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연금개혁 똑바로 했잖아? 이런 얘기 안 했어💰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9 폴라리스 독자님들은 황금연휴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구직자(백수)라, 연휴의 영향을 받지 않고 평소와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요. 구직 활동을 하다 보면 마주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자기소개서의 나는 ‘일하고 싶어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라고 외치지만 막상 일하게 되면 퇴사를 꿈꿀 것 같다는 거예요. 예전엔 일자리에서 물러나 연금을 받으며 살 때가 되면 이런 딜레마도 끝나리라 생각했지만, 이젠 미래를 생각하면 공포심이 앞섭니다. ‘국민연금 고갈’은 공포를 키우는 데 일조했고요. 지난 국회에서 연금 개혁이 무산된 이후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떨어졌는데요. 다행히도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다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연금 개혁을 ‘숫자’의 문제로 간주합니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몇 퍼센트로 할 것인가, 몇 살부터 보험료의 차등을 둘 것인가…. 하지만 숫자에 가려진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본 목적을 떠올리면 더욱 중요한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폴라리스는 이번 연금 개혁에서 절대 지워져서는 안 될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처서 매직’도 비껴간 무더운 추석 연휴, 폴라리스와 함께 보내주세요.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이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며, 사회참여ㆍ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여 사회통합과 행복한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 사회보장기본법 제2조   #1 17년 만의 연금개혁, 뭐가 달라지냐면 90년생은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을 거라는 말, 자주 들어보셨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4대 개혁’ 중 하나인 연금개혁안을 지난 4일 발표했습니다. 여야 또한 절충안을 찾아 내년 정기 국회에서는 관련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죠. 폴라리스가 소개할 조선일보 기사는 독자가 제일 궁금해할 만한 Q&A 4개로 연금개혁안을 정리했습니다. 삽입된 그래픽을 보시면 이해가 배로 쉬우니, 일독을 권합니다. 전문가 의견은 다양합니다. 나이가 아닌 ‘지불 능력’이 보험료율을 결정해야 하는데, 20대 이하부터 50대까지 보험료율 인상 폭을 달리하는 게 위험하다는 우려도 나오고요. 이와 달리 세대 간 공정성 확보를 위한 해법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번 개혁안에서 제일 복잡한 이슈는 ‘자동 조정 장치’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신규 수급자 기준으로 연금 수급 총액의 17% 가까이 깎인다”고 장치 도입에 반대 의사를 보였습니다. 반면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자동조정장치는 한마디로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향후 연금수급액이 줄어들도록 설계됐는데요.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장치는 ‘최근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과 ‘기대 여명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액을 조정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현 제도대로면, 내년 물가상승률이 5%일 때, 올해 100만 원이던 연금액이 이듬해에는 105만 원이 되겠죠. 그런데 자동조정장치가 작동하면 가입자 수 증감률(Ex. 1.0%)과 기대여명 증감률(Ex. 0.5%)의 합을 물가상승률에서 제하고 인상하는 겁니다. 현 제도라면 105만 원을 받았겠지만, 자동 조정 장치가 작동하면 103만 5천 원을 받는다는 게 위 기사의 설명입니다. 이번 연금개혁안은 노후 소득 보장과 기금 고갈 등의 문제를 최대한 보완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가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이번에도 놓쳤다는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글 보러가기 ⓒ연합뉴스 #2 숫자에 가려진 사각지대 ‘더 내고 더 받기,’ ‘덜 내고 덜 받기’ 등 지금까지 주로 논의됐던 국민연금 개혁안은 근로 소득 징수를 전제로 합니다. 이는 국민연금이라는 제도가 낳는 격차와 불평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1) 근로 소득이 낮은 경우 2) 회사 부담이 아닌 아닌 개인이 보험료를 100% 부담하는 경우 (지역가입자) 3) 연금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들 등은 사각지대에 놓이기 마련입니다.  먼저,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사회보험’ 이라는 것을 염두해야 합니다. 이 제도는 필연적으로 소득이 높고 가입 기간이 긴 사람, 즉 노동시장에서 고용이 안정된 사람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보험료를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납부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노후 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여기에서 사각지대 및 가입자 간 격차 문제가 등장합니다. 사각지대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했거나(적용제외자), 가입했더라도 실업 등 소득상실로 가입이력을 쌓지 못하는(납부예외 및 장기체납) 가입자들을 의미합니다. 숫자로 보면 격차가 더욱 와닿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2020년 말 기준 약 1263만명이라고 추정합니다. 가입자 연령군 10명 중 4명이 사각지대인 셈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격차 문제는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상용직 임금노동자는 연금가입율이 90% 후반대인데 ‘임시일용직’ 정규직 노동자는 53.8%, 비정규직 노동자는 42.8% 불과합니다. 2021년 기준, 비임금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나 프리랜서) 수는 788만명 가량에 달하는데, 이들의 가입률도 낮은 편입니다. 플랫폼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1.7%에 그쳤습니다. 요약하자면, 노동시장 중심부와 주변부의 격차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별 노후 소득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소득 격차는 노동 시장의 양극화에서 비롯되고요.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문제는 복잡합니다. 고용 형태 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에 따라서도 국민연금 수혜자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음 파트에서 함께 살펴보시죠. 🧭글 보러가기 #3 국민연금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연금에도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성별 연금격차는 성차별적인 노동·복지 구조로 인해 발생합니다. 성별 연금격차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로 수령 인구 격차입니다. 남성에 비해 연금 수급 자격을 얻는 여성의 수가 적은 거예요. 두 번째로 수급 금액 격차입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수령액이 낮은 거예요. 국민연금에서도 성별 연금격차가 나타납니다.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남성이 여성보다 1.3배 많고, 수령자와 수령액도 두 배 가량 많습니다. 성별 연금 격차가 분명히 나타나지만, 아직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지표는 없습니다. 국민연금의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①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이에게 준다. ② 소득에 비례해서 준다. ③ 오래 납부한 만큼 더 준다(10년 단위). 간단한 성별 연금격차를 유발하는 공식입니다. 한국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기간 동안 일하지 못하고, 동등한 소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복지 제도에서도 불리합니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남성보다 취약한 존재입니다. 여성은 고용과정에서의 차별은 물론 경력단절, 임금차별, 불안정고용에 노출되곤 합니다. 성차별적 노동구조는 여성의 지속적이고 평등한 소득 획득에 장애물이 됩니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복지 서비스 수급 요건을 획득하고, 수령 금액 증식하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경향신문에서 자세한 사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출산크레딧 부여 자격을 첫째 아이 출산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성별 연금격차 해소를 위한 일보 진전이긴 하나 한계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첫 아이에게 크레딧을 부여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납부 인정 기간도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남녀 모두에게 지급되는 혜택이라 여성에게 불리한 연금구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실제로 출산·양육 크레딧 수혜자 98%가 남성이란 통계도 있고요.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 복지 제도는 여성의 생계를 보장하지 않고, 여성이 남성부양자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국민연금 개혁에는 섬세한 젠더 관점을 바탕으로 한 성평등한 변화가 꼭 필요합니다. 🧭글 보러가기 ⓒ연합뉴스 #4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요? 국민연금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으려면 정년 연장 논의도 필요합니다. 정년은 국민연금 개혁에서 아주 중요한 변수입니다. 국민연금 의무가입 기간은 59세, 법정 정년은 60세인 현 구조에서는 59세까지 보험료를 내고 63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60세에 퇴직하고 63세부터 연금을 받는다면 3년의 소득 공백이 생기겠죠. 그런데 최근 정부는 의무가입 기간을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가입자가 돈을 내는 기간을 늘려 재정을 안정시킨다는 취지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정년 연장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거예요. 의무가입 기간은 늘어났는데 정년은 그대로라면, 퇴직 후 소득이 없어도 연금 보험료는 계속 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취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납부 기간을 늘리려면 일할 수 있는 기간도 늘려야 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더 중요한 문제인데요.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방법’에서 노동계와 정부•경영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어요. 노동계는 법적 정년 연장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부터 정년 연장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보다 청년 고용이 쉽지 않아 기존 고령 노동자의 계속 고용이 절실하기 때문이에요. 정부와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취업의 경우 퇴직 전과 동일한 직무를 수행함에도 임금이 과하게 삭감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한 일자리로 내몰리게 되는 겁니다. 이는 한국의 노인이 빈곤한 이유이기도 하죠. 정년을 바꾸는 건 단순히 퇴직 시점을 정하는 것이 아닌 고령 노동자의 노동 가치와 존엄성을 재고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때입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둘 다 덩치가 크고, 회색이며, 사람들한테 아주 인기가 있고, 비둔해 움직이기 힘들다.” 독일의 연금 전문가인 힌리히스 브레멘대 교수는 연금 개혁의 어려움을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했습니다. 연금기금의 규모 자체가 워낙 큰 데다가, 인구구조 및 산업 변화와 같은 사회경제적인 변수에 유동적으로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이죠. 개혁을 잘못했다간 표심을 잃을 수도 있고요.   한국에서 국민연금은 공적 연금 제도로서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가지지만, 몇 년 사이 낮아진 소득대체율 때문에 일각에선 ‘용돈’ 연금이라는 비판도 합니다. 몇십 년째 개혁에 관한 논의는 이뤄졌지만 이렇다 할 해법은 없어 보이는 국민연금, 우리는 이 제도에 굳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까요? 개혁이 필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해야 할까요? 제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문뜩 든 의문들인데요. 에디터 레터 지면을 활용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차근차근 찾고자 합니다. (주의: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다소 장황하지만, 제 고민의 흔적을 함께 따라가 주시겠어요? 1. 기금 수익률, 기금 안정이 제일 중요해? 자, 우리는 여태까지 재정 안정이냐 노후 소득 보장이냐 식의 이분법 담론을 접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논의에 꼭 언급되는 단어들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었죠.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인지 수치 얘기가 계속된 이유는 국민연금이 근로 세대가 퇴직 세대를 부양하는 부분적립방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입니다. 부분적립방식은 보험료 수입을 바로 급여로 지급하지 않고, 남은 자금을 기금으로 적립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현재 상황으로서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보험료 수급은 줄고 연금 지출은 늘 수 밖에 없죠. 언론, 정치권이 기금 고갈 '공포'를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정권들은 '재정 안정, 노후 소득 보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조율하기도 했고요. 최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개혁안도 이와 크게 빗나가진 않았습니다.  2. 세대 간 개인들의 연대가 정말 답일까?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개혁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당장 내야 하는 보험료나 수급액을 조정할 수는 있어도, 인구 구조가 계속 악화한다면 국민연금의 불안정성과 기금 소진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죠.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교수는 재정 안정이 지출 시점 노동 세대의 생산성에 달려있기 때문에 현재 논의되는 저축식 해법은 효용성이 크게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노동 세대의 생산성은 인구, 사회경제적인 변수 및 불확실한 상황에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고요. 혹시나 지금보다 인구구조 상황이 더 안 좋아져 연금 수입액을 초과하는 수준까지 보험료를 올린다면, 가입자들 사이에 오히려 제도 불신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점점 공적 연금의 효용성을 느끼지 못하겠죠. 민간 연금과의 경쟁에서 국민연금은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을거고요. 중요한 것은, 고소득자 가입자들은 알아서 민간 연금과 같은 플랜 비를 찾을 테지만,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은 노후 소득 보장에서 점점 더 밀려날 것입니다. 현재 정부가 제시한 개혁안대로 보험료와 세대별 차등 적용을 한들, 노동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사회 위기에 사각지대 인구는 연금의 수혜자가 되기 더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됐던,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운용된다면,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게 공적연금은 여전히 노후 소득의 큰 기둥입니다. 금융시장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사적연금이나 금융상품에 비해 안전성도 비교적 높고, 애당초 사적연금과 목표부터 다르고요. 3. 든든한 사회라는 뒷배가 필요해 현재 제안된 개혁안을 비롯한 다른 모수 개혁안들은 살펴보면, ‘국민연금기금을 소진하면 절대 안 된다’는 신념이 작용했다고 원종현 국민연금기금 상근전문위원은 말합니다. 아니, 기금 소진을 막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지만, 원종현 위원은 연금 개혁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기금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노후 보장, 즉 공적연금제도 자체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논리를 따라가보면,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곧 노후 보장 강화로 이어집니다. 예컨대, 소득대체율을 인상해 노후 소득이 기초생활을 보장하게 하고, 근로기간에 납부하는 보험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죠. 이는 공적연금제도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미 4월, 500명의 연금개혁 시민대표단 중 다수는 숙의 토론을 통해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적정 연금 보장’을 선택했습니다. '더 내고 더 받기'를 통한 노후 보장을 선택한 셈이죠.  다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근로소득 뿐만 아니라 국가도 국민연금의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 고민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즉, 보험료를 개인 가입자들이 더 내는 방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현행 보험료율 9%는 각 근로자의 소득에서만 징수합니다. 하지만 근로소득만으로 노후 사회보장제도 전체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노동 능력 여부, 고용 형태, 성별, 나이 등에 따라 격차도 벌어질 수밖에 없죠. 한 세대는 단일한 계층으로 구성되지도 않고요. 일각에서는 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 기반을 넓힌다면 보험료율은 낮아질 수 있고, 일부 국가가 시행하는 자산소득 등 다양한 소득원에 대한 보험료 부과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험료의 양보다, 분배의 질서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자,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앞으로 국회는 어떤 안을 내놓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구독자님은 이번 개혁안,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로 의견 알려주세요!  2024. 09. 16.   에디터 산호🐠 드림 만든 사람들: 반달🌙, 모래🏖️, 푸릇🌿, 산호🐠 🧳폴라리스 방학 공지🌕 폴라리스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레터를 열어보셨을 쯤이면 막 시작된 추석 연휴를 즐기고 계시겠네요. 폴라리스 에디터들도 한 주 동안 재정비와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폴라리스 레터는 9월 30일 꺼뉴다보 13호로 돌아옵니다. 모두 몸 조심하시고, 건강하고 아프지 않은 한가위 되시길 빕니다. 다음 레터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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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페이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2 이 코너의 제목은 ‘꺼진뉴스 다시보자’지만, 이번 호에서 다시 보고자 하는 뉴스는 꺼진 뉴스가 아닙니다. 먼저 한국을 태우고 있는 딥페이크 성착취와 연결해 이른바 ‘성산업’을 생각하는 기획 보도를 가져왔습니다. 지난 주에는 23명이 사망하는 화재 사고가 난 아리셀의 대표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구속됐죠. 아리셀 참사 유족을 돕고 있는 이주민 활동가를 인터뷰한 기사를 다음으로 보여드립니다. 그리고 불씨가 꺼지지 않게 전력을 다하는 법조 전문 독립언론 <코트워치>도 소개해 드립니다. 조금 버거우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 불길을 마주하러 가 볼까요? ⓒ한겨레 & 곽진산 기자 1. 연재·기획: 30조 성산업 불패의 공범들 "30조~37조원 규모로 추산됐던 성매매 산업을 지탱하는 주범은 성구매자와 성매매 알선자이지만, 주변에 기생하며 이익을 얻는 공범들의 존재도 만만치 않다. 성매매 장소 제공자와 성매매 대리 예약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 한겨레 탐사팀, <한겨레>  한창 공개 중인 <30조 성산업 불패의 공범들>을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딥페이크 성착취가 한국을 태우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성폭력은 타인이 존엄을 갖춘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라는 의견을 접했는데요, 그런 모습을 가장 강렬하게 경험하는 곳이 성매매 업소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석유를 부은 듯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성착취란 불을 같이 지켜보고, 불을 끌 방법을 생각하기 위해 이 기획 보도를 소개합니다. <30조 성산업 불패의 공범들>의 좋은 점은 ‘건물주’에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언론이 기존 성산업을 보도할 때 주로 주목했던 판매자와 구매자 대신 다른 축에 주목했고, 성산업은 공간을 소유한 사람이 묵인하며 자라 왔다는 점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성착취 산업 또한 공간이 없으면 존속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 거부 한 번이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해바라기센터 옆에 성착취 공간이 운영되는 어이없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뉴스 보러 가기🔥 2. 인터뷰 : “그들의 울분과 절망…고스란히 옮기고 싶었다” ⓒ경향신문 "통역이란 원래 “오버하지 않고 정제된 감정으로 말만 옮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참사의 상처를 가까이서 접하다 보니 “유가족들이 뭔가를 표현하려고 해도 황망하고 언어를 상실한 상태라고 판단했다”며 “담담하게 내용만 전달할 게 아니라 울분, 분노, 절망까지도 고스란히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편향적인 통역사는 ‘명예 유가족’이 되었습니다. 화성 아리셀 참사 유가족의 통역을 맡고 있는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의 이야기입니다. 목이 메어 울음을 터뜨리는 유가족을 대신해, 정부를 향해 질타하고 유가족의 울분, 분노, 절망을 옮깁니다. “언어를 상실한 상태”에 놓인 유가족에게 필요한 건 정제된 감정으로 옮겨진 말이 아닐 거란 생각에서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편향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 사회와 언론이, 아리셀 참사에 편향적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는데요. 아리셀 참사 이후 일주일 뒤, 시청역에서 일어난 사고에 우리는 더 공감하고, 울분을 토하고, 분노하진 않았는지, ‘이주노동자’의 일이라는 생각에 아리셀 참사에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이주노동자를 가시화하겠다는 박 소장의 다짐이 어쩐지 더 결연하게 들리는 요즘입니다. 박 소장의 인터뷰는 지금껏 비가시화하며 일관했던 이주노동자 문제를 머지 않아 눈 앞에서 마주할 한국 사회에 꼭 불 붙어야 할 목소리 중 하나입니다. 뉴스 보러 가기🔥 3. 독립 언론 : 오송참사 첫 판결 "2023년 7월 15일 발생한 미호강 범람은 피고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지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2024. 5. 31. 전OO 현장소장에 대한 선고) ✍🏻 최윤정 기자, <코트워치> 이번 코너는 불 붙일 매체를 소개해 볼게요. 한 사건의 1심 재판부터 최종심까지 따라가는 독립언론, <코트워치>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의 모든 갈등과 과제가 사법부로 모이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모두 소장으로 제기되고 법대로 판단한 결과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요. 전에 소개드린 <자꾸 법원이 특종을 한다>(시사IN) 기사에도 이 문제점이 잘 드러나 있죠. 기소발, 최종 판결 기사는 넘쳐나지만 모순되게도 법정 공방 과정을 담은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독립언론 <코트워치>는 이 공백에 주목합니다. 올 5월에 나온 오송참사 최종 판결을 기억하시나요? 재판부는 ‘미호강 범람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못 박으며 책임자에게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했죠. 곧 공개될 코트워치의 프로젝트 <오송참사 첫 판결>은 최종 판결로 이어진 4개월 동안의 재판 과정을 담는다고 합니다. 미호강의 범람을 막지 못했던 ‘임시 제방의 높이’가 주요 쟁점이 된 재판 현장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기사를 쓰는 동안 사건에 머무르고 다시 새로운 뉴스를 찾아 떠나길 반복합니다. <코트워치>의 강점은 법정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건을 깊이 있게,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요. 법원발 특종이 강세한 언론 환경에서 <코트워치>가 만들어갈 변화가 기대됩니다. 뉴스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안녕하세요 독자님, 어떤 편지를 띄울지 고민하다 그간 제 머릿속을 장악한 단어를 풀어보려 해요. 바로 ‘딥페이크 성범죄’입니다. 사진 한 장이면 성착취물이 뚝딱 만들어지는 세상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 크게 분노했지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큼의 충격을 받진 않았습니다.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 22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에도 덤덤했어요. 전국에서 택시를 목격하는 수만큼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가해자와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한편으로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딥페이크 성범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오래된 문제의 또 다른 형태에 가까웠죠. 일전에는 N번방과 지인능욕방이, 웹하드 카르텔이 있었습니다. 방을 운영했던 가해자가 처벌받았을지 몰라도 성착취를 ‘놀이 문화’즘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뿌리 뽑지 못했습니다. 성착취물을 시청하고 소지해도 처벌받지 않기에 가해자들은 성착취물을 콘텐츠로 소비했죠. 심지어 돈으로 교환되는 수익구조가 만들어질 때까지 어떤 조치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무수한 실패가 모여 오늘의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왔습니다. 더해진 문제라면 기술을 빌려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한 피해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지인의 셀카를 저장해 성착취물을 만들고 학교, 지역, 직장 등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판매하는 과정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지난한 성착취의 계보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요? 당연한 얘기를 끊임없이 하는 게 힘들지만, 당장 반대할 수 있는 것은 반대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먼저 ‘조심하라’는 말은 듣지 않겠습니다. 피해 예방법으로 여성들에게 프로필 사진을 내리라 권유합니다. 낮에 귀가하고, 긴 바지를 입는다고 여성이 안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범죄를 여성의 조심성과 연결 짓는 이 말은 결국 여성의 일상을 옥죕니다. 딥페이크 범죄를 즉각 수사하고, 소지하고 공유한 가해자까지 처벌해 ‘놀이’가 아닌 ‘범죄’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는 게 먼저여야 합니다. 한편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기술 발전이 낳은 그림자로 규정하는 흐름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교육부가 디지털 규범 및 윤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해법을 제시했지만 오로지 기술 발전과 교육 간의 공백에서 출발한 문제는 아닙니다. 여성을 인격과 감정을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가능하게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일시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보다 “너네들 얼굴로는 성착취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교실 속 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부디 딥페이크 성범죄의 다음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폴라리스도 위 이슈를 추적하며 독자님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024. 09. 02.에디터 해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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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여자 좋아하세요?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1 언론을 향한 비관론이 횡행합니다. 언론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거나 ‘권력의 감시자'라고 불리던 시절은 끝났죠. 기자는 ‘기레기’로 격하된지 오래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함께 일하는 폴라리스 에디터 분들은 성실히 기사를 찾습니다. 좋은 기사를 만나면 신나서 단톡방에 공유해주고요. 저는 간간히 답신으로 펭수가 엉덩이를 흔드는 ‘흥 폭발’ 이모티콘을 보냅니다. 비관론에 안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제가 폴라리스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입니다. 이번 호 폴라리스는 총 네 편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BBC코리아 기사는 빛나는 취재원이, 3개월 간 바다를 누빈 한국일보 기사는 성실하고 집요한 취재가 눈에 띕니다. 한겨레21 칼럼은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면 좋을, 첨예한 문제를 다루고요.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획은 언론의 의제 설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기자 다섯 명으로 구성된 셜록은 기자상을 여러 번 탈 정도로 탐사-르포보도에 능하죠. 네 편의 기사를 읽은 후, 독자님들은 언론에 대한 희미한 희망을 찾게 되실까요? 비관론 속에서도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는 그 날까지, 폴라리스의 항해는 계속 됩니다! ⓒBBC News 코리아 #1. 영상: '휠체어 타고 바다 수영해요'...학생들이 만든 제주도 첫 무장애 해수욕장 “저희가 직접 해보니깐 더 알겠는 거예요. 저희보다 더 영향력 있으신 어른들이 해낼 수 있었던 일인데, 그럼 더 빨리 실행이 됐을 수 있는데 왜 안 하셨을까. 저희가 피땀 눈물 흘려가며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저희 사례 참고하셔서 많이들 해주세요. ✍🏻 기획 이선욱, 영상 최유진 <BBC News 코리아> “하나, 둘, 셋” 하고 외치자 수중 휠체어가 미는 힘을 받아 데굴데굴 모래 위를 달립니다. 물에 첨벙 들어가더니 금새 안정적으로 둥둥 뜹니다. 물속에서 뜰 수 있는 수중 휠체어는 방향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고, 파도를 느끼며 떠다닐 수도 있습니다. 교통약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표선고등학교의 인권 동아리 ‘이끼’ 부원들이 기획한 프로젝트입니다. 당초 해수욕장 장애인주차구역 증설로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장애친화적이지 않은 해수욕장 환경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전환됐습니다. 모래사장에서 이동이 가능한 휠체어를 발견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그 휠체어를 처음 봤을 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라고 학생들은 말했습니다. 지원금을 받아 수중 휠체어 2대와 매트를 구입하고, 표선 해수욕장에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고작 수능 예제문제 풀고있어야 할 고3들이 나서서 하고 있는데 어른분들이 뭘 못하시겠어요” 라고 합니다. 고작이라고 하기엔 이들은 어른들도 하지 못한 제주도 조례도 개정하려고 합니다. 수중 휠체어 구입을 위해 공적 지원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죠. 경험하지 못한 불편함을 기꺼이 상상하고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영상 보러 가기🔥 ⓒ한국일보 유대근 기자 (조업 과정 중 그물에 딸려온 쓰레기의 사진을 찍어 포토 모자이크 기법으로 물고기를 형상화했다.) #2. 연재ㆍ기획 : 추적 - 지옥이 된 바다 "기자님, 아무 어촌이나 가서 어선을 하루만 태워달라고 해보세요. 어떤 배라도 상관없어요. 해양 쓰레기 문제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후세들은 완전히 망한 거예요."  ✍🏻 유대근 기자, <한국일보> 태평양 어딘가에 떠다닌다는 쓰레기 섬, 플라스틱 쓰레기에 찔려 죽은 해양 동물들.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압니다. 해양 쓰레기는 해수면 온도를 높이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죠. 하지만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쓰레기 섬과 바다거북의 죽음을 또 잊어버리고 맙니다.  한국일보는 비가시화된 해양 쓰레기 문제를 심층 취재 했습니다. 첫 번째로 주목한 건 뱃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뱃사람들에게 해양 쓰레기는 일상의 문제였습니다. 유대근 기자는 베테랑 어부들과 함께 배에 올라타 망망대해로 향해 보고 들은 것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풍선처럼 부푼 그물 자루에서 쏟아진 쓰레기 더미, 태연하게 쓰레기 틈에서 고기를 골라내는 외국인 선원, 폐그물로 가득 채워진 200L 포대….  사실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어부들이 바다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지점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음 챕터인 ‘늙은 어부의 고백’은 멸종위기종 몽크물범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한중일 어부를 추적했습니다. 결론은 해양 쓰레기 문제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딱 잘라 나눌 수 없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바다에 떠다니는 폐기물은 어민만 위협하지 않습니다. 어선이나 여객선에 걸려 배가 고장나면 대형 인명피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이 머지 않았습니다. 기사 보러 가기🔥 ⓒ에스투(S2)엔터테인먼트 #3. 비평ㆍ칼럼 : 섹시한 여자는 잘못이 없다 "이성애가 여성주의에 반하는 것 또한 아니다. 여성이 이성에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고자 하는 욕망에 솔직하려는 노력은 분명 또 다른 여성주의적인 고민이다. 이성애자 여성이 남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것 또한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이성애 여성의 중요한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연혜원 ‘퀴어돌로지’ 공저자·사회학 연구자, <한겨레21> 예쁜 여자를 좋아하세요? 섹시한 여자, 귀여운 여자, 청순한 여자. 매력있는 여성에게 붙는 키워드는 외모와 상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의 미와 성은 페미니즘에서 아주 복합적인 논의 대상입니다. 메일 게이즈, 코르셋 담론은 여성의 미와 성이 남성의 시선 하에 구성되어 착취되는 문제를 부각합니다. 미디어는 성상품화 등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대표적인 수단입니다. 뒤틀린 여성의 미와 성은 나이, 지위, 직업을 막론하고 많은 여성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외모 강박과 식이장애는 물론, 운동선수의 활동성 강화 대신 신체부위를 부각하는 유니폼과 같이 왜곡된 성과 미는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장애물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여성의 미와 성은 단순한 억압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성범죄와 성상품화 등, 욕망이 늘 여성에게 불쾌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죠. 여성에게는 불필요하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자유도 있지만, 욕망되고 싶은 자유도 있습니다. 또 욕망되는 여성성은 이성애자 남성만의 것이 아니죠. 섹시한 여성은 여성, 그리고 또다른 존재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외모와 신체의 여성들은 욕망의 대상에서조차 비켜간 무성적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조롱받기도 하죠. 그런 여성들이 스스로를 성적 존재로 어필하는 전복의 행동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연일 강력한 젠더폭력 사건이 이어지고, 젠더 감수성 향상보단 여성혐오의 강화를 지켜보게 됩니다. 여성으로 존재함 자체가 위험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많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성적인 여성이 되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퀴어돌로지』 저자 연혜원 씨는 잠시 숨을 돌리기를 권합니다. 비판의 화살이 남성에게 욕망되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다른 바람직한 성 수행 방식의 고정틀을 만드는 일입니다. 남성의 착취적인 시각으로 구성된 성을 답습하는 것도 문제지만, 욕망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금기시해서도 안 됩니다. 성과 미는 그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비판과 행동의 방향은 여성을 착취하는 사람들과 구조에게 향해야죠. 지치고 분한 시간이지만, 투쟁의 방향은 항상 점검되어야 합니다. 기사 보러 가기🔥 ⓒ셜록 #4. 독립언론/인터뷰 : 반도체, 말기암, 불승인… 나는 홀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그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문서로도 남아 있지 않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문제가 있던 곳이라도 ‘문제 없는 작업장’이 될 수 있잖아요. ✍🏻 김연정 기자, <셜록>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개가 사람을 문 건 사고다. 사람이 개를 문 건 사건이다. 언론은 사건을 다룬다.” 언론 보도는 ‘비일상적 사건’을 다룹니다. 뉴스의 조건은 새로운 것이니까요. 뉴스의 조건을 곱씹을 때면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비일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언론은 무엇을 보도를 해야 할까?’ 일터가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것. 유방암에 걸리고 파킨슨병에 걸리는 것. 그렇게 누군가가 죽고, 죽음 이후에도 기업의 책임 인정과 보상은 없는 것. 모두 ‘사건’으로 여겨져야 마땅한 ‘비일상’입니다. 동시에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린, 일상이 된 비일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라서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획은 귀합니다. 산재 피해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다시 ‘사건’으로 공론화하고, 구조적 문제까지 지적하거든요. 한국은 산재 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평균 214일이 걸립니다. 산재 인정 범위도 무척 협소하고요. 기사에 나오는 최 씨는 4년이 걸려 불승인 판정이 나왔죠. 이의제기 후 심사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뒤 결과를 받아보기 전 사망한 노동자는 최근 5년 간 111명에 달한다고 해요. 기사는 말합니다. “유해물질 가득한 연구실에서 그녀를 지켜 줄 ‘우산’이 있었다면 최씨의 삶은 지금과 달라졌을까.” 이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일터에는 그녀를 지켜줄 우산이 없었으니, 우리 사회라도 그녀를 지켜줄 우산이 되어야 한다고. 가랑비에 옷 젖듯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는 시대입니다. 작은 우산을 건네는 마음으로, 폴라리스 독자님들께 기사를 건넵니다. 기사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안녕하세요, 비평/칼럼을 맡은 에디터 ‘푸릇’입니다. 이번 호 에디터레터에서는 젠더 관련해서 기사 하나를 더 소개하려 합니다.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씨가 성노동자에 대해 쓴 글입니다. 현재 여성들 사이에서는 성노동자들*에 대한 강렬한 비난 여론이 형성돼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아프리카 BJ 과즙세연 씨가 있었는데요. 그녀는 선정적인 방송을 진행하며 수익을 얻는 ‘벗방’ BJ입니다. 이른바 ‘개저씨’의 표상이 된 하이브 방시혁 의장과 베벌리 힐스에서 목격된 후 SNS상에는 그녀의 방송클립이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과즙세연 씨가 출연한 넷플릭스 예능 ‘더 인플루언서’가 전파를 타며 성노동자들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 불붙었습니다. 과즙세연 씨를 비롯해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조회수를 위해 신체를 부각한 사진을 올리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여성 시청자들은 이들을 비판하며 메이크업 아티스트 ‘리사배’, 틱톡커 ‘케지민’ 등의 크리에이터들을 연호했습니다. '열심히, 정당한 방법으로 일하는 여성'들을요. 이처럼 현재 많은 여성들에게 성노동자의 이미지란 ‘남성에게 눈이 멀어 여성운동의 장애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적’인 듯 합니다. 여성들이 분노할 사건들이 많긴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밴드 그룹 QWER에서 활동하는 쵸단 씨도, BJ 시절 방송에서 성폭행 교수 퇴출운동을 한 모교 학우들을 모욕한 것이 드러나 비판받았죠. 여성들이 그들에게 이렇게 화가 난 이유도 이해가 가고, 저 역시 BJ들의 언행에 아찔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가장 전면에서 돌을 맞아야 하는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노동자들보다 먼저 성산업이 있었고, 폭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왜곡된 이미지에 대한 수요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성산업의 활발한 플레이어처럼 보일지라도, 자본주의와 여성혐오가 결탁한 성산업이 근본이자 선행한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착취의 문제도요. 디지털 성노동자들로 운을 뗐으니, 엑셀방의 사례를 들자면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은 포주 방송인입니다. 성매수자들의 후원 금액 순위가 엑셀에 고스란히 표시되는 시스템에서 성노동자들은 자극적으로 경쟁하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퇴출되지 않고 살아남아 계속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요. 성노동자들은 연대할 수 없는 존재일까요? 올해 초 파주 용주골의 여성 성노동자들은 ‘여성친화도시를 만들겠다’는 미명 하에 하루아침에 살던 곳에서 쫓겨났습니다. 시의 제대로 된 안내도 없었고,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녀들에게 넉넉한 지원도 없었습니다. 취약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성노동뿐이던 그녀들에게 이러한 조처는 다시 성노동의 굴레에 빠지게 하는 짓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성노동자들에 대한 어떤 이해도 대책도 수립하지 않고 그저 없어져야 할 존재로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비판도 하지말자는 게 아닙니다. 가장 전면에서 돌을 맞아야 하는 것이 성노동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비판의 대상은 성산업을 유지시키는 포주와 신용구조, 매수자여야 합니다. 여성들의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불법촬영과 딥페이크 범죄 및 모든 젠더폭력 가해자들과 공모자들, 나몰라라하고 있는 경찰, 검찰, 국가. 피해자들을 공동체에서 내모는 방조자들.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조롱으로 일관하는 왜곡된 성인식을 가진 남성들이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에 쉬운 비판을 선택해선 안 됩니다. 페미니스트들은 근간을 흔드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의 비판과 행동은 더욱 집요하고 심도 있어야 합니다. *성노동자: 에디터는 이 글에서 ‘성노동자’라는 용어를 택했습니다. ‘매춘’이 폭력인지 노동인지는 여성주의의 중요한 토론 주제 중 하나입니다. 에디터는 ‘성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피해자, 계몽의 대상으로 보기보단 이들을 노동하는 주체요, 노동 과정에서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부각하고자 했습니다. 2024. 8. 26. 에디터 푸릇🌿 드림 만든 사람들: 모래🏖️, 푸릇🌿, 산호🐠, 만쥬🌰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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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국가 정상영업합니다 이민자 대환영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2 지난 2월 2일, 국회에서 법안 하나가 발의됐습니다. 이름은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민 정책을 총괄할 부처로 출입국‧이민관리청을 만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법안은 여권 핵심 인사가 추진 중이고, 또 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어서 중요한 법안입니다. 외국인 이주자와 어울려 살아가는 한국 사회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거든요. 이번 호 폴라리스는 이민청과 이민 정책에 주목했습니다. 이민청을 제안한 배경, 정부의 이민 정책이 품고 있는 두 가지 구조적 결함, 그리고 이주자와 공존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아쉽게도 이민청을 만들게 된 배경과 이주자의 현실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번 호가 더 나은 해결책을 상상하는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 지금껏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하지만 다가오고 있던 오래된 미래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우린 노동자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왔다.” (”Wir riefen Arbeitskräfte, und es kamen Menschen.”) 스위스의 작가 막스 프리슈(Max Frisch, 1911~1991), 이탈리아인 이주 노동자의 삶을 다룬 책에 서문을 써 주며 #1 저출생과 지방 소멸, 환장의 콜라보 ‘출입국‧이민관리청’, 줄여서 이민청은 세워지게 된다면 앞으로 출입국과 국적, 이민 관련 업무와 정책을 전담하게 될 정부조직입니다. 지금까지는 출입국과 법무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여러 부처가 이민 정책을 나눠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능을 이민청 아래 한데 모으겠다는 겁니다. 이민청 설립에 불을 붙인 사람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한 위원장은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이민청 준비를 지시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해 이민청 제안 이유와 목표를 밝혔습니다. "이민 정책은 할 거냐 말 거냐 고민할 단계를 지났고, 안 하면 인구재앙으로 인한 국가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필요한 외국인만 정교히 판단해 예측 가능성 있게 받아들이고, 불법 체류자를 더 강력히 단속하는 등 정부가 관리·통제해서 '그립'을 더 강하게 잡겠다.” 이민청이 제안된 배경은 인구 감소와 지역 불균형입니다. 합계출산율이 바닥이 없는 듯 추락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현실을 모르는 분은 드물 겁니다. 괜찮은 일자리와 인프라가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특히 젊은) 인구가 비수도권 산업 현장과 대학 캠퍼스에서 사라졌습니다. 노동자와 학생의 빈자리를 바로 이주자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낮은 처우로 숙련공이 계속 유출되며 인력 수급난에 빠진 조선업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지난해 신규 채용한 노동자의 86%가 외국인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학부생 99%가 외국인이었던 지방 대학도 있었습니다. 정작 수도권으로 떠난 젊은 인구는 긴 노동, 성차별 등으로 출산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해 저희가 발행한 레터에서 더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정부는 줄어드는 출생자 또한 이주자를 활용해 보완하려 합니다. 지난해에는 이민청 제안과 더불어 외국인 가사노동자 확대, 외국인 유학생 정착 유도 등의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이주자와 같이 사는 미래를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은 이주자를 절실히 원합니다. 반대로 이주자에게 한국은 매력 있는 나라일까요? 이민은 태어나 자란 곳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삶을 꾸리고자 감행하는 행동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제법 그럴 것도 같습니다. 이민자 출신인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재를 모셔오겠다고 여러 유인책을 발표했는데 질문은 이거예요. 그 사람들이 와요? 63개국 고급 인력을 대상으로 아시아 11개국 중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를 조사한 2017년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끝에서 1·2위를 다툽니다.” (2024년 2월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이 의원의 인터뷰는 이주자의 입장에서 ‘한국으로의 이민’에 대한 여러 지점을 다루었습니다. 깊이 읽어 볼 기사로 이 의원의 인터뷰를 제안해 드립니다. 이 의원은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는데요, 다음 글에서 짚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vectorjuice #2 “당신은 인간이 아닌 소모품입니다” 한국 이민 정책의 핵심은 외국인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노동력’으로 취급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소개한 인터뷰에서, 이자스민 의원은 외국인 노동자가 “한 번 쓰고 버리는 화장지처럼” 여겨진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런 문제가 집약된 게 내국인 직원을 구하지 못한 사업장에 외국인 노동자를 제공하는 고용허가제(E-9)입니다.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부터 함께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그 여파를 살펴볼까요? 우선 고용허가제는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합니다. 사용자가 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임금체불, 폭행 등 부당한 처우를 노동자가 입증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어요. 그러나 언어와 제도에 서투른 외국인 노동자가 부당함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고요.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사업장 변경 금지는 이주 노동자의 협상력을 박탈하고, 자의 사직하면 추방된다는 위협을 통해 노동자를 사업주에게 극단적으로 종속시킨다’고 지적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용허가제는 재입국특례 신청권도 사업주에게만 부여합니다. 재입국특례는 4년 10개월 근무 후 본국에 갔다 다시 돌아와 근무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인데요. 사업주가 고용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비자가 연장되지 않기에,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주의 의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죠. E-9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가족 결합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외교, 공무, 행정, 학업 등 대부분의 외국인 체류자 가족에게는 동반(F-3) 자격이 부여되는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비숙련 노동자의 가족은 제외되어 있어요. 이처럼 고용허가제는 직업 선택의 자유, 가족결합권 등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 기울어진 권력 관계를 제도화합니다. 위계관계만 있을 뿐 업무 환경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허점이 많죠. 고용허가제를 활용하는 사업장이 주로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라는 점은 문제를 심화하고요. 이러한 제도는 결국 열악한 거주 환경, 위험한 노동 환경, 저임금, 임금체불 등 문제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2020년 고용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70% 가량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쓰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전체 근로자 중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은 3.4%에 불과하지만, 산재 사망 사고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2.3%에 달했죠. 2017년에는 자동차부품회사에서 일하던 네팔 청년이 사업장 변경 제한에 비관해 자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유서에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고용허가제도가 외국인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어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은 대게 부고의 형식으로 드러납니다. 아래 기사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부고와 함께 구조적 문제를 잘 분석한 기사들이에요. 마음이 쓰이는 독자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1️⃣ 만리타향에서 죽은 남편, 사과도 재발 방지책도 없다2️⃣ 속헹이 떠난 비닐하우스에 남은 동료들3️⃣ 개돼지만도 못한 죽음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등록 이주자’,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가 되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의 미등록 이주자는 43만명에 달하는데요. 지난해 정부가 늘리겠다고 발표한 고용허가제 입국 인력 16만5천 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노동계는 미등록 이주자를 ‘양산’하는 고용허가제를 개편하지 않으면 입국 인력을 늘려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사업장 변경 제한에 더해 ‘지역 제한’까지 추가했고요. “당신은 인간이 아닌 소모품”이라고 말하는 국가가, 이민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글 보러 가기 #3 ‘이주’ ‘여성’ ‘돌봄노동자’라면 한국이 좋겠어? 이번엔 이주 문제를 인구, 재생산, 돌봄 문제와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물론 여성들의 이야기를 할 겁니다. 이주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공장, 건설 현장, 농촌에서 일하는 개발도상국의 남성노동자? 여성 이주자들 또한 결혼과 돌봄 노동으로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해왔습니다. 1️⃣ 이주 여성이여, 국민의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라 결혼 이민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었고, 특히 2000년대 들어 농촌 지역의 인구유출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결혼 정책으로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이주해왔죠. 2022년 출생아 수의 절반이 다문화 가정 출생아일정도로 이주여성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재생산 주체입니다. 허나 한국 사회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정, 지역사회 고립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40% 이상의 여성이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도망을 간다’는 이유로 한국어 교육을 방해받거나 외출 제한, 신분증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제결혼 가정의 남편과 아내의 나이 차이는 10세 이상이 평균이고, 매매혼과 다름없는 제도란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죠. 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의 체류자격 유지를 위한 신분 증명을 해 줄 주변인은 남편이 거의 유일합니다. 가정 내에서 피해를 입더라도 체류가 걸려 있고, 언어적 한계와 지역 사회의 고립으로 인해 귀책 증명도 어려워 고스란히 피해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 놓치고 있는 사실, 이주여성은 일한다 이주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한국 사회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인구이기도 합니다. 결혼이민비자(F-6)로 한국에 들어온 여성들도 절반 가까이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농어촌에서는 무급으로 가족사업에 참여하고 있죠. 이주여성의 절반이 200만원 이하의 저임금을 받고, 고용 및 산재보험 가입률도 낮습니다. 정부 운영 센터에서도 선주민 노동자들에 비해 호봉, 수당, 휴가 등 노동권의 여러 측면에서 차별을 겪고 있죠. 이주여성들과 가장 긴밀히 연결된 직종이 있다면, 바로 돌봄노동입니다. ‘이주의 여성화’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코로나19 이후로 선진국에 간호사, 간병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이주해 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전세계적 추세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주의 여성화 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미 국내 간병노동자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입니다. 돌봄노동은 강도는 높지만 저임금에, 사회적 인식도 낮고, 스트레스와 성희롱 등 여건도 취약한 기피 노동의 한 종류입니다. 여성이 가정에서 당연히 할 일이라 생각되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하고요. 때문에 이주여성들에게 전가됩니다. 최근에도 이주여성에게 돌봄노동을 외주화하는 것에 대해 큰 이슈가 불거졌죠. 3️⃣ 돌봄 그까이꺼 다른 여자한테 싼값에 시키죠. 바로 올 6월 서울시 시범 예정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서비스’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소득수준의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월 100만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돌봄노동자의 공급이 시급한 건 사실입니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의하면 돌봄노동자 수요에 비해 공급은 30%에 불과합니다.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비판에 부딪치는 이유는 문제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 성차별, 가사로 대표되는 돌봄노동의 불평등한 분담, 돌봄노동의 평가 절하,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등을 해결하는 노력은 부족합니다. 여성의 돌봄노동을 더 취약한 이주 여성에게 외주화하는 데 그치는 거죠. 글을 읽으신 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주여성이라면, 한국으로 이주하고 싶으실까요? 한국 여성이라면, 한국에서 계속 아이를 낳고 일하시고 싶을까요? 어쩌면 ‘한국배제의 여성화’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글 보러 가기 ⓒmacrovector #4 결국 정치의 문제,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실제로 이민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 당국의 모습을 보면, 이 사회가 지금보다 더 많은 이주민을 맞을 준비가 됐나 의문이 듭니다. 이주는 말 그대로 한 인간이 새로운 정치 공동체에 속하는 것인데, 한국이 과연 ‘다름’을 마주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래서 박이대승 칼럼니스트는 이민이 경제적 문제이기에 앞서 정치와 사회의 문제라고 정의합니다. 이민 확대란, 한 정치 공동체의 ‘동료 회원’을 모집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죠. 마치 멤버가 부족해져서, 혹은 공동체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새 회원을 모집하는 것 처럼요. 다만, 글이 이주민을 ‘노동력’이 아닌 ‘동료’라고 초점을 두는 데에는, 어찌됐건 정치 공동체란 시민들이 평등하게 공동체를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 정치 공동체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은 이 공동체 회원 모집에 조건을 걸어왔습니다. ‘동등하지 않을 것.’ 앞서 말씀드린 이주민 차별 역사가 이를 방증하기도 하죠. 중요한 것은, 이 조건이 이민 정책의 시작인 ‘차별 금지’와 상충된다는 것입니다. 이 ‘차별금지’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애초에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 없거니와, 장기적으로 큰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기도 합니다. 차별을 제재하지 않으면 사회적 그룹 사이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비단 이주민 문제 뿐만 아닐테죠. 18년 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이를 역력히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요? 여전히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합니다. 다만, 낯선 동료의 등장은 공동체에게 도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2022년 2월, 울산으로 이주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초등학교 입학 소식에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자 고 노옥희 울산교육청 교육감이 한 말입니다. 이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구축해야 할까, 한국에서도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할까 등 의문이 드신다면 시사인의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울산 정착 1주년’ 기사 정독을 권해드립니다. 기사는 울산의 이야기가 “시작은 외지인이지만, 그 끝은 한국인들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현대중공업부터 교육청, 구청, 경찰서, 다문화센터까지 긴밀한 협조 체계가 만들어진 이례적인 사례이기도 한데요. 기사는 다가올 미래를 먼저 경험한 울산의 이야기, 이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 맺을 수 있었는지를 조명합니다. 🧭글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1.  폴라리스 레터를 읽으시는 독자님들.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잘 지내냐”는 말은 인삿말로 자주 쓰이죠.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잘 지내지” 답하곤 하지만, 사실 정말 잘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정치에는 희망이 없는 듯하고, 취업은 안 되고, 불안은 횡횡하니까요. “그럼, 잘 지내지.” 이 말을 달고 사는 저도 하루를 씹어 삼키는 일이 버겁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굴러 떨어지고 싶은 모든 계단을 성실히 밟아 올라요.  지치고 피곤할 때 저는 두 가지 일이 하고 싶어지는데요.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어집니다. 전자가 ‘너도 나처럼 힘들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후자는 ‘나는 고통 속의 너보단 낫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이렇게 부박한 마음은 대게 저보다 약한 존재에게 향합니다. 저항하지 못하니까. 폭력은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법이잖아요. 다들 아시지요? 사장은 아버지에게 소리치고, 아버지는 밥상을 엎고, 어머니는 아이를 발가벗겨 마당에 내쫓고, 아이는 개를 때렸다. 2.  힘든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라 그런 걸까요. 폭력과 배제, 혐오로 안위를 찾으려는 시도들도 만연한 듯해요. 이슬람 사원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사장 앞에 돼지머리를 놓았고, 몇 년 전에는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기도 했죠. 이민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말하는 한국에서 이주자 혐오는 일상입니다. 실제로 2022년 홍성군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이 48.8%에 달했어요.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면 정말 우리 삶은 조금 더 괜찮아질까요? 당연히, 더 괜찮아지지 않습니다. 소수자와 약자에게서 고통이 시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찾으려면 우리는 폭력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거에요. 개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사장으로. 3.  세계화는 대규모의 이주민을 양산했습니다. 이주자 증가로 사회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사실 이주자는 사회의 기성 권력관계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이주 여성은 출산, 양육, 가사 등 재생산 노동에 투입되는데, 이러한 이주를 통해 젠더적 위계구조는 유지, 보수되죠. 마찬가지로 외국인 노동자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하청업체에 주로 배치됩니다. 양극화된 노동 시장의 최하층에 밀어 넣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계화 시대에 계급적 위계구조는 강화되고요.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자국 여성들의 경제 활동 진출과 청년들의 중소기업 비선호 속에서 비어버린 위계구조의 하층에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자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주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젠더, 계급 위계구조 위에 서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죽은 산업 현장은 한국인 노동자가 죽은 바로 그 곳이기도 하고, 여성 이주자가 투입된 돌봄 노동의 자리에는 여전히 저소득 비정규직 여성들이 남아있어요. 특정 형태의 노동과 성별을 저평가하고 차별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위계구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또 다른 타자를 양산하는 게 해법이 될 순 없겠죠. 개를 때리고 아이를 발가벗겨 내쫓아도-더 불행한 타자를 만들어도 인생이 살 만해지지 않듯이 말입니다.  4.  멕시코 치아피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은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저는 힘들 때 상처 입히거나 베풀고 싶어진다고 적었습니다. 원주민 여성의 말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것’ 뿐만 아니라 ‘베푸는 것’ 또한 해답이 아닌 이유를 보여주는 듯해요. 우리는 구조 위에 연루되어 있고, 베풂은 찰나의 흡족함을 주겠지만 우리가 연루된 세상은 바꾸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니 다시금 저와 같은 사회-공동체-권력구조 위에 사는, 이주민을 포함한 여러분의 안위를 물어봅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에디터 만쥬 🌰 드림 만든 사람들: 보라 🍇, 만쥬 🌰, 푸릇 🌿, 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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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앗! 한국 주식, 미국보다 싸다 🧾💸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8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는 속담이 있는 나라에서 가장 뼈아픈 할인이 있습니다.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입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비슷한 경제력과 기업들이 있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가격이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의미해요. 소위 동학개미들이 땀 흘려 번 돈을 주식에 투자해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죠. 오늘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몸을 던져 한국 주식 시장의 불공정을 파헤칩니다. 대주주는 주식 가치가 떨어져도 돈을 벌고, 소액주주는 주식 가치가 떨어지면 돈을 잃는 구조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짚어볼게요. 최근 이슈인 ‘코스피 폭락’, ‘상속세’도 함께 다루니 관련 의견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재벌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은 한국의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보유 주식의 주가를 싸게 유지하는 데 만족한다. 실제 부를 감추기 위해 미로처럼 얽힌 지주회사를 상장해 전체 주식 시장을 희석시키고 있다" - 미국 언론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 슐리 렌 #1 “삼성전자 주가는 다른 나라보다 항상 쌌다” 우선 우리가 왜 하필 지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알아야 하는지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지난 5일 월요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하루 하락 폭을 기록했습니다. ‘블랙 먼데이’는 일본은행의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위한 깜짝 금리 인하로 촉발되었습니다. 미국 주가가 폭락했고,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 거죠. 그런데 한국 하락 폭이 훨씬 더 컸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죠. 올해 초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외국 자본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 주식을 샀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미적댔고, 외국 투자자들이 실망하던 차에 미 증시가 휘청이니 외인이 대거 팔고 나가면서 5일 주가가 폭락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럼 한국 주식은 얼마나 다른 나라보다 저평가되었을까요? 주식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척도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씁니다. 높을수록 주식이 고평가됐다는 뜻이고, 낮을수록 저평가되었다는 뜻입니다. 한국 주식은 PBR로 봤을 때 지금 당장, 또 예전부터 오랫동안 저평가됐습니다. 올해 1월 말 기준 코스피의 PBR은 0.9로 OECD 38개 국가 증시 중에서 뒤에서 2등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45개국 증시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평균 1.2를 기록하며 선진국, 신흥국, 아시아태평양보다 적게는 약 30%, 많게는 약 50% 낮았습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 Book-value Ratio): 시가총액 ÷ 순자산. 시가총액, 즉 모든 상장주식과 주가를 곱한 값을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 즉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으로 나눈 수치. 순자산은 기업이 축적해 놓은 여윳돈이어서 많으면 많을수록 기업이 건실하다는 뜻인데, 시가총액이 그런 순자산보다 많다면 주식이 고평가된다는 뜻이겠죠. 저평가는 왜 문제일까요? 기업, 자본, 국내 개인투자자 세 주체의 시각에서 보겠습니다. 기업은 자금 조달 역량에서 다른 나라 기업보다 밀리는 문제가 생깁니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이 시장에 주식을 내놓는 방법이니까요. 자본, 특히 외국 자본은 저평가가 지속되어 큰 이익을 거둘 수 없는 한국 시장에 투자하기를 꺼리게 됩니다. 똑같은 논리로, 국내 개인투자자 또한 한국을 포기하고 해외 주식 시장을 선택하게 됩니다. 실제로 개인투자자의 해외 직접 투자는 약 10년 동안 20배나 늘어났습니다. 셋이 모이면, 한국 기업과 주식 시장은 돈이 모이지 않아 침체에 갇힐 수 있습니다. 어쩌다 한국 주식은 저평가되었을까요? 기사와 보고서 모두 ‘주주환원’을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주주환원이란 기업이 거둔 이익을 주주를 위해 쓰는 행동입니다. 예컨대 수익을 주주에게 나눠줄 수도 있고(배당), 상장된 주식을 산 다음 폐기해서 시장에 남은 주식 수를 줄이고 가치를 높여줄 수도 있습니다(자사주 매입). 배당금을 더 주면 주주가 투자하려는 의지가 높아질 텐데 안 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기업이 나서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쌓아둔 돈을 성장을 위해 재투자하지도(ROE, 자기자본이익률) 않습니다. 그러니 주가가 오르지도, 주식을 사고 싶어지지도 않는 겁니다. 읽을 기사로는 <중앙일보>에서 올해 초 낸 기획 기사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상황과 배경, 원인을 간단하면서도 폭넓게 설명한 기사입니다. 🧭글 보러가기 ⓒpixabay #2 재벌, 재벌, 재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소액주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대주주의 그룹 사유화, 한국 증시 저평가의 고질적인 원인입니다. 전문가들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지속하는 이유로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를 짚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대기업 총수는 경영권 강화를 위해 번 돈을 곳간에 쌓아두기만 합니다(낮은 ROE). 그 돈으로 대기업 총수가 가진 주가는 높게, 인수하려는 계열사의 주가는 낮게 평가해 합병합니다. 인수하려는 계열사의 소액주주들은 당연히 피해를 봅니다. 총수의 편의에 따라 한 회사의 가치가 이리저리 휘둘리는 셈이죠. 약 10년 넘게 언론과 시민사회가 지적하고 있지만, 해결이 안 되는 모양새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계열사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과정에서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두산밥캣은 연 매출 10조 원이 넘는 두산그룹 계열사의 알짜 기업입니다. 이를 두산에너빌러티에서 때어나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두산로보틱스로 합친다는 것이죠. 총수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고 ‘밥캣’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전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그룹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인수합병 문제가 있었습니다. 2015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삼성그룹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부당 합병을(원래는 1:1.0 혹은 1:1.3, 실제 합병 비율은 1: 0.35로 책정) 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도 벌어졌습니다. 시민단체와 행동주의 펀드는 합병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동의하며 인수합병이 성사됐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부정 청탁을 한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고,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이뤄진 이유는 적법한 과정(상속세)보다 ‘싸게’ 먹혔기 때문이죠. 국민연금은 이 과정에서 2천451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같은 해 이뤄진 SK C&C와 SK의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최태원 회장의 지분이 높은 SK C&C의 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왜 재벌의 편법 증여와 이를 위한 ‘꼼수’ 인수·합병이 반복될까요? 전문 경영인 체제가 아닌 가족 경영인 체제에서 상속세를 회피하고자 함이 아닐까요? 다음 글에서는 상속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관관계를 살펴봅니다. “윤석열 정부의 뺨을 때렸다”고 표현되는 두산밥캣 사례를 비롯해 대기업의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된 사례를 <주간경향>에서 다뤘습니다. 🧭글 보러가기 #3 이게 다 상속세 때문이라고요? 요즘 뜨거운 논쟁거리인 ‘상속세율 인하’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되었습니다. 올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토론회에서도 대통령은 상속세법 개편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가치 제고,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상속세 개편을 포함해 법인세 세액 공제,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의 세법 개정안을 지난 7월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폴라리스가 다루고자 하는 건 ‘상속세 개편’입니다. 상속세 개편이 기업 가치 제고에 정말 도움이 될까요? 우선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는 측 논리 구조는 이렇습니다. 첫째, 기업이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세금 부담을 떨어트리고자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 둘째, 상속세를 감당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받기 등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런 부정행위가 반복될수록 기업이 저평가될 것이고, 따라서 상속세율을 인하하면 기업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는 소액 투자자에게도 긍정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낙수효과가 떠오르는 논리 구조네요. 그런데 OECD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상속세 인하 사이의 인과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상속세율을 OECD 평균인 30%로 인하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OECD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인과관계 등과 같은 별도 연구 없이 상속세율을 인하하면 국가의 재정적 어려움을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류덕현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상속증여세 인하로 18조 6천억 원 규모의 감세가 이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감세 정책을 폈던 이명박 정부도 5년 간의 감세 규모가 45조 8천억 원에 그쳤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3년간 시행된 세법 개정으로 총 감세 규모는 약 76조 원입니다. 인과관계가 증명된 적 없는 상속세 인하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려고 들기보다, 재정 문제 극복에 초점을 맞춘 정책도 필요해 보입니다. 🧭글 보러가기 ⓒpixabay #4 동학개미 지키는 확실한 방법 정부의 밸류업 프로젝트는 과녁을 벗어난 화살과 같아요. 법인세 감면, 배당 소득세 감면, 과세 특례 등 세법 개정안에 집중하면서 정작 핵심은 피해 갔죠.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된 원인은 ‘나쁜 기업 지배구조’입니다. 본질적인 해결책은 ‘모든 주주를 위한 결정을 하는 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무엇보다 일반주주와 지배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게 중요합니다. 경영진이 지배주주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도록 제재하고, 기업의 이익이 모든 주주에게 비례적으로 배분되도록 만드는 거죠.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볼게요. 먼저 이사회가 달라져야 합니다. 독립된 이사회가 투명하게 운영될 때 소액주주의 권한이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껏 대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휘두르는 동안 이를 견제하지 못한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쳤죠. 소액주주의 이익이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어요. 특히 소액주주는 결집이 어렵고 전문성이 부족한 만큼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증시 되살리기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해요.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독립된 이사회가 PBR 저평가 이유를 분석하고, 구체적인 개선책과 현황을 주주들에게 공유하며, ROE(자기자본이익률) 개선계획을 1년 단위로 투명하게 업데이트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사회의 전문성과 감시 의무가 강화되면 총수 일가가 지금처럼 과도하게 이익을 편취하는 게 어려워질 거예요. ‘상법 개정’이 지배구조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상법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까지 확대하는 겁니다.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로 한정돼 있어요. 이 때문에 이사회가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주주의 이익을 희생시켜도, 회사에만 손해가 없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죠.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해도, 불공정 합병을 일삼아도, 자사주 마법을 부려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입니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정준호 의원 개정안]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에 21대 국회에서 이용우ㆍ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이 대표 발의됐습니다. 정부·여당과 재계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지난 7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한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논의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반대는 여전히 거셉니다. 지분 10%를 가진 사람은 10% 이익, 지분 1%를 가진 사람은 1% 이익을 가져가자는 상식적인 제안이 왜 거부되는지 궁금하실 거예요. <한겨레> 기사가 이를 잘 정리했습니다. ‘재계가 반대하는 3가지 쟁점’을 읽고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파악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한국 증시 저평가, 알고 보니 경영진이 주식의 가치를 훔친 결과였습니다. 1400만 명에 이르는 국내 투자자들이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희생만 할 순 없죠. 기업 지배 구조 개선과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빠져나오는, 느리지만 가장 정확한 길입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코리아 디스카운트... 제겐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께는 이번 주 폴라리스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요즘 경제에 관심이 생겨 책을 읽고 있는데도, 경제나 투자가 여전히 남의 집 얘기 같아요. (상속세는 확실히 남의 집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정말이지 잘 바뀌지 않는데, 간혹 ‘주변’ 때문에 변하는 듯해요. 지난 달쯤인가, 한국거래소에 견학을 다녀왔어요. 말 한마디만 걸어도 쭈뼛대시던 젊은 강연자가 연단에서 투자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엄청나게 밝아지는 거예요. 노는 물 만난 사람처럼 한국거래소의 역사와 한국 주식시장의 흐름을 설명하시는데, 저런 애정과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하면 못 할 게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투자와 한국 주식 시장에 꽤 관심을 두고 있어요. 경제 공부를 하다 막힐 때는 주변에 전공하는 친구에게도 도움을 자주 받습니다. 내 평생 주식 같은 건 절대 안 할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최근에는 그 친구에게 지도 편달을 받아 ISA 계좌도 만들었어요. 친구가 사라는 주식 샀는데, 이대로만 하면 저도 투자 잘하게 되겠죠? 친구에게 관련 책을 소개해달라고 부탁도 했답니다. 아직 그 책들을 다 읽진 못했지만 사놓기만 해도 든든한 마음, 아시는 분들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 덕분에 생전 관심 없던 ‘경제’ 분야에도 눈이 틔워지는 경험, 요 며칠 저를 설레게 했던 일 중 하나인데요. 여러분에게 폴라리스가 그런 ‘주변’과 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폴라리스를 만나서 독자분들이 새로운 관심사를 갖게 된다거나, 전혀 몰랐던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하게 되는 모습을 가끔 상상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좋은 기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겨요. 폴라리스가 여러분에게 좋은 주변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이 긴 텍스트를 함께 호흡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답장하기’는 언제나 열려있어요! 2024. 08. 19. 에디터 반달🌙 드림 만든 사람들: 보라🍇, 선심🔆, 반달🌙, 해안🌊 지난 13일 공개한 <[경제] 꽁꽁 얼어붙은 세계 위를 반도체가 걸어다닙니다>에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신 '생생이', 'jay_kim', '익명의 너구리', '오늘은', '이연주', '도이' 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언제든지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 폴라리스가 다뤘으면 하는 주제 제안도 환영합니다!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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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꽁꽁 얼어붙은 세계 위를 반도체가 걸어다닙니다
요즘 테크, 경제 부문에서 반도체만큼 주목받는 주제가 있을까요? 또 제대로 논해보자면 반도체만큼 국제, 외교, 과학기술, 국내 산업 동향과 정책까지 모든 분야를 파고들어야 하는 주제도 없죠. 그래서 폴라리스가 눈이 번쩍번쩍해지는 광활한 반도체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엔비디아가 연 3세대 시장의 주요 반도체와 기업 핵심 요약 정리, 레이스 너머의 패권 전쟁, ‘반도체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상황까지. 이상 탐사 정보 브리핑이었습니다. 그럼 모두 준비 되셨나요? 3, 2, 1. 반도체로 딥다이브! "기술은 경쟁의 주도권을 결정하고, 혁신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칩워>, 크리스 밀러 #1 엔비디아, 왜 난리래? 요새 여기저기서 ‘엔비디아’란 이름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엔비디아가 장안의 화제인 이유는 이 기업의 주가가 4개월 만에 두 배 가량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AI 반도체가 있었죠. 현재 엔비디아는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요. AI와 반도체, 그리고 AI 반도체는 무엇이고 어떤 관계일까요? AI는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을 컴퓨터 과학으로 구현한 기술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2020년대 이후 발전한 생성형AI는 딥러닝으로 빅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을 뜻합니다. 비비의 밤양갱을 아이유가 부른 것처럼 만든다던가, 프롬프트에 명령을 입력하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등 현재 생성형AI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죠. 생성형AI 산업은 반도체 없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생성형AI가 학습할 빅 데이터를 저장하고, 비메모리 반도체는 생성형AI를 구현하기 위한 초고속 계산을 하기 때문이에요. 메모리 반도체는 저장 기능을 수행하는 반도체입니다.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강한 분야죠. 비메모리 반도체는 명령을 실행하는 반도체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제작 단계는 설계(팹리스)와 생산(파운드리), 검수(디자인하우스)로 나뉘어 있어요. 이중 우리가 AI반도체라고 부르는 것은 비메모리 반도체에 속합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요? AI 반도체는 아직 딱 정의되진 않았습니다. AI에 사용하는 반도체 모두(CPU, GPU, NPU)를 AI 반도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AI 맞춤형으로 제작된 반도체만(NPU) AI 반도체라고 하는 사람이 있죠. 엔비디아는 이중 현재 AI 데이터 센터 구축에 필요한 핵심적인 반도체인 ‘GPU’를 만듭니다. 이 GPU, 다른 기업도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왜 엔비디아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을까요? 엔비디아가 현재 AI 반도체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쿠다(CUDA, 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라는 소프트웨어 덕분입니다. ‘쿠다’는 엔비디아에서 무료로 배포한 AI 개발 플랫폼이예요. 약 10년 동안 ‘쿠다’를 기반으로 전 세계 AI 개발 생태계가 형성되었는데, 이 ‘쿠다’는 엔비디아의 GPU에서만 작동합니다. 이미 전 세계의 많은 개발자들이 이 ‘쿠다’라는 플랫폼에 익숙한 나머지 다른 GPU를 사용하기가 힘든 환경이 형성되었다고 해요. 생성형AI를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에 5천만 원까지 호가하는 엔비디아의 GPU를 울며 겨자먹기로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이에 여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독점 체제를 깨겠다고 나섰습니다. 인텔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인 ‘H100’의 대항마로 ‘가우디3’를 내놨습니다. 앞으로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요? 전 세계 반도체 역사와 이를 둘러싼 쟁점을 담은 책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감이 잡히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2 두 세계 이야기: TSMC와 삼성전자 엔비디아 주가가 4월 말인 지금은 고점에서 살짝 떨어졌죠. 하락장이 본격 시작한 날은 대만에서 25년 만에 가장 강한 지진이 났던 지난 4일이었습니다. 지진 때문에 TSMC가 공장 가동을 멈췄거든요. 지난 글에서 잠깐 언급됐던 TSMC, 대체 얼마나 중요한 기업이기에 그럴까요? TSMC는 여러 업체에서 설계한 비메모리 반도체를 대신 맡아서 생산해 주는 기업입니다. 엔비디아에서 설계(즉, 팹리스)한 AI 반도체를 대신 생산(파운드리)해주는 곳도 TSMC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TSMC가 갖춘 영향력은 상당히 센데요, 팹리스-파운드리 구조를 만든 기업이 TSMC거든요. 1980년대 말 탄생해 시장을 개척하며 ‘고객사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전략과 우수한 기술력으로 전 세계에서 고객을 모았죠. 그 결과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60%를 차지하는 기업이 됐습니다. 엔비디아가 AI 개발 플랫폼을 독점하면서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것처럼, TSMC도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반쯤 독점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기업이 된 거예요. 지진으로 TSMC 공장이 멈췄다는 소식에 엔비디아 주가가 요동친 건 지극히 당연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물량이 막혀 장사를 못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재밌게도 창업자 모리스 창은 창업한 뒤에도 몇 년간 지금 본업과 다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고려했다고 해요. 한 기업에서 초청받아 공장을 방문한 뒤, 그는 생각을 접고 파운드리 사업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당시 세계 1위였던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상당히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갓 시장에 뛰어든 TSMC가 따라잡기 어려웠습니다. 삼성전자는 기어이 세계 1위를 차지했고,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 됐습니다. 그런데 메모리 반도체의 위상이 예년만 못합니다. 비메모리 반도체가 AI와 함께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로나19로 활황을 맞았던 전자기기 시장이 가라앉는 과정에서 큰 손실을 봤거든요. 활황을 맞아 메모리를 많이 생산해 뒀는데,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재고를 떠안은 겁니다. 두 기업이 믿는 구석은 HBM, 고대역폭메모리라는 제품입니다. 원래 램 한 개가 들어갈 자리에 램을 몇 개씩 쌓아 올려서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제품입니다.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AI 반도체에 필요합니다. HBM을 아주 잘 만드는 회사가 두 기업입니다. SK하이닉스는 HBM이란 개념을 창조한 회사고요, 엔비디아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TSMC와 협력하기로 했어요. 삼성전자는 그런 SK하이닉스보다 HBM 기술 경쟁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만으로 미래를 그리기에 부족한 시대입니다. 비메모리와 파운드리에서 무언가 보여줘야만 해요. 다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외교입니다. 자, 잠시 세계를 무대로 한 권투 링으로 가볼까요? 깊이 읽어볼 기사로는 지난 2021년 매일경제에서 발행한 TSMC 관련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잘 설명해 읽을 만해요. 🧭글 보러가기 #4 한국은 어떡하나  이 밥그릇 싸움에서 한국은 과연 제 몫을 지킬 수 있을까요? 대외적으로 한국의 위치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효자 특산물’인 메모리 반도체의 입지는 좁아졌거든요. 전문가들도 지난 2년 새 메모리 중심인 국내 산업구조의 약점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평가하고요. 설상가상 믿었던 메모리 반도체의 수출액은 5년 사이 반토막이 났고, 현재 고공성장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한국은 3.3%의 낮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아니 그럼 기업은 뭐하고 있지?’ 의문이 드실텐데요. 기업들도 반도체 전선에 갇혀 엔비디아 독주를 용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쿠다 대항마 만들기, 자립 첨단 반도체 만들기, 틈새 국가로 진출해 독점적 지위 확보하기. 다양한 방법으로 저마다 경쟁력을 높이고 있죠. 그중 쟁점은 비메모리 분야, 특히 빅테크와 같은 대형 고객사의 수주를 따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능이 좋은 상품을 내놓고, 첨단 공정기술을 탑재해야 할 테지요.  ‘반도체 산업 터줏대감’인 삼성전자도 비장의 무기를 준비중입니다. 최첨단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인데요. 차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인 *GAA 공정(Gates All Around)을 3나노 반도체부터 먼저 적용하며 2나노 반도체부터 GAA 공정을 적용하는 TSMC를 견제했습니다. 수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목표죠. 또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표적인 AI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선두권을 두고 경쟁중이고요.  (*GAA 공정 =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전류가 흐르는 구조인데요.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주요 나라와 산업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형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해보이는 대목입니다. 이미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자급자족’ 첨단 반도체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에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팹 조성을 조건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9조 원을 받기도 했죠. 미국의 큰손, 대형 고객의 수주를 딸 수 있을지 혹은 남의 나라 좋은 일만 해주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한국도 나름 기업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정부는 최근 한국형 칩스법, 이른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경기 남부에 조성해 ‘메모리 파운드리’ 생산 중심지를 2040년까지 만들겠다 발표했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22조원을 투자하고, 정부는 세제 혜택과 전력, 용수 등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입니다. 더불어, 반도체 투자세액공제를 25%까지 확대하고 올해 반도체 지원 예산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렸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국가적 지원이 재벌 특혜, 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는 반면, 안보 경제가 달린 문제인 만큼 필연적이라는 의견도 있고요. 전문가의 빅픽쳐는 조금 다릅니다. 기업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R&D) 지원이라는 입장이죠. 예컨대, 기업들의 R&D 자금이나 시설 투자에 인센티브를 늘리면 그 자금이 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학과 연구기관까지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인데요. 다만, 반도체 관련 R&D 예산 삭감의 여파로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로 내년 정부 예산은 지난해 대비 크게 축소됐는데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연구 부문은 26% 감소율을 기록, 중소/중견 팹리스기업을 육성, 지원하는 예산 역시 200억원이나 감소했습니다. 쉽지 않은 싸움.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마주한 단기, 장기간 과제를 뚫을 돌파구가 요원해보입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칩워>를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흥미로웠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저자인 크리스 밀러가 현대 역사의 분기점이 된 군사력을 제2차 세계대전의 강철과 알루미늄, 냉전 시대 핵무기, 그리고 현재 미·중 패권 싸움의 ‘컴퓨터의 힘’(computing power)이라고 보는 점이었어요. 우리가 매일 끼고 자는 스마트폰부터 저 멀리서 날아가는 미사일까지, 반도체는 우리가 먹고살 거리부터 군사력까지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더군요. 반도체 산업이 중요하다는 건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데 레터를 준비하면서 여러 기사를 읽어보고, 책을 읽었을 때 어딘가 찜찜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삼성과 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은 주가, 즉 숫자로만 산업을 평가합니다. 실적을 까고 보니 예상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 예상보다 돈을 벌지 못했다는 식으로요. 좀 더 찾아보니, 이 거대하고 굳건해 보이는 산업의 이면에는 황폐하고 허약한 구조가 있었습니다. 먼저 질병 산재 문제입니다.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을 얻은 황유미 씨가 23살에 돌아가셨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후 반도체 노동자 인권 단체 반올림이 출범했고, 황유미 씨가 사망하고 10여 년이 지나서야 삼성전자는 중재 협약을 통해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사과와 보상,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여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은 일하다 죽고, 일하다 병에 걸려도 사회와 기업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구조는 반도체 산업뿐만이 아니라 첨단산업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다음으로 물 문제입니다. 반도체 공정에는 깨끗한 물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기업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의 양은 107만 톤에 달합니다. 첨단산업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반도체 수요는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른 물 사용량은 지금의 3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 가뭄과 폭우의 주기가 잦아져 점점 더 물을 저장하기 힘들어집니다. 지역에서는 변기 내릴 물도 없어 밖에서 볼일을 해결하거나 마실 물도 없다는데, 정부와 기업이 계획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근 팔당댐에서도 물을 공급할 수 없어 강원 화천댐의 물까지 끌어 쓸 계획이라고 합니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착취해 반도체 산업을 지속한다면 우리가 얻게 될 것은 무엇일까요? 어마어마한 경제적 수익과 모두가 두려워할 세계 최강의 군사력? 그러나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잘 살고 부강한 나라’를 얻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도시에서 칩 하나만 덩그러니 살아남는 미래가 되지 않길 바라며 레터를 마칩니다. 에디터 선심🔆 드림 만든 사람들: 선심🔆, 보라 🍇, 푸릇 🌿, 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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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뉴스 다시보자] 📰 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0 겉으로는 온전해 보였던 것이 톡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전조증상과 우려를 무시하는 동안 문제는 몸집을 키우고,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때가 많죠. 요즘 우리 사회엔 조금만 신경썼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문제들이 자꾸 나타납니다. 우리는 왜 빨리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요. 이번 주 불붙일 뉴스는 제도와 관리감독의 미비함이 드러난 ‘티메프 사태’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문제가 커지기 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를 소개합니다. 급식 노동자들이 참담한 환경의 조리실을 떠나며 학교 급식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국내 노동력을 채우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발 빠른 대처를 위해선 정치권의 노력도 필요하겠죠. 최근 당 대표를 새로 뽑은 국민의힘의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되는데요. 한국 보수 정치의 쇄신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칼럼도 소개합니다. 이제 불붙이러 가볼까요? #1 사건과 구조: '티메프 사태' 공정위는 무능했고 금융당국은 맹탕이었다 "e(이)커머스 기업 티몬과 위메프 미정산 사태로 피해 규모가 1조원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상거래 안정성을 해친 전자금융거래의 불완전한 관리와 감독시스템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수년에 걸친 재무건전성 악화에 따른 위험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자상거래 규율 체계는 무능했고, 전자지급결제대행업자(PG사)로 등록된 기업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의 시스템은 맹탕이었다."✍🏻 임철영/전영주 기자, <아시아경제>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 이른바 ‘티메프 사태’의 불길이 경제 전반에 번지고 있습니다. 향후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거래분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가 사실상 1조원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개인사업자 대상 대출을 늘렸던 은행, 소비자들의 결제 취소에 따른 손실을 떠안을 위기인 결제대행사 등 금융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사태의 시발점은 티몬·위메프 등 유통업체의 도덕적 해이입니다. 사실상 무이자로 자금을 차입하는 레버리지 효과를 노린 지연 정산이 만연했습니다. 길게는 70일 늦게 이뤄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주력 상품이었던 7~8% 할인 가격의 상품권은 단기 자금 조달을 위한 기업어음 역할을 했어요. 이런 부당한 이윤 추구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부실한 규제가 있습니다. 티몬·위메프 등 유통사 및 플랫폼 업체는 ‘PG사’로 등록되어 있는데요.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허가업체’와 달리 형식 요건만 갖춰 등록만 하면 되는 ‘등록업체’이기에 관리 대책이 부실합니다. 강제 영업 취소·정지나 그에 준하는 과징금 조치 수단도 없습니다. 임직원들이 피해를 보상하지 않고 사임했던 이유죠. 결국 공정위는 제도 보완에 나섰는데요.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티메프 사태를 총정리한 <아시아경제>의 기사 일독을 권합니다. 피해자들의 운명이 걸린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 개시 결정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일반 셀러 입장에서는 회생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유형자산이 없는 유통업체의 경우 회생 절차의 성과가 불투명해 회생을 회의적으로 보는 입장도 있어요. 플랫폼 경제의 취약점을 보여준 티메프 사태. 어떻게 해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2 연재/기획: 급식이 무너진다 "요즘의 학교급식실에서는 이런 배움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 외주 인력을 채용해 마치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처럼 효율성에만 급급한 급식실 (…) 이런 급식실에서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고 치우고 씻는 일은 학생들과는 단절된, ‘보람도 없고 보상도 없는’ 고된 노동에 불과하다. ‘제 자신이 잔반이 되는 기분이 드는 일’이라는 말에는 이런 현실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손고운 기자, <한겨레 21> 투철한 취재 정신과 종합적인 구조 비판 모두 잡았습니다. 연이은 폐암 진단과 절단, 사망 사고, 낮은 산재 인정률 등 급식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가 조금이나마 조명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젠 참담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기보다 떠나는 노동 실무사들이 더 많습니다. <한겨레 21> ‘급식이 무너진다’는 두 호에 걸쳐 손고운 기자가 신분을 숨긴 채 급식실을 떠나는 ‘여사’님들 곁에서 일한 체험기입니다. 학교 현장은 영양교사, 급식 노동자, 학생이 밥을 주고받고, 먹으며 배우는 소통과 배려의 중요성을 망각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영양교사와 급식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는 대신 돈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소비자주의에 갇혔습니다. 조리실무사 인당 200여 명에 이르는 담당 인원에, 화상, 끼임, 약품 사고에 항상 노출되어 있지만 지원보단 학부모와 교육청의 감시, 요구조건만이 쏟아집니다. ‘여사’들은 떠나고, 급식질은 떨어집니다. 학생 1천 명에 2 명의 노동자가 남아있는 경우도 생길 정도로 문제는 심각합니다. 하지만 교육청마저 ‘여사’들이 떠난다면 위탁업체에 돈을 주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학생들은 급식의 모든 과정에서 사람 냄새 없는 밥을 먹게 되죠. 인륜을 한참 벗어난 조리실무사들의 노동 현실도 참담했지만, 교육 없는 ‘공장급식’에 대한 비판은 더더욱 아득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과 일이고, 학생들이 가장 시간을 오래 보내는 곳은 학교인데요. 밥을 만드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그저 배를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만들어진 식사를 하며 과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삭막해진 한국 사회의 근원은 어쩌면 급식 현장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뉴스 보러 가기 🔥 #3 오피니언: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정말로 보수정치를 대표하겠다면 "한동훈 대표와 국민의힘이 진정 한국의 보수정치를 대표하겠다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그 의지를 천명하고 인정받겠다고 한다면 필히 살펴야 할 일들이다. 친윤계냐, 반윤계냐 같은 조잡한 시비에 갇혀있기에는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나 심상치 않아 더욱 그렇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향신문> 한동훈 후보가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됐습니다. 국힘 당대표 선거에서 가장 부각된 것은 친윤 대 반윤의 상호 네거티브였습니다. 한동훈 대표가 김건희 여사를 ‘읽씹’했다는 사실이 최고의 논란이 된 것처럼요. 참패에 가까웠던 총선 이후에도 지속되는 내부 파벌 갈등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칼럼은 한동훈호를 비롯한 앞으로의 한국 보수 정치가 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과연 한국의 보수 정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시민들은 보수로부터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김윤철 교수가 지적하는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대에 걸맞지 않은 가치 수호’입니다. 민주화 이후 명분을 상실한 반공과 민중 배제적 성장주의는 아직도 보수의 구호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저성장과 불평등 심화에도 한국 보수는 개발독재 시대의 신화를 좇고 있죠. 김 교수는 특히 현 정부의 독단적인 태도는 더더욱 ‘보수’와도 거리가 멀다고 비판합니다. 필자는 한동훈호에 보수의 새 규범을 정립할 것을 요구합니다. 기득권층에 대한 변화와 개혁의 요구를 시행해 시대에 부합하는 보수로 거듭나란 것이죠. 김 교수가 강조한 키워드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인데요. 칼럼 전문은 역사적 사례를 들어 보수가 시대의 변화를 마주하며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지 설명합니다. 과연 한국 보수는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칼럼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4 독립언론: ‘이주노동자의 임신’은 고려하지 않는 사회 “이주노동자는 ‘인력’ 그 자체가 아니다. 20~30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최대 9년 8개월을 머무르는 그 기간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애주기도 맞물린다. 한국의 상황과 이주노동자의 생애주기를 함께 고려해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춘희 연구자, <일다> 제목을 보고 흠칫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임신'은 생각해 본 적 없었거든요. 아마 저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의 몸을 '노동하는 몸'으로만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일다>의 섬세한 기사가 지적하듯, 몸은 특정한 역할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일하는 몸은 연애하는 몸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몸이기도 하고, 재생산하는 몸이기도 해요. 특히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여성의 나이는 주로 20~30대인데, 이 시기는 생애 주기상 결혼, 임신, 출산 기간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임신과 재생산권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다> 기사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출산 전후 휴가를 주어야 하지만, 출산휴가를 받는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전무하죠. 대신 임신한 이주노동자가 받아 드는 건 해고 통지입니다. ‘임신 원천 차단’을 위해 남편이 여성 이주노동자 집에 방문하는 걸 막는 사업주도 있고요. 결혼을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합니다. 해고 후 재취업에 실패한 노동자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죠. 재생산권은 기본권입니다. ‘임신과 출산 여부와 시기’, ‘성관계 여부와 시기 및 대상’에 대해 여성이 스스로 자유롭게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본권의 사각지대를 살피고 싶은 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에디터가 남긴 편지  매주 목요일마다 장애인 야학에 갑니다. 교실에 들어서면 이곳저곳에서 말을 걸어와요. “지난주엔 왜 안 왔어?”, “보고 싶었어!” 학생분들은 하고픈 이야기가 많고, 수다 떨 시간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야학 안에서는 학생분들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잘 들리는데, 야학 밖으로 나서면 학생분들은 말 없는 존재가 됩니다. 활동가이기도 한 학생분들은 매주 삭발하며 자신이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기사에 보도되는 내용은 이런 것들이죠. “장애인이 드러누웠다.” “사람들을 방해했다.” “악을 썼다.” 장애인 활동가의 언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사실 세상에서 ‘언어의 분배’는 균등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심지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은 분리됐죠. ‘말하는 입’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일부 남성은 폴리스에 나가 정치를 담당했고, ‘먹는 입’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과 노예는 집 안에서 ‘먹고사니즘’을 책임졌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입이 ‘먹는 입’으로 여겨진다는 건, 달리 말해 ‘인간성(이라는 환상적 가치)’을 상실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인간과 비인간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언어’가 활용됐기 때문이에요.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의 분리는, 인간 내부에서 비인간 동물을 구별 짓는 작업이었던 거죠. 그러니 소통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언어를 쓰는가”보다는 “언어가 언어로 인정받는가. 사회가 그 자의 말을 소리 아닌 말로 이해하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였던 조선어가 ‘소리’로 전락한 일제강점기를 떠올려 봐도 좋아요. 많은 친일 작가는 소리로 전락한 조선어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에, ‘인간의 언어’로 규정된 일본어로 글을 썼죠. 장애인 이동권 시위 보도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은 이런 것들입니다. “과격한 시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화적으로 대화해라.”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대화하면 누가 들어주나요?” 10여 년 전,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한강철교를 기어 건넜습니다.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씨에, 그런 투쟁을 했어요. 지금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지하철에 올라탑니다. 매 시위 투쟁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말하기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대화를 원하지만 듣지 않는 세상과 매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장애인은, 소통할 수 있을까요? 덧. 불균등한 언어의 분배는 인간중심주의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특정 종류의 언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인간성’은 공고화되어 왔으니까요. 예컨대 근대화 시기 소비적 여성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은 ‘육식성의 구강’을 지니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여성을 ‘먹는 입’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면서 남성의 ‘말하는 입’과 구분 짓고, 후자에 ‘인간성’의 가치를 부여한 거죠. 따라서 더 많은 말을 듣길 원하는 이 글이 바라는 건 언어 자체의 ‘전락’입니다. 원숭이와 개, 돌고래, 벌이 지닌 언어를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인간성이 전락할 때, 비로소 인간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억압도 사라질 수 있겠지요. 2024. 8. 5.에디터 만쥬 🌰 드림 만든 사람들: 모래 🏖️, 푸릇 🌿, 산호 🐠, 만쥬 🌰 지난 <꺼진뉴스 다시보자 9호>에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신 '익명의 너구리' 님, '길가는' 님, 'jay_kim' 님, '오늘은' 님 고맙습니다. 저널리즘에 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앞으로도 폴라리스와 함께 계속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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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뉴스 다시보자] 📰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9 세상이 동지를 빼앗아가고, 탄광이 남편을 삼켜도 꿋꿋이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인생을 정성스럽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데요.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은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일정 나이가 지나면 면허를 뺏어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오만한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계산해 네 인생의 길이 정해져있다고 판단하는 건 얼마나 가혹한가.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하기 전에, 타인에게 정성을 다해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월요일입니다. 이번 주도 함께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1 인터뷰: 이진순의 열림, 김민기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하나 바꾸고 싶은 게 있어. ‘쉼표’라는 말인데, (중략) 근데 이게 쉼표가 아니라 ‘숨표’라고. (중략) 쉬는 게 아니고 전체를 살리기 위한 숨표! 마이너리티(소수자)라고 보는데 마이너리티가 아니고. 복지가 그냥 퍼주는 게 아니란 얘기. 아, 근데 말이 길다. 내가 취했네.”✍🏻 이진순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한겨레> 지난 21일 세상을 떠난 故 김민기(1951~2024) 씨는 거인입니다. 가사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와 극단 ‘학전’이 한국 사회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본인은 그렇게 불리기를 굉장히 꺼렸던 인물이었습니다. 얼마 전 <S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나오듯, 그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존재를 물심양면 돕는 ‘뒷것’을 자처했고 실천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언론 인터뷰도 그는 드물게 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가 2015년 이진순 현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과 진행한 인터뷰로 <한겨레>에 2편에 걸쳐 실렸습니다. 그가 걸어 온 큼지막한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도, 그의 행동과 말을 정제하지 않고 전달하면서 인간 김민기를 드러냅니다. 그는 인터뷰를 앞두고 긴장해 막걸리를 사와 같이 마시고, 턱을 괴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비록 우리 세대와 멀어 보이지만, 꼭 알아야 할 김민기라는 인물을 잘 알려주는 귀한 인터뷰여서 일독을 권합니다. 두 번째 편은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2 기획 ㆍ 지역: 광부엄마 산업전사는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를 이끈 탄광 뒤편에는 열악한 환경과 혹독한 노동 강도를 감수하면서 석탄과 잡석을 가려낸 선탄부의 희생이 있었다. 남씨와 최씨는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지만 그 덕에 이만큼이라도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었다”며 “탄광 속 여자들을, 엄마들을 기억해 달라”고 웃어 보였다.✍🏻 최기영 신세희 김오미 김태훈 최두원 기자, <강원일보>  탄광에 여자 광부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깊은 지하에서 캐낸 석탄 중 잡석을 골라내는 일을 지금껏 여성 광부가 해왔답니다. 강원일보는 2개월간 심층 취재를 거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림자 노동을 길어 올렸습니다. 광업소의 유일한 여성 노동자인 ‘선탄부’는 광부이자 엄마, 아내였고 산업재해의 피해자였습니다. 기사는 선탄부의 삶을 추적하며 석탄산업의 역사, 폐광지의 아픔과 모순을 돌아봅니다. 담담히 그 시절을 회고하는 인터뷰에 내리던 스크롤을 잠시 멈추게 됩니다. 선탄부 대부분이 광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었어요. 아이들의 주린 배가 두려워 남편을 삼킨 광산에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죠. 상처 많은 삶이었지만 고통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탄광 산업을 지탱했다는 자부심, 아이를 키워냈다는 보람이 있었죠. 그 끝이 병든 몸과 수북하게 쌓은 약봉지여도, 광부 엄마는 오늘도 용감하게 일어섭니다. 산업 재해 인정을 위해 동료의 손을 잡고 근로복지공단으로 향해요. 독자님과 여성 광부의 삶을 기억하고, 뒤늦은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3 오피니언: '방 안의 코끼리' 된 고령자 운전, 면허 반납만이 능사인가 "한국에서는 이미 존재했던 문제를 외면하다 사건이 생기고 나서야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 갑작스러운 반동의 모멘텀이 작동해 급조된 해결책을 내놨다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조선일보> 7월 초, 시청역 추돌 사고 이후 고령 운전자와 관련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여론은 일정 연령이 지나면 면허를 반납해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갔지만, 칼럼은 이를 ‘에이지즘(나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대신, 운전자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운전 능력 평가나 해외에서 도입하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을 제안하는데요. 급하게 과제를 제출하거나 부랴부랴 보고서를 제출해 본 경험, 다들 있으실 거예요. 그런 경험은 우리에게 닥친 상황을 면피하게 해주지만, 면피가 습관이 되어 더 큰 눈덩이로 돌아오는 경험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을 겁니다. 배가 침몰하면 해경 해체로, 압사로 사람들이 죽으면 행사 폐지로. 바로 이런 것들이 정희원 교수가 말하는 ‘급조된 해결책’이겠죠. 더 나은 해결법을 위해 논의하는 시간이 꼭 필요해 보입니다. 뉴스 보러 가기 🔥 #4 문화: 곧 잘릴 사주네요 부적 20만원입니다 "고민을 털어놓을 창구, 덕담 들을 기회 정도로 활용한다면 사주는 제 효용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수천 년에 걸쳐, 앞일을 점치는 술수는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 ✍🏻 이상원 기자, <시사IN> 사주 좋아하시나요? 그 전에, 사주를 믿으시나요? 저는 사주에 돈깨나 쓴 ‘과몰입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MBTI로 자기소개를 하는 것처럼 제 소개를 해보자면, 병자년에 태어난 병화일주의 사람입니다. 사주를 봐주는 사람에 따라 누군가는 제 일주를 ‘촛불’이라고 하기도 하고, ‘태양’이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사주의 어플화 덕분일까요. 사주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어떤 학문이 아닌, 힙한 통계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막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가 알아가보자며 어플을 켜 사주를 봐주기도 하고 이런 현상을 반영한듯 최근 사주를 소재로 한 연애 예능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시사IN> 기사는 사주명리학의 열풍 현상을 소개하며 ‘사주를 과장하여 잇속을 챙기는 일탈’을 경계해야 한다고 짚어줍니다. 가볍게 기분전환을 위해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에디터가 남긴 편지    여러분은 현재 한국 기성 언론이 권력의 애완견이라 생각하시나요? 2주 전 토요일 저녁, <MBC>의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유시민 작가와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가 나와 “유튜브가 미디어 세계를 어떻게 바꿨는가”란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했습니다. 언론에 관한 여러 쟁점이 나왔는데 제 눈길을 끄는 건 함정취재에 관한 부분이었어요. 유시민 작가는 기성 언론이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청탁 수수 논란’을 보도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류 언론이 하지 못한 것을 유튜브 언론이 해냈다”라며 유튜브 언론을 칭송했습니다. 저는 유 작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원칙 없는 ‘사이다성’ 보도를 칭송하는 현상이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널리즘에는 원칙과 목적이 존재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민주주의와 시민을 위해 정보 불평등성을 없애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원칙을 중심으로 저널리즘 윤리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윤리란 건 법처럼 딱 칼로 자를 수 없어 상황마다 유동적이긴 합니다. 다만 이 윤리를 지키는 일이 저널리즘 원칙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고, 기사의 품질을 담보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죠. 문제가 된 <서울의 소리>의 김건희 여사 잠입취재는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입취재는 기자가 신분을 숨기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사안을 보도하는 행위입니다. <뉴스타파>의 “쿠팡 잠입취재”, <한겨레>의 “대한민국 요양보고서”가 대표적입니다. 그 전신 격인 <한겨레>의 “노동OTL”을 쓴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칼럼에서 잠입취재 가이드라인을 설명합니다. ▲중대한 공익에 관한 결정적 증거인가 ▲다른 취재 방법을 시도한 뒤 마지막에 시도한 것인가 등입니다. 이 가이드라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서울의 소리> 잠입취재는 정당한 것이었을까요? 영부인의 국정농단 실마리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공익에 관한 증거는 맞습니다. 하지만 해당 영상이 결정적인 근거라고 할 수 없고, 다른 방법을 모두 시도한 뒤 마지막에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유튜브 생태계에서 시선을 끌기 위한 ‘사이다’ 용 보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죠. 물론 유시민 작가를 필두로 한 여러 독자의 기성 언론을 향한 실망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실제로 정파적 보도를 일삼는 언론사들도 많고요. 그러나 그 안에서도 어떤 기자들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권력의 이면을 파헤치려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무관심은 상황을 악화할 뿐입니다. 시민들의 지지를 잃는다면 좋은 언론은 수입이 끊기고, 권력과 강하게 밀착한 일부 언론만이 살아남아 더 안 좋은 환경을 만들겠죠. 폴라리스는 지금까지 한국 언론의 좋은 기사들을 찾아 소개했습니다. 앞으로도 노력할 테니, 관심을 두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2024. 7. 29.  에디터 선심 🔆 드림 만든 사람들: 보라🍇, 해안🌊, 반달🌙, 선심🔆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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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극우화 방지 특강 👩‍🏫 한국 필수 시청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7 요즘 들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인권과 다양성의 시초 같던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했고, 하루아침에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먹고 살기 팍팍할 때마다 극우가 새로운 대안처럼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무섭게 세를 넓혀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극우 막는 처방전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나려 해요. 떠들썩하게 선거를 치른 나라로 갑니다! 여권은 넣어두고 호기심만 챙겨 주세요. 각국 선거 결과 브리핑을 듣고 유럽에서 극우가 약진한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극우화 특징도 준비되어 있으니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북부 지역에 살면서 이민자들을 실은 버스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봐야 했어요. 치안이 불안정해서 무서웠죠.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며 보안 정책을 펼치는 국민연합 의원들을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프랑스 국민연합(극우 정당) 선거캠프에 참여한 아나엘 씨 #1 2024 세계 선거의 해, 키워드는? 무려 42억 명.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소로 향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느 국가 하나 빠짐없이 내외 정세 긴장을 겪는 지금, 그 상황을 집약하여 보여줄 주요 선거들이 올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입니다. 4.10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강화됐고, 민주당 주도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특검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보수 여당과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예상보다 약진했고, 제3당이자 좌파 정당인 정의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우경화된 선거 결과라 할 수 있죠. 대형 분쟁국들에서도 선거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란히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푸틴은 무려 5선째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개입한 이란도 조기 대선을 치릅니다. 라이시 전 대통령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히잡 시위로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에 반기를 든 국민들의 선택은 온건 정책을 약속한 마수드 페제스키안이었습니다. 자국은 물론, 타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앞으로 두 분쟁의 향방이 어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더 서쪽으로 이동해보겠습니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선 뚜렷한 극우화 추세가 확인됐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주요국 극우 정당들이 눈에 띄게 많은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지난 대선에도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르펜이 이끄는 RN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EU에 쌓인 회원국들의 불만이 드러난 결과인데요. 현재 유럽 전역은 경제난과 이주자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공동체 EU가 요구하는 명분과 협력에서 벗어나 자국의 독자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고자 하는 거죠. 브렉시트로 그 첫발을 당긴 영국도 올해 조기 총선을 치렀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통과된 ‘르완다 정책’은 주변 국가들의 반이주 정서를 들쑤시기도 했죠. 영국은 14년 만에 노동당이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노동당은 친기업적 행보, 불법 이주자 대응 강화 등 기존의 좌파 색깔을 지운 ‘우클릭 공약’으로 민심을 얻었습니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나이젤 패라지도 선전했습니다. 영국이 상당히 극우화되고 있음을 실감하시겠죠. 대서양을 건너면 11월 대선을 치르는 미국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극적인 총격 사건을 겪으며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는데요. 바이든 현 대통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후보 퇴진 요구가 나올 정도로 지지율이 저조합니다. 바이든 임기 동안 경제가 회복됐다곤 하나 민생이 실감할 정도는 아니며, 그에 따라 이주자에 대한 불만과 경계는 강화됐습니다. 바이든은 젊은 진보 유권자들의 민심을 크게 잃었습니다. 비인륜적일 정도의 이스라엘 지원과 흑인, 성소수자 등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주요한 원인입니다. 바이든은 극우화된 유권자의 마음도 돌리지 못했고, 지지층이 기대한 극우화 방지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선거 소개에 극우화란 단어가 유독 많이 나온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극우화의 원인, 유럽과 우리나라의 극우화, 극우화를 방지하는 선거제도에 대해 차례로 논해보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2 극우는 ‘이것’을 먹고 자랐다 ‘유럽이 우경화된다’는 말, 익숙하게 들으셨을 겁니다. 시리아발 난민 위기, 브렉시트를 지나며 꾸준히 언급된 주제이지요. 민주주의와 선진성의 표상이었던 유럽의 변화가 심상치 않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이번 꼭지에서는 ‘유럽의 우경화’라는 현상이 나타난 배경과 국제 사회에 가져올 영향을 함께 보겠습니다. 극우가 약진하는 원인은 대개 세 가지로 꼽힙니다. 고물가, 경제난, 그리고 이민 정책입니다. 유럽과 중동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전쟁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난을 가져왔죠. 여기에 강력한 환경 규제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농가 부채는 증가했고, 농민들은 트랙터 시위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두드러진 갈등은 ‘난민’입니다. 소도시와 지방을 중심으로 난민이 수용되면서 주민들의 반감은 커졌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우호적이었지만, 경제난이 길어지자 난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여론이 우세했습니다. 물론 외부의 변화가 전부는 아닙니다. 기존 집권 세력이 추진해 온 ‘정치적 목표’에 더 집착한 나머지 국민을 설득하거나 민생을 수습하는 일에 소홀했고, 극우는 이런 빈틈을 파고든 것이죠. 프랑스ㆍ영국ㆍ이란에서 잇따라 치러진 선거에서도 “민생을 실패한 정부는 필패한다”는 메시지가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극우 정당은 이민과 국경 통제와 생필품 부가가치세 폐지 등의 정책으로 민심을 달랬고 유권자는 응답했습니다. 극우는 혼란한 세상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극우는 단순히 우파 가장자리가 아닙니다. 인류가 오랜 시간 발전시킨 인권·자유·평화의 가치를 경시하는 세력입니다. 이에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각자도생이 거세질 거라는 우려가 큽니다. 함께 해결해야 하는 기후, 전쟁과 난민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겠죠. 여성 인권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선 만 명이 넘는 여성은 극우 집권으로 임신 중지권이 타격받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답니다. 자유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공간인 유럽에서 고립주의를 지지한다면, 서구를 비롯해 한국에 가져올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 보러가기 #3 한국의 ‘뿌리 깊은’ 극우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볼까요. 올해 총선에서는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며 보수당이 참패했지만, 윤석열 정부와 2030 남성 유권자들의 우경화는 확연히 두드러집니다. 대통령은 공적 발언에서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정치적 반대자와 반국가 세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극우 성향 인물을 공공기관장이나 중앙부처 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했죠. ‘외부’ 요소가 침범해 ’내부‘를 위협한다. 극우가 사람들의 분노를 동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레임입니다. 사회적 긴장에서 비롯된 불안을 이권을 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거죠. 여기서 외부 요소는 극우 세력이 규정한 표준 시민을 벗어나는 존재라면 모두 포함됩니다. 동성애, 페미니스트 등에 대한 혐오 행동과 담론이 크게 퍼진 이유입니다. 앞서 보았듯 유럽의 극우는 이민자를 외부의 존재로 낙인찍었는데요. 한국 극우의 뿌리엔 반공이 있습니다. 이념 전쟁이 남긴 분단 체제에서 정부가 수립된 만큼 반북·반공의 뿌리가 깊죠. 한국 극우의 특징은 또 있습니다. 보수와 극우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보수 정부가 극우 성향을 드러낸 건 이번 정부만이 아닙니다. 보수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있어요. 민주화 백래시로 등장한 극우 단체가 ‘빨갱이 척결’ ‘동성애는 악마‘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울 때, 보수는 이들과 구분되면서 진보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만한 정치적 의제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보수 엘리트들은 극우 정치를 간혹 우려하고 때론 거리를 유지하지만, 결국은 용인하고 엄호하죠. 충성심 높은 유권자를 확보해 보수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최근 극우의 새로운 지지층인 2030 남성은 안티페미니즘을 축으로 강하게 결집합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모은 건 새로 등장한 극우 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이었습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간판 공약으로 제시하고 구조적인 성차별을 부정하는 등 극우 남성들에게 적극 어필했죠.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많은 국가의 젊은 세대에서 정치적인 성별 격차가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만큼 격차가 뚜렷한 곳은 없다고 짚었는데요. 대통령은 한국의 성평등 수준이 대부분의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은 묻어둔 채, ‘급격한’ 성평등 추진에 불만을 품은 젊은 남성들을 공략했다고 설명합니다. 극우가 한국 사회에 내린 깊은 뿌리, 그리고 극우와 보수가 하나 되어 자연스럽게 세력을 과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진단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도 ‘극우에게 동의하지 않는 다수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겠죠.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다음 글을 읽으며 그 실마리를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4 “어떻게 극우를 막을 것인가” 우리를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에 던져진 질문일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좌나 우가 아닌 ‘극단’입니다. 일부 극단적인 세력이 결집하여 만든 후보, 정당을 국민의 대표로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민의를 반영한다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정당, 정치, 이념, 인물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앞서 언급한 유럽 의회 선거, 기억하시나요?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RN이 대승을 거뒀는데요. 하지만 프랑스의 총선 결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RN이 유럽 의회 선거에서 대승하고 나서,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조기 총선을 선언했죠. 이 총선에서 좌파연합이 RN을 크게 밀어냈습니다. 마크롱의 일방적인 연금개혁과 우경화된 난민법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집권당과 극우 정당의 대안으로 떠오른 좌파연합은 프랑스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프랑스 헌법은 가장 뻔하지만, 가장 명확한 해법인 ‘선거 제도’에 민주주의를 맡겼습니다. 일종의 안전장치를 걸어둔 셈인데요. 물론 이번 조기 총선은 프랑스 국민들의 시민의식, 극단을 막겠다는 정치권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심에는 ‘제도’가 있습니다. 선거 제도의 힘과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한 선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프랑스 결선투표제, 조금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요. A 후보가 당선되려면 우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의 표를 얻어야 합니다. 1차에서 이미 당선이 확실시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후보가 출마하는 1차 투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겠죠. 이후에는 1차 때 12.5% 이상 득표한 후보들끼리 결선, 즉 2차 투표를 진행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흔히 ‘소신’ 투표라고 부르는, 나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투표가 프랑스에선 가능합니다. 결선투표제의 가장 큰 효용은 극단주의의 집권을 막는다는 데 있습니다. 극단적인 소수의견의 과대 대표를 방지하는 것이죠. 유권자들이 광범위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는, 결선투표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좌파연합인 NFP(신인민전선)에서 134명, 범여권에서 82명이 사퇴한 덕분에 RN과 맞붙은 280여 선거구 중 200개 이상에서 1대1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결선에서 RN 후보들이 대거 낙선한 이유입니다. 극단을 막기 위한 차악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시민들은 투표장에 나서 선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원 배지를 사수하는 것보다 극단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정치인들의 의지도 인상 깊습니다. 전통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가까운 정치 세력이 극우 차단이라는 명분으로 뜻을 모았으니까요. 대의민주주의의 존속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어서 우리의 선거제도도 다시금 정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프랑스 총선으로 배웠습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정치가 실패했기에 사회가 붕괴한 걸까요, 사회가 실패했기에 정치가 붕괴한 걸까요? 이번 호 딥다이브를 준비한 에디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사실 전 개인적으론 제도로 수습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단 생각이 들 만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희망을 크게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더 이상 간극을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은 여성혐오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의 연속, 인면수심의 범죄, 약자에 대한 동정 대신 조롱과 착취, 부패… 겨우 제도로 이런 인간들을 중화할 수 있을까?건강한 생각은 아니죠.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에디터로서 갖춰야 할 균형 있는 견해도 아닙니다. 그래서 버나드 크릭의 『정치를 옹호함』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크릭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란 다양한 집단의 이해와 이익을 적절히 조정·합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한 측의 승리만을 위한 지저분한 알력 다툼도, 선전전도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정치 없는 정치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합의와 조정보다는 내 몫이, 내 어떤 지위나 주장도 훼손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풍경. 현재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며, 이번 호 레터 주제 ‘극우화’의 가장 문제적인 측면입니다. 극우화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보수적 사상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정치 없음’입니다. 인내, 타협, 양보, 사고의 전환,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합의, 그리고 전진. 지금의 정치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정치의 정수…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정치를 되찾아오기 위해서겠지요. 사실 에디터 레터 초반에 언급한 저의 절망의 원인들도 사법적 좌절, 정치적 효능감의 상실, 어긋나는 행정이란 제도적 측면에 걸쳐 있으니까요. 저는 제도가 곧 한 사회의 정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라 생각합니다. 여성과 경제적, 정치적 약자들이 동등한 정치 주체가 아니니까, 내가 소속된 집단을 완벽히 이해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대표자가 선출되지 않으니까.기능하지 못하는 제도를, 동등하게 정치하지 못하게 하는 이 제도를 어떻게 손볼 것인가. 어떤 제도로 어떻게 정치를 되찾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내 몫을 조금도 빼앗기지 않으려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에, 합의와 조정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할 수 있을까?폴라리스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엔 어떤 답이 준비돼 있나요? 2024. 07. 22 에디터 푸릇🌿 드림  만든 사람들: 푸릇🌿, 해안🌊, 모래🏖️, 반달🌙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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