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교육정책을 논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땅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교육 정책이 제안되기를 바랍니다.
교육의 목표가 미래를 위해 훌륭한 선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기발하고 신박한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위한 훌륭한 선생들(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문제에 대한 공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길고 지루하며 괴롭고, 어쩌면 효율적이지도 않는 일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어서, 또 외면해서도 안되기에 이 길을 가고 있는 저를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 넘 힘이 되네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순국선열들에게 대한 심각한 모독입니다.
지금 북한의 공산당 정권과는 너무나 다른 일제 시대의 공산주의자라고
이러한 무분별한 처후를 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기가막힌 일입니다.
정말 윤석열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ㅠㅠ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대부분의 사안들이 너무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교육정책들을 만들어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보이는 문제들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바뀌기 힘든 법과 제도를 만드니 이것으로 인한 파행과 폐해가 크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학생인권조례의 문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신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학생 인권에 치우친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법을 만들어 놓으니 이와 맞물려있는 교권 문제가 더 심각하게 발생되고 또다시 기존의 법을 뜯어 고치려고 하니 힘이 드는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제대로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죠.
교사는 교사로서의 신뢰를 받고, 학생의 학생으로서의 존중을 받는 그런 교실이 되기를...
우리나라의 교육을 담고 있는 어그러진 교육의 시스템이 교사와 학생들을 처첨한 샹황까지 내몰고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시험을 위한 경쟁위주의 교육이 하루 빨리 사라지고, 인간 존엄을 위한 진정한 교육이 이루지는 교실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로운 물결이 왔을 때 인류는 언젠가는 수용하게 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핸드폰도 마찬가지 아니였나요? 언어 기반의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도 다양한 분야에서 수용되리라 봅니다. 하지만 섣부른 적용은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지요. 새로운 도구를 만들면 그것에 대한 사용 방안과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필수 입니다. 그러하기에 학교 과제에서 인공지능 사용에 대한 사용 방안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가 100% 인간을 대치될 수 없다면 그 AI를 사용하는 인간들의 의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칼을 쥔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무우를 썰면 유용한 요리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면 살인무기로 사용되는 것처럼요. 유용한 방향으로 AI가 선용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도 창출해 낼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대학 입학 학생 수의 감소로 인하여 수도권 대학을 제외한 지방대학의 존폐 위기가 도래한 지금, 궁여지책으로 정부에서 시도하고 있는 글로컬 정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대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우후죽순 사립 대학 설립을 권장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나라에 비히 우리나라의 사립대 비중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 그렇게 세워진 대학을 존속시키기 위해 국가의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초창기 무분별하게 대학을 만들게 허가해 준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로 고등교육의 큰 그림 없이 단지 그것을 지탱하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듯합니다. 거시안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안하여 장기적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효과가 수십 년에 걸쳐서 나타나는 교육의 속성을 고려해 본다면 이러한 디지털 시민 광장에서 교육의 이슈들을 논의하는 것은 정말 유의미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글에서 '설득되지 않아도 디지털 시민 과장에서 오고 가는 대화와 토론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경험치가 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근현대사를 통틀어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분야가 바로 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의 큰 틀은 전혀 변함이 없이 우리 아이들을 시험과 학벌의 늪으로 몰아 넣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그 틀이 흔들렸으면 합니다. 이제는 손 안의 컴퓨터를 가진 시대에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디지털 공론의 장에서 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를 통해 충분히 더 나은 대안과 의견들이 모여 더 나은 교육을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가치학교, 거꾸로캠페스, 대안교육기관 창창한, 교육공동체 벗, 대안대학 지순협 등 기존의 공교육이 너무나 획일적인 교육과정과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기에 학교 밖의 대안 교육들이 많이 시도되고 있는데요. 우리 교육의 90%이상을 차지하는 공교육에도 다양한 교육의 선택지가 주어지는 다양한 교육의 모습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 모두는 어느 누구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아이들이 없고,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들이기에 그들 각자에게 맞는 개인 맞춤형 교육이 공교육에도 실현되어야 합니다. 학교 밖 대안교육의 다양한 시도가 제도권 안으로도 들어왔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정책을 추진할 때는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전반적인 구비 요소들을 잘 갖추어서 시행되어야 하는데 허울 좋은 구호뿐인 실효성 없는 정책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돌봄 제도에도 그 책임소재와 이를 뒷받침할 인력의 확충도 불투명한 가운데 기존의 교사나 돌봄전담사들의 책임을 더욱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되어지는 것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돌봄이 필요한 연령대의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가정에서의 부모의 돌봄이 더욱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하기에 노동시간 단축 및 복지 지원이 사회 제도적으로 갖추어 지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교육이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좀 더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은 정치/민주시민 교육과 환경/기후위기 교육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치/민주시민 교육은 지금도 하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하고, 학생들의 목소리가 우리 정치에 적극 반영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기후시민이라는 말처럼 오늘날 환경/기후위기 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다음세대가 살아갈 세상의 존폐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에 다음세대를 키우는 교육에서 반드시 실효성 있게 교육되어져야 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15살의 나이에 스웨덴 의회 앞에서 청소년 기후행동을 이끈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소년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특목고나 자사고 등이 그 자체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우리 나라의 교육 서열화를 부축이는 학교로 전락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고에서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 비율이 높은 실정에 특목고의 목적이 상실되고 있고, 명문대를 진학만을 목적으로 자사고를 가는 지금 현실태에서는 다시 또 특목고, 자사고를 부축하는 정책은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이념에 좌지 우지 되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시도지사과 교육감이 러닝 메이트제로 나가게 된다면 교육의 정치 중립성은 심하게 훼손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의 국가 기조가 달라지는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큰 희생을 당하는 것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정치적 색깔에 따라 변하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육격차는 사회경제적 격차로부터 유래됩니다. 그러므로 사회경제적 우위에 있는 이들이 사교육비 지출도 더 많이 하게 되고, 비싼 사교육을 받은 이들이 다시 사회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어서 결국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올해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 높은 나라가 된 핀란드에 유학 중인 지인이 SNS에 올린 인상적인 글이 있었습니다. 그의 핀란드 친구들이 말하길 자기 나라의 사회 민주주의는 사회의 '가장 약자의 속도'에 맞추어 가는 것이 기본 철학이라고 했다고 해요. 또 그 글의 댓글에 스위스 헌법 전문에 있는 글을 올려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타인을 존중하며 공정성을 중시하는 가운데 다양성 속에서 함께 삶을 영위할 것을 다짐하며, 공동의 경험을 자각하고, 미래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유를 행사하는 자만이 자유로우며, 국민의 힘은 약자의 복지를 척도로 평가됨을 인식하며...'
우리는 어떤 속도에 맞추어 돌아가는 사회일까요? 국민의 힘이 약자의 복지를 척도로 평가됨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교육격차나 교육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약자들을 배려하는 국민들의 가치관 형성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러한 가치관을 기반으로 해서 교육격차의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 제도와 법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입식 교육이 창의적 사고뿐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못하게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이러한 주입식 교육으로 빚어진 가장 큰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틀 있으면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이하는데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 들여 그대로 수장 당한 우리의 아이들이 주입식 교육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아닌가 합니다.
단원고의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지 9년이나 지났음에도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도 여전히 대입위주의 경쟁교육으로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우리들은 하늘의 별이 된 세월호 아이들을 잊지 않으면서 다시 그러한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교육을 바꾸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없는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배려' 라는 말이 와닿네요. 우리 사회가 보다 취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한 배려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여러 시도와 노력들이 나오겠죠. 디지털에 취약한 분들을 위해서는 현금을 내밀어도 부끄러운 손이 되지 않도록 하는 현금사용 선택권은 반드시 있어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