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지난 2년의 시간, 당신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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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에 관심 많은 프리랜서 방송작가

 나는 평소에 서울시청 앞 광장을 자주 지나다닌다. 서점을 갈 때나 청계천을 걸을 때, 성당에 갈 때도 산책할 겸 탁 트여있는 광장을 한 바퀴 빙 둘러서 가곤 한다. 지난 시간, 그곳에 참사 합동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인터뷰를 이유로 참사 유가족 분들과 생존자 분들을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분향소 앞을 지날 때면 언젠가 만났던 분들이 계신지, 그들이 나의 얼굴을 잘 기억 못하실지언정 인사라도 드릴까하여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는 건 버릇이 됐었다.

 그런데, 하나 솔직하게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그렇게나 많이 분향소 앞을 지나갔는데, 단 한 번도 분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영정이 마련되지 않은 분향소에서 분향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많은 영정 사진들이 놓여있는 분향소는 똑바로 마주보기가 어려웠다. 그 앞을 지날 때면 고개가 자동적으로 푹 숙여졌고 땅만 보면서 걸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분향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었다. 마주하기 힘들면 길을 돌아갔으면 될 것인데, 그건 또 싫었다.

  영정 앞에 꽃 한 송이를 못 올리고 향로에 향을 한번 못 피웠지만. 나는 그 앞을 지나고 싶었다. 대신 그때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곤 했다. 영정들 앞을 지날 땐 일부러 걸음을 늦추었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위한 기도를 했다. 형식을 제대로 못 갖추었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직도 이런 나의 행동과 감정을 세분화해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다. 그저 그 앞에선 자꾸 눈물이 나곤 했고,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사진출처: 연합뉴스_홍해인 기자


이태원 참사, 우리는 잊지 않았다

 지난 5월 초,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순간, 내 입에선 “드디어...” 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머릿속에선 유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참사 이후 약 1년 6개월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들은 지금 어떤 마음이실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참사가 발생한 날부터 내가 언론을 통해 보았거나 직, 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것을 다시 떠올려봤다. 참사 당일의 그 충격적인 장면, 수많은 희생자들,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눈물, 울분과 분노, 고통, 기나긴 투쟁의 시간. 정부 기관과 정치권에서 벌어진 공방까지. 이 기억들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참사에 대한 감정을 한번쯤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참사를 주제로 글을 하나 썼었다. 그리고 글벗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 자리에 모인 날, 우리는 참사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누군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글을 읽었는데 그 날의 기억이 나는 바람에 눈물이 나서 힘들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남 일 같지 않고 아직까지 가슴이 먹힌다고 했다. 누군가는 생각에 잠겨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년 반 가량 지난 시점이었지만, 모두가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참사가 벌어진 뒤 처음 뉴스를 보았던 그 순간을. 잠 못 들고 밤새 TV만 지켜본 그 순간을. 그때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도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잠시 희미해져 있었을 뿐이지, 다들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지인의 일이 아니었을지라도. 우리가 가진 슬픔의 무게가 그때나 지금이나 동등하게 무거움을 확인했다.

 우리 뿐 일까. 다른 이들은 어떨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동안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슬픔을 달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혹여 사는 것이 바빠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레 기억이 희미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도 어쩌면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출처: 연합뉴스_류영석 기자
사진출처: 연합뉴스_류영석 기자


우리 사회의 시선에 대하여

  나는 일 때문에 뉴스 기사를 많이 읽는다. 그리고 기사를 읽고 나서 항상 밑에 달린 댓글을 훑어본다. 이것을 보면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기도 하니까.

 처음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즈음, 기사마다 애도, 추모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매섭고 차가운 비난과 혐오가 섞인 악성 댓글의 비중만 더 높아져갔다.

 ‘남의 나라 귀신놀이가 뭐가 좋다고..’ ‘놀다 죽었는데 왜’ (댓글들을 다들 많이 접해보았을 테니, 이 정도까지만 적겠다. 댓글을 굳이 그대로 다 옮겨 적고 싶지 않다.)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조롱과 희롱 섞인 말들은 읽는 나조차 괴롭게 했다. 청춘들이 핼로윈을 즐기러 간 것이 나쁜 것인가. 나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핼로윈 파티를 즐긴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발생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땐 괜찮았는데 이 날은 왜 그랬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문제가 뭐였는지에 대해서 악플 쓰기 전에 생각은 해 보았을까.

 유족을 향한 악성댓글도 마찬가지였다. 아픈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말이 너무 많았다. 이들의 움직임을 정치적 행동이라 단정 지으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유족들이 왜 국회에 가고,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긴 시간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알까. 그들의 눈을 마주 보고 심정을 이해하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 사회 일부가 너무 냉담하고 매정하다고 느낀다. 아픈 가슴에 자꾸 비수를 꽂는 것. ‘남의 일이고 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참사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항상 유족들은 목소리를 높여왔다. 슬픔과 울분, 고통이 담긴 목소리. 외면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외쳐왔던 목소리들. 이 목소리들은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나와 당신이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소리와 우리가 전혀 관계없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내 일이 아니다, 내가 알 바 아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모두 같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부디 이들을 향한 폭력적인 시선들은 거두어주시면 좋겠다.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사진출처: 연합뉴스_신현우 기자


첫발 뗀 특조위에게 바란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9월 23일 출범했다. 글을 쓰는 바로 오늘이다. ‘지각 출범’이라는 딱지 붙어 버린 늦고도 아주 늦은 출범이다. 지난 5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된 지 30일 째인 6월 20일까지 특조위 구성이 끝났어야 했는데, 넉 달이란 시간을 넘겼다. 이것도 유족의 간곡한 호소문이 전달된 후에야 진행되었다. 왜 항상 그들을 끝까지 내몰고 나서야 일이 추진되는 것일까. 국가의 의무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갖추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특조위원들과 유가족들의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기사를 통해 전해진 이야기를 보니, 일부 유족들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 눈물에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 담겨있었겠나.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특조위가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라는 숙제를 잘 해내주기를 바란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원이 풀릴 수 있도록 하겠다.” 고 송기춘 위원장이 말했다.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


5월 2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통과 날. 내가 분향소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던 날,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작은 콘서트가 준비중인 모습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시간이라는 것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됐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참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억은 잠시 희미해졌을 뿐이지 지워지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이 글을 쓰면서 유족들의 모습이 많이 생각났다. 고립되고 외면당하면서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힘겨웠을지, 어떤 마음으로 버티어 왔을지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이 났다. 그들에게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곁에서 많이 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사실이니까.

 또, 나는 처음에 자기 고백을 했는데, 글을 써 내려가면서 계속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조만간 ‘별들의 집’을 찾을 예정이다. 그곳에서 빚진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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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특히 유족들의 고통과 투쟁, 그리고 사회의 냉담한 반응에 대한 안타까움이 공감되네요. 우리 모두가 이 비극을 잊지 않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특조위의 활동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유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바랍니다.

참사의 희생자가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유가족들에게 완전한 회복은 없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희생자들이 왜, 어떻게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는지 밝히는 일은 유가족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의 최소한도입니다. 특조위 구성만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게 국가가 참사를 바라보는 태도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