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까라면 까? - 12.3 비상계엄령이 원했던 생각하지 않는 군인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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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커먼즈의 관점에서 현실을 조망하는 대안언론, 더슬래시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살면서 이 말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농담으로든 진담으로든,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듣고, 또 하곤 합니다. 좀 더 길게 풀어보자면 이런 식이죠. “하라면 하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말이 많은 사람들은 욕을 먹게 됩니다. 방해되니까요. 일을 느리게 만드니까요. 자꾸만 딴지를 거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말이 많다는 건 곧 생각이 많다는 겁니다. 결국 저 따옴표 안의 말들은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라는 뜻인 거죠. 우리는 이것을 ‘상명하복’으로 여기곤 합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군대의 작동 원리죠. 

이를 증명하듯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12.3 내란 사태 당시의 방첩사 활동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여 전 사령관은 거듭 강조합니다. “위기 상황이니까 1분, 2분, 10분, 20분 사이에 파바박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진짜 많다. 저희는 내려온 명령을 ‘맞나 틀리나’ 따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여 전 사령관이 이끌던 방첩사의 중간 지휘관과 법무장교들은 달랐죠.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방첩사 요원들의 선관위 진입 및 서버 복사·압수 명령을 실행하기에 앞서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법무관들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7명의 영·위관급 법무관들이 절차적 위법성 문제를 제기하며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들은 정 처장은 현장의 부대원들에게 “절대 건물에 들어가지 말고 원거리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짧은 회의 덕분에 선관위 서버는 불법 유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군인이 그러진 못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취재한 707 특수임무단 및 1공수여단 부대원들의 인터뷰에는 하루아침에 계엄군이 되어버린 이들의 당혹감과 혼란, 두려움, 좌절감, 배신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국회 구조도 파악하지 못한 채 착륙했고, 국회의원을 다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 명령이라 일단 따랐지만, 무장하지도 않은 민간인을 상대로 707이 이사카(샷건)까지 들고 쳐들어가는 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일부러 뛰지도않고 걸어 다녔다. (707 특임단 소속 A)

주변에서 ‘우리가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하려고 이렇게 고생했느냐’ ‘군인을 그만두고 싶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707 특임단 소속 B)

국회 보좌진이 군인들에게 “불법을 저지르지 말라” “국회에 진입하면 나중에 처벌될 것”이라고 했다. 비무장 시민을 마주한 부대원 일부는 ‘패닉’에 빠졌다. … 부대원들이 시민들에게 “제발 가까이 오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 민간인 상대로 작전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1공수여단 소속 C)

버스에 탈 때까지도 도착지를 몰랐는데, 내리고 보니 국회였을 때 상부에 배신감이 들었다. … 국민들께 너무 죄송하고, 저희를 보고 놀란 시민들의 얼굴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 실제 전쟁 상황이었으면 우리는 다 죽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릴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1공수여단 소속 D)

이들 계엄군을 이송하는 데 동원된 육군 특수작전항공단에서도 “조종사들이 자신들의 임무 수행 결과를 뉴스를 통해 확인하며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고 호소했다”라는 반응이 나왔죠.  

이런 가운데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 특수임무단장은 12월 9일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국민 여러분께 무거운 마음으로 깊이 사죄드린다”라면서,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김 단장은 자신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이라며,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며, 부대원들이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며 부대원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곡하게 청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요. 미워하고 원망하더라도 707 부대와 부대원들을 버리진 말아달라고요. 이상현 1공수여단장 역시 장병들이 불안해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김 단장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현장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국민들은 장병들을 많이 위로하고 격려해달라고요. 비난하지 말고 끌어안아 달라고요.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부하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지휘관을 따른 죄뿐이다. 책임은 내게 있다.’ 이는 한편으로 지휘관으로서 응당 보여야 할 모습이겠지만, 그렇다고 정말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서 그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그럴 순 없을 겁니다. 달리 보면 그 지휘관들 역시 거대한 ‘상명하복’ 연쇄 고리의 일부였으니까요.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부대원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든 지휘관들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겠죠. 그렇지만 지휘관 몇 명을 처벌하는 걸로 끝내거나, 온 군대와 모든 군인을 악마화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방첩사의 요원들이 적극적으로 명령의 ‘부당성’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 유가족 사찰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대비 계엄령 검토가 문제가 되어 이루어진 ‘기무사 해체’로부터 비롯합니다. “당시 760명의 간부가 조직에서 쫓겨난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방첩사 요원들 사이엔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았다”, “두 번 다시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부대원들의 결기가 상당하다”라는 한 군 관계자의 말에 실마리가 보입니다. 이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생각하지 않고 따른 명령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현 정부가 원했던 것이 ‘생각하지 않는’ 군인이었다는 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지난해 군인들이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권한’과 관련한 정책을 폐기한 바 있죠. 문재인 정부 시기 만들어진 ‘군인복무기본정책서’에는 “상관의 명령이 위법한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복종은 범죄”이며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했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기무사 계엄문건 사태를 계기로 지난 정부에서 신설됐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을 올해 들어 없앤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사회에서의 민군관계, 헌법정신, 시민 불복종이나 운동에 있어서 군의 역할에 대해 가르쳤던 해당 수업은 ‘육사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군사법과 형법 등 법학 중심 수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일종의 예고편 혹은 복선이었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요? 

이번 내란 사태를 지켜보며, 아마 모든 군인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의 위험을 깊이 새겼을 겁니다. 이제는 방첩사뿐 아니라 707 특임대도, 1공수여단도, 다른 많은 부대들도 부당한 명령 앞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겠죠. ‘몰라서 그랬다’라거나 ‘시키니 따랐을 뿐이다’라는 핑계도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겁니다. 몰랐다는 이유로, 항명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태를 온 국민이 보았으니까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 발표 직후, 전군 지휘관에게 관련 내용을 전파하며 “명령 불응시엔 항명죄가 된다”라고 언급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그 항명죄에 있습니다. 군형법 제44조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이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불복한 사람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군인이라도 위법한 명령에 대해선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죠. 정당한 명령인지 어떻게 아냐고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양심을 준거로 삼아야겠죠.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고요? 그러니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죠. 전군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법률 교육, 민주시민교육, 군인 기본권 교육, 그 밖에 진짜 ‘제복 입은 시민’을 키워낼 여러 방안까지요. 

이것은 비단 군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긴박했던 12월 3일 밤의 대치 상태를 둘러싸고 떠도는 많은 말들에서, 시민이기보다 군인인 사람들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군인에게 총기는 목숨인데 그 총기를 잡는 것은 총기 탈취이고, 이는 죽여달라는 행위나 다름없다. 저러다 죽어도 할 말 없다’라고 단언하는 댓글들을 보며 민간인과 군인, 전시와 평시도 구분하지 않고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게 됐거든요. ‘제복 입은 시민’이 가능하기 위해선, 시민이 먼저 ‘군복만 벗은 군인’이 아니어야만 합니다. 

바라건대, 이번 내란 사태는 결국 ‘생각하지 않는’ 상명하복의 연쇄 고리를 끊어낼 계기가 될 겁니다. 부당한 명령을 생각 없이 따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위험을 무릅쓰고 부당한 명령에 불복한 이들을 보호하고, 그럼으로써 앞으로도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요. 그러다 보면 군인에게도 더 ‘안전한’ 군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군인도 그럴 수 있는 사회라면, 시민들도 그럴 수 있을 테고요. 그렇게 만들 의무가 이제 우리 시민들에게 있습니다.

 

<참고문헌>

「군형법」

고유찬·장윤. “"대북 작전으로 알고 나섰는데... 내려보니 국회였다"” (조선일보, 2024.12.06.)

김경준. “"계엄군 선관위 투입, 방첩사 법무장교 7명 모두 반대했다"” (한국일보, 2024.12.10.)

김명진. “'비상계엄' 지휘 김용현, 軍지휘관들에 "명령불응시 항명죄"” (조선일보, 2024.12.05.)

문재연. “육사, 올해부터 계엄에 대해 가르쳤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 없앴다” (한국일보, 2024.12.10.)연합뉴스TV. “[특보/생중계] 김현태 특전사 제707 특수임무단 단장 기자회견|"707은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 (2024.12.09.)

우태경. “"위법한 명령에 복종은 범죄"라 했던 국방부, 정권 바뀌니 내용 삭제” (한국일보. 2023.09.13.)윤예솔. “특수작전항공단 “영문도 모른 채 계엄군 이송, 자괴감”” (국민일보, 2024.12.09.)

차장희. “상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계엄군, 처벌 대상?...대법원 판례 보니” (매일경제, 2024.12.07.)

최서인·양수민. “1공수여단장 "장병들 불안해한다, 국민이 안아달라"” (중앙일보, 2024.12.07.)

홍제표. “707단장 "우리는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종합)” (CBS노컷뉴스, 2024.12.09.)

홍지인·김정진. “여인형 "맞든 틀리든 군인은 명령 따라야…체포명단 기억안나"” (연합뉴스,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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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엘림
언론정보학과 북한학에 발을 담그고 미디어, 사회, 젠더, 통일, 평화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화를 더 배워보겠다며 시작한 국제정치학 공부 중에 전쟁과 젠더의 교차에 눈길이 머무르면서, 6.25 전쟁기 여성의 전쟁 경험을 연구했다.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 연구소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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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란 사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명령을 따른 지휘관들은 처벌을 피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이들이 증언했던 내용과 계엄군의 소극적 태도 등을 보면 전두환의 쿠데타가 남긴 흔적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군이 무력으로 시민을 진압할 때 고민이라는 걸 하게 만들었다고 보여서요. 이번 내란 사건으로 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다.

육군사관학교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을 없애버렸다는 건 몰랐던 사실입니다. 윤석열, 민주주의를 망치는 데만큼은 진심이었군요.

"상명하복? 그게 답일까? 이제 군인도 '생각하는' 시대! 부당한 명령에 대충 넘어가지 말고,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사건.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의 자각,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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