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정치참여

그룹

평택 시민청소년 공론장
그룹 방문하기
유네스코 등재, 세계가 인정한 4.19 혁명의 가치
들어가며 4월 19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상징적이고 중요한 날이다. 이 날은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처음으로 명확한 성과를 이룬 기념비적인 순간을 기리는 날이다. 4·19 혁명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서, 대한민국에서 민주적 가치가 꽃피우기 시작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2023년, 이 혁명의 중요성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로써 4·19 혁명은 한국 내부의 역사를 넘어 전 세계에 그 의미를 전달하게 되었다. 2024년 4·19 혁명 기념일은 이 특별한 인정을 받은 후 처음 맞이하는 해로서, 우리는 4월 19일을 통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앞으로도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4·19 혁명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며, 이 날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 정신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3.15 부정 선거 1960년은 우리나라가 여러모로 어지러운 시기였다. 일제에 의한 경제 수탈에서 회복 중이었고,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전이었다. 어지러운 시국을 틈타 이승만은 경찰력과 물리력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자신의 입맛대로 다스리고 있었다. 이승만은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1954년 사사오입을 통해 영구 집권을 노렸다. 자유당은 1958년 12월 24일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을 강제로 축출하고 국가보안법 및 지방자치법을 개악했다. 국가보안법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을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겼고, 지방자치법은 선거로 선출하던 지방자치단체장을 정부가 임명하겠다는 쪽으로 개악됐다. 이를 '24파동'이라 한다. 결국 1년 뒤, 3.15 부정선거가 발생했다. 1960년 1월 23일에 실시된 경북 영일군(을)과 영주군 국회의원 재선거는 3.15부정선거를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이 재선거에서는 자유당은 미리 기표한 투표용지 40%를 투표함에 미리 넣어두는 부정을 저질렀고, 여기에 더해 3명과 9명씩 짝을 지어 조장이 기표 사실을 확인하는 공개투표까지 저질렀다(3인조·9인조 공개 투표). 이러한 수법은 이후 3.15부정선거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계획을 사전 입수한 민주당은 3월 3일 언론을 통해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비밀지령’을 폭로했다. 선거 전 부정선거 계획이 들통났음에도 이승만 정권은 계획대로 강행했다. 민주화운동사전에서 정리한, 대표적인 부정선거 방법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 민주당 참관인의 투표소 입장 및 참관 방해. 2) 투표 개시 이전, 새벽부터 참관인 없이 진행된 사전 투표(지역에 따라 사전 투표율은 75~80%에 달함). 3) 민주당 참관인에 대한 폭행과 축출. 4) 유권자와 취재기자 폭행. 5) 한 기표소에 3명이 함께 들어가는 3인조 공개 투표. 6) 야당 지지자는 투표하지 못하도록 번호표 미교부. 7) 참관인석에서 볼 수 없는 위치에 투표소와 기표소 설치. 8) 대리 투표와 무더기 투표.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맞서 대규모 규탄 시위가 마산에서 일어났다. 경찰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강경진압을 택했다.이때 마산 집회에 참가한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집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 4.19혁명 약 한 달 후인 4월 11일 오전,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김주열 군이었다. 김 군은 3월 15일 시위 때 경찰이 쏜 최루탄에 목숨을 잃었으며, 경찰은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기 김주열 군의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것이었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마산 시민들은 분노했다. "살인 선거 물리쳐라", "시체를 인도하라"라고 외치며 시의회 의장 김성근, 자유당 허윤수, 파출소, 경찰서를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또 다른 시민이 한 명이 사망했다. 마산 시위는 12, 13일까지 계속 이어졌다. 다만 한 달 전의 시위와 달리, 4월 마산에서의 시위는 새로운 요구사항이 나타났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구호가 등장한 것이다. 3월 15일 부정선거 항의 시위에서는 주로 학원의 자유, 정치 도구화 반대, 부정선거 배격, 공명선거 보장 등의 구호가 외쳐졌다. 시위는 곧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고등학생이 주도하는 가운데 4월 12일 대전, 14일 진주, 15일 마산, 16일 청주 그리고 18일 부산과 청주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4월 18일 고려대 학생 3000여 명이 모여 "민주 역적 몰아내자", "자유, 정의, 진리 드높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가두행진으로 이어 가려 했지만, 경찰의 저지선을 뚫지 못 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몰래 빠져나와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서 1000여 명이 다시 결집했다. 시위대는 연행된 학우들의 석방과 이승만 대통령이나 최인규 내무부장관의 부정선거 해명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6시 40분경 평화적으로 해산했다. 그러나 귀가하던 고려대 학생들이 봉변을 당했다. 종로4가 천일백화점 앞에서 유지광 대한반공청년단 동부특별단 부단장이 이끄는 화랑동지회 소속 정치깡패 60여 명이 흉기를 들고 학생들을 습격했다. 이로 인해 50여 명의 학생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다음 날, 고려대 학생들의 피습 소식이 대서특필되었고, 다른 대학 학생들에게도 급속도로 퍼졌다. 이 사건으로 인한 학생과 시민들의 분노가 일제히 폭발하면서 4월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4월 19일 오전, 대광고와 동성고 학생들이 가두 행진을 진행하면서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 모인 학생과 시민이 1만 명에 달했다. 점심 전후로 동국대에서는 2000여 명이, 중앙대에서는 4000여 명이 한강대교를 넘어왔다. 한편, 광화문 쪽에서는 성균관대, 연세대, 홍익대 학생들이 서대문 이기붕 집 앞에서 경찰대, 헌병, 정치깡패와 대치했다. 내무부(현 외환은행 본점, 을지로입구역) 앞에서도 서울대, 건국대, 동국대, 성균관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늦은 오후가 되자,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에서 남대문까지의 대로를 10만 명이 넘는 군중이 메웠다. 경찰이 곳곳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사상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광주, 부산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이승만 정권은 계엄령을 고려했다. 내무부장관 홍진기가 계엄령 선포를 건의했고, 국방부장관 김정렬이 동의했다. 이승만의 승낙으로 오후 3시경 서울지구 일대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김정렬은 가평에 있는 국군 제15사단을 끌어 들여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시위는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4월 19일부터 4월 26일까지 계속되었다.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김천, 목포, 천안, 포항, 울산, 공주, 원주, 묵호(동해), 진주, 밀양, 여수, 수원, 임실, 제천 등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4월 26일 오전 8시 30분경 동대문, 세종로 일대에 75,000여 군중이 모였다. 시위대는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뚫고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으로 나아갔다. 진압대는 이에 최루탄으로 맞섰다다. 오전 10시경 시위대는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주한미국 대사 월터 매카너기는 김정렬 국방부장관에게 정부통령 재선거 문제를 논의하고 이승만의 장래 역할을 숙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약 한 달 뒤인 5월 29일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4.19 혁명이 남긴 것 4.19 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독재에 맞서 국민이 직접 일어나 목소리를 높인 최초의 사례이며, 대한민국 최초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가 시위를 주도하였고, 이후 시민들의 대규모 참여로 사회 전반의 민주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학생과 시민이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더 큰 의미에서 볼 때, 4.19 혁명은 내전으로 확전되지 않고 비교적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통령을 하야시킨 시민혁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러한 평화적 접근 방식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시민혁명은 약 55년이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다.  2023년 5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4.19 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이 혁명의 세계적인 의미와 가치를 입증한다. 4.19 혁명을 기념하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결코 잊지 말자. 4.10 혁명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정의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참고문헌  4.19혁명디지털아카이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19혁명 (四一九革命)’민주화운동사전 ‘4월혁명(4.19혁명) ‘국가기록원 <연표와 기록>《조선일보》, 1960. 3. 14.(석간)《동아일보》, 1960. 3. 14.(석간)《부산일보》, 1960. 3. 15.(석간)《조선일보》, 1960. 3. 15.(석간)《조선일보》, 1960. 3. 15.(조간)《동아일보》, 1960. 3. 16.(석간)《마산일보》, 1960. 3. 16.《서울신문》, 1960. 3. 15.(석간) 《고려대학교 4.18의거 실록》, 고려대학교출판부, 2012, 586쪽. 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학습 놀이터 '성찰과성장' 글 작성 및 편집 : 박배민 성찰과성장.com
👨‍🚒시민 이슈 구조대 활동을 보고합니다
22대 국회의원선거를 두고 많은 수식어가 등장했는데요. 그중 하나는 ‘의제가 사라진 선거'였습니다. 그래서 캠페인즈는 기후위기, 저출생, 젠더, 노동 등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의제를 찾고, 나의 의제를 더 많은 시민과 공유하는 ‘함께 행동: 시민 이슈 구조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4월 5일, 활동을 마무리하며 시민 이슈 구조대가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 모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죠! “지치지 않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번 모임에선 창작그룹 성찰과 성장의 신동주 님과 ‘세상은 망했는데 눈 떠보니 투표일?! 전국투표전도 2024’의 저자 조현익 님이 초대손님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성찰과 성장의 동주 님은 ‘총선에서 의제가 실종된 이유와 이민자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는데요. 동주 님은 선거 시기 의제가 사라진 다양한 원인과 함께 극우정당의 이주노동자 혐오 행동에 주목했습니다. 이어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이주민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지치지 않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의제가 실종된 선거 = 다음 선거 때까지 의제를 만들 기회’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 현익 님은 기존의 정치방식에서의 개선방향을 짚었습니다. 현익 님은 저서에서 썼던 “민의를 ‘받드는’ 정치 말고, 민의를 ‘만드는’ 정치가 필요하다”라는 문장을 언급하며 유권자와 정치인이 함께 의제를 만드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현실 정치에서의 활동 경험과 정치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후 “세상이 망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끝에 『세상은 망했는데 눈 떠보니 투표일?! 전국투표전도 2024』를 발행했다”라고 저서 작성 배경을 공개했습니다. “내일을 위해 투표를 하자"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줄 손님들의 목소리와 함께  3주간 다양하게 활동했던 시민 이슈 구조대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겠죠? 이번 이야기 모임엔 4명의 캠페이너가 시민 이슈 구조대로 활동한 경험을 나눴습니다.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이자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철빈 캠페이너는 ‘2030 유권자 네트워크 - 지겨운 절망을 넘어, 내일을 위한 투표를!’을 통해 전세사기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와 투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철빈 캠페이너는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로 전세사기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 자체를 지금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내일을 위해 투표를 하자"라고 제안했습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고 있는 짠미 캠페이너는 ‘프리랜서 번역가는 최저 시급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를 통해 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이야기했습니다. 짠미 캠페이너는 동일한 업무임에도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열악한 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언급하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사회 문제에 관심은 있지만, 생업과 육아로 인해 참여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고민과 논의에 참여해 보게 되어 좋았다"라는 함께 행동 프로젝트 참여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창작그룹 성찰과 성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배민 캠페이너는 ‘부적격자는 밖으로: 대한민국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그동안 이뤄졌던 시민사회의 낙선, 낙천 운동을 정리했습니다. 박배민 캠페이너는 낙천, 낙선 운동이 성장해 온 과정을 설명하며 의미를 짚었고, “단순히 인물 교체에만 초점을 맞추며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 강한 당파성으로 인해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 등 한계를 함께 정리했습니다. 바둑,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작성하고 있는 백아인 캠페이너는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결정하는 선거의 결과’를 통해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야기했습니다. 백아인 캠페이너는 “우리가 제대로 된, 자신의 선택에 따른, 공정한 선거를 치르려면 오히려 원론적으로 각 정당과 후보들의 정책을 스스로 찾아 보고 직접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라며 유권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초대손님과 시민 이슈 구조대의 이야기 후엔 모임에 참여한 캠페이너들이 함께 ‘의제가 사라진 선거가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요. 그 중에선 “당사자성의 결여로 인한 공감 부재”, “극단적인 상황을 부각하는 언론 보도”와 같은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어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요. “시민의 목소리를 의제화하는 언론의 역할이 필요하다”,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등 변화의 시작점을 찾고, 실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40분의 테이블 토론 시간이 훌쩍 지나간 뒤 오늘 이야기 모임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과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오랜만이어서 좋았고, 이런 대화가 캠페인즈에서도 이루어지면 좋겠다”라는 소감을 남긴 캠페이너도 있었습니다. 캠페인즈의 함께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시민 이슈 구조대의 더 많은 활동은 함께 행동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캠페인즈의 함께 프로젝트는 더 많은 시민이 사회 문제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앞으로 진행될 함께 프로젝트는 캠페인즈와 시티즌패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변지 도봉구갑, 김재섭이 뽑힌 이유
수도권의 두 이변 2024년 4월 10일 총선,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애초 더불어민주당 우세로 전망된 총선이었다. 파란색 물결은 누구나 예상했다. 기대한 건 이변의 발생이었다. 의외 지역에서 이변이 나왔다. 첫 째는 경기도 화성시 을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당선이다. 더불어민주당 텃밭으로,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 지역이다. 이준석 후보는 여론조사부터 공영운 후보에게 밀렸다. 첫 여론조사에서 20.2%가 나왔고, 공영운 후보는 43%가 나왔다. 결말은 달랐다. 이준석 후보가 최종 42.41%의 득표율로 공영운 후보 39.73%를 누르고 당선됐다. 여론조사부터 지지율 20%를 끌어올린 이변이었다. 화성시을에서 이변이 일어나는 사이, 서울 동북부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도봉구갑 김재섭 후보의 당선이었다. 도봉구는 더불어민주당 텃밭으로, 더불어민주당 안귀령 후보 당선이 예상된 지역이었다. 출구조사도 안귀령 후보가 52.4%로 김재섭 후보 45.5%를 약 7% 앞섰다. 현실은 달랐다. 최종 득표율은 김재섭 49.05%, 안귀령 47.89%였다. 현 도봉구갑 국회의원인 인재근 의원이 3선이라는 면에서 12년만의 교체였다. 예상못한 이변이었다. 궁금증은 왜 이변이 발생했는가다. 전문가와 평론가의 의견은 그들의 생각일 뿐이다. 정확한 답은 유권자에게 있다. 도봉구갑 이변은 도봉구갑 유권자에게 물어야 한다. 김재섭 후보를 찍은 유권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흥미로웠다. 인터뷰 내용이다. — Q. 자기소개 부탁한다 도봉구 주민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도봉구에서 나왔다. 이사도 도봉구에서 맴돌았다. 토박이다. Q. 김재섭을 찍었다. 이유는 난 언더독 편이다. 뻔한 결말은 재미없다. (웃음). 농담이고 간단하다. 안귀령은 도봉구에 비전이 없었고, 김재섭은 있었다. 그 비전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맞든, 맞지 않든 난 비전있고 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를 준 이유다. Q. 언더독 이변에 대한 심정은?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 기쁠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다. 김재섭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해서 뽑은 게 아니다. 후보자 모두 국회의원으로서 능력을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소위 경력자가 없었다. 다만, 김재섭이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니까, 해보라는 마음이었을 뿐. 안귀령은 그게 없었을 뿐이다. Q. 녹색정의당 윤오도 해보고 싶은 건 있었을 것 같은데 맞다. 윤오도 4번째 도전하는 것으로 안다. 문구가 기억난다. ‘땀이 빽을 이기는 정치’였다. 땀 흘릴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개인은 많이 아쉬울 거다. 그런데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노비 생활도 대감 집에서 하라고. 같은 땀을 흘려도, 큰 정당이냐 작은 정당이냐에 따라 받는 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걸 타파하려면, 대감 집에 가거나 소속된 정당을 대감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 녹색정의당이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만큼 컸다면 그가 뽑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인물 자체도 어필이 안 됐다. 같은 시간 같은 노동을 해도 대기업은 돈을 많이 벌고, 중소기업은 적게 번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같은 비전이 있다면 난 더 가능성 있는 사람에게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일 할 사람 뽑는 거다. 그렇다면 일할 가능성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총선 전 현수막 Ⓒ 한량 Q. 유권자로서 김재섭에게 비전이 있고, 안귀령에게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다 현수막부터 차이가 난다. 김재섭은 현수막에 “재건축, 재개발 용적률 개선, SRT와 KTX를 창동으로 가져오겠다” 등 공약을 걸었다. 안귀령은 “검찰 독재 못살겠다. 심판하자.”였다. 생각해봐라. 누가 도봉구에 비전이 있어 보이겠나? 선거 공보물도 차이가 난다. 안귀령은 얼굴과 구호만 있다. 그나마도 검찰・정치・언론개혁이 절반이다. 지역 발전이 없다. 어느 구에 내놔도 다 쓸 수 있는 내용뿐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선거는 구호와 사진이 아니라, 공약이다. 주먹 꽉 쥐고 열심히 하겠다가 비전이 될 수 없다. 반면, 김재섭은 공보에 지역 발전 공약을 나열했다. 이것만 봐도 누가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건지 바로 나온다. 추진하겠다고 한 정책 옆 사진을 봐도 “아, 이 사람이 지역에서 뭔가를 했구나.”를 알 수 있다. 보여주기라고 해도, 중간에 본인 사진 크게 배치한 사람과 지역 활동 사진 배치한 사람 중, 누가 지역에서 뛰었는지는 명확히 나온다. 또한 김재섭은 각 동별 정책을 정리해놨다. 내가 사는 '동'의 정책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안귀령 공보물엔 없는 내용이었다. 물론 안귀령도 공약은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의 공약은 찾기 어려웠다. 애초, 유권자가 왜 일일이 그걸 찾아야 하는지 싶다. 뽑히고 싶으면, 유권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게 맞다. 유세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김재섭과 윤오가 직접 와서 하는 유세를 보진 못했다. 근데 안귀령은 우연히 봤다.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데, 거기서도 도봉구에 대한 비전은 들리지 않았다. Q. 뭐라고 했었나 창동역 부근에서 한 차량 유세였다. 안귀령이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총선은 첫 번째가 윤석열 정권심판, 두 번째가 도봉구 발전입니다.” 도봉구 후보로 나온 사람이 첫 번째로 하겠다는 게 도봉구 발전이 아니라니, 말이 되나? 아무리 정권심판이 프레임이었다고 해도, 너무 안일한 거 아닌가? 지역구 후보가? 이걸 듣고 누가 지역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겠나. 지역 무시로 보이지. Q. 안귀령은 후보 전략 공천부터 말이 있었다 도봉구가 더불어민주당 텃밭이다. 지금 현역 의원도 3선인가 했다. 3선 의원이 당 대표 말에 후보 자리를 포기했다. 그것도 이상했다. 아니 괴상했다. 저렇게 쉽게 물러나나? 그 뒤 전략공천 한 게 안귀령이었다. 누군지도 몰랐다. 연고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연고가 없어도 능력과 인물 파워가 되면 뽑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 YTN 앵커, 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이라는 걸 빼면, 가진 게 없었다. 애초 그 경력이 도봉구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다. 또 갑자기 떨어진 인물 아닌가. 도봉구를 알리도 없고, 전문성이 있을리도 없다. 과거엔 지역 연고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귀령을 보니까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후보로 세우는데 도봉구와 주민을 어떻게 본 건지 싶다. 텃밭이니 될 거라 생각한 건 아닌지. 정당 전략 공천이 왜 중요한지 알겠다. Q. 개혁신당 이준석도 연고가 없는데 뽑혔다. 연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방증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준석과 안귀령은 입장이 다르다. 그간 보여준 모습 자체에 차이가 크다. 이준석이 대중에 등장한 건 10년도 넘었다. 거기에 여당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했다. 경력이 다르다.  이준석은 원래 다리 건너 노원구에서 세 번인가 나왔다. 노원구가 고향인 걸로 안다. 계속 나오다 안 돼서 경기도로 내려갔다. 고향에서 3번 나와서 안 됐는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내려와 당선되는 것도 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이준석 SNS에 들어가면 “~동 주민은 친구추가 최우선 순위” 이런 걸 써놨다. 노원구에 있을 때부터 그랬다. 개인적으론 주민과 가까워지겠다는 신호로 느껴졌다. 지역을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안귀령은 오히려 "여기가 어느 동이냐"는 주민 물음에 아무 답변도 못했다. Q. 안귀령이 유세 동을 몰랐던게 유권자 입장에선 어떻게 보였는지 “아, 지역을 모르는구나.” 그게 패착인지는 알 수 없어도, 유권자가 안귀령을 안 뽑을 이유는 됐다고 생각한다. 치명타는 이재명 고향은 알았다는 점이다. 지역은 모르는데 당대표 고향은 안다라. 참. 그 외중에 후보 포스트에는 ‘도봉 대변인’으로 써놨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인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말과 행동이 다르게 느껴졌다. 박자와 음정을 못 맞추는 가수가 좋은 노래를 할리 없다. 총선 이후 현수막 Ⓒ 한량 Q. 도봉구갑 출구조사와 실제 결과가 달랐다. 어땠는지. 출구조사를 보곤 “그래, 뭐 그렇지.”라며 당연하게 생각했다. 예상 결과도 5% 이상 차이가 났다. 5% 이상이면 뒤집기 어렵다. 오차범위 밖이니까. 그런데 막상 까보니 달랐다. 김재섭이 근소하게 이겼다. “어? 이긴다고? 이걸?” 출구조사 한 사람들이 출구를 잘못 안건 아닌가 싶다. (웃음). Q.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프레임은 정권심판이었다. 실제 민심이 안 좋기도 했고. 그래서 더 먹힐 줄 알고 텃밭에 신입을 후보로 냈는데, 인터뷰를 해보니 그 심판론이 역으로 먹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점에선 김재섭이 더욱 발전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서 유리했다고도 생각이 드는데, 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실제 지역발전보다 심판이 우선한 걸 비판했으니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해봤다. (웃음). 갑자기 생각해보면, 심판받아야 한다는 당의 입장에선 심판을 막아달라고 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더군다나 정부가 헛발질을 너무 많이 하자 않았나. 민심이 돌아선 건 여당 후보라도 다 알았을 것이고. 심판 단어 언급 자체가 꺼림칙 할 테니. 질문처럼 발전을 더 말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도봉구갑 개표 결과 켭처 생각해보면 김재섭은 몇 년 전부터 계속 자신을 어필했다. 지하철 입구, 신호등 주변에 현수막을 걸고 어필했다. 내 기억으론 GTX 개통과 지하화가 확정 됐을 때 모두 그랬다. “저 홍보 예산이 어디서 나오나"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 모든 게 메시지였고, 총선에 작용 한 것 같다. 최소 하늘에서 떨어진 후보가 아니라, 몇 년간 준비해 올라왔다는 인식을 주니까. 혹시 아나, 안귀령도 김재섭처럼 어필하면 다음 총선에서 뽑힐지. Q. 밑에서 올라온 사람과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의 차이라는 것인지 내겐 그랬다. 사실 그간 도봉구 발전에 김재섭의 기여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의원도, 구의원도 아닌데 지역 발전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었겠나. 그래도 계속 어필 한 게 통한 것 같다. 놀라운 점은 안귀령이 꽤 많은 표를 가져갔다는 점이다. 김재섭과 불과 1% 남짓 차이였다. 텃밭은 텃밭이다. 만약 안귀령이 정말 도봉구에 정착해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면, 다음번에는 뽑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낙하산 이미지로도 1% 남짓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김재섭처럼 이미지를 쌓아 올린다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면 도봉구갑 주민 절반은 김재섭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곧 4년 동안 보여주는 게 없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의미다. 물론 4년 뒤 김재섭이 나온다는 가정하에 이야기지만. 1% 남짓으로 진 안귀령이, 4년동안 차곡차곡 입지를 쌓아 올린다면 다음에는 된다고 생각한다. 김재섭은 지난 총선에서 인재근에게 졌다. 아마 4년간 계속 준비했을 것이다. 이젠 보여줄 때다. 과연 4년 동안 진짜 지역을 위해 뛰었는지, 사진찍기 위해 뛰었는지 기대가 된다. Q. 윤오도 가능성이 있나 아, (침묵) 그게 참 (침묵) 힘들다. 한 정당에서 한 지역구에 4번이나 같은 후보를 냈다. 그런데 계속 떨어진다. 지지율 10%를 넘긴 적도 없고. 정당과 후보 모두 힘이 없다는 의미다.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단 1석도 못 가져 간 건 물론 당의 실패다. 하지만 윤오가 도봉구갑에서 보여준 게 없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총선 이후 현수막 Ⓒ 한량 소수정당이 소신있는 건 좋다. 철새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소수의 소신이 소수에 머무는 건 이유가 있다. 윤오가 4번째 나왔다는 것도 몰랐었다. 4번이면 익숙할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4번 모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고, 존재감도 없었다는 의미다. 같은 후보를 계속 내는 것도 당에 인물이 없다 의미고. 4년 후에 또 뵙겠습니다, 라고 하던데. 다른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Q. 도봉구에 새인물이 온 건 어떻게 생각하나. 어째든 3선 의원이 물러난다. 개인적으로 물러난 의원이 다시 돌아오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후보 등록을 양보했다는 건 지역을 스스로 떠난 거니까. 이번 선거 양강 후보 모두 젊었다. 두 후보는 4년 뒤에도 만 40세 이하다. 이 점이 주민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좋다.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이 3선 넘어서까지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3선이면 12년이다. 국회의원이 300명인 상황에서 한 인물이 너무 오래하는 건 좋지 않다. 고이면 썩는다. 그 점에서 3선이 나가고 새인물이 들어온 건 좋다. 질문처럼 김재섭과 안귀령은 4년 뒤에도 젊다. 한 지역에 젊은 정치인들이 경쟁하는 건 그 자체로 좋은 현상이다. 개인적으론 내 지역이 젊은 사람들의 무대가 돼서 좋다. 젊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늙었다고 더 좋은 것도 없다. 4년 뒤에는 어떨지 벌써 기대 된다. Q. 비례대표는 어느 정당을 뽑았나 조국현식당을 뽑았다. (웃음). 개인적으로 조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 정권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부다. 조국이 잘났다는 것도, 과오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잘못한 사람들 밖에 없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여론의 난도질을 당한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최소 같은 과오를 반복하진 않을 테니까. 그 점에서 조국혁신당은 현 정부를 비판하며, 제 1야당에게 영향력도 행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지역구 의원은 정부 여당 후보를, 비례대표는 그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당을. 아이러니하다.  지역구에는 지역 발전을 말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민심이 정권에 불만족스럽다는 걸 아는 여당 당선인이라면, 민심을 우선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점에서 여당 정치인 뽑는 걸 현 정부에 힘을 실어 주는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당 당선인이 민심을 따르면 정부 비판에 더 힘이 실린다고 생각한다. 김재섭이 당선돼서 그렇지, 실제 안귀령과 표 차이 얼마 나지도 않는다. 윤오까지 합치면, 김재섭 지지자는 과반이 안 된다. 도봉구을은 더불어민주당이 뽑히기도 했고. 눈치 볼 거라고 생각한다. 22대 총선 결과 하면 캡쳐 Q. 민심은 정부에 반한다고 생각하나 총선 결과에 답이 있다. (웃음). 개혁신당도 철저히 야당 입장이라던데. 생각 제대로 있는 정치인이라면, 민심이 뭔지는 정확힐 알 거다. Q. 다음 총선에선 누굴 뽑을 건가 (웃음) 총선 끝난지 언제라고 벌써 다음이냐. (웃음). 난 언더독 편이다. 이제 언더독이 누구일까? (웃음)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재밌었다. 정치 얘기하면 싸우기 마련인데, 다 까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굴 뽑고,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건 아닐 텐데. 어째 사회는 그렇게 몰아가려는 것 같다. 그 점에서 신선한 대화였다. — 22대 총선 및 인터뷰 후기 : 이변을 만드는 건 유권자다 개인적으로 소신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그 소신이 나와 맞다, 안맞다는 다른 문제다. 제 22대 총선 도봉구갑 선거에서 소신 있는 사람은 김재섭과 윤오였다. 김재섭은 21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다시 나왔고, 윤오는 3번의 낙선을 딛고 다시 나왔다. 이 자체로 지역에 대한 소신은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이의 말대로 그 소신이 진짜였는지는, 김재섭 당선인이 향후 4년동안 보여줘야 할 모습이다. 평가는 4년 뒤 총선에서 유권자가 할 것이다. 도봉구갑 지역의 개표 과정은 흥미로웠다. 출구조사부터 승리가 점쳐진 안귀령 후보는 개표 초기, 김재섭 후보를 앞서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차이가 좁혀지더니, 김재섭 후보가 역전을 했다. 이후 탑독이던 안귀령이 언더독이 되어 김재섭 후보를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그 차이가 너무 미묘해,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유력'이란 글자가 뜨지 않았다. '당선'이라는 글자는 선거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떴다. 덕분에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서울 도봉갑과 경기도 화성을을 보며 두 가지가 보였다. 첫째, 선거는 시작 시점 숫자가 아니라, 끝날 때의 숫자로 하는 경기라는 것. 둘째, 그 경기의 이변은 유권자가 만든다는 것. 도봉갑과 화성을은 모두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었다. 이변이 보여주는 건 텃밭이라고 안심하지 말고, 지역 유권자의 바람을 정확히 알라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언제나 이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텃밭이 당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지역은 당의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 즉 유권자의 것이다. 텃밭이 누구 텃밭인지도 지역 유권자가 만든다. 김재섭이 이변을 만들었다, 이준석이 이변을 만들었다는 건 맞지 않는 표현이다. 유권자가 만든 이변이 정확한 표현이다.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건, 지역민은 당의 프레임이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해 투표한다는 것이다. 후보가 지역에 어떤 비전과 공약을 갖고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인터뷰였다. 김재섭 당선인이 어떤 지역 발전을 이룰지, 낙선한 안귀령 후보가 어떤 절치부심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 안귀령 후보는 "여기가 무슨 동이냐"는 지역민의 물음에 우물쭈물하며 답하지 못했다. 그걸 보고 지역민이 "어차피 철새처럼 떠날 사람인데, (왜 뽑냐)"고 하자, 안귀령 후보는 "아니에요, 저 이제 여기에 뿌리 박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 기대가 된다. 진심이라면 행동은 따라올 것이다. 소신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다음 총선에서도 소신있는 후보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때는 진짜로 내 한 표가 선거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작할 때의 숫자가 아닌, 끝날 때의 숫자에 내 표가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내 표를 누구한테 줄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김재섭, 안귀령, 윤오 모두 지역을 위해 힘 내줬으면 좋겠다.
선거가 끝났다(feat. 이승빈 - 무지개 대한민국).
선거가 끝났다. 출구 조사와 다른 결과에 놀란 사람도 있고, 계속된 접전 끝에 새벽이 다 지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 총선에 대해 큰 기대나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검색창을 새로고침하고 개표 방송을 한 번씩 보면서 어떤가 확인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선거를 몇 번 하다 보니 눈에 익은 얼굴들이 생겼고, 어쩌다 보니 관계가 있는 분들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국가의 모든 예산은 법에 근거해서 집행된다. 정치를 통해 법을 만들고, 법 한 줄, 예산을 이야기하는 근거를 만든다. 그 한 줄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툰다. 그러나 아직 누군가에게 투표를 해야 한다고 설득할 자신은 없다. 나 한 사람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냐는 물음에 그동안 쌓인 불신을 해결할 만한 해결책은 없다. 표 하나가 얼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리 뉴스에서 이야기해도 각자의 삶이 바쁜 지금, 우리들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그렇게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1.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4선 의원이자 2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번에 경기 고양시갑 선거에서 18.41%로 3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가 소속된 녹색정의당은 2.14%를 기록해 국회에 한자리의 의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이전 선거 때는 10% 가까이 차지할 만큼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그들의 자리는 어느새 사라졌다. 녹색정의당은 이번 선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타격이 많았다. 의원들의 탈당부터, 내/외부의 다양한 이슈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에 의구심이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조국혁신당, 새로운물결 등이 눈에 들어오며 정의당만의 날카로움과 뾰족함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노회찬에서 시작해서 심상정으로 이어지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의 인물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10%의 기대감은 어느새 2%의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0년 진보 정치가 그렇게 막을 내렸다. 21대 국회의원인 장혜영 의원은 서울 마포구을에서 8.78%로 3위를 기록했다. 그다음을 기약한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거대담론과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와닿는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따라 다음 도약의 시기는 달라질 것이다. 2. 극단의 정치가 계속된다. 조국혁신당이 24.25%를 기록해 12석을 차지했다. 개혁신당은 3.61%를 차지해 2석을 가져갔다. 그리고 이준석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개혁신당은 총 3석을 확보했다. 엘리트주의와 혐오를 통해 지지를 얻기 시작한 그들은 정책이 아닌 정권 심판에만 집중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별 특색과 정책이 보이지 않았다. 서로를 심판하겠다는 이야기 외의 모든 이슈는 묻혔다. 그들의 전략과 노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지역구를 공천하지 않고, 비례에만 집중해 민주당의 빈 부분을 끌어들인 조국혁신당의 전략,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고 여론&출구 조사 모두 뒤지고 있었지만 결국 역전을 통해 가능성을 증명한 이준석과 개혁신당. 당선이 확정된 조국은 바로 대검찰청으로 달려가 김건희 여사 소환 조사를 외쳤다. 내가 괴롭힘당한 것처럼 나 역시도 응징하겠다는 표현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몰려든다. 네거티브와 혐오가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더욱 커지고, 이로 인해 앞으로의 선거는 정책 없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비판과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점점 더 우리는 끝으로만 모이고 있다. 3. 무엇이 남았을까.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더불어민주당이 잘 해서 지금의 의석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는 역전을 당하기도 했고, 예상외로 비슷한 득표를 보였던 지역도 많았다. 그렇다면 국민의 힘은 무엇을 했을까?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지자층을 열심히 다시 모았다. 그리고 그 사이를 혐오와 비판으로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이 들어왔다. 그게 전부다. 조국과 이준석의 돌풍에 놀라고, 국민의 힘을 보며 손가락질하고, 녹색정의당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검색창을 닫는다. 앞으로 4년 동안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우리 동네 의원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4. 그럼에도 조금씩 변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도봉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였다. 몇 년 동안 접전은 있었더라도 꾸준히 민주당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변이 나타났다. 심지어 당선인은 기존 유력 인사가 아닌 젊은 신인 정치인이다. 서울 도봉구갑에서 국민의힘 김재섭 후보가 2% 차이로 당선되었다.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 동북권에서 여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당선되었다. 도봉구 토박이일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도 정말 열심히 유세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를 가도 계속 있고, 그 누구보다 일찍 나와 좋은 자리를 많은 사람들과 차지했다. 여러 방송에도 등장하고, SNS를 통해 10대 청소년들과 소통하는 그의 모습에 도봉구 주민들도 다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힘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보게 된다.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이 이번에도 재선에 성공하고, 김재섭 후보가 공천에 성공하고 당선될 만큼 세대교체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투표를 하는 이유는 이런 변화를 기대하고 보기 때문이지 않을까. 5. 무지개 대한민국을 그린다. 요즘 가끔씩 보는 유튜버가 있다. 피아노 방송을 하는 '이승빈'이다. 피아노 코드를 굉장히 잘 치면서도 살짝 나사가 빠진 모습이 재미있어 보인다. 어느 날 이분이 과거에 발매한 노래를 하는 쇼츠를 보았다. 노래의 제목은 무려 '무지개 대한민국'. 살펴보니 만 19세일 때 노래를 발매했다고 한다. 노래를 발매했던 당시에는 굉장히 악플을 많이 받았는데, 오히려 지금 사람들이 많이 듣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래 가사가 굉장히 와닿고, 어렵지 않아서 이동할 때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다 같이 사이좋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지낸다는 말은 동화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바뀌고, 같이 있는 사람들도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와 비난의 시대에서 함께 웃는 그 모습을 오늘도 한 번 더 상상한다. 남녀노소 서로간의 갈등부 가난 대물리는 신분좌우남북 슬픈 편 가르기두려움 가득한 색안경 하나로모든 것이 나뉘어져 가는 혐오의 시대 ... 그대와 내가 좋아하는 색이 달라도서로를 미워하지는 말아줘요하늘에 만개하는 무지개 나라에서도일곱 요정들이 서로 손을 잡아요촛불을 드는 아이도 태극기 할아버지도다 아름다운 꽃과 같은 사람들누구나 함께해요 무지개 대한민국 ... 두려움을 떨치고 서로를 바라봐줘요조금 다를 뿐 우린 모두 아름답죠내 편은 생각하는 것만큼 선하지 않지만그들도 생각만큼 악하지 않아요누구나 함께해요 무지개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