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벽돌을 쌓으며 -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1> 서울고등법원(2심)은 2023년 11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그 유족인 원고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주장한 국가면제를 배척한 후, 일본국의 불법성과 책임을 인정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원고 승소)하였습니다. 여기서 ‘국가면제’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인데, 쉽게 말해 ‘국내 법원이 외국 국가에 대한 소송에 관하여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일본 정부는 위 법리 뒤에 숨어 우리 법원의 재판절차에 일체 응하지 않았습니다. 1심 법원이었던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국가면제가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원고들 청구를 기각했습니다(원고 패소) 그런 상황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위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 청구를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하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은 위 판결을 통해 일본국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80여년 만에 온전한 시민권을 취득한 것입니다.   <2> 이번 승소판결은 세 가지 측면에서 국제인권법의 발전 과정에 있어 기념비적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일본 정부가 그동안 ‘연행의 강제성’을 부인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가져왔는데, 서울고등법원은 일본 육군에서 당시 작성한 공문서들을 증거로 채택하여 일본 정부의 각 기관이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에 체계적으로 개입하였으며, 일본군이 위안소의 운영을 통제하고 감독한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국내법원을 통해 일본제국과 일본군의 책임이 명백히 인정된 것입니다. 또한,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개인별 ‘강제연행 과정’과 ‘위안부 생활’, ‘국내로 돌아와 한평생 겪어야 했던 여러 고통’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피해자들이 이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을 명확히 확인하였습니다. 끝으로, 법원은 국가면제라는 법리를 배제함으로써 전쟁범죄와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그 누구도 면죄부를 누리를 수 없음을 국제법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3>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린 가장 큰 이유는 국가면제 법리의 적용여부에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다른 나라의 법원들은 국가면제를 무조건적으로 적용해 보편적 인권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역시 2012년 ‘무력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타국의 주권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이 현재의 국제관습법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은 ‘법정지국 영토(당시 조선의 영토를 말합니다)에서 그 국민에게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를 묻지 않고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관습법이 현재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울러, 서울고등법원은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2012년 ICJ 결정 이후, 국가면제 적용을 부정한 최근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국가면제와 관련된 국제법 체계가 이미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국가 중심의 국제법 질서가 인권 중심의,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4> 이번 판결은 세계적으로도 국가면제를 극복한 몇 안 되는 사례입니다. 위 승소판결이 있기까지 여러 법원과 각국의 입법례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권 중심, 개인의 재판청구권 중심의 판결례를 쌓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고등법원 판결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전향적인 판단을 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ICJ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이탈리아인 ‘페리니’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관련하여, 독일 측 국가면제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면제를 배척한 이탈리아 대법원의 판단을 부정하였습니다. ICJ는 당시 국가면제 적용의 근거로 든 사례로 총 8개 국가의 법원 판결이었는데, 이 중 브라질(1심) 법원 판결을 포함하여 6개국의 법원이 국가면제를 적용하였고, 국가면제를 배척한 것은 2개국(이탈리아, 그리스)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국가면제 적용 사례가 더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5> 몇 년 지난 후 국가면제의 적용을 인정했던 브라질(1심) 법원의 판결은 2021년, 2022년 브라질 최고재판소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1심에서 인정된 독일 측의 국가면제 주장을 배척한 것인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1차 소송에 대해 국가면제를 배척하고 원고들 승소 판결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2차 소송의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와는 다른 재판부에서 판단하였습니다) 사례를 인용하여 국가면제를 배척한 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폭격으로 침몰한 민간선박에 탔던 피해자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였습니다. 위 브라질 판결이 선고된 직후, 우크라이나 대법원도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과 전투 중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면제 법리를 배척하여 러시아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위 브라질 최고재판소 판결과 우크라이나 대법원의 판결은 다시 2차 소송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가면제를 배척하는 또 하나의 실행사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선고 후,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18명의 유족은 2024년 4월 21일 위 판결을 참고하여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또다시 영향을 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판결들은 인권 중심의 국제법, 국제인권법이 각국 법원의 판례를 통해 도약하고 진일보하고 있는 상황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6>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고 해서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금 지급은 아직까지 요원하기만 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금전 지급과 상관없이 국가 폭력이나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무력 분쟁 상황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 없고, 뒤로 숨을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통해 새롭게 벽돌을 하나 쌓은 것입니다.   <7> 포르투갈의 마르셀루 대통령은 2024년 4월 24일, ‘1534년부터 1822년까지 브라질에 대해 식민지 자원 약탈, 원주민 학살, 노예 매매 등 식민 지배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 쌓여온 하나하나의 벽돌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과 같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간다면, 지금의 한일 관계 뿐 아니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가자지구 분쟁에도 변화와 평화의 물결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양성우법부법인 지향이라는 작은 로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민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대리인단, 민변 10.29 이태원참사 대응 T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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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는 존재들의 지도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존재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야스쿠니, 뉴스로만 듣던 그 곳에 가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3월 말, 평화교육에 관심을 가지신 일본 분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동료와 도쿄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중 하루를 스터티투어로 계획했는데, 오전에는 야스쿠니의 전쟁박물관인 류슈칸(ゆうしゅうかん)을, 오후에는 ‘액티브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박물관(WAM)’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야스쿠니역에 내려 계단을 오르니, 큰 나무들이 좌우로 늘어선 대로가 펼쳐졌다. 멀리 거대한 토리이(鳥居,とりい)*가 보였다. 4월 초의 도쿄는 벚꽃이 한창 피었다 흩어지느라 바쁜 계절이었는데, 신사 앞 마당에도 벚나무가 꽤 많았다. 신사 앞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과 벚나무 아래 사진찍느라 바쁜 사람들 사이를 지나 전쟁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대동아공영권의 역사를 전시하던 공간 초입에 적혀있는 문장부터 마음에 얹혔다. 사진없이 기억에 의존한 기록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외국선박들이 계속해서 아시아 지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이 떨치고 일어났다’는 설명으로 전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시아를 위해 일어난 일본의 군대는 서구에 맞서 아시아를 지켰는가? 누가 누구로부터 누구를 지켰다는 말이지? 류슈칸은 로비를 포함하여 딱 두 공간에서만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옆에 붙어있는 아시아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점이 곳곳에 찍혀 있는 지도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의 기지가 있던 지역들을 표시해둔 것이었는데, 아시아 전역에 걸쳐 수 많은 빨간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나는 그보다 더 많은 빨간 점들이 찍힌 지도를 마주하게 되었다. 액티브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박물관(WAM),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소의 위치를 표시해둔 지도였다.      WAM의 활동가 한 분이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내게 한글로 된 전시자료집을 꺼내주셨다. “내버려진 조선인 위안부"라는 주제로 열렸던 2006년의 전시기록이었다. 전시기록에는 아시아 전 지역에 강제로 배치되었던 수많은 '위안부'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철수하는 일본군들 뒤에 남겨진 존재들, 일본군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미군의 '위안부'가 되기도 했고, 연합군의 포로로 수용되기도 했던 이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기록들 중에 배봉기님의 사진을 보았다.    배봉기,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1991년 김학순님의 증언 이전에 배봉기님이 계셨다. 1914년 9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배봉기님은 스물아홉살이던 1944년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는 조선인 남성 두 사람의 제안을 따라 길을 나섰다. 사시사철 맛있는 과일이 지천이라던 곳은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의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 곳에서 배봉기님은 아키코라 불리며, 낮에는 일본군의 식사를 해주고, 저녁이면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1972년 오키나와는 미군의 손에서 일본의 손으로 넘어갔고, 1975년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체류와 관련한 법적 지위를 재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배봉기님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로 오키나와에 왔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특별체류의 자격을 얻었다. 임경화(2020)는  그의 논문에서 “이로써 배봉기는 30년 만에 국가에 등록”되었다고 기록한다.** 의자를 가져다 배봉기님의 사진 앞에 앉았다. 배봉기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슬프면서도 그 슬픔을 넘어서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는데, 배봉기님의 삶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따라왔다. 그러다 문득, 뮤리엘 루카이저의 시가 떠올랐다. “What would happen if one woman told the truth about her life? The world would split open.(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세계는 폭발해 버릴 것이다.)”  전쟁의 한가운데 강제로 던져진 존재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폐허에 버려진 존재들. ‘버려짐'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감히 그 ‘버려짐'을 헤아릴 수 있는가? 나에게는 그것을 헤아릴 수 있는 역량도, 자격도 없다. 류슈칸, WAM, 벽에 걸린 같은 지도, 그러나 전혀 다른 지도. 저 지도 위의 점들이 기지가 아니라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한 사람, 한 사람이라면, 저 지도는 금세 빨간 점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저 지도위의 점들이 위안소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라면 저 지도는 온통 새빨간 점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WAM 입구의 한 쪽 벽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분들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소천하신 분들의 사진 옆에는 작고 하얀 국화가 붙어 있었는데, 안내해주신 분이 점점 더 많은 사진에 국화를 붙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혜령(2023)은 “폐허, 바다의 기억”이라는 논문에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라는 부제를 붙였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실 때마다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숫자를 헤아리는 행위가, 결국 이 생존자들을 숫자적 의미에 가두어두는 한계를 안고 있지 않느냐고. 기실, 센다는 행위로 헤아릴 수 없는 존재들을 셈하려 함으로써 그 생존자의 역사를 협소한 국가의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냐고. 이 사려깊고도 예리한 질문을 마주하며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점으로 뒤덮힌 지도를 떠올렸다.  일본제국은 그래서 결국 무엇을 지켰고 누구를 보호했는가? 연합군은 그래서 누구를 보호했고 무엇을 지켰는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것들을 지키겠다고 떨쳐 일어난 가부장의 허세, 그 허세는 어찌하여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버려짐에 대해 생각한다. 그 단어가 주는 서글픔에 대해 생각하다, 배봉기님과 수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국가가, 이 세상이 온통 자신을 버렸어도, 결코 버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전장은 어디인가? 전장은 그 지도위에 있지 않다. 버려졌으나 버려지지 않은 존재들, 그 존재들의 몸이 곧 전장이다.  버림과 버려짐. 버려졌어도 스스로 버리지 않으면 결코 버려진 것이 아니다. 증언을 통해, 또 침묵을 통해, 이 세계를 터뜨려버린 존재들의 뜨거움. 지구위의 생을 벗어두고 떠난 존재들을 기억하며, 나는 침묵 또한 언어임을 스스로에게 환기한다.    No longer speaking Listening with the whole body And with every drop of blood Overtaken by silence But this same silence is become speech With the speed of darkness. <Speed of Darkness>, Muriel Rukeyser -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 온 몸으로 들을 뿐 모든 핏방울들과 함께 침묵에 압도된다   하지만 이 동일한 침묵은 곧 ‘말’이 되었다 어둠이 가진 그 속도로    뮤리엘 루카이저, <어둠의 속도> 중에서    *토리이, 불경한 곳과 신성한 곳을 구분짓는 경계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신사 입구에 위치한다.  **임경화, 「마이너리티의 역사기록운동과 오키나와의 일본군 ‘위안부’」, <대동문화연구> 제112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2020, 494-495쪽 *** 이혜령. (2023). 폐허, 바다의 기억 -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 대중서사연구, 29(1), 141-175.        / 문아영  2012년 9월, 평화와 교육, 평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피스모모(PEACEMOMO)를 동료들과 함께 창립했다. 사회혁신의 궁극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그치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본과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하는 사람, 실천적 사유에 관심이 많으며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집에서 새촘, 우아, 레오, 라라,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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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가 막아버린 것은 - 인천 부평 캠프마켓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2020년부터 피스모모는 춘천의 반환된 미군기지 캠프페이지를 평화커먼즈의 현장으로 삼고있습니다. 캠프페이지 반환 과정과 이후 부지 사용과 얽힌 여러 의사 결정 과정들을 눈여겨보았어요. 그때 귀감이 된 사례는 인천의 반환된 미군기지 캠프마켓이었는데요. 캠프마켓은 캠프페이지와 다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인천시에 ‘캠프마켓과’라는 담당 부서도 있었고, ‘캠프마켓의 오늘&내일’이라는 시민들을 위한 정보 센터도 있었어요. 시 주도로 아카이빙 사업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한편, 시민참여위원회도 구성되어 해당 부지를 앞으로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캠프페이지가 춘천시 시정 변화에 따라 들끓었다 식었다를 반복하였고, 다시 빈 공간으로 남겨졌지요. 그 사이 캠프마켓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반환부지의 오염 물질을 정화하기 위해 부지 내에 남아 있는 일제 군수공장 ‘조병창 병원¹’ 건물을 존치해야 할지 말지 말들이 오가더니, D 구역에서도 오염 물질이 추가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더 늦기 전에 캠프마켓 한 번 다녀와야 하는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발을 떼었는데, 이미 부지는 폐쇄된 후였어요. “캠프마켓은 아마 들어갈 수가 없을 거예요. 다 펜스로 막혀있어요.” 캠프마켓 답사를 위해 더슬래시가 만난 인천녹색연합 박주희 사무처장의 말입니다. 인천녹색연합은 캠프마켓 반환과 오염 물질 정화 과정에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오염된 채 반환되고 은폐된 캠프마켓   인천 부평에 위치한 캠프마켓은 총 4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그중 C 구역(약 6천㎡)이 2019년 8월에, A, B 구역(약21만㎡)이 2019년 12월에 반환되었고, D 구역(약 23만㎡)이 2023년 12월에 반환되었습니다. 이 기지는 1939년, 일본이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던 곳에 대규모 보급창과 무기고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 말, 주한미군이 부평 군수산업단지에 제24지원사령부(Army Service Command 24, ASCOM-24)를 주둔시킨 것이 ‘미군수지원사령부(ASCOM)’, 일명 ‘애스컴 시티’로 확장되었습니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1973년부터는 애스컴 시티의 운용이 축소되어 국방부가 통제권을 넘겨 받았고요. ‘캠프마켓’은 그때부터 불린 이름입니다. 용산 미군기지의 보급 기지인 44만㎡(852,495평) 넓이의 캠프마켓에는 빵 공장과 인쇄소, 우체국, 세탁소 등 여러 시설이 있었습니다. 미군기지들은 하나 같이 ‘노른자 땅’에 위치하는데, 캠프마켓 또한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 종교시설과 관공서 등이 매우 근거리에 위치하는 부평구의 중심에 있습니다. 캠프마켓은 훈련이 주로 이루어지는 기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음이나 오염 등이 적지 않을까 추측했는데요. 오히려 주요 기지의 폐기물 처리장 역할을 했던 것은 물론 베트남전 당시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가 매립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퇴역한 주한미군 래리 앤더슨이 고엽제를 어딘가에 묻었다고 폭로한 적이 있었어요(윤상호&이정은, 2011). 그런데 캠프마켓에는 폐기물 처리장이 있으니까 여기에 [고엽제가] 묻혔을 가능성이 있겠다는 의혹을 제기했었죠.”  퇴역한 주한미군의 증언으로 지역사회가 들썩였고, 인천녹색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대책위를 꾸려 철야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2012년에 개정된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²> 시행령에 따른 기지 주변 지역의 환경 조사에 다이옥신 항목도 포함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고엽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캠프마켓 주변 지역의 표토뿐 아니라 심토에서도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는데, 전국 공단 평균치보다 24배 높은 수치였다고 합니다.  이는 인천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2015년에 공개한 보고서 <미8군과 주일미군의 위험폐기물 최소화 방안>에서 주한미군 기지의 유해 물질을 캠프마켓에서 처리했다는 사실로 이어지는데요. 1991년 4월 미 육군공병단 내 건설연구소가 외부 용역을 통해 펴낸 이 보고서에는 ‘매년 캠프 캐럴에서 발생하는 유해 쓰레기 100t이 캠프 캐럴에서 부평의 군수품재활용유통처리소(DRMO)로 옮겨져 폐기되고 있다’,‘1987~89년 3년 동안 부평DRMO에서 폴리염화비페닐 448드럼(9만ℓ)을 비롯해 각종 맹독성 물질을 처리했다³’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폴리염화비페닐을 태우면 다이옥신이 배출됩니다. “미군기지 반환 논의 과정에 한-미 공동으로 환경 조사를 했는데요. 2017년 10월,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평미군기지 A 구역에서 다이옥신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B 구역도 중금속, 유류 등으로 오염이 심각했고요. 그래서 시민사회들이 대책위를 꾸렸죠. ‘부평미군기지 맹독성폐기물 주한미군 처리촉구 대책위원회’ 이름도 길어요. 그런데도 미군 측은 SOFA의 조항을 근거로 ‘알려진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 (KISE, Known·Imminent·Substantial·Endangerment to Human health)’이 아니라며 원상복구 책임을 부인하더라고요.” 결국 인천녹색연합은 국방부에 정화 책임을 요구했고, 국방부는 2018년 전문가, 주민과 시민단체, 행정 등 13명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구성하여 다이옥신 정화방식과 정화기준 등을 마련했습니다.⁴ 캠프마켓 부지 A구역의 다이옥신 정화가 완료된 것은 2021년 11월이었습니다. 오염이 처음 발견된 지 10년 만이었어요. 하지만 B 구역 정화 과제도 아직 남아 있고, 최근 반환된 D 구역의 오염 또한 심각한 상태로 밝혀졌습니다. “D 구역의 환경 조사 및 위해성 평가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어서 환경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주한미군과 협의를 해야 된다는 이유로 계속 비공개를 해왔고요. 이미 대법원에서 다른 판례를 통해서 ‘객관적인 오염 정보는 공개해야 된다’고 수차례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환경부가 비공개 결정을 해서 행정 소송을 해서 정보를 받았습니다(인천녹색연합, 2024).” 오염 물질을 발견하고도 은폐하는 일은 반환된 미군기지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땅과 연결된 모든 존재들에게 영향을 주는 ‘오염’ 정보는 공유되지 못하고 쉽게 막혀버립니다. 애써 오염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오염의 책임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마는데요. 늘 오염 정화의 책임을 주한미군에게 요구하지만, 책임 공방을 벌이다가 국방부나 시가 정화 비용을 떠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정화가 늦어지거나, 오염이 추가로 발견되어 정화 일정이 배가되고, 공개되었던 기지가 하루아침에 폐쇄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미군 기지를 둘러싼 담벼락 앞에서 시민들의 발길은 줄곧 멈춥니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막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물리적인 ‘흐름’ 뿐만이 아닙니다. 기지를 둘러싼 ‘소통’의 흐름과 ‘기억’의 흐름 또한 막아섭니다.      캠프마켓에 대한 소통과 기억도 막힌 채 B 구역의 정화 과정에서 이곳에 위치한 ‘조병창 병원’ 건물을 존치할지 여부를 두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국방부가 정화 작업을 위해 조병창 병원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하자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는 일제 강제 노동의 역사가 담긴 건물을 일방적으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는데요. 이에 인천시는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 회의를 급작스럽게 비공개로 돌리는 등 불투명하게 대응했습니다(이종선, 2023). 결국 해당 협의회의 행정 소송으로 2023년 12월에 철거는 중단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 간의 오해도 있었습니다(김상연, 2023). “역사 관련 단체들은 조병창 건물의 역사적인 의미를 들어서 존치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셨고요. 그때 녹색연합은 정화에 좀 더 힘을 두었는데, 그것이 조병창의 역사적인 가치를 부정하거나 무조건 부셔야 된다는 식으로 곡해가 되면서, 뭔가 대립 구도가 생겨버렸어요. 시민사회가 좀 목소리를 같이 모아야 되는데 서로 싸우는 모양새가 되다 보니까 행정을 대응할 때도 한계가 생겼던 것 같아요.” 시민사회단체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직접 확인하면서 인천녹색연합은 캠프마켓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기보다, 부지의 오염을 제대로 정화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게 하천을 복원하고 숲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합니다. 캠프마켓에 얽힌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의미 있게 조율할 공론장을 디자인할 수 있을지 안타까움을 담아 고민하면서요. “원칙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공론화로 입장을 정리하기 쉽지 않겠다는 판단은 있어요. 너무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다보니까요. 이런 토양 오염이나 역사적/건축적 보전을 얘기하다 보면 논의가 길어지잖아요. 그동안 공원 조성을 오래 기다린 부분도 있고, 재산권과도 연결이 되다 보니까 다 밀어버리고 공원이나 복합 문화센터, 공공의료 기관 등 뭐든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인천시는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7일까지 인천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캠프마켓 공원조성 방향성에 대한 전화·온라인 ‘시민인식조사’를 진행한 바 있는데요. 이 인식조사를 대상으로 선정된 ‘시민참여단’ 237명은 지난 4월 14일에 진행된 숙의토론회 ‘캠프마켓 시민 대토론회’에 참여하여 캠프마켓 공원조성 방향과 공원의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숙의과정은 2023년 7월부터 구성된 ‘캠프마켓 시민공론화 추진단’이 추진하고 기획하고 있는데요(김남규, 2024). 인천시는 이 토론회에서 캠프마켓 활용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며 시민 의견을 수렴하여 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송효창, 2024). 그러나 박주희 사무처장은 이러한 공론장이 ‘이미 정해진 안을 시민공청회를 통해 공유하고 일부를 조율하는 수준’이라며, 반환된 부지를 공유지의 관점에서 학습하고 활용안을 도출하는 ‘느린 과정’을 견뎌낼 동력이 시민사회에 있는지에 대해 유보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캠프마켓을 특별하게 기억나 추억과 같은 접점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유지’의 수준으로 담론을 이끌기에는 대중적인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분석입니다. “일례로 ‘조병창 병원 건물을 지켜야 된다’고 활동을 하시는데, 지나가는 시민께서 ‘조병창이 누구야?’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토양 오염’이라고 하는 의제 자체에도 크게 관심이 없을뿐더러, 각자의 삶에 밀접하게 관련이 없는 안보나 기지 자체에 대한 관심은 더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크투어처럼 미군 기지 담벼락을 걷는 행사를 한 적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들이나 주변 거주민들만 관심을 가질 뿐, 대중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반환된 기지와 관련하여 ‘시민들과 할 수 있는 활동이 거의 없다’고도요. 그러면서 시민들의 삶과 완전히 단절되어있는 미군기지를 공감각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짚었습니다. 미군기지가 막아 버린 물리적, 심리적 단절을 넘어서 각자의 삶에 미군기지를 ‘입히는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말합니다. “2021년에 B 구역에 있는 나무들을 한번 조사했었어요(이아진, 2021). 캠프마켓 부지가 일제에 조병창으로 사용되다 미군기지로 전환 된 거니까 아마 일제 강점기 때 심어졌던 나무들, 그전부터 있었던 나무들도 있었을 텐데, 그러면 나무들의 위치에 따라서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최근에 반환된 캠프마켓 D 구역은 다른 구역보다 많은 건물들이 위치한 부지입니다. 박주희 사무처장은 D 구역에서도 유해한 오염 물질이 다량 발견된 만큼, 해당 부지를 잘 정화하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건물과 식재 등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할 필요성이 예상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시민들과 함께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남겨서 기억해야 할 건물들이 무엇인지, 보존해야 할 풍경은 무엇인지 밝혀내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80년 동안 기지가 막았던 ‘흐름’들이 되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커먼즈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정영신은 ‘2023 모모평화대학 가을학기 강의’를 통해 모두의 것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짚어낸 바 있습니다. 그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권리와 공동의 부를 늘려나가는 것, 즉, 서로를 돌보고 협력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확장해 가는 과정이 커먼즈를 생산하는 과정이자 평화를 생산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러한 갈등을 조정하는 것 또한 커먼즈와 평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포함되며, 새로운 주체가 형성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고요. 다시 말하면, 닫혀 있던 공간을 함께 돌보고 관리할 수 있는 주체가 되려면, 갈등과 분쟁이 포함된 ‘과정’을 잘 견뎌내야 한다는 것, 다양한 기억들이 각자의 삶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닫혀 있지만, 다시금 열릴 캠프마켓이 모두를 위해 열린 공간, 모두의 삶의 거취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공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¹반환된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는 일제 강점기 조병창(무기를 만드는 공장) 공간이었고, 그중 건물 존치 논란이 된 것은 일제 강점기 군수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이다. ²2006년에 제정된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의 제28조(환경오염 및 예방대책의 추진)는 다음과 같다. ① 환경부장관은 공여구역주변지역 및 반환공여구역주변지역에 대한 환경기초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여야 하며 이를 기초로 하여 환경오염 및 예방대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다만, 반환공여구역주변지역의 환경기초조사는 제12조 제5항에 따른 반환공여구역의 토양오염 등의 제거가 완료되기 전까지 실시하여야 한다. <개정 2008·3·28, 2012·2·22>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환경기초조사의 방법·시기 등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³미군은 1987~89년 3년 동안 부평미군기지 안 폐기물처리장(DRMO)에서 폴리염화비페닐 448드럼(9만ℓ)을 비롯해, 수은폐기물 10파운드, 석면 2580파운드, 배터리산 118캔, 솔벤트슬러지 82드럼, 하이포솔루션 77드럼 등 맹독성 물질을 처리했다고 기록돼 있다. 부평미군기지 안 폐기물처리장은 4년 전 폐쇄될 때까지 60년 넘게 미군부대에서 나온 특수 폐기물을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처리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출처: 김상섭. 2015) ⁴캠프마켓 A구역의 다이옥신 오염 발견에 따른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로 정부가 처음으로 다이옥신 오염 토양 정화 기준을 마련했다. 토양 오염 기준을 명시하는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 다이옥신을 오염물질로 추가하고 일부 용지의 오염 우려 기준을 최소 160피코그램(pg-TEQ/g)으로 정하는 일부 개정안이 2022년 1월 21일자로 개정되고, 2022년 7월 22일부터 시행되었다. 출처: 기획재정부. 다이옥신 토양오염기준 신설. 2022년 7월 22일 등록. 접속일 2024년 04월 20일.  https://whatsnew.moef.go.kr/me...   [참고자료] 김남규. 시민들의 공원, 캠프마켓 … 시민들의 목소리 담는다.  2024년 04월 14일 등록. 대한뉴스. 접속일 2024년 04월 20일. http://www.dhns.co.kr/news/art... 김상섭. 부평미군기지 내 맹독성폐기물 처리 확인. 2015년 05월 13일 등록. 경기신문. 접속일 2024년 04월 18일. https://www.kgnews.co.kr/news/... 김상연. 일제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제동'…법원 "해체 중단해야". 연합뉴스. 2023년 12월 20일 등록. 접속일 2024년 04월 20일. https://www.yna.co.kr/view/AKR... 김영환. 부평미군기지, 맹독성폐기물 대량 처리. 2019년 10월 19일 수정. 한겨레. 접속일 2024년 04월 18일. https://www.hani.co.kr/arti/PR... 김윤종 & 최영해. 캠프 캐럴 ‘오염모래’ 年100t씩 캠프 마켓으로 옮겨 폐기. 2011년 5월 31일 등록. 동아일보. 접속일 2024년 04년 18일. https://www.donga.com/news/Soc... 박현주. ‘캠프마켓 계기’ 다이옥신 오염 정화 기준 마련. 2021년 12월 08일. 경인일보. 접속일 2024년 04월 20일.http://www.kyeongin.com/main/v... 송효창. 인천시, 캠프마켓에 대규모 공원 조성…조병창 존치. 2024년 04월 15일 등록. 헬로TV뉴스. 접속일 2024년 04월 20일. https://news.lghellovision.net... 윤상호 & 이정은. 퇴역 주한미군 래리 앤더슨 전화인터뷰. 동아일보. 2011년 5월 27일 등록. 2024년 04월 18일 접속. https://www.donga.com/news/art... 이아진. 인천녹색연합 "캠프마켓 아름드리 나무들 보호해요". 2021년 05월 13일. 인천일보. 접속일 2024년 04월 20일. https://www.incheonilbo.com/ne... 이종선. 조병창 철거 반발에 캠프마켓 시민참여위 돌연 비공개 "불통행정". 2023년 03월 08일 등록. 접속일. 2024년 04월 20일. https://www.incheontoday.com/n... 인천녹색연합. 부평미군기지에서 드러난 다이옥신, 민관협의체로 10년 걸려 정화. 2023년 12월 19일 등록. 인천인. 접속일 2024년 04년 18일.https://www.incheonin.com/news... 인천녹색연합. [보도자료] 캠프마켓 D구역 위해성 기준 초과!. 2024년 2월 6일 등록. 접속일 2024년 04월 18일. https://greenincheon.org/?p=19... “Camp Market”. 《globalsecurity.org》. 2011년 7월 5일 등록. 접속일 2024년 04년 18일. https://www.globalsecurity.org...              글쓴이 / 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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