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합니다 - 기후・에너지 운동과 주거권 운동이 만나야 하는 이유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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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말,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용산구 동자동 9-15번지 쪽방 건물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곳곳에 고드름이 매달린 꽁꽁 언 건물의 얼음 계단을 위태롭게 내려오는 쪽방 주민의 사진이, 한 언론에 보도된 직후 취재 경쟁이 붙었다.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난방은 어떻게 하는지? 에너지 바우처는 받는지?…. 차가운 철제 난간을 붙들고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 쪽방 주민들에게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당시 소위 ‘난방비 폭탄’ 이슈와 꽁꽁 언 쪽방 이미지가 맞물리면서, 에너지 빈곤층에 주목하며 에너지 바우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와 언론의 제안이 줄이었다. 정부와 지자체도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비용 지원과 요금 감면 대책을 앞다투어 발표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 선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합니다”라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에너지 비용 지원이 쪽방의 꽁꽁 언 냉기도, 여름철 폭염의 열기도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개별 방에서 난방 조절이나 에너지 사용이 불가능한 쪽방의 물리적 구조와 에너지 사용에 관한 통제권이 없는 주민들에게 에너지 바우처는 무용지물과 같았다. 좁고 낡아 단열 성능이 떨어지고 부엌이나 화장실 같은 필수 설비가 없거나 부족한 쪽방의 열악함에 대해, 단열 시공과 같은 수선이나 에너지 비용 지원이 온전한 처방이 되지 못한다. 일 예로, 수년 전 쪽방에 단열재를 보강해주는 에너지효율화사업이 있었는데, 사업의 만족도에 관한 질문에 “방이 더 좁아졌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1.5평 내외의 좁은 방에 8cm 두께의 단열재를 보강했으니, 단열 체감보다 좁아진 답답함이 더 다가오는 체감이었다.

대통령실 앞에서 에너지 바우처 반납 퍼포먼스를 한 주민들은 “에너지 바우처 말고, 내놔라 공공임대!”를 외쳤다. 열악한 주거의 조건에서 더위와 추위를 피할 길은, 에너지 비용 지원이 아니라 에너지 사용을 적게 하고도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주거’가 답이라는 것이다. 특히, 동자동의 경우 2021년 2월 5일, 정부에서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선이주 선순환의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고, 쪽방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도 이웃들 모두와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하는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서울시 시장과 대통령이 바뀌면서 공공주택사업의 첫 단계인 지구 지정조차 추진하지 않고 있다. 민간개발을 원하는 소유주들-대부분이 외지 소유주–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멈춰진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주민들에게 희망고문이 되어가고 있는 사이, 여름이 되자 폭염을 알리는 언론 보도의 장으로, 얼음물 등을 나눠주는 정치인과 기업의 시혜적 봉사의 장으로 오늘도 쪽방촌이 이용되고 있다. 

기후위기 불평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쪽방촌이 주목되면서, 쪽방 주민들과 ‘기후정의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중에 한 주민은 “지구를 망친 건, 에어컨 빵빵 틀고 큰 차 타고 다닌 사람들인데, 왜 피해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놓을 공간도 없는 쪽방주민들이 당해야 하냐?”라고 되물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쪽방 주민의 물음은, 기후위기가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도심 내 위치한 쪽방촌은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기온이 오를수록 빌딩에서 뿜어내는 에어컨 실외기 열기가 쪽방촌을 열섬으로 뒤덮어 달군다. 단열에 취약한 구조와 빌딩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여름철 쪽방촌 지붕의 표면 온도는 아파트 외벽온도의 2배가 넘어 65도에 이르기도 했다. 주거불평등이 낳은 취약 거처인 쪽방은 기후불평등을 대면하면서 주민들을 이중의 위험에 내몰고 있다.

기후위기 불평등이 주거불평등과 연결되는 문제는 쪽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시원, 옥탑, 반지하, 노후주택 등 다양한 취약 거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2년 전 8월, 우리는 반지하 폭우참사를 겪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지역적 차이가 있을 뿐 다르게 내리지 않을 텐데, 그 결과는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모두에게 내린 평등한 빗물은 불평등한 구조에 따라 가장 아래로부터 차올라, 가난한 이웃들을 삶을 덮쳤다.반지하 폭우참사 이후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반지하를 없애겠다.”라는 기조하에, 재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이었다. 반지하 밀집지의 역에 재개발구역 지정의 가점을 부여해 빠른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피해는 반지하 세입자가 당했는데 지원은 개발이익을 원하는 소유주들과 건설사에 해주는 꼴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역전 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해법이,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축출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택 부분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추진하는 주택 개조와 개발사업이, 집값과 전월세 가격을 높여 기후-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임대료에 대한 규제가 강한 독일 베를린시의 최근 임대료 상승의 원인 중 하나도 기후-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주택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리모델링할 경우 기존의 임대료 규제의 예외가 될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한 부동산 기업들이 낡은 주택을 사들여 대수선 후 높은 임대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저들은 언제든지 이윤추구의 논리로 역전시키려 한다. 그래서 기후‘정의’가 필요하다. 

기후정의와 주거정의의 핵심에 공공임대주택이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과 세입자들을 주거권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기후・에너지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지난 도시개발의 역사는 주택문제의 해법을 소유를 정점으로 제시하며 개발을 통한 공급을 부추겨 왔다. 이를 위해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며 연간 50만 호 내외로 주택을 공급해 왔지만, 공급된 주택은 다주택자들의 집을 늘렸고, 주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소유를 정점으로 하는 분양주택 중심의 주택공급 정책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주거 불평등과 기후위기, 에너지 불평등을 키웠다. 건설 부문이 차지하는 탄소배출이 높고, 고층 건물의 에너지 사용이 독점적이라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며, 더 심각한 것은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착취한다는 것에 있다. 도심의 높게 솟은 마천루 빌딩과 아파트 단지 개발은 강제 철거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도심에서 내쫓고, 저렴 주택을 없애며 고급화시켰다. 한밤에도 대낮같이 밝히는 도심 빌딩 숲의 불빛은 밀양 등 농촌 지역의 수탈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도심 내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기존 주택을 공공이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 정책 확대가 필요하다. 가난한 도시민들이 살고있는 도심 생활권 곳곳에 소규모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기후-젠트리피케이션에도 대응하는 주거정의 전략이고, 열효율이 낮은 기존 노후주택들을 탄소중립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기후정의와 에너지정의 전략이다. 기후・에너지 운동과 주거권 운동이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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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주거권 운동을 하고 있다. 개발과 주거권, 세입자 권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함께 행동을 조직하는 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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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행정으로 일관하는 이 정권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군요.

소중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에어컨 없이 습하고 더운 기운을 해결할 수 없는 요즈음, 더욱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깊이 공감해주신 것처럼, 생각들이 모여서 변화의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봉사활동 갔다가 잠시 쪽방에 들어가 본 경험이 있었는데요 정말 수요없는 공급이었겠단 생각이 드네요

기후위기 문제가 취약계층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끼친다는 걸 곧바로 느끼게 해주는 게 주거 취약층의 사례들인데요. 한국 사회는 이런 사례들을 이미 여러 차례 겪었음에도 그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후위기가 만들어낼 자연재해, 폭염, 혹한이 더 심각하게 반복될텐데요. 얼마나 많은 사례를 목격해야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일까요. 이런 주장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서 연대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연주 비회원

요즘처럼 날이 너무 덥고 홍수피해가 심한 때에는 기후위기가 불평등한 구조를 드러내고 심화시킨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냉난방기를 들일 수 없는 주거지는 정말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는 점이 마음 아프네요. 이번 9월 기후정의행진에서도 주거권에 대한 강력한 목소리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기후정의와 주거정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는 주장에 크게 공감합니다. 단순히 집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공급하고 누구를 위해 공급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주시네요.

파리 올림픽이 생각나네요. 에어컨 없는 친환경 올림픽을 한다는 이야기 이후로 돈 많은 나라들은 호텔을 따로 잡고, 돈이 없는 나라들은 에어컨이 없는 숙소에서 묵게 되는. 결국 기후위기를 초래한 나라가 책임지지 않는 구조로 이어지는..

에너지바우처가 도움이 안 될 정도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있다는 걸 몰랐네요. 에너지바우처가 분명 많은 이들에게 도움되는 지원이겠지만 '살만한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대부분 개별 방에서 난방 조절이나 에너지 사용이 불가능한 쪽방의 물리적 구조와 에너지 사용에 관한 통제권이 없는 주민들에게 에너지 바우처는 무용지물과 같았다."

“지구를 망친 건, 에어컨 빵빵 틀고 큰 차 타고 다닌 사람들인데, 왜 피해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놓을 공간도 없는 쪽방주민들이 당해야 하냐?”


기후위기 불평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외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처럼 에너지 바우처가 아니라 공공주택(특히 매입임대주택) 입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도시민들이 살고있는 도심 생활권 곳곳에 소규모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기후-젠트리피케이션에도 대응하는 주거정의 전략이고, 열효율이 낮은 기존 노후주택들을 탄소중립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기후정의와 에너지정의 전략이다."


이 문장이 핵심이네요.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운동과 주거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운동은 만나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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