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2)

2024.09.25

65
3
나고 자란 동네 용산에서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기억 담기 모임 참여 (23.10.07.) - 듣는 자리

이태원역 1번 출구. 우측으로 돌면, 좁고 경사진 골목이 나온다. 한쪽 벽면에는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이 한창 붙어 있었고, 문화연대에서는 매번 현장을 정비하며 포스트잇을 수거해 분류 보관했다. 일 년 전, 나는 자원 봉사자로 참여해 그 작업을 함께했다. 연휴 전후로 단장한 추모 공간에는 오색빛 메시지가 가득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사실, 포스트잇에 쓰인 내용을 잘 읽지 못했다. 어쩐지 남의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 것만 같아 그 마음이 편치 않았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대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주목했다. 이미 현장이 익숙한 활동가는 바로 앞 편의점부터 방문했다. 따로 챙겨주기 전에 음료를 계산했지만, 사장님은 아랑곳 않고 몇 병을 덤으로 얹어 주었다.

오래된 포스트잇을 떼는 손은 조심스러웠다. 자칫 귀퉁이가 찢어지면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뗀 것은 빈자리로 옮겨졌다. 점성이 낮은 테이프가 비치되어 있었고, 무언가 훼손되지 않도록 애쓰는 마음이 거기 살아 숨쉬었다. 고개만 돌려도 구석에 적힌 혐오를 지우려 물티슈를 박박 문지르는 고생이 눈에 띄었다. 새로 추모 공간이 조성될 때까지 그런 작업이 이어져 왔다.

사무실로 이동해 참사 초기의 포스트잇을 정리했다. 유가족 혹은 지인의 메시지, 생존자 혹은 구조자의 메시지, 번역이 필요한 메시지, 그 외 메시지 등의 기준이 있었다. 활동가들은 판단이 어려운 경우뿐만 아니라 인상 깊은 이야기가 보이면 서로 나눴다. 나는 역시나 그걸 잘 읽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몇 개 아로새겼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기억 담기 모임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분향소 지킴이 연대 (22.12. ~ 23.6.) - 분향소 단상 

참사 이후, 한동안 시민 분향소를 찾아 지킴이 활동을 자원했다. 매주 일요일 두 시간 남짓, 그 근방을 지나는 시민들을 맞이하며 국화를 전하거나 서명을 받는 게 주된 역할이었다. 앉을 수 있는 의자가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나는 서 있는 게 편했다. 때 맞춰 교대하는 봉사자와 유가족을 지켜보고 있자니, 몸도 마음도 겸손해졌다. 또한, 그곳을 방문하는 모두에게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발길을 옮기지 못해 머뭇대는 모습이 흔했는데, 전해 듣기로는 비교적 인적이 드문 새벽 홀로 오열하다 떠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영정 속에 잠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슬픔에 잠긴 누군가를 위해 예를 다해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분향소에서는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면전에 대고 훼방을 놓는 사람들은 꾸준히 많았다. 가령,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고는 "돈 때문에 그러는 거지?"라고 뱉는 식의 무례함들. 하지만 그보다는 헌화하는 행렬이 길었다. 언젠가 다국어로 적힌 홍보물이 설치되자 외국인의 관심 또한 늘었다. 거기 적힌 내용을 읽는 표정은 어찌나 진중하던지. 물론 너무 인접해 희생자 사진을 찍는다면, 정중한 몸짓으로 난색을 표해야 했다. 그럼 대부분 "okay"하며 카메라를 내린 채 뒤로 물러섰는데, 한 번은 "he is my cousin"이라며 양해를 구하는 일도 있어 아차 싶기도 했다. 회화에 능하지 못한 나는 그 순간 미안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꾸벅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위로를 건네지 못한 게 여전히 아쉽게 남아 있다.

어린이들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보호자를 잡아끌었다. "여기 뭐하는 데야?" 궁금해하거나 "한 번 가 볼래!" 내지르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보호자들은 쉽게 당황했지만, 사실 나는 몹시 반가웠다. 오히려 안타까웠던 건, 그 야단법석이 제지 당할 때. 이곳은 배움의 장이 될 수도 있는데, 황급히 자리를 뜨고 마는 게 조금은 미웠다. 그래서인지, 분향소에 시선이 꽂힌 어린이에게 조심스레 흰 꽃을 쥐어 주는 보호자를 목격하면 기분이 들떴다. 동시에 고민하기를, 그토록 순진무구한 눈빛 앞에서 과연 나는 이 참사에 대해 무어라 설명해야 했을까. 곳곳에 쓰인 '기억', '애도', '안전' 같은 단어를 두고도 금세 머릿속이 하얘졌다. 밑도 끝도 없이 파고들수록 내가 외워 온 뜻은 백지장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분향소가 서울 시청 앞 광장으로 이동한 뒤로는,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이 들렀다. 하루는 시설 보수를 위해 운영을 잠시 멈췄는데, 망연자실한 얼굴로 아쉬워하는 어르신을 응대하기도 했다. "일부러 기차 타고 왔는데…" 그는 나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었고, 내일부터 재개할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만하는 줄 알았잖아!" 이어지는 호탕한 웃음에 나도 따라 미소 지을 수밖에. 어쩌면 그런 일화를 쌓는 재미로 지킴이 활동을 이어 가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꼭 외딴섬 같은 공간에 연대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했다. 혹은 지금 참사에 관해 확인하고 학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나에게는 그게 참 어려운 과제다.

공유하기

저는 어제 기억담기 모임을 했는데요. 사건을 기억하는 시민들 그리고 그 기억을 지켜온 포스트잇과 종이들을 직접 만졌습니다. 현장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요.

시민 분향소 지킴이 활동을 하셨군요. 경험을 공유해 주셔서 저도 따라 읽으며 마치 눈앞에 현장이 다시 보이는듯합니다. 희생자 사진을 근접해 촬영하기에 제지했더니 '내 사촌이다'라고 말한 분이나, 분향소 없어지는 줄 알고 아쉽고 놀랐다고 말씀해주신 분들, 부모님이 쥐어준 꽃을 헌화하는 아이.. 이들의 경험과 그리고 그걸 읽는 저의 간접경험들이 모여 함께 어떻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많은 포스트잇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아카이빙 되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