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식 사회운동론 -자본의 방식으로 승리하는 사회운동-
* 토론에 앞서 :
혹시 ‘림버스 컴퍼니’를 둘러싼 사건을 모르신다면 사건 정리 https://t.co/p1GsPQUtn5 를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 2023년 9월 18일 사측이 악성 유저에 대한 적극적 조치 의사를 밝혔고, 경기청년유니온은 법적인, 협소한 의미의 부당해고가 발생하지는 않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사측이 노조측과의 협의를 깨고, 일방적으로 노동조합 측과 조율해오던 합의안을 유출하였고, 노동조합과 사상검증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사용자들에 대한 소송 의사를 밝히기까지 하였으나, 본 노동조합은 프로젝트문사가 늦게라도 악성사용자에 대한 법적 대응을 천명한 것을 환영하며 사측에 대한 성명을 철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앞선 부당해고 쟁점 정리 글은 현 상황에서 쟁점을 다룰 실익이 적어 삭제하였음을 밝힙니다.
이 토론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제가 활용한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번 ‘림버스 컴퍼니’를 서비스하는 ‘프로젝트 문’사의 사상검증 계약종료 사건에의 대응과 관련하여서는, 노동조합으로서 선봉으로 깃발을 들고 운동을 주도한 경기청년유니온의 위원장이 생업으로는 청년 창업을 한 스타트업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에 스타트업의 창업 및 운용 방식과도 유사한 이번 사태 대응에 대하여 창업가의 관점을 접목하여 말씀드림으로써 사회 운동에의 시사점을 던지고자 합니다.
시장을 파악하고, 소비자 관점에서 생각하기
창업을 위해선, 우선 시장을 알아야 합니다.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국내 사용자 성비는 남성 4, 여성 6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성 팬덤은 주로 디씨인사이드 마이너 갤러리, 나무위키, 아카라이브 등지에서 활동하고, 여성 팬덤은 주로 트위터에서 활동합니다. 또한 이 게임은 영어, 일본어 환경을 지원하여 전세계 대상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고, 외국인 플레이어의 비율 또한 무시하기 어려운 비율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23년 7월 25일, 남성 팬덤이 주축을 이룬 커뮤니티에서 여름 맞이 캐릭터 상품 중 여성 캐릭터가 해녀복을 입어 노출도가 낮으므로 비키니 수영복으로 바꿔야 한다는 항의가 폭발합니다. 이들은 억지 논란을 만들어내고, 외국인 사용자들에 대한 설득에 나서는 한편, ‘프로젝트 문’사에도 예약 없이 불쑥 항의성 방문을 하여 위압감을 조성합니다. 또한 게임을 판매하는 상점의 별점을 1점으로 주어 별점이 낮아지면 게임 매출과 서비스에 지장이 생긴다는 속설에 기반한 사측을 상대로 한 협박에 나섭니다. 이들은 협박을 통해 페미니스트로 추정되는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를 해고하고, 이가 작업한 작업물 또한 교체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성 팬덤에서는 이에 남성 사용자들의 한국어/외국어 마타도어에 대응하고, 1점 별점 테러에 대응하여 별점 5점 주기 운동을 벌입니다. 외국 사용자들의 의견도 남성 팬덤의 조악한 논리에 호응하지 않았고, 별점 테러도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섰기에, 사측이 합리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의사결정을 한다면 해프닝으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장 선점하기
파악한 시장을 장악하고, 주도해야 합니다.
2023년 7월 25일 밤 11시 55분, ‘프로젝트 문’ 사측은 남성 팬덤의 협박에 굴복하여 일러스트레이터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작업물을 교체할 것을 천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직원으로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를 향한 노골적인 노동권 침해와 명예 훼손이 발생합니다. 또한 게임의 주축을 이루는 여성 팬덤에서의 분노와 배신감이 하늘을 찌릅니다.
기업의 관점에서 경기청년유니온을 본다면, 이 상황에서 활약할 수 있는 명분(청년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침해에 대항하는 게임사 소재 지역의 노동조합)을 갖고있었으며, 또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유사 사례에 대한 경험 또한 조직과 그 대표자가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경기청년유니온이 7월 26일 오전 5시에 규탄 성명문을 발표하여 깃발을 듭니다. ( https://twitter.com/ggyunion/s... ) 이 트윗이 하루동안 약 2,000건의 RT를 기록하며 주목을 끕니다. 이후 전국여성노조, 민주노총 IT노조 등 노동조합이 이 대열에 합류합니다. 또한 여성 팬덤 역시 트럭 시위를 조직하며 공론화에 힘을 보탭니다.
사태가 몇몇 언론사에서 뉴스를 타며 주목을 받습니다. 특히 깃발을 든 경기청년유니온의 성명문은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인용, 발췌되며 사측을 비판하는 언론과 그에 영향을 받은 여론 조성의 중추가 됩니다.
창업 기업으로 본다면, 시장의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 경기청년유니온의 규탄 성명이라는 MVP(최소기능제품)이 시장에 폭넓게 받아들여져 시장을 선점하게 된 상황입니다. 이제 경기청년유니온이 이 시장의 주도권을 갖습니다.
딱딱한 단체, 유연한 개인의 조합
하지만 노동조합은 공적인 조직이라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노동조합이기에 깃발을 들 수 있었으나, 역시 노동조합이기에 공감하는 소비자와의 연대를 통한 시장 확장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청년유니온은 가입 조합원을 통한 노동운동을 하는 조직이 아니라, 사회적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한 사회적 압박을 통해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입니다. 그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경기청년유니온 공식 계정에서는 성명 발표 등의 공적 알림 기능만 수행하고, 위원장 개인 SNS를 활용하여 소비자와의 네트워킹에 나섭니다.
시류에 편승하기
그렇게 위원장 개인의 인격이 노동운동에 개입하자, 위원장의 경험을 통해 이번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위원장 역시 ‘프로젝트 문’사와 같이 스타트업 창업자이고, 투자 유치에 나서본 경험이 있어 투자 시장의 동향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 기업 투자 시장에서는 ESG, 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핫 키워드가 되어 이를 위반하는 기업은 투자도 받기 어려우며, 이런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사는 무식쟁이 취급을 당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위원장 개인의 지식과 경험이 경기청년유니온이 사측을 공략하는 핵심 무기가 되었습니다.
경기청년유니온 명의로 ‘공개서한’이라는 형식의 규탄 성명이 작성되고, 배포됩니다. ‘공개서한’ 형식은 투자사 블랙록이 ESG를 무시하는 기업과 투자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내용을 천명함으로써 유명해진 형식입니다. 삼성전자도 이 공개서한을 수용할 정도로 핫한 키워드이므로, 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 트윗 역시 약 2,000 RT를 기록합니다. ( https://twitter.com/ggyunion/s... )
하지만, 공적인 격식을 차린 편에 속하는 이 공개서한은 일반 사용자들이 얼른 듣고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에 위원장 개인 SNS를 통하여 요약 해석 트윗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24시간동안 약 1.6만회 RT, 그리고 1주일간 228만 회의 노출량을 기록하며 대 히트를 칩니다. ( https://twitter.com/JCLEE0333/... )
사이다 드세요!
대히트를 칠 수 있었던 이유는 경기도의 세금이 투자사를 통해 사상검증에 기반한 계약해지를 저지른 악덕기업에 흘러들어갔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 덕분이었습니다. 시민의 세금이 지분으로 연결되었을 수 있다면, 시민은 주주로서 회사에 개입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사상검증에 근거한 계약해지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들이 주주로서 주인의식을 갖고 회사에 개입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이 만들어졌습니다. 경기청년유니온은 이번 사태를 인지하고 있다고 사용자들이 추정중인 경기도지사에게까지 멘션을 통해 문제에 개입시키며 판을 키웁니다.
또한, 경기도의 행정이 연관된 분야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경기도 행정을 감시하는 경기도의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를 쥔 상황이 됩니다. 기업활동의 핵심은 수익을 분배하는 동료를 늘려 시장에서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고, 정치인인 지방의회 의원들은 모두 뉴스 등을 통한 노출에 목마른 주체입니다. 두 주체의 이익이 맞아떨어집니다.
경기청년유니온은 기자회견을 공지하고, 경기도의원 섭외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 사태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 회사 불시 방문으로 인한 노동자 안전 문제, 청년 노동권 문제, 경기도의 투자 관리감독 문제를 짚을 수 있는 안전행정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경제노동위원회 경기도의원을 섭외합니다.
이 과정에서 경기청년유니온이 세금 활용을 감시하기 위해 신청한 정보공개청구, 그리고 도의원을 통한 자료요구에 당사자인 경기콘텐츠진흥원이 10일, 7일이라는 처리기한보다 훨씬 빠르게, 하루 이틀만에 화들짝 응답하여 경기도의 자금이 해당 회사에 투자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아쉽게도 세금 사용 감시를 통한 문제 해결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순간이지만, 반대로 투자와 세금을 엮어 문제를 만들 수 있다면 사측에 돈을 대는, 기업 입장에서 소비자보다 훨씬 두려운 쩐주에 대한 영향력 역시 활용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어쨌든, 경기청년유니온은 기자회견 전에 이번 건과 관련하여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를 모두 해결했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쇼타임입니다,
기자회견 시작 두 시간 전,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송출할 것을 위원장 개인 SNS를 통해 공지합니다. 노출을 높이는 것이 이해관계에 맞는 정치인, 노동조합 모두의 합의에 따라 즉석에서 이뤄진 결정입니다. 같은 시간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양평 고속도로 브리핑을 함으로써 기자회견장에 기자가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결정은 기자회견이 언론에 의해 묵살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물론 기자회견문 및 보도자료 배포 역시 이뤄졌습니다.)
유튜브를 통한 기자회견 송출에 많은 사용자가 몰렸습니다. 그러나 유튜브 스트리밍은 구독자가 적은 계정에게는 소수를 대상으로 한 스트리밍만 가능했기에 의도치않게 잘 되는 가게 앞에 줄을 세우는 듯한 효과를 냈습니다. 많은 사용자들이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볼 수 없다면서 트위터 안에서 주목도를 올리고,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기자회견문이라도 보고 싶다, 기자회견 동영상은 나중에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여론이 돌며 기자회견 이슈가 여러 시간 동안 화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땔감을 제공합니다.
사용자 관심도 유지하기 / 사업 확장하기
초기 기업과 사업으로 따지면, 이는 메가 히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유니온은 영리조직은 아니기에 이 히트는 단기적 금전 이익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후원금 모금과 문제 해결을 지지하는 청년 조합원 및 후원회원의 가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문제 대응에 나선 약 10일 동안, 경기청년유니온은 약 4년간 지부 활동의 침체로 잃은 조합원을 넘는 신규 조합원/후원회원을 모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운동은 긴 싸움입니다. 또한 이번 노사분규에서 당사자가 적극적 행동을 지양한 상황에서 공개된 정보만으로 제한된 활동이 수행된 만큼, 노사 분규가 극적으로 해결된다면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 역시 급히 끝낼 필요가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사실 2016년 ‘클로저스’게임에서 여성 성우가 ‘여성에게 왕자는 필요 없다’란 티셔츠를 입었다 사상검증을 통한 부당해고 및 작업물 교체가 일어난 뒤 이번 사례까지 최소 15건 이상이 발생한 업계의 고질적 문제입니다. 또한 이번 사태는 노동자라서 적극적 액션이 가능했지만 대부분의 사태는 프리랜서에서 발생해서 손 쓸 수도 없었단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게임 업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실 프리랜서가 미래의 노동 형태가 아닌 지금의 노동 형태인 청년에게 있어서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경기청년유니온은 그렇기에 이 문제를 콘텐츠 업계로 확장하여 피해자의 목소리를 모아 판을 키우고, 이번에 시류에 편승하여 흥행을 이뤘던 방식을 또 한번 활용하여 트위터 활동을 통해 ‘사상검증은 칼부림 사건과 비슷한 형태의 혐오범죄이므로 규제해야한다.’는 인식 또한 만들어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흥행의 핵심적 역할을 해준 사이다 역할은, 이미 제기한 경기도의 문제를 행정감사에서 처리하는 동시에 국회의원 의원실과의 협업을 통해 국정감사와 그 뒤의 후속 입법 지원 활동을 통하여 인터넷에서 혐오범죄로서 벌어지는 창조된 논란으로 인한 사상검증 및 신상 털이에 대한 규제, 공적 자금 투자 기업에 대한 ESG 위반 행위 감시 및 규제책 마련, 업계를 막론한 사상검증 부당해고 기업에 대한 근로감독 또한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노동조합도 결국 시장을 개척하는 집단
의외로, 노동운동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타트업 기업 운영과도 맥이 같습니다. 기회를 포착하고, 모든 자원을 투사하여 시장을 선점하고, 거기에서 얻은 이익과 영향력으로 또 다음 기회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에 대한 이해가 노동운동에도 큰 쓸모가 있음을 확인하였음이 매우 뜻깊은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방법론이 노동권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ESG 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엮인 현 상황의 시급한 문제인 환경에 관하여서는 당장에라도 써먹을 수 있겠지요.
싸움을 하면 이겨야 한다고, 그것도 아주 크게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논리라는 무기를 터부시하지는 말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활용합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며 싸우기엔 지켜야 할 가치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