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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가제트와 실뜨기 하는 세계 - AI의 무기화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2020년 11월 말, 이란의 핵과학자 중 최고 권위자가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모센 파크리자데, 가족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의 차 앞뒤로 경호차량이 수행했는데, 그의 집을 얼마 앞두지 않은 곳에서 갑작스러운 총격이 시작되었다. 총 15발의 실탄이 발사되었고, 그 중 3발이 정확히 그의 얼굴을 조준하여 발사되었다. 모센 파크리자데는 그렇게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어떤 범인도 발견되지 않았다. 총격이 발생한 지역 주변을 비추는 CCTV도 모두 먹통이어서 그 당시 정황에 대한 영상기록은 남지 않았다. 현장에서 발견된 것은 주차되어 있던 파란색 닛산 트럭과 그 트럭에 적재된 건축 자재 사이에 있던 원격 제어 로봇이었다. 이 로봇에는 저격용 기관총이 달려있었다. 이 트럭은 총격이 이루어진 후 자동으로 폭파되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자동으로 폭파되는 트럭 왜 익숙하지? 어릴 때 보던 중에 형사 가제트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팔이 길어지는 형사 가제트에게 미션 수행을 안내하는 쪽지가 비밀리에 도착하는데 그 쪽지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면 자동폭파된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사 깨닫게 된 것은 그 형사 가제트도 기계였다는 것이다.
2021년 아마존에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인간-기계 팀: 세상을 혁신할 인간과 인공지능의 시너지 창출 방법(The Human-Machine Team: How to Create Synergy Between Human and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Y.S.준장’이라는 필명의 저자는 현직 유닛 8200의 사령관으로 알려졌다. 유닛 8200(Unit 8200)은 이스라엘 방위군의 정보기관의 이름이다.
유닛 8200의 주된 업무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인데, 감시하는 대상은 ‘대중’, 즉, 불특정 다수를 의미한다. 유닛 8200은 모든 통신을 감청하고 개인과 집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이런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우림(Urim) 기지’, 네게브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군사기지이다. 우림 기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신호정보 수집기지”로 알려져 있다.*
*엔터니 로엔스틴 지음, 유강인 옮김, <팔레스타인 실험실>, 소소의 책, p.125.
Y.S.준장은 그의 책에서 미래의 국가안보는 “인간과 기계가 완벽하게 한 몸을 이루어 ‘국가안보의 위협과 도전’을 해결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며, 인류를 위한 성장 엔진 노릇’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미래, 이미 그 미래는 올지도 모르는 미래가 아니라 곧 오게 될 미래로 호명되고 있다. 미래는 언제 도착하여 현재가 되는가?
모센 파크리자데의 죽음은 완벽한 기계와 인간의 결합인가 아닌가?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검색의 수고와 각종 다양한 문서의 초안작성을 요구할 수 있고, 인공지능이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초안을 몇 초만에 내어주는 세상에서 기계와 인간의 결합은 이미 진행되었고 ‘완벽성’을 기하는 것만 남은 것일까?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인간의 미래인가, 미래여야 하는가, 미래가 아닐 수도 있는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는 이 사건은 하나의 고정된 사건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루어져왔으며 이루어져갈 무엇으로써 경계를 흐리고 또 흐리는 무엇이다. 토머스 필벡(T. Philbeck)은 포스트 휴머니즘을 혼종적이고 유동적이며 중층적인 인간 정체성을 규명하여, 근대 휴머니즘을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벡 토마스(2021), <인간과 포스트휴머니즘>,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모센 파크리자데는 원격 제어 로봇에 의해 사망했다. 이것은 기계에 의한 죽음인가, 인간에 의한 죽음인가? 모센 파크리자데의 죽음보다 조금 앞선 2020년 5월에는 리비아 내전 중 튀르키예가 공급한 AI 드론이 반군 세력을 추격하면서 도망치는 군인들을 자폭 공격하여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계 뒤의 인간이 기계를 제어하여 표적을 암살한 이 사건은 기계와 인간의 어떤 결합인가?
2024년 초, 우크라이나 118기계화여단은 새로운 인공지능 유도 드론의 시험비행을 진행했다. 테스트 대상은 러시아 병사였고 즉시 사망했다. 이 드론은 인간에 의해 조종되지 않았다. 스스로 표적을 찾고 표적을 향해 이동했으며 그 표적을 살해하기 위해 자폭했다.
2023년 1월, 미국 국방부는자율무기체계를 “한 번 작동하면 운영자의 추가 개입 없이 표적을 스스로 선정하고 교전할 수 있는 무기체계”로 정의하면서 자율무기가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최소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사실은 기본값이며 그 인간의도를 벗어난 기계의 행동이 최대화될 수 있으니, 그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이 ‘최소화(minimize)’라는 것은 마치 어떤 안전장치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으나 결국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귀결될 더 많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DoD Directive 3000.09 Autonomy in Weapon Systems
2024년 9월, 서울에서 인공지능의 책임있는 군사적 이용에 대한 고위급회의(REsponsible AI in the Military domain Summit 2024)라는 것이 열렸다. REAIM 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회의는 한국 정부가 주최한 행사로 네덜란드, 싱가포르, 케냐, 영국이 공동주최국으로 참여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가는지 듣고자 동료들과 함께 공개된 회의들에 참여했다. AI가 국제 안보 환경, 특히 분쟁 역학과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에 대한 논의들이 오고갔고, AI의 군사적인 이용이 가져올 혜택과 위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지만 복잡하고 고도화된 기술영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받았던 인상은 비교적 간단하다. 윤리에 대한 규제를 얼른 만들고 기술의 진보에 집중하자.
한국과 케냐 등 공동주최국의 국방부장관들과 군수산업체 록히드마틴의 데이터 AI 최고책임자, 국내 군수산업체 한화시스템 우주연구소의 부소장은 라운드테이블에서 인공지능의 군사적이용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모두가 인공지능이 가져올 전장의 변화가 자국의 군인들의 피해를 줄여줄 것이며, 자원의 낭비를 줄여줄 것이고, 예측능력을 높여 국가안보에 기여할 것이라는 방향성에서 이야기했다. 유일하게 미래학 교수 한 사람이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하는 것 같았지만 그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긴 이야기 끝에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 해결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고.
Y.S.준장은 인간과 기계의 완벽한 결합으로 더 단단해질 국가안보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그리하여 더욱 단단해질 그 국가안보란 대체 무엇인가? 그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미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에서 만들고자 하는 ‘이후(post)의 세계’는 무엇인가? 내가 참여했던 REAIM 세션 중 하나에서는 인공지능의 편견에 대해 우려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대안은 ‘교육’이었다. 즉, 인공지능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어떤 데이터를 인공지능에게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므로 그 인공지능을 다루는 인간들의 편견을 다루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토론 시간에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교육’은 마술봉이 아니라고(Education is not a magicstick, we all know that).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교육’에 모든 것을 떠넘기지 않으면 인공지능의 군사적 이용에 속도를 낼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인류는 또 한 번의 멍청한 무책임의 순간들을 목도하고 있다. AI 유도 드론을 두고 어떤 이들은 오펜하이머 모멘트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펜하이머는 그래서 인류에게 무엇을 남겼지? 그는 정말 멈출 수 없었을까? 그도 멈출 수 있는 순간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인류는 또 한 번 멈출 수 있음에도 멈추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실험실이라고 불린다. 매일 수백수천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그 곳을 실험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에 나는 살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완벽한 결합을 꿈꾸며 부수적 피해를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도나 해러웨이의 문장들을 선물하고 싶다.* 우리는 보편성과 개별성이 아니라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연결을 가지고 세계들을 결합하고 변형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도나 해러웨이는 이 지구위 존재들의 삶을 ‘실뜨기’라고 보았다. 서로 얽혀있는 직물, 하나가 풀리면 같이 풀려나가는 직물. 그렇기에 “인간들은 함께 비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풀리는 직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혼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울 수 없고, 그래서 사유할 수 없다.” 비통함이 사라지는 세계, 이제는 이 실뜨기에 기계를 초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기계와 함께 실뜨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이야기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사유하지 않고 너무 빨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 보고 싶은 세계는 대체 무엇인가?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2021), <트러블과 함께하기>, 마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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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아영
2012년 9월, 평화와 교육, 평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피스모모(PEACEMOMO)를 동료들과 함께 창립했다. 사회혁신의 궁극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그치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본과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하는 사람, 실천적 사유에 관심이 많으며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집에서 새촘, 우아, 레오, 라라,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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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자의 일 - AI디지털교과서 도입?!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출현은 지식의 습득과 전수를 기본 줄기로 하던 전통적 학습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은 1980년 이전의 규칙 기반 시스템, 그 이후 신경망과 딥러닝의 시기를 거쳐 2010년부터는 대규모 언어 모델에 따른 생성형 AI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 도구’이자 ‘똑똑한 보조교사’로 기능할 것이라 말한다. 인공지능이 학생의 학습 상황을 분석해서 교사에게 알려주면, 교사는 학생의 특성을 고려하여 맞춤지도를 할 수 있고, 학생은 자신의 흥미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하여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현장 교원들의 반발이 크다. 교원들은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중단하거나 최소한 적용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AI 디지털 교과서가 교육부의 설명과는 달리 학습자의 집중력, 사고력 등 학습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모든 학생이 디지털 단말기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기기 의존 현상, 눈 건강 악화, 디지털 중독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사용료 과금으로 인한 비용 발생, 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 문제, 학습자원의 상업화 문제 역시 반대 의견의 논거 중 하나이다.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를 쓴 조너선 하이트는 이른 나이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정신 건강 문제와 현실 세계에 대한 부적응으로 인하여 사회적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6세 이전에는 스마트 폰과 소셜 미디어의 사용을 금지’하자고 제안한다.
지금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자는 교육부와 이에 반대하는 교원들 간의 주장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도입을 강행한다는 교육부의 정책 추진 의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문제에 대한 지적이 첨예하고 맞서고 있는데, 이 문제가 이렇듯 ‘도입 vs 반대’ 의견 중 하나로 간명하게 정리될 수 있을까, 또 그 방식은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이 문제를 사고할 때 단순하게 도입과 반대를 넘어 ‘교과서’라는 제도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AI 디지털 교과서라는 구체물을 놓고 대립 양상을 보이지만, 사실 이 문제는 교육에서 기술을 활용할 때 그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이다.
이런 까닭에 생성형 AI가 선을 보인 이후 인공지능의 교육적 활용과 이에 따른 교사의 역할 변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에서 디지털 기술은 학습자 맞춤형 학습, 효율적인 학습 관리, 다양한 학습 콘텐츠 제공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동시에 윤리적 문제, 디지털 격차 심화,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 등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이 문제를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만 조명하면 정작 필요한 AI 디지털 기술의 교육적 활용 방안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사라진다. AI는 개별 학습자의 맞춤형 학습을 돕는 도구로 작동하면서 학습자의 수준, 학습 스타일, 학습 속도 등을 분석하여 개인에게 최적화된 학습 경로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고 학습자의 학습 동기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AI는 학습 데이터를 분석하여 학습자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개별 학습 진도를 관리하며,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나아가 AI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콘텐츠를 생성하고 제공하며,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학습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이런 장점이 있다는 것을 현장 교원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 교원들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을 찾아보자. 1) AI 디지털의 교육적 활용이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반드시 ‘교과서’라는 제도적 변화여야 하는가? 2) 전국의 동일 학령기 학생들이 특정 과목에서 ‘일제히’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렇게 질문을 정리해 보니, ‘교과서’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한 대립은 심화할 것 같다. 교과서와 ‘수업보조자료’는 그 역할과 위상이 다르다. 교과서는 전국의 모든 학생이 일제히 사용하는 것이며 수업보조자료는 개별 교사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사용한다. 그러므로 AI 디지털 교재의 명칭을 교과서에서 수업보조자료로 변경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교과서가 아니라면 모든 교실에서 같은 교재를, 일시에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자료의 성격을 바꾸면 비용 부담 문제, 획일적 적용에서 오는 문제, 개인정보 유출 문제, 디지털 중독 문제, 단말기 사용으로 인한 신체·정서적 문제 등을 훨씬 덜 걱정해도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AI 시대 교사전문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함양할 것인가의 문제다.
단순히 AI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기 위한 대규모 연수는 AI 시대에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는 정보화시대의 명암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디지털 사용에 따른 윤리, 과몰입 및 격차 해소 방안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 본인의 교과에 첨단 기술을 접목시킬 때 장점과 문제점, 그리고 효과적 활용 방안과 문제점 해소 방안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것을 중앙 정부 차원에서 공통 매뉴얼로 만들어 보급할 일은 아니다. 교사들의 창조성을 믿는다면 백 개의 교실에서 백 가지의 AI 디지털 활용 방안이 나올 것이다. 물론 특정 학습 주제는 여전히 서책에 담긴 내용으로만 수업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전통적 수업방식에 맞고 어떤 내용은 첨단 기술과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했을 때 효과적인지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들이다.
AI 디지털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 이점 때문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AI 기술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일제히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바탕으로 AI와 인간이 상호 작용하며 함께 성장하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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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기
전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중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을, 대학에서 예비교사를 가르쳤다. 정년을 맞아 일터를 떠난 후에는 읽고, 쓰고, 걷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자유의지를 지난 창조적 주체 간의 상호작용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사, 책을 들다>를 비롯하여 몇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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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미칠 노동, 노동조합의 변화에 대하여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유용함? 두려움?
몇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최근 AI는 우리에게 참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기업에서도 정부에서도 학교에서도 AI를 활용하겠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나에게 AI는 유용한 도구이자, 한편으로는 두렵게 느껴지는 존재이다. 챗GPT, Gemini같은 생성형 AI에게 질문을 하면 대량의 데이터를 통해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요약‧정리해 준다. 어떤 자료를 더 보면 좋을지에 대해서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나는 두려움을 느낄까? 일단 AI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AI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챗GPT는 우리 눈에는 검색창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생성형 AI가 ‘어떻게’ 사고하여 이런 답을 내놓았는지에 대한 과정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질문하느냐, 질문자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달리 답변을 내놓는다니 신기하면서도 두려움이 남는다.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모르기 때문에 배제되지는 않을까, 모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지는 않을까, 모르기 때문에 낙오되지는 않을까, 모르기 때문에 틀리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AI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낼지 변화가 제대로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변화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더 막막하다.
AI가 노동에 미칠 영향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을 ‘몰라도 되도록’ 조직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분업화이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은 노동과정 전반을 분업화했다. 분업화는 생산력을 높이는데 굉장히 유용한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을 직접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실제 자동차를 조립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찾아보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자동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부품이 필요한지, 그 부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동과정이 필요한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자신이 하는 공정 전후 과정 정도만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AI는 노동 현장에서 업무의 효율을 높여주는 등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을 더 ‘모르는 존재’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기술의 발전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통제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우버는 승차율, 취소율, 앱 로그인 시간, 완료된 여정, 고객 평가 등을 모니터링하고 개별 우버 기사에게 “당신은 상위 10%입니다.” 등의 메시지를 보낸다. 노동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이 자신의 노동과정 전반을 일상적으로 관리하고 기록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알고리즘은 그 데이터를 가지고 인간의 노동을 통제하며 평가한다. 그런데 노동자는 어떤 과정과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평가했는지에 대해서 알기 어렵다. 또한 알고리즘이 내린 평가에 대해 반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플랫폼 사는 노동자들의 자유와 선택이 보장된다며 플랫폼 노동자들을 ‘자영업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업무에서 배제되어 해고되기도 하고, 경쟁에 내몰려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이에 맞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알고리즘에 대한 정보 제공 및 통제 권한을 노동자에게 부여할 것,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관련 규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AI는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컴퓨터가 스스로 알고리즘을 학습한다는 의미에서 기존 알고리즘과도 차이가 있다. 최근 배달의 민족은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했다고 발표하면서 “정교한 AI 배차 추천 기술을 활용해 라이더가 안전하면서도 빠른 배달을 할 수 있도록 최적의 배달을 매칭해준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AI가 포용적이거나 균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구체적 조건을 고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I는 기존의 대량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람들의 요청에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자체에 구조적 차별로 인한 편향이 있더라도 이것을 편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차별과 혐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더 확대할 수도 있다. 즉, AI는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주류적 인식을 ‘정답’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배달의 민족이 자랑하는 것과 달리 AI가 오히려 한정된 시간에 어떻게 수익을 높이는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배달 횟수를 늘릴 것이냐에 집중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더 높일 가능성이 크다. 효율성과 이윤 확대가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AI의 발전과 노동조합의 고민
현재 곳곳에서 인간의 노동을 AI로 대체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콜센터 상담노동이다. 콜센터 사용자들은 최근 고객민원대응에 AI 기술을 도입하고, 노동자들의 상담 내용 및 목소리를 데이터화해서 AI를 훈련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상담 내용 및 목소리로 AI 훈련을 진행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동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있다. 한편, AI 도입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AI 안내로 겨우 상담노동자를 만나게 된 고객들 중 화가 나 있는 고객들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을 거스르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있고, 기술의 발전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인간의 삶,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대비가 필요하다. 현재 수준에서는 AI의 발전이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새로운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입장부터 상당수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하지만 공통점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며, 비대면 업무, 매뉴얼화하기 쉬운 업무부터 대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가 급속도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변화의 과정을 통제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노동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시간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자신의 성취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용자도 아닌 AI에 의해 노동자의 일상과 삶이 통제되고 관리될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반평화적이며 불평등한 인식이 재생산되고, 저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은 노동조합에게도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노동조합이 일터에서 AI 도입 과정 및 보완 과정 등에 개입하지 못할 경우, 노동자들의 일상 전반이 더 많은 이윤 확보와 효율성 증대라는 목표 아래 지금보다 더 관리되고 통제되도록,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배제되도록 AI가 작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AI 역시 무오류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집단적 관리와 개입이 필요하다. AI의 오류가 인간의 안전에도 중대한 위협을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AI가 제시한 ‘정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배제된 입장과 사람은 없는지, 다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너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AI 시스템에 개입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힘과 역량을 키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비판적 인식을 확장하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 AI의 발전 때문만은 아니지만 노동조합 역시 이러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는 다양한 대상과 주제를 가지고 교육을 진행한다. 대상에 따라 구체적 교육의 목표에는 차이가 있지만, 노동조합의 교육 전반이 추구하는 방향은 있다. 공식적으로 정리된 바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노동조합 교육이 추구하는 바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함에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서는 현재 사회가 가지는 다양한 모순을 넘어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추동해 가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에 있다. 또한 개인들의 힘을 모아 집단적 힘을 긍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역량을 성장시키는 것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동적 존재이자 하나의 부품과 같이 여겨지던 노동자들이 사회의 주체이자 자기 삶의 주체임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AI 발전은 노동조합에게 이러한 고민을 더 다듬고 확장할 과제 역시 부여하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대량의 정보를 처리하는 AI가 발전하는 시대에 지식 습득에만 주목하는 교육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잘못된 정보 속에서 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용기, 누구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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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보람’입니다. 노동자들의 힘을 믿고 노동자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육 업무를 전담으로 한 지는 10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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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결합 된 미래, 알 수 없음을 준비할 시간 - 11월 더슬래시 편집인의 글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오케이 구글, 오늘 날씨 어때?” 하루를 시작하며, 거실에 놓여있는 기기에 말을 겁니다. 출근길에는 실시간으로 추천되는 뉴스를 보고, 오후에는 AI 자동 번역 기능을 이용해 중국 쇼핑몰 소비자 센터에 배송 문의를 합니다. 운전할 때는 자동 주행 기능을 켜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현란하게 오가던 발을 쉬기도 합니다. 작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AI 기술이 삶의 여러 영역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발견합니다.
인공지능을 수년간 연구해 온 노스사우스웨일스대 토비 월시 교수는 책 <생각하는 기계(2018)>에서 인공지능의 시작을 놀랍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식논리학의 토대를 닦은 기원적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간이 사고하고 추론하는 방식을 가시화하려는 노력이 인공지능의 근간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죠. 월시 교수는 이러한 논리학의 노력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에 와서 ‘계산의 형식(기호)’으로 표현되면서, 컴퓨터가 ‘생각’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를 제공했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기계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해 온 역사, 그리고 생각을 ‘계산’하기 위해 무던히 시도했던 역사의 줄기에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급속도로 다가온 기술, 그래서 온통 미지의 영역이며, 심지어는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인상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려 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공지능과 결합 된 미래들에는 ‘알 수 없음’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가능성이 너무 넓고 무한해서 그 결과 값이 무엇일지 전혀 예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1월의 더슬래시는 AI와 결합된 미래, 그 ‘알 수 없음’을 준비할 시간을 다룹니다. 보람, 함영기, 문아영님이 필진으로 참여해주셨어요. 먼저 노동조합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보람님은 AI가 노동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와 관리’의 측면에서 짚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분업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몰라도 되는’ 존재로 제한하고,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삼았던 시절을 소환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당신은 상위 10%입니다.” 등의 방식으로 평가받는 현실을 들며, 인공지능은 노동자를 더 ‘모르는 존재’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았는지, 평가에 반론하거나 불평등한 인식에 저항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로요. 그래서 AI로 더욱 좁아지고 불평등해질 노동의 미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힘을 비판적 교육을 통해 쌓아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누구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요.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정책을 담당했던 함영기님은 교육과 기술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최근 교육부는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는 도입하겠다며,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 도구’이자 ‘똑똑한 보조교사’로 기능할 것이라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함영기님은 이를 “교육에서 기술을 활용할 때 그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오래된 논쟁 중 하나”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AI 교과서를 도입하냐 마냐를 놓고 대립하기보다 넓고 길게 고민할 시간을 벌자고 이야기합니다. 윤리적 문제는 없을지,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지는 않을지, 교육의 본질을 잃지는 않을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고요.
문아영님은 2024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의 책임있는 군사적 이용에 대한 고위급회의(REAIM 2024)’에 참여했던 경험을 나누며, AI가 무기와 결합하는 세계에서 안보란 무엇이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수많은 죽음을 ‘부수적 피해’로 치환하며 비통함을 지우는 시대에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음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토비 월시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점차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꾸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긍정적일 수도 아주 비극적일 수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 수 없음’이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 말입니다. 애써 알 수 없음을 알아갈 시간, 그래서 극적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멈출 수는 없더라도, 찬찬히 기억하고 차분히 결정할 여유를 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가연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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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에서 K-방산까지 : 팔레스타인 대량학살에 멀고도 가깝게 연루된 한국의 장황한 이야기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시리아 레바논과 가자 지구에서 폭발이 쏟아지던 그 때, 한강에는 불꽃이 터졌다.
2024년 10월 5일,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레바논, 시리아에 폭탄이 쏟아질 때, 한강 위에서는 불꽃이 터졌다. 2000년부터 매년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주최하는 한화그룹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폭격에 연루되어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서안지구의 대량 학살은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한화그룹의 계열사이자 ㈜한화의 자회사인 한화시스템은 2021년 한국과 이스라엘 간 '기술 협력'과 '새로운 수출 기회'를 도모하는 MOU를 이스라엘 방산업체 엘타시스템, 엘빗시스템과 체결한 바 있다. 불법 국가인 이스라엘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의 자회사인 엘타는 이스라엘 점령군(IOF)에 레이더 기술과 전자 장비를 제공하고, 무인 불도저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파괴하는 실험을 진행하며, 체코와 이탈리아 같은 국가에 수억 달러 규모의 장비를 수출하고 있으며, 최근 엘타의 드론 수출이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 캠페인에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다. 엘빗 시스템은 이스라엘 공병대가 운용하는 지상 장비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고, 웨스트뱅크의 분리장벽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맡고 있다. 불꽃축제 하루 전이자 10월 7일을 3일 앞둔 날, 한화시스템은 엘빗 시스템 그리고 군용기 제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과 한국군 특수작전헬기(UH/HH-60)의 성능 개량을 위한 또 다른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충청남도 계룡대에서 개최된 2024 대한민국 육군 국제 방위산업전(KADEX)에서 이루어졌으며, 2021년 KADEX의 국제 행사인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체결한 양해각서 체결에 이은 후속 조치이다. 10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린 KADEX 2024에는 무기 산업과 명백한 연관성을 지닌 국내외 무기, 기술 및 연구 개발 기업들이 참가했다. 올해는 대전과 서울에서 온 반전 활동가들이 계룡시에 모여 한국 땅에서 또 다른 무기 박람회를 개최한 것에 대해 평화적으로 항의했다. 전쟁없는세상, 피스모모, BDS 코리아, 팔레스타인문화연대(KCAP) 회원들을 포함한 참가자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착민 식민지 점령에 한화가 공모하고 있다는 점과 군사 관련 배출로 인한 기후 재앙의 가속화를 강조하는 피켓을 들고 행사장 밖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결국에는 미국 국방부가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 기관이다). 이 조차도 시위 주최 측이 도착하기 전부터 박람회 주차장에서 활동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보안 요원들이 경찰을 동원하여 시위를 박람회에서 제일 눈에 안띄는 곳으로 몰아넣는 실갱이를 벌인 후에야 가능했다. KADEX 측이 반대 의견을 세게 억누르려는 노력은 항상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군사주의에 깔린 불안한 기류를 드러낸다. 반대하는 목소리를 거세게 진압하는 KADEX의 모습은, 언제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군사주의 그 스스로의 불안함과 겹쳐지는 듯하다.
반전 조직과 관련 활동은 오랫동안 한국 정부의 감시를 받아왔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부터 이어져 온 국내 보수주의의 반공 기조는 윤석열 정권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고, 한국의 국방 예산 증가와 이에 따라 세계 무기 거래 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정부 인사들의 적극성은 한국을 군사 단시간에 무기 수입국에서 주요 수출국으로 변모시켰다. 미국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무기 수출의 42%를 점유하며 여전히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이지만 (수출국 2위인 프랑스가 11%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지난해 세계 8번째 무기 수출국이 되면서 전무후무한 무기 판매 기록을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한국 무기 산업과 군의 강화는 윤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한국의 무기 수출은 12억 달러(2011~2015년)에서 38억 달러(2016~2020년)로 급증했으며, 폴란드와 호주 시장에도 진출했다. 윤 대통령은 전임자의 바통을 이어받아 작년 ADEX에서 한국의 세계 4위 무기 수출국으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고 선언했다.
'K-방산' 또는 ‘K-국방’과 같은 문구를 통해한국을 세계적인 무기 판매국으로 브랜드화하려는 정부의 계획은, 대중음악에서 뷰티 산업,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지원을 받아 한국 상품에 대한 글로벌한 취향을 키워내려는 지난 시대의 노력과 포개어져 애틋하기까지 하다. K- 접두사에 대해 한국이라는 생산지라는 공통점만 존재하는 다양한 상품에 문화적 자본을 붙일 수 있게 만드는, 거대하지만 공허한 기표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조이한나 유(Joyhanna Yoo)의 주장처럼 어쩌면 K-접두사는 단순한 첨가물이 아니라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의 최소 단위인 ‘형태소’이자 정치적 분석 도구일지도 모른다. K-접두사가 군사 장비에까지 달라붙으며 이제 질문은 더 확장되었다: 불꽃놀이, 현대미술, 폭격기 등 다양한 종류의 K-상품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이러한 다양한 수출품을 함께 고려했을 때, 국방부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미용, 레저 산업이 전쟁에 관여한다면,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리고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 사이의 변증법에 대한 진지한 논쟁이 일어나는 지금, 한국 내에서, 또는 다른 지역 및 운동들의 연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방식의 보기, 느끼기, 조직하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각각의 질문들 뒤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이어지는 글에서 역순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베트남, 팔레스타인에 이르기까지 냉전의 거물, 재벌의 뱃속으로
2024년 10월 5일,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레바논, 시리아에 폭탄이 쏟아질 때, 한강 위에서는 불꽃이 터졌다. 한화의 축제를 빛낸 불꽃축제 팀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에 대항하여 3국의 '보호' 약속을 공식적으로 제도화한 '자로쿠스(일본-대한민국-미국)'라는 새로운 아시아 태평양 안보 조약의 주역인 일본과 미국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한국이 과거 식민지배국과 현존하는 제국의 권력 사이에 끼어 있는 이 동맹은 불안한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 국제 전쟁 범죄에 대한 배상 조건을 공동 채택함으로써 지역적 단죄를 중단시키고, 원자폭탄 사용으로 군사적 위협을 강화함에 따라, 일본과 미국의 제국주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함께 얽힌 채로 존재한다. 한국전쟁은 종전의 지연에 따른 상처를 남긴 한편으로, 일본과 미국에게는 군수품 생산과 군비 지출 급증이라는 양국 역사상 가장 큰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 딘 러스크 미국 극동 담당 차관보는 “한국전쟁이 우리를 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종희 창업주가 1952년 한국화약주식회사로 한화를 설립한 후, 1957년에 국내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사업이 급성장한 것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한화는 이후 미군과 납품 계약을 체결하고 냉전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 석유, 증권, 플라스틱, 호텔 등 다양한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즉, 한화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냉전이었다.
한화와 현대를 중심으로 한 K-방산 성장의 이면에는 한국전쟁의 유산과 일련의 군사 독재 하에서 한국의 전후 발전을 이끌었던 급속한 산업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재벌들은 수백, 수천 달러의 미국 원조로부터 도움을 받고, 일본 식민지 자이바쓰(재벌)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특히 1950년대 전후에 규제없이 만연했던 부패, 그리고 이승만 정부가 이미 생산 수단을 가진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대출 조건을 만들고 확대하며 국내 엘리트 계층을 키운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약 15년 후, 재벌은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군사 개발주의의 중핵이 되었다. 재미사학자 피터 권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화 계획과 1973년 군수조달법 제정과 함께 박정희 정권은 한화, 풍산, 현대 등의 일부 재벌을 본격적인 방위산업체로 전환시켜 북한을 겨냥한 탄약 생산을 토착화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공장 노동자들이 유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폭발물 사고로 사지를 잃는 등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하자, 1990년대 한화 인천 공장 관계자는 공장 앞에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한 표지석을 세웠다.
이 비문에는 국가 주도의 냉전 경제 개발주의가 그 근간에서 생명 정치, 즉 누가 살 자격이 있고 누가 죽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관리로 작동했다는 경제 권력에 대한 핵심적인 진실이 담겨 있다. 박정희의 정책은 무기를 수출하기보다, 미국의 보조금을 받고 30만 명이 넘는 한국군을 베트남에 파병하는, 가장 피비린내 나는 방식의 생체권력을 보여줬다. 피터 권은 이 교환이 재정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박정희 정부가 국내 방위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재미학자 이진경은 파병을 국내 성매매와 군 매춘 등 당대의 소외된 노동계급 노동의 핵심 사례 중 하나로 재구성하며, 실제로는 이들의 노동이 실패했기는 커녕 한국의 근대화에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설명한다. 이진경은 이러한 노동의 소외가 예를 들어 공장 노동과 같은 '주류 산업 노동'과의 구조적 관계 속에서만 발생할 수 있었고, 군인이나 성 노동과 관련된 노동은 노동 인구 중에서도 가장 천시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노동은 '섹슈얼리티와 인종을 노동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한국 근대화가 미국 제국주의의 궤도에 종속되어 있음을 강력하게 보여준다. 즉, 베트남 전쟁은 자국민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민에 대한 폭력을 지속하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미국의 신식민지에서 소위 ‘하위 제국 권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을 방문하는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거의 3분의 1이 한국인일 만큼 베트남은 한국인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다. 이러한 병렬 관계를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기반 위에 관광과 레저 경제가 구축된 하와이에서 괌에 이르는 태평양 전역의 정착민 식민지배와 마찬가지로 우연이 아닌 상관관계로 이해한다면 어떨까. 오늘날 베트남을 오가는 한국인의 상품과 신체를 국가가 지원하는 폭력의 징후와 그에 대한 인식의 부재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권현우는 전쟁없는세상 기고글에서 베트남전 전쟁 범죄에 대한 국가적 망각을 K-방산의 결정적 조건으로 꼽았다: “만약 한국 사회가 베트남전쟁을 철저하게 반성했더라면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의 해외 파병의 역사를 이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나라의 전쟁을 기회로 외화를 벌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지금의 부끄러운 현실이 그나마 덜하지는 않았을까. 자국민을 파병해 돈을 번 것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이니 무기 수출로 인한 외화 벌이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자조를 해야할까.” 한국 방위산업의 급속한 성장을 미국의 영원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권현우님의 글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한국의 공모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쟁의 반복을 거부함으로써 이를 바로잡을 길을 제시한다. 베트남에서 팔레스타인, 무기 산업에서 예술계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드디어 미국의 전쟁 지속과 이스라엘의 수백만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청소, 세계 최초의 대량학살로 기록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에 대한 역할을 재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한국까지
2024년 10월 5일,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레바논, 시리아에 폭탄이 쏟아질 때, 한강 위에서는 불꽃이 터졌다. 베트남부터 DMZ 관광, 불꽃놀이와 국군의 날 행진, 대중 무기 박람회와 전쟁 기념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문화적 지형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구분은 계속 흐릿해지고 있다. 군사 점령 정권과 문화 기관 사이의 역사적 파트너십은 2014년에 세계 보이콧, 투자, 제재(BDS) 운동에서 시작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학술 및 문화 보이콧 캠페인(PACBI) 가이드라인에 가장 잘 명시되어 있다. PACBI의 원칙은 문화적 대상과 지적 노동, 그리고 그 창작을 촉진하는 기관이 권력 시스템과 독립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며 시오니스트 점령과 같은 억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데 필요한 이념적 지원을 능동적/수동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이해에 기반한다. PACBI는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의 문화 보이콧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예술가, 학자, 문화 종사자, 비평가들이 이스라엘 정권의 핵심인 정착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외면하기 위한 예술 및 지적 노동을 허용하는 '아트워싱'에 참여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한국이 글로벌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점점 더 문화 외교 전략에 눈을 돌리면서, PACBI는 한국인과 한인 디아스포라가 기존 이름으로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권력 집단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대기업의 모습을 갖춘 한화그룹은 2023년 3월 파리의 퐁피두 센터와 2025년 63빌딩에 퐁피두 센터 서울 1호점을 개관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하면서, 서울의 저명한 미술관을 소유한 다른 한국 재벌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퐁피두 센터 한화 서울'로 명명된 이 미술관은 한화문화재단이 운영할 예정이며, 한화 계열사로부터 600억 원을 지원받고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5분의 1 이상을 출자할 예정이다. KCAP는 지난 8월 BDS코리아, 전쟁없는세상, 피스모모, 흥사단, BDS일본지부, 저항하는 미술학생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아 한화그룹이 이스라엘 집단학살과의 거래 중단에 동의할 때까지 한화그룹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글로벌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청원에는 현재 1,000명 이상의 서명이 모였고, 전세계 3,000명의 서명을 달성할 때까지 계속되며, 달성 시 한화그룹에 제출될 예정이다.
한화는 예술을 이용해 대량 학살에 연루된 사실을 은폐한 수많은 한국 기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부터 베니스 비엔날레까지 세계적인 예술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어왔지만, 현대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택을 훔치고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건설 크레인을 공급해 비난을 받아왔다. 지난 9월, 서울시는 두 개의 주요 국제 미술 컨벤션인 기아프 서울( Kiaf Seoul)과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을 연계한 두 번째 '코리아 아트 위크' 개최를 앞두고 서울을 글로벌 '아트 시티'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미술 딜러, 바이어, 제작자들이 서울로 몰려들던 시기에 KCAP가 작성한 '2024 코리아 아트 페스티벌: 반제노사이드 및 연대 가이드'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기 시작했다. 이 가이드는 이스라엘 대량학살에 키아프와 프리즈의 여러 후원사들이 어떻게 공모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달 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의 친팔레스타인 단체들은 이스라엘 문화부, 마이모니데스 재단(the Maimonides Fund) 및 이스라엘 외교 정책의 이익을 옹호하는 기관들이 자금을 지원하는 이스라엘 영화 <개와 사람에 관하여>의 감독과의 대화를 저지하는 시위로 '절반의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광주비엔날레가 'CDA 홀론관'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국가관을 설치한 것에 KCAP, BDS 코리아, 녹색당은 이 전시관을 위한 자금이 이스라엘 중앙정부가 아닌 홀론시에서 제공된다는 근거를 들어 반대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홀론관의 후원사 중 하나인 미국-이스라엘 제조 기업 스트라타시스는 글로벌 군산복합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종 청소된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은 아무 제재 없이 벌어졌다.
불꽃축제가 열린 날,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자유 팔레스타인을 위한 시위가 종로 보신각에서 열렸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약 1년 만에 열린 이번 시위에는 1,500명이 모여 일제 식민지 침략 당시 파괴된 후 재건된 보신각에서 출발해 명동까지 행진했다. 탕후루 노점과 화장품 가게가 즐비한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인 명동, 그리고 미국 대사관과 이스라엘 대사관을 지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저쪽'의 일이 아니라 한국에도 깊이 얽혀 있음을 노골적으로 일깨웠다. 팔레스타인의 사례는 고립된 비극이 아니라, 이른바 세계 테러와의 전쟁에서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한 한국의 오랜 억압된 역사, 즉 과거와 한국의 현대적 경제적 성공을 조건으로 하는 식민주의와 전후 개입의 유산에 대한 인식의 유예로 형성된 현재, 그리고 대량 학살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세계에 묻는 미래로 이어지는 열쇠와도 같은 사건이다.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청원에 서명하자. 관련 정치인들이 평화를 모르는 일이 없도록 하자. 죽음을 통해 이윤을 낳는 기업을 보이콧하자.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제국의 완전한 파괴를 지금, 그리고 영원히 지켜보기만 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자. 이웃과 함께 집단의 힘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자.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미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조직화의 득실을 목격한 앞 세대 조직가들과 이야기하자. 여러분의 노동력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하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보다 긴 싸움을 함께하고 있다. 올해 초 베니스 비엔날레의 이스라엘관에 항의하며 작성된 '대량학살 반대 예술 연합'의 팔레스타인관 선언문을 인용하자면, 팔레스타인은 미래의 세계다.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하고 있다.
(*한국어 번역: 가연/피스모모)*You can also read S.M. Downer's article in English, HERE.
/SM 도우너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글을 쓰고 연구하며 산다. 미국학 연구자로서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주의, 기억 및 문화를 다루는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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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교육 ‘평화’특강을 하며 느끼는 점들! - 미얀마어/한국어 통번역사 강선우님의 이야기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민아웅 흘라잉의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앙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문민정부를 너무도 쉽게 쫓아냈고 미얀마는 또 다시 군부독재의 과거로 돌아갔다. 70여년의 지난한 군부독재를 경험한 미얀마의 시민들은 쿠데타 초기부터 저항운동을 전개했고 해외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 역시 반쿠데타 운동을 지지했으며 나 또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의 각종 사회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시작으로 가두집회,‘초중고 세계시민교육 학교 강연’, 시사주간지 기고, TV 패널 출연 등 미얀마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자리라면 마다 않고 찾아다녔고 그것이 벌써 4년째 계속되고 있다.
활동의 대부분은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얀마 현황을 팩트 체크하며 그것을 전달하고 개인적 소견을 보태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 중에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초중고 세계시민교육’을 주제로 특강을 할 때면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특강 때 내가 맡은 부분은 세계시민교육(SDGs)의 여러 주제 중에 문화 다양성 항목이 있는데, 이중에서 소주제인 ‘평화’부분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반쿠데타 운동의 전개 상황 및 군부의 잔인무도한 만행을 알림과 동시에 과거에 있었던 군부 쿠데타와 70여년의 군부독재의 일상, 그리고 그때마다 일어났던 시민저항운동을 비교 설명하는 것이다. 특강 마무리 부분에선 세계시민의 연대 필요성과 그 연대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Q&A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거의 미얀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의 학생들에게 나도 경험하지 못한 만행들, 수시로 죽음을 목도하는 비극적인 쿠데타 상황, 70여년의 군부독재의 참상 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엔 나에게 할여 된 2시간은 짧게만 느껴진다.
세계시민교육은 사실상 초중고 학생들에게 필수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인 데다 설명에 필요한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낯설고 생소한 단어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그것들을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할 때가 있다. ‘평화’, ‘전쟁’, ‘피난민’, ‘혁명’, ‘쿠데타’등은 얼마전까진 나에게도 피상적인 단어들이었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쟁이라는 악몽 같은 폭력성, 혁명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희생의 현장과 그 비참함, 초토화 된 주민들의 참혹한 삶, 이런 것들을 설명해야만 하는 나도, 듣고 있는 학생도 모두 받아들이기 벅찬 현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또 다시 연장되고 있는 군부독재에 맞서 ‘국가 반란군 소탕전’ 혹은 ‘정당방위전’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미얀마 시민들의 혁명 상황을 가볍게 전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고마운 것은 짧은 특강이지만 몇몇의 학생들이 군부독재를 경험한 조부모나 부모님들을 통해 선행학습을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때다. ‘아 한국과 미얀마가 공유하는 사건과 진실이 있었구나’ 하는 그런 유대감은 자연스러웠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과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 체제로의 성공적인 안착을 경험한 한국은 군부독재가 여전하고 그것이 일상이 된 동남아시아인의 입장에선 부러운 모범국가다. 특히 현재화된 군부 쿠데타를 겪고 있는 미얀마로서는 배우고 쫓아가야 할 미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중고등학교의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은 그 위상에 맞는 필수 불가결한 커리큘럼이고 더욱 더 확대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린 시절,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길러진 인식과 가치관은 물리적 거리가 있지만 같은 아시아권에 살아가고 있고, 국경을 넘어 글로벌 시대에 맞게 우리 모두가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미얀마 시민 혁명’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전쟁’ 등에 공감하고 자연스럽게 깊은 연대감을 형성해갈 것으로 본다.
한국의 수많은 정치적인 문제부터 아침에 눈 뜨고 인터넷을 클릭하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슈들, 정보들 속에서 쿠데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이제 우리 미얀마의 상황은 인간 본연의 ‘공감력’에 맡길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공감력은 어린 시절의 경험치와 학습을 통해 충분히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세계시민교육’의 취지이고 목표일 것이다. 우리는 교실에서 때론 광장에서 국내외적 사건과 주제를 놓고 대화 하고, 깊이 성찰하고, 인내심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 또한 녹록치 않다. 진학을 위한 학업만으로 벅찬 공부, 학업 외 특별활동 시간의 부족, 미얀마와 같은 내용의 무게감으로 인한 수용하는 학생들의 한계성 등 수많은 제약이 있다. 그런 제약들이 실재하지만 국제화되고 다문화가 되어가는 한국 사회 안에서 우리의 세계시민교육은 중단없이 가야할 것이고, 그것만이 지구촌 미래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현재 39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쿠데타로 인해 아직 한번도 미얀마에 가보지 못했고, 아이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또한 만나보지 못했다. 임신한 채로 맞은 쿠데타 였기에 뱃속에 아이를 데리고 집회 현장을 동분서주하며 태교는 자연스럽게 반쿠데타 운동이 전부였다. 아이를 배에 넣고 다니며 각오한 것이 있다면 ‘역사 앞에 부끄러운 엄마는 되지 말자’였다. 장기화된 쿠데타 국면에 가끔 지쳐서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다짐을 되새기며 포기하지 않고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또 다른 고민들이 생겼다. 바로 한국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백인 이외 민족과 국가들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 문제다. 특히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일면처럼 느껴진다. 다문화 사회로 변모해가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문제이고, 이 역시 시간과 시행착오의 경험 속에서 나아지리라 믿지만, 걱정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스스로에게 또 다짐하고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엄마의 나라가 비록 비참한 꼴이 됐지만 아빠의 나라 한국과 함께 미얀마를 자신의 일부로 느끼며 많은 친구들 속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생각하는 아이로 컸으면 한다. 또한 반쪽의 정체성을 결코 잃지 않고 한국과 미얀마 두 문화를 공유하며 세계시민으로서 인류의 많은 문제들에 공감하고 행동하는 그런 아이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웨 노에 흐닌 쏘 (강선우) 웨 노에 흐닌 쏘, 한국 이름은 강선우. 미얀마 만달레이 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2009년도에 한국정부초청장학생으로 연세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으로 석박사를 했다. 현재 박사 수료하고 한국어 미얀마어 통번역을 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 반쿠데타 저항운동을 하기 위해 각종 언론 인터뷰, 기고문을 쓰고 미얀마 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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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여움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어떤 귀여움 앞에서 멈칫
‘귀여운 게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이 시대의 속담이 되었다고나 할까. 세상이 유머와 다정함, 순수함 같은 것을 점점 잃어가는 요즘, ‘귀여운 것’은 사람들이 절대 잃고 싶지 않은 마지막 ‘숨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도 기계처럼 강하고 똑똑하고 효율이 뛰어나야 살아남는 시대, 기계처럼 반듯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볼펜 꼭지에, 열쇠고리에, 손톱에 그려 넣은 그림에, 누구도 보지 않는 잠옷에, 마치 참을 수 없이 삐져나온 듯한 크고 작은 귀여움을 간직하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귀여운 건 못 잃어.’
나도 귀여운 걸 못 참고 못 잃는 사람으로서, 귀여운 건 거의 옳고 이롭다고 생각한다. 사랑스러워야 귀엽기 때문에 상대를 향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게다가 귀엽다는 생각은 너그럽다. 서투름과 실수도 안아주고 사랑스럽게 여겨주는 말이니까. 나는 첫 출산을 시작으로 쉼 없는 육아와 함께 따라온 쉴 새 없는 귀여움을 누리며 꽤 ‘평화’라는 말 가까이 살고 있다고 느꼈다. 아이의 존재는 평화 아닌 것을 떠올리기 힘들게 사랑과 평화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떤 ‘귀여움’ 앞에서 멈칫 걸음을 멈췄다. 결코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가 태어난 지 8개월 무렵, 아기가 들을 만한 수업이 있을까 하고 인근에서 열리는 문화센터 강좌를 검색하던 중 이런 강좌를 발견했다. <오감통합놀이 - 군인놀이> 이 어색한 단어 조합에도 놀랐는데, 사실 더 충격받았던 것은 이 강좌를 들을 수 있는 나이였다. 생후 4개월부터 25개월의 아기들이 이 강좌의 대상이었다.
이제 고작 8개월인 우리 아이도 그랬지만, 4개월이라면 이제 막 100일을 지나 뒤집기를 시도하거나 빨라도 배밀이를 하고 있을 아기가 문화센터에서 ‘군인놀이’ 강좌를 수강한다니. 그 모습을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떤 내용으로 진행될까 궁금했지만 수강신청을 하지는 않았다.
그 귀여움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몇 개월 뒤, 동네 지인의 SNS에 마침 이 수업의 사진 후기가 올라왔다. 그때 지인의 아기는 6개월이었는데, 사진 속 아기는 군복 코스튬을 입고 앉아 있었다. 아기의 주변에는 총 모양의 플라스틱 장난감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었다. 정말 궁금했지만, 지인에게는 차마 군인놀이 수업을 하는 동안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장난감 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을 꺼내 볼 용기가 안 났다. 대화의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자꾸 그런 걸 진지하게 파고들고 물어보면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안 들까 봐 참았던 것 같다.
나는 그 후로 계속 왜 이 귀여움이 괜찮지 않은지 스스로 설명할 말을 찾고 싶었다. 이건 그저 놀이일 뿐이고 진짜도 아닌 가짜니까, 마냥 귀엽게 볼 수는 없는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순 없었다. 이 귀여움은 괜찮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군인 놀이’를 검색하면 유아에게 행해지는 수많은 군대 컨셉의 유아교육 프로그램과 행사 후기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초등학생 병영 체험 캠프는 오래전부터 들어봤지만, 아예 어린이집에서도 행사업체를 통해 교실을 군대나 전쟁터처럼 꾸며 체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사진 속 아이들은 ‘충성!’을 하고 있거나, 엎드려서 총을 겨누고 있거나, 내무반처럼 꾸며진 곳에 군용 모포를 덮고 있기도 했다.
‘오감 통합 발달’이니 ‘직업 체험’이니 하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어른들의 욕심을 채우는 인형 놀이에 그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만 1세 미만 영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더욱 그렇다. 유아 문화 강좌나 교육 프로그램이 이처럼 주로 겉으로 보이는 것 중심으로 기획되고, 그에 비해 소재와 내용을 아이들과 함께할 때 ‘어떻게’ 다룰 것인지 신중히 고민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 결과 아이들은 인형처럼 수동적인 존재, 납작한 ‘대상’이 되고 만다. 어른들은 적어도 이것이 아이들의 발달이나 교육을 위한 것인 척 포장하는 거짓말은 멈춰야 한다.
평화의 정신을 흡수하기를!
마리아 몬테소리는 만 6세 이하의 유아들이 ‘흡수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시기 환경에 놓여진 것들을 이용해 정신의 근육을 만든다고 했다. 이 시간을 통과한 아이들에겐 어떤 정신이 남을까? 아이들이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느끼고 흡수하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 늘 최우선시 되었으면 한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을 위해서나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폭력적인 문화가 아니라 평화의 지혜를 흡수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말이다. 적이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법을 배우게 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이해하는 법을 흡수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너그러운 마음씨와 사려 깊은 태도를 흡수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아무리 해도 기쁜 고민이다.
‘사이좋게 지내라’ 가르치면서 무기 체험을 부추기는 어른들
지난 2023년 10월, 역대급 규모라고 홍보되었던 서울 ADEX에 갔다가 우연히 본 장면들도 내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무기 전시회인 그곳에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관람객이 아주 많다는 것부터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곳에서 어느 부모는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이에게 “더 진짜같이 해야지!”라며 군인다운 사격 포즈를 강요해 사진을 찍기도 했고, 전시장 곳곳에서는 부모들이 먼저 무기 체험을 적극 부추기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유아들에게 군인놀이를 시켜주겠다는 것도 이처럼 무기 체험, 전쟁 체험을 어른들이 나서서 부추기는 꼴이다.
우리는 전쟁을 떠올릴 때, 이상하리만큼 훌륭하고 웅장하다는 느낌만을 표지로 기억한다. 전쟁 영웅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은 오랜 시간 주입되어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다. 그 표지를 넘겨보면 소박하게 아름다운 우리 삶의 모든 장면이 핏빛으로 물들고, 생생히 웃던 이웃들이 거리에 시체가 되어 누워있고, 온 동네가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차는 끔찍한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어쩐 일인지 그런 이야기를 전쟁의 표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놀이가 가능한 걸까?
만약 지금 우리나라에서, 옆 동네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면 전쟁이 놀이가 될 때, 귀엽고 재미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일어나고 있지만 그게 우리나라가 아니라면, 우리 동네가 아니라면 아이들의 전쟁놀이는 귀엽고 재미있을까? 아이들이 점점 더 진짜 같은 무기 모형으로 더 진짜 같은 군인 흉내를 내면서 논다면, 자라면서도 계속 그렇게 놀고자 한다면, 아무도 그 놀이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심지어 어른들이 멋있다며 부추긴다면? 그 놀이가 끝내 진짜 현실에서 재현되지는 않을지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내 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사달라고 하면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지 미리 그 대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무기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발된 무시무시한 도구라고, 전쟁은 상대를 힘으로 때려부수고 죽이며 싸우는 일이라고, 사람답지 못한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폭력행위라고. 지금 어린이들이 들고 있는 장난감 총, 칼이 비록 진짜는 아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폭력에 익숙해지게 하고 상대를 향한 냉소와 경멸을 자라게 한다는 인식이 보편상식이 되기를 꿈꾼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다 내 생각과 같을 수는 없어. 친구는 나랑 다를 수 있어.’, ‘친구를, 사람을 아프게 하면 안 돼.’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가르친다. 그런데 어째서 군대의 폭력은 괜찮을까? 어째서 훌륭하고 대단한 어른들이 잔뜩 모인 ‘국가’씩이나 되어서 상대를 아프게 하고, 파괴해서 이기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의아할 법도 하다.
익숙한 것도 다시 보자!평화의 속삭임에 춤추는 교육을 위해서라면
언어의 변화가 정신의 변화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뚝, 조용히 해.’, ‘혼난다. 그만.’, ‘말 안들어?’처럼 짧고 무서운 명령과 협박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면 마치 아이처럼 흠칫 놀라곤 한다.
그보다는 나은 버전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선 아기가 울 때 어른들이 “아이고 누가 그랬어! 우리 XX이 누가 그랬어!” 하면서 탓할 대상을 찾는다. 그러면서 아기는 울음을 그친다. 때로 어른들은 울음의 원인이 된 사람이나 사물을 “때찌!”하며 대신 응징해 주기도 한다. 나도 이런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랐지만, 이 사소한 장면조차 반복해서 마주하니 불편하게 느껴졌다.
‘누가 그런지 중요한 상황도 아닌데 왜 자꾸 누가 그랬는지 찾지?’, ‘그냥 서러운 마음, 놀란 마음을 달래주기만 하면 안 되나?’ 그게 우리도 모르게 응징과 복수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고 하면 비약일까? 다만 난 아이를 빨리 달래기 위해 그렇게 단순한 방법을 쓰는 것이 아이에게 최선의 도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사소한 것으로도 고민을 거듭하며 주변을 피곤하게 하진 않을까 미안한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랑의 힘을 더욱 굳게 믿으며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아마 계속 묻는 일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이거 괜찮은 걸까?’, ‘이거 당연한 걸까?’, ‘예전엔 몰라서 그랬지만, 이제 더 좋은 방법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평화의 속삭임에 귀를 쫑긋 세우고 평화의 리듬에 맞추어 나비처럼 나풀나풀, 지렁이처럼 느릿느릿, 콩처럼 콩콩콩, 쌀처럼 쌀쌀쌀 신나게 웃기게 귀엽게 춤추며 살아가고 싶다. 기후와 정치와 농업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절망으로 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평화에의 의지를 굽힐 수가 없다. 우리 귀여운 아이들의 맑고 환한 웃음을 보라.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지켜야 할 평화의 표지가 바로 이 얼굴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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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지리산을 품은 산청에서 다정한 이웃들과 많이 웃으며 산다.어린이, 농촌, 평화, 교육에 대해 늘 생각한다.엄마로 태어난 지 3년차로, 두 아이와 함께 날마다 새롭게 세상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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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티를 입은 어린이
로카티가 뭐냐구요? 아마도 길을 오가며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가슴팍에는 “R.O.K.A”가, 왼쪽 소매에는 태극기가, 등에는 큰 글씨로 “KOREA ARMY”가 새겨져 있는 (주로 검은색이 제일 흔한) 반팔 티셔츠죠. 인터넷을 찾아보니 최소 2019년부터는 이미 유행이 시작된 듯합니다. 젊은 남성들이 주로 입고 다닐 땐 소위 ‘깔깔이’처럼 군대에서 입던 편한 옷 제대 후에도 그냥 입는다는 느낌이었죠. 그러다 언젠가부턴 같은 또래의 여성들도, 나아가 조금 더 어린 중고등학생들까지도 이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된 것 같았죠. 물론 통기성이 좋다든지, 빨래 후에 잘 마른다든지 하는 기능적인 칭찬도 들어보았고요. 비슷한 디자인의 로카 후리스(플리스) 집업도 겨울이 되면 종종 눈에 띄곤 했습니다. 처음엔 PX에서나 판매하는 사제 군용 물품이었던 것이, 언제부턴가는 인터넷 어디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흔한 아이템이 된 겁니다. 온라인에는 PX 제품을 선물 받은 후기나 인터넷 구입 후기, 심지어 업체로부터 제품을 협찬받은 광고성 후기도 적지 않게 보입니다.
얼마 전, 한 열한 살 어린이가 이 ‘ROKA’ 옷을 상하의 세트로 입고 나타나서는 제게 자랑을 했더랬어요. 아빠가 새로 사주셨는데, 사람들이 많이 입는 그 인기 있는 옷이라면서요. 입어보니 너무 시원하고 멋있다면서 잔뜩 신이 나서 조잘거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종 짓궂을 때가 있습니다. 이어질 상황을 조금은 예상하면서 “거기에 써진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알아?”하고 물었죠. 어린이는 입은 옷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저를 보고는 뭐냐고 되물었죠. 저는 ‘ROKA’를 풀어서 써주면서 이건 ‘군대’를 뜻하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어요. 역시나, 조금 전까지 신나있던 어린이는 조금 덜 신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열한 살 어린이는 그 무엇보다도 너프건(장난감 총)을 제일 좋아했던 일고여덟 살에도 군대에 가는 것만큼은 무서워했던 남자 어린이거든요.
물론 어린이는 금세 다시 ‘아빠가 사준 맘에 드는 선물’에 기분 좋은 어린이로 돌아왔습니다. 흔들리던 눈동자와 끝이 흐려진 말은 다행히도 잠깐이었어요. 그렇지만 어린이의 머릿속에서 군대나 군인은 마냥 좋아하기 어려운 무언가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사실 어린이는 그동안 종종 제게 묻곤 했습니다. 어떤 나라는 왜 전쟁을 시작했는지,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전쟁은 어떤 것인지, 군인은 무엇인지 같은,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들을요. 꼭 무언가를 묻지 않더라도 어린이는 자기가 본 재미있고 흥미로운 혹은 무서운 이야기들을 제게 나누어주기도 했어요. 여러 번의 대화가 쌓이고 쌓이면서 저는 어린이가 들어왔을, 그리고 접해왔을 전쟁과 군대의 모습들을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조금 더 어렸을 적 어린이는 너프건을 정말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장난감 상자에 제 몸만큼이나 커다란 ‘멋진’ 총들이 가득했어요. 그때만 해도 장난감의 세계에 무지했던 저는 이 어린이를 통해 장난감의 세계가 얼마나 ‘고도화’ 되어있는지, 얼마나 ‘진짜같은’ 무기를 추구하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비싼지도 알게 됐죠. 어린이는 새로운 총이 생길 때마다 이번 총은 탄창을 채우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탄환을 얼마나 많이 넣을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연발이 가능한지 같은 이 총의 ‘멋진’ 점들을 제게 설명해 주곤 했어요. <귀멸의 칼날>이 유행하던 무렵에는 플라스틱부터 대나무까지 온갖 종류의 ‘멋진’ 칼들도 등장했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검술을 따라 하거나 칼춤에 가까운 움직임을 몸소 보여주기도 여러 번이었죠. 이 작은 어린이의 세계에 수많은 ‘멋진’ 것들이 상대를 다치게 하고 죽이는 무기들을 원본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는 동시에 알았습니다. 남을 다치게 하거나 무엇이든 죽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를요. 그래서 열심히 탄창을 채우다 말고도 짓궂은 제가 “그걸로 누구 쏠 거야?” 물으면 어린이는 놀라서 손사래를 쳤던 겁니다. 이 어린이는 어쩌다 어깨 한 번만 잘못 부딪혀도 화들짝 놀라서 ‘미안해요’를 내뱉는 선하고 바른 어린이였어요. 남에게 나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남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고, 남과 싸워도 안 되고, 남을 때려도 안 된다는, 어른들은 쉽게 모른 척하는 사람의 도리를 잘 알았으니까요. (비록 장난감이더라도) ‘무기’를 좋아하면서, 폭력과 힘의 논리에서는 가장 멀리 서 있었습니다.
그런 어린이는 요즘 들어 고민투성입니다. 점차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구들 사이에 생겨나는 힘의 질서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듯해요. 힘이 세거나 덩치가 커서, 목소리가 커서, 성격이 거칠어서, 여러 이유로 다른 친구들을 압도하는 친구를 보게 된 겁니다. 가끔은 그 친구들이 무섭거나 두렵다고 느끼면서도 또 그런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요. 교실에서의 에피소드를 말해줄 때면, 어린이는 몇몇 친구들의 행동이 과하다고 토로하면서도 어딘가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함께 털어놓아요.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어린이의 마음에 생채기가 늘어났고요. 어떨 때는 자신이 속상했던 경험을 말하다가, 또 그렇게 자기를 속상하게 만든 친구들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대신 변명하기도 합니다.
어린이의 혼란에는 폭력과 힘, 위계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녹아있는 듯합니다. 싸우지도 말고, 때리지도 말고, 다치게 하지도 말라다가, 맞고 오지도 말고, 맞느니 차라리 때리라든가, 지고 오는 꼴은 보이지 말라는 식인 것이죠. 그러다 보니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수는 없고, 강자의 위세에 반기를 들기도 어렵습니다. 평화는 좋고 전쟁은 나쁜 거라면서, 전쟁이 난다면 절대 이겨야만 합니다. TV에서 유튜브에서 전쟁의 소식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어디에선가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고 있지만 내가 사는 세상만큼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이고, 그러면서도 폭력의 이미지는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어린이는 TV도 유튜브도 익숙하니까요.
ROKA의 뜻을 들은 어린이는 군대에 간 자신을 상상했습니다. 머뭇거리는 것이 당연하죠. 어린이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나중에 크면 (싫어도) 군대를 가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군대는 싫은 곳, 무서운 곳이라고 여기게 됐습니다. 동시에 ‘모름지기 진짜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라는 말도 함께 들었죠. 군대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군대는 안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냐는 체념 섞인 말을 꺼낼 때도 있었습니다. 만화, 애니, 영화에 나오는 무기들은 갖고 싶고 써보고 싶은 멋진 장난감이지만, 그건 장난감일 뿐입니다. 정말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두렵죠. 그런데 군인은 적을 죽여서 전쟁에 승리해야 하는 사람이고요. 이 어찌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로카티를 입은 어린이가 ‘ROKA’의 뜻을 알게 되더라도 멈칫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날은 올 수 있을까요?
/김엘림언론정보학과 북한학에 발을 담그고 미디어, 사회, 젠더, 통일, 평화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화를 더 배워보겠다며 시작한 국제정치학 공부 중에 전쟁과 젠더의 교차에 눈길이 머무르면서, 6.25 전쟁기 여성의 전쟁 경험을 연구했다.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 연구소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웹진 <다양성+Asia>에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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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페이지 도시재생혁신지구,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육동한 춘천시장은 춘천의 반환 미군기지 캠프페이지를 ‘도시재생혁신지구(이하 혁신지구)’로 개발하고자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지난해 9월 해당 지구가 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되었다고 알렸는데요. 이에 올해 6월 7일에는 캠프페이지 ‘개발안’을 국토부에 제출했습니다. 혁신지구 선정 결과는 8월 중 발표될 예정입니다.
지난 글에서 밝힌 것처럼, 반환된 캠프페이지 부지의 활용을 두고 오랜 기간 다양한 결정들이 오갔는데요. 육동한 시장은 캠프페이지를 시민복합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에 시민들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모아졌음에도 첨단복합산업단지로 개발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춘천 시민들과 시민사회, 시의회가 문제를 제기했는데요. 시의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것과 더불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개발 사업이라는 사실도 문제의 한 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오염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혁신지구 사업에 대한 반대가 일자, 춘천시는 국토부 심사를 앞두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성이 생겼고요. 7월 13일~ 18일 약 6일 동안 19세 이상 춘천 시민 1,0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를 거치고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득 과정이나 합의를 도출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더슬래시의 공개질의에 응답했던 육동한 당시 춘천시 시장 후보자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정의당 윤민섭 춘천시의원(이하 윤 의원)은 더슬래시와의 유선 인터뷰에서 설문조사 설계 전반에 정당성이 부족하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혁신지구 신청부터 시민 공청회는 물론 의회 의견 수렴 과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국토부 발표시기가 되어서 설문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국토부에 구두로 발표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윤 의원은 설문 문항 또한 혁신지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취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짚어냈는데요.
“혁신지구 사업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하여 포장하였고,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과 우려에 대해서는 단 한 문장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혁신지구 개발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공원 조성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설명도 들어가 있지 않아요.”
시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분석 또한 춘천시의 편향된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는데요. 결과만 보면 혁신지구 개발에 춘천시민 76%가 ‘찬성’했다고 드러났지만, 문항별 결과를 살펴보면 ‘찬성’의 의미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윤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혁신지구 사업 자체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응답이 47.7%로 절반에 가깝게”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춘천시가 복합거점 조성 사업에 대한 찬성 비율이 78.5%로 높다고 밝힌 청년층(19~50세)에서, 오히려 사업 자체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답변이 55.1%로 평균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업은 잘 모르겠으나, 설문조사에는 긍정적으로 답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죠.
소양동과 근화동 주민자치회와 이통장협의회 등 캠프페이지 인근 주민들은 “개발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며 캠프페이지 개발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설문 결과, 해당 지역(구도심)에서 ‘사업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평균 (9.8%)보다 높게(12.9%) 나왔습니다. 윤 의원은 근화동 주민들을 비롯한 이통장협의체를 대상으로 시에서 청사진만 제시하는 방식으로 개발안을 설명하여 실제 주민들의 의견과 다르게 표출된 것이 아니겠냐고 분석했습니다.
윤 의원은 개발에 따른 다른 문제점들도 짚었습니다. 우선 시민의 노력으로 되찾은 캠프페이지 부지를 다음 세대를 위해 역할할 수 있는 시민의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현재의 개발 계획은 부지를 ‘팔아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춘천시나 캠프페이지 인근 주민들에 이익이 돌아올 지도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인데요. 춘천시가 국토부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춘천시 한 해 예산인 1조 6천억원을 훨씬 웃도는 약 4조원을 혁신지구에 투자하여, 부지 분양과 매각 등을 통해 5조원의 수익을 창출할 계획입니다. 1조원을 개발 이익으로 환수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1순위가 주택도시기금, 2순위가 민간출자자, 3순위가 춘천시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죠. 세계적으로 금융과 건설업계가 경직된 상황에 건설 자재비가 인상된다면 투자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는 위험도 있어서, 개발이익 환수가 불투명해 질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윤 의원은 개발 사업 자체가 빚을 떠안고 시작해야 하는 구조여서 경제적인 위험 부담 또한 매우 크다고 말했습니다.
“춘천시는 혁신지구 개발에 공공기금을 출원하여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것이라 설명했지만, 여기에는 1조가 넘는 공공기금을 해마다 2% 이자를 붙여 20년간 갚아야 하는 상황이 따릅니다. 더욱이 6천억 가량은 민간에서 빌려와야 하는 금액인데, 이는 연 6% 이자로 20년간 상환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계산하자면 1년에 600억을 갚아야 하고, 다시 환산하자면 하루에 1억에서 2억원을 갚아야 하는 것이 되는데, 춘천시에서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윤 의원은 이번 캠프페이지 혁신지구 사업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알려 낸 만큼, 의원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을 시민들과 빠르게 공유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다짐을 보탰습니다. 캠프페이지를 둘러 싼 결정들이 시민들에게 골고루 전달되지 않는 일은, 반환되었으나 여전히 반환되지 못한 캠프페이지 땅의 처지와도 닮았습니다. 20년이 넘게 멈춰 있는 캠프페이지에는 모두를 위한 결정과 소통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춘천시와 강원일보는 오는 8월 19일에 ‘도시재생혁신지구 시민토론회’를 열겠다고 했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모두를 위한 결정과 소통이 가능할까요? 일말의 기대를 담아봅니다.
/가연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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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미래’에도 끝나지 않은 산유국의 꿈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2024년 대왕고래 프로젝트, 1976년 영일만 석유 소동, 1851년 소설 ‘모비딕(Moby Dick)’
지금 한반도 해역은, 협정 기한이 도래하는 제주도 남쪽의 한일공동개발구역(7광구),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일컬어지는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8광구, 6-1광구)의 석유·가스 개발계획으로 해양 유전 자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특히 대통령의 첫 국정브리핑에 느닷없이 등장한 시대착오적인 산유국론은 48년 전 이미 같은 장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장면을 소환시켰다. 1976년과 2024년의 이 두 장면은 마치 오마주처럼 매우 닮아 있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Voltaire)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다.”란 말이 이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듯했다.
그리고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1851년 출간된 소설 <모비딕>을 떠오르게 했다. 이 소설은 1820년 11월 20일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포경선 에식스호가 커다란 향유고래에 받혀 침몰한 사건을 바탕으로, 선원이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더해 창작된 것이다. 당시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근대로 접어들면서 기름의 수요가 계속 증가했지만, 석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석탄으로는 충분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때 고래기름이 대중화되면서 포경 산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특히 18세기부터 최상의 품질을 가진 기름을 얻을 수 있는 향유고래가 집중적으로 포획되었다. 향유고래의 머리에서 나오는 경랍은 품질 좋은 양초의 원료로 주목받아 높은 가격에 팔렸다. 향유고래로 인생 역전을 노리던 소설 속 선원들은 오늘날 산유국의 꿈으로 기대에 부풀어 있는 대한민국 상황과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동해 석유 탐사 현황>
결론적으로, 두 이야기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1976년 발견된 기름은 원유가 아닌 정유로 밝혀지면서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고, 소설에서는 거대한 흰 향유고래 모비딕을 향한 집념이 헛된 꿈처럼 파멸로 끝나고 만다. 그렇다면 2024년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서로 다른 미래, 꿈, 기회, 가치
2023년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에서 과학자들은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도착한 미래’라고 설명한다. 이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대응이 필요한 현재의 문제로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19세기 석유가 발견되면서 포경 산업은 이내 사양산업이 되었지만, 지금은 석유와 가스가 사양산업임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산유국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포스트 오일(Post-oil) 시대로 전환해야 하는 지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부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4년 동해 가스전으로 우리나라는 95번째 산유국이 되었지만, 2021년 모두 고갈되었다. 산유국의 자리를 다시 이어가고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동해에 매장된 석유와 가스의 가치를 최대로 환산했을 때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할 것이라고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셈법이다. 설사 시추에 성공해 2035년에 본격적으로 생산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유럽연합(EU)이 그해부터 전기차 외의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석유의 가치는 하락할 것이며, 상품성도 지금만큼 높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바라볼 필요도 없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세계적으로 화석연료를 줄이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 5천억 원의 시추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시추가 성공하더라도 실제 생산까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실패할 경우 엄청난 매몰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막대한 재정을 재생에너지와 같은 지속 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분야에 투입하는 것이 누가 봐도 더 합리적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의사 결정은 언론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경로 의존적인 관성 때문일까, 아니면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혹은 상상력의 부재에 기인한 것일까.
커먼즈의 가치 재구성: 해양보호구역(Marine Protected Area; MPA)
북한의 석탄(화석연료)을 채굴하지 않고 땅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 경제적·환경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강조하면서, 커먼즈로서 그 가치를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한 연구위원의 발언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여전히 지구의 자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한 예로, 친환경 사업으로 분류되는 바이오산업의 바이오(Bio)는 원래 생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의 한 기업이 바이오산업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면서, 생물학적 연구나 생명공학과 관련된 다양한 산업을 아우르는 용어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오의 원래 의미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지극히 인간 중심주의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자원화하는 행위로, 대표적인 예가 자원 외교이다. 자원 외교는 해외 자원개발을 의미하며, 사실상 이는 개도국과 자연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또 다른 형태의 식민주의와 다름없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자원 채굴은 계속되고, 고려되고 있다.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의 경우에도 시기에 대한 쟁점은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그대로 두자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이는 시추로 인한 바다 생태계 파괴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인간의 오만함을 버리지 않는 한 기후위기 해결은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다크 생태학(Dark Ecology)의 입장에 동의하며, 다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통해 이들과 교류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 로빈 월 키머러의 책 <향모를 땋으며>에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는 지구로부터 계속적으로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태도 전환이 요구된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지구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는 ‘도넛 경제(Doughnut Economics) 실험이 암스테르담, 브뤼셀, 오스틴을 비롯한 여러 도시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해양 관련해서도 고무적인 움직임이 있다. 2023년 9월에 타결된 국가관할권 이원지역 해양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가능이용(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BBNJ) 협정이 그것이다. 유엔 BBNJ 협약은 공해에 서식하는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해양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기 위한 국제 협약이다. 정부 간 회의가 2018년부터 다섯 차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국가가 해양 보전보다는 해양 유전자 자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함에 따라 조약 체결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논의 끝에 타결되어 2030년까지 공해를 포함한 전 세계 바다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어획량, 항로, 심해 광물 채굴 등의 활동을 제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된다면 전 세계 바다의 61%를 차지하는 공해는 천연 탄소 흡수원으로서 지구의 탄소 순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해양을 자원화가 아닌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커머닝(Commoning)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필요한 때이다. 이러한 접근이 공해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영해에도 적극 확대·적용되기 위해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지연기후적응 리빙랩 연구사업단 연구원, 콜렉티브 '조목조목' 일원.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연구와 예술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지자체, 기업, 시민 각 수준에서의 기후적응대책 및 전략을 연구하며, 특히 리빙랩 방법론에 집중하고 있다.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공연, 워크숍, 전시를 꾸준히 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에너지_보이지 않는 언어>, <가덕도를 아십니까>, <미래의 실험실>, <기후언어사전> 등이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실질적인 적응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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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합니다 - 기후・에너지 운동과 주거권 운동이 만나야 하는 이유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2023년 1월 말,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용산구 동자동 9-15번지 쪽방 건물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곳곳에 고드름이 매달린 꽁꽁 언 건물의 얼음 계단을 위태롭게 내려오는 쪽방 주민의 사진이, 한 언론에 보도된 직후 취재 경쟁이 붙었다.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난방은 어떻게 하는지? 에너지 바우처는 받는지?…. 차가운 철제 난간을 붙들고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 쪽방 주민들에게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당시 소위 ‘난방비 폭탄’ 이슈와 꽁꽁 언 쪽방 이미지가 맞물리면서, 에너지 빈곤층에 주목하며 에너지 바우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와 언론의 제안이 줄이었다. 정부와 지자체도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비용 지원과 요금 감면 대책을 앞다투어 발표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 선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합니다”라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에너지 비용 지원이 쪽방의 꽁꽁 언 냉기도, 여름철 폭염의 열기도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개별 방에서 난방 조절이나 에너지 사용이 불가능한 쪽방의 물리적 구조와 에너지 사용에 관한 통제권이 없는 주민들에게 에너지 바우처는 무용지물과 같았다. 좁고 낡아 단열 성능이 떨어지고 부엌이나 화장실 같은 필수 설비가 없거나 부족한 쪽방의 열악함에 대해, 단열 시공과 같은 수선이나 에너지 비용 지원이 온전한 처방이 되지 못한다. 일 예로, 수년 전 쪽방에 단열재를 보강해주는 에너지효율화사업이 있었는데, 사업의 만족도에 관한 질문에 “방이 더 좁아졌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1.5평 내외의 좁은 방에 8cm 두께의 단열재를 보강했으니, 단열 체감보다 좁아진 답답함이 더 다가오는 체감이었다.
대통령실 앞에서 에너지 바우처 반납 퍼포먼스를 한 주민들은 “에너지 바우처 말고, 내놔라 공공임대!”를 외쳤다. 열악한 주거의 조건에서 더위와 추위를 피할 길은, 에너지 비용 지원이 아니라 에너지 사용을 적게 하고도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주거’가 답이라는 것이다. 특히, 동자동의 경우 2021년 2월 5일, 정부에서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선이주 선순환의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고, 쪽방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도 이웃들 모두와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하는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서울시 시장과 대통령이 바뀌면서 공공주택사업의 첫 단계인 지구 지정조차 추진하지 않고 있다. 민간개발을 원하는 소유주들-대부분이 외지 소유주–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멈춰진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주민들에게 희망고문이 되어가고 있는 사이, 여름이 되자 폭염을 알리는 언론 보도의 장으로, 얼음물 등을 나눠주는 정치인과 기업의 시혜적 봉사의 장으로 오늘도 쪽방촌이 이용되고 있다.
기후위기 불평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쪽방촌이 주목되면서, 쪽방 주민들과 ‘기후정의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중에 한 주민은 “지구를 망친 건, 에어컨 빵빵 틀고 큰 차 타고 다닌 사람들인데, 왜 피해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놓을 공간도 없는 쪽방주민들이 당해야 하냐?”라고 되물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쪽방 주민의 물음은, 기후위기가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도심 내 위치한 쪽방촌은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기온이 오를수록 빌딩에서 뿜어내는 에어컨 실외기 열기가 쪽방촌을 열섬으로 뒤덮어 달군다. 단열에 취약한 구조와 빌딩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여름철 쪽방촌 지붕의 표면 온도는 아파트 외벽온도의 2배가 넘어 65도에 이르기도 했다. 주거불평등이 낳은 취약 거처인 쪽방은 기후불평등을 대면하면서 주민들을 이중의 위험에 내몰고 있다.
기후위기 불평등이 주거불평등과 연결되는 문제는 쪽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시원, 옥탑, 반지하, 노후주택 등 다양한 취약 거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2년 전 8월, 우리는 반지하 폭우참사를 겪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지역적 차이가 있을 뿐 다르게 내리지 않을 텐데, 그 결과는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모두에게 내린 평등한 빗물은 불평등한 구조에 따라 가장 아래로부터 차올라, 가난한 이웃들을 삶을 덮쳤다.반지하 폭우참사 이후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반지하를 없애겠다.”라는 기조하에, 재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이었다. 반지하 밀집지의 역에 재개발구역 지정의 가점을 부여해 빠른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피해는 반지하 세입자가 당했는데 지원은 개발이익을 원하는 소유주들과 건설사에 해주는 꼴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역전 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해법이,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축출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택 부분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추진하는 주택 개조와 개발사업이, 집값과 전월세 가격을 높여 기후-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임대료에 대한 규제가 강한 독일 베를린시의 최근 임대료 상승의 원인 중 하나도 기후-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택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리모델링할 경우 기존의 임대료 규제의 예외가 될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한 부동산 기업들이 낡은 주택을 사들여 대수선 후 높은 임대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저들은 언제든지 이윤추구의 논리로 역전시키려 한다. 그래서 기후‘정의’가 필요하다.
기후정의와 주거정의의 핵심에 공공임대주택이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과 세입자들을 주거권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기후・에너지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지난 도시개발의 역사는 주택문제의 해법을 소유를 정점으로 제시하며 개발을 통한 공급을 부추겨 왔다. 이를 위해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며 연간 50만 호 내외로 주택을 공급해 왔지만, 공급된 주택은 다주택자들의 집을 늘렸고, 주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소유를 정점으로 하는 분양주택 중심의 주택공급 정책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주거 불평등과 기후위기, 에너지 불평등을 키웠다. 건설 부문이 차지하는 탄소배출이 높고, 고층 건물의 에너지 사용이 독점적이라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며, 더 심각한 것은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착취한다는 것에 있다. 도심의 높게 솟은 마천루 빌딩과 아파트 단지 개발은 강제 철거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도심에서 내쫓고, 저렴 주택을 없애며 고급화시켰다. 한밤에도 대낮같이 밝히는 도심 빌딩 숲의 불빛은 밀양 등 농촌 지역의 수탈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도심 내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기존 주택을 공공이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 정책 확대가 필요하다. 가난한 도시민들이 살고있는 도심 생활권 곳곳에 소규모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기후-젠트리피케이션에도 대응하는 주거정의 전략이고, 열효율이 낮은 기존 노후주택들을 탄소중립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기후정의와 에너지정의 전략이다. 기후・에너지 운동과 주거권 운동이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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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주거권 운동을 하고 있다. 개발과 주거권, 세입자 권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함께 행동을 조직하는 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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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페이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약속들 - 춘천 반환 미군기지 이야기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캠프페이지를 ‘문화와 첨단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조성하겠다”
육동한 춘천시장의 말입니다. 육 시장은 지난 6월 4일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혁신지구 후보지로 선정된 캠프페이지에 숲 조성과 함께 ‘관광(숙박)·첨단산업·주거 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재선에 성공한 허영(춘천갑) 의원은 지난 4월 16일 ‘춘천시와 함께 캠프페이지를 국가도시재생 혁신지구로 조성하겠다’며 ‘주거 단지와 기업 유치 등 2조 원 규모의 개발에 방점’을 두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사람은 강원도민과 춘천시민이 선출한 의사결정권자들인데요. 캠프페이지와 관련한 결정에 시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표하고 있을까요?
더슬래시는 춘천의 반환된 미군기지 ‘캠프페이지’를 4년째 주목하고 있습니다. 반환되었지만 ‘모두의 것’이 되지 못하는 땅에 평화와 커먼즈의 시각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요. 캠프페이지는 여전히 도마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할 뿐, 광활한 부지는 오염된 채 남아있습니다. 춘천시가 캠프페이지 부지의 용도를 두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수렴하여 계획을 수립했다가도, 정권이 바뀌면서 기존의 계획이 번복되는 일이 수차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육동한 춘천시장과 허영 국회의원도 거기에 한몫했습니다.
춘천시는 2016년에 1,217억원을 투입하여 캠프페이지의 소유권을 이전받은 후 시민 공론화를 거쳐 ‘생태적인 복합 시민 문화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약 2년 뒤인 2019년에 해당 계획을 구조물이 여럿 들어간 수정안으로 임의 변경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에는 캠프페이지 부지를 ‘미세먼지차단숲’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죠. 하지만 폐유가 들어있는 드럼통 30여 개가 발견되는 등 부실 정화 문제가 대두되어 부지 개발 계획은 다시금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허영 의원의 발의로 오염 정화를 위한 민간검증단이 조성되며 캠프페이지의 온전한 반환이 순항하는 듯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작스럽게 강원도 도청사의 신축부지로 확정되면서 다시금 논란의 땅이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허영 의원의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청사 신축 계획은 강원도지사와 춘천시장 선거와 함께 전면 재검토되었고, 도청사 신축부지는 춘천시 동내면으로 확정되었습니다. 2023년 9월에는 육동한 춘천시장이 국토교통부의 국가시범지구(도시재생 혁신지구) 후보지로 캠프페이지가 선정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캠프페이지를 시민공원이 아닌 첨단복합지구로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높였습니다.
더슬래시와 피스모모는 2022년, 춘천시장 후보들을 대상으로 캠프페이지의 완전한 오염 정화와 시민의 결정에 따른 부지 활용에 대해 공개질의한 바 있는데요. 이에 당시 춘천시장 후보였던 육동한 현 춘천시장은 “캠프페이지를 온전하게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해 환경정화 작업을 철저히 추진할 것”이라며, “오염복구비용문제는 국방부 등 정부 관련 부처와 상의해 풀어나가도록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춘천시가 공시한 ‘2023년 세입·세출 예산서(제1권 일반회계)’의 재정운용 방향에는 캠프페이지와 관련한 어떤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캠프페이지 부지의 활용과 관련하여서는 “공원화하는 것에 많은 시민들이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추가 계획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를 거치고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득 과정이나 합의를 도출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 춘천시청에는 도시재생과 주무관 1인이 ‘구)캠프페이지 리모델링 조성사업 업무 추진’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뿐, 캠프페이지와 관련한 별도의 담당 부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춘천시는 지난 6월 7일, 캠프페이지 ‘개발안’이 담긴 ‘도시재생혁신지구’ 신청서를 국토부에 제출했습니다. 격화하고 있는 시민들의 찬반 목소리를 뒤로 하고요.
한편, 캠프페이지의 정화 작업은 완료되지 않고 있는데요. 지난 5월에는 춘천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고 있는 캠프페이지 부지 내 ‘봄내체육관’ 주변 흙에서도 오염된 기름(석유계총탄화수소)이 기준치의 20배가 넘게 발견되었습니다. 캠프페이지 부지의 온전한 정화를 통한 반환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할 때 인데요. 이에 더슬래시는 지난 5월 3일 허영 국회의원에 공개 질의서를 발송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허영 의원은 21대 국회의원 재임 당시 캠프페이지 오염 조사를 위한 민간검증단을 제안하고 대표 발의했는데요. 2020년 춘천시민연대와의 간담회에서는 “환경부와 국방부의 부실한 조사 및 정화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재검증과 온전한 복원을 위한 입법 등 강력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 “캠프페이지 부지는 시민들의 쉼터이자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야 할 공간인 만큼,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최대치까지 밀어붙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허영 의원의 민간검증단 구성안을 담은 「토양환경보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1년이 넘게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또한 허영 의원은 시민들의 의견이 축적된 캠프페이지 부지의 시민공원 조성 계획을 무시한 채, 도청사 신축 이전 건립을 제안하는가 하면, 이제는 캠프페이지 ‘개발안’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더슬래시의 공개 질의와 8차례가 넘는 답변 요청에 허영 의원은 끝내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캠프페이지의 온전한 복원이라는 공약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이번 도시재생혁신지구 개발 추진으로 캠프페이지는 또다시 갈등의 한 가운데에 놓였습니다. 캠프페이지가 위치한 근화동의 통장협의회 50여 명은 ‘캠프페이지 개발 구상’을 환영한다며, 시민단체는 ‘발목을 잡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반면, 춘천시민연대는 100여 차례에 달하는 시민 의견 수렴을 통해 확정된 캠프페이지의 시민공원 계획을 시가 일방적으로 번복한 것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항의했습니다. 더불어 2023년 9월, 개발 계획 추진을 발표하며 시민 공론화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해 5월 29일에서야 공청회를 진행하여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춘천시의회 또한 2조 원에 달하는 개발 예산에 문제를 제기하며 2023 회계연도 예·결산안 전체를 부결했습니다.
일부 의사결정권자들에 의해 캠프페이지의 미래가 요동치는 동안, 온전한 복원과 오염 정화,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에 대한 논의 또한 까마득하게 밀려있습니다. ‘발목을 잡지 말라’는 근화동 통장협의회의 목소리는 캠프페이지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로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는 요청은 결국 시민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번복되지 않길 바란다는 요구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축적해 온 시민들의 목소리가 단절되지 않고, 오롯이 절차와 결정에 담길 방법을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때 입니다.
/가연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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