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오케이 구글, 오늘 날씨 어때?” 하루를 시작하며, 거실에 놓여있는 기기에 말을 겁니다. 출근길에는 실시간으로 추천되는 뉴스를 보고, 오후에는 AI 자동 번역 기능을 이용해 중국 쇼핑몰 소비자 센터에 배송 문의를 합니다. 운전할 때는 자동 주행 기능을 켜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현란하게 오가던 발을 쉬기도 합니다. 작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AI 기술이 삶의 여러 영역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발견합니다.
인공지능을 수년간 연구해 온 노스사우스웨일스대 토비 월시 교수는 책 <생각하는 기계(2018)>에서 인공지능의 시작을 놀랍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식논리학의 토대를 닦은 기원적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간이 사고하고 추론하는 방식을 가시화하려는 노력이 인공지능의 근간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죠. 월시 교수는 이러한 논리학의 노력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에 와서 ‘계산의 형식(기호)’으로 표현되면서, 컴퓨터가 ‘생각’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를 제공했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기계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해 온 역사, 그리고 생각을 ‘계산’하기 위해 무던히 시도했던 역사의 줄기에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급속도로 다가온 기술, 그래서 온통 미지의 영역이며, 심지어는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인상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려 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공지능과 결합 된 미래들에는 ‘알 수 없음’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가능성이 너무 넓고 무한해서 그 결과 값이 무엇일지 전혀 예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1월의 더슬래시는 AI와 결합된 미래, 그 ‘알 수 없음’을 준비할 시간을 다룹니다. 보람, 함영기, 문아영님이 필진으로 참여해주셨어요. 먼저 노동조합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보람님은 AI가 노동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와 관리’의 측면에서 짚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분업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몰라도 되는’ 존재로 제한하고,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삼았던 시절을 소환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당신은 상위 10%입니다.” 등의 방식으로 평가받는 현실을 들며, 인공지능은 노동자를 더 ‘모르는 존재’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았는지, 평가에 반론하거나 불평등한 인식에 저항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로요. 그래서 AI로 더욱 좁아지고 불평등해질 노동의 미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힘을 비판적 교육을 통해 쌓아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누구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요.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정책을 담당했던 함영기님은 교육과 기술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최근 교육부는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는 도입하겠다며,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학습 지원 도구’이자 ‘똑똑한 보조교사’로 기능할 것이라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함영기님은 이를 “교육에서 기술을 활용할 때 그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오래된 논쟁 중 하나”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AI 교과서를 도입하냐 마냐를 놓고 대립하기보다 넓고 길게 고민할 시간을 벌자고 이야기합니다. 윤리적 문제는 없을지,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지는 않을지, 교육의 본질을 잃지는 않을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고요.
문아영님은 2024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의 책임있는 군사적 이용에 대한 고위급회의(REAIM 2024)’에 참여했던 경험을 나누며, AI가 무기와 결합하는 세계에서 안보란 무엇이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수많은 죽음을 ‘부수적 피해’로 치환하며 비통함을 지우는 시대에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음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토비 월시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점차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꾸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긍정적일 수도 아주 비극적일 수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 수 없음’이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 말입니다. 애써 알 수 없음을 알아갈 시간, 그래서 극적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멈출 수는 없더라도, 찬찬히 기억하고 차분히 결정할 여유를 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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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코멘트
3jay_kim님 오늘은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듯 빠르게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이야기하는 흐름이 거센데요. 그 이면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마지막 구절이 특히 와닿네요. AI가 우리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왔지만, 우리는 그 속도에 쫓기듯 따라가기만 하는 것 같아요. 잠시 멈춰서서 생각할 시간, 토론할 시간이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알 수 없음'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요. 🌱
지금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약간 거품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요.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엄청나게 공정하고, 정확한 이미지로 포장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비롯해서 인공지능을 유용한 도구로서 어떻게 윤리적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가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글에서 소개해주신 분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모두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하는 것들이라고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