이와 같은 설레발에 한술 더 뜬 정치인이 있습니다. “어떤 병X 지시받고 이러냐?”며 국회 문밖에서 소리 지르다 정작 계엄 해제 표결에는 참여하지 못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입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현 대통령 탄핵이 1월 내에 인용된다면 차기 대선에 출마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그 인터뷰를 보며 혼자 읊조렸습니다. 대선에 출마하고 싶다면 여성 유권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이 칼럼은 필자가 겪은 에피소드와 영국 BBC 토크쇼인 ‘그레이엄 노튼 쇼’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연결해 “성범죄자가 아무 데서나 튀어나오는 세계와 그럴 리 없는 세계”를 나눕니다. 그리고 칼럼 말미에 도통 ‘그럴 리 없는 세계’에 살다 못해 잔뜩 몰입한 나머지 다른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고 안티페미니즘을 기치로 정치를 꾸려가는 국회의원을 슬쩍 언급하기도 합니다. 최근 그는 디지털 성범죄 위장 수사 확대를 골자로 한 ‘성폭력 처벌법’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동덕여대 시위는 ‘비문명’이고 딥페이크 규제는 ‘과잉 규제’이며 20대 여성은 정치 어젠다 형성에 약하고 구호만 외친다는 이준석 의원에게 이 칼럼을 꼭 바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현실이 아닌 특정 세계에만 빠져사는 정치인은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운 좋게 당선된다 해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굴욕적인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섣부르게 대통령 출마를 언급하기 전에 한 번쯤 본인이 속해있는 세계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이 오피니언을 소개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3. 지역언론: 비리의 온상, 온누리상품권 이 사건의 핵심은 상품권 부정 유통 의혹이다. 제아무리 지역 여론과 사정에 밝은 구의원과 경찰이라도 사건 무마에 가까운 시도를 한 건 매우 부적절하다. 경찰은 중재를 할 게 아니라 수사를 하면 된다. 외려 불거진 문제를 봉합하려는 이들이 사건과 밀착됐을 개연성이 높다는 의심을 살 뿐이다. 상인회장에게 회장직 사퇴를 종용(慫慂)한 건 어떤 이유에서든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 간부는 "상인회장이 신임을 얻지 못하고, 계속 잡음이 생기니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냐며 권유했던 것"이라 해명했다.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상품권 부정 유통 의혹에 구의원과 경찰이 무슨 이유로 개입하려는지 의문이다.✍🏻 윤수진ㆍ박성현 기자, <매일신문> ⓒ 윤수진 기자 냉장고만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115억 원 매출을 낸 점포가 있다면 믿어지실까요? 매일신문 <비리의 온상, 온누리상품권> 보도는 한 통의 제보 전화에서 출발했습니다. 대구의 전통시장 중 하나인 북구 팔달신시장에서 한 법인이 냉장고 하나만 둔 점포를 운영하며 1년에 115억 원 가까운 매출을 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법인은 도매시장인 매천시장에서 실제 매출을 올리고 있어, ‘가짜 점포’를 계약한 뒤 전통시장에서만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을 부정유통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죠. 이에 윤수진, 박성현 기자는 우리 지역에서 관련 의혹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실상을 조사하기 위해 취재에 돌입합니다. 온누리상품권 기획기사는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일부의 탈법 행위가 제도의 취지를 좀먹는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취재 도중 경찰의 ‘수사 거래’ 의혹까지 번지면서 한 법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온누리 상품권의 제도적 허점을 노리고 있다는 구조적 비판까지 나아갈 수 있었죠. 관계 당국의 대책을 촉구하는 기사를 보도하자 이후 정부는 온누리상품권 부당이익 환수 조치를 포함한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꾸준한 보도가 만든 사회적 변화가 빛나는 사례입니다. 매일신문의 끈질긴 후속 취재를 따라가다 보면 지역에서 발굴되는 생활 밀착형 의제가 사회 전체에 울리는 경종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뉴스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대통령 퇴진・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는 최근의 집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청년들이 챙겨 나온 응원봉이었습니다.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왔죠. 너무 소중해 집안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다가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할 때만 어렵사리 꺼내 들던 물건이었습니다. 여의도・광화문 집회의 열기는 지난 주말,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전봉준 투쟁단’의 상경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농민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값진 농기계인 트랙터를 몰고 경남 진주와 전남 무안에서 출발해 윤 대통령의 관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진은 남태령 고개에 세워진 여러 대의 경찰 버스에 가로막혔습니다. 농민들은 윤 대통령의 체포 구속을 촉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상경을 감행한 것입니다. 경찰은 트랙터를 대체 무슨 근거로 막았던 걸까요. 경찰은 공공의 이익을 훼손할 정도로 극심한 교통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집회를 가로막은 이유로 들었습니다. 농민들은 영하 7도에 달했던 혹한 속에 마주한 물리적 봉쇄에도 굴하지 않고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21일 저녁,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온 시민들도 남태령에 합류했습니다. 여의도・광화문 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현장에 함께하지 못한 시민들은 방한용품과 식음료 등을 보내 마음을 보탰습니다. 혹한의 날씨를 뜨겁게 달군 시민들의 연대에 또 한 번 감동했습니다. 저도 마음으로나마 열정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냈고요.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배경에는 다소 복잡한 배경이 자리하는데요. 궁극적으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업무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인 ‘농업4법 개정안 거부’를 규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농업 4법 중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행사 법안이기도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양곡법 개정안의 주요 목표가 농민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고 식량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 만큼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양곡법 개정안이 국가 재정 부담만 늘릴 뿐 쌀값 지지 효과가 없는 법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죠. 쌀값 지지 효과를 논하며 개정안 거부를 건의한 국민의힘은 개정안의 국회 논의에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부는 금방 해결하겠다던 쌀값 안정화에 실패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논리를 재탕하며 또다시 거부권을 쓰다니 참으로 무책임합니다. 언제쯤 정치권이 ‘거부를 위한 거부’를 멈추고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할 수 있을까요? 성탄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독자님께선 어떤 연말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평화로운 연말을 보내고 계시길 바라지만 탄핵 정국의 여파로 그리 평온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우원식 국회의장의 말처럼 독자님의 연말이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랍니다. 연말은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항상 폴라리스와 함께 해주시는 독자님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2024. 12. 23.에디터 부기🐢 드림 만든 사람들: 콜리🥦, 반달 🌙, 해안🌊, 부기🐢  
[6411의 목소리] 군부 폭정에 떠나왔다…이집트 기자의 난민살이
군부 폭정에 떠나왔다…이집트 기자의 난민살이 (2024-12-23) 필자가 난민 당사자로서 참여하고 있는 난민인권 시민단체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의 활동 일환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있다. 필자 제공 ‘나일강의 여자’(필명) | 자동차 부품 공장 노동자 나는 딸만 여섯인 집의 장녀로 태어났다. 당시 이집트에는 딸만 가진 집에 대한 편견이 심했기에 나는 없는 아들을 대신하려 애썼다. 가족을 기쁘게 하고 싶었다. 공부 끝에 나는 한 대학의 매스컴학부 저널리즘학과에 진학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이즈음 이집트에서는 독재 정권에 맞서 2011년 1월 혁명이 일어났고, 나는 결혼과 이혼을 겪고 있었다. ‘여자에게 결혼은 필수’라는 이집트 사회의 통념을 이길 수 없어 결혼했지만, 사회는 이혼한 나를 ‘중고’라 부르며 더욱 거센 억압을 가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개인적인 삶 속 싸움들, 그리고 혁명이라는 큰 싸움을 동시에 치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기자 일을 시작한 건 2012년이다. 부패한 정권과 결탁한 언론사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심 끝에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라스드 뉴스 네트워크’에서 유튜브 콘텐츠 제작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광고 2012년 6월 최초의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의 당선도 잠시, 군부는 쿠데타를 선언했고 2013년 7월 무르시와 그의 지지자들을 체포했다. 군부는 언론을 통제하기도 해서 나 역시 처벌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견디며 비밀리에 일했다. 동시에 기자 일을 조금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검열 대상이 아니었던 언론사 ‘다마스쿠스의 목소리’에서도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 만난 이집트에 거주하는 시리아 난민들의 자리에, 언젠가 내가 한국에 거주하는 이집트 난민으로 있게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집트 현대사에서 2013년 8월14일은 끔찍한 날이다. 이날 이집트 군대와 경찰은 무르시 대통령 복권 시위에 나선 시민 700여명을 죽였다. 희생자 중에는 시위 현장에서 일하던 기자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 개인의 안전을 택할 것인지, 기자의 소명을 다할 것인지 말이다. 군부의 폭력과 통제에 위협받던 건 기자들뿐 아니라 인권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한 인권활동가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나의 남편이 되었고 우리는 우리 사이에서 난 딸의 부모가 되었다. 남편은 내가 기자 일을 지속하는 것을 지지했다. 2016년 폭력과 통제는 더욱 가혹해졌고 나와 남편은 정말 체포될 위험에 처했다. 탈출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두살배기 우리 딸에게서 부모를 앗아가게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던 한국이 우리 셋의 목적지가 되었다.(이후 한국 정부는 2018년 9월1일부터 이집트인을 무비자 입국 대상에서 제외했다.) 나와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아들과 금방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재회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식중독에 걸린 딸을 위해 의사를 부를 수 있는지 물었고, 우리에게 돌아온 건 모욕과 질책뿐이었다. 입국 뒤 우리는 의지할 것이 전무한 채, 망명자에게 주어진 권리의 벽을 체감하며 매일같이 새로운 문제에 부닥쳤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건 네해가 지나서다. 다만 난민 인정 뒤에도 삶이 그리 나아진 건 아니다. 물론 추방의 위협에서는 벗어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권리를 위해 매번 싸우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최악의 조건에서 최소한의 임금을 받고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간다. 지금 나는 2년째 자동차 부품 생산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첫해는 비교적 수월했지만, 둘째 해부터는 물리적 힘이 많이 드는 난도 높은 작업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너무 힘겨워 작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나는 퇴근 뒤 매일같이 고통받는다. 집안일을 잘해낼 수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없다. 그저 이런 질문들을 혼자 되뇐다. 내 삶은 대체 언제까지 내게 맞지 않는 일자리에서 낭비되는 걸까? 어째서 누구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왜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의 기술을 갉아먹도록 내버려두는 걸까? 광고 광고 한편 지난 4년간 나는 한 난민 인권단체에서 난민으로서 학생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을 만나며 난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있다. 이런 순간만큼은 저널리즘으로 복귀한 듯하다. 나는 한국에서도 기자로 일하고 싶다. 기자 일은 내가 대학과 전 직장들에서 훈련받아 잘할 수 있는 일, 우리 가족과 나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어려워도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언젠가 아랍 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겠다는 꿈도 나에게 있다. 번역 현정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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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산재 소송, 끝내 이겼다… 잔인했던 ‘7년’ [그녀의 우산 10화]
법원은 신호영(48, 가명) 씨의 손을 들어줬다. 어느새 머리가 희끗해진 그는 7년 만에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이 너무 야속했지. 내가 거짓말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못 믿어서 대법원까지 간 거잖아.”(어머니 김정혜 씨, 가명) 근로복지공단은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했다. 호영 씨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한 근로복지공단. 그에 불복한 호영 씨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산재를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이어진 2심에서도 재판부는 산재를 인정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결국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갔다. 그렇게 이어진 싸움이 7년이었다. 대법원에서 지난달 28일 별도의 심리 없이 근로복지공단의 상소를 기각하면서 지난한 싸움이 끝났다. 호영 씨는 2002년 3월부터 2년간 LED 제품 생산 라인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루 11시간씩 100℃가 넘는 고온으로 제품 열 테스트를 수행하거나, 화학물질이 가득한 용액에 웨이퍼를 넣고 빼는 작업 등을 했다. 심지어 하루 11시간에서 13시간씩 일했다. 주말에도 예외는 없었고, 주로 야간조로 투입됐다. 그에게 주어진 건 방진복과 얇은 마스크였다. 작업장에는 열을 식히는 장치나 국소배기장치도 없었다.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온 건 2007년 6월이었다. 조금씩 뻣뻣하게 굳어가던 몸. 호영 씨는 2009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치료약이 없는 불치병. 50대 전후로 발병한다는 병이 33살에 나타났다. 1심 판결은 지난해 6월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한 지 6년 만에 나온 첫 번째 판결. 당시에도 거동이 어려웠던 그에게 산재 인정과 요양급여, 간병급여 등이 시급히 필요했다. 근로복지공단도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법무부에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는 ‘소송을 계속하라’고 지휘했다. 근로복지공단이 ‘항소 포기’ 의사를 밝히면 법무부가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2021년과 2022년에는 법무부가 항소 이행을 지시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2023년은 달랐다. 이수진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그해에만 호영 씨를 포함해 ‘반대 사례’가 4건이나 있었다.(관련기사 : <파킨슨병 산재 또 승소… ‘법정고문’은 7년으로 족하다>) “그때 내가 회사 못 나오게(퇴사하지 못하게) 했어. 끝내 다니다가 이 병을 얻은 거잖아. 그게 참… 너무 후회가 되더라고.” 호영 씨에게 사과를 한 건 회사도, 근로복지공단도 아니었다. 나날이 악화되는 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어머니 김정혜(72, 가명) 씨였다. 어느새 일흔이 넘은 노모는 인생의 ‘황금기’를 병상에서 보내는 아들을 간호했다. 지우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들이 힘들다고 이직을 고민할 때 다른 일 해 보라고 권하지 않았던 과거는 발목을 잡았다. 아들과 보내는 시간은 점차 늘어났다. 이제는 옆으로 넘어져도 호영 씨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마음 편하게 잠든 것도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산재가 인정된 지금은 한시름 덜지 않았을까. 반가운 마음으로 호영 씨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죄송해요. 컨디션이 안 좋아서 11시 30분쯤에 전화해도 될까요.” 전화하기로 예정된 9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 호영 씨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법정 공방이 길어지면서 호영 씨의 몸 상태도 나날이 악화됐다. 증상을 완화시켜준다는 약도 7년이라는 시간 앞에 속절없었다. 오전 11시 30분이 돼서야 전화를 할 수 있었다. 호영 씨는 짧게 안부 인사만 나누고 핸드폰을 정혜 씨에게 넘겼다. 그를 대변하는 건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참 기분이 묘했죠. 끝을 봐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언젠가 되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대법원 선고가 있던 지난달 28일. 호영 씨 가족들은 오전부터 결과가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1심, 2심 재판부가 그랬던 것처럼 ‘산재 인정’ 결과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점심시간을 조금 넘기자 결과가 확인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재판부가 심리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의 기각하겠다고 결정했다. “이제 한시름 덜겠구나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직 멀었더라고. ‘더 큰 산’을 넘어야 되더라고요.” 호영 씨의 가족이 다시 울상을 지은 건 산재 인정 이후의 절차 때문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호영 씨의 산재가 승인됐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향후 보상 절차에 대한 안내였다. 그 서류들을 준비하는 것도 역시나 일흔 넘은 노모의 일이었다. “(산재 행정소송 이후가) 절차적으로 복잡해요. 그런데 공단에서는 이거 신청해야 된다거나, 어떤 서류 필요하니 제출해라, 이런 안내도 거의 안 해줘요. 산재 인정받고 잘 모르는 분들은 신청도 못 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어요. 따로 안 챙겨주거든요.”(이종란 노무사) 불친절한 행정 서비스에 정혜 씨는 분통이 터졌다. 주치의한테 소견서를 받아야 했다. 호영 씨는 요양급여뿐만 아니라 장애급여, 간병급여 등이 필요했다. 이것들을 하나 신청할 때마다 의사 소견이 필요했다. 정혜 씨는 지난 17일 주치의로부터 소견서 작성을 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왔다.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 피해자에게 소견서 작성을 거부하는 주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겠죠. 8년 동안도 (산재 행정소송) 해봤는데, 계속 해봐야지.” 지난 시간은 정혜 씨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아야 바뀐다”고 설명했다. 정혜 씨는 지난해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인터뷰를 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간병의 어려움과 근로복지공단의 부당한 항소 철회를 호소하는 글을 전하기도 했다. 아들의 산재 승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근로복지공단에 더는 시간을 끌지 말아달라고 외쳤지만, 끝장을 본 뒤에야 ‘산재 인정’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실의 문턱은 높다. 지난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중 박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파주시을)은 호영 씨 사례를 언급하며, 근로복지공단에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박 의원은 “사회 변화에 따라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늘어나고, 의학·과학의 연관성만 따지면 산재 노동자는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며, “법원의 (산재 인정)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도 그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정혜 씨는 피 말리는 소송전을 이어가는 또 다른 산재 피해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은 캄캄한 터널을 걷는 기분일 텐데, 언젠가는 ‘드디어 빠져 나왔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런 기대와 용기를 가지고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피해자들한테 복지가 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생각해야 돼요. 그렇게 잔인하게 하지 말고 복지를 위해 일했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해야 할 ‘숙제’가 남은 정혜 씨는 다음을 기약했다. 모든 절차들을 마치면 반가운 소식을 안고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기자도 그때 다시 축하를 전하겠다고 답했다. “계속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아픈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주십시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서평] 연결하는 건축 - 안그라픽스
 최근 <건축의 장면> 전시전에 방문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이 전시전은 건축을 컨셉으로 하지만 건축미니어처는 없는 전시전이다. 오히려 영상 전시에 가까운 전시전이다. 내가 그날 전시전에 방문한 것도 우연한 일이었다. 길을 가는 도중에 미술관이 보였고 근래에 『연결하는 건축』을 읽고 관심도가 올라간 상태에서 마침 건축과 관련된 전시전이 열렸다. 그래서 독서모임이 끝나고 모두를 배웅한 다음 그 길로 전시전에 방문했다. 그런데 우연히 2시에 시작할 전시해설이 예정보다 늦게 시작했고, 우연히 내가 방문한 시점에 1층 소개를 모두 끝낸 도슨트가 2층 <건축의 장면> 기획전으로 관람객들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적어보니 정말 우연이 겹치고 겹쳤다. 이번 기획전은 만족스러웠다. 영상 전시였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20분에서 30분의 상영 시간을 가진 작품들이 많았기에 시간이 많지 않아 모든 작품을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원하는 작품들만 살펴봐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전시전이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기도 해서 그 시선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었고.  서평의 서두에 전시전 후기를 짤막하게 쓴 이유는 전시된 한 작품 때문이다. 전시전에는 《비슷한 골목》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한국의 여러 골목들을 같은 구도로 촬영한 다음 꼴라주 기법에 따라 골목의 사진을 오려 여기저기에 붙여보는 작품이었다. 생각해 보자. 붉은 벽돌로 된 건물들과 회색 담장, 바닥에는 일방통행이라고 적힌 페인팅이 있고 담장 좌우에는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이 서있다. 앞에는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 놓여있고 좌우에는 작은 골목이, 그리고 하늘에는 전신주가 양팔을 펼치고 있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한국 어디를 가도 보이는 평범한 골목이. 책에서 많은 대담을 이루지만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연결하는 건축』은 구마 겐고의 대담집이다. 정치인, 사회활동가, 연극 감독, 건축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인터뷰를 하는 그는 도쿄 올림픽 당시 도쿄 국립경기장을 설계한 건축사로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이 대담을 시작한다. 그는 일본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담을 이루는데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이야기는 일본의 다도 문화와 다도실, 그리고 마당의 형태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건축의 본질을 찌르는 이야기에 가깝다.  서구권의 시선에서 일본의 건축 양식에 특별함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오로지 다도를 위해 존재하는 다도실의 유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다도는 일본인에게 특별한 문화다. 전국시대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서로 마주하며 차를 마시는 다도실은 칼과는 거리를 둔, 문무겸비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소였고 실제로 많은 회담, 밀담이 이뤄지고 정치가 완성된 장소기도 했다. 물론 방 앞에 자신의 심복들을 배치해 놓고 숨죽여 칼을 쥐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다수 나오지만 말이다.  인터뷰는 이후 다른 인물의 입을 통해 사회의 다른 부분을 찌른다. 일본의 연립주택, 아파트의 형성과 거주민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구성에 대한 이야기, 기획도시의 구성에 대한 건축사들의 시선과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이야기, 구마 겐고 본인의 건축 철학에 대한 이야기, 철도 문화, 버스, 고립되는 시골 주민들의 이야기, 그리고 최초 기획했던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의 고통과 치유, 그들을 돕기 위한 건축사들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까지 말이다.  나는 이 중에서도 기획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사실 나는 기획도시의 형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혁신도시, 신도시라고 불리는 도시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도시의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내천을 겉으로 두르거나 도시의 중앙으로 내천이 관통하고 이를 기점으로 좌측에는 거주지구, 우측에는 상업지구, 혹은 거기에 대로변을 하나 더 배치해서 마치 좌표평면 위의 지역처럼 1사분면에는 거주지구, 2사분면에는 상업지구 3사분면에는 공업지구... 이런 식의 배치가 이어진다.  내부는 얼마나 다를까? 서문에서 말한 한국의 어느 골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치 하나의 설계도로 이 도시의 모든 건물을 지은 것처럼, 어딜 가도 똑같은 건물이 놓여 있고 어딜 가도 똑같은 도시가 놓여 있다. 위에서 말한 《비슷한 골목》이라는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영상으로 가만히 지켜봤다. 잘린 골목의 사진들은 분명 각기 다른 골목에서 가져온 사진이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띄면서 주변 다른 조각들과 위화감 없이 함께했고 작품이 완성될 쯤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골목이 되었다. 기획도시들도 똑같다. 결국 완성된 형태를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도시의 형상이 된다. 기획도시의 건축 시작 당시 이념은 꽤나 거창하다. 낙후된 도시를 신도시의 형태로 변모시켜 지방에 많은 이주민을 받고자 한다. 그리고 지방의 특색을 살린다면 이후 사람도 살기 좋고 관광지로도 가치가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념대로 이뤄지는 도시는 없다. 수도권 과밀이라는 한국의 특성상 지방에 아무리 좋은 건물이 지어져도 사람은 직장이 없어 살 수 없고, 도시를 다시 짓는 과정에서 지방의 특색은 거세당해 관광객들도 방문할 이유가 없는 도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혁신도시는 주말이면 불 꺼진 도시가 된다. 평일에는 해당 지역 기업에 다니는 기러기 아빠들이 살다가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가는 죽은 도시.  책에서 나오는 예시처럼 무분별하게 지어진 상가와 골목으로 이어진 거리 위로 이를 관통하는 순환도로가 생긴다면, 난잡한 -혹은 자유로운- 도시에 유입되는 인구가 늘 것 같지만 도시의 특색은 거세당한다. 관광지는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니게 되고 사람들은 특색을 잃어버린 도시에 흥미를 잃는다. '한국에는 방문할만한 관광지가 없다.'라는 말이 나올 때 함께 나오는 1번 이유, '어딜 가도 똑같은 도시고 볼거리가 없다.' 사실 나는 이 말이 한국을 싫어할 억지스러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갈만한 도시는 많고 볼만한 장소는 넘친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과거 볼거리라고 불렸던 것들은 많이 사라졌고 지금은 그게 다 억지스러운 신도시들의 산물이 되었으니.  나는 건축사가 아니기에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 어떻고, 사회 시선적으로 어떻고, 내부자들의 입장에서 어떻고, 왈가왈부 떠들 수 있는 수준이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어찌 보자면 지금의 입장에서는 최선인데 내가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거기에 우리는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 이제 겨우 70년의 시간 밖에는 보내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지방 도시의 미래는 결국 자로 잰듯한 기획도시가 아닌 도시의 원래 형상을 살린 특색을 내세우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이제는 빠르지 않은 기차도 고민하고, 장소와 장소 사이를 이을 방안도 생각해 보고, 다양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입에서 한국은 볼거리가 없다는 말이 들어가는 말이 먼저 올까. 아니면 《비슷한 골목》처럼 도시를 상공에서 찍고 꼴라주로 자르고 붙여 똑같은 도시를 만드는 작품이 먼저 나올까. 앞으로도 나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뿐이다.  사실 《비슷한 골목》이라는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많이 이야기했지만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 《버섯의 건축》이라는 작품이었다. 땅에 붙는 로우 앵글로 숲을 따라 움직이며 숲에 나있는 버섯들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각자 건축에 대한 시선과 철학을 담은 작품은 때로는 버섯과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버섯의 형상, 군집을 이룬 모습과 함께 흘러나오는 건축가들의 내레이션으로 완성된다. 관람객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는 느낌을 받다 어느 순간부터 버섯을 건축물로 보고 내레이션의 설명을 버섯에 오버랩시키게 되는데 마침 버섯의 갓이 또 건축물의 지붕처럼 아늑함을 주기에 그 감정은 배가 된다. 이런 몽타주 기법의 활용은 어찌보면 모두가 떠올렸지만 흘려보낸 생각을 잘 활용한 예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평에서는 기획도시의 이야기를 많이 떠들었지만 재난 피해자들의 고립과 상처, 그리고 치유도 정말 중요한 주제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에 이뤄진 대담이다보니 필연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일본의 역사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다이쇼 시대의 관동 대지진으로 있었던 대화재, 그리고 피해가 발생해 도시가 초토화 되었음에도 가장 먼저 복구된 철도를 떠올리게 된다. 철도는 재난 상황에서도 가장 빠르게 복구되는 이동수단이다. 도로가 부숴지면 고립되는 버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복구되고 이를 기점으로 재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삶은 급격히 나아진다. 그래서 구마 겐고도 똑같은 걱정을 한다. 버스 생활권에 사는 이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고 도움을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철도는 문화 관광의 가치를 가지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철도는 그보다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안고 있는 이동수단이다. 그래서 일부 노선은 돈이 되지 않음에도 유지하고 보수한다고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이제는 정말 유지하기 힘들어 시골을 다니는 단칸 열차도 폐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문화적 가치관을 떠올리며 읽는다면 이 책은 더욱 재미있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적지 않은 인명이 나오기에 처음 읽을 때는 조금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13년도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와 지금 상황을 떠올리면서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에 가져온 책은 연결하는 건축이라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던 건축사인 구마 겐고의 대담집인데요,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이야기와 이에 대한 건축사의 고뇌,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건축사와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시선이 담긴 재미있는 대담집이라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별개로 제가 쓴 이야기는 신도시의 형태에 대한 비판인데 사실 이런 이야기를 적으면서도 제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저는 진주에 살지는 않았지만 진주에 꽤 자주 왕래를 하고는 했어요. 주말만 되면 방문한다 싶을 정도로요. 진주 혁신도시는 굉장히 기틀이 잡힌 도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LH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는 도시였습니다. 특히 LH 본사 주위에 있는 집들은 주말이면 모두 불이 꺼진 공실이 되고는 했었죠. 그래서 주말이 되면 진주는 조용한 도시가 됩니다. LH 본사에 홀로 내려온 가족은 상경하고 이 곳에 방문하는 방문객은 거의 없는 도시가 되고는 하죠. 하지만 진주는 다른 혁신도시나 신도시에 비하면 굉장히 양호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도시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살기 위해서는 어떤 구상을 해야 할까요. 물론 가장 먼저 나오는 답은 인프라고 기업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다음으로 특색은 어떻게 끼얹을 수 있을까,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고는 하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네요. 철도, 관광지, 여행 기획 다양한 방법이 있을 거 같지만 막상 또 그 곳에 사는 주민이 아니라면 떠올릴 수 없는 방법 같고요. 다음에도 이런 서평을 준비해서 가져올 수 있으면 가져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을 바꿀 우리들의 질문들.
우리사회 민주주의는 어떻게 유지되나?  현재 당면한 과제는 윤석열 대통령만 탄핵되면 해소될 것 같지만 어떤면에서 근본적 문제 해결이 되지 않고 시민들이 관심갖지 않는다면, 2017년 처럼 촛불은 멈추는 상황이 될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우리공동체는 내란수괴 윤석열 뽑았고, 시대를 후퇴하는 상황을 눈앞에서 마주 했을까요? 우리가 놓친 과제는 무엇알까요? 와 같은 여러 주제로 사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그런 여러 질문을 남기고 여러 관점에서 우리사회를 보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 가야할 방향을 찾고자 합니다. < 질문에 들어가는 글> 2017년 촛불혁명 이후 제도 개혁의 부재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퇴보를 목격하였다. 그 후 민주 정권에서 검찰개혁과 같은 근본적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서 결국 윤석열 검찰정권이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상상 못할 계엄령을 발령했다.  시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몸으로 강갑차를 막아 섰고, 20~30대 젊은이들은 탄핵집회를 위해 콘서트 야광봉을 들고  집회에 나오는 모습을 봤다.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계엄은 해제 되었지만 우리는 제2의 5.18 광주의 참상이 서울 여의도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2024년 12월을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는 역사가 언제나 전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과연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우리사회가 제자리로 돌아올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관료 및 정치인을 봤고,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본질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뿌리 깊은 수직적 계급 구조와 상명하복은 모든 형태의 조직에서 나타난 탐욕과 무능함이다.   1.한국 사회의 문제와 지식인: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역사적, 철학적 가치를 잃게 된 이유는?지식인들이 무능 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2. 근대화와 산업화: 근대화와 산업화를 분리하는 관점으로 볼때 한국사회는 근대화가 이뤄졌는가? 다른 나라는 어떤가?근대화와 함께 한 전체주의, 민주주의, 산업화, 군사주의, 패권주의 간의 관계는?근대화를 넘어선 서구사회 68년 혁명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 왔을까?국제적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 한국 근 현대사의 축소 의도는 없었을까? 3. 문화적 흐름과 청년: 억압된 문화와 이를 극복한 사례는 무엇인가? 현재 남은 한계는?현재 청년 문화는 무엇이며, 어떤 성찰로 이어지고 있는가?과거의 문화적 각성은 있었나? 그리고 과거의 경험은 젊은 세대로 이어졌는가, 아니면 단절 되었는가?우리는 다음세대가 꿈을 꾸면 이뤄지는 사회 비전을 만들고 있나? 그리고 그것을 막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 4. 종교와 권력구조: 한국 종교의 권력지향적 전통은 어디에서 비롯 되었나?우리사회 기득권은 왜 주술에 빠졌나?수직적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어디서 비롯 되었나?정치, 경영 등 분야에서 계급적·지역적 패거리 문화의 문제와 역사적 배경은? 이를 극복 하려면? 5. 권력과 세계 질서: 권력 집중 구조를 해소하고 시민 참여를 늘리려면?자본 중심의 독점 구조를 벗어날 수 있을까?패권 중심의 세계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 질서는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팩트체크 너머] 민경욱의 부정선거 변호사, 윤석열을 대변하다
시민팩트체커 커뮤니티 K.F.C.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한 중앙선관위의 주장을 검증해 ‘[팩트체크] 사법기관의 판결로 부정선거 의혹의 근거 없음이 밝혀졌다?’를 발행했습니다. 이번 콘텐츠에선 사실 여부 판단 과정에서 확인한 몇 가지 사실을 ‘팩트체크 너머’로 정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엔 ‘근거’가 없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를 넘긴 시각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진행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군이 곳곳에 투입됐고, 특히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장면을 전국민이 생중계로 목격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선포 2시간여 만에 190명의 국회의원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에 찬성해 해제되었습니다. 이후 계엄군이 국회를 비롯해 헌법기관 중 하나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계엄군은 왜 선관위에 갔을까?’를 두고 연일 추측이 이어졌고, ‘부정선거’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하며 직접 ‘부정선거’ 의혹을 꺼내들었습니다. 관건은 윤 대통령이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제시한 근거들은 사실이 아님이 곳곳에서 지적되었습니다. K.F.C.는 ‘[팩트체크] 국정원의 해킹으로 선관위 데이터 조작 가능성이 입증됐다?’를 통해 그 중 하나인 국정원의 점검이 근거가 되지 않음을 검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JTBC, 머니투데이 등 여러 언론사에 의해 윤 대통령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엔 근거가 없었습니다. 명확하게 ‘의혹’이 아니라 ‘음모론’이 된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측’ 변호사 석동현도 ‘부정선거 음모론자’ 그럼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한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은 시시각각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 등으로 언론에 소개됐고, 윤석열 정부에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임명되었던 석동현 변호사가 ‘윤석열 대통령 측’ 입장을 밝혔는데요. 외신, 특파원, 국내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석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은 ‘체포’의 ‘체’자도 꺼낸 적이 없다”, “내란죄 아니다” 등 윤 대통령의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언론을 통해서 곧바로 확산됐죠. 윤석열 대통령과 중앙선관위의 입장 중 어느 쪽이 사실인지를 확인한 ‘[팩트체크] 사법기관의 판결로 부정선거 의혹의 근거 없음이 밝혀졌다?’에선 민경욱 미래통합당 후보가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의 대법원 판결문을 확인했습니다. 판결문에선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동진 담당변호사 석동현’ 석동현 변호사에 대한 설명을 조금 바꿔보면 ‘민경욱의 부정선거 음모론 변호사’가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석 변호사는 4년 전 토론회에서 직접 부정선거 소송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부정선거 변호사’를 넘어 ‘부정선거 음모론자’로도 활동한 셈입니다. 2022년 대법원의 교훈이 ‘부정선거 음모론자’에게 닿을 수 있을까 물론 메신저의 이력만으로 메시지를 곧바로 부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메시지가 전달되는 과정에선 메신저가 어떤 인물인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동일한 메신저가 허위정보를 확산해 문제가 반복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2월 19일 국회에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속해서 주장해온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부정선거는 팩트”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한겨레의 취재에 따르면 이 기자회견은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기자회견장을 대여해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법원을 통해 2차례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왜 2024년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이 반복되는지 따져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경욱의 부정선거 음모론 변호사 석동현’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란 이유로 다양한 언론에서 석 변호사의 발언이 보도되고 있지만 그가 ‘음모론의 변호사’, ‘음모론자’라는 사실을 다룬 매체는 MBC, 경향신문, 한겨레 등 소수에 그쳤습니다. ‘민경욱의 부정선거 음모론 변호사 석동현’의 재판은 2022년 대법원에 의해서 근거가 없다는 게 밝혀지며 실패로 끝났습니다. ‘내란죄, 부정선거 음모론 대통령 윤석열 측 석동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과거의 재판에서 대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에 명확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 교훈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선거 관련 규정에 위반되었다는 사실과 구체적, 직접적으로 어떠한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단편적, 개별적인 사정과 이에 근거한 의혹만을 들어 선거소송을 제기하여 그 효력을 다투는 것으로 선거무효사유의 증명책임을 다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검증이 필요한 이미지, 정치인의 발언, 정보를 발견하신 경우 시민활동플랫폼 빠띠의 디스코드 채널(클릭)로 제보해 주세요. 제보된 정보는 검토를 거쳐 시민팩트체커 커뮤니티 K.F.C.가 검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