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9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지난 주말도 바쁘게 보내셨을 독자님, 어김없이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 간밤에 아프신 곳은 없는지, 무리하고 계시진 않은지 걱정입니다. 긴 투쟁이 될지라도 지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잊지 말고 휴식은 꼭 챙기셔야 해요.
탄핵 가결의 기쁨도 잠시, 이제는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내란은 없다. 헌정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결단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죠. 탄핵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고,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꾸준히 실천하고 권력을 감시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탄핵 이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들려옵니다.
오늘은 이 질문에 단초가 될 기사를 소개합니다. 표결 불참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말했던 ‘탄핵 트라우마’가 얼마나 모순적인 단어인지, 탄핵 정국에서 2030 여성들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떠올랐음에도 동덕여대 시위나 여성이 겪는 성차별에는 여전히 이중잣대가 작동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 봅니다. 현 정치 정국이 모든 이슈를 삼키고 있는 와중,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지역의 기획취재도 마지막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폴라리스와 함께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상상해 볼까요?
1. 연재·기획: 44년 만에 치유 받은 첫날, 또 계엄이 터졌다
“계엄으로 우리 가족이 풍비박산 났는데, 이 땅에 다시는 없을 거로 생각한 역사가 또 반복됐다.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충격받았다"
✍🏻 최서은 기자, <경향신문>
ⓒ 연합뉴스
계엄령 선포 이후 여러분은 어떤 일상을 살고 계시는가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탓에 조금은 피로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단체 불참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좌절된 그날, 국민의힘은 박근혜 대통령 때 겪었던 ‘탄핵 트라우마’를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것을 표결 불참의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얼마 뒤 윤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에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누구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으며, 계엄 선포도 자유 헌정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탄핵 트라우마와 절박함이라는 서사를 활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트라우마와 절박이란 말은 아무 때나 수단처럼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트라우마는 통상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 사건이 남긴 심리적・정서적 상처를 말합니다. 절박함은 어떤 일이나 때가 가까이 닥쳐 몹시 급한 백척간두의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죠. 트라우마와 절박을 말해야 할 주체가 잘못되었습니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이 아닌 국민들이 했어야 하는 말입니다.
경향신문의 <탄핵이 절박하다> 시리즈는 계엄 선포 이전부터 이미 절박했던 국민들과 계엄 이후 더 절박해진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보도입니다. 윤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의 대남방송, 오물 풍선 등 도발에 시달려온 접경지 주민과 삼청교육대 피해 유가족,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연말특수를 잃어버린 자영업자까지. 국민들이 마주한 계엄 트라우마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윤 대통령의 탄핵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지 조명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만을 기다리며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독자분들도 같은 심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정국이 안정되길 바라며, 기사의 일독을 권합니다.
2. 오피니언: 여자들은 뒤통수에도 눈을 달고 산다
바바리맨 사건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성별에 따라 갈렸다. "괜찮느냐"고 걱정해준 사람들과 "에이, 설마"라면서 믿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 조금도 안전하지 않은 세계와 이만하면 안전한 세계. 무신경해지면 큰일나는 세계와 한껏 무신경해도 무탈한 세계. 성범죄자가 아무데서나 튀어나오는 세계와 그럴 리 없는 세계.
✍🏻 최문선, <한국일보>
ⓒ 영국 BBC 유튜브채널 영상 갈무리
‘계엄 정국’에서 경계해야 할 일 중 하나를 꼽자면, 지나치게 차기 대선을 언급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명백한 내란을 헌법재판소에서 무슨 수로 부정하겠느냐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다 보니 현 대통령의 탄핵은 기정사실처럼, 이미 이뤄진 일처럼 다뤄지기도 하는데요. 이와 같은 설레발에 한술 더 뜬 정치인이 있습니다. “어떤 병X 지시받고 이러냐?”며 국회 문밖에서 소리 지르다 정작 계엄 해제 표결에는 참여하지 못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입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현 대통령 탄핵이 1월 내에 인용된다면 차기 대선에 출마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그 인터뷰를 보며 혼자 읊조렸습니다. 대선에 출마하고 싶다면 여성 유권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이 칼럼은 필자가 겪은 에피소드와 영국 BBC 토크쇼인 ‘그레이엄 노튼 쇼’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연결해 “성범죄자가 아무 데서나 튀어나오는 세계와 그럴 리 없는 세계”를 나눕니다. 그리고 칼럼 말미에 도통 ‘그럴 리 없는 세계’에 살다 못해 잔뜩 몰입한 나머지 다른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고 안티페미니즘을 기치로 정치를 꾸려가는 국회의원을 슬쩍 언급하기도 합니다. 최근 그는 디지털 성범죄 위장 수사 확대를 골자로 한 ‘성폭력 처벌법’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동덕여대 시위는 ‘비문명’이고 딥페이크 규제는 ‘과잉 규제’이며 20대 여성은 정치 어젠다 형성에 약하고 구호만 외친다는 이준석 의원에게 이 칼럼을 꼭 바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현실이 아닌 특정 세계에만 빠져사는 정치인은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운 좋게 당선된다 해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굴욕적인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섣부르게 대통령 출마를 언급하기 전에 한 번쯤 본인이 속해있는 세계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이 오피니언을 소개합니다.
3. 지역언론: 비리의 온상, 온누리상품권
이 사건의 핵심은 상품권 부정 유통 의혹이다. 제아무리 지역 여론과 사정에 밝은 구의원과 경찰이라도 사건 무마에 가까운 시도를 한 건 매우 부적절하다. 경찰은 중재를 할 게 아니라 수사를 하면 된다. 외려 불거진 문제를 봉합하려는 이들이 사건과 밀착됐을 개연성이 높다는 의심을 살 뿐이다. 상인회장에게 회장직 사퇴를 종용(慫慂)한 건 어떤 이유에서든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 간부는 "상인회장이 신임을 얻지 못하고, 계속 잡음이 생기니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냐며 권유했던 것"이라 해명했다.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상품권 부정 유통 의혹에 구의원과 경찰이 무슨 이유로 개입하려는지 의문이다.
✍🏻 윤수진ㆍ박성현 기자, <매일신문>
ⓒ 윤수진 기자
냉장고만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115억 원 매출을 낸 점포가 있다면 믿어지실까요? 매일신문 <비리의 온상, 온누리상품권> 보도는 한 통의 제보 전화에서 출발했습니다. 대구의 전통시장 중 하나인 북구 팔달신시장에서 한 법인이 냉장고 하나만 둔 점포를 운영하며 1년에 115억 원 가까운 매출을 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법인은 도매시장인 매천시장에서 실제 매출을 올리고 있어, ‘가짜 점포’를 계약한 뒤 전통시장에서만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을 부정유통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죠. 이에 윤수진, 박성현 기자는 우리 지역에서 관련 의혹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실상을 조사하기 위해 취재에 돌입합니다.
온누리상품권 기획기사는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일부의 탈법 행위가 제도의 취지를 좀먹는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취재 도중 경찰의 ‘수사 거래’ 의혹까지 번지면서 한 법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온누리 상품권의 제도적 허점을 노리고 있다는 구조적 비판까지 나아갈 수 있었죠. 관계 당국의 대책을 촉구하는 기사를 보도하자 이후 정부는 온누리상품권 부당이익 환수 조치를 포함한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꾸준한 보도가 만든 사회적 변화가 빛나는 사례입니다. 매일신문의 끈질긴 후속 취재를 따라가다 보면 지역에서 발굴되는 생활 밀착형 의제가 사회 전체에 울리는 경종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에디터가 남긴 편지
대통령 퇴진・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는 최근의 집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청년들이 챙겨 나온 응원봉이었습니다.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왔죠. 너무 소중해 집안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다가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할 때만 어렵사리 꺼내 들던 물건이었습니다.
여의도・광화문 집회의 열기는 지난 주말,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전봉준 투쟁단’의 상경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농민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값진 농기계인 트랙터를 몰고 경남 진주와 전남 무안에서 출발해 윤 대통령의 관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진은 남태령 고개에 세워진 여러 대의 경찰 버스에 가로막혔습니다.
농민들은 윤 대통령의 체포 구속을 촉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상경을 감행한 것입니다. 경찰은 트랙터를 대체 무슨 근거로 막았던 걸까요. 경찰은 공공의 이익을 훼손할 정도로 극심한 교통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집회를 가로막은 이유로 들었습니다.
농민들은 영하 7도에 달했던 혹한 속에 마주한 물리적 봉쇄에도 굴하지 않고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21일 저녁,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온 시민들도 남태령에 합류했습니다. 여의도・광화문 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현장에 함께하지 못한 시민들은 방한용품과 식음료 등을 보내 마음을 보탰습니다. 혹한의 날씨를 뜨겁게 달군 시민들의 연대에 또 한 번 감동했습니다. 저도 마음으로나마 열정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냈고요.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배경에는 다소 복잡한 배경이 자리하는데요. 궁극적으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업무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인 ‘농업4법 개정안 거부’를 규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농업 4법 중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행사 법안이기도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양곡법 개정안의 주요 목표가 농민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고 식량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 만큼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양곡법 개정안이 국가 재정 부담만 늘릴 뿐 쌀값 지지 효과가 없는 법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죠.
쌀값 지지 효과를 논하며 개정안 거부를 건의한 국민의힘은 개정안의 국회 논의에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부는 금방 해결하겠다던 쌀값 안정화에 실패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논리를 재탕하며 또다시 거부권을 쓰다니 참으로 무책임합니다. 언제쯤 정치권이 ‘거부를 위한 거부’를 멈추고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할 수 있을까요?
성탄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독자님께선 어떤 연말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평화로운 연말을 보내고 계시길 바라지만 탄핵 정국의 여파로 그리 평온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우원식 국회의장의 말처럼 독자님의 연말이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랍니다. 연말은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항상 폴라리스와 함께 해주시는 독자님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2024. 12. 23.
에디터 부기🐢 드림
만든 사람들: 콜리🥦, 반달 🌙, 해안🌊, 부기🐢
코멘트
1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데 정확한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알기 쉽게 정리해주신 덕분에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는 제목의 오피니언! 정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ㅎㅎ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