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20대 남성이 적대적 성차별주의자라면 영포티나 영피프티는 온정적 성차별주의자예요. 그런데 그 ‘여유’는 그들이 사실 성차별주의의 수혜자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거든요. 자신들의 권력을 성찰하고 분배할 수 있는 사회정의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고, 그것이 적대적 성차별의 토양을 만들었음에도 그저 20대 남성을 한심하게만 보죠.” 결국 다시 책임의식 부재의 문제로 돌아온다.
어른다운 어른보다 어설프게 젊은척하는 힙한 어른을 모방하는 게 저는 이상하게 다가오네요.
재직자 50인 이상 회사 고용 사업주는 장애인 고용이 의무라고 하지요. 하지만 현실은 벌금을 내고 만다고 하더라고요.. 갈 기회가 없는 이들은 세상을 더욱 만날 수 없어 고립되어만 가는 것 같아요. 조금씩 의식을 변화시킬 회사가 늘어가길 바라봅니다.
뚜렷한 방지대책이 현 정부에서 보이지 않아 답답한데요. 하지만 꼭 필요한 정책이라면 침수 이후 구제대책은 뚜렷한가입니다. 산사태가 일어나는 지역이라면 보호시설이 잘 갖춰 있는지, 침수지역엔 물막이 설치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수해지역 복구 및 보상 대책은 어떤지 만반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이 제시되어야 하며 그것에 대한 공감 이 구절에 눈길이 머물렀어요.
이번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의 패배에 마음이 아팠는데, 현실적인 공약이 없다는 말에 표가 모이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래에 대한 상상이 어떻게 실현가능성으로 보일 것인가란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후위기이고 반대로 기회가 언제든지 찾아오고 있다는 반증이니 숙의를 거칠 수 있었으면 합니다.
4년 전에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참사가 있었는데, 사고 당일에 차량 통제도 없었고 책임자 11명은 현재 2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미 지어진 지하차도나 배수로가 기후위기 시대 앞에서 어떻게 보수해나갈 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여 시야를 다르게 볼 수 있게한 기사였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급발진 사고가 노인 운전자의 운전 미숙등으로 초점을 맞추더군요. 언론은 취재로 폭넓게 사안을 다뤄야할 책임이 있음에도 오히려 세대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기보다 사고 경위나 이유등을 자세히 다뤘으면 하네요.
https://campaigns.do/campaigns/1219
예전 청원했던 기억이 나네요.. 동물학대는 사라져야 합니다 ㅠㅠ
개인의 노력을 촉구하고 장려하는 것. 좋은 태도지요. 그러나 시민 개개인의 노력만 촉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의 다수를 차지하는 기업과 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걸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기사라 생각합니다.
마치 온라인 버전 탕후루 같달까요... 한때는 유행했지만 지금은 다른 것에 밀려찾지 않는 콘텐츠가 되어버린 듯말이죠. 콘텐츠가 지속 가능한 환경으로 이행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할까요.
‘이런 걸 하면 안 돼’ 하는 금지 조항보다는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들어가야 한다.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내야 하고, 그 명령을 한 번이라도 위반하면 가해자를 위치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가까워지면 알림을 받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고 경찰은 가해자를 잡으러 가야 한다. 법은 실제로 사람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치에 무관심이 더해진 일본 내 분위기며 엄중한 판단이 내려져야할 곳에 그저 밈처럼 소모되는 선거라는 게 안타깝네요. 왜 정치에 무감할 수 밖에 없는지 심층적으로 다루는 보도가 필요해보입니다.
Monday's ruling by the Supreme Court was hailed by Trump as a "big win" for democracy.
The justices found that a president had immunity for "official acts" but was not immune for "unofficial acts".바이든 입장에선 궁지에 몰린 것 같네요. 재판은 11월 이후에 진행된다는데 사실상 트럼프에게 면죄부를 준 것 같고요.
노동환경(여기에 급여도 포함)이 열악하니 채용이 쉽지 않고 회사는 인건비 아끼려고 외주화하고 수급이 쉬운 중국동포들을 넣은 것이라 봐야겠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건 노동 환경의 열악함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고립 청년들이 다시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니 어떤 생애주기마다 통과해야할 (milestones) 것들을 넘지 못하면 평가하고 부정하는 시선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워터밤, 송크란, 골프장, 워터파크 그리고 흠뻑쇼같이 산업현장에서 발생되는 물낭비도 문제지만 거기서 만들어지는 일회용 쓰레기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엘님의 발언에 축제의 즐거움을 왜 PC로 들먹이냐던 댓글보고 속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무업기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막막함이 찾아오고
그렇다고 어렵사리 통과한 회사는 무보수 열정페이, 폭력 등의 문제로 나가는 문제가 발생하고… 이 모든 걸 개인 의지로 돌려버리는 사회, 개인의 눈높이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문제가 언제 해소가 될까요.
"체벌을 가하면 당장은 고친다. 그렇지만 일주일 있으면 또 못 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또 때리면 면역력이 생겨 1대가 10대가 된다. 스스로 느끼면 창조적인 플레이가 나온다. 시간이 걸리지만, 자기 것이 되면 영원히 이어진다."
우리나라 농구 지도자의 전설 전규삼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위 말은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때 지켰던 소신이었죠. 하지만 오늘날 운동계는 팀 성적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하나로 모으기 가장 좋은 방식이 체벌(구타, 얼차려를 포함)로써 통제라 보는 것 같습니다. 팀 성적은 초반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한계는 명백합니다. 팀을 하나로 모으고자 개개인의 개성은 무시되고 정작 팀 스포츠는 개성넘치는 플레이와 팀 플레이가 조화를 이루어 좋은 성과를 내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 경직되어 있는 듯 합니다. 엘리트 스포츠의 한계죠.
아침에 출근했다 장례식장으로 퇴근하는 노동자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두 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말.. 문득 듣다가 저희 아버지 생각 났어요. 24년 전 아버지도 추락사하여 퇴근하지 못했었네요. 작년엔 제 친구가 사망했고요..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 것일까요. 왜라는 질문에 먹먹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