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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왕고래 프로젝트, 1976년 영일만 석유 소동, 1851년 소설 ‘모비딕(Moby Dick)’
지금 한반도 해역은, 협정 기한이 도래하는 제주도 남쪽의 한일공동개발구역(7광구),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일컬어지는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8광구, 6-1광구)의 석유·가스 개발계획으로 해양 유전 자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특히 대통령의 첫 국정브리핑에 느닷없이 등장한 시대착오적인 산유국론은 48년 전 이미 같은 장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장면을 소환시켰다. 1976년과 2024년의 이 두 장면은 마치 오마주처럼 매우 닮아 있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Voltaire)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다.”란 말이 이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듯했다.
그리고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1851년 출간된 소설 <모비딕>을 떠오르게 했다. 이 소설은 1820년 11월 20일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포경선 에식스호가 커다란 향유고래에 받혀 침몰한 사건을 바탕으로, 선원이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더해 창작된 것이다. 당시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근대로 접어들면서 기름의 수요가 계속 증가했지만, 석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석탄으로는 충분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때 고래기름이 대중화되면서 포경 산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특히 18세기부터 최상의 품질을 가진 기름을 얻을 수 있는 향유고래가 집중적으로 포획되었다. 향유고래의 머리에서 나오는 경랍은 품질 좋은 양초의 원료로 주목받아 높은 가격에 팔렸다. 향유고래로 인생 역전을 노리던 소설 속 선원들은 오늘날 산유국의 꿈으로 기대에 부풀어 있는 대한민국 상황과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동해 석유 탐사 현황>
결론적으로, 두 이야기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1976년 발견된 기름은 원유가 아닌 정유로 밝혀지면서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고, 소설에서는 거대한 흰 향유고래 모비딕을 향한 집념이 헛된 꿈처럼 파멸로 끝나고 만다. 그렇다면 2024년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서로 다른 미래, 꿈, 기회, 가치
2023년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에서 과학자들은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도착한 미래’라고 설명한다. 이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대응이 필요한 현재의 문제로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19세기 석유가 발견되면서 포경 산업은 이내 사양산업이 되었지만, 지금은 석유와 가스가 사양산업임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산유국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포스트 오일(Post-oil) 시대로 전환해야 하는 지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부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4년 동해 가스전으로 우리나라는 95번째 산유국이 되었지만, 2021년 모두 고갈되었다. 산유국의 자리를 다시 이어가고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동해에 매장된 석유와 가스의 가치를 최대로 환산했을 때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할 것이라고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셈법이다. 설사 시추에 성공해 2035년에 본격적으로 생산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유럽연합(EU)이 그해부터 전기차 외의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석유의 가치는 하락할 것이며, 상품성도 지금만큼 높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바라볼 필요도 없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세계적으로 화석연료를 줄이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 5천억 원의 시추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시추가 성공하더라도 실제 생산까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실패할 경우 엄청난 매몰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막대한 재정을 재생에너지와 같은 지속 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분야에 투입하는 것이 누가 봐도 더 합리적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의사 결정은 언론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경로 의존적인 관성 때문일까, 아니면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혹은 상상력의 부재에 기인한 것일까.
커먼즈의 가치 재구성: 해양보호구역(Marine Protected Area; MPA)
북한의 석탄(화석연료)을 채굴하지 않고 땅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 경제적·환경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강조하면서, 커먼즈로서 그 가치를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한 연구위원의 발언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여전히 지구의 자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한 예로, 친환경 사업으로 분류되는 바이오산업의 바이오(Bio)는 원래 생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의 한 기업이 바이오산업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면서, 생물학적 연구나 생명공학과 관련된 다양한 산업을 아우르는 용어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오의 원래 의미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지극히 인간 중심주의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자원화하는 행위로, 대표적인 예가 자원 외교이다. 자원 외교는 해외 자원개발을 의미하며, 사실상 이는 개도국과 자연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또 다른 형태의 식민주의와 다름없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자원 채굴은 계속되고, 고려되고 있다. 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의 경우에도 시기에 대한 쟁점은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그대로 두자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이는 시추로 인한 바다 생태계 파괴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인간의 오만함을 버리지 않는 한 기후위기 해결은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다크 생태학(Dark Ecology)의 입장에 동의하며, 다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통해 이들과 교류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 로빈 월 키머러의 책 <향모를 땋으며>에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는 지구로부터 계속적으로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태도 전환이 요구된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지구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는 ‘도넛 경제(Doughnut Economics) 실험이 암스테르담, 브뤼셀, 오스틴을 비롯한 여러 도시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해양 관련해서도 고무적인 움직임이 있다. 2023년 9월에 타결된 국가관할권 이원지역 해양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가능이용(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BBNJ) 협정이 그것이다. 유엔 BBNJ 협약은 공해에 서식하는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해양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기 위한 국제 협약이다. 정부 간 회의가 2018년부터 다섯 차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국가가 해양 보전보다는 해양 유전자 자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함에 따라 조약 체결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논의 끝에 타결되어 2030년까지 공해를 포함한 전 세계 바다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어획량, 항로, 심해 광물 채굴 등의 활동을 제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된다면 전 세계 바다의 61%를 차지하는 공해는 천연 탄소 흡수원으로서 지구의 탄소 순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해양을 자원화가 아닌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커머닝(Commoning)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필요한 때이다. 이러한 접근이 공해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영해에도 적극 확대·적용되기 위해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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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기후적응 리빙랩 연구사업단 연구원, 콜렉티브 '조목조목' 일원.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연구와 예술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지자체, 기업, 시민 각 수준에서의 기후적응대책 및 전략을 연구하며, 특히 리빙랩 방법론에 집중하고 있다.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공연, 워크숍, 전시를 꾸준히 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에너지_보이지 않는 언어>, <가덕도를 아십니까>, <미래의 실험실>, <기후언어사전> 등이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실질적인 적응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코멘트
2한국은 대통령부터 큰 돈을 언급하며 석유 매장 가능성을 꺼냈는데요. 마지막에 나오는 BBNJ협정을 보면 한국이 얼마나 세계의 흐름에 뒤처져 있는지를 볼 수 있네요. 개발을 멈추는 게 파괴를 멈추는 것이라는 걸 언제쯤 느낄 수 있을까요.
이 이슈에 대해 정치경제적으로만 생각했는데 새로운 관점이네요.
근본적으로는 끊임없이 자원을 환경을 투입해야만 유지가 되는 자본주의가 현재 환경에 적합한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