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교육공공성이란?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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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 연구자. 일어/중국어 교육 및 번역. => 돈 되는 일은 다 함

(이미지출처 pixab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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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공공성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최근의 용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공공성”이라는 말을 할 때엔 늘 평등이나 공정함이 침해받는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다. 주택, 의료, 금융, 기업, 정보 등 여러 단어 뒤에 ‘공공성’을 붙여 사용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공공성이 대체 뭘까? 교육 공공성은 사교육이 줄어들고 공교육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달성되는 것일까? 공공성, 공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적인 것, 개인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공과 사의 경계선이 어디인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유럽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사회를 공, 가정을 사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자국인 성인 남성만이 공의 주체이고 구성원이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공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정치사는 공의 구성원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공은 공개적인 것, 사는 은밀한 것, 공개적이지 않은 것 - 주로 감정, 욕망 - 을 의미했다. 그래서 국가는 물론 가정 안에서도 공과 사가 공존하였는데, 대체로 사를 나쁜 것으로 여겼다. ‘공평무사’라던가 ‘멸사봉공’ 같은 단어가 그 어감을 잘 보여준다. ‘사’, 즉 개인적인 감정과 욕망이 그 상황에 적절하면 그 사는 옳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는 틀린 것이다. 그 상황에 적절한 감정, 슬퍼할 일을 슬퍼하고 기뻐할 일을 기뻐하는 것, 이것은 사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유교에서 공과 사가 완전히 구분되는 공간이라는 건 없다. 인간은 매 시간, 매 공간에서 늘 공과 사의 영역을 함께 가져가며 사는 존재고, 모든 순간 속에서 각자의 몸을 통해 내가 어떤 감정과 욕망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그 감정과 욕망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 문제의식은 개인의 윤리적 고민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종종 들은 바 있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다. 나와 가정의 욕망, 감정, 기호가 내가 속한 사회를 넘어 이 우주의 문제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한국 지폐에 실린 두 인물도 이 문제와 관련이 깊다. 퇴계 이황은 사단칠정론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 충분히 공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음을 논증한 사람이고 율곡 이이는 인심도심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충분히 공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음을 논증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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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내가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공’과 ‘사’라는 개념이 그만큼 모호하고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개념을 명확히 설명/상상하는 게 어려울 때엔 일단 국어사전을 펴보는 게 좋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젼』에선 공공성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

아, 너무 소략하다! 옥스포드 사전에선 공(public)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보통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
2 대중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적으로 정부에 의해 제공되는 것
3 정부와 관련이 있는 것.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
4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5 대체로 열려있는 것. 대중이 보거나 들을 수 있게 제공되는 것
6 많은 사람들이 보거나 존재할 수 있는 곳

이렇게 생각해보면 공공성이라는 것은 ‘국가/사회가 하는 일‘이나 ’국가/사회에서 하는 일‘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보편적인 것’, ‘공익적인 것’,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공공성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을 하는 이유는 어떤 대상이 공공성의 속성을 훼손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 공공성에 대해서도 쉽게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1 교육공공성에 관심을 갖는 첫번째 이유는 국가나 사회가 주축이 되는 교육, 즉 공교육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을 다수가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 즉 교육이라는 것 자체를 소수가 독점하게 되는 불공정한 상황이 되었다고 느낀다고 볼 수도 있다.

2 교육에 참여하는 과정, 입시나 성적으로 대표되는 교육의 결과, 그리고 교육 안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과의 관계,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교육의 공익, 보편, 균형, 공정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즉 교육의 공공성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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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정치 철학자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에서 공(public)과 사(private)를 근대와 엮어서 설명하였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하는 일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노동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과 관련이 있는 행동이다. 작업은 인간이 하는 일들 중에서 생명과는 관계가 없는 행동들을 말한다. 행위는 인간이 하는 일들 중에서 인간 관계와 관련이 있는 것들을 말한다. 노동은 신체와 생명, 작업은 세속성(worldliness), 행위은 사람들(men)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고대 유럽에서는 국가가 곧 공이었고 공공영역이었고, 개인과 가정은 사적인 영역이었다. 정치는 공, 경제는 사로 쉽게 구분이 가능했다. 그런데 근데 이후에는 공과 사 사이에 사회(society)라는 것이 등장했다.

사회는 시장(market)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노동과 작업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친다. 시장 안에서의 노동과 작업은 지시하는 사람, 혹은 정해진 규율에 순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시장 안에서 순응에 의해 행하는 노동과 작업을 행동(behavior)이라고 하는데, 근대에는 사람들과의 행위를 순응에 의한 행동이 대체했다고 설명한다.

시장에 의한 사회가 중시되면서 국가도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으로 변모해갔는데 사회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악이 되어버린 국가는 자신의 살 길을 새롭게 찾아냈으니 그것이 바로 민족국가(nation-state)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학문도 이에 맞춰 변화했다. 정치학이 누렸던 지위를 경제학이 가져갔는데 경제학의 중요한 특징은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설명에 따르면 과학이란 인과관계를 추구하는 지적 활동이다. 사회 영역 전반에서 인과관계를 찾는 것이 근대의 사회과학이고, 보편적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것들을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것이 근대 사회과학의 특징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설명한다. 즉 사회과학은 사람들의 순응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다.

근대는 사회의 탄생으로 인해 공공영역이 쇠퇴한 시대다. 비록 소수의 인정받은 사람(자국인 자유민 성인 남성)만이 참여하긴 했지만 토론과 숙의가 가능했던 정치가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었던 시대다. 또 공리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추구하는 욕망의 총합이 공익으로 불리게 된 시대다. 개개인의 정치적, 윤리적 행동을 효율 극대화, 이익 극대화로 보게 된 시대다. 이것이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근대이고, 『인간의 조건』 전반부의 내용이다.

(참고로 한나 아렌트는 수학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통계학으로 대표되는 사회학, 경제학에 대한 반감이 아렌트의 저작 여기저기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리고 이런 아렌트의 생각을 발전시킨 사람이 위르겐 하버마스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과 정치에 주목했다면, 하버마스는 아렌트의 생각을 일부 수정하면서 공론과 소통에 주목하였다.)


물론 아렌트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공성에 대한 정의와 그 실현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 공공성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 교육의 공공성이란 교육의 주체를 민간에만 맡겨 놓지 않는 것, 교육의 공익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것, 교육 참여의 기회와 그 방식에 대해 고민 하는 것, 교육 그리고 교육 참여, 교육의 결과에 있어서 누군가가 배제되고 있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다.

둘째, 교육과 시장 경제 논리를 일정 정도 분리해야 한다. 교육을 시장 혹은 효율성에서 분리시키고 확장성과 공정성, 공익성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공교육-사교육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셋째, 교육의 공익성을 단순히 다수가 혜택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공익성은 각자가 교육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참여한다면 또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교육에 있어서 순응을 강조해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반성하고 교육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임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다섯째, 인간은 이익이나 효율만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여섯째, 우리 모두가 잠시 효율이나 이익을 내려놓고, 짧건 길건 각자의 의견을 표현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은영 박사는 종종 양육의 목표란 자녀의 독립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목표는 훌륭한 학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훌륭한 선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받은 모두가 그리고 교육에 참여하는 모두가 다음 세대를 위한 훌륭한 선생이 되는 것 그것이 교육에 목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교육 문제에 대한 토론은 물론 교육에 참여 하는 것 교육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그리고 교육 그 자체 있어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참여하는 공론의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에 대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언제나 길고 지루하면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것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한나 아렌트, 이진우 번역, 『인간의 조건』, 한길사, 2019

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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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목표가 미래를 위해 훌륭한 선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기발하고 신박한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위한 훌륭한 선생들(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문제에 대한 공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길고 지루하며 괴롭고, 어쩌면 효율적이지도 않는 일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어서, 또 외면해서도 안되기에 이 길을 가고 있는 저를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 넘 힘이 되네요~

경쟁교육을 없애기 위해 교육개혁 해야 합니다.
초등과정에서 진로를 결정하고 적성과 기질에 맞는 교육으로 누구나 각분야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단순하게 주제 정하고 토론만해도 대한민국 바뀝니다

저는 특히 둘째와 다섯, 여섯째의 내용이 와닿았습니다! 미취학 연령대의 아이들에게까지 온갖 사교육 시스템들을 들이밀며 지금 이걸 모르면 큰일나는 것처럼 불안에 떨게 만드는 마케팅들이 생각나네요ㅠㅠ 또 ‘인간은 효율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자 합니다. 효율이나 이익을 내려놓고 각자의 의견을 표현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늘 상기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TV를 보는데 학생들 인터뷰가 나오더라구요. 공부는 학원에서 다 했고, 늦게까지 학원생활을 하고 오전에 피곤하니 학교에서는 잔다고요. '공부'가 수능공부에만 초첨이 맞춰져 있어서 더더욱 부각되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한데, 학교와 우리 사회가 교육공공성을 많이 외면하고 잊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에서 누군가가 배제되고 있지 않은지 살피는 것'이 교육 공공성의 하나라고 말씀주셨는데, 매우 중요한 포인트같네요.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학교는 쓸모없는 곳',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점점 더 교육 공공성이 무너지는 게 가속화될 것 같아서 두려워요.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향해야 합니다. 각 개인의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모든 학생들이 자신을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