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출현은 지식의 습득과 전수를 기본 줄기로 하던 전통적 학습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은 1980년 이전의 규칙 기반 시스템, 그 이후 신경망과 딥러닝의 시기를 거쳐 2010년부터는 대규모 언어 모델에 따른 생성형 AI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 도구’이자 ‘똑똑한 보조교사’로 기능할 것이라 말한다. 인공지능이 학생의 학습 상황을 분석해서 교사에게 알려주면, 교사는 학생의 특성을 고려하여 맞춤지도를 할 수 있고, 학생은 자신의 흥미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하여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현장 교원들의 반발이 크다. 교원들은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중단하거나 최소한 적용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AI 디지털 교과서가 교육부의 설명과는 달리 학습자의 집중력, 사고력 등 학습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모든 학생이 디지털 단말기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기기 의존 현상, 눈 건강 악화, 디지털 중독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사용료 과금으로 인한 비용 발생, 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 문제, 학습자원의 상업화 문제 역시 반대 의견의 논거 중 하나이다.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를 쓴 조너선 하이트는 이른 나이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정신 건강 문제와 현실 세계에 대한 부적응으로 인하여 사회적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6세 이전에는 스마트 폰과 소셜 미디어의 사용을 금지’하자고 제안한다.
지금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자는 교육부와 이에 반대하는 교원들 간의 주장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도입을 강행한다는 교육부의 정책 추진 의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문제에 대한 지적이 첨예하고 맞서고 있는데, 이 문제가 이렇듯 ‘도입 vs 반대’ 의견 중 하나로 간명하게 정리될 수 있을까, 또 그 방식은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이 문제를 사고할 때 단순하게 도입과 반대를 넘어 ‘교과서’라는 제도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AI 디지털 교과서라는 구체물을 놓고 대립 양상을 보이지만, 사실 이 문제는 교육에서 기술을 활용할 때 그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이다.
이런 까닭에 생성형 AI가 선을 보인 이후 인공지능의 교육적 활용과 이에 따른 교사의 역할 변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에서 디지털 기술은 학습자 맞춤형 학습, 효율적인 학습 관리, 다양한 학습 콘텐츠 제공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동시에 윤리적 문제, 디지털 격차 심화,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 등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이 문제를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만 조명하면 정작 필요한 AI 디지털 기술의 교육적 활용 방안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사라진다. AI는 개별 학습자의 맞춤형 학습을 돕는 도구로 작동하면서 학습자의 수준, 학습 스타일, 학습 속도 등을 분석하여 개인에게 최적화된 학습 경로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고 학습자의 학습 동기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AI는 학습 데이터를 분석하여 학습자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개별 학습 진도를 관리하며,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나아가 AI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콘텐츠를 생성하고 제공하며,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학습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이런 장점이 있다는 것을 현장 교원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 교원들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을 찾아보자. 1) AI 디지털의 교육적 활용이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반드시 ‘교과서’라는 제도적 변화여야 하는가? 2) 전국의 동일 학령기 학생들이 특정 과목에서 ‘일제히’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렇게 질문을 정리해 보니, ‘교과서’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한 대립은 심화할 것 같다. 교과서와 ‘수업보조자료’는 그 역할과 위상이 다르다. 교과서는 전국의 모든 학생이 일제히 사용하는 것이며 수업보조자료는 개별 교사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사용한다. 그러므로 AI 디지털 교재의 명칭을 교과서에서 수업보조자료로 변경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교과서가 아니라면 모든 교실에서 같은 교재를, 일시에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자료의 성격을 바꾸면 비용 부담 문제, 획일적 적용에서 오는 문제, 개인정보 유출 문제, 디지털 중독 문제, 단말기 사용으로 인한 신체·정서적 문제 등을 훨씬 덜 걱정해도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AI 시대 교사전문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함양할 것인가의 문제다.
단순히 AI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기 위한 대규모 연수는 AI 시대에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는 정보화시대의 명암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디지털 사용에 따른 윤리, 과몰입 및 격차 해소 방안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 본인의 교과에 첨단 기술을 접목시킬 때 장점과 문제점, 그리고 효과적 활용 방안과 문제점 해소 방안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것을 중앙 정부 차원에서 공통 매뉴얼로 만들어 보급할 일은 아니다. 교사들의 창조성을 믿는다면 백 개의 교실에서 백 가지의 AI 디지털 활용 방안이 나올 것이다. 물론 특정 학습 주제는 여전히 서책에 담긴 내용으로만 수업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전통적 수업방식에 맞고 어떤 내용은 첨단 기술과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했을 때 효과적인지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들이다.
AI 디지털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 이점 때문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AI 기술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일제히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바탕으로 AI와 인간이 상호 작용하며 함께 성장하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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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기
전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중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을, 대학에서 예비교사를 가르쳤다. 정년을 맞아 일터를 떠난 후에는 읽고, 쓰고, 걷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자유의지를 지난 창조적 주체 간의 상호작용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사, 책을 들다>를 비롯하여 몇 권의 책을 썼다.
코멘트
3AI 기술과 AI를 활용한 교육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토론하지 않고서 'AI 교과서 도입'만을 위해 달려간다면 문제가 생길 거라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 단순히 찬성/반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공감되네요. 찬성/반대 중 어떤 의견이냐고 묻는 순간 그 사이에서의 수많은 논의거리와 스펙트럼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이름을 봤었던 기억이 있는데 캠페인즈에서 만나니까 더 반가운 느낌이에요!!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점점 다가오고 있네요! AI가 개인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고, 교사가 학생별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은 긍정적이에요. 그러나 교사분들의 우려도 이해가 갑니다.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의존하면 아이들의 집중력이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비용 부담이나 개인정보 문제도 신경 쓰이죠. 아마도 '교과서'가 아닌, 선택적 수업 보조자료로 AI를 활용한다면 반발이 줄어들 수도 있겠어요. 중요한 건 AI가 교육에서 보조 역할을 하되, 교사와 학생의 창조적 상호작용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