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셀 수 없는 존재들의 지도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존재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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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커먼즈의 관점에서 현실을 조망하는 대안언론, 더슬래시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야스쿠니, 뉴스로만 듣던 그 곳에 가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3월 말, 평화교육에 관심을 가지신 일본 분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동료와 도쿄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중 하루를 스터티투어로 계획했는데, 오전에는 야스쿠니의 전쟁박물관인 류슈칸(ゆうしゅうかん)을, 오후에는 ‘액티브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박물관(WAM)’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야스쿠니역에 내려 계단을 오르니, 큰 나무들이 좌우로 늘어선 대로가 펼쳐졌다. 멀리 거대한 토리이(鳥居,とりい)*가 보였다. 4월 초의 도쿄는 벚꽃이 한창 피었다 흩어지느라 바쁜 계절이었는데, 신사 앞 마당에도 벚나무가 꽤 많았다. 신사 앞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과 벚나무 아래 사진찍느라 바쁜 사람들 사이를 지나 전쟁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대동아공영권의 역사를 전시하던 공간 초입에 적혀있는 문장부터 마음에 얹혔다. 사진없이 기억에 의존한 기록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외국선박들이 계속해서 아시아 지역을 침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이 떨치고 일어났다’는 설명으로 전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시아를 위해 일어난 일본의 군대는 서구에 맞서 아시아를 지켰는가? 누가 누구로부터 누구를 지켰다는 말이지? 류슈칸은 로비를 포함하여 딱 두 공간에서만 사진촬영을 허용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옆에 붙어있는 아시아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점이 곳곳에 찍혀 있는 지도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의 기지가 있던 지역들을 표시해둔 것이었는데, 아시아 전역에 걸쳐 수 많은 빨간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나는 그보다 더 많은 빨간 점들이 찍힌 지도를 마주하게 되었다. 액티브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박물관(WAM),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소의 위치를 표시해둔 지도였다. 

 

일본군 '위안소'가 표시된 지도. 출처: 액티브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박물관(WAM)

 

WAM의 활동가 한 분이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내게 한글로 된 전시자료집을 꺼내주셨다. “내버려진 조선인 위안부"라는 주제로 열렸던 2006년의 전시기록이었다. 전시기록에는 아시아 전 지역에 강제로 배치되었던 수많은 '위안부'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철수하는 일본군들 뒤에 남겨진 존재들, 일본군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미군의 '위안부'가 되기도 했고, 연합군의 포로로 수용되기도 했던 이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기록들 중에 배봉기님의 사진을 보았다.   

배봉기,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1991년 김학순님의 증언 이전에 배봉기님이 계셨다. 1914년 9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배봉기님은 스물아홉살이던 1944년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는 조선인 남성 두 사람의 제안을 따라 길을 나섰다. 사시사철 맛있는 과일이 지천이라던 곳은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의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 곳에서 배봉기님은 아키코라 불리며, 낮에는 일본군의 식사를 해주고, 저녁이면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1972년 오키나와는 미군의 손에서 일본의 손으로 넘어갔고, 1975년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체류와 관련한 법적 지위를 재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배봉기님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로 오키나와에 왔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특별체류의 자격을 얻었다. 임경화(2020)는  그의 논문에서 “이로써 배봉기는 30년 만에 국가에 등록”되었다고 기록한다.**

의자를 가져다 배봉기님의 사진 앞에 앉았다. 배봉기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슬프면서도 그 슬픔을 넘어서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는데, 배봉기님의 삶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따라왔다. 그러다 문득, 뮤리엘 루카이저의 시가 떠올랐다. “What would happen if one woman told the truth about her life? The world would split open.(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세계는 폭발해 버릴 것이다.)” 

전쟁의 한가운데 강제로 던져진 존재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폐허에 버려진 존재들. ‘버려짐'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감히 그 ‘버려짐'을 헤아릴 수 있는가? 나에게는 그것을 헤아릴 수 있는 역량도, 자격도 없다. 류슈칸, WAM, 벽에 걸린 같은 지도, 그러나 전혀 다른 지도. 저 지도 위의 점들이 기지가 아니라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한 사람, 한 사람이라면, 저 지도는 금세 빨간 점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저 지도위의 점들이 위안소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라면 저 지도는 온통 새빨간 점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WAM 입구의 한 쪽 벽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분들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소천하신 분들의 사진 옆에는 작고 하얀 국화가 붙어 있었는데, 안내해주신 분이 점점 더 많은 사진에 국화를 붙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혜령(2023)은 “폐허, 바다의 기억”이라는 논문에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라는 부제를 붙였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실 때마다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숫자를 헤아리는 행위가, 결국 이 생존자들을 숫자적 의미에 가두어두는 한계를 안고 있지 않느냐고. 기실, 센다는 행위로 헤아릴 수 없는 존재들을 셈하려 함으로써 그 생존자의 역사를 협소한 국가의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냐고. 이 사려깊고도 예리한 질문을 마주하며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점으로 뒤덮힌 지도를 떠올렸다. 

일본제국은 그래서 결국 무엇을 지켰고 누구를 보호했는가? 연합군은 그래서 누구를 보호했고 무엇을 지켰는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것들을 지키겠다고 떨쳐 일어난 가부장의 허세, 그 허세는 어찌하여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버려짐에 대해 생각한다. 그 단어가 주는 서글픔에 대해 생각하다, 배봉기님과 수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국가가, 이 세상이 온통 자신을 버렸어도, 결코 버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전장은 어디인가? 전장은 그 지도위에 있지 않다. 버려졌으나 버려지지 않은 존재들, 그 존재들의 몸이 곧 전장이다. 

버림과 버려짐. 버려졌어도 스스로 버리지 않으면 결코 버려진 것이 아니다. 증언을 통해, 또 침묵을 통해, 이 세계를 터뜨려버린 존재들의 뜨거움. 지구위의 생을 벗어두고 떠난 존재들을 기억하며, 나는 침묵 또한 언어임을 스스로에게 환기한다. 

 

No longer speaking

Listening with the whole body

And with every drop of blood

Overtaken by silence

But this same silence is become speech

With the speed of darkness.


<Speed of Darkness>, Muriel Rukeyser

-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

온 몸으로 들을 뿐

모든 핏방울들과 함께

침묵에 압도된다

 

하지만 이 동일한 침묵은 곧 ‘말’이 되었다

어둠이 가진 그 속도로

 

 뮤리엘 루카이저, <어둠의 속도> 중에서

  

*토리이, 불경한 곳과 신성한 곳을 구분짓는 경계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신사 입구에 위치한다. 

**임경화, 「마이너리티의 역사기록운동과 오키나와의 일본군 ‘위안부’」, <대동문화연구> 제112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2020, 494-495쪽

*** 이혜령. (2023). 폐허, 바다의 기억 -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 대중서사연구, 29(1), 141-175.

 

 

 

 /

문아영 

2012년 9월, 평화와 교육, 평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피스모모(PEACEMOMO)를 동료들과 함께 창립했다. 사회혁신의 궁극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그치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본과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하는 사람, 실천적 사유에 관심이 많으며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집에서 새촘, 우아, 레오, 라라,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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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운, Jay_kim, 오늘은, 생생이님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결국엔 어떻게 시간을 들여 기억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위안소가 정말 놀랄 정도로 많았네요.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 될 역사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역사를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서술하면서 사라져버리는 존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이야기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지도로 보면 작은 점인데 그 안에 한 사람의 버려진 인생이 담겨있네요.

"일본제국은 그래서 결국 무엇을 지켰고 누구를 보호했는가? 연합군은 그래서 누구를 보호했고 무엇을 지켰는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것들을 지키겠다고 떨쳐 일어난 가부장의 허세, 그 허세는 어찌하여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라는 문장을 보며 지금도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명분이 허울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안부에 대한 논의가 한때 많이 관심을 받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이슈가 내려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버려짐이라는 단어에 대해 저 역시도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