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공공보행통로, 공익과 사익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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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입니다

사진 출처 : 헤럴드 경제

몇 년 전이다. 한참 SNS를 보는데, ‘건물에 통로 낸 부부`라는 글을 보았다. (게시물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뉘앙스였다) 사연은 이랬다. 전라북도에 있는 한 부부는 가지고 있던 땅에 주차장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다. 현장에 통행하지 못하도록, 쇠 파이프를 둘러뒀는데 인근 초등학생들이 자꾸만 그 밑을 기어가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유는 그곳을 바로 지나가면 학교로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을 지으려던 곳은, 학생들이 학교 통학로로 쓰던 장소였다.

사진 출처 : 헤럴드 경제

사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초등학교(초록색 표시)와 인근 아파트(파란색 표시) 중간(빨간색)이 아이들의 통학로였다. 아이들의 통학로를 그대로 둘 것이냐, 아니면 기존 계획대로 할 것인가. 고심하던 부부는 통학로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건물이 지어지고 난 뒤에도, 힘들게 빙 돌아서 가지 않고 통행로를 통해 쉽게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부부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전라북도교육청으로 부터 감사패를 수여 받았다.

필자는 부부가 뚫은 통행로가 일종의 공공보행통로라고 생각한다. 

공공보행통로는 지구단위계획에서 대지안에 일반인이 보행통행에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한 24시간 개방된 통로를 말한다. 아파트 단지 내 주민 및 인근 주민들이 편하게 짧은 길을 선택해 보행 편리성과 연계성 증진을 위한 것이다. 이는 아파트 단지가 폐쇄적으로 조성되고, 단절되는 걸 막아주는 장점이 있다.

공공보행통로를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24시간 개방되어야 한다. 둘째, 보행에 지장이 되는 시설물이 없어야 한다. 해당 지역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이 왕래하고, 혹여 몸이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통행에 불편을 주는 경사로 등이 없어야 한다. 공공보행통로를 잘만 활용된다면,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건 언제나 어렵다.

공공보행통로의 어려운 점은 사적인 장소에 설치된다는 점이다. 아파트라는 개인적인 공간에 설치되는 터라, 아파트 주민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갈등이 있다. 아파트 주민으로서는, 내 아파트 단지에 외부인이 왔다 갔다 하는 게 꺼려질 수 있다. 충분히 들 수 있는 생각이다

지난 2021년,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공공보행통로에 카드키를 찍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설치한 사례가 있다. 당시 수원시는 해당 아파트에 문을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고, 이에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한 사례가 있다.

빨간색 표시가 담장이 설치된 모습. 사진 소스 출처 : 동아일보

사례는 또 있다.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인근 산에 오르는 등산객 등이 많다는 이유로, 아파트 상가 옆에 담장을 설치했다. 담장 설치는 일종의 건축이기 때문에, 허가가 있어야 하고 해당 허가 없이 설치해 벌금 100만 원이 부여된 것이다. 이외에 강남구 압구정동의 모 아파트에 공공보행통로를 설치에 대해서도 주민과 서울시 간에 마찰이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해당 아파트 주민은 “집 앞이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이냐, 사적인 이익이냐.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우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판단도 어렵다. 돈을 내고 해당 입주민 자격을 부여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누구를 우선해야 할까? 요즘 처럼 사회가 불안정하고, 안전을 안심할 수 없는 사회일수록 이러한 문제가 더욱 부각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공공의 이익만 부각시킬 수도 없고, 사적인 이익만 추구할 수도 없다. 사회가 변할수록, 어쩔 수 없이 겪게되는 변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볼 때 마다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 따위가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타인에 대한 믿음, 정직성과 상호 신뢰, 그리고 개인의 일상적인 사교까지 줄어들어 사회적 자본이 크게 감소하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사회적 유대의 해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 홀로 볼링’이다.”*

과거 아파트 단지 내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던 5일장은 이제 볼 수 없다. 인근 아파트에서 5일장이 있던 날이면, 친구들과, 부모님과 함께 나가서 장도 먹고, 음식도 먹고 왁자지껄 놀았던 기억이 있다. 5일장은 친구를 만나면 같이 놀고, 부모님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사교의 장이었다. 이제 그 기억은 찾아볼 수 없는, 잃어버린 사회적 자본이 된 게 아닐까 싶다. 공공보행통로를 보면서 사회가 점점 더 그런 사회적 자본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출처 : 네이버 로드뷰. 하얀색 펫말을 자세히 보면 ‘이 출입문은 카드로만 사용됩니다' 라고 적혀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사연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 한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 통행로를 이용하면, 일직선으로 가로질러 갈 수 있어서 편한 길이 있다. 해당 아파트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기에 그쪽으로 들어갔지만, 막상 들어가니 나가는 데 문이 있었다. 당연히 열릴 줄 알았던 문이 알고보니 카드키로 열 수 있는 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돌아서 갔다. 필자 옆에는 배달을 하는 배달 라이더 분이 계셨고, 그분도 왔던 길을 돌아서 다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라이더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돌아가던 게 기억난다.

건축학자이자 교수인 유현준 교수는 좋은 건축이란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주택 담장에 있던 깨진 유리병을 깬 순간부터 사회가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파트 주민과 인근 주민이 함께 어울릴수 있도록 벤치를 놓자고 말했다. 벤치를 아무리 많이 놓는다고 해도, 거기에 앉을 사람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우리 사회에 공공보행통로를 통해 화목해지는 분위기가 생겨나면 좋겠다. 전북의 한 부부가 아이들이 통행할 때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믓하다고 말한 것처럼 흐믓해 질 길이 많아지면 좋겠다.

* 나 홀로 볼링 (로버트 D.퍼트넘/ 페이퍼로드/ 2009/ p.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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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링턴 플레이스 안암 통행로막고 제한시작했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비슷하게 외부인을 차단하는 방식을 마련했는데요. 아파트 입주민 전체의 평가는 아니겠지만 흔히 말하는 입주민 대표단에서는 이 방식을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해 단지 내 안전을 보장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더라고요. 외부인을 차단하는 게 좋은 정책인 걸까 고민하게 됩니다. 학교가 가까운 아파트라서 단지에 살고 있는 아이들도 많은데 외부인을 차단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닐까 걱정됩니다. 외부인을 차단한 문을 볼 때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고 있는지 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문득 한창 유행처럼 지자체에서 진행한 담장 허물기 사업이 대조적으로 떠오르네요.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시작되었지만 보행환경 개선과 공동체 의식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 아파트 단지는 긍정적 의미의 감시로부터 안전하게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구분짓기로 사용 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아파트 안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면 그렇게 싫은가? 싶습니다. 게다가 공공보행도로로 사전에 만들어 놓은 길을 잠그고 카드 찍고 지나가게 한다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게 자신들의 행복에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근처 어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재밌는 게 있다더라, 하면 다같이 놀러가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 아파트단지의 여러 놀이터들을 탐방하며 즐거운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 같네요 ㅎㅎ; 그러다보면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되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게 어렵겠군요. 보안과 안전도 중요하겠지만 분명 어떤 소중한 것도 잃어버리고 있지 싶습니다. 커뮤니티나 소통도 있을 것이고요, 공공을 위해 내가 사는 마을이 기여하는 기쁨도 있을텐데요.
소통의 단절이 많아졌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는 사례네요. 이제는 어린이들이 '우리 마을', '우리 동네'가 아니라 '우리 (아파트) 단지'라는 표현을 쓴다는, 어떤 청소년 지도자 선생님의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