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학생인권조례, 군사주의에 저항하다.

2024.10.02

169
3
평화와 커먼즈의 관점에서 현실을 조망하는 대안언론, 더슬래시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가 지역마다 잇따르고 있습니다. 2010년 10월 5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로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뜨겁게 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짠 듯이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충남과 서울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었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다른 조례와 통합하는 보다 손쉬운 방식을 통해 폐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조례가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제정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너무 ‘조직적’입니다. 우기택(2016)은 한국에서 인권이 “과잉 정치화”되었다고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딱 그런 느낌이지 않나요? 학생인권조례가 무엇이길래 전국적으로 제정운동이 불붙었다가 폐지 시도 역시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도되는 걸까요?

 국가발전을 위해 개인을 소비하지 않는 교육 

한국에서 학교 교육은 힘이 셉니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 권리이고, 한국의 헌법 제31조 ①항에도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며, 권리로 명시하고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교육은 모~두다 ‘의무교육’이거든요.의무취학제도에 따라 국가가 배정한 학교에 다니고, 국가/교육청이 발령한 교사에게 교육받을 의무를 가집니다. 요컨대 학교 교육은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영역으로 많은 부분의 결정권을 국가/공급자가 가지는 반면, 학생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중략)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 국민교육헌장 중에서  

 

지금은 역사속으로 잊혀진 <국민교육헌장>은 교육이 얼마나 국가주의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쓰여져야 한다는 일종의 ‘서약문’입니다. 국민교육헌장을 학생들에게 매일 암송하게 강제했던 역사에서도 이것이 실제로 서약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에게 소비되는 개인, 소비되는 교육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1978년 6월 27일,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특히 독재체제를 합리화시키고 있는 국가주의적 교육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의 <우리의 교육지표>가 발표되었습니다.

정의롭고 정의로운 사회, 한마디로 인간다운 사회는 아직도 우리 현실에서 한갓 꿈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바로 잡고 그것을 개선할 힘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을 교육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역시 이 사회에서는 우리 교육자들의 꿈에 머물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마구 누르고, 자손대대로 물려줄 강산을 돈을 위해 함부로 오염시키는 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존중하는 교육은 나날이 찾아보기 어려워 가고 있다. (중략) 학원의 인간화와 민주화의 첫걸음으로 교육자 자신이 인간적 양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적 정열로써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배워야 한다.
- 우리의 교육지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중에서

 

<우리의 교육지표>에는 지금으로 보면 사회혁신에 참여하는 민주시민교육, 생태교육,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배우는 교육공동체 그리고 구성주의적 교육철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 내용이 발표된 후, 서명자 11명은 <우리의 교육지표>가 발표된 그날로 중앙정보부로 연행되고 대표자인 송기숙 전남대교수는 7월 4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긴급조치 9호. 독재에 반하는 집회, 시위, 언론, 출판, 청원, 공연에 대해 탄압하고 영장심사도 없이 구속할 수 있게 한, 이를 위한 병력출동도 가능하게 한 유신헌법의 조치였습니다. 교육을 바꾸려는 시도, 국가에게 통제당하고 소비되지 않겠다는 선언은 독재정권과 중앙정보부, 경찰, 군대의 폭력으로 저지되어 왔습니다. 

단 하나의 목표를 거부하는 학생인권조례 

세월이 많이 흘러 사회가 민주화되었고, 국가발전을 위해 의무를 다하라는 말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 교육은 바뀌었을까요?

글쎄요. 변화한 것이 있지만 여전히 교육은 국가발전의 중요한 영역으로 이야기됩니다. 국가를 먹여살리고 더 많은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개인의 삶의 성공에도 중요하기에 또 모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을 초기,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교문지도’였습니다. 교문 앞에 학생들을 일렬로 세우고 머리길이와 복장을 검사하고 통제하는 것을 학생인권조례가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몸,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신체적 자유를 침해하고 통제하는 군사주의적 문화를 학교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에 학생인권조례는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지금도 머리를 기르고 옷을 다양하게 입으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가 강력합니다. 세계아동권리선언과 학생인권조례에서 금지하고 있는 ‘과도한 학습’, 동의하지 않은 강제 보충수업 등에 대해서도, 학생이 싫어해도 강제로 시키는 것이 학생을 위하는 일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만연합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고 이틀 뒤에 서울의 한 중학교가 두발단속을 공문으로 계획까지 만들어 실시했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당사자의 의사도, 권리도, 방법의 정당성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습니다. 

제1조(목적)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제3조(학생인권의 보장 원칙) ① 이 조례에서 규정하는 학생인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며, 교육과 학예를 비롯한 모든 학교생활에서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② 학생의 인권은 이 조례에 열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시되어서는 아니 된다. 
- 서울학생인권조례(폐지조례공포 2024.7.4., 효력정지 결정 2024쿠1003 2024.7.23.)

놀랍게도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게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한 최초의 법입니다. 교육이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는 폭력적인 과정이 아니며, 학생이 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인해 제한받고 침해받은 권리들이 정당한 것인지 질문하고 검토하는 체계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굳이 학생인권조례로 다시 명시할 필요가 없어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는 것에 왜 그렇게 오래걸렸을까요?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내가 참여할 활동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왜 학생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을까요? 어린이와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영역은 왜 이토록이나 빈약할까요? 왜 여전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제1과제는 배움인걸까요?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배우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도, 결정 권한이 제약되는 사람에게도 인권과 행복, 자유와 참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지시와 통제,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한 침묵과 희생을 강요하는 교육 체제를 거부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정하고 혐오와 적대를 재생산하는 학교 교육의 군사주의에 저항해왔습니다. 

폐지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지키고 학생인권법을 제정하는 움직임에 함께 해주세요, 부디. 

 

참고문헌

우기택(2016). 지방자치단체 인권 관련 정책의 과제. 지방자치법연구, 49(16).

 

 

 

 

 

 

 /
진냥
인권적인 학교를 원하는 교사이자, 누구나 폭력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꿈을 꾸는 활동가이다. 경기 학생인권조례 제정 직후 청소년인권운동을 접했는데,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에는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궁금해서 학생인권조례를 추진 중인 지역을 마구 돌아다니며 토론회에 참가하고 자료를 모아 읽기 시작했다. 이후에 대구와 경남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운동에 참여하였다. 모두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이다. 올해 <학교를 바꾼 인권 선언 – 학생인권조례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공저해서 출판했고 학생인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골몰하고 있다. 

 

공유하기

goodbookkr님, 생생이님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그래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교권이 학생인권과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청소년의 인권이 후퇴하고 있네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얼마전 국군의날에 군대 퍼레이드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뭔가 점점더 군사정권 시대, 권위주의 시대 때로 돌아가는 듯한 같은데, 궤를 같이 하는 듯 하고 사회가 뭔가 점점더 뒤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역사를 기억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