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서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쟁정을 볼 수 있지만, 가까이 조명하면 당사자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책을 통해 들어가서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가져왔습니다.
안락사가 만약 합법으로 이어진다면? 이런 부분도 쟁점이 될 것 같아서 공유드립니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측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과 반대로 과도한 간병비 부담 등의 이유가 큰 것 같은데요, 반대 측에선 자살 동조(방조)나 자살이 자기결정권으로 이어지면서 모두에게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누가 정하느냐인가 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질 거 같구요.
비통해서 어떤 말이 나오지 않아 말문이 막혔고, 그 비통함을 들어주는 이 없이 가짜뉴스를 만드는 화성시와 혐오세력에 말을 잃어버렸고.. 이 기사를 읽는내내 세월호,이태원 참사가 너무 오버랩되는데 여전히 나아지지 않지요.
국민의 세금 낭비라는 말, 돈잔치 돈놀음 중단해라는 막말하는 세력들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이 일하다 죽으면 그런 말 하는 이들에게 가만히 입다물고 있겠습니까.
이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작가들에게도 물어야 하지만 한쪽에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작가, 독자, 출판사가 질문을 나눠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간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출판사의 대응에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작가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만 사과와 동시에 판매 금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숙의의 시간’은 생략되기 마련이다. 캔슬 컬처(유명인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했을 때 SNS의 팔로를 취소한다는 뜻), 즉 ‘손절’ 문화가 연상되는 대응 방식이 과연 올바른 해결책인지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본인의 경험을 모티브로 쓰는 창작의 영역에서 재현 윤리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정지돈 작가의 잘못이 큽니다. 그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는가? 라면 작가의 창작과 출판사 사이에서 논의될 수 없었다는 한계와 또 이런 부분이 이분법으로 딱 잘라서 논의하기 어려우니 창작자, 피해자 그리고 출판관계자라는 삼자의 논의에서 바로 잡아야할 지점을 찾아야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 원래 영문을 읽다가 이해되지 않으면 여러 번 다시 읽고, 문장을 쪼개고, 그 문장과 관련된 사건을 검색하는 등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요즘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번역기로 돌려버린다. 뭔가에 중독되는 기분이다.
자꾸 의탁하면 능력이 퇴화되기 마련이다. 계산도 그렇다. 초·중·고교에선 수학 문제를 풀 때 계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챗지피티도 오래전 인간이 쌓은 지식을 조합해서 아웃풋으로 내는 것 같아요. 너무 의탁하면서 잠식당할 우려가 있지만 어떻게든 공존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중이 없는 거, 교육이 없는 거, 저는 그게 급식실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꼭 감사해 할 필요는 없죠. 근데 옛날에는 저희 영양교사들이 오히려 어머님들한테 요리를 배울 정도로 정말 요리 잘하고, 아이들 밥 먹는 게 예뻐서 열심히 만드는 그런 분이 많았어요. 근데 지금은 그런 분들이 점점 다 떠나고, 그냥 아무 보람 없이 돈 벌러 온 대체근로자, 아무 데도 취업할 곳이 없어서 요리를 전혀 모르는데 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럼 아이들한테도 안 좋은 일이잖아요. 그 말을 하고 싶어요.
존중은 사라지고 민원으로 너무 쉽게 노동자의 존재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필터 버블이란 말처럼 오늘날 민주주의는 듣고 싶고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하는 태도가 강한 것 같아요. 나와 의견이 다르면 차이가 아니라 적대시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건 대화와 존중이 아닐까요.
이 문제는 남성 다수가 여성 피해자 한 명을 괴롭혀서 착취하는 구조입니다. 2024년 한국 여성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손희정 교수는 이를 두고 폭력을 자본화하고 상품화하는 ‘고어 자본주의’ 라고 언급했었지요.
사이버렉카의 심리는 너무 저열합니다. ‘너는 유명인의 보여지는 모습만 진짜라 믿는 거 아니겠지? 우린 몰래 비밀을 케네어 보여줄 거야’ 라는 방식은 결국 인간 한 사람의 존엄성을 붕괴시키지요.
우려스러운 점은 활동명을 바꿔가며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활동하는 유튜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엄중 처벌할 방법이 수익 중단 외 다른 방법이 없을지도 고민해 보아야할 때네요.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으로 쉽고 빠르게 물건을 구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언제부턴가 당일 배송•총알배송이라는 신속성에 경쟁력을 둔 나머지 노동자의 산재가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속도에 빼앗긴 권리가 무엇이 있을까요.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달 열린 한국여성학회 춘계학술대회서 사이버 레커 시장을 일컬어 "고어 남성성이 극명하게 전시되는 장"이라고 했다. 트랜스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인 사야크 발렌시아는 고어 영화 마냥 폭력과 살인, 신체 훼손과 시신을 자본축적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고어 자본주의'라 명명했다. 손 교수가 '고어 자본주의'를 빌려 설명하는 것이 한국의 고어 남성성이다. 이는 디지털을 거점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를 시민권과 자본 축적의 자원으로 삼는 특성을 갖는다. 여성이나 소수자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돈벌이 수단으로도 삼는다.
쯔양을 보고 돈 낳는 거위라는 말에 경악했고 보호는 커녕 뜯어내어 이득을 취하려는 구조가 명백한 젠더폭력으로 보여지네요.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이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는걸까요. 사이버렉카는 피해여성에게 가할 뿐 자기보다 강한 이들에겐 결코 하지 않는 비겁한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아이들은 느끼지 않아야 한다”며 “소녀들이 두려움 속에 살지 않기를 바란다”고 타임에 말했다.
할례는 종교의 신념이라 부르며 남성 권력에 의한 여성 억압이라 보여지는 행위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불합리함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더욱 이어지길 바랐습니다.
강약약강 모습을 보인 것 같아요. 문제가 있을 거란 생각을 애당초 하지 않고 렉카 콘텐츠를 만든 것은 아닌 거 같아보이고요. 수익만 거두면 무엇이든 착취하려는 기형적인 자본주의 폐해가 이들에게 스며있는 것 같네요.
“골프 치면서 걷는 것과 먹고살려고 걷고 뛰는 게 같나”
시간에 쫓기다 못해 작업 속도가 느리면 방송으로 재촉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도 부족한 곳이 쿠팡 물류센터인데요. 일을 못하면 다시는 재지원할 수 없도록 블랙리스트까지 만든 기업에서 이런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여긴 노동자=돈 으로 취급하는 곳 같아요.
야간에 내린 폭우로 산사태까지 벌어지는 원인이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태풍이 불어도 뿌리가 뽑히지 않는 나무들이 기후위기로 인해 제때 물이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무가 빠진다고 합니다. 지리산 1400미터 에서 자라는 구상나무조차 뿌리째 나무가 빠져 산사태가 일어나기도 했구요.. 장마도 불규칙하게 일어나는 중이라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네요.
월 천 만원벌기, 스스로 브랜딩이 되어라, 주식•코인•부동산 임장 등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자꾸 노출시키는 사회의 중심엔 각자도생이 매커니즘처럼 돌아가고 있다고 봐요.
그로 인해 생기는 양극화와 갈등은 사회적인 문제로 야기되고 어떻게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나라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게 하지요.
미래도 노후도 불확실하다는 틈을 노려 시장은 언제든 관심경제 이용자들을 타겟팅하여 소비를 부추길 것 같아 걱정입니다.
다양한 사회적 집단과 이익을 대표, 중재하며 공동체 차원의 집합적 의견 형성과 의지 형성을 주도하는 핵심 주체인 정당이 안팎으로 도전받고 있다. 더 교육받고 더 많은 정보를 손에 쥔 ‘비판적 시민들’은 선거 참여를 넘어 더 많은, 더 직접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시민들은 더 적극적으로 사회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고 고민하고 있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한데 모아서 숙의로 나아가는 교육이나 기회가 좀처럼 모이지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읽으면서 이번 총선이 생각이 났는데요. 지역에 따라 양당제로 갈리면서 소수 야당들이 정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며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논하는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우려가 자꾸만 생겨나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