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작은 세계가 만드는 탈핵 탈송전탑 운동 - 밀양

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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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커먼즈의 관점에서 현실을 조망하는 대안언론, 더슬래시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전기 뒤에 숨은 것들

전기는 모두를 연결시킨다. 내 손의 핸드폰부터 지역과 지역을 잇는 철도까지 모두 전기로 작동한다. 자동차, 철강, 반도체와 같은 거대 규모의 산업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전기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톱니바퀴들 중에서 전기는 가장 중요한 축 중에 하나이다. 사람들은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동하고 소비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전기는 물이나 공기처럼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이해할 필요가 없던 이야기들을 세상으로 꺼낸 사람들이 있다. 신고리 핵발전 단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하여 건설된 76만5000볼트 송전탑를 막기 위해 싸워온 밀양 할매, 할배들, 그리고 ‘밀양의 친구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이라고 불리는 싸움을 올해로 19년 째 계속하고 있다. 송전탑은 완공되었고 전기가 흐른지도 10년이지만 한국전력과 합의하지 않고 살아가는 140여 세대의 주민들이 있다. 

치열한 싸움이었다. 치열했던 만큼 상처도 깊고 컸다. 송전선로 노선을 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설명을 듣지도 못하고, 의견을 내지도 못했던 주민들은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정확한 송전탑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송전탑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2005년 환경영향평가 주민 설명회에는 밀양 5개면 경과지 주민 21,069명 중 126명만 참여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공사를 막아서면서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을 올라 용역들과 부딪히며 공사를 막았다. 언론도, 세상도 전혀 관심이 없는 깊은 산 속에서 젊은 용역들은 늙은 노인들을 조롱했다. 모욕 속에서도 주민들은 매일 산을 올라 옷을 벗고 저항하거나, 엔진톱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으며 싸웠다. 외로운 투쟁이 계속 되었다. 2012년 1월 16일, 산외면 보라마을에 살던 이치우 어르신은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분신했다. 그렇게 밀양의 투쟁은 전국에 알려졌다. 

저항이 거세질수록 국가는 더욱 강하게 국책 사업을 밀어붙였다. 13차 공사가 시작된 2013년 10월부터 6.11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2014년 6월까지 38만 명의 경찰이 밀양 4개면 마을로 투입되었다. 경찰은 한전의 공사 자재와 차량을 원활하게 통행시키기 위해 밀양의 모든 길을 통제 했다. 한 사람에게 수십 명이 달라붙었다. 경찰 여섯 명이 사람 한 명을 들어 수십 명의 경찰이 서로 팔짱을 낀 감옥에 넣었다. 그러면 카메라가 일거수일투족 채증을 했다. 공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의 이동이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그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의 폭력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쓰러졌다. 100여 건이 넘는 응급후송이 있었다. 가족이 산 속에서 쓰러져 의식이 없는데도 얼굴조차 보러 갈 수 없게 막았다. 나는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은 그럴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밀양에서 처음 알았다. 너무 분하고 억울한 시간 속에 있다 보면 목숨까지 거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2014년 6월 11일, 경찰 2,000명이 송전탑 부지에 만든 농성장 4개를 하루 만에 철거한 날이다. 할매, 할배들은 옷을 벗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어 저항했지만 경찰은 단도와 절단기를 앞세워 농성장을 뜯고, 사람들을 끌어냈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 밀양 사람들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자 사람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무엇을 짓밟고 오는가. 

 

작은 세계를 지키는 존재들

기후위기의 시대에 에너지 전환은 뜨거운 감자다. 세계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국가들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움직이던 산업 구조를 전기화해서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11년 동안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활동가로 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마을들은 기후위기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파국을 강요 당했다는 것이다. 국가, 기업, 자본과 같은 힘이 있는 집단들에게는 값싼 전기와 안정적인 공급은 항상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그렇기에 방해가 되는 이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삭제시켜 왔다.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시골에 사는 우리도 살고, 도시에 있는 너희도 함께 살자.”라고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대답은 공익을 위한 선택이니 감수하라거나, 다수의 안녕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이었다. 말 뿐인가. 돈으로 마을을 갈라치고, 경찰의 몽둥이로 사람을 내리쳤다. 

밀집된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들, 그 어떤 동의도 없이 세워지는 초고압 송전탑 같은 에너지 부정의에 맞서는 싸움은 밀양 이전에도 있었다. 지금은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도를 가진 지역에서 발전소 유치 운동을 하는 주민들도 동네에 생기는 첫 핵발전소를 막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웠고, 전국 40,000여개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마을마다 크고 작은 싸움들을 해왔다.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전력 체제에 저항했던 작은 세계들은 끊임없이 파괴되고 위기 속에 놓였다. 전체의 위기가 아니었을 뿐이다. 마을공동체는 돈으로 산산조각 났다. 밀양의 목소리가 세상을 울릴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들이 쌓아온 투쟁의 맥락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6월 8일, 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전국 15개 지역에서 22대의 버스가 출발했다. 223개 단체, 1,500여명의 사람들이 다시 타는 밀양 희망버스에 올랐다. 첫 일정으로 5개 마을에 있는 송전탑 아래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영남루 맞은편에 모두 모여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를 열었다. 종일 많은 비가 오는 와중에도 다들 울고 웃으며 하루를 보냈다. 집회를 준비하는 입장이었지만 놀라웠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밀양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10년 전 함께 산을 지켰던 사람들과 10년 만에 밀양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 함께 탈핵 탈송전탑 운동의 자리로 모인 이유가 뭐였을까. 

6.11 행정대집행 전날 밤, 농성장에 고립된 사람들이 굶는 것이 걱정되어 밤새 김밥을 말았던 할머니들은 이번에도 밀양을 찾는 이들을 위해 밭에서 오이를 수확해 간식으로 내고, 마을 투쟁기금으로 떡을 시켰다. 밥도 못 먹고 뛰어 다니는 기획단을 위해 김밥을 말았다. 멀리서 새벽부터 오는 이들에게 꼭 밥 한 그릇을 먹여 보내자는 어른들의 말 때문에 800인분이 넘는 묵밥을 준비하게 되었다. 괴로웠던 그 날에도, 10년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주변 사람들을 다정하게 돌보는 마음이다. 8일에 거의 모든 주민들이 울었다. 그들이 흘렸던 울음은 분하고 억울해서가 아니라 반갑고 고마워서 흘린 눈물이었다. 

밀양 덕분에 만나게 된 좋은 친구들이 있다. 이번 희망버스도 그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밀양의 친구들과 펼쳐나갈 탈핵 탈송전탑 운동을 그린다.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핵진흥 정책을 펼친다.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동시에 추진한다. 우리는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며 맞설 것이다. 에너지 생산, 수송, 소비 전반의 에너지 정의를 세울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밀양 할매, 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호하게 맞서면서도 다정하게 돌보며 만들어 가볼 생각이다. 나중에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싸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작은 세계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새기며. 

 

 

 

 

 

 

 /
남어진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집행위원.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에너지 생산, 수송, 소비 전반의 걸친 부정의를 바로 잡는 탈핵 탈송전탑 운동을 동료들과 즐겁게 펼쳐보려 애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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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 몸은 가지 못하고 마음만 늘 보내며 부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이 부채감을 없애고 기여할 수 있을까요?

밀양 송전탑 문제를 들여다보면 정부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전부터 반대 의견이나 문제 제기를 묵살해왔다는 게 잘 보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문제를 바라보는 시민 사회의 시각이 기후 위기 등으로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네요. 해답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행정대집행과 같은 방식으로 강압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건 정부도 이제 알고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뉴스로 밀양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 사라져버렸네요. 작은 관심과 변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연대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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