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국가 정상영업합니다 이민자 대환영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2
지난 2월 2일, 국회에서 법안 하나가 발의됐습니다. 이름은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민 정책을 총괄할 부처로 출입국‧이민관리청을 만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법안은 여권 핵심 인사가 추진 중이고, 또 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어서 중요한 법안입니다. 외국인 이주자와 어울려 살아가는 한국 사회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거든요.
이번 호 폴라리스는 이민청과 이민 정책에 주목했습니다. 이민청을 제안한 배경, 정부의 이민 정책이 품고 있는 두 가지 구조적 결함, 그리고 이주자와 공존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아쉽게도 이민청을 만들게 된 배경과 이주자의 현실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번 호가 더 나은 해결책을 상상하는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 지금껏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하지만 다가오고 있던 오래된 미래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우린 노동자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왔다.” (”Wir riefen Arbeitskräfte, und es kamen Menschen.”)
스위스의 작가 막스 프리슈(Max Frisch, 1911~1991), 이탈리아인 이주 노동자의 삶을 다룬 책에 서문을 써 주며
#1 저출생과 지방 소멸, 환장의 콜라보
‘출입국‧이민관리청’, 줄여서 이민청은 세워지게 된다면 앞으로 출입국과 국적, 이민 관련 업무와 정책을 전담하게 될 정부조직입니다. 지금까지는 출입국과 법무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여러 부처가 이민 정책을 나눠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능을 이민청 아래 한데 모으겠다는 겁니다.
이민청 설립에 불을 붙인 사람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한 위원장은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이민청 준비를 지시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해 이민청 제안 이유와 목표를 밝혔습니다.
"이민 정책은 할 거냐 말 거냐 고민할 단계를 지났고, 안 하면 인구재앙으로 인한 국가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필요한 외국인만 정교히 판단해 예측 가능성 있게 받아들이고, 불법 체류자를 더 강력히 단속하는 등 정부가 관리·통제해서 '그립'을 더 강하게 잡겠다.”
이민청이 제안된 배경은 인구 감소와 지역 불균형입니다. 합계출산율이 바닥이 없는 듯 추락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현실을 모르는 분은 드물 겁니다. 괜찮은 일자리와 인프라가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특히 젊은) 인구가 비수도권 산업 현장과 대학 캠퍼스에서 사라졌습니다. 노동자와 학생의 빈자리를 바로 이주자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낮은 처우로 숙련공이 계속 유출되며 인력 수급난에 빠진 조선업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지난해 신규 채용한 노동자의 86%가 외국인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학부생 99%가 외국인이었던 지방 대학도 있었습니다.
정작 수도권으로 떠난 젊은 인구는 긴 노동, 성차별 등으로 출산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해 저희가 발행한 레터에서 더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정부는 줄어드는 출생자 또한 이주자를 활용해 보완하려 합니다. 지난해에는 이민청 제안과 더불어 외국인 가사노동자 확대, 외국인 유학생 정착 유도 등의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이주자와 같이 사는 미래를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은 이주자를 절실히 원합니다. 반대로 이주자에게 한국은 매력 있는 나라일까요? 이민은 태어나 자란 곳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삶을 꾸리고자 감행하는 행동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제법 그럴 것도 같습니다. 이민자 출신인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재를 모셔오겠다고 여러 유인책을 발표했는데 질문은 이거예요. 그 사람들이 와요? 63개국 고급 인력을 대상으로 아시아 11개국 중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를 조사한 2017년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끝에서 1·2위를 다툽니다.” (2024년 2월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이 의원의 인터뷰는 이주자의 입장에서 ‘한국으로의 이민’에 대한 여러 지점을 다루었습니다. 깊이 읽어 볼 기사로 이 의원의 인터뷰를 제안해 드립니다. 이 의원은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는데요, 다음 글에서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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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신은 인간이 아닌 소모품입니다”
한국 이민 정책의 핵심은 외국인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노동력’으로 취급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소개한 인터뷰에서, 이자스민 의원은 외국인 노동자가 “한 번 쓰고 버리는 화장지처럼” 여겨진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런 문제가 집약된 게 내국인 직원을 구하지 못한 사업장에 외국인 노동자를 제공하는 고용허가제(E-9)입니다.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부터 함께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그 여파를 살펴볼까요?
우선 고용허가제는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합니다. 사용자가 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임금체불, 폭행 등 부당한 처우를 노동자가 입증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어요. 그러나 언어와 제도에 서투른 외국인 노동자가 부당함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고요.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사업장 변경 금지는 이주 노동자의 협상력을 박탈하고, 자의 사직하면 추방된다는 위협을 통해 노동자를 사업주에게 극단적으로 종속시킨다’고 지적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용허가제는 재입국특례 신청권도 사업주에게만 부여합니다. 재입국특례는 4년 10개월 근무 후 본국에 갔다 다시 돌아와 근무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인데요. 사업주가 고용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비자가 연장되지 않기에,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주의 의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죠. E-9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가족 결합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외교, 공무, 행정, 학업 등 대부분의 외국인 체류자 가족에게는 동반(F-3) 자격이 부여되는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비숙련 노동자의 가족은 제외되어 있어요.
이처럼 고용허가제는 직업 선택의 자유, 가족결합권 등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 기울어진 권력 관계를 제도화합니다. 위계관계만 있을 뿐 업무 환경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허점이 많죠. 고용허가제를 활용하는 사업장이 주로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라는 점은 문제를 심화하고요. 이러한 제도는 결국 열악한 거주 환경, 위험한 노동 환경, 저임금, 임금체불 등 문제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2020년 고용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70% 가량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쓰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전체 근로자 중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은 3.4%에 불과하지만, 산재 사망 사고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2.3%에 달했죠. 2017년에는 자동차부품회사에서 일하던 네팔 청년이 사업장 변경 제한에 비관해 자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유서에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고용허가제도가 외국인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어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은 대게 부고의 형식으로 드러납니다. 아래 기사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부고와 함께 구조적 문제를 잘 분석한 기사들이에요. 마음이 쓰이는 독자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1️⃣ 만리타향에서 죽은 남편, 사과도 재발 방지책도 없다2️⃣ 속헹이 떠난 비닐하우스에 남은 동료들3️⃣ 개돼지만도 못한 죽음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등록 이주자’,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가 되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의 미등록 이주자는 43만명에 달하는데요. 지난해 정부가 늘리겠다고 발표한 고용허가제 입국 인력 16만5천 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노동계는 미등록 이주자를 ‘양산’하는 고용허가제를 개편하지 않으면 입국 인력을 늘려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사업장 변경 제한에 더해 ‘지역 제한’까지 추가했고요. “당신은 인간이 아닌 소모품”이라고 말하는 국가가, 이민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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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주’ ‘여성’ ‘돌봄노동자’라면 한국이 좋겠어?
이번엔 이주 문제를 인구, 재생산, 돌봄 문제와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물론 여성들의 이야기를 할 겁니다. 이주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공장, 건설 현장, 농촌에서 일하는 개발도상국의 남성노동자? 여성 이주자들 또한 결혼과 돌봄 노동으로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해왔습니다.
1️⃣ 이주 여성이여, 국민의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라
결혼 이민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었고, 특히 2000년대 들어 농촌 지역의 인구유출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결혼 정책으로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이주해왔죠. 2022년 출생아 수의 절반이 다문화 가정 출생아일정도로 이주여성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재생산 주체입니다.
허나 한국 사회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정, 지역사회 고립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40% 이상의 여성이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도망을 간다’는 이유로 한국어 교육을 방해받거나 외출 제한, 신분증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제결혼 가정의 남편과 아내의 나이 차이는 10세 이상이 평균이고, 매매혼과 다름없는 제도란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죠. 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의 체류자격 유지를 위한 신분 증명을 해 줄 주변인은 남편이 거의 유일합니다. 가정 내에서 피해를 입더라도 체류가 걸려 있고, 언어적 한계와 지역 사회의 고립으로 인해 귀책 증명도 어려워 고스란히 피해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 놓치고 있는 사실, 이주여성은 일한다
이주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한국 사회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인구이기도 합니다. 결혼이민비자(F-6)로 한국에 들어온 여성들도 절반 가까이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농어촌에서는 무급으로 가족사업에 참여하고 있죠. 이주여성의 절반이 200만원 이하의 저임금을 받고, 고용 및 산재보험 가입률도 낮습니다. 정부 운영 센터에서도 선주민 노동자들에 비해 호봉, 수당, 휴가 등 노동권의 여러 측면에서 차별을 겪고 있죠.
이주여성들과 가장 긴밀히 연결된 직종이 있다면, 바로 돌봄노동입니다. ‘이주의 여성화’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코로나19 이후로 선진국에 간호사, 간병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이주해 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전세계적 추세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주의 여성화 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미 국내 간병노동자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입니다.
돌봄노동은 강도는 높지만 저임금에, 사회적 인식도 낮고, 스트레스와 성희롱 등 여건도 취약한 기피 노동의 한 종류입니다. 여성이 가정에서 당연히 할 일이라 생각되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하고요. 때문에 이주여성들에게 전가됩니다. 최근에도 이주여성에게 돌봄노동을 외주화하는 것에 대해 큰 이슈가 불거졌죠.
3️⃣ 돌봄 그까이꺼 다른 여자한테 싼값에 시키죠.
바로 올 6월 서울시 시범 예정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서비스’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소득수준의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월 100만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돌봄노동자의 공급이 시급한 건 사실입니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의하면 돌봄노동자 수요에 비해 공급은 30%에 불과합니다.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비판에 부딪치는 이유는 문제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 성차별, 가사로 대표되는 돌봄노동의 불평등한 분담, 돌봄노동의 평가 절하,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등을 해결하는 노력은 부족합니다. 여성의 돌봄노동을 더 취약한 이주 여성에게 외주화하는 데 그치는 거죠.
글을 읽으신 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주여성이라면, 한국으로 이주하고 싶으실까요? 한국 여성이라면, 한국에서 계속 아이를 낳고 일하시고 싶을까요? 어쩌면 ‘한국배제의 여성화’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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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국 정치의 문제,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실제로 이민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 당국의 모습을 보면, 이 사회가 지금보다 더 많은 이주민을 맞을 준비가 됐나 의문이 듭니다. 이주는 말 그대로 한 인간이 새로운 정치 공동체에 속하는 것인데, 한국이 과연 ‘다름’을 마주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래서 박이대승 칼럼니스트는 이민이 경제적 문제이기에 앞서 정치와 사회의 문제라고 정의합니다. 이민 확대란, 한 정치 공동체의 ‘동료 회원’을 모집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죠. 마치 멤버가 부족해져서, 혹은 공동체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새 회원을 모집하는 것 처럼요. 다만, 글이 이주민을 ‘노동력’이 아닌 ‘동료’라고 초점을 두는 데에는, 어찌됐건 정치 공동체란 시민들이 평등하게 공동체를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 정치 공동체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은 이 공동체 회원 모집에 조건을 걸어왔습니다. ‘동등하지 않을 것.’ 앞서 말씀드린 이주민 차별 역사가 이를 방증하기도 하죠. 중요한 것은, 이 조건이 이민 정책의 시작인 ‘차별 금지’와 상충된다는 것입니다. 이 ‘차별금지’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애초에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 없거니와, 장기적으로 큰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기도 합니다. 차별을 제재하지 않으면 사회적 그룹 사이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비단 이주민 문제 뿐만 아닐테죠. 18년 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이를 역력히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요?
여전히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합니다. 다만, 낯선 동료의 등장은 공동체에게 도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2022년 2월, 울산으로 이주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초등학교 입학 소식에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자 고 노옥희 울산교육청 교육감이 한 말입니다. 이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구축해야 할까, 한국에서도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할까 등 의문이 드신다면 시사인의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울산 정착 1주년’ 기사 정독을 권해드립니다. 기사는 울산의 이야기가 “시작은 외지인이지만, 그 끝은 한국인들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현대중공업부터 교육청, 구청, 경찰서, 다문화센터까지 긴밀한 협조 체계가 만들어진 이례적인 사례이기도 한데요. 기사는 다가올 미래를 먼저 경험한 울산의 이야기, 이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 맺을 수 있었는지를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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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남긴 편지
1.
폴라리스 레터를 읽으시는 독자님들.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잘 지내냐”는 말은 인삿말로 자주 쓰이죠.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잘 지내지” 답하곤 하지만, 사실 정말 잘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정치에는 희망이 없는 듯하고, 취업은 안 되고, 불안은 횡횡하니까요. “그럼, 잘 지내지.” 이 말을 달고 사는 저도 하루를 씹어 삼키는 일이 버겁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굴러 떨어지고 싶은 모든 계단을 성실히 밟아 올라요.
지치고 피곤할 때 저는 두 가지 일이 하고 싶어지는데요.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어집니다. 전자가 ‘너도 나처럼 힘들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후자는 ‘나는 고통 속의 너보단 낫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이렇게 부박한 마음은 대게 저보다 약한 존재에게 향합니다. 저항하지 못하니까. 폭력은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법이잖아요. 다들 아시지요? 사장은 아버지에게 소리치고, 아버지는 밥상을 엎고, 어머니는 아이를 발가벗겨 마당에 내쫓고, 아이는 개를 때렸다.
2.
힘든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라 그런 걸까요. 폭력과 배제, 혐오로 안위를 찾으려는 시도들도 만연한 듯해요. 이슬람 사원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사장 앞에 돼지머리를 놓았고, 몇 년 전에는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기도 했죠. 이민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말하는 한국에서 이주자 혐오는 일상입니다. 실제로 2022년 홍성군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이 48.8%에 달했어요.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면 정말 우리 삶은 조금 더 괜찮아질까요? 당연히, 더 괜찮아지지 않습니다. 소수자와 약자에게서 고통이 시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찾으려면 우리는 폭력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거에요. 개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사장으로.
3.
세계화는 대규모의 이주민을 양산했습니다. 이주자 증가로 사회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사실 이주자는 사회의 기성 권력관계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이주 여성은 출산, 양육, 가사 등 재생산 노동에 투입되는데, 이러한 이주를 통해 젠더적 위계구조는 유지, 보수되죠. 마찬가지로 외국인 노동자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하청업체에 주로 배치됩니다. 양극화된 노동 시장의 최하층에 밀어 넣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계화 시대에 계급적 위계구조는 강화되고요.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자국 여성들의 경제 활동 진출과 청년들의 중소기업 비선호 속에서 비어버린 위계구조의 하층에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자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주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젠더, 계급 위계구조 위에 서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죽은 산업 현장은 한국인 노동자가 죽은 바로 그 곳이기도 하고, 여성 이주자가 투입된 돌봄 노동의 자리에는 여전히 저소득 비정규직 여성들이 남아있어요. 특정 형태의 노동과 성별을 저평가하고 차별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위계구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또 다른 타자를 양산하는 게 해법이 될 순 없겠죠. 개를 때리고 아이를 발가벗겨 내쫓아도-더 불행한 타자를 만들어도 인생이 살 만해지지 않듯이 말입니다.
4.
멕시코 치아피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은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저는 힘들 때 상처 입히거나 베풀고 싶어진다고 적었습니다. 원주민 여성의 말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것’ 뿐만 아니라 ‘베푸는 것’ 또한 해답이 아닌 이유를 보여주는 듯해요. 우리는 구조 위에 연루되어 있고, 베풂은 찰나의 흡족함을 주겠지만 우리가 연루된 세상은 바꾸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니 다시금 저와 같은 사회-공동체-권력구조 위에 사는, 이주민을 포함한 여러분의 안위를 물어봅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에디터 만쥬 🌰 드림
만든 사람들: 보라 🍇, 만쥬 🌰, 푸릇 🌿, 산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