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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열풍…무기로 평화를 살 수 있다는 당신에게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만약 당신이 얻는 이익이 알고보니 누군가를 해쳐서 얻는 것이라면? 내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이들이 고통 받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대체로 다수의 사람들은 꺼림칙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K-방산’ 한국산 무기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수출 계약이 확대되고 있다. 전장과 학살의 장소에서 쓰일지 모르는 무기들이 거래되고, 분쟁지역 현장에서 버젓이 한글이 써져있는 무기들이 발견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한국을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올해 수출액 2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며 대대적인 방위산업 진흥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신성장·원천기술'로 평가받는 방위산업의 또다른 이름은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죽음의 시장이다.   무기산업의 호황 그 이면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으로 위기에 처해있지만 ‘K-방산’만큼은 순항 중이다. 윤석열 정부는 방위산업을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하여 경남과 대전 등에 ‘방산 혁신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권역별·거점국 진출 전략을 세분화하는 등 수출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무기 산업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전쟁이 발발하고 세계가 더 위험해질수록 무기 산업은 호황을 맞아왔다. 각국은 폭력을 끝내기 위한 노력이 아닌 군사비를 높이고 더 많은 무기를 소유하는 일에 몰두하는 중이다. 2021년 73억 달러(약 9조 739억 원)였던 국내 무기 수출액은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73억 달러(약 23조 86억 원)로 상승했다. 지난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제2회 방산수출전략회의>에서 방위산업을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우방국과 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산업”이라고 말했다. 정말 무기로 평화를 살 수 있을까?  문제는 한국이 무기를 수출한 국가 중 다수(74%)가 분쟁 중이거나 독재 및 인권 탄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예멘 내전 곳곳에서 한국산 무기가 발견되었으며, 미얀마 민주화 시위, 스리랑카 반정부 시위, 최근 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까지 정부가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국내산 최루탄이 쓰였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약 5년 반 동안 한국이 수출한 최루탄은 473만여 발이었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이 1년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2023년 10월 이후 최소 128만 달러(약 16억 6천만 원)의 무기(총기, 탄약, 부품 등)를 수출한 것이 알려졌다. 세계에서 열 번째로 무기를 많이 파는 한국 정부가 전쟁과 분쟁의 공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최소한 인권 침해가 우려되는 국가와 분쟁 중인 국가에는 무기 수출을 금지하자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관세청은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의 무기류 수출입 통계를 비공개 처리했다. 지난 8월 유엔 무역통계에서 대한민국 무기류(총·포탄 등) 정보 공개 역시 제한되었다. 전쟁없는세상이 UN Comtrade에 질의한 결과 해당 통계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HS코드93(무기)에서 HS코드99(비할당)로 변경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세청은 무기 수출 통계를 공개해 온 것이 ‘행정상 착오’였고 비공개 처리는 ‘국익 침해 우려’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고 둘러댔지만, 과도한 감시 견제일 뿐이다. 현재 무기 수출입 통계는 열람이 제한되어 있다.  강한 국군, 국민과 함께?  <사진=대한민국 정부>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 또한 고조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부터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지금 위기의 원인이 된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자제 요청 없이 9.19 군사합의 전면 무력화, 군사분계선 인근에서의 군사훈련 실시,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재개 등의 조치만 취하고 있다. 대화채널은 중단되고, 강대강 대치만 이어지며 접경지역 인근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부터 남한 민간단체가 살포한 대북 전단은 총 49회에 달하며, 9월 북한이 날린 오물 풍선도 10회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제한이나 규제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선을 넘었다고 판단될 경우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책만 고수하고 있다. 위기를 관리하고 무력 충돌을 예방하기에도 부족한 이때, 제76회 국군의 날 시가행진<강한 국군, 국민과 함께>가 개최된다. 오는 10월 1일, 숭례문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 행진에는 탱크와 장갑차, 각종 미사일과 군사 장비들이 등장하여 대규모 병력과 함께 행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방부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안보 축제의 장’도 마련할 계획이라 밝히며 국군의 날을 임시공휴일로 추진했다. 강한 국군, 강력한 군사력이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북한을 향한 억제력 과시가 목적인 시가행진을 위해 도심에 무기가 대거 등장하고 경찰 및 소방 인력이 다수 배치된다는 사실은 달갑지 않다. 남북 관계에서 시급한 건 억제가 아닌 대화채널 복원이기 때문이다. 무기 장사 중단하라! STOP KADEX   <사진=KADEX2024> 시가행진 다음 날인 10월 2일부터 6일까지 5일간, 충남 계룡대에서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 전시회(KADEX)가 열린다. 육군협회가 주최하는 이 전시회에는 경남 창원, 대전 등을 비롯한 국내 지자체와, 국내 외 방산업체 300곳 이상이 참여할 예정이다. 참가 업체 중 세계 1위 무기 회사인 록히드 마틴은 다목적 전투기 F-35 등 주요 무기체계를 이스라엘에 수출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사프란은 이스라엘군에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사용하는 장비 등을 공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쟁지역에서 무기가 발견된 국내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위아, LIG넥스원 등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에 탄약/포탄 우회 지원 의혹을 받았던 풍산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회에 세계 곳곳의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생명을 앗아갔을 무기들이 상품처럼 전시될 예정이다.     무기 박람회에서는 실제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개 방산 및 군 관계자들이 모이는 교류의 장이 된다. 이 비윤리적인 시장에 시민의 소중한 세금이 쓰이고 있는 점, 매해 방위산업전시회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전시회(KADEX)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이순신방위산업전(YIDEX) △국제치안산업대전(KPEX) 등이 열릴 예정이다. 행사 개최 지역도 경기, 충남, 경남, 부산 등 다양하다. 더 많은 방위산업체가 박람회에 참가하여 무기 거래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힘의 논리는 긴장과 갈등을 야기시킬 뿐이다. 특히 매년 증가하는 연합군사훈련 등 전쟁 연습, 무력 과시는 한반도 일대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전쟁 위기를 가중한다.  만약 무기가 거래되지 않는 세상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전쟁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평화는 강한 무기와 군사력으로 살 수 없고, 무기거래가 되려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반복시킨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평화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군비를 축소하고 대화와 협력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덱스저항행동은 지난 2013년부터 무기 거래 이슈를 기후위기 등 다양한 의제와 연결하는 활동을 해왔으며, 9월 말 무기박람회저항행동으로 출범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기나 에어쇼가 아닙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한 데에 이어 올해도 무기박람회 저항행동을 이어간다. 무기 산업의 비윤리성 비판하고, K-방산의 책임성에 대해 반문하며,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무기박람회 폐지를 촉구할 계획이다. 곧 개최될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전시회(KADEX) 대응을 시작으로 무기 거래 중단, 무기박람회 폐지를 위한 활동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저항행동에 함께하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분쟁, 집단학살에 가슴 아파하고 뭐라도 하고자 고민하는 이들을 기다린다. 무기박람회가 사라진 사회를 상상하며 무기 거래의 비윤리성 규탄에 목소리 높일 때 비로소 전쟁과 폭력이 사라진, 시민이 안전한 세상에 가까워질 것이다. 무기 거래가 이루어지는 죽음의 시장 KADEX를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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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홍빈 구조비만… 외교부 “몽블랑 조난, 소송 안해”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
한국인 등반가 두 명이 죽었다. 높이 4800m를 넘는 알프스산맥의 최고봉, 프랑스 몽블랑을 등반하다 조난당했다. 지난 10일의 일이다. 프랑스 샤모니 산악구조대(PGHM)는 구조 헬기를 띄워 이들 시신을 수습했다. 이틀 전(8일)엔 한국인 두 명으로 구성된 다른 등반팀을 헬기에 태워 구조하기도 했다. 이 사고를 보면, 떠오르는 소송이 있다. ‘김홍빈 원정대’의 구조비용 책임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원정대에 제기한 소송. 고(故) 김홍빈 대장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하지만 약 10개월 뒤인 2022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정부는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을 상대로 약 6800만 원의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최초의 기록을 만들고 하산하던 도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비용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은,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워졌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2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1심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1심 법원의 판결대로 약 3600만 원을 돌려받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구조비용 약 6800만 원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7월 다시 항소했다. 최근 2심도 ‘김홍빈 원정대’의 완패로 끝났다. 지난 24일 2심 법원은 김홍빈 대장을 구조하는 데 든 비용 전체(약 6800만 원)를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가 갚아야 한다고 봤다.(관련기사 : <김홍빈 구조비 소송 2심 완패… “7천만원 전액 갚아라”>) 그렇다면 이번 ‘몽블랑 조난 사고’에도 정부의 소송은 예고된 일인 걸까. 김홍빈 구조비용 청구 소송처럼. 기자는 지난 24일 외교부에 질의했다. 몽블랑 조난 사고에 대해서도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주프랑스대사관이 지난 27일 답변을 보내왔다. “모든 비용은 주재국 정부(프랑스)의 부담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외교부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없습니다.” 몽블랑 조난 사고에 대해서는 소송 계획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사실 이러한 외교부의 대응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와 달리, 개인에게 구조비용 책임을 지우지 않으니까. 하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구조비 청구 소송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외교부가 직접 증명한 꼴이 아닌가.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그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었을까. 기자가 만났던 재외국민 보호 분야의 전문가도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구조헬기 띄운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한국 정부는 (김홍빈 원정대에) 구상권 청구를 하고… 매우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 가장 훌륭한 모습은 외교력으로 해결해내는 것이죠. 휴머니티를 서로 공감하는 두 나라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문현철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홍빈 대장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지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구조비 책임을 원정대에게 돌리려는 정부의 소송은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소송의 끝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현충원에 그의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 그리고 김홍빈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들어간 비용 수천만 원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건 대한민국. 두 얼굴의 대한민국은 모순의 가면 뒤에 숨어 있다. 개인이 성취한 명예는 나눠 갖고, 비용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순 말이다. 몽블랑 사고에서는 발휘될 수 있었던 지혜로운 외교적 해결이,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이뤄지지 못했을까. “매우 지혜롭지 못한” 소송을 여기서 멈추는 것으로, 대한민국은 그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6411의 목소리] 계절의 실종, 미래를 보다
계절의 실종, 미래를 보다 (2024-09-30) 김백산 | 기후소송 원고 2022년 8월 서울 강남역 일대 침수 당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더는 차로 갈 수 없다고 해서 같이 탔던 승객들과 내려서 걸어가고 있다. 사진 촬영 직후에 배수구에 빠져서 팔과 손을 크게 다쳤다. 필자 제공 2년 전 여름 서울에 하루 만에 400㎜ 가까이 폭우가 내렸을 때 강남역 일대는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부근을 지나다 도로 침수를 막기 위해 열어둔 배수구 구멍에 빠졌다. 몸에 상처가 많이 났고, 휴대폰도 망가졌다. 폭우에 뚜껑이 열린 맨홀 때문에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분도 계셨다. 기후위기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재난으로 닥칠 수 있고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기후변화로 수십년 내에 전세계의 식량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 남짓이고 사료용 곡물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0% 이하로,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은 밀, 옥수수, 콩으로 만든 가공식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 됐다. 더군다나 육류 소비가 늘어나 사료용 곡물 수입도 확대되고 있다. 조천호 박사는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며칠 전 식당에 갔더니 뜨거워진 바닷물 때문에 ‘가을 전어’를 들여놓을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커피 원두의 재배 환경이 점점 악화하여 커피 가격이 오르고 있고, 심지어 2080년에는 원두 자체가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 원두를 개발하고 있는데, 미래의 커피에는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번 추석에 배추 한포기에 2만원, 시금치 한단에 만원에 파는 곳도 있었다. 광고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미래일까? 기후재난과 식량 안보 위기 등 기후위기와 우리 청년세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지금 겪고 있는 기후위기는 이미 수십년 동안 내뿜은 온실가스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기후변화에 기여했다. 편하자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텀블러를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개인이 아무리 탄소 저감을 위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거대 기업이나 국가 단위의 탄소배출을 상쇄할 만큼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에서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0년 이후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탄소배출 저감 정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최고 사법기관 중 하나인 헌법재판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헌재 결정이 내려졌다고 기후위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의 탄소 저감 정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니 국회는 더욱 강력한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해야 하고,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도 개선해야 한다.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 위헌소송 청구인인 한제아님은 헌법재판소 공개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추석 폭염에 모두 놀라고 있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열대기후 속 한국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계절의 실종은 잦은 재난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삶이 훨씬 더 가혹해질 수 있다. 오염을 제거하는 데는 비용이 따른다. 바다에는 인류가 버린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이 가득하고, 우리가 먹는 모든 해산물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탄소배출도 마찬가지다. 탄소배출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을 넘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당장에 즉각적인 성과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어렵다. 이 보장되지 않는 노력을 오랜 기간 지속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 나오듯이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 이것은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의 중요한 특성이다.” 과거 무분별하게 배출된 온실가스로 현재 이미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것에 대하여, 청년으로서 미래를 바라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고 싶다. 기후대응을 위한 법과 정책의 개선을 위하여 나도 이번 기후소송에 참여했다. 그러나 부족함을 느끼며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게는 제도 개선에서, 작게는 일상생활의 실천까지.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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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 독점 반대, 공동체 회복 찬성
대가 없이 주어진 대기를 파괴한 인류 대기는 인류 모두의 공공재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할 때부터 조건 없이 주어졌다. 이 대기는 인류 생존에 필수 자원이다. 비단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 상의 모든 동∙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다. 그 차원에서 대기 문제는 지구 상 모든 생물의 공통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인간을 제외한 동물과 식물은 잘못이 없다. 그들은 시스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존재들이지, 인간처럼 시스템을 변형시키고 망가트리는 존재가 아니다. 인류는 농경지 개간을 시작으로 점차 지구의 지형을 변형시켰고, 더 많은 생산과 소비라는 이념을 더해 지구 착취를 가속화했다.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는 상쇄분 이상으로 배출됐고, 계속 대기 속에 남아 지구 온난화를 일으켰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산화탄소는 배출되고 있으며, 내가 글을 쓰는 지금도, 이 글이 올라가는 플랫폼도 모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이 글을 클릭해서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건, 우리 모두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기후위기 등 환경 문제를 공동체 문제라고 하는 이유다. 모두가 파괴했으니,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커먼즈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로 해보려고 한다. 커먼즈에 대한 두 가지 개인적 정의 커먼즈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국내에서 커먼즈는 다야한 형태로 번역된다. ‘공유, 공유지, 공동자원’ 등등등 다양하다. 모든 번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으니, ‘커먼즈'라고 쓰겠다. 대략적인 의미는 인류가 공통으로 소유하거나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두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인류에게 대가 없이 주어진 것. 예를 들면 환경, 자연, 자원, 토지, 대기, 물 등이다.  둘째 인류가 함께 만들어 낸 것. 예를 들면 디지털 플랫폼, 지식 등이다. 인류에게 조건없이 주어진 자연과 환경이 커먼즈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크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인류가 함께 만들어 낸 것이 커먼즈라는 것과 그 예시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은 더욱 그렇다.  디지털 플랫폼의 예는 메타, 유튜브, 구글, 네이버 등이다. 이들이 커먼즈라니. 나는 그냥 썼을 뿐인데. 의아할 것이다. 이들이 커먼즈인 이유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데이터를 생성했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들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플랫폼 확장에는 데이터가 필수다. 어떤 플랫폼이든 이용자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이용자가 데이터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이용자가 플랫폼을 접속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게시물을 올리는 등 모든 행위를 할 때 만들어진다. 이용자가 곧 데이터 생산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플랫폼의 경우 데이터 생산 직군이 따로 없다. 물론 소규모 플랫폼의 경우 직원들이 직접 이용자가 되어 데이터를 생성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형 디지털 플랫폼은 데이터 생산직군이 없다. 소비자가 다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플랫폼은 플랫폼과 이용자가 함께 만든 것이다. ‘인류가 함께 만들어 낸 것' 이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플랫폼이 커먼즈인 이유다. 커먼즈를 독점하는 거대 기업 자원과 이익은 내것이지만, 문제는 모두의 것이다 문제는 거대 플랫폼 소유 기업이 이런 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단 플랫폼만이 아니라, 천연자원, 토지, 농지를 독점하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 대부분이 그렇다. 플랫폼의 데이터도, 본인들이 자원을 채취하는 땅과 숲, 바다도 모두 본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정 기업만 자원을 채굴하고, 데이터나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그렇다. 이런 말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피해를 외부화하기 때문이다. 농지를 끊임없이 태우고 개간하며 발생한 이산화탄소, 그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는 그 지역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문제가 된다.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듯 제한된 통로만 배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뿜어진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로 흩어지고 대기로 올라가 기후변화를 강화한다.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가짜뉴스, 딥페이크, 정보유출 등 문제는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 피해는 벌금을 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벌금이 대가라고 할 수도 없다. 벌금 냈다고 개별 피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는 전형적인 피해의 외부화다. 문제를 외부화하는 한, 독점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인류 출현부터 주어진 환경은 인류 모두의 것이고, 인류가 함께 만들어 낸 것 역시 인류 모두의 것이다. 즉, 인류 공동체의 것이지, 특정 집단의 것이 아니다. 후자의 경우 최소 그 플랫폼을 이용하고, 데이터를 생성한 사람들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부 다국적 기업은 그것이 특정한 집단이나 소유주의 것인것 마냥 말하며 ‘독점'하고 있다. 만약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고, 모든 이익과 피해를 고스란히 가져간다면 납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함께 만들어 낸 것(혹은 모두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것)을 이용해 이익은 사유화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동체에게 전가하고 있다. 독점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다. 또다른 이유, 공동체를 해치기 때문 커먼즈의 독점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공동체를 해치기 때문이다. 일부 거대 다국적 기업이 자원을 통제하는 한, 그것을 이용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소수 사람들의 방향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 정책에 변화에 따라 플랫폼 이용자의 사용자 경험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독점하는 한 사람들은 이끌려 갈 수밖에 없다. 독점이 강화되면, 이익은 사유화되기 마련이며, 이익은 분배는 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적게 분배된 이익을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나눠가져야 한다. 1이라는 이익을 ‘0.1, 0.01, 0.0001, 0.000001’의 형태로 쪼개고 쪼개서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배고픔이 더 많은 음식을 찾듯, 이렇게 적은 분배는 남보다 내가 더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정당화한다. 함께 살자가 아니라, 내가 먼저 살고보자가 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 지는 건 당연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공동체는 쪼개지고 파편화된다. 이렇게 파편화 된 상황에서 기후위기 같은 공동체의 문제가 눈에 들어올리 없다. 공동체가 함께 움직일리도 없다. 당장 내 눈 앞의 문제가 큰데, 그 너머의 문제가 보일리 없다. 공동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정부의 태도다. 정부가 독점을 막고, 사회에 공동체의 중요성과 함께 해결하자는 메시지와 시그널을 계속 보내야 한다. 정부가 사회에 어떤 시그널을 보내고, 그 시그널에 맞는 행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정서도 분명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이 아니라, 협렵하고, 함께하는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야 한다. 남을 위하는 노동을 하는 돌봉 노동 종사자에게 더 큰 보상을 주고, 자연을 가꾸고, 환경을 보호하는 녹색 일자리를 만들고 보상하고, 더 나아가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소중한 것임을 알려줘야 한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공동체가 아닌 독점과 경쟁을 부추기는 기업에게는 더 큰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이런 모습으로 정부가 공동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해 개인들도 정부에 공동체 가치 확산에 대한 요구를 해야 하며, 그 개개인 자체도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공감해야 할 것이다. 내가 공감하고 인식하지 않는데, 공동체에 대해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독점에 반대하고, 공동체에 찬성해야 한다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대중교통 안에서, 그 모든 곳에서 시끄럽게 떠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자칫 너무나도 당연해서 그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개개인이 함께 모여 떠들어 대야 할 이슈 중 하나가 ‘독점' 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의 독점, 플랫폼의 독점, 지식 재산권의 독점 등 다양한 형태의 독점에 대해 반대하고, 그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문제임을 말하고, 그 문제와 방안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야 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떠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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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 경연에 등장한 비건식🥗 근데 이제 사시미를 곁들인…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3 공기가 긴 여름 내내 머금던 물기를 털어냈는지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눈에 띄게 쾌청해진 하늘에 바뀐 계절을 실감하다가도 다시 일상을 지낼 때는 그 흐름을 매 순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달라진 바람과 온도에 둘러싸여 살지만, 오히려 늘 함께하기에 변화를 금방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는 듯해요. 우리 몸을 감싸는 옷차림, 낮과 밤의 길이처럼 일상을 구성하는 꽤 큰 요소가 휙휙 바뀌었는데도요. 이번 기사들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본인과 먼 이야기라고 여겼을 주제도 사실은 모두가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읽게 되는 기사들입니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상속세 문제를 다룹니다. 일부만 해당하는 주제 같지만, 사실 사회 불평등 구조를 모양 짓는다는 데에서 모두가 연결된 문제죠. 두 번째 기사인 자영업 리포트에서는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23.5%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이 처한 문제상황을 살필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비건 지향인이 쓴 <흑백요리사> 리뷰인데요. 비건 요리를 향한 시선을, 더 나아가서는 비건과 연결된 여러 사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름이 가긴 가는 거냐며 해가 갈수록 심하게 불평해 대는데, 결국 가을이 오긴 왔습니다.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거나 해결책이 요원해 보이는 문제도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긴 할 텐데요. 기사 속 주제가 나중에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상상해 보며 기사를 읽어볼까요? 이거야말로 꺼진 뉴스에 불씨를 다시 지피는 방법이니까요.☺️ 1. 사건과 구조: 물려받을 재산, 있습니까? 다가온 ‘대상속의 시대’ "정액으로 정해져 있는 공제액 일부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 가능한 일이다. (중략) 문제는 이를 위한 명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상속세는 중산층이 내면 부당한 세금’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는다는 것이다." ✍🏻 김동인 기자, <시사IN> ⓒ시사IN 조남진 상속세를 다루는 기사는 차고 넘칩니다. 대부분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와 비교하고, 상속세 인하가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죠. 인하론의 대표적인 근거로는 아파트값 인상으로 상속세 부과 대상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 제시됩니다. 겨우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부자들의 전유물인 상속세’를 내는 건 이상하다는 거죠. 정치권도 이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는데요. 예컨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속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세금이 중산층을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기사는 보편적인 문법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는 기사겠죠. 이번에 소개하는 <시사IN> 기사가 그렇습니다. 김동인 기자는 묻습니다. 정말로 현재 상속세 부과 대상들을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는가? 사실 ‘서울 아파트’ 값으로 여겨지는 ‘10억 원’ 이상 순자산 가구는 전체 가구의 10.3% 수준입니다. 정치권이 말하는 중산층은, 실제로는 중산층이 아닌 상류층에 가까운 집단인 거죠. 더 나아가 기사는 양극화의 관점에서 상속세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상속받는 이들과 상속받을 게 없는 이들 사이에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의 ‘중산층세’ 프레임부터 양극화 문제까지. 기사의 홍수 속에서 ‘한 끗 다른 관점’을 찾아 헤매는 독자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2. 연재·기획: "오늘 맥주 한병 팔았다"…서울대생 아지트 '녹두호프'의 몰락 [창간기획, 자영업 리포트] "그가 폐업도 하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폐업은 공짜가 아니다. “건물주에게 폐업 얘기를 꺼냈더니 가게를 원상 복구하고 나가라더군. 주변에 물어보니 최소한 800만원은 나갈 거래. 그 돈이 어디 있어?”" ✍🏻 박진석, 조현숙, 하준호, 전민구, 김현동 기자, <중앙일보>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성공하면 대박, 망하면 쪽박인 자영업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서민 갑부에 나오는 자영업자 성공 신화를 자주 보았기 때문일까요? 자영업자의 실패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 조용한 몰락을 중앙일보 창간기획 <2024 자영업 리포트>가 주목합니다. 기사는 자영업자 51명을 찾아가 각자가 처한 어려움을 먼저 듣습니다. 하루 매출이 맥주 한 병에 불과한 가게, 배달 플랫폼 수수료에 분노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과잉 경쟁에 밀려난 원조 스터디 카페의 이야기에 자영업자의 현실이 낱낱이 담겨있습니다. 자영업자는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최저임금이나 수수료 상한제 같은 큰 이슈부터 야간 돌봄 확대, 주차시설 설치 같은 생활 밀착형 요구까지 다양합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주점 휘가로에서 일하는 김태수(62) 씨는 정부의 국군의 날(10월 1일) 임시공휴일 지정에 불만을 토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휴일이 길어지면 밖으로 나가지만 절대 집 주변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만 죽어나는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죠. 단순히 기금 규모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25조 원 소상공인 종합대책’은 복잡한 현실을 해결하긴 역부족입니다. 고된 하루, 사람들은 타인의 노동으로 치유받아 다시 일어설 힘을 찾습니다. 직접 요리를 할 힘조차 없을 때, 돈을 내고 먹는 따뜻한 한 끼는 큰 위안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소득의 추락, 과잉 경쟁과 과잉 노동, 원가 급등과 부채 상승이 자영업자를 옥죄고 있죠. 정치권의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사회가 함께 공감하는 일이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요? 후속 보도까지 예정된 기획 첫 기사는 아래 링크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3. 오피니언: '흑백요리사'에 나온 혁명적 메뉴, 재료 알면 더 놀랄걸요 "대체육이나 비건 사시미와 같은 요리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고기에 길들여진 입맛을 거부하고 동물권, 환경 등을 이유로 채식을 지향하려는 이들에게는 '가짜 고기'는 간절할 것이다. 이렇게라도 동물을 덜 죽일 수 있다면 이야말로 밥상 혁명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비건 요리에 가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부당하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 ✍🏻 이현우,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나야, 들기름”.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를 아시나요? 시청하지 않더라도 SNS 피드에 뜨는 영상으로나마 프로그램을 접한 분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답게 화려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광활한 세트장과 식기구가 잘 갖춰진 조리대, 그리고 화려한 등장 효과에 놀라는 참가자 모습을 자주 비춥니다. <흑백요리사>가 대형 스케일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연출 방법은 동물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거대 수조를 심사위원 뒤로 옮겨 와 경연 주제를 발표하고, 수많은 동물을 앞에 나열해 놓고서 출연진들이 발 빠르게 그를 가져가 조리하도록 구성해 긴박함을 연출합니다. 제작진에게는 동물이 회차의 주제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소재가, 참가자에게는 요리의 재료이자 다음 경연 진출을 결정짓는 무기가 되는 것이죠. 이런 장면을 보면, 정말 많은 동물이 매 순간 살상된다는 사실이 온 살갗으로 느껴집니다.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장면들이 어떻게 다가올까요? 조리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저 요리가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먹어봐야겠다는 결심까지. 동물이 ‘음식’으로서 식생활의 기반이라는 의식이 더욱 견고해지지는 않을까요? ‘육식문화‘가 크게 기여하고 있는 식량부족과 기후위기는 인지하기 어려워지고요. 이런 <흑백요리사>에서 비건 음식이 등장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비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남정석 셰프가 출연하고, ‘셀럽의 셰프’라는 닉네임을 가진 요리사는 채소로 ‘비건 사시미’를 만듭니다. 다른 요리사들은 비건 사시미를 맛보고 싶다며 큰 관심을 보입니다. 시청자 반응도 비슷합니다. 비건 사시미를 궁금해하고,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평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없이도 재미를 이끌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 흥미가 앞서 언급한 동물권과는 약간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심은 동물과의 유사성, 즉, ‘특정한 맛과 식감의 재현 가능성’에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예를 들어, 비건 사시미를 맛봤을 때 사람들이 비트로 참치를 얼마나 훌륭히 ‘흉내’ 냈을지를 살핀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기사에서는 음식에 담긴 과정이 다르다면, 그 자체만으로 특정 요리의 모방이 아닌 독립적인 요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순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동물 소비가 없었다면 우리는 채소를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로 재편집해 다양한 맛과 식감을 이미 즐기고 있었을 수도 있죠. 또한 가끔은 모순적인 방법으로라도 우리가 믿는 선과 공존을 실현할 수도 있는 법이고요. (실은 저는 이걸 모순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하려는 행위로 바라보긴 합니다.) 독자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독자님의 확장된 감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사를 실어 보냅니다.    뉴스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1.  안녕하세요, 독자님. 레터를 쓸 때 제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건 독자님들 인데요. 이번 호를 쓰는 동안에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레터를 읽고 있는 당신은 왜 폴라리스를, 그리고 언론과 기사를 저버리지 않을까.” 사실 기사를 꾸준히 읽는다는 건 꽤 지난한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에서 ‘좋은 기사’를 찾고 읽길 멈추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2.   사실 저는 ‘절식’을 선언한 적이 있어요. 음식을 끊은 건 아니고, 기사를 잠시 끊었어요. 기자를 꿈 꾸는 사람이 기사를 안 읽는다니! 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때는 지면을 가득 채운 비극을 감당하는 게 버거웠던 것 같아요. 예컨대 상쾌하게 추석 명절을 보낸 후 신문을 들추면 ‘추석 일가족 참변’ 같은 헤드라인이 보이잖아요. 산재, 딥페이크, 이하전쟁, 선감학원… 매일 매일 슬픈 일이 벌어지는데, 세상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죠.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느라 개정안 입법이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또 누군가가 범죄 피해를 당했다.’ 이런 레퍼토리의 기사가 익숙해져 버린 시대니까요.  3.  물론 이제는 ‘절식’하지 않습니다. 대신 폴라리스 독자님들과 함께 읽을 기사를 찾아 헤매요. 비극을 외면하진 않겠다고 생각할 때, 한국 언론에 문제점이 차고 넘치는 줄 알면서도 냉소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저는 최승자 시를 떠올려요. <20년 후에, 지芝에게>에서 시인은 어린아이인 지芝에게 말합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화자는 자신이 몰락하는 21세기의 어느 날을 예감하면서도 20년 뒤 성인이 될 지芝의 빛나는 시작을 빌어주죠.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하고요.  최승자 시를 잘 알진 못하지만 <20년 후에, 지芝에게>가 최승자 시 중 무척 예외적인 시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극단의 자기부정’, ‘절망적 호소’ 같은 구절로 수식되는 시인이잖아요. 당장 <20년 후에, 지에게>에서 몇 장을 넘기면 이런 문장이 발견되죠.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단지 최승자의 시집에 비극이 가득하다는 이유로 -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진실이라는 이유로 - 저는 멋대로 그녀의 시집을 기사와 동일시 해버리곤 합니다. 그러고선 공포스러운 세상에서도 읽고 쓰길 멈추지 못하는 마음 가장자리에, 어른이 된 지芝가 살아갈 세상이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주 자의적인 해석이지만요. 시의 마지막 연에 이를 때쯤이면 이런 마음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지금 어린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시대가 너무 가혹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어른인 나는 이 시대를 열심히 보고 기록해야겠다.’ 조금 거창한 마음이지요? 4.  시간이 흘러 또다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옵니다. 어느새 제가 폴라리스에 합류한 지도 2년이 되어 가고요. 아마 지금 쓰는 글이 제 마지막 에디터레터가 될 것 같아요. 폴라리스를 떠나게 되었거든요. 그렇지만 폴라리스를 향한 애정과, 독자님들께 소개할 기사를 찾던 ‘거창한 마음’은 이 자리에 오래오래 남겨둘 생각이에요. 20년 후, 지芝가 살게 될 가을의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비는 마음 말이에요.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폴라리스의 항해도 기대해 주세요!  2024. 09. 30.에디터 만쥬🌰 드림 만든 사람들: 만쥬🌰, 해안🌊, 모래🏖️, 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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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검은물’ 사건 뭉개기… 셜록이 경찰을 고소했다 <블랙워터 게이트 5>
‘검은물’ 고발 사건에 경찰의 ‘검은 제안’이 등장했다. “사건 각하로 종결할 테니까, 저한테 다시 고발장을 주세요. 그래서 다시 (사건을) 시작하는 걸로 좀 하시면 어때요?(…) (경찰) 내부 점검에 걸려요. 제대로 정상적으로 수사가 완벽히 안 됐다고.”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지난해 9월, 불량 상수도관 납품업체 임직원과 공무원 등 사이에 있었던 ‘검은 유착’을 밝히기 위해 형사고발에 나섰다. 사건을 담당한 수사기관은 강남경찰서.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9개월이나 지나 ‘고발 취하’를 유도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건은 그의 말대로 각하 처리됐다. 그러나 검찰도 이 같은 처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검찰은 사건 재수사를 요청했다. 셜록과 서 변호사는 ‘고발 취하’를 유도하며 1년째 ‘사건 뭉개기’를 하고 있는 A 경위를 직무유기 혐의로 직접 고소했다. ‘검은물’ 사건의 시작은 시흥 은계지구였다. 경기 시흥시 은계 공공주택지구에서는 2018년 4월부터 수돗물에 이물질이 나온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조사 결과, 이물질의 정체는 상수도관 내부에 코팅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이었다.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지난해 7월 은계지구 아파트 단지의 ‘검은물’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문제의 상수도관을 납품한 회사는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업체였다. 공정위는 2020년 3월, 13개의 상수도관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혀냈다.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납품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관련기사 : <식당서 만나 ‘검은 약속’… 1300억 나눠먹은 그들의 수법>) 하지만 공정위의 발표 이후로도, 담합 업체와 공공기관 등 수요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 중 아무도 부정청탁 문제로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의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징계나 처벌로 이어지지도 않은 상황. 이에 셜록과 서 변호사는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을 사기 혐의로, 그리고 이들의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공공기관 임직원 및 공무원들을 뇌물 혐의로 형사 고발했던 것이다.(관련기사 : <[액션] ‘검은물’에 숨은 검은 의혹… 셜록이 검찰에 고발>) 고발로부터 약 9개월이 지난 올해 6월 20일. 고발인 서성민 변호사는 강남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소속 수사관 A 경위의 전화를 받았다. A경위는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 사건 (수사를) 계속 진행하기를 희망하냐“고 물었다. 서 변호사는 “(고발 사건을) 끝까지 가는 건 여지 없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A 경위는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이 안 된다”면서, “사건을 각하로 종결할 테니 고발장을 다시 접수해줄 수 있냐“고 제안했다. “제가 이 사건을 큰 뜻을 품고 한번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해 가지고 정상적으로 진행은 안 돼요. 그래서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이거를 일단은 다시 저한테 고발장을 한 번 더 주세요.” 약 9개월 동안 고발인 조사가 한 차례 진행됐을 뿐,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와서 굳이 재고발을 해달라는 ‘수상한’ 제안. A 경위는 이유를 묻는 서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사 기일이 너무 장기화됐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경찰) 내부적으로 점검을 하거든요. (…) 변호사님, 진짜 내가 사정 좀 드릴게요. 이게 다른 생각이나 이런 건 아니고, 좀 도와주세요. 일단 도와주시고. 제가 오죽하면 이렇게 얘기하겠어요. 저도 너무 어이가 없고, 죄송하고….“ A 경위는 더 놀랄 만한 발언을 이어서 했다. “다른 것(사건)들도 다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를 하는데요. 변호사님한테 내가 솔직히 말씀드리니까, 다른 사람한테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믿고 얘기하는 겁니다. 내부 점검에 걸리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여러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나 재고발 접수를 요청하고 있다는 자백에 가까운 고백.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은 더 놀라웠다. 이번에는 문제를 강남경찰서 전체로 확대시켰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수사관들도 그래요. 강남(경찰서)은. (고발인들에게) 부탁해가지고 다시 (고발장) 접수받아서, 기일을 다시 잡아서 (사건을 다시) 시작할 겁니다.” 강남경찰서 내 다른 수사관들도 자신과 같이 고발인들에게 ‘고발 취하’를 요청하고 있다는 폭로. A 경위는 고발 취하 날짜까지 정해줬다. “(함께 고발한) 진실탐사그룹 셜록한테도 협조를 (부탁)해주시고… 오늘 중으로 고발 취하장 있잖아요, 팩스로도 보내주셔도 돼요. (경찰 내부) 점검이 다음주라서….”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고발 취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고발 취하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강남경찰서는 지난 6월 28일 ‘검은물’ 고발 사건을 각하 처분하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와 제재 사실을 근거로 한 고발이었음에도, “고발인의 추측만을 근거로” 고발했다는 어이없는 명분을 내세웠다. “고발인의 추측만을 근거로 본건 고발을 한 것으로 파악되기에 수사를 개시할 만한 구체적인 사유가 충분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불송치 통지서) 각하 처분 이후 서 변호사는 다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A 경위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8월 초부터 약 2주 동안 15번의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결국 A 경위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사이, 오히려 검찰에서 사건을 다시 끄집어올렸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검사 선현숙)은 지난 8월 강남경찰서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강남경찰서로 넘어갔다. 경찰 내부 점검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를 요청한 A 경위. 그의 입장은 무엇일까. 기자는 지난 4일 강남경찰서를 찾아 그를 직접 만났다. “기자가 오해하고 있는 생각대로였다면, 애초에 (고발인에게) 전화 안 했습니다. 당연히 전화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각하 쳐버리면 됩니다. 그게 더 깔끔해요. (…)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한번 (경찰 입장을) 역으로 생각해주십시오.“ 셜록과 서 변호사가 고발장을 접수한 게 지난해 9월. 그동안 수사는 얼마나 진행된 걸까. “(고발인을 통해) 자료 받은 걸로 공정위 쪽에 저희가 확인을 해봤고요, 그 상황에서 이제 각하를 한 거예요. (…) (고발장이 재접수되면) 실질적으로 (사건을) 거의 다시 시작할 거예요.” 경찰 수사관이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와 재고발을 요청하는 게 상식적인 일일까. 경찰 출신 손병호 변호사(법무법인 현)는 단호하게 지적했다. “염치없는 요청입니다. (내부적으로) 장기사건 점검 때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하는 부탁이잖아요. (…) 그야말로 행정 편의주의적인, 수사관 개인의 편의를 위한 요청이잖아요. (…) 각하는, 수사할 만한 사건이 되지 않는다 판단해서 수사하지 않고 끝낸다는 개념입니다. (고발로부터) 9개월 정도 있다가 (사건을) 각하하는 건 상당히 잘못된 겁니다.” 기자는 강남경찰서의 반론을 듣고자 시도했다. 지난 20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강남서에 서면질의서를 넣었다. 전화 연결도 시도했다. 기자는 지난 19일부터 27일까지 A경위가 소속된 지능범죄수사팀 과장(언론대응 담당)에게 총 9차례 전화를 시도했다. 27일엔 지능범죄수사팀 소속 담당자를 통해 “과장님의 회신을 부탁드린다”는 메모도 남겼다. 하지만 전화 연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고발인 서성민 변호사는 A 경위의 행위가 시사하는 현재 경찰의 문제점을 이렇게 짚었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사라지면서, 경찰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수사를 끝내도 고발인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수사하고 싶다는 둥 핑계를 대며 고발 취하를 유도하고, ‘(사건을) 불송치할 테니 재고발 해달라’는 제안까지 이른 것은 현재 경찰의 범죄수사가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셜록과 서 변호사는 30일 A 경위를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형사고소했다. 또 A 경위에 대한 수사관 기피(교체) 신청을 진행해 ‘검은물’ 고발 사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끝까지 감시할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이태원 참사] 지난 2년의 시간, 당신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나는 평소에 서울시청 앞 광장을 자주 지나다닌다. 서점을 갈 때나 청계천을 걸을 때, 성당에 갈 때도 산책할 겸 탁 트여있는 광장을 한 바퀴 빙 둘러서 가곤 한다. 지난 시간, 그곳에 참사 합동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인터뷰를 이유로 참사 유가족 분들과 생존자 분들을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분향소 앞을 지날 때면 언젠가 만났던 분들이 계신지, 그들이 나의 얼굴을 잘 기억 못하실지언정 인사라도 드릴까하여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는 건 버릇이 됐었다.  그런데, 하나 솔직하게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그렇게나 많이 분향소 앞을 지나갔는데, 단 한 번도 분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영정이 마련되지 않은 분향소에서 분향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많은 영정 사진들이 놓여있는 분향소는 똑바로 마주보기가 어려웠다. 그 앞을 지날 때면 고개가 자동적으로 푹 숙여졌고 땅만 보면서 걸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분향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었다. 마주하기 힘들면 길을 돌아갔으면 될 것인데, 그건 또 싫었다.   영정 앞에 꽃 한 송이를 못 올리고 향로에 향을 한번 못 피웠지만. 나는 그 앞을 지나고 싶었다. 대신 그때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곤 했다. 영정들 앞을 지날 땐 일부러 걸음을 늦추었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위한 기도를 했다. 형식을 제대로 못 갖추었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직도 이런 나의 행동과 감정을 세분화해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다. 그저 그 앞에선 자꾸 눈물이 나곤 했고,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태원 참사, 우리는 잊지 않았다  지난 5월 초,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순간, 내 입에선 “드디어...” 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머릿속에선 유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참사 이후 약 1년 6개월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들은 지금 어떤 마음이실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참사가 발생한 날부터 내가 언론을 통해 보았거나 직, 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것을 다시 떠올려봤다. 참사 당일의 그 충격적인 장면, 수많은 희생자들,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눈물, 울분과 분노, 고통, 기나긴 투쟁의 시간. 정부 기관과 정치권에서 벌어진 공방까지. 이 기억들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참사에 대한 감정을 한번쯤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참사를 주제로 글을 하나 썼었다. 그리고 글벗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 자리에 모인 날, 우리는 참사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누군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글을 읽었는데 그 날의 기억이 나는 바람에 눈물이 나서 힘들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남 일 같지 않고 아직까지 가슴이 먹힌다고 했다. 누군가는 생각에 잠겨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년 반 가량 지난 시점이었지만, 모두가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참사가 벌어진 뒤 처음 뉴스를 보았던 그 순간을. 잠 못 들고 밤새 TV만 지켜본 그 순간을. 그때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도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잠시 희미해져 있었을 뿐이지, 다들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지인의 일이 아니었을지라도. 우리가 가진 슬픔의 무게가 그때나 지금이나 동등하게 무거움을 확인했다.  우리 뿐 일까. 다른 이들은 어떨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동안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슬픔을 달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혹여 사는 것이 바빠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레 기억이 희미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도 어쩌면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의 시선에 대하여   나는 일 때문에 뉴스 기사를 많이 읽는다. 그리고 기사를 읽고 나서 항상 밑에 달린 댓글을 훑어본다. 이것을 보면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기도 하니까.  처음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즈음, 기사마다 애도, 추모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매섭고 차가운 비난과 혐오가 섞인 악성 댓글의 비중만 더 높아져갔다.  ‘남의 나라 귀신놀이가 뭐가 좋다고..’ ‘놀다 죽었는데 왜’ (댓글들을 다들 많이 접해보았을 테니, 이 정도까지만 적겠다. 댓글을 굳이 그대로 다 옮겨 적고 싶지 않다.)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조롱과 희롱 섞인 말들은 읽는 나조차 괴롭게 했다. 청춘들이 핼로윈을 즐기러 간 것이 나쁜 것인가. 나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핼로윈 파티를 즐긴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발생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땐 괜찮았는데 이 날은 왜 그랬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문제가 뭐였는지에 대해서 악플 쓰기 전에 생각은 해 보았을까.  유족을 향한 악성댓글도 마찬가지였다. 아픈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말이 너무 많았다. 이들의 움직임을 정치적 행동이라 단정 지으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유족들이 왜 국회에 가고,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긴 시간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알까. 그들의 눈을 마주 보고 심정을 이해하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 사회 일부가 너무 냉담하고 매정하다고 느낀다. 아픈 가슴에 자꾸 비수를 꽂는 것. ‘남의 일이고 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참사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항상 유족들은 목소리를 높여왔다. 슬픔과 울분, 고통이 담긴 목소리. 외면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외쳐왔던 목소리들. 이 목소리들은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나와 당신이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소리와 우리가 전혀 관계없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내 일이 아니다, 내가 알 바 아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모두 같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부디 이들을 향한 폭력적인 시선들은 거두어주시면 좋겠다.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첫발 뗀 특조위에게 바란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9월 23일 출범했다. 글을 쓰는 바로 오늘이다. ‘지각 출범’이라는 딱지 붙어 버린 늦고도 아주 늦은 출범이다. 지난 5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된 지 30일 째인 6월 20일까지 특조위 구성이 끝났어야 했는데, 넉 달이란 시간을 넘겼다. 이것도 유족의 간곡한 호소문이 전달된 후에야 진행되었다. 왜 항상 그들을 끝까지 내몰고 나서야 일이 추진되는 것일까. 국가의 의무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갖추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특조위원들과 유가족들의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기사를 통해 전해진 이야기를 보니, 일부 유족들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 눈물에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 담겨있었겠나.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특조위가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라는 숙제를 잘 해내주기를 바란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원이 풀릴 수 있도록 하겠다.” 고 송기춘 위원장이 말했다.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 글을 마무리하며  시간이라는 것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됐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참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억은 잠시 희미해졌을 뿐이지 지워지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이 글을 쓰면서 유족들의 모습이 많이 생각났다. 고립되고 외면당하면서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힘겨웠을지, 어떤 마음으로 버티어 왔을지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이 났다. 그들에게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곁에서 많이 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사실이니까.  또, 나는 처음에 자기 고백을 했는데, 글을 써 내려가면서 계속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조만간 ‘별들의 집’을 찾을 예정이다. 그곳에서 빚진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싶다.
[이태원 참사] 여러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10.29 이태원 참사에 어떻게 연대하고 있나요?
여러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10.29 이태원 참사에 어떻게 연대하고 계신가요?    근 몇 년간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노동자의 이야기와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다는 소식 그리고 높아져만 가는 2030 청년세대의 자살률 등 이전보다 부쩍 늘어난 부고 소식에 뉴스를 보다가 한숨만 푹 내쉬었던 시간이 늘었다. 기득권 정치는 권력을 취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 때문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과 삶을 거부했다. 이렇게 우리는 희망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간이 지속 될수록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보다는 나의 일상이 얼마나 힘들고 벅찬지에 대해 이해하기도 어려운 순간이 늘어난다. 그렇게 내 일상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는 순간이 쌓이면 사람과 사람사이 끈끈한 연대가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찾기보다 내 안으로만 파고들기 쉬운 환경과 일상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2년간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해 녹사평역, 시청역을 거쳐 현재 부림빌딩의 별들의 집으로 가기까지 연대의 시간을 보내며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갈수록 세상살이가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랑하는 것들이 늘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더불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하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1) 첫 만남   참사가 발생한 2022년 10월 29일 하루 뒤인 30일부터 일주일간 국가 애도기간이 선포되었다. 영정 없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가 설치 되었다. 그 일주일동안 국가는 유가족이 모이는 것을 방해했고, 그에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모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입에 참사가 아닌 사고로,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오르내리게 만들어 사회적 참사의 본질을 흐리고 의미를 압축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국가가 나서서 자행한 일주일이었다. 이렇게는 둘 수 없어서 2022년 12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모이고 녹사평역에 영정이 있는 '진짜' 분향소를 함께 만들었다.   분향소 설치 이전에 필요했던 과정은 희생자들의 영정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영정 만들기는 분향소 설치 전날 매우 늦은 밤에 진행되었는데, 그때 영정 속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처음 마주했다. 액자에 희생자의 사진을, 사진이 없는 희생자의 액자에는 국화꽃 사진을 넣었다. 나는 주로 검은 리본을 둘러 고정하는 일을 담당했는데, 영정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의 일이었다. 영정 안에 들어가는 사진 밑단에는 희생자의 생년월일이 있다. 영정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리본을 두르면서 희생자 대부분이 나와 또래라는 것과 희생자 대부분의 시간이 2022년 10월 29일-31일 사이에 멈춰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액자 속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저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와 슬픔, 미안함을 삭히면서 영정을 완성했다.   바로 다음날이 되어 분향소 설치를 시작했다. 손이 찢어지게 시린 날이었는데 나무토막 하나, 영정이 올라가는 단 하나, 하다못해 주변에 쓰레기 청소까지 우리같은 시민들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는 분향소였다. 꽤 긴 시간 추위를 이겨가며 분향소가 완성되었고 영정을 올려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정은 이미 분향소를 만들기 전에 녹사평역 인근 실내 장소에 도착해있었다. 유가족분들이 희생자의 영정을 분향소에 올리기 전에 영정 정리가 다시 필요해서 일을 돕고 있었는데, 처음 뵙는 한 분이 장소로 들어오셨다. 희생자들의 영정이 모여있던 곳이라 처음보는 사람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여서 짧은 침묵이 있었다. 처음 뵙는 그 분은 '제가 유가족인데요. 사진을 바꿔야 해서 왔어요.'라고 말씀해주셨고 그때 10.29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분들을 처음 만났다. '생각해보니 영정이 여기 모여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텐데. 자신을 유가족이라고 소개하는 그 순간에 그 분의 마음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짧았던 경계심이 풀리며 뒤늦게 진한 죄송스러움과 함께 밀려왔다.   그날 저녁, 해가 저물고 녹사평역 분향소에 영정이 올라갔다. 유가족분들은 영정 속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분향소에 내려놓고 울음을 토하시며 외치셨다.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하라고, 우리 가족들 대통령 당신에게 한 표 던졌다고, 그러니 국민의 선택에 책임을 다하라고 외치셨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선명하다. 그 순간에 영정 정리 때부터 참아온 눈물이 뒤늦게 몰려와서 나도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한겨레 '49재를 앞두고 영정사진이 놓였다, 이제야...[만리재사진첩]'(2022.12.14.)   2) 홍삼캔디 두알 오마이뉴스 '시민분향소... 159명 얼굴과 마주하니 "마음 더 흔들려"'(2023.02.04.)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시청역 분향소로 이전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천막처럼 보이는 것'만 봐도 경찰이 따라 붙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고, 뉴스에서는 기습설치라며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국가가 책임져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성역없이 진상규명을 진행하면 되었을 텐데. 무튼 어렵게 시청역으로 이전해 자리를 잡고 시청역 분향소에서 지킴이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본질을 흐리려는 방해 세력과 화면에서만 보던 유명 정치인도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사람들은 혼자 분향소를 찾아오신 이름 모를 시민분들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으신지 한참을 울고 계셨던 분, 1시간이 넘도록 분향소에 머물러 기도하시는 분, 보태 쓰라며 지폐를 쥐어주고 가시는 분들(이렇게 받은 돈은 전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후원금으로 송금됩니다), 주변에서 뛰어 놀다가 분향소로 와서 여기가 어떤 곳이냐고 물었던 어린 아이들까지. 분향소에서 1-2시간만 있다 보면 분향소가 단순히 추모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분향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회적 참사를 알려내고 추모하고, 서로에게 위로와 안부를 전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기억에 남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어 그 분의 이야기를 전해보려고 한다.   시청역 분향소에서 노란 조끼를 입고 분향소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분향소 바닥에 떨어져있던 국화 이파리들, 자잘한 쓰레기를 줍고 향이 있던 곳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청소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뒤에 할아버지가 오신 기척도 못 느꼈다. 향 가루를 쓸고 뒤를 돌아보니 계시는 할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할아버지께서 추모의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분향소의 가장자리로 가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만히 자리에서 영정을 천천히 보시더니 그 자리에서 큰 절을 두 번 하셨다. 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아 도와드릴까도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추모하려는 시간과 방식을 굳이 나서서 방해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애써 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절을 하시고 일어나 모자를 벗어 나에게도 인사를 해주셨고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로 답변 드렸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뭔가를 한참 뒤적거리셨다. 그러고는 오셔서 홍삼캔디 두알을 손에 쥐어주며 '춥지?' 한마디 묻고는 사라지셨다. 날이 흐렸지만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분향소에 서있으면서 할아버지가 춥냐고 물어봐주셨던 질문을 여러 번 곱씹었다. 그냥 지나가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춥지?'하고 물어보셨던 질문이 외롭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질문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여기 있어서 고맙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홍삼캔디를 좋아하지 않아서 먹지는 못했지만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 안쪽 주머니에 행운의 부적처럼 항상 넣어두고 지금도 가지고 다닌다. 받았던 홍삼캔디 두알을 보면서 '오늘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디든 있겠구나.'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순간이 일상에 자리 잡게 되었다.   3) 낮은 곳으로   '연대 :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책임짐.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윤이형 작가의 소설 [붕대 감기]에서 연대는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상처받을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보는 것,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내 안으로 옮겨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요즘 가방에 귀여운 키링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사람들의 가방에 달린 키링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그 안에서 노란색 리본과 보라색 리본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가방에 리본을 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이름 모를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순간에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과 은밀히 연대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낮은 곳으로'는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는 구절이 유명한 이정하 시인의 시다. 읽다보니 내가 나를 비워내 당신의 무엇이든 담길 수 있도록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가 서있을 더 낮은 곳은 어딜까.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되려 거부하면서 유가족분들이 삭발을 하던 순간일까? 아니면 길가에서 눈과 비를 맞으며 오체투지와 천막 농성, 단식을 하던 그 순간일까? 생각해보니 더 낮은 곳은 따로 없었던 것 같다. 유가족분들과 시민들은 국가의 부재를 서로의 존재로, 두터운 연대로 채워왔으니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이 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년간 서로를 위해 마음을 비워내고 가방에 리본을 달아보고 분향소로 향했던 발걸음이 쌓이고 쌓여 함께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달려왔다. 더 넓고 넓게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고자 노력해왔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연대 하고 있는지 묻고 싶고,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과 어떤 형태의 연대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 하루는 안녕한지, 긴긴 시간 춥지는 않았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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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0. 어쩌면 우리는 너를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0. 어쩌면 우리는 너를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2019년 10월 25일 밤, 속칭 대구패밀리라 부르는 글쓰기 모임 지인들과 동성로에서 만났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할로윈 같은 행사가 있으면 다들 어렴풋하게 알고 준비를 할 법도 한데 모두 이쪽으로는 연이 없는지 아무 생각 없이 현대백화점 앞에 모였고,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동성로 말고 안지랑에서 곱창에 소주나 먹자. 지나가는 간호사 좀비와 정장 드라큘라를 본 형님은 인파에 휩쓸리지 않게 구석으로 우리를 끌고 가고선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눈치를 보였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랑에서 곱창에, 평화시장서 치킨에, 거리를 걸으면서 맥주에, 그렇게 술을 마시고, 숙취에 괴로워하고…. 출근한 월요일, 후배 여럿이 지난밤 축제 거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붐비는 클럽과 아리따운 여성들,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한 위험한 거리. 지난밤 그들의 추억과 별개로 과도한 인파에 위험했다는 뉴스가 잠깐 올라왔다 내려가고는 했다. 우린 그때도 사고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었다. 2022년 10월 28일, 부대에서 할로윈 행사 참여의 위험성에 대한 공문을 내렸고 젊은 간부들의 과도한 행사 참여를 금하기 위해 위수지역을 철저히 지키라는 추가 공문이 내려왔다. 내 근무지는 대구에서 서산으로 바뀌었고, 서산 부대는 서울의 접경지라 그런지 이런 이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도 우리 부대는 코로나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고. 이미 이십 대의 끝자락, 스무 살 초반에도 즐기지 않았던 축제를 이 나이가 돼서 즐길 이유도 없었고 당시 비상대기도 공교롭게 나였다. 사고 전일, 그리고 당일까지도 나는 부대를 지키고 있었고 이 축제를 즐기는 이전 부대의 후배들, 그리고 새 부대의 후배들과 간간히 연락을 하며 축제의 열기를 대신 느꼈다. 29일, 사고가 발생했고 어제까지 우스갯소리로 연락하던 후배들은 이제 살아있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그 장소에 있었는지 찾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가끔 저널리즘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 한때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고 뉴스와 정치, 한 사람의 발언이 무겁게 소비되는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제는 알아야 하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인용저널리즘에 대한 레포트를 써서 대학에 제출한 적이 있었다. 한참 대선으로 국가가 뜨거웠던 시절, 유튜브의 아무개 씨, 정치평론가 아무개 씨의 목소리를 “ ”(따옴표)로 대신해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말도 다소 올드한 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따옴표 저널리즘보다도, 아마 ‘릴스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사회가 되었기에. 이태원 참사는 사실상 릴스 저널리즘의 대표 격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사건이었다. 뉴스에서는 부족한 현장 상황 정보의 공백을 느끼고 있었고, 이런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릴스,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끌어다가 TV에서 생중계를 했다. 그리고 SNS 익명의 목소리라는 거대한 방패 아래에 무분별한 혐오와 공격의 메시지는 덤으로 내보냈고. 영상에선 참사 사고의 사망자들, 부상자들의 모습이 모자이크 없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TV 앞의 많은 시청자들이 이 사고의 정신적 피해자가 되었다. 그 후에 있던 ‘누군가 밀었다’, ‘누군가가 범인이다’와 같은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의 남발부터 사건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이를 정치의 더러운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자칭 사회평론가들의 발언까지. 과연 언론은 참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과연 이게 21세기의 저널리즘일까. 그날 언론의 현실에 대한 참담함을 느꼈다. 언론이 무분별한 메시지를 보내는 당시 부대에서는 사고자가 있지는 않은지, 다른 부대 후배 중 사고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조사를 해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의 SNS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용산에서 놀고 있음, 동성로에서 술 마시는 중, 여기는 서울 어디 클럽. 후배들의 소식은 속속들이 발견되었고 한숨을 돌린 우리는 릴스를 우연히 넘기다 다른 영상들을 보게 되었다. 사고 현장에서 CPR을 하면서 제발 찍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소방관, 인근에서 춤추는 주취객, 사람들을 빨리 대피시키기 위해 차 위에서 인원을 인솔하는 어떤 젊은 사람, 그리고 번쩍이는 인근 클럽과 술집…. 나는 이 사고를 떠올릴 때마다 대구 부대에서 친하게 지냈던 한 후배를 떠올린다. 이성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때로는 과음, 지각으로 개인적인 행실에 대해서는 지적을 받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 좋고 일에 몰두하는 후배.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싶어 하면서 선배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연차가 차면서 책임감도 보이는 후배. 그 후배는 할로윈이면 거리로 나가 이 문화를 즐기고는 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이 끝난 월요일이면 전날의 열기를 하나의 무용담처럼 풀어내기도 했다. 나는 그 후배가 처음에는 싫었다. 너무 가벼워 보이는 남자여서, 책임감이 부족해 보이는 남자여서, 언제라도 일을 대충 할 것만 같은 인상의 남자여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그는 멋진 남자였고 멋진 군인이었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친절한 후배였다. 나는 그의 당당함을 부러워했고 그와 같이 퍽 즐거운 군 생활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이 참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너를 잃었을지도 몰라. 이런 행사는 문란한 행사고 평소 행실이 나쁜 사람들이 가서 당한 일인데 무슨 문제냐? 이런 이야기를 SNS에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린 멋진 후배이자 유쾌한 동생, 그리고 진짜 군인 하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사라진다면 인간적인 슬픔, 비통함, 그리고 대단한 인재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타까웠을 거라고. 그 후배와는 이제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대구를 떠난 지 벌써 3년이 흘렀고 그 친구도 내가 전역한다고 말한 전후로 전역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전역하고 사회인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서든 그 후배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후배가 앞으로도 이런 축제에 계속 참여할 거라는 점도 알고 있고. 그렇기에 앞으로는 이런 축제에 안전을, 모두에게 행복한 장소가 되기를 빌며 살뿐이다. 2025년의 나는 할로윈 축제 기간에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 후라고 생각한다. 군대도, 코로나도, 행사에서 논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는 나는 늦은 나이여도 거리에 몸을 던질까. 아니, 아마도 집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그때는 슬픈 이야기보다는 기쁜 이야기를, 할로윈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거리의 행복한 이야기를 쓰며 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해당 글은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정리를 시작하는 글이다. 평소 서평을 꾸준히 써왔기에 이번에도 서평 3편을 통해 이태원 참사의 기억을 되짚고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 되짚기, 서평을 통해 나아가기, 또다른 내일을 보낼 나, 모든 일들을 시작하기 위해 최근 이태원에 다녀왔다. 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표지판, 여기가 사실 모든 기억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다녀온 이태원은 조금 쓸쓸한 곳이었다. 서평과 모든 글이 끝날 때면 아마 2주기가 돌아오지 않을까. 그때는 이 쓸쓸함에 방점을 찍었기를.
비영리 조직은 어떻게 돈을 버나요?
‍ ‍ ‍ 공익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은밀한 질문 ‍ 저는 비영리 조직이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공익 활동을 본업으로 삼고, 더 큰 ‘소셜 임팩트’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을 돕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비영리 조직이라고 하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을 텐데요. 일반적으로 내 주변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환경 보호 활동을 함께하거나,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등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익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사단법인, 재단법인, 사회적협동조합 등 국내 비영리 조직의 수는 2만 개가 넘고, 종사자 수는 약 148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외계층을 돕는 복지사업, 환경 보호를 위한 봉사활동, 시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 등 공익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비영리 조직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공익 활동을 지속하는지 궁금해합니다. 특히, 비영리 활동을 생계유지를 위한 ‘업(業)’으로 삼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고요. 오늘은 이런 비영리 조직을 시작하려는 분들이 은밀하게, 가장 자주 묻는 질문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바로 ‘비영리 조직은 어떻게 돈을 버나요?’입니다. ‍ 돈 벌어도 되나요? 비영리(Nonprofit)라는 오해 ‍ 많은 사람이 공익 활동을 숭고한 선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돈 이야기를 하면 왠지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점잖게 ‘비영리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자원 조달’이라고 표현하는데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비영리 조직이 돈을 버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한 이유는 ‘비영리(Nonprofit)’라는 표현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경제활동으로 얻은 이익을 소유자 혹은 주주에게 배분할 수 있는 영리 기업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함인데요. 비영리 조직에서 발생한 이익은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비영리 조직은 영리 기업처럼 ‘수익(Benefit)’을 만들 수 있으나, 비용을 제한 ‘이익(Profit)’을 이해관계자에게 배당할 수 없습니다. 발생한 이익은 조직을 설립할 때 정관에 기재한 공익 목적에 맞게만 사용해야 하죠. 쉽게 말해 월급은 받을 수 있으나 배당은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영리 조직은 근본적으로 이익 창출이 최종 목적이 될 수 없는 조직입니다. 사업으로 만들어낸 이익은 반드시 각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있죠. 하지만 이익 창출이 없다면 비영리의 공익 활동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근본적인 사회혁신을 만들고, 더 큰 소셜 임팩트를 창출하며, 장기간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비영리 조직은 돈을 잘 벌어야 합니다. ‍ ‍ 비영리 조직이 돈 잘 버는 네 가지 방법 ‍ 그렇다면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비영리 조직에 주어진 특수한 여건을 고려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 전략을 세우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비영리 회계 관점이 아닌 비영리 조직이 실질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나아가 각 방법에서 비영리 조직이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지 저의 의견도 더해보겠습니다. 기부 모금: 개인 및 기업 대상 기부금품 모집하기 지원/배분사업: 정부/민간 공모사업 지원하기 위탁용역사업: 정부/민간 공익사업 위탁 수행하기 수익사업: 제품 판매 및 서비스 제공하여 수익 창출하기 ‍ ① 비영리만이 할 수 있는 ‘기부 모금’ ‍기부는 개인이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금전, 물품, 혹은 서비스를 비영리 조직에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부자는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대가를 받지 않으며, 기부금은 공익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따라서 비영리 조직은 판매와 같이 상응하는 가치의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안 되고, 공익 목적의 기부금은 반드시 투명한 회계 관리와 관련 제한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비영리 조직만 기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여 개인과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는 ‘공익법인/단체(구 지정기부금단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비영리 조직뿐입니다. 이때 공익법인은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인증처럼 기획재정부에 별도 신청하여 지정받고, 지속적으로 국세청의 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위와 같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는 공익법인이 되는 것은 비영리 조직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개인에게는 세액 공제를, 기업에게는 법인세 공제와 지방세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익 목적에 공감하는 일부는 세제 혜택이 없어도 후원을 하겠지만, ‘기부 모금’이라는 시장에서 의미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공익법인/단체’의 자격은 갖춰야 할 최소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 조직의 기부 모금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최근 누구나데이터 김자유 대표님께서 “너(잠재후원자), 내 동료가 되어라!” 아티클에서 ‘잠재후원자 관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최근 기부 모금 시장에서는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수용하고,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를 접목한 전략이 유효한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팬덤 기부, 자선 아이템 판매 등 새로운 모금 방법도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고요. ‍하지만 저는 모금 전략과 방법에 앞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 조직에서 다루는 사회문제와 솔루션,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지자는 기부 모금에 적합한가요?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들이 많지만, 모든 문제가 대중들의 인지적 공감을 얻기 수월한 것은 아닙니다. ‍ 그 근거로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빙 코리아 2022’ 보고서는 2021년 국내 개인 기부의 7개 분야별 관심도를 ‘자선단체 > 해외구호 > 지역사회 > 의료 > 교육 > 문화예술’ 순으로 분석한 바 있는데요. 이를 통해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비영리 조직은 자선 활동을 하는 비영리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개인 기부자 대상 모금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차원 더 깊게 살펴보면 세대별 기부 참여율, 기부 금액, 선호하는 기부 방식 등 기부 모금 시작에 앞서 고려할 요소가 더 많습니다. 이는 일시 후원과 정기 후원 중 어떤 형태가 우리의 지지자에게 바람직한지, 앞으로 개인과 기업 중에서 어떤 대상을 중점으로 기부 모금을 진행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비영리 조직도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시장’과 ‘제품’ 그리고 ‘고객’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영리 조직에서 기부 모금을 기획하고 계신다면, 아래 질문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사회문제(시장):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대중의 인지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인가? 솔루션(제품): 우리가 만드는 솔루션은 지지자에게 지속적인 효능감을 제공할 수 있는가? 지지자(고객): 우리의 지지자는 어떤 행동경제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한 기부 모금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고 있는 비영리스타트업으로 사단법인 뉴웨이즈(이하 뉴웨이즈)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21년에 등장한 뉴웨이즈는 정기 후원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안정적인 조직 운영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는데요. 아래 소개글로 뉴웨이즈의 ‘시장’과 ‘제품’, ‘고객’에 대해 유추해보겠습니다.‍ 사단법인 뉴웨이즈는 만 39세 이하 젊은 정치인(젊치인)의 도전과 성장을 돕는 정치 에이전시로, 정치 산업 내에서 의사 결정권자의 다양성을 높이고, 젊은 세대가 정치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 조직입니다. 이를 위해 누구나 자기 경쟁력을 가지고 의제나 지역의 문제 해결 경험을 쌓아 지지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인재 성장 시스템을 만듭니다. ‍뉴웨이즈는 ‘정치 산업의 다양성 부족’이라는 사회문제(시장)에서 ‘인재 성장 시스템’이라는 솔루션(제품)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뉴웨이즈의 지지자(고객)들은 정치권에서 일하거나, 정치에 높은 관심을 가진 고관여자일 확률이 높겠죠. ‍정치 산업과 정치 고관여자의 특징은 후원 문법에 상대적으로 친숙하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정당과 정치인을 향한 지지자 후원이 활발히 이뤄져 왔기 때문입니다. 한편, 뉴웨이즈의 솔루션은 온라인 서비스로 개발 과정과 정량적 임팩트를 지지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공유하며 함께 사회변화를 만드는 효능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뉴웨이즈의 정기 후원자 모금이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뉴웨이즈의 공익 활동이 이에 적합한 시장과 제품, 고객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뉴웨이즈의 탁월한 사회문제 해결 역량과 임팩트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겠지만요. ‍‍ ② 주도적으로 공익 활동을 제안하는 ‘배분/지원사업’ ‍비영리 조직이 돈을 벌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비영리 조직 대상 배분/지원사업에 지원하는 것입니다. 자원을 제공받아 공익 활동을 직접 수행하는 비영리 조직 입장에서 배분사업과 지원사업은 사실상 차이가 없어 함께 설명해 드립니다. 배분/지원사업은 정부, 공공기관, 또는 민간 재단이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을 실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인데요. 비영리 조직이 스스로 사업을 계획하여 제안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지고 공익 활동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배분/지원사업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공익 목적과 취지에 적합한 비영리 조직을 선정하는 공모 형태로 진행됩니다. 자금제공자(Funder)가 포괄적인 사회문제나 정책 목표를 제시하면, 비영리 조직이 이에 부합하는 사업을 제안하는 방식인데요. 예를 들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복지사업’을, 환경부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사업’을, 문화예술진흥원에서는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공모하는 것이죠. 일련의 선발 절차를 거쳐 선정된 비영리 조직은 제안한 공익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사업비와 수행 인력의 인건비를 지원받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종료되면 지원금의 사용 내역을 보고하고, 사업 성과를 평가받아야 합니다. 이때 사업 결과 보고 과업은 공모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아무래도 국민의 세금이나 대중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기금의 공모사업은 사업비 사용이나 사후 정산에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민간 재단을 중심으로 배분/지원사업에서 새로운 변화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사업 성과 중심에서 조직 성장 중심으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는 벤처 투자 기법을 활용하여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는 벤처 필란트로피(Venture Philanthropy)로 아래와 같이 전통적인 배분/지원사업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비재정적 지원: 조직 성장을 위한 교육, 컨설팅, 사무공간 등 비재정적 지원 제공 유연한 지원: 사업비 제한 규정 완화 및 사업 중도 변경(Pivot) 허용 중장기 지원: 다년간 지속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연속 지원 ‍‍ 대표적인 국내 사례로 아산나눔재단의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와 관계없이 스타트업의 관점과 방법론으로 소셜 임팩트를 확장할 수 있는 초기 소규모 비영리 조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조직이 스타트업 전략을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멘토링과 사업 자문을 제공하고, 공익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면 중도에 사업 및 예산 사용 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죠. 또한, 최대 4년 연속 지원하여 중장기적 관점에서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 ‍그 외에도 다양한 민간 재단에서 혁신적인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는 지원사업 파이프라인을 함께 만들고 있는데요. 이를 마치 스타트업의 시리즈 투자처럼 활용하여 비영리 조직을 성장시킨 사례도 있습니다. 2020년 서울NPO지원센터를 시작으로, 2021년  아름다운재단과 다음세대재단, 2022년 루트임팩트, 2023년 아산나눔재단의 지원사업에 순차적으로 선정된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이하 다시입다연구소)’인데요. 이 과정에서 ‘옷장 속 입지 않고 잠들어 있는 21%의 옷을 교환하는 파티’라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이제는 전국 단위로 의류교환 및 수선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비영리 조직은 우리 조직의 활동 영역과 성장 단계에 맞는 배분/지원사업을 리스트업하고 꾸준히 문을 두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공익 활동을 기획하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우리 조직이 만들어 내는 사업 성과나 사회적 가치를 홍보하는 역량이 매우 중요한데요. 아직 공익 활동의 성과를 뽐내는 것을 쑥스러워하시거나, 사업 성과를 정량화된 데이터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 ‍하지만 배분/지원사업의 기금제공자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에 기반하여 우리 공익 활동의 성과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다시입다연구소는 중고의류교환 행사의 누적 참가자 수, 누적 교환 물품 수, 참가자 인식 변화 설문응답 등 다방면으로 임팩트 데이터를 수집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팀도 처음부터 임팩트 측정 및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인 성과지표 개발과 데이터 정합성 향상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죠. ③ 공공 서비스와 기업 사회공헌을 대신 수행하는 ‘위탁용역사업’ ‍위탁용역사업은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등이 비영리 조직에 특정한 과제를 맡겨 수행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배분/지원사업과 비슷한데요. 차이점은 공공서비스 제공, 학술연구, 공공 교육, 전시 및 행사, 지역사회 개발 등 특정 과업이 지정되어 있고, 발주 기관이 정한 목표와 지침에 따라 공익 활동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많은 OO구 종합복지관, OO시 청년센터 등 지자체 공공시설의 관리 및 운영을 비영리 조직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임직원 자원봉사, 지역사회 교육사업, 환경보호활동 등 사회공헌 사업을 위해 전문성 있는 비영리 조직과 파트너십을 맺고 위탁 운영하기도 하죠. 이런 위탁용역사업은 제도와 관습에 따라 비영리 조직을 수탁사 자격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에 전문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 보장된 공익성으로 사회적 신뢰를 갖췄기 때문인데요. 공익 활동 영역에서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이 우위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비영리 조직의 입장에서 위탁용역 사업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대중 혹은 사용자 그룹과의 연결이 수월합니다. 그리고 조직의 고정적인 인건비 재원을 확보하여 안정적으로 공익 활동을 펼칠 기회가 될 수 있죠. 위탁용역사업으로 공익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영리스타트업 사례로 ‘사단법인 니트생활자(이하 니트생활자)’와 ‘사회적협동조합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이하 지소행)’ 두 조직을 소개합니다.‍ ‍ 2019년 작은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니트생활자는 무업기간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는 청년들이 연결되는 다양한 커뮤니티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립/은둔 청년 이슈가 대두하기 전부터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ning) 상태의 청년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주고, 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23년까지 다양한 배분/지원사업을 경험하며 청년 이슈에 대한 전문성 향상과 조직 성장을 이뤄냈고, 이를 기반으로 2024년에는 ‘인천청년공간 유유기지 강화’의 운영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지역으로의 사업 확장의 시작점이 되었고, 염원했던 무업청년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하는 기회였습니다.‍ ‍‍ 지소행은 종이팩과 커피박 등 재활용률이 낮은 카페 자원을 수거하여 자원순환 활동을 중심으로 시민과 함께 환경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소행도 2021년 서촌 카페들을 돌며 종이팩을 수거하는 봉사활동에서 시작했는데요.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카페 자원 수거사업을 시작하면서 서울시 중구, 성동구, 마포구, 은평구 등 지자체와 차례로 커피박 수거 위탁용역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사회적 가치 창출 기반을 동시에 마련한  케이스입니다. 위 두 사례는 사용자의 경제적 능력이나 지불 동기가 부족하여 영리 비즈니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를 비영리 조직의 공익 활동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각각 청년경제활동인구 감소와 저조한 카페자원 재활용률이라는 사회문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자 하는 지자체가 지불 주체가 되고, 비영리 조직은 효과적으로 공익 활동을 수행하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죠. ‍한편, 사업비 규모가 큰 위탁용역사업은 위탁사 선정에서 수탁사의 조직 역량을 중요하게 평가하여 아직 사업수행 경험과 조직원 전문성이 부족한 초기 비영리 조직이 도전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요. 어느 정도 유관 경력과 네트워크를 마련한 뒤에 도전해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저는 위탁용역사업이 비영리 조직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공익 활동 운영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해당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죠. 위탁용역사업 또한 공익 활동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공익 활동을 별도 기획하여 운영하는 것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영리 스타트업이 당장의 수익이 되는 외주용역에 치중하다, 자체 제품 개발에 소홀해지는 것과 비슷하죠. 따라서 위탁용역사업으로 우리 조직의 사업 역량과 신뢰를 향상시켰다면, 그 이점을 잘 활용하여 독립적인 활동을 위한 역량과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훗날 외부 자원 없이도 단단하고 지속 가능한 공익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조직원의 역량 향상과 기부 모금이나 수익 사업 등 수익원 발굴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 ④ 직접 영리 활동으로 버는 ‘수익사업’ ‍마지막 수익사업은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죠. 앞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수익사업의 이익을 공익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재투자한다면, 비영리 조직도 영리 기업과 다르지 않게 대부분의 수익사업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무관청 신고, 이사회 승인 등 일련의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요.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익 창출로 경제적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소셜벤처, 스타트업 등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은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습니다. 조직원의 동기 부여가 상대적으로 불리하여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미래 이익 배당이나 지분을 담보로 하는 투자 유치가 불가능하니 신규 사업 및 사업 확장을 위한 재원 조달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제도적으로 이런 불리한 지형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익에 대한 법인세 감면, 재산세, 취득세 등 지방세 감면, 공익 목적 서비스 매출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정부조달 우선구매 등 비영리 조직만을 위한 제도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죠. 또한, 사업 특성에 따라 비영리 조직만의 높은 공익성을 소비자에게 전략적으로 소구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직접 영리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다른 방법으로 얻은 수익에 비해 그 사용이 자유롭습니다. 기부금은 기부금품법에 따른 사용 제한이 있고, 배분/지원사원이나 위탁용역사업은 그 나름의 사업비 사용 규정이 마련입니다. 때문에 비영리스타트업 ‘사단법인 피치마켓(이하 피치마켓)’처럼 조직의 공익 활동을 잘 수행하기 위해 수익사업을 주 수익사업으로 선택한 사례도 있습니다. ‍2014년부터 시작한 피치마켓은 발달 장애인이나 경계성 지능인과 같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쉬운 글 콘텐츠를 제작하는데요. 설립 초기의 장애인 복지 관련 배분/지원사업으로는 인건비를 전체 사업비의 15%밖에 사용할 수 없는 제한 규정이 있어 쉬운 글 콘텐츠 연구 개발을 위해 사업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 이처럼 장애인의 일회성 문화활동 지원은 가능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느린 학습자의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쉬운 글 콘텐츠 연구 개발은 불가능한 배분/지원사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치마켓이 선택한 것이 바로 수익사업이었습니다. 쉬운 글 도서나 월간지, 특수교사를 위한 교육자료를 판매하는 수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습니다. 피치마켓은 비영리 조직이 수익사업으로 수익 창출과 동시에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이상적인 ‘사회적기업’ 모델로 볼 수 있는데요. 비영리 조직도 인증 요건을 갖추면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피치마켓 또한 사회적기업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죠. 저는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이 사회적기업 모델에 적합한 법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자 유치나 큰 규모의 이익 배당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적기업 비즈니스 모델은 비영리 조직의 제도적 혜택을 활용했을 때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부 모금사업, 배분/지원사업 등 다른 방법과 혼합하여 조직의 자원 조달 방법을 다원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팩트 비즈니스와 사회적기업을 새롭게 시작하시려는 분들이라면 법인격으로서 비영리를 고려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 우리는 돈 잘 버는 비영리 조직이 필요합니다. ‍ 긴 글을 읽으며 비영리 조직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적합한 법인격이 아니라는 것은 실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을 지속할 좋은 기회와 방법들도 존재한다는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새롭게 시작하는 비영리 조직이라면 ‘배분/지원사업 → 기부 모금 → 위탁용역사업 → 수익사업’의 순서로 시도해 보기를 권합니다. 우선, 공익 활동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배분/지원사업의 자금과 교육을 활용하여 시행착오를 줄이고, 우리 공익 활동의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여 적합한 기부 모금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축적한 전문성과 공익 활동 경험을 기반으로 위탁용역사업에 지원하여 조금 더 큰 규모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비영리 조직이 자체적인 수익사업으로 얻은 기금으로 더 독립적이고 혁신적인 공익 활동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위치를 목표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비영리 조직에 만능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은 없습니다. 공익 활동의 특성과 주어진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벌기 위한 특수 여건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비영리 회계와 관련 규정을 잘 숙지해야 컴플라이언스 리스크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고, 비영리를 지원하는 공공/민간의 자원과 제도적 혜택을 잘 알아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돈 잘 버는 방법을 고민하는 비영리 조직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벌어서 더 큰 사회혁신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 비영리 조직에 도전하는 사람도 늘어날 테니까요. 비영리를 꿈꾸는 사람이 늘면 유관한 자원과 혜택도 함께 늘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비영리 조직이 확장되는 선순환이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에 한 걸음 가깝게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 ‍ 글 | 나민수 ‍ 비영리 조직이 선한 일을 잘하게 돕는 '비영리 액셀러레이터'이자, 벤처 투자 기법으로 임팩트 기부를 돕는 '벤처 필란트로피스트'입니다. 아산나눔재단에서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을 담당하며 스타트업 성장 전략과 근거 기반의 임팩트 커뮤니케이션으로 비영리 조직이 효과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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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이 그래서 뭔데요?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이 그래서 뭔데요? by 🥨채원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는 말이죠. “인간 중심의 AI” — 언뜻 봤을 때 좋아보이긴 하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인간 중심의 AI라는 개념 자체가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여 아직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고도 볼 수 있고요. 이런 경우, 일단 이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분석하면 조금 더 명확하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방식을 사용하여, 학계에서 쓰이는 인간 중심의 AI라는 개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되는지 알아본 연구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같이 읽어보려고 가져온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에서 무엇이 인간 중심적인가?: 연구 지형 지도‘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해당 논문은 2023년에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라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의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인간 중심의 AI’ 혹은 ‘인간 중심의 머신러닝’을 키워드로 하는 (논문 작성 당시 2022년 7월 기준) 이천여편의 논문 중, 몇 단계의 필터링을 걸쳐 최종적으로 431편의 논문을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 중심의 AI라는 개념이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저자들이 분석한 논문을 기반으로 만든 지도를 같이 살펴볼까요? 여기서 색깔은 각각의중심 주제를, 크기는 해당 주제에 속하는 논문의 비율을 보여줍니다. 오른쪽 하단의 가장 큰 파란색 원에서 보여주듯이, 인간 중심의 AI 연구 중 절반 정도는 인간 중심의 접근방식을 사용한 디자인 혹은 평가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였습니다. 여기서 인간 중심의 접근도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연구는 AI가 사용되는 시스템이 사용자 (안무가나 방사선 전문가, 임산부 등)를 염두해 둔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해당 AI를 ‘인간 중심적’이라고 일컫습니다. 이 외에도 왼쪽 하단의 녹색 부분이 나타내는 설명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AI 연구가 20% 정도, 왼쪽 상단의 분홍색으로 표현된 AI와 인간이 같은 팀으로 협력하는 시나리오의 연구가 20%정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오른쪽 상단의 다양한 노란색 원들은 공정성이나 편향 등을 연구하는 등 다양한 접근 방법의 윤리적 AI 연구를 나타냅니다. 저자들이 논문을 작성했던 2022년 여름에서 2년 이상 지난 지금 이러한 주제의 연구는 훨씬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지금도 이와 같은 비율로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 분석은 인간 중심의 AI라는 분야 안에 얼마나 다양한 주제가 공존하는지 보여줍니다. 여전히 알쏭달쏭한 인간 중심의 AI라는 개념이지만, 앞으로는 해당 키워드를 들었을 때 이 지도를 떠올리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특정 기술이 ‘인간 중심적’이라고 할 때, 누군가는 그저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했다는 의미로 쓰기도 하고 누군가는 인간과 AI가 같이 무언가 한다는 의미로, 혹은 AI를 둘러싼 윤리, 법리, 신뢰의 문제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는 것을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들은 인간 중심의 AI라는 단어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제공합니다. 인간 중심의 인공 지능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 사용자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데이터의 기본 가치, 편견, 한계, 데이터 수집 및 알고리즘의 윤리를 공개하여 윤리적이고 상호 작용적이며 논쟁 가능한 사용을 촉진합니다.” (Capel & Brereton, 2023, 13쪽) 독자분들은 이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글을 읽기 전에 어렴풋이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가요? 앞으로도 제가 재밌게 읽은 논문을 종종 가져와보도록 할게요! 지적장애인과 AI 기술의 바람직한 관계는? by 🤖아침 나와 AI 기술의 관계도 복잡한데, 지적장애인과 기술의 관계라니요. 장애인 당사자도, 관련 전문가도 아닌 입장에서 상당히 막막했지만 지난 여름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공익활동 모임에서 이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지적장애인 아들을 둔 모임장님이 제시한 목표는 "인공지능 시대에 지적장애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도움을 구하고, 시작하는 것". 기술의 희망찬 약속을 의식적으로 경계해온 저로서는 처음에 다소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임에서는 폭넓은 관점을 다루며 기술이 장애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부터 오히려 소외를 강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편하게 논의했는데요. 그럼에도 기술 비판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면 문득 작동하는 자기검열, 장애인과 AI의 긍정적 전망에 내가 뭐라고 찬물을 끼얹나 싶은 마음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불확실한 마음을 다스리고 갈피를 잡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함께 찾아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는 최근 AI 기술과 지적장애에 연관되는 사례를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시각 접근성을 개선하는 서비스나, 수어를 인식하는 컴퓨터 비전 기술, 언어 장애인을 위한 개인화된 음성 인식, 신체/인지 장애를 보조하는 외골격 로봇 등 각종 보조 기술을 테크 기업이 즐겨 홍보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의외였습니다. 지적장애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례 중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발달장애 진단 및 돌봄을 돕는 AI 모델이나 지적장애인 교육을 위한 맞춤형 챗봇 정도였습니다. 이같은 사례들은 주로 장애인을 기술의 혜택을 받는 수동적 수혜자로 상정하고 있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기술 수혜자보다 사용자로서 장애인 당사자의 삶과 기술이 연결되는 경험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거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 결과물로 (경도)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AI 워크숍을 설계하고 진행해보게 되었습니다. 10월 8일에 모임 과정과 결과를 (모임장님이) 공유하는 오프라인 행사가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들러주세요. 보다 자세한 기록도 별도의 글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 소식- 당신 옆의 공.공.공. (2024-10-08)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AI 윤리와 가이드라인 (2024-10-21, 온라인) 국립중앙도서관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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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추비 췍!
업추비 췍! - '먹기'만 하는 업무추진비 2024.09.25. 구독자님, 지난해 띠모가 열심히 정리했던 업무추진비 기억하시나요? 대전 지방의회 업무추진비 내역을 점검해 3차례에 걸쳐 보냈었는데요. 이번에는 디트뉴스24와 시민과 함께 대전 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점검했어요. 지난번과 동일하게 업무추진비 내역을 점검하고, 의심 가는 내역은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한번 더 점검했어요.  그리고 점검 기준은 청탁금지법과 지방자치단체회계에 관한 훈령을 확인했고요. 기간은2022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예요. 업무추진비는 어떤 경우에 사용하면 안 되는 거야? <지방자치단체 회계관리에 관한 훈령>에서 업무추진비 사용 제한하는 항목이 있는데요. 내용을 함께 살펴볼게요. (1) 법정공휴일 및 토ᆞ일요일은 사용(2) 관련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3) 비정상시간대(23시 ~ 다음날 6시)(4) 사용자의 자택 근처(5) 주류판매를 주 목적으로 하는 업종에서 사용 그리고 '간담회 등 접대비'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인 1회당 4만원 이하 범위에서 집행해야 한답니다. 훈령에서는 4만원, 청탁금지법은 3만원이에요(현재는 5만원 이하)위에서 언급한 시간, 장소에서 사용하려면 업무 관련성이 입증되는 객관적인 증빙 서류가 있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어요. 만약 다른 지역에서도 사용하려면 출장 명령서 등의 증빙 서류가 있어야 하고, 4만원 이상 사용하려면 추가 집행 이유가 담긴 증빙 서류가 있어야 해요. 우선 대전시청과 대전 동구청은 의심 내역이 없었어요. 이장우 시장은 과거 업무추진비 집행품의 과정에서 공문서 위조한 내용으로 처벌 받은 적이 있어요. 현재 공개 기준으로는 훈령과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여요. 대전 동구청은 지난해 동구의회에서 업무추진비 내역을 점검 한 바 있어요. 동구청장의 사용내역에서도 특이점을 찾을 수는 없었어요. 다만 잘못 사용한 내역이 없어보일지라도 이것이 잘 사용하고 있다라고만 판단하기에는 어려워요. 공개 내역은 한정 되어 있고, 영수증 내역을 건 수 마다 확인 하기도 어렵거든요. 나중에 업무추진비 내역을 보시다가 이상한 점이 있다면 띠모에게 한번 알려주세요!그럼 이제 남은 4개 구청장의 사용내역을 살펴볼까요? 1) 대덕구청 먼저 대덕구청장 사용 내역이에요.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한 건은 1건이에요. 한번 살펴보면요. <대덕구청장 업무추진비 주말 사용 사례> 띠모는 어떤 부분에서 의심 했을까요? 사용한 2022년 7월 9일은 토요일이에요. 토요일은 지방자치단체회계에 관한 훈령에 따르면 사용이 제한되고 있죠. 그래서 해당 내역에 대한 공식적인 증빙자료를 요청했어요. 최충규 대덕구청장의 주간 행사 계획이에요. 7월 9일 토요일, 대덕구청장의 공식 일정은 오후 1시부터 시작이에요. 오전은 별 다른 계획이 없는데, 어떻게 이른 아침 의전 수행을 했다고 하는 걸까요? 이에 대한 소명을 요청했어요.  그리고 대덕구청장은 다른 자치단체장들에 비해 주말 사용이 월등히 높아요. 물론 공식적인 증빙자료만 있다면 사용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업무와 사안 등에 사용하는 것이 맞아보여요.  2) 서구청 서구청 업무추진비 법령과 훈령 위반 의심 내역이이에요. 서구청은 공개부터 부실했는데요. 한번 볼까요? <서구청장 업무추진비 사용시간 미기재 및 식사 가액 위반 사례> 서철모 서구청장 업무추진비 공개 내역 중 의심 내역을 가져왔어요. 무언가 빠져 있죠? 2022년 7월 서구청장 임기 시작일부터 사용 시간을 전부 공개하고 있지 않아요. 시간 공개도 필수에요. 훈령에서 23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사용을 제한하고 있죠? 이 시간대를 제한하는 이유는 업무 연관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거예요. 밤 11시부터 다음날 6시에 어떤 업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을 공개하는 것은 필수죠. 그리고 언론사 간담회에서 1인당 3만원 이상의 식사를 한 것을 확인 했어요. 청탁금지법에서 1인당 식사 가액은 3만원 이하로 사용하게끔 되어 있죠? 해당 공개 내역이 맞다면 명백히 법령 위반 사안이죠. 그리고 올해 1월 서구청장은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요. 4번을 살펴보면 출장지에서 1인당 식사금액(훈령 4만원, 청탁금지법 3만원)기준을 훌쩍 넘겨 사용했어요. 출장이라고 해서 해당 금액을 넘겨서 사용 하는 것은 안 되죠. 해당 내역들에 대해 소명을 요청했어요. 3) 유성구청 이번에는 유성구청 업무추진비 법령과 훈령 위반 의심 내역이이에요. 한번 살펴보면요. <유성구청장 업무추진비 사용 시간 위반 및 식사 가액 위반 사례> 정용래 유성구청장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서 언론사 관계자 등과의 식사에서 1인당 3만원을 초과한 내역을 확인 했어요. 1번과 4번 내역인데요. 둘 다 3만원이 넘었죠? 그리고 23시를 넘어 결제한 내역도 확인 했는데요. 23시 33분, 23시 7분으로 두 건의 내역을 확인 했어요. 결제한 시간이 23시를 조금 넘었다고도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늦게 결제 할 수 밖에 없었던 증빙 서류 등이 필요하겠죠. 위 내역에 대한 소명도 요청했어요. 4) 중구청 드디어 마지막 중구청이에요. 중구청도 법령 및 훈령 위반 의심 내역이 있었는데요. <중구청장 업무추진비 식사 가액 위반 사례> 중구청은 지난 4월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김제선 청장의 사용 내역만을 살펴봤어요. 그 전인 김광신 청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이 됐었죠. 내역을 살펴보면요.1, 2, 4번의 경우 해당 식당은 1인당 3만원 금액을 맞추기 어려운 식당으로 확인 했어요. 1인당 약 4만원에 가까운 식당에서 3만원으로 어떻게 식사를 했는지 확인이 필요해요. 그리고 3번의 경우 언론사 간담회로 1인당 3만원 넘게 사용한 것을 확인 했어요. 지난 지방의회 점검 때도 그렇고 왜 계속해서 이 3만원 초과금액이 등장하는 걸까요?부패 우려가 있는 식사 대접의 경우 더 꼼곰히 사용하고 공개하는 것이 맞아요. 경각심도 필요하고요. 많은 건수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부분이에요. 그래도 좀... 잘 공개하고 있는 곳이 있을까? 그래도 잘 공개하고 있는 곳이 어디 있을지 띠모가 한번 더 찾아 봤어요. 먼저 대전지역에서는 대전시의회와 대덕구의회와 동구의회에요. <대전시의회 부서별 업무추진비 공개 사례> 대전시의회는 각 담당과별로도 공개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각 부서별로도 공개를 하고 있는 점은 다른 의회와는 차별점이라고 보여요. <대덕구의회 업무추진비 주소지 공개 사례> 대덕구의회 업무추진비 공개내역인데요. 원구성과는 별개로 사용 장소의 주소지도 공개하고 있어요. 주소지를 공개하게 되면, 보다 정확한 위치, 자택과의 거리 등을 찾기 쉬워지겠죠?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어요. 집행 목적이 의정활동 보좌 직원격려로 일관되게 계속해서 부실해요. 집행 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돼요. <동구의회 업무추진비 주소지 공개 사례> 위 내역은 동구의회 업무추진비 공개내역이에요. 동구의회도 사용장소의 소재지를 적고 있죠. 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사용했더라도 '해당 장소 외 1곳' 으로 적지 않은 것도 투명한 공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집행목적도 비교적 구체적이죠? <서울 관악구청장 업무추진비 집행장소 상세주소지 공개 사례> 서울 관악구청 업무추진비 공개 내역이에요. 차이가 보이나요? 결제 방법도 제로페이, 카드 결제 등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고요. 집행 장소도 사용한 장소의 주소도 상세하게 적고 있어요. 집행 목적도 비교적 상세하고요. 이정도 수준으로라도 공개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가 될 거 같아요.점검 이후 각 구청에 소명자료를 받고 정리 중에 있어요. 정리 결과는 나중에 변화 된 내용까지 한번에 공유할게요!오늘은 다시 업무추진비 내역을 점검 해봤는데요. 업무추진비가 금액적으로 크지는 않을 지라도, 단체장들 연봉과 비교해보면 비슷하거나 많아요. 그만큼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되는 돈이에요. 앞으로 자치단체, 지방의회, 출자, 출연기관 업무추진비가 제대로 사용되고 투명하게 공개되는지 계속 함께 지켜봐요. . . 여러분이 살고있는 지역에서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이 업무추진비를 어떻게 쓰고 있나요? 각 자치단체 또는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전부 공개되어 있으니, 여러분도 한번 확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글은 뉴스레터로 발행된 지난 띠모크라시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띠모크라시 모아보기🧡 띠모크라시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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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여움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어떤 귀여움 앞에서 멈칫 ‘귀여운 게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이 시대의 속담이 되었다고나 할까. 세상이 유머와 다정함, 순수함 같은 것을 점점 잃어가는 요즘, ‘귀여운 것’은 사람들이 절대 잃고 싶지 않은 마지막 ‘숨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도 기계처럼 강하고 똑똑하고 효율이 뛰어나야 살아남는 시대, 기계처럼 반듯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볼펜 꼭지에, 열쇠고리에, 손톱에 그려 넣은 그림에, 누구도 보지 않는 잠옷에, 마치 참을 수 없이 삐져나온 듯한 크고 작은 귀여움을 간직하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귀여운 건 못 잃어.’  나도 귀여운 걸 못 참고 못 잃는 사람으로서, 귀여운 건 거의 옳고 이롭다고 생각한다. 사랑스러워야 귀엽기 때문에 상대를 향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게다가 귀엽다는 생각은 너그럽다. 서투름과 실수도 안아주고 사랑스럽게 여겨주는 말이니까. 나는 첫 출산을 시작으로 쉼 없는 육아와 함께 따라온 쉴 새 없는 귀여움을 누리며 꽤 ‘평화’라는 말 가까이 살고 있다고 느꼈다. 아이의 존재는 평화 아닌 것을 떠올리기 힘들게 사랑과 평화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떤 ‘귀여움’ 앞에서 멈칫 걸음을 멈췄다. 결코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가 태어난 지 8개월 무렵, 아기가 들을 만한 수업이 있을까 하고 인근에서 열리는 문화센터 강좌를 검색하던 중 이런 강좌를 발견했다. <오감통합놀이 - 군인놀이> 이 어색한 단어 조합에도 놀랐는데, 사실 더 충격받았던 것은 이 강좌를 들을 수 있는 나이였다. 생후 4개월부터 25개월의 아기들이 이 강좌의 대상이었다.   이제 고작 8개월인 우리 아이도 그랬지만, 4개월이라면 이제 막 100일을 지나 뒤집기를 시도하거나 빨라도 배밀이를 하고 있을 아기가 문화센터에서 ‘군인놀이’ 강좌를 수강한다니. 그 모습을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떤 내용으로 진행될까 궁금했지만 수강신청을 하지는 않았다. 그 귀여움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몇 개월 뒤, 동네 지인의 SNS에 마침 이 수업의 사진 후기가 올라왔다. 그때 지인의 아기는 6개월이었는데, 사진 속 아기는 군복 코스튬을 입고 앉아 있었다. 아기의 주변에는 총 모양의 플라스틱 장난감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었다. 정말 궁금했지만, 지인에게는 차마 군인놀이 수업을 하는 동안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장난감 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을 꺼내 볼 용기가 안 났다. 대화의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자꾸 그런 걸 진지하게 파고들고 물어보면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안 들까 봐 참았던 것 같다.  나는 그 후로 계속 왜 이 귀여움이 괜찮지 않은지 스스로 설명할 말을 찾고 싶었다. 이건 그저 놀이일 뿐이고 진짜도 아닌 가짜니까, 마냥 귀엽게 볼 수는 없는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순 없었다. 이 귀여움은 괜찮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군인 놀이’를 검색하면 유아에게 행해지는 수많은 군대 컨셉의 유아교육 프로그램과 행사 후기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초등학생 병영 체험 캠프는 오래전부터 들어봤지만, 아예 어린이집에서도 행사업체를 통해 교실을 군대나 전쟁터처럼 꾸며 체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사진 속 아이들은 ‘충성!’을 하고 있거나, 엎드려서 총을 겨누고 있거나, 내무반처럼 꾸며진 곳에 군용 모포를 덮고 있기도 했다.   ‘오감 통합 발달’이니 ‘직업 체험’이니 하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어른들의 욕심을 채우는 인형 놀이에 그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만 1세 미만 영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더욱 그렇다. 유아 문화 강좌나 교육 프로그램이 이처럼 주로 겉으로 보이는 것 중심으로 기획되고, 그에 비해 소재와 내용을 아이들과 함께할 때 ‘어떻게’ 다룰 것인지 신중히 고민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 결과 아이들은 인형처럼 수동적인 존재, 납작한 ‘대상’이 되고 만다. 어른들은 적어도 이것이 아이들의 발달이나 교육을 위한 것인 척 포장하는 거짓말은 멈춰야 한다.   평화의 정신을 흡수하기를! 마리아 몬테소리는 만 6세 이하의 유아들이 ‘흡수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시기 환경에 놓여진 것들을 이용해 정신의 근육을 만든다고 했다. 이 시간을 통과한 아이들에겐 어떤 정신이 남을까? 아이들이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느끼고 흡수하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 늘 최우선시 되었으면 한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을 위해서나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폭력적인 문화가 아니라 평화의 지혜를 흡수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말이다. 적이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법을 배우게 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이해하는 법을 흡수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너그러운 마음씨와 사려 깊은 태도를 흡수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아무리 해도 기쁜 고민이다.   ‘사이좋게 지내라’ 가르치면서 무기 체험을 부추기는 어른들 지난 2023년 10월, 역대급 규모라고 홍보되었던 서울 ADEX에 갔다가 우연히 본 장면들도 내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무기 전시회인 그곳에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관람객이 아주 많다는 것부터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곳에서 어느 부모는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이에게 “더 진짜같이 해야지!”라며 군인다운 사격 포즈를 강요해 사진을 찍기도 했고, 전시장 곳곳에서는 부모들이 먼저 무기 체험을 적극 부추기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유아들에게 군인놀이를 시켜주겠다는 것도 이처럼 무기 체험, 전쟁 체험을 어른들이 나서서 부추기는 꼴이다.   우리는 전쟁을 떠올릴 때, 이상하리만큼 훌륭하고 웅장하다는 느낌만을 표지로 기억한다. 전쟁 영웅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은 오랜 시간 주입되어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다. 그 표지를 넘겨보면 소박하게 아름다운 우리 삶의 모든 장면이 핏빛으로 물들고, 생생히 웃던 이웃들이 거리에 시체가 되어 누워있고, 온 동네가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차는 끔찍한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어쩐 일인지 그런 이야기를 전쟁의 표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놀이가 가능한 걸까?  만약 지금 우리나라에서, 옆 동네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면 전쟁이 놀이가 될 때, 귀엽고 재미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일어나고 있지만 그게 우리나라가 아니라면, 우리 동네가 아니라면 아이들의 전쟁놀이는 귀엽고 재미있을까? 아이들이 점점 더 진짜 같은 무기 모형으로 더 진짜 같은 군인 흉내를 내면서 논다면, 자라면서도 계속 그렇게 놀고자 한다면, 아무도 그 놀이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심지어 어른들이 멋있다며 부추긴다면? 그 놀이가 끝내 진짜 현실에서 재현되지는 않을지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내 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사달라고 하면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지 미리 그 대답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무기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발된 무시무시한 도구라고, 전쟁은 상대를 힘으로 때려부수고 죽이며 싸우는 일이라고, 사람답지 못한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폭력행위라고. 지금 어린이들이 들고 있는 장난감 총, 칼이 비록 진짜는 아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폭력에 익숙해지게 하고 상대를 향한 냉소와 경멸을 자라게 한다는 인식이 보편상식이 되기를 꿈꾼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다 내 생각과 같을 수는 없어. 친구는 나랑 다를 수 있어.’, ‘친구를, 사람을 아프게 하면 안 돼.’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가르친다. 그런데 어째서 군대의 폭력은 괜찮을까? 어째서 훌륭하고 대단한 어른들이 잔뜩 모인 ‘국가’씩이나 되어서 상대를 아프게 하고, 파괴해서 이기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의아할 법도 하다.   익숙한 것도 다시 보자!평화의 속삭임에 춤추는 교육을 위해서라면 언어의 변화가 정신의 변화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뚝, 조용히 해.’, ‘혼난다. 그만.’, ‘말 안들어?’처럼 짧고 무서운 명령과 협박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면 마치 아이처럼 흠칫 놀라곤 한다.  그보다는 나은 버전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선 아기가 울 때 어른들이 “아이고 누가 그랬어! 우리 XX이 누가 그랬어!” 하면서 탓할 대상을 찾는다. 그러면서 아기는 울음을 그친다. 때로 어른들은 울음의 원인이 된 사람이나 사물을 “때찌!”하며 대신 응징해 주기도 한다. 나도 이런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랐지만, 이 사소한 장면조차 반복해서 마주하니 불편하게 느껴졌다.  ‘누가 그런지 중요한 상황도 아닌데 왜 자꾸 누가 그랬는지 찾지?’, ‘그냥 서러운 마음, 놀란 마음을 달래주기만 하면 안 되나?’ 그게 우리도 모르게 응징과 복수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고 하면 비약일까? 다만 난 아이를 빨리 달래기 위해 그렇게 단순한 방법을 쓰는 것이 아이에게 최선의 도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사소한 것으로도 고민을 거듭하며 주변을 피곤하게 하진 않을까 미안한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랑의 힘을 더욱 굳게 믿으며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아마 계속 묻는 일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이거 괜찮은 걸까?’, ‘이거 당연한 걸까?’, ‘예전엔 몰라서 그랬지만, 이제 더 좋은 방법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평화의 속삭임에 귀를 쫑긋 세우고 평화의 리듬에 맞추어 나비처럼 나풀나풀, 지렁이처럼 느릿느릿, 콩처럼 콩콩콩, 쌀처럼 쌀쌀쌀 신나게 웃기게 귀엽게 춤추며 살아가고 싶다. 기후와 정치와 농업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절망으로 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평화에의 의지를 굽힐 수가 없다. 우리 귀여운 아이들의 맑고 환한 웃음을 보라.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지켜야 할 평화의 표지가 바로 이 얼굴들 아닌가.               / 푸른 지리산을 품은 산청에서 다정한 이웃들과 많이 웃으며 산다.어린이, 농촌, 평화, 교육에 대해 늘 생각한다.엄마로 태어난 지 3년차로, 두 아이와 함께 날마다 새롭게 세상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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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베트남에선… 공부… 잘했어요” 사라진 공고생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6화]
3월 첫 등교일 공업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눈에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게 있다. 이미 친구들에게 “공돌이 학교”, “양아치 우글거리는 곳” 등 온갖 혐오의 말을 몇 번씩 들었을 테니, 아이들의 위축된 눈빛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다. 아프지만 현실이 그렇다. 그런 만큼 첫 수업시간엔 일부러 힘찬 자기소개를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지난 봄날, 어느 1학년 교실 첫 국어수업에서 이정희(가명)는 열여섯 번째로 자기소개를 했다.“저는 ○○중학교에서 온 이정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한 갈래의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은 정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난히 짧은 소개에 한 남학생이 짓궂게 물었다.“남친 있나?”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약 40개의 눈이 일제히 정희의 입으로 향했다. 정희는 대답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느그들 첫날부터 너무한 거 아이가? 정희야, 그냥 대답 안 해도 된다잉.”나는 얼른 정희를 자리로 돌려보내려고 했다.“저는 몰라요.”갑자기 정희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다, 없다‘가 아니라 ‘모른다‘고 한 게 어색했지만, 요즘 아이들이 많이 쓰는 일명 ‘황당 어법‘으로 여겼다.“그래 정희야, 좋은 대답이다. 개인정보를 쉽게 알려주면 안 되는 기다.”직업계고는 목적에 따라 공업, 상업, 보건 계열 등으로 나뉘는데, 여학생이 공업 계열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흔하지 않아 쉽게 눈에 띄고, 그 탓에 더욱 놀림과 차별의 대상이 되곤 하는 여자 공고생 이정희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나는 자기소개를 마무리 한 뒤, 활동지를 나눠주고 작성하게 했다. <내가 원하는 수업>1. 나를 소개해보세요.2. 고등학교에 오기 전 지금까지 가장 좋았던 수업은 어느 선생님의 수업인가요?(교사명, 과목, 좋았던 이유)3. 어떤 수업이 싫은가요?4. 선생님께 바라는 점을 자유롭게 작성해주세요.(비밀 보장됨. 엄마, 담임선생님에게 말 안 함.)5. 꿈을 적어주세요.(취업, 대학, 전학, 기타)6. ○○공고에 온 이유는? 나는 주로 모둠 수업과 활동 수업을 많이 한다. 자존감 낮은 공고 아이들이 모둠 내에서는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은 모둠 수업을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순서다.1학기 시작 3주차가 됐을 때, 정희 담임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저희 반에 다문화 학생이 있는데, 국어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는 미달자가 아니길 바라는데.”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부모님 중 한 명이 외국인이어도, 고교에 올 정도가 되면 다들 소통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문화 학생이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기초학력반, 일명 ‘나머지공부반‘에 배정되지 않았다.“근데, 걔가 한국말을 몰라요.”매주 세 시간씩 벌써 2주 수업을 마쳤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내 수업에서 발표를 한 번도 안 한 학생은 없었다. 근데, 한국말 모르는 학생이 있다니?“정희예요. 정희! 정희가 한국말을 몰라요. 쓰기는 전혀 안 되고, 말하기도 거의 안 돼요.”더 믿기 어려웠다. 정희는 이미 내 수업에서 세 차례나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 설명에 따르면 정희는 ‘중도입국자녀‘였다. 정희 어머니가 한국에 와서 결혼을 했고, 이듬해 열두 살인 정희를 베트남에서 데려왔다.그렇다 해도 정희는 벌써 고교 1학년, 입국한 지 5년이나 지났다. 한국 기준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한국어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을 터다. 내가 몰랐던 정희의 비밀은 이어졌다.“사실 정희는 열일곱 살이 아니에요. 이미 우리 학교에 2년 전에 입학했고, 두 번이나 휴학해서 지금 열아홉 살이에요.”학교 자체를 싫어하거나, 공고 ‘스펙‘을 지우려는 공고생은 보통 자퇴를 선택한다. 하지만 정희는 휴학을 했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두 번씩이나 말이다. 어떻게든 학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이었다.난 첫 수업 때 정희가 쓴 ‘내가 원하는 수업’ 활동지를 꺼내 보았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1. 나를 소개해보세요.“저는 이정희입니다.”(2~5번은 모두 공란)6. ‘○○공고에 온 이유는?“잘 부탁드립니다.” 어떤 아이는 문장 한 줄 쓰는 걸 버거워 하고, 몇몇 아이는 아예 백지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정희의 허전한 활동지에서 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나의 실수다. 며칠 뒤 정희 반의 수업에 들어가, 나는 일부러 천천히 출석을 불렀다. “16번, 이정희!”“네.”정희는 여유롭게 대답하고 책을 폈으며, 칠판을 바라봤다. 수업을 하는 동안 조심스럽게 정희를 살폈다. 내가 반 전체에게 질문을 하고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을 하면 정희도 함께 입을 움직였다. 한 박자 느리게 말이다.모둠별 활동 때 정희는 말하기 대신, 정성스럽게 듣는 사람의 역할을 했다. 졸지도 않고, 딴짓을 하지도 않았다. 조심성 많은 조용한 아이로 보였다. 수업이 끝난 뒤 정희를 따로 불렀다. 정희의 눈을 똑바로 보고 천천히 말했다.“정희야, 샘하고 이야기 좀 할래? 이따가 교무실로 좀 온나.”망설이던 정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꾸벅이며 짧게 “네”라고 답했다. 몇 시간 뒤 정희가 교무실로 왔다. 난 정희를 옆에 앉히고 다시 천천히 물었다.“정희야, 샘 말 얼마나 알아듣노?”“저는 머얼라요(몰라요).”정희는 자기를 바라보는 나보다 몇 배는 더 진지하게, 나의 눈빛, 표정, 몸짓을 뚫어질 듯이 살폈다. 목소리 톤에도 집중하는 듯했다. 상대방의 움직임에서 정보를 종합해 의중을 파악하는 듯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니, 내 말 알아듣나?”“저는 머얼라요(몰라요).”첫 수업 때의 정희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와 교실의 아이들은 정희가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베트남에서 왔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그 후에도 쭉 이어진 정희의 침묵과 튀지 않는 조용한 행동, 그 모든 건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진즉에 알아챈 정희의 본능적인 선택이었다.말은 통하지 않아도 차별은 통역 없이도 너무 쉽게 심장에 박힌다는 걸, 차별당하는 자들은 몸으로 안다. 수업 때마다 정희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얼마나 알아 듣노? 60%? 70%?”베트남어를 모르는 나는 이 말을 한글로 종이에 적었다. 그런 다음 종이와 펜을 정희에게 내밀었다. 정희는 ‘아!’ 감탄사를 내뱉더니 “40%“라고 적었다. 숫자와 기호를 조합해 내 질문을 알아들은 것이다. 순간 내 가슴이 뻥 뚫린 듯했다.“오케이! 이해가 안 될 땐, ‘몰라요‘라고 말해야 된데이. 오케이?”“네.” 당시 학교의 큰 화두는 기초학력반 운영이었다. 쉽게 말해, 기초학력 테스트에서 떨어지는 학생이 없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정희에게 테스트 통과는 무척 중요했다. 무엇보다 국어(정희에겐 한국어) 과목 통과가 필요했다. 국어 테스트에서 탈락한다는 건, 정희에겐 ‘강제 커밍아웃’을 의미했다. 베트남 출신이란 걸 알리거나 감추는 건 정희가 선택할 문제였다. 정희는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다.정희는 자신이 아는 어휘와 손짓발짓을 모두 동원해 ‘국어 테스트에선 꼭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읽기·쓰기·듣기·말하기 모두를 힘겨워 하는데, 어떻게 시험의 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눈앞이 캄캄했다. 정희는 그런 나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미안하지만, 정희에게 고통스런 제안을 했다.“정희야, 일단 ‘읽기‘부터 잡자, 응? 시험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쓰기’ 시험까지 통과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그렇게 하는 게 너한테도….”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난 정희가 베트남에서 온 아이라는 걸 순간 잊고 말았다. 그래도 내 말의 진정한 뜻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잠시 정희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저는 머얼라요(몰라요).”처음부터 다시, 손짓발짓은 물론 눈빛과 입술 모양을 총동원해 정희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말의 요지는 이랬다.‘국어 기초학력평가는 읽기와 쓰기를 테스트하는데, 하나라도 점수가 미달하면 탈락이다. 네가 당장 이걸 통과하는 건 무리다. 기초학력반으로 가서 ‘나머지공부‘를 하면 좀 어떤가. 거기에선 1:1 한국어 수업도 가능한데, 내가 도와주겠다. 당장은 힘들어도 한국에서 살아갈 너한테 꼭 필요한 수업이다. 읽기부터 시작하자. 절대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하면 졸업 무렵엔 한국인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을 거다. 그게 너한테 진정으로 필요한 게 아니겠냐.’한참을 떠들었더니 입은 물론 팔다리도 아팠다. 가만히 보고, 듣던 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함께 읽기 테스트 통과를 목표로 노력하겠다는 한다는 걸 동의한 거다. 정희의 두 눈은 새로운 도전이 설렌다는 듯 반짝거렸다. 다음 날, 나는 ‘이정희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일주일 뒤의 기초학력평가는 물론이고 그 후의 교육까지 염두했다. 학교에서는 ‘학습튜터‘ 제도를 활용해, 정규수업 시간에도 정희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했다. 정희만을 위한 첫 번째 국어수업. 나는 읽기 테스트 통과를 위해 여러 준비를 했다. 먼저 기출문제와 예상문제를 정리해 문제풀이 강의를 시작했다. 정희는 쓰기와 말하기는 잘 못했지만, 읽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 정도는 했다. 다만, 어휘력이 현저히 부족했다.“정희야, ‘직장(直腸)’ 아나?”“저는 머얼라요(몰라요).”“베트남어로 하면 ‘trực tràng’이야.”“알아요.”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는 구글 번역기와 네이버 파파고, 챗GPT를 활용했다. 단, 가급적 한국말로 설명하고 도저히 의사소통이 안 될 때는 번역기를 사용했다. 구체적인 상황까지 설명해서 정교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 때는 챗GPT를 이용했다.나는 시험 지문에서 ‘중심문장’ 찾는 방법과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 정답을 찾는 비법까지 설명했다. 마치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것처럼 한국어 어휘카드를 만들어 암기하도록 했고, 부정과 긍정 표현, 종결어미에 주목해 문장의 의미를 아는 법도 알려줬다. 접속 부사가 나올 경우에는 반드시 네모를 치고 문장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연습도 시켰다.10~20점 정도였던 정희의 읽기 점수는 이틀 만에 30점까지 올랐다. 합격 커트라인은 60점. 즉 20문제 중 12개를 맞춰야 읽기 테스트 통과였다. 더욱 서둘러야 했다. 나는 예상문제를 풀어오는 숙제를 내줬고, 정희는 빠짐없이 과제를 해왔다.마침내 일주일이 지나 시험 전날이 됐다. 마지막 문제집을 푼 뒤 정희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더듬더듬 말했다.“선생님… 저… 베트남에선… 공부… 잘했어요.”정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느낀 차별과 고독, 언어 장벽에 따른 학습 결손을 경험하면서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그래, 안다. 여기서도 잘하게 될 끼다. 걱정하지 마레이.”마침내 기초학력 진단평가 시험을 치는 날. 정희는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정희가 읽기 과목에서 받은 점수는 딱 60점. 일주일간의 벼락치기는 가까스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그렇다고 정희가 기초학력반을 벗어난 건 아니다. 쓰기 과목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희는 국어, 영어, 수학 모든 과목의 기초학력반에 편성됐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희가 실패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우리는 작은 성공의 경험을 목표로 했으니,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정희와 나는 1:1 한국어 수업을 꾸준히 하기로 했으니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니까. 하지만, 우리의 도전은 허무하게 끝났다. 아니 시작도 못했다. 정희는 기초학력반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정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정희 담임선생님에게 사정을 물었다.담임선생님은 정희 부모님께서 정희가 학교에 오래 남는 걸 원하지 않았다는 것과, 정희 역시 학교에 올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더 꼬치꼬치 묻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열아홉 살 정희가 또 휴학을 하나보다 여기고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1학기가 끝날 무렵, 성적 처리를 하며 정희의 상황이 ‘무단결석‘에서 ‘자퇴‘로 바뀐 걸 알게 됐다.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이 공고를 어떻게든 다니려고 두 차례나 휴학했던 ‘베트남 소녀’ 정희는, 그렇게 완전히 학교를 떠났다.학교의 누구도 정희가 왜 자퇴를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백인이 아닌 외국인을 향한 차별이 한국어처럼 자연스럽게 통하고 공유되는 이 땅에서 정희는 강제 커밍아웃 되는 것이, 그것도 전 과목 ‘나머지공부‘로 밝혀지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말 못할 처지가 있을 수도 있고.공고에 입학한 남자아이들의 주눅 든 눈빛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다는 자각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공고에 다니는 여학생의 위축은 어느 정도일까? 세상이 공고에 다니는 여자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떠올리면 쉽게 예측할 수 있다.정희가 왜 학교를 떠났는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우리 사회가 ‘베트남 출신 여자 공고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따져보기로 했다. 구글 번역기로도 쉽게 알 수 없던 정희의 마음은 그때 비로소 이해될지도 모른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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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2)
기억 담기 모임 참여 (23.10.07.) - 듣는 자리 이태원역 1번 출구. 우측으로 돌면, 좁고 경사진 골목이 나온다. 한쪽 벽면에는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이 한창 붙어 있었고, 문화연대에서는 매번 현장을 정비하며 포스트잇을 수거해 분류 보관했다. 일 년 전, 나는 자원 봉사자로 참여해 그 작업을 함께했다. 연휴 전후로 단장한 추모 공간에는 오색빛 메시지가 가득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사실, 포스트잇에 쓰인 내용을 잘 읽지 못했다. 어쩐지 남의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 것만 같아 그 마음이 편치 않았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대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주목했다. 이미 현장이 익숙한 활동가는 바로 앞 편의점부터 방문했다. 따로 챙겨주기 전에 음료를 계산했지만, 사장님은 아랑곳 않고 몇 병을 덤으로 얹어 주었다. 오래된 포스트잇을 떼는 손은 조심스러웠다. 자칫 귀퉁이가 찢어지면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뗀 것은 빈자리로 옮겨졌다. 점성이 낮은 테이프가 비치되어 있었고, 무언가 훼손되지 않도록 애쓰는 마음이 거기 살아 숨쉬었다. 고개만 돌려도 구석에 적힌 혐오를 지우려 물티슈를 박박 문지르는 고생이 눈에 띄었다. 새로 추모 공간이 조성될 때까지 그런 작업이 이어져 왔다. 사무실로 이동해 참사 초기의 포스트잇을 정리했다. 유가족 혹은 지인의 메시지, 생존자 혹은 구조자의 메시지, 번역이 필요한 메시지, 그 외 메시지 등의 기준이 있었다. 활동가들은 판단이 어려운 경우뿐만 아니라 인상 깊은 이야기가 보이면 서로 나눴다. 나는 역시나 그걸 잘 읽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몇 개 아로새겼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기억 담기 모임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분향소 지킴이 연대 (22.12. ~ 23.6.) - 분향소 단상  참사 이후, 한동안 시민 분향소를 찾아 지킴이 활동을 자원했다. 매주 일요일 두 시간 남짓, 그 근방을 지나는 시민들을 맞이하며 국화를 전하거나 서명을 받는 게 주된 역할이었다. 앉을 수 있는 의자가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나는 서 있는 게 편했다. 때 맞춰 교대하는 봉사자와 유가족을 지켜보고 있자니, 몸도 마음도 겸손해졌다. 또한, 그곳을 방문하는 모두에게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발길을 옮기지 못해 머뭇대는 모습이 흔했는데, 전해 듣기로는 비교적 인적이 드문 새벽 홀로 오열하다 떠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영정 속에 잠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슬픔에 잠긴 누군가를 위해 예를 다해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분향소에서는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면전에 대고 훼방을 놓는 사람들은 꾸준히 많았다. 가령,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고는 "돈 때문에 그러는 거지?"라고 뱉는 식의 무례함들. 하지만 그보다는 헌화하는 행렬이 길었다. 언젠가 다국어로 적힌 홍보물이 설치되자 외국인의 관심 또한 늘었다. 거기 적힌 내용을 읽는 표정은 어찌나 진중하던지. 물론 너무 인접해 희생자 사진을 찍는다면, 정중한 몸짓으로 난색을 표해야 했다. 그럼 대부분 "okay"하며 카메라를 내린 채 뒤로 물러섰는데, 한 번은 "he is my cousin"이라며 양해를 구하는 일도 있어 아차 싶기도 했다. 회화에 능하지 못한 나는 그 순간 미안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꾸벅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위로를 건네지 못한 게 여전히 아쉽게 남아 있다. 어린이들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보호자를 잡아끌었다. "여기 뭐하는 데야?" 궁금해하거나 "한 번 가 볼래!" 내지르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보호자들은 쉽게 당황했지만, 사실 나는 몹시 반가웠다. 오히려 안타까웠던 건, 그 야단법석이 제지 당할 때. 이곳은 배움의 장이 될 수도 있는데, 황급히 자리를 뜨고 마는 게 조금은 미웠다. 그래서인지, 분향소에 시선이 꽂힌 어린이에게 조심스레 흰 꽃을 쥐어 주는 보호자를 목격하면 기분이 들떴다. 동시에 고민하기를, 그토록 순진무구한 눈빛 앞에서 과연 나는 이 참사에 대해 무어라 설명해야 했을까. 곳곳에 쓰인 '기억', '애도', '안전' 같은 단어를 두고도 금세 머릿속이 하얘졌다. 밑도 끝도 없이 파고들수록 내가 외워 온 뜻은 백지장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분향소가 서울 시청 앞 광장으로 이동한 뒤로는,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이 들렀다. 하루는 시설 보수를 위해 운영을 잠시 멈췄는데, 망연자실한 얼굴로 아쉬워하는 어르신을 응대하기도 했다. "일부러 기차 타고 왔는데…" 그는 나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었고, 내일부터 재개할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만하는 줄 알았잖아!" 이어지는 호탕한 웃음에 나도 따라 미소 지을 수밖에. 어쩌면 그런 일화를 쌓는 재미로 지킴이 활동을 이어 가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꼭 외딴섬 같은 공간에 연대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했다. 혹은 지금 참사에 관해 확인하고 학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나에게는 그게 참 어려운 과제다.
[이태원 참사] 0에서 1로, 망설임에서 연대로
2022년 어느 날의 카페, 내가 앉은 자리에서 멀찍이 세 명이 앉아있었다. 이태원 참사 후 몇 주가 지난 때였다. 그들의 대화가 의도치 않게 들렸다. '세월호처럼 장사를 하려고 한다'는 말. 나는 2015년경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을 했고 세월호를 취재하던 피디님과 일하게 되면서 세월호와 관련된 띄엄띄엄 서로 연결되지 않는 현장들에 계속해서 찾아갔다. 단원고에서 목포에서 광화문에서 유가족을 만났다. 세월호 인양선 바로 앞에서 작은 어선을 타고 인양선에 타지 못한 유가족들과 인근을 맴돌기도 했다. 배를 집어삼킨 바다는 새카맣고 거칠었다. 나는 그 시절을 떳떳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유가족들과 자주 만나면서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들을 위로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고, 나는 내 위로의 방법이 어설플 거라 걱정했다. 작은 실수라도 할까봐 잔뜩 몸을 사렸다. 영상에 필요한 질문만 하고, 카메라를 켜지 않을 때면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관찰했다. 가끔 유가족들이 주는 음식과 관심에는 가능한 큰 미소와 함께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손님의 행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카메라는 항상 그들과 멀었다. 목포에서 세월호 인양이 진행될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나의 마지막 세월호 관련 촬영이었다. 목포신항, 철조망이 처져있는 구역에서 파란색 컨테이너를 두 개 놓고 유가족들이 모여 인양선에서 들려올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유가족들과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었다. 날씨가 쌀쌀했고 바닷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유가족 아버지 한 분이 나를 보며 말했다. - 이쪽으로 와. 그렇게 하지 말고.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따뜻한 곳으로 다가와 가까이 앉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이 나의 실패를 증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엉덩이를 들어 조금 더 다가갔으나 끝내 섞여 앉지는 못했다. 이런 마음으로. 이런 몸으로는 무엇도 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자. 그렇게 결심하고 세월호와 점점 멀어졌고, 2017년 말에는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세월호 현장에 더는 가지 않게 되었다. 다시 2022년 카페에서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저렇게 쉽게 이야기하는데 나는 왜 참사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가. 그것이 나에게 질문으로 남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일을 했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을 뿐 애도를 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불현듯 떠오른 기억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포로 내려갔다. 세월호가 인양되어 지상에 놓여지고는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곳. 네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 세월호의 위치를 찾아 헤매다가 파란색 컨테이너 두 개를 발견했다. 위치가 반대쪽으로 옮겨졌을 뿐 과거에 보았던 그때의 컨테이너였다. 철조망에는 여전히 노란색 리본들이 매달려 있었다. 멀리 보이는 세월호 선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음이 들끓었다. 저렇게 큰 배였구나. 바닥에 쓰러져 있던 붉은 영역과 불법 중축된 객실, 큰 프로펠러, 세월이라고 쓰여있는 낡은 글씨. 많은 게 지난 것 같아도 그리 변한 것 같지 않기도 했다. 세월호에 비하면 이태원 참사는 나에게서 거리가 더 멀었다. 이태원을 평소에 잘 찾지 않았고, 할로윈이라는 문화도 낯설었다. 참사 당시 나는 집에 있었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같이 게임을 하는 익명의 상대방들이 채팅으로 말했다. 지금 이태원에 무슨 일이 난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을 눈으로 담아두고 계속 게임을 했다. 게임을 끝내고 나서야 웹에 접속해 뉴스를 봤고,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지금 어디에 있냐고. 그러나 2014년부터 이어진 마음들, 세월호부터 이태원까지, 그간 떠돌던 마음들은 조금씩 연결되었다. 나는 이제 조금이나마 애도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애도에 관해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그 모든 위로의 시도는 실패할 거라는 것. 내 위로는 정확한 위로와는 분명한 격차가 존재하리라. 중요한 건 정확함 그 자체가 아니라 정확함의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를 인정하며 좁혀나가려는 시도, 그렇게 가닿으려는 노력,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아가기였다. 나는 그렇게 불확실한 애도를 다시 시도한다. 재난을 기억하자는 말이 어느덧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는 10주기를 지났고 이태원 참사도 2주기를 앞두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죽음이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새롭게 말할 수 있을까. 이것 또한 또 다른 되풀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인간의 뇌는 가혹하리만치 지루한 것을 금방 잊는다. 정말 중요하고, 아름답고, 새로웠던 것들도 잊혀진다. 지고지순한 연인관계도 지루해지면 끝이 난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루해지고 잊혀지는 것들에 맞서며 무언가를 기억하고 되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는 수차례, 수백번 혹은 수천년동안 반복되었던 것일지라도 그렇게 다시 이야기하고, 쓰고, 말하고, 중얼거리고, 건네는 동안 지루한 것이 새로운 것이 된다. 다시 기억이 된다. 304낭독회에서 들은 이야기다. 한 작가 분이 오랜만에 유가족을 만나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 저희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그분은 이렇게 답했다. - 저희가 뭘 하고 있는지 지켜봐 주세요. 내가 해야할 일은 단지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태도로. 0에서 1로. 침묵에서 발화로. 무에서 유로. 정확한 위로에 다가가기.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나아가기. 그럼 다짐을 되풀이한다.
[6411의 목소리] 나는 10년차 베테랑 환경미화원이다
나는 10년차 베테랑 환경미화원이다 (2024-09-23) 이형진 | 환경미화원 환경미화원들이 새벽에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14년, 경북 경주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했다. 꽤 규모가 큰 주유소라 거래처들이 많았고, 그중에 경주시 산하 용역업체인 쓰레기 수거 사업장도 있었다. 하루는 기름을 넣고 있는데, 기사 한 분이 내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옆에 타고만 있어도 200만원을 줄 테니 같이 일하자는 거다. 당시 최저시급은 5210원, 8시간 기준 일급은 4만1680원, 월급은 209시간 기준 108만8890원이었던 내게 20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일단 면접 날짜를 잡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이야기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몹시 부정적이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형님, 그 일 사람이 할 일이 못 됩니다. 허리도 아프고 냄새도 심하게 나고 위험하고 더러우니 절대 그 일 하지 마세요.” 나보다 먼저 같은 제안을 받았고, 그 일을 하다가 단 며칠 만에 그만둔 친구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쓰레기 수거업체의 기사들은 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러 명에게 같은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 친구가 적극적으로 말리는 바람에 오히려 더 흥미가 생겨 면접을 봤다. 광고 그렇게 쓰레기차 뒤에 매달리는 미화원 생활을 시작했다. 일하는 첫날, 2리터짜리 플라스틱 통이 담긴 쓰레기 봉지를 수거했다. 어두운 새벽이라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었다. 쓰레기차의 회전판에 플라스틱 통이 걸려 터졌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유를 뒤집어썼다. 놀라고 화가 난 내게 함께 일하는 71살 기사 어르신이 수건을 건네주며 한 말씀 하셨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약자야. 이군 어쩔 수 없네! 앞으로 이런 일이 종종 있을 테지만, 경험이 쌓이면 그나마 나아질 걸세.” 수건으로 닦아도 상한 우유 비린내가 계속 올라와서 일하는 내내 힘든 하루였다.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화원 한 분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도중에 시민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술에 취한 시민이 “쓰레기 치우는 주제에”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무시당하거나 불쾌한 일을 겪을 때 상대에게 똑같이 욕을 해 주고 싶지만, 민원인과는 절대로 다툼이나 싸움의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회사의 지시 사항이 있어서 꾹 참는다. 기사 어르신의 말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약자이니 어쩔 수가 없다. 쓰레기 용역업체는 해당 구청이나 군청, 또는 시에서 용역을 받아서 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민원인과의 관계다. 민원 점수가 좋지 않으면 다음 입찰에서 떨어질 수가 있다. 코로나 당시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했던 나는 원치 않은 혜택(?)을 입었다. 영업시간 단축으로 음식물 쓰레기양이 평소 절반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친분 있는 식당 사장님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반면 배달업을 주로 하는 가게는 매출이 많이 올랐는데, 그 때문에 늘어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미화원들은 더 힘이 들었다. 2024년 현재, 난 아직도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벌써 10년차 베테랑 미화원이 되었다. 이제는 식당에서 버린 쓰레기양과 상태만 보고도 그 지역 경기를 알 수 있다. 그동안 미화원의 3종 세트라는 종량제 쓰레기봉투 수거, 음식물 쓰레기 수거, 재활용품 수거를 두루두루 경험했다. 몇년 전 개인 사정으로 경주에서 울산으로 직장을 옮겼고, 월급도 올랐다. 요즘은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주 5일 40시간 일한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일터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쓰레기는 치워도 치워도 끝도 없이 매일 나온다. 치우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버리는 날카로운 물건, 유리 조각, 분리배출이 엉망인 수많은 재활용품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수거한다. 우리 일은 여전히 위험하고 힘들다. 작업하던 미화원이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나온다. 얼마 전에도 결혼을 앞둔 30대 미화원이 작업 중 음주운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회사에서는 매달 안전교육을 하지만, 갑자기 달려오는 차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 우리 회사 직원도 음주운전 차량이 뒤에서 달려와 부딪친 일이 있는데, 다행히 큰 사고는 피했다. 개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쓰레기 파편에 맞는 일이 거의 없다. 경주에서 함께 일했던 기사 어르신의 말처럼 일이 경험이 쌓이니 요령도 생기고 쓰레기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매일 작업하기 전에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안전히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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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 구조비 소송 2심 완패… “7천만원 전액 갚아라”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송 6화]
구조비용의 책임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에게 소송을 당한 ‘김홍빈 원정대’가 2심에서도 ‘완패’했다. 2심 법원도 원고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줬다. 김홍빈 대장을 구조하는 데 든 비용 전체(약 6800만 원)를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가 갚아야 한다고 봤다.‘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고(故) 김홍빈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 제12-1부(재판장 성지호)는 24일 오후 2시 “피고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은 (원고가 청구한 구조비용) 6813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중 피고 ‘김홍빈 원정대’ 소속 5명은 각 300만 원을 지불하라고 판단했다.원고 대한민국은 지난 2022년 5월 31일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을 상대로 약 6800만 원의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최초의 기록을 만들고 하산하던 도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비용을 내놓으라는 것.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2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소관청은 외교부, 법률상 대표자는 당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이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1심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류일건)은 지난해 6월 “광주광역시산악연맹은 구조비용 전부(약 2500만 원)를, 대원 5명은 구조비용 일부(총 1076만 원)를 연대하여 납부하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원고 대한민국은 끝까지 비정했다. 외교부는 1심 법원의 판결대로 약 3600만 원을 돌려받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구조비용 약 6800만 원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7월 다시 항소했다.2심 재판부는 지난 7월 피고 김홍빈 원정대 측이 원고 대한민국에 구조비용의 60%를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하는 화해권고결정을 했다. 법원이 제시한 60%는 약 4080만 원으로, 1심에서 인정된 금액(약 3600만 원)보다 약 480만 원 많다.하지만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은 무산됐다. 원고 대한민국과 피고 김홍빈 원정대 간 합의가 결렬됐기 때문. 이에 따라 2심 재판부는 판결로 구조비용 납부의 책임을 결정했다.김홍빈 원정대를 향한 정부의 소송은 계속해서 논란이 돼왔다.국가가, 개인이 성취한 명예는 나눠갖기를 원하면서 구조비용은 개인에게 모두 짐 지우겠다며 소송을 건 것은 과도한 대응이란 비판이 일었다. 김홍빈 대장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주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위패를 모신 것도 대한민국 정부였다. 김 대장은 국위선양을 인정받아 ‘2021 대한민국 스포츠영웅’(대한체육회 선정)으로 헌액되기도 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구조헬기 띄운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한국 정부는 (김홍빈 원정대에) 구상권 청구를 하고… 매우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2024. 7. 1. 문현철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인터뷰) 진실탐사그룹 셜록 보도 이후, 일명 ‘김홍빈 대장법’도 발의됐다.지난 6월 민형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구을)은 국민이 국위선양을 하다가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국가의 비용 부담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영사조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만들기’ 감사 출신인 정준호 의원(광주 북구갑)도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관련기사 : <국민 위급한데 대사관은 ‘돈 계산’… ‘김홍빈법’ 나온 이유>)김홍빈 원정대를 둘러싼 구조비용 소송은 여기서 끝날까. 원고 대한민국의 상고 여부는 판결서 송달로부터 2주 이내에 결정될 예정이다.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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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타인과 나,나와 타인
누군가 그녀에게 가장 좋았던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등학교 시절이라 답할 것이다. 종종 그녀는 그런 상상의 질문을 떠올리고 답을 내보았는데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이후부터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고등학교 시절을 어떠했는가.  그녀는 용산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교실 창문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지금은 한강이 보이는 위치에 급식실이 들어와 더는 보이지 않지만- 사실상 너무도 낭만적인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학교가 끝나고는 친구들과 가까운 이태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당시 이태원은 가장 최신의 패션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고, 나이키와 뉴발란스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었고, 매장에 안 나오는 라인도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었다. 한때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입을 옷이 맘에 안 들면 집에 다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을 정도 였으니 그런 친구가 이태원을 얼마나 수없이 갔을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옷을 사기 위해, 운동화를 구경하기 위해, 토요일이기 때문에, 심심해서 그렇게 이태원을 갔다. 그녀는 커서 이태원에서 꽤 오랜 시간 일을 했다. 매일 이태원을 출근하고, 그 길을 걸어다니고, 퇴근 후 친구도 만나서 맥주도 한 잔하고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때도 종종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의 어떤 순간들을 떠올리곤 했는데 그것은 그녀 스스로에게 값진 행복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녀에게 힘이 되었다. 의도치 않게 문득 떠오르는 어떤 기억에서 그녀는 행복했고, 그래서 고마웠고, 그래서 웃었다. 그렇게 웃으며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출근길의 고단함도 조금은 줄어드는 거 같았다.  ‘이태원에서 심정지 00명’ 그것은 참으로 거짓말 같았고 그래서 실감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당시 그녀는 집에서 그녀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에 심취해 있었고 그래서 그 글자를 보았을 때, 실은 ‘심정지 00명’이라는 글자보다 ‘이태원’이라는 글자에 눈길이 더 갔을지 모른다고 후에 생각했다. 그녀 마음 속 깊은 추억의 근거지인 그곳이 왜 뉴스 속보에 나오는지, 지금 그녀가 그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 가려했던 것도 아니고, 그녀가 아는 누군가가 그곳에 갔을 가능성도 낮다고 생각했지만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것은 그곳이 그녀에게 그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심정지라고 방송에 나올 정도라면 모두가 당연하게 구조되고 당연하게 치료를 받고 회복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내 보던 프로그램으로 다시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날 아침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몇 년 전에는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모두가 그곳을 찍고 있고, 뉴스에 나오고 있고 우리가 그 배를 보고 있으니 당연히 모두가 구조될 거라 믿었지만 그 누구도 구조되지 못했던 몇 년 전처럼 그 이태원의 거리에서도 구조될 수 있었던 이들은 너무도 적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건가. 거기엔 가까운 곳에 경찰서가 있는데, 뛰어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소방서가 있었는데, 차로 조금만 가면 큰 병원도 있는데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가. 전혀 실감할 수 없는 그날을 아무리 생각하고, 정보를 뒤져보고, 읽고 보아도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이상하다 느껴질 만큼 그날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의 빛나는 기억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랜 시간이었다. 그녀는 뭔가 해야 했는데 그래서 그들을 ‘기억’하기로 했다. 거기에 있던, 그곳에서 쓰러진 이들은 기억해보기로 했다. 그들과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음에 써가며 읽고 또 읽었다. 그곳에서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유가족, 친구, 연인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그 글들을 읽다보니 처음에 그들은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녀이기도 하고, 그녀의 언니이기도 하고, 그녀의 친구이자 그녀의 가족이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앞날을 위해 고민하고, 스스로를 응원하며 하루하루를 채우던 그들의 모든 모습이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깨닫고 그제 서야 그곳에 있던 이들을 위해, 소중한 이를 그곳에서 잃어버린 이들을 위해 울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야 겨우 그들을 ‘애도’하는 한 걸음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이 이제는 그녀에게 ‘이태원’만큼이나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뭔가 하고 싶었고, 무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흘러 보내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믿기로 한 것이다. 몇 년 전 바다에 가라앉던 배를 바라보기만 하고 안타까워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버린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이 시간들 속에서 그녀가 느끼고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 혼자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지만, 그렇게 더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면 분명 다음은 조금 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 글을 쓰며, 또 다음 글을 준비하고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