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를 많이 보유한다고 해서 그게 곧 그 사회의 주거가 안정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집이든 세를 들어 살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한국의 집값을 두고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원리에 따라 알아서 조절되는 것이지 그게 뭐 문제냐’, ‘돈 있으면 부동산을 얼마나 가지건 말건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재화나 무한한 것은 없습니다만 토지와 주택은 그 유한함이 비교적 눈에 잘 보이는 편입니다. 토지는 식물처럼 자라는 것도 아니고(증식하지 않음) 부동산(不動産: 움직일 수 없는 재산)이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다른 곳으로 가지고갈 수도 없습니다(이동할 수 없음). 또 같은 면적이라고 해도 주위 환경에 따라 그 가치가 확 달라지는데 이런 조건을 아주 약간은 바꿔볼 수도 있지만 음식에 양념 치듯이 완전히 인간 맘대로 할 수가 없다는 점도 있습니다(주위 환경을 바꾸는 데에 한계가 있음). 그리고 국토(國土)나 영토(領土)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토지는 국가라는 전제가 없이는 개인이 소유하기 힘듭니다(토지 자체에 공공성이 있음).
그런 점에서 토지는 다른 재산과는 다르게 취급되어야 하며 매우 확실한 유한함이라는 조건 하에서 모든 것을 개발해야 합니다.
남한의 면적은 100,210km²이고 인구는 5174만 명이니까 다른 조건 다 무시하고 단순하게만 계산하면 우리는 1인당 대략 1936m²(약 585평)의 땅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4,300km²(전국토의 64%) 정도라고 하니까(탁한명, 김성환, 손일, 「지형학적 산지의 분포와 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 『대한지리학회지』, 2013) 산을 빼고 계산하면 1인당 대략 694m²(약 210평)의 땅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우리는 이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을까요? 소유는 차치하고 우리가 주거, 노동, 여가 등을 위해 활용하는 공간을 다 합쳐도 210평이 되기는 할까요?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개발하고 분배하는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이규봉, 「한국과 일본의 공공임대주택정책연구」, 한국아시아학회, 2007)
대만
대만에서 공공임대주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지만, 정부에서는 이 사업에 대해 소극적이었다고 합니다. 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주택 가격이 급상승하자 1989년 민달팽이 운동(無殼蝸牛運動)이 일어났습니다. 이 당시에는 옥노(屋奴), ‘집의 노예’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1989년 8월 26일, 타이베이에서 약 5만 명의 시민들이 땅값이 제일 비싼 충효동로(忠孝東路)에 모여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대만에서는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 일어난 자발적인 도시사회 운동 중 가장 큰 운동이자 시위였습니다. (이 기록은 바로 다음 해인 1990년 민주주의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운동인 야백합학운野百合學運에 의해 깨졌습니다.) 이들은 20%의 민달팽이는 80%의 집 있는 달팽이에게 대항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민달팽이 운동을 계기로 주택 문제를 위한 사회단체인 중화민국 무주택자 단결조직(中華民國無住屋者團結組織), 학술단체 청셔(澄社, 영어 이름은 Taipei Sociaty), 대학생 무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주숙문제 전안소조(學生住宿問題專案小組) 등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계속해서 정부에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입법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2014년 9월 16일, 부동산 투기에 대한 10대 입법을 주장하는 사회단체 Our’s전업자 도시개혁 조직. 사진출처 未來城市.2019.07.01.)
하지만 아직도 대만의 주택가격 문제나 공공주택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치대학 장진으어(張金鶚, 장금악) 교수는 ‘토지가 있어야 재물이 생긴다(有土斯有財)’라는 중화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치관과 주택 소유를 위해 금융 지원이나 세금 우대 등을 행하는 전통적인 정책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장 교수에 따르면 토지나 주택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깨져야 그 다음을 진행할 수 있는데, 전통적인 가치관을 깨는 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장 교수는 정치인들이 ‘선거 전에는 머리를 세고, 선거 후에는 주먹을 센다’고 조롱했습니다. 선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당선이 되면 힘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계산하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건설사, 중개업자 등 부동산 사업가들이 바로 그 주먹이라는 것입니다.
장 교수는 주택을 가진 자 80% 중 60%p에 해당하는 사람들 역시 주택가격상승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자신의 집을 팔아도 지금과 비슷한 환경의 다른 집으로 이사갈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이로 인해 한 주택 소유자들의 거주 환경은 더욱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 교수는 20%의 무주택자들과 60%의 한 주택 소유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안을 주장했습니다.
1) 주택시장 메커니즘을 개선하여 시장정보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하고 실거래가 등록 제도를 개선할 것
2) 부동산 세제, 금융제도를 개혁해 주택상품화의 유인을 줄이고, 거주와 비거주소유를 엄격히 구분하고 비거주소유를 억제할 것
3) 다양한 주택보조금을 공적하고 효율적으로 제공할 것. 공영주택 건설 수만 강조하지 말고 취약가구에 대한 복지와 그 비율을 중시할 것
4) 주택의 안전, 환경을 중심으로 한 주택법을 시행해 임대주택의 주거 안전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품질을 개선할 것 (未來城市.2019.07.01.)
2016년, 총통 후보였던 차이잉원(蔡英文)은 2024년까지 공공주택 20만 호를 건설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당선된 후에는 <주택법>을 개정해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량을 30% 이상으로 늘리고, 지방정부의 공공주택 건설 지원을 실시했으며 실제로 각 지자체에서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대만의 공공임대주택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을까요?
2023년 기준, 전국에 기존 공공임대주택은 6,253호, 차이 총통 당선 이후 건설된 주택은 19,647호, 건설 중인 주택은 33,429호, 건설하기로 결정된 주택은 20,501호라고 합니다. 이를 다 합치면 79,830호이고, 여기에 아직 실행은 못하고 계획만 한 주택이 46,683호라고 하니까 이것까지 다 더해도 126,513호네요. (社會住宅興辦進度統計表)
일부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건설이 수도인 타이베이시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방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공공임대 주택 건설에 소극적이라고 합니다.
일단 토지 가격이 너무 상승해서 지자체가 이를 매입하기 너무 어려워서 경찰이나 군부대, 정부부처 건물 등 정부 시설에 대해 특혜를 줄테니 부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건설 원가 상승이 겹치면서 사업을 진행하기 더 어려운 실정이라고 합니다. (The News Lens 10. 2022.07.20.)
한국은 어떨까요? 토지와 주택을 거주를 위한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투자가 가능한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많을까요? 부동산에서 투기성을 제거하는 게 가능할까요? 이와 관련해서 함께 보면 좋을 사례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
네덜란드에는 사회주택(sociale woningbouw)이 있습니다. 그 시작은 1901년 <주택법(Woningwet)>의 제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법에 근거해 네덜란드에서는 주택협회(Woningcorporaties)라는 민간 사회적 기업이 있고, 이들이 임대하는 주택이 바로 사회주택입니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300 여 개의 주택협회가 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자선사업에서 시작한 사회주택은 1901년에 관련 법이 제정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 장려되었습니다.
2020년 기준, 네덜란드의 월 최대 주택 임대료는 740유로(약 98만 원)이라고 합니다. 사회주택의 경우에는 각 주택의 품질, 구성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고 그에 따라 최대 임대료가 책정됩니다. 보통의 임대사업자들은 가급적 법정 최대 임대료를 받으려고 하지만, 주택협회의 사회주택은 평균적으로 상한선의 72% 정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마리아 엘싱하(Marja Elsinga) 델프트 공대 교수는 네덜란드의 사회주택과 관련해 주택협회의 사회적 임무를 이야기합니다. (이로운넷.2020.12.07.)
1980년대 사회주택은 전체 주택의 42%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만, 2015년에는 34.1% 정도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일단 저소득층, 취약계층이 사는 집이기 때문에 영리를 추구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임대료를 올리기는 어려운데 주택 공급은 계속 해야하기 때문에 재정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네덜란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복지 재정은 축소되었고 주택협회에도 높은 세금이 부과되면서(임대수익의 25%) 사회주택의 수가 줄어들고 있고, 재정이 안정적인 주택협회도 주택을 더 공급하기는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인구가 암스테르담에 몰리는 일이 가속화되면서 수도권에 사회주택은 물론 일반주택마저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사회주택 공급은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사무실이나 사회복지시설, 산업시설 등을 개조해 사회주택을 늘리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고 토지임대부주택을 통해 정부가 토지를 저렴하게 빌려주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bizwatch.2019.08.07.)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덴마크
덴마크도 네덜란드와 같은 방식으로 주택협회와 사회주택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덴마크에는 500개가 넘는 주택조합이 있고, 주택조합 협회는 베엘(BL; Boligselskabernes Landsforening)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덴마크 공공주택(Danmarks Almene Boliger)으로 개명했습니다.
덴마크가 다른 나라의 사회주택과 다른 점은 우선 입주 자격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우 큰 규모의 사회주택만 아니라면 특별한 입주 자격 기준을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주 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원한다면 죽을 때까지 살 수 있고 자식에게 우선거주권이 부여됩니다.
공공주택에 들어갈 때엔 장기담보대출에 가입을 합니다. 일종의 모기지 같은 것인데 30년 만기 변동금리라고 합니다. 원금을 다 갚으면 공공주택은 개인 소유가 되고, 굳이 주택을 소유하고 싶지 않으면 원금을 안 갚고 이자와 관리비를 월세처럼 내면 됩니다. 주택을 소유하게 되면 그 이후에도 주택을 보유한 사람의 책임으로써 임대료(세금)를 내는데 임대료의 3분의 2는 전국기금으로, 3분의 1은 지역기금으로 들어가 다시 사회주택을 위한 재정으로 사용됩니다. (한겨레.2017.11.08.)
2019년 기준으로 사회주택은 전체 주택의 21.2%에 달하고 전국민의 60%는 인생 중 한 번 이상 사회주택에 거주한다고 합니다. (이로운넷.2020.12.07.) 사회주택과 같은 공공임대주택의 물량은 정해져 있고 경제가 어려운 요즘 일수록 누구나 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정하는 것이지요. 입주 자격이 없다면 그 수요를 어떻게 충당할 수 있을까요?
덴마크의 경우 사회주택의 임대료 상한, 보조금 액수 등은 중앙정부에서 결정하지만 신규 건설, 공급, 위치 등은 지자체와 조합에 의해 정해집니다. 새로 사회주택을 건설할 때 건설 자금은 임차인 자본 2%, 지자체 보조금 10%, 주택조합의 모기지 대출 88%의 비율로 조달됩니다. 매년 GDP의 0.5% 정도를 사회주택 보조금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사회주택에서 얻은 이익이나 이자, 모기지 원리금 상환 잔액은 전부 사회주택 기금으로 사용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주택 공급을 계속 늘려나가는 것입니다. (임병권, 강민정, 장한익, 김병국, 「유럽국가의 사회주택 현황과 지원 정책에 관한 사례연구」, 『주택금융리서치』, 2018)
결론
1. 일단 사회 전반적으로 주택, 토지 등 부동산을 재물(투자나 투기 수단)로 보지 않고 거주와 생활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닭이냐 달걀이냐 같은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인식이 없으면 부동산 업자가 폭리를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2. 공공주택 사업은 민관 협동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나 사회적 기업 둘 중 하나에서만 이런 일에 관심을 둔다거나 두 조직이 소통 없이 따로 논다면 공공임대주택 사업은 성공하기 힘듭니다.
3. 공공임대주택에서 나온 이익은 공공임대주택을 위해서 쓰여야 하고, 임대료는 건설 원가 수준에서 책정되어야 합니다.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것과 임차인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서로 상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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