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민아웅 흘라잉의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앙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문민정부를 너무도 쉽게 쫓아냈고 미얀마는 또 다시 군부독재의 과거로 돌아갔다. 70여년의 지난한 군부독재를 경험한 미얀마의 시민들은 쿠데타 초기부터 저항운동을 전개했고 해외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 역시 반쿠데타 운동을 지지했으며 나 또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의 각종 사회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시작으로 가두집회,‘초중고 세계시민교육 학교 강연’, 시사주간지 기고, TV 패널 출연 등 미얀마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자리라면 마다 않고 찾아다녔고 그것이 벌써 4년째 계속되고 있다.
활동의 대부분은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얀마 현황을 팩트 체크하며 그것을 전달하고 개인적 소견을 보태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 중에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초중고 세계시민교육’을 주제로 특강을 할 때면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특강 때 내가 맡은 부분은 세계시민교육(SDGs)의 여러 주제 중에 문화 다양성 항목이 있는데, 이중에서 소주제인 ‘평화’부분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반쿠데타 운동의 전개 상황 및 군부의 잔인무도한 만행을 알림과 동시에 과거에 있었던 군부 쿠데타와 70여년의 군부독재의 일상, 그리고 그때마다 일어났던 시민저항운동을 비교 설명하는 것이다. 특강 마무리 부분에선 세계시민의 연대 필요성과 그 연대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Q&A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거의 미얀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의 학생들에게 나도 경험하지 못한 만행들, 수시로 죽음을 목도하는 비극적인 쿠데타 상황, 70여년의 군부독재의 참상 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엔 나에게 할여 된 2시간은 짧게만 느껴진다.
세계시민교육은 사실상 초중고 학생들에게 필수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인 데다 설명에 필요한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낯설고 생소한 단어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그것들을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할 때가 있다. ‘평화’, ‘전쟁’, ‘피난민’, ‘혁명’, ‘쿠데타’등은 얼마전까진 나에게도 피상적인 단어들이었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쟁이라는 악몽 같은 폭력성, 혁명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희생의 현장과 그 비참함, 초토화 된 주민들의 참혹한 삶, 이런 것들을 설명해야만 하는 나도, 듣고 있는 학생도 모두 받아들이기 벅찬 현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또 다시 연장되고 있는 군부독재에 맞서 ‘국가 반란군 소탕전’ 혹은 ‘정당방위전’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미얀마 시민들의 혁명 상황을 가볍게 전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고마운 것은 짧은 특강이지만 몇몇의 학생들이 군부독재를 경험한 조부모나 부모님들을 통해 선행학습을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때다. ‘아 한국과 미얀마가 공유하는 사건과 진실이 있었구나’ 하는 그런 유대감은 자연스러웠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과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 체제로의 성공적인 안착을 경험한 한국은 군부독재가 여전하고 그것이 일상이 된 동남아시아인의 입장에선 부러운 모범국가다. 특히 현재화된 군부 쿠데타를 겪고 있는 미얀마로서는 배우고 쫓아가야 할 미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중고등학교의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은 그 위상에 맞는 필수 불가결한 커리큘럼이고 더욱 더 확대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린 시절,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길러진 인식과 가치관은 물리적 거리가 있지만 같은 아시아권에 살아가고 있고, 국경을 넘어 글로벌 시대에 맞게 우리 모두가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미얀마 시민 혁명’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전쟁’ 등에 공감하고 자연스럽게 깊은 연대감을 형성해갈 것으로 본다.
한국의 수많은 정치적인 문제부터 아침에 눈 뜨고 인터넷을 클릭하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슈들, 정보들 속에서 쿠데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이제 우리 미얀마의 상황은 인간 본연의 ‘공감력’에 맡길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공감력은 어린 시절의 경험치와 학습을 통해 충분히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세계시민교육’의 취지이고 목표일 것이다. 우리는 교실에서 때론 광장에서 국내외적 사건과 주제를 놓고 대화 하고, 깊이 성찰하고, 인내심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 또한 녹록치 않다. 진학을 위한 학업만으로 벅찬 공부, 학업 외 특별활동 시간의 부족, 미얀마와 같은 내용의 무게감으로 인한 수용하는 학생들의 한계성 등 수많은 제약이 있다. 그런 제약들이 실재하지만 국제화되고 다문화가 되어가는 한국 사회 안에서 우리의 세계시민교육은 중단없이 가야할 것이고, 그것만이 지구촌 미래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현재 39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쿠데타로 인해 아직 한번도 미얀마에 가보지 못했고, 아이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또한 만나보지 못했다. 임신한 채로 맞은 쿠데타 였기에 뱃속에 아이를 데리고 집회 현장을 동분서주하며 태교는 자연스럽게 반쿠데타 운동이 전부였다. 아이를 배에 넣고 다니며 각오한 것이 있다면 ‘역사 앞에 부끄러운 엄마는 되지 말자’였다. 장기화된 쿠데타 국면에 가끔 지쳐서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다짐을 되새기며 포기하지 않고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또 다른 고민들이 생겼다. 바로 한국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백인 이외 민족과 국가들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 문제다. 특히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일면처럼 느껴진다. 다문화 사회로 변모해가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문제이고, 이 역시 시간과 시행착오의 경험 속에서 나아지리라 믿지만, 걱정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스스로에게 또 다짐하고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엄마의 나라가 비록 비참한 꼴이 됐지만 아빠의 나라 한국과 함께 미얀마를 자신의 일부로 느끼며 많은 친구들 속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생각하는 아이로 컸으면 한다. 또한 반쪽의 정체성을 결코 잃지 않고 한국과 미얀마 두 문화를 공유하며 세계시민으로서 인류의 많은 문제들에 공감하고 행동하는 그런 아이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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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 노에 흐닌 쏘 (강선우)
웨 노에 흐닌 쏘, 한국 이름은 강선우. 미얀마 만달레이 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2009년도에 한국정부초청장학생으로 연세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으로 석박사를 했다. 현재 박사 수료하고 한국어 미얀마어 통번역을 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 반쿠데타 저항운동을 하기 위해 각종 언론 인터뷰, 기고문을 쓰고 미얀마 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코멘트
2goodbookkr 님! 감사합니다:) 저도 굿북님이 쓰신 글 읽어볼게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