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비영리 조직은 어떻게 돈을 버나요?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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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바라보고 다르게 해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Table Talk - Pick 68호 섬네일.



Pick 코너 로고. 사회혁신 모델, 사례를 소개하는 Table Talk-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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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은밀한 질문

저는 비영리 조직이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공익 활동을 본업으로 삼고, 더 큰 ‘소셜 임팩트’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을 돕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비영리 조직이라고 하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을 텐데요. 일반적으로 내 주변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환경 보호 활동을 함께하거나,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등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익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사단법인, 재단법인, 사회적협동조합 등 국내 비영리 조직의 수는 2만 개가 넘고, 종사자 수는 약 148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외계층을 돕는 복지사업, 환경 보호를 위한 봉사활동, 시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 등 공익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비영리 조직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공익 활동을 지속하는지 궁금해합니다. 특히, 비영리 활동을 생계유지를 위한 ‘업(業)’으로 삼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고요.

오늘은 이런 비영리 조직을 시작하려는 분들이 은밀하게, 가장 자주 묻는 질문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바로 ‘비영리 조직은 어떻게 돈을 버나요?’입니다.


돈 벌어도 되나요? 비영리(Nonprofit)라는 오해

많은 사람이 공익 활동을 숭고한 선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돈 이야기를 하면 왠지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점잖게 ‘비영리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자원 조달’이라고 표현하는데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비영리 조직이 돈을 버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한 이유는 ‘비영리(Nonprofit)’라는 표현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경제활동으로 얻은 이익을 소유자 혹은 주주에게 배분할 수 있는 영리 기업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함인데요. 비영리 조직에서 발생한 이익은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비영리 조직은 영리 기업처럼 ‘수익(Benefit)’을 만들 수 있으나, 비용을 제한 ‘이익(Profit)’을 이해관계자에게 배당할 수 없습니다. 발생한 이익은 조직을 설립할 때 정관에 기재한 공익 목적에 맞게만 사용해야 하죠. 쉽게 말해 월급은 받을 수 있으나 배당은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영리 조직은 근본적으로 이익 창출이 최종 목적이 될 수 없는 조직입니다. 사업으로 만들어낸 이익은 반드시 각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있죠. 하지만 이익 창출이 없다면 비영리의 공익 활동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근본적인 사회혁신을 만들고, 더 큰 소셜 임팩트를 창출하며, 장기간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비영리 조직은 돈을 잘 벌어야 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돈 잘 버는 네 가지 방법

그렇다면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비영리 조직에 주어진 특수한 여건을 고려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 전략을 세우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비영리 회계 관점이 아닌 비영리 조직이 실질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나아가 각 방법에서 비영리 조직이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지 저의 의견도 더해보겠습니다.

  1. 기부 모금: 개인 및 기업 대상 기부금품 모집하기
  2. 지원/배분사업: 정부/민간 공모사업 지원하기
  3. 위탁용역사업: 정부/민간 공익사업 위탁 수행하기
  4. 수익사업: 제품 판매 및 서비스 제공하여 수익 창출하기

① 비영리만이 할 수 있는 ‘기부 모금’

‍기부는 개인이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금전, 물품, 혹은 서비스를 비영리 조직에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부자는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대가를 받지 않으며, 기부금은 공익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따라서 비영리 조직은 판매와 같이 상응하는 가치의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안 되고, 공익 목적의 기부금은 반드시 투명한 회계 관리와 관련 제한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비영리 조직만 기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여 개인과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는 ‘공익법인/단체(구 지정기부금단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비영리 조직뿐입니다. 이때 공익법인은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인증처럼 기획재정부에 별도 신청하여 지정받고, 지속적으로 국세청의 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위와 같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는 공익법인이 되는 것은 비영리 조직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개인에게는 세액 공제를, 기업에게는 법인세 공제와 지방세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익 목적에 공감하는 일부는 세제 혜택이 없어도 후원을 하겠지만, ‘기부 모금’이라는 시장에서 의미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공익법인/단체’의 자격은 갖춰야 할 최소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 조직의 기부 모금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최근 누구나데이터 김자유 대표님께서 “너(잠재후원자), 내 동료가 되어라!” 아티클에서 ‘잠재후원자 관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최근 기부 모금 시장에서는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수용하고,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를 접목한 전략이 유효한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팬덤 기부, 자선 아이템 판매 등 새로운 모금 방법도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고요.

‍하지만 저는 모금 전략과 방법에 앞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 조직에서 다루는 사회문제와 솔루션,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지자는 기부 모금에 적합한가요?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들이 많지만, 모든 문제가 대중들의 인지적 공감을 얻기 수월한 것은 아닙니다.

2021년 기준 국내 개인 기부 분야별 관심도 1위는 자선 단체, 2위는 해외구호, 3위는 시민단체 순이었다.
출처: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그 근거로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빙 코리아 2022’ 보고서는 2021년 국내 개인 기부의 7개 분야별 관심도를 ‘자선단체 > 해외구호 > 지역사회 > 의료 > 교육 > 문화예술’ 순으로 분석한 바 있는데요. 이를 통해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비영리 조직은 자선 활동을 하는 비영리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개인 기부자 대상 모금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차원 더 깊게 살펴보면 세대별 기부 참여율, 기부 금액, 선호하는 기부 방식 등 기부 모금 시작에 앞서 고려할 요소가 더 많습니다. 이는 일시 후원과 정기 후원 중 어떤 형태가 우리의 지지자에게 바람직한지, 앞으로 개인과 기업 중에서 어떤 대상을 중점으로 기부 모금을 진행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비영리 조직도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시장’과 ‘제품’ 그리고 ‘고객’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영리 조직에서 기부 모금을 기획하고 계신다면, 아래 질문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사회문제(시장):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대중의 인지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인가?
  • 솔루션(제품): 우리가 만드는 솔루션은 지지자에게 지속적인 효능감을 제공할 수 있는가?
  • 지지자(고객): 우리의 지지자는 어떤 행동경제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출처: 사단법인 뉴웨이즈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한 기부 모금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고 있는 비영리스타트업으로 사단법인 뉴웨이즈(이하 뉴웨이즈)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21년에 등장한 뉴웨이즈는 정기 후원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안정적인 조직 운영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는데요. 아래 소개글로 뉴웨이즈의 ‘시장’과 ‘제품’, ‘고객’에 대해 유추해보겠습니다.‍

사단법인 뉴웨이즈는 만 39세 이하 젊은 정치인(젊치인)의 도전과 성장을 돕는 정치 에이전시로, 정치 산업 내에서 의사 결정권자의 다양성을 높이고, 젊은 세대가 정치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 조직입니다. 이를 위해 누구나 자기 경쟁력을 가지고 의제나 지역의 문제 해결 경험을 쌓아 지지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인재 성장 시스템을 만듭니다.

‍뉴웨이즈는 ‘정치 산업의 다양성 부족’이라는 사회문제(시장)에서 ‘인재 성장 시스템’이라는 솔루션(제품)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뉴웨이즈의 지지자(고객)들은 정치권에서 일하거나, 정치에 높은 관심을 가진 고관여자일 확률이 높겠죠.

‍정치 산업과 정치 고관여자의 특징은 후원 문법에 상대적으로 친숙하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정당과 정치인을 향한 지지자 후원이 활발히 이뤄져 왔기 때문입니다. 한편, 뉴웨이즈의 솔루션은 온라인 서비스로 개발 과정과 정량적 임팩트를 지지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공유하며 함께 사회변화를 만드는 효능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뉴웨이즈의 정기 후원자 모금이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뉴웨이즈의 공익 활동이 이에 적합한 시장과 제품, 고객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뉴웨이즈의 탁월한 사회문제 해결 역량과 임팩트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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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주도적으로 공익 활동을 제안하는 ‘배분/지원사업’

‍비영리 조직이 돈을 벌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비영리 조직 대상 배분/지원사업에 지원하는 것입니다. 자원을 제공받아 공익 활동을 직접 수행하는 비영리 조직 입장에서 배분사업과 지원사업은 사실상 차이가 없어 함께 설명해 드립니다.

배분/지원사업은 정부, 공공기관, 또는 민간 재단이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을 실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인데요. 비영리 조직이 스스로 사업을 계획하여 제안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지고 공익 활동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배분/지원사업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공익 목적과 취지에 적합한 비영리 조직을 선정하는 공모 형태로 진행됩니다. 자금제공자(Funder)가 포괄적인 사회문제나 정책 목표를 제시하면, 비영리 조직이 이에 부합하는 사업을 제안하는 방식인데요. 예를 들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복지사업’을, 환경부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사업’을, 문화예술진흥원에서는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공모하는 것이죠.

일련의 선발 절차를 거쳐 선정된 비영리 조직은 제안한 공익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사업비와 수행 인력의 인건비를 지원받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종료되면 지원금의 사용 내역을 보고하고, 사업 성과를 평가받아야 합니다. 이때 사업 결과 보고 과업은 공모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아무래도 국민의 세금이나 대중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기금의 공모사업은 사업비 사용이나 사후 정산에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민간 재단을 중심으로 배분/지원사업에서 새로운 변화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사업 성과 중심에서 조직 성장 중심으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는 벤처 투자 기법을 활용하여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는 벤처 필란트로피(Venture Philanthropy)로 아래와 같이 전통적인 배분/지원사업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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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재정적 지원: 조직 성장을 위한 교육, 컨설팅, 사무공간 등 비재정적 지원 제공
  • 유연한 지원: 사업비 제한 규정 완화 및 사업 중도 변경(Pivot) 허용
  • 중장기 지원: 다년간 지속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연속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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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국내 사례로 아산나눔재단의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와 관계없이 스타트업의 관점과 방법론으로 소셜 임팩트를 확장할 수 있는 초기 소규모 비영리 조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조직이 스타트업 전략을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멘토링과 사업 자문을 제공하고, 공익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면 중도에 사업 및 예산 사용 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죠. 또한, 최대 4년 연속 지원하여 중장기적 관점에서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출처: 서울경제

‍그 외에도 다양한 민간 재단에서 혁신적인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는 지원사업 파이프라인을 함께 만들고 있는데요. 이를 마치 스타트업의 시리즈 투자처럼 활용하여 비영리 조직을 성장시킨 사례도 있습니다. 2020년 서울NPO지원센터를 시작으로, 2021년  아름다운재단과 다음세대재단, 2022년 루트임팩트, 2023년 아산나눔재단의 지원사업에 순차적으로 선정된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이하 다시입다연구소)’인데요. 이 과정에서 ‘옷장 속 입지 않고 잠들어 있는 21%의 옷을 교환하는 파티’라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이제는 전국 단위로 의류교환 및 수선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비영리 조직은 우리 조직의 활동 영역과 성장 단계에 맞는 배분/지원사업을 리스트업하고 꾸준히 문을 두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공익 활동을 기획하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우리 조직이 만들어 내는 사업 성과나 사회적 가치를 홍보하는 역량이 매우 중요한데요. 아직 공익 활동의 성과를 뽐내는 것을 쑥스러워하시거나, 사업 성과를 정량화된 데이터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다시입다연구소의 임팩트. 파티 34회 개최, 누적 참가자 수 4,317명, 누적 참가 아이템 개수 13,580개, 의류 교환율 71.4%, 지원 파티 횟수 104회를 기록했다.
출처: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

‍하지만 배분/지원사업의 기금제공자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에 기반하여 우리 공익 활동의 성과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다시입다연구소는 중고의류교환 행사의 누적 참가자 수, 누적 교환 물품 수, 참가자 인식 변화 설문응답 등 다방면으로 임팩트 데이터를 수집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팀도 처음부터 임팩트 측정 및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인 성과지표 개발과 데이터 정합성 향상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죠.

③ 공공 서비스와 기업 사회공헌을 대신 수행하는 ‘위탁용역사업’

‍위탁용역사업은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등이 비영리 조직에 특정한 과제를 맡겨 수행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배분/지원사업과 비슷한데요. 차이점은 공공서비스 제공, 학술연구, 공공 교육, 전시 및 행사, 지역사회 개발 등 특정 과업이 지정되어 있고, 발주 기관이 정한 목표와 지침에 따라 공익 활동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많은 OO구 종합복지관, OO시 청년센터 등 지자체 공공시설의 관리 및 운영을 비영리 조직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임직원 자원봉사, 지역사회 교육사업, 환경보호활동 등 사회공헌 사업을 위해 전문성 있는 비영리 조직과 파트너십을 맺고 위탁 운영하기도 하죠.

이런 위탁용역사업은 제도와 관습에 따라 비영리 조직을 수탁사 자격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에 전문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 보장된 공익성으로 사회적 신뢰를 갖췄기 때문인데요. 공익 활동 영역에서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이 우위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비영리 조직의 입장에서 위탁용역 사업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대중 혹은 사용자 그룹과의 연결이 수월합니다. 그리고 조직의 고정적인 인건비 재원을 확보하여 안정적으로 공익 활동을 펼칠 기회가 될 수 있죠.

위탁용역사업으로 공익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영리스타트업 사례로 ‘사단법인 니트생활자(이하 니트생활자)’와 ‘사회적협동조합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이하 지소행)’ 두 조직을 소개합니다.‍

출처: 사단법인 니트생활자


2019년 작은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니트생활자는 무업기간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는 청년들이 연결되는 다양한 커뮤니티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립/은둔 청년 이슈가 대두하기 전부터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ning) 상태의 청년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주고, 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23년까지 다양한 배분/지원사업을 경험하며 청년 이슈에 대한 전문성 향상과 조직 성장을 이뤄냈고, 이를 기반으로 2024년에는 ‘인천청년공간 유유기지 강화’의 운영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지역으로의 사업 확장의 시작점이 되었고, 염원했던 무업청년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하는 기회였습니다.‍

출처: 사회적협동조합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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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행은 종이팩과 커피박 등 재활용률이 낮은 카페 자원을 수거하여 자원순환 활동을 중심으로 시민과 함께 환경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소행도 2021년 서촌 카페들을 돌며 종이팩을 수거하는 봉사활동에서 시작했는데요.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카페 자원 수거사업을 시작하면서 서울시 중구, 성동구, 마포구, 은평구 등 지자체와 차례로 커피박 수거 위탁용역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사회적 가치 창출 기반을 동시에 마련한  케이스입니다.

위 두 사례는 사용자의 경제적 능력이나 지불 동기가 부족하여 영리 비즈니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를 비영리 조직의 공익 활동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각각 청년경제활동인구 감소와 저조한 카페자원 재활용률이라는 사회문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자 하는 지자체가 지불 주체가 되고, 비영리 조직은 효과적으로 공익 활동을 수행하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죠.

‍한편, 사업비 규모가 큰 위탁용역사업은 위탁사 선정에서 수탁사의 조직 역량을 중요하게 평가하여 아직 사업수행 경험과 조직원 전문성이 부족한 초기 비영리 조직이 도전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요. 어느 정도 유관 경력과 네트워크를 마련한 뒤에 도전해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저는 위탁용역사업이 비영리 조직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공익 활동 운영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해당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죠. 위탁용역사업 또한 공익 활동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공익 활동을 별도 기획하여 운영하는 것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영리 스타트업이 당장의 수익이 되는 외주용역에 치중하다, 자체 제품 개발에 소홀해지는 것과 비슷하죠.

따라서 위탁용역사업으로 우리 조직의 사업 역량과 신뢰를 향상시켰다면, 그 이점을 잘 활용하여 독립적인 활동을 위한 역량과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훗날 외부 자원 없이도 단단하고 지속 가능한 공익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조직원의 역량 향상과 기부 모금이나 수익 사업 등 수익원 발굴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④ 직접 영리 활동으로 버는 ‘수익사업’

‍마지막 수익사업은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죠. 앞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수익사업의 이익을 공익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재투자한다면, 비영리 조직도 영리 기업과 다르지 않게 대부분의 수익사업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무관청 신고, 이사회 승인 등 일련의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요.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익 창출로 경제적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소셜벤처, 스타트업 등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은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습니다. 조직원의 동기 부여가 상대적으로 불리하여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미래 이익 배당이나 지분을 담보로 하는 투자 유치가 불가능하니 신규 사업 및 사업 확장을 위한 재원 조달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제도적으로 이런 불리한 지형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익에 대한 법인세 감면, 재산세, 취득세 등 지방세 감면, 공익 목적 서비스 매출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정부조달 우선구매 등 비영리 조직만을 위한 제도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죠. 또한, 사업 특성에 따라 비영리 조직만의 높은 공익성을 소비자에게 전략적으로 소구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직접 영리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다른 방법으로 얻은 수익에 비해 그 사용이 자유롭습니다. 기부금은 기부금품법에 따른 사용 제한이 있고, 배분/지원사원이나 위탁용역사업은 그 나름의 사업비 사용 규정이 마련입니다. 때문에 비영리스타트업 ‘사단법인 피치마켓(이하 피치마켓)’처럼 조직의 공익 활동을 잘 수행하기 위해 수익사업을 주 수익사업으로 선택한 사례도 있습니다.

‍2014년부터 시작한 피치마켓은 발달 장애인이나 경계성 지능인과 같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쉬운 글 콘텐츠를 제작하는데요. 설립 초기의 장애인 복지 관련 배분/지원사업으로는 인건비를 전체 사업비의 15%밖에 사용할 수 없는 제한 규정이 있어 쉬운 글 콘텐츠 연구 개발을 위해 사업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출처: 사단법인 피치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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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장애인의 일회성 문화활동 지원은 가능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느린 학습자의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쉬운 글 콘텐츠 연구 개발은 불가능한 배분/지원사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치마켓이 선택한 것이 바로 수익사업이었습니다. 쉬운 글 도서나 월간지, 특수교사를 위한 교육자료를 판매하는 수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습니다.

피치마켓은 비영리 조직이 수익사업으로 수익 창출과 동시에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이상적인 ‘사회적기업’ 모델로 볼 수 있는데요. 비영리 조직도 인증 요건을 갖추면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피치마켓 또한 사회적기업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죠.

저는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이 사회적기업 모델에 적합한 법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자 유치나 큰 규모의 이익 배당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적기업 비즈니스 모델은 비영리 조직의 제도적 혜택을 활용했을 때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부 모금사업, 배분/지원사업 등 다른 방법과 혼합하여 조직의 자원 조달 방법을 다원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팩트 비즈니스와 사회적기업을 새롭게 시작하시려는 분들이라면 법인격으로서 비영리를 고려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리는 돈 잘 버는 비영리 조직이 필요합니다.

긴 글을 읽으며 비영리 조직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적합한 법인격이 아니라는 것은 실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을 지속할 좋은 기회와 방법들도 존재한다는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새롭게 시작하는 비영리 조직이라면 ‘배분/지원사업 → 기부 모금 → 위탁용역사업 → 수익사업’의 순서로 시도해 보기를 권합니다. 우선, 공익 활동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배분/지원사업의 자금과 교육을 활용하여 시행착오를 줄이고, 우리 공익 활동의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여 적합한 기부 모금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축적한 전문성과 공익 활동 경험을 기반으로 위탁용역사업에 지원하여 조금 더 큰 규모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비영리 조직이 자체적인 수익사업으로 얻은 기금으로 더 독립적이고 혁신적인 공익 활동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위치를 목표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비영리 조직에 만능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은 없습니다. 공익 활동의 특성과 주어진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벌기 위한 특수 여건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비영리 회계와 관련 규정을 잘 숙지해야 컴플라이언스 리스크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고, 비영리를 지원하는 공공/민간의 자원과 제도적 혜택을 잘 알아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돈 잘 버는 방법을 고민하는 비영리 조직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벌어서 더 큰 사회혁신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 비영리 조직에 도전하는 사람도 늘어날 테니까요. 비영리를 꿈꾸는 사람이 늘면 유관한 자원과 혜택도 함께 늘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비영리 조직이 확장되는 선순환이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에 한 걸음 가깝게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글 | 나민수

비영리 조직이 선한 일을 잘하게 돕는 '비영리 액셀러레이터'이자, 벤처 투자 기법으로 임팩트 기부를 돕는 '벤처 필란트로피스트'입니다. 아산나눔재단에서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을 담당하며 스타트업 성장 전략과 근거 기반의 임팩트 커뮤니케이션으로 비영리 조직이 효과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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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okkr :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비영리 단체가 좀 더 약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어요

비영리 조직이 지속 가능한 소셜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