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파괴의 청사진 : 트럼프와 Project 2025
트럼프, 에너지 장관으로 기후위기 부정론자 임명
취임도 하지 않은 트럼프의 행보가 연일 언론사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벌써부터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에너지 장관(Energy secretary)으로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리버티에너지(Liberty Energy) CEO를 지명했다. 그가 CEO로 있는 리버트 에너지는 셰일가스 추출 전문 기업이다.
트럼프는 크리스 라이트를 지목하며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이끌어냈으며 세계 에너지 시장과 지정학을 바꿔놓은 미국의 세일 혁명을 시작했던 인물”이라고 아낌없이 칭찬했다. 크리스 라이트가 에너지 장관임으로 임명되기 위해선 미국 상원의 승인을 받아야하지만, 미국 상원 역시 공화당이 승리해 무리없이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 라이트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링크드인(LinkedIn)을 통 “기후위기는 없으며, 위기는 기후 변화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퇴보적인 기회 억압 정책뿐이다”¹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기후변화를 빌미로 화석연료 기업을 억압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것”
트럼프는 공화당 전당대회부터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 점에서 그가 기후위기 부정론자를 내각 인사로 임명한 건 특별할 게 없고, 오히려 자신의 공약을 더욱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가 전당대회에서 했던 기후 관련 발언과 공약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발언
“풍력은 녹슬고, 폐기물이 나오며 새를 죽인다. 풍력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에너지다.”
“바이든의 파괴적인 발전소 규칙을 취소하고, 그가 만든 전기차 의무화를 종식시킬 것.
“미래에는 모든 제조 공장, 데이터 센터, 반도체 시설과 조립 라인이 미국에서 건설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미국이 가장 낮은 에너지 비용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미국에 있기를 원할 것입니다.”
공약파리기후협약 탈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석유・석탄・가스 생산자에 대한 세금 감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승인 가속, 공공토지 석유 채굴,
핵시설을 포함한 수십 개 발전소 건설, 풍력 보조금 중단
외신 언론의 경우 트럼프 공약이 실행될 경우 환경적, 경제적 파장에 대해 분석한 기사를 연일 내놓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출 타격 등 경제적 파장만 주목해서 보도하고 있다. 환경적이든, 경제적이든 실제 트럼프의 공약이 실행될 경우 파장은 클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가장 큰 영향은 환경에 미칠 영향이다. 트럼프는 “풍력은 가장 비싼 에너지이며, 미국이 가장 낮은 에너지 비용을 갖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대표적 재생 에너지인 풍력을 비싼 에너지라고 말하고, 셰일가스 회사의 CEO를 에너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을 보면 그에게 가장 싼 에너지는 화석 에너지라는 게 명확하다.
또한, “모든 제조 공장과 데이터 센터, 반도체 시설이 미국에 있고 싶어할 것”이라는 말은 화석 연료로 만들어진 에너지를 기반으로 미국 내 모든 제조 공장과 반도체 시설, AI 데이터 센터를 가동시키겠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화석연료가 가장 싼 에너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환경적인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화석연료는 가장 값 비싼 에너지다. 에너지의 전 주기적 영향까지 고려했을 때 가장 싼 에너지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다. 트럼프가 비싼 에너지라고 생각한 풍력은 가장 싸다.
에너지별 가격, 미국 원전 182$, 석탄 118$, 태양광 61$, 육상풍력 50$
가격 경쟁력으로 봐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균등화력발전비용(Levelized cost of Energy Comparsion) 이란 발전소의 건설, 운영, 유지 보수, 연료와 연료비용, 폐기 등 모든 비용을 총 발전량으로 나눈 값이다. 즉, 같은 단위의 발전량당 어떤 에너지원이 가장 비싼지를 알려주는 지표로 발전소의 경제성을 알 수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LAZARD(라자드)가 올해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균등화력발전(LCOE) 기준 메가와트시 당 가장 비싼 전력원은 미국 원전으로 182$였다. 그 다음으로 높은 건 석탄으로 118$, 그 다음으로 지열 85$, 복합화력발전 76$, 태양광발전 61$, 육상풍력발전 50$였다.
가격 경쟁력을 생각한다면 트럼프가 늘려야 할 건 석탄이 아니라 재생 에너지임을 알 수 있다. 트럼프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알고서도 일부러 모른척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공약집 어디에도 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표현은 한 글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가 내건 공약은 미국의 대표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에서 2023년 4월에 발간한 ‘Project 2025(Mandate for Leadership)’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보수주의 싱크탱크 해리티지 재단, 기후변화 부정
해리티지 재단은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성향의 민간 싱크탱크다. 그들은 1981년부터 보수성향 대통령 후보자 혹은 당선인을 위한 Mandate for Leadership(리더십을 위한 지침)을 발표하고 있다. 2025년에 발간한 보고서는 9번째 판이다.
해리티지재단은 “Project 2025 작성에 약 400명의 보수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보고서 발간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집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참여한 400명의 전문가 중 140명이 트럼프 집권당시 주요 요직을 차지했던 사람들로 구성됐고,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였던 제이디 밴스(J.D Vance)가 프로젝트 2025 리더가 쓴 책의 서문을 썼기 때문이었다.
물론 트럼프는 이에 대해 부인했고, 해리티지 재단 역시 트럼프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일부 내용을 보면 트럼프의 공약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또한 실행되면 환경적으로도 재앙이다 싶은 내용이 많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이렇다.
멸종 위기에 처한 종 보호법(ESA) 폐기
국립 기념물 폐기(National Monuments) : 국립기념물은 국립공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미국 문화유산과 자연보호를 위해 지정한다
석유 및 가스 추출 극대화
대기청법 약화
환경 결정에 있어 지역 사회의 발언권 감소
화학회사 신뢰 강화
RA(인플레이션감축법) 완전 폐기와 청정 에너지 투자 무효화
기후변화 연구기관 12곳 폐기
9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일일이 다 볼 수가 없어서 관심있는 주제만 몇 가지 살펴봤는데, 이게 21세기 정책 제안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한숨이 나왔던 부분은 해리티지 재단의 제안 중 일부가 실제 트럼프의 공약으로 이행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IRA 법안의 폐기와 석유 및 가스 추출 극대화는 트럼프가 공약으로 말했고, 실제 이행할 것으로 보여지는 것들이다.
트럼프가 프로젝트 2025의 환경 정책을 이행하면 27억 톤의 탄소를 더 배출할 것
미국의 에너지 정책 기업인 에너지 이노베이션(Energy Innovation)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만약 트럼프가 프로젝트 2025의 환경 정책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행할 경우 오는 2030년까지 미국은 현재보다 27억 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이는 인도의 한해 전체 탄소 배출량보다도 많은 수치다.
가뜩이나 탄소 배출이 많은 미국이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게 된다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지구 온도상승을 막자는 파리기후협약은 절대로 달성될 수 없게 된다. 또한, 미국이 앞장서서 하지 않으면 다른 선진국들이 앞장서서 하지도 않을 것이다.
설령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 앞장서서 탄소를 감축시킨다 하더라도, 미국에서 추가되는 27억 톤을 전 세계가 추가로 부담해서 감축시켜야 한다는 말이 된다. 즉, 미국이 만든 탄소 부채를 우리가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배출하는 것도 줄이기 바쁜데, 남의 나라에서 배출하는 것까지 우리가 대신 감축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27억 톤이라는 숫자는 트럼프가 프로젝트 2025를 정책으로 이행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행하고 하지 않고는 전적으로 트럼프 개인에게 달렸다. 27억 톤의 탄소 배출이 한낱 개인에게 달렸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아무리 생각해도 트럼프의 당선은 비극이다
미국의 대통령과 정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국이 가진 막대한 경제력과 힘, 우리나라와의 이해관계도 있지만, 미국이 환경을 거스르는 정책을 이행하게 되면 그 부채를 전 세계가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딴 놈이 잘못해서 내 빚이 느는 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탄소 배출을 줄이고, 산업화 대비 1.5도 이하로 온도 상승을 막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일상에서 그렇게 살아가도, 내가 줄이는 것보다 더 많은 배출을 누군가가 하게 되면 내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엄청 친환경적으로 산다는 말은 아니다.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조금씩 줄여가는 생활을 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에게 주어진 역할은 시민들이 친환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제도와 도시, 인프라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트럼프의 내각 구성을 보면, 자신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철저히 배제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만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즉, 화석연료를 더 적극적으로 태우고, 기후변화와 위기가 없다는 회의론자들로만 구성되어 4년 내내 집권할 것이라는 의미다.
트럼프에게 직언할 사람도 없고, 공동체의 권한과 발언권을 축소하자는 해리티지 재단와 기후위기는 허구라고 말하는 사람들만 트럼프 주위에 있는 걸 보면, 프로젝트 2025의 청사진 대로 흘러갈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만들어 낼 막대한 환경 부채를 기후위기는 현실이며, 정부 정책과 산업 경영 방식, 개인의 삶이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더욱 더 지치게 할 것 같아서 두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트럼프의 당선은 비극이다. 이 글을 미국인이 볼리 없겠지만 만약 본다면 정말 아래 사진처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