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0. 어쩌면 우리는 너를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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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다양한 도서의 서평을 쓰고 있는 카레맛곰돌이입니다.

0. 어쩌면 우리는 너를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2019년 10월 25일 밤, 속칭 대구패밀리라 부르는 글쓰기 모임 지인들과 동성로에서 만났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할로윈 같은 행사가 있으면 다들 어렴풋하게 알고 준비를 할 법도 한데 모두 이쪽으로는 연이 없는지 아무 생각 없이 현대백화점 앞에 모였고,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동성로 말고 안지랑에서 곱창에 소주나 먹자. 지나가는 간호사 좀비와 정장 드라큘라를 본 형님은 인파에 휩쓸리지 않게 구석으로 우리를 끌고 가고선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눈치를 보였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랑에서 곱창에, 평화시장서 치킨에, 거리를 걸으면서 맥주에, 그렇게 술을 마시고, 숙취에 괴로워하고…. 출근한 월요일, 후배 여럿이 지난밤 축제 거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붐비는 클럽과 아리따운 여성들,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한 위험한 거리. 지난밤 그들의 추억과 별개로 과도한 인파에 위험했다는 뉴스가 잠깐 올라왔다 내려가고는 했다. 우린 그때도 사고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었다.

2022년 10월 28일, 부대에서 할로윈 행사 참여의 위험성에 대한 공문을 내렸고 젊은 간부들의 과도한 행사 참여를 금하기 위해 위수지역을 철저히 지키라는 추가 공문이 내려왔다. 내 근무지는 대구에서 서산으로 바뀌었고, 서산 부대는 서울의 접경지라 그런지 이런 이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도 우리 부대는 코로나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고. 이미 이십 대의 끝자락, 스무 살 초반에도 즐기지 않았던 축제를 이 나이가 돼서 즐길 이유도 없었고 당시 비상대기도 공교롭게 나였다. 사고 전일, 그리고 당일까지도 나는 부대를 지키고 있었고 이 축제를 즐기는 이전 부대의 후배들, 그리고 새 부대의 후배들과 간간히 연락을 하며 축제의 열기를 대신 느꼈다.

29일, 사고가 발생했고 어제까지 우스갯소리로 연락하던 후배들은 이제 살아있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그 장소에 있었는지 찾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가끔 저널리즘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 한때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고 뉴스와 정치, 한 사람의 발언이 무겁게 소비되는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제는 알아야 하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인용저널리즘에 대한 레포트를 써서 대학에 제출한 적이 있었다. 한참 대선으로 국가가 뜨거웠던 시절, 유튜브의 아무개 씨, 정치평론가 아무개 씨의 목소리를 “ ”(따옴표)로 대신해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말도 다소 올드한 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따옴표 저널리즘보다도, 아마 ‘릴스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사회가 되었기에.

이태원 참사는 사실상 릴스 저널리즘의 대표 격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사건이었다. 뉴스에서는 부족한 현장 상황 정보의 공백을 느끼고 있었고, 이런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릴스,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끌어다가 TV에서 생중계를 했다. 그리고 SNS 익명의 목소리라는 거대한 방패 아래에 무분별한 혐오와 공격의 메시지는 덤으로 내보냈고. 영상에선 참사 사고의 사망자들, 부상자들의 모습이 모자이크 없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TV 앞의 많은 시청자들이 이 사고의 정신적 피해자가 되었다. 그 후에 있던 ‘누군가 밀었다’, ‘누군가가 범인이다’와 같은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의 남발부터 사건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이를 정치의 더러운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자칭 사회평론가들의 발언까지. 과연 언론은 참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과연 이게 21세기의 저널리즘일까. 그날 언론의 현실에 대한 참담함을 느꼈다.

언론이 무분별한 메시지를 보내는 당시 부대에서는 사고자가 있지는 않은지, 다른 부대 후배 중 사고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조사를 해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의 SNS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용산에서 놀고 있음, 동성로에서 술 마시는 중, 여기는 서울 어디 클럽. 후배들의 소식은 속속들이 발견되었고 한숨을 돌린 우리는 릴스를 우연히 넘기다 다른 영상들을 보게 되었다. 사고 현장에서 CPR을 하면서 제발 찍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소방관, 인근에서 춤추는 주취객, 사람들을 빨리 대피시키기 위해 차 위에서 인원을 인솔하는 어떤 젊은 사람, 그리고 번쩍이는 인근 클럽과 술집….

나는 이 사고를 떠올릴 때마다 대구 부대에서 친하게 지냈던 한 후배를 떠올린다. 이성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때로는 과음, 지각으로 개인적인 행실에 대해서는 지적을 받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 좋고 일에 몰두하는 후배.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싶어 하면서 선배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연차가 차면서 책임감도 보이는 후배. 그 후배는 할로윈이면 거리로 나가 이 문화를 즐기고는 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이 끝난 월요일이면 전날의 열기를 하나의 무용담처럼 풀어내기도 했다. 나는 그 후배가 처음에는 싫었다. 너무 가벼워 보이는 남자여서, 책임감이 부족해 보이는 남자여서, 언제라도 일을 대충 할 것만 같은 인상의 남자여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그는 멋진 남자였고 멋진 군인이었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친절한 후배였다. 나는 그의 당당함을 부러워했고 그와 같이 퍽 즐거운 군 생활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이 참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너를 잃었을지도 몰라. 이런 행사는 문란한 행사고 평소 행실이 나쁜 사람들이 가서 당한 일인데 무슨 문제냐? 이런 이야기를 SNS에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린 멋진 후배이자 유쾌한 동생, 그리고 진짜 군인 하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사라진다면 인간적인 슬픔, 비통함, 그리고 대단한 인재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타까웠을 거라고.


그 후배와는 이제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대구를 떠난 지 벌써 3년이 흘렀고 그 친구도 내가 전역한다고 말한 전후로 전역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전역하고 사회인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서든 그 후배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후배가 앞으로도 이런 축제에 계속 참여할 거라는 점도 알고 있고. 그렇기에 앞으로는 이런 축제에 안전을, 모두에게 행복한 장소가 되기를 빌며 살뿐이다.

2025년의 나는 할로윈 축제 기간에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 후라고 생각한다. 군대도, 코로나도, 행사에서 논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는 나는 늦은 나이여도 거리에 몸을 던질까. 아니, 아마도 집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그때는 슬픈 이야기보다는 기쁜 이야기를, 할로윈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거리의 행복한 이야기를 쓰며 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태원 참사, 되짚기의 시작

해당 글은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정리를 시작하는 글이다.

평소 서평을 꾸준히 써왔기에 이번에도 서평 3편을 통해 이태원 참사의 기억을 되짚고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 되짚기, 서평을 통해 나아가기, 또다른 내일을 보낼 나, 모든 일들을 시작하기 위해 최근 이태원에 다녀왔다. 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표지판, 여기가 사실 모든 기억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다녀온 이태원은 조금 쓸쓸한 곳이었다. 서평과 모든 글이 끝날 때면 아마 2주기가 돌아오지 않을까. 그때는 이 쓸쓸함에 방점을 찍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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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2주기네요. 글을 읽으니 당시의 댓글과 자극적인 뉴스가 다시 떠오르는 듯 합니다. 모두를 위한 행복한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공감하며 다음 글을 기다릴게요.

참사 당일을 포함해서 지산이 지난 지금도 주변의 누군가가 현장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만큼 참사가 정말 가까운 누군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시간이 더 흐르면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참사가 일어난 날 그 현장에 친구가 있지는 않았을지 전전긍긍하던 생각이 나네요. 2주기가 다가오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고민하게 되네요.
앞으로의 글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