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지금까지 이런 안보위기는 없었다🕊️
폴라리스 항해도 vol. 120 북한과의 갈등을 실제로 일상에서 피부로 느낀적은 올해가 처음일 것입니다. 그 전에는 뉴스 보도로만 접했다면, 요즘은 오물풍선 낙하를 알리는 재난안내문자를 받고 흠칫 놀라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꽤 오랫동안 한반도에 공기처럼 퍼진 불안에 익숙했는데, 최근 들어 이 불안이 국가 원수들의 입에서 실체적인 위협으로 발화될 때 저는 공포를 느낍니다. 보수, 진보 그 누구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 남북 관계, 과연 해결책은 있을까요. 북한은 실질적으로 관계 단절을 선포했습니다. 최근 한국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구축하며 북한 억제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죠. 사실상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미국의 공조를 받는 ‘힘에 의한 평화’ 밖에 없다는 의견이 팽배하고요. 이조차도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게다가 북한의 도발을 제어할 국제적 규범은 유명무실해졌고요. 한국이 자체적으로 정세 악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북과의 대화일텐데, 현재 한반도 평화 안보와 관련된 대화 창구가 모두 교착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무 회의적인 이야기만 했나요?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북한과의 관계가 최근에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살펴봅니다. 찬찬히 원인들을 들여다보면, 남북관계에 대한 실마리까진 아니더라도 뾰족한 고민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요? 현 안보상황에 무력하게 느껴지더라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마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레터를 읽으면서 구독자님에게 평화란 어떤 의미인지 천천히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화해 협력과 평화 정착을 바탕으로 두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통일 기반을 조성한다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기 위한 역대 민주 정부의 해법은 물거품이 되었다.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다시 출발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시사IN> #1 북한이 달라졌다 남북 관계는 일정 주기가 있는 것처럼 갈등과 회복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여느 때보다도 남북 간 긴장이 높은 것 같습니다. 오물 풍선, 대남방송, 경의•동해선 도로 및 철도 일부 폭파, 반복되는 미사일 발사만 보더라도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심지어는 북한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이 이뤄지기도 했고요. 대체 무엇이 달라졌기에 남북 관계의 긴장이 극에 치닫게 됐을까요? 과거를 되짚어보면, 북한의 도발 행위는 특정 시기에 예측 가능한 정도로 이뤄져 왔습니다. 한미 군사훈련이나 한국과 미국의 굵직한 선거 직전 같은 때죠. 목적은 늘 뚜렷해 보였습니다. 한반도 내 미군 주둔과 한미연합훈련에 항의하는 것, 선거 시기에 존재감을 드러내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 즉, 제재에 반발하고 존재감을 과시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것입니다. 지난 1년은 달랐습니다. 작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을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칭했고, 지난 10월에는 ‘공화국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으로 개정‘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을 통해 밝혔습니다. 게다가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며 북한이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죠. 전문가들은 북한의 생존 전략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이전의 북한은 제한적으로나마 외부와 접촉하며 협상에 나서려 했습니다. 주기적인 도발을 통해 요구사항을 드러내 온 것부터 결국 ‘대외관계’를 기반해 자국 목표를 일부 실현하려 했던 것이죠. 이제는 외부와의 협상보다는 ‘자력으로’ 국가를 번영시키고자 합니다. 국제 질서에서 배제되더라도 독자적인 국가 운영력과 군사력을 갖추려는 것입니다. 노선을 튼 결정적 계기는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입니다. 당시 회담은 폐쇄적인 대외전략을 취해 온 북한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이어 외부와 대화하려는 시도였는데요. 협상에 실패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도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는 겁니다. 이런 형세에서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까지 했습니다. 서방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제재하고 있기에, 파병은 북한의 입장에서도 ‘도박’이라는 평가가 많은데요. 왜 우리는 이 파병에 특히 주목하는 걸까요?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2 파병이 진짜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북한의 러-우 전쟁 파병은 국제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동시에 한반도 안보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제공하는 위험한 행보입니다. 유엔 헌장이라는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이기도 한데요. 게다가 지금은 서방국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금융, 수출, 에너지 등 많은 영역에서 강력한 대러시아 제재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을 결정한 것은 국제사회를 적으로 돌리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먼저 북한의 내부 상황을 보겠습니다.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 체제와 정권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있죠. 이런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치 자금이 필요한데요. 군사 1만 명 파병의 댓가로 북한이 받게 될 돈은 1년 기준 약 2.4억 달러(약 3280억 원)로 추정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파병 군인들의 월급을 활용해 단기간이나마 주민들을 만족시킬 물자를 들여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북한에게 파병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자, 체제 안정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돈’은 부차적인 목적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북한이 추후 필요한 군사기술을 지원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파병을 택했다는 건데요. 트럼프와의 하노이 북-미 회담이 빈손으로 끝나면서 다른 방식으로 생존할 길을 찾은게 러시아와의 밀착이란 겁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북-러 관계가 혈맹으로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김정은은 지금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어질 가능성이 전혀 안 보이니 이번 러시아 파병으로 에너지·식량 문제 해결과 첨단 군사기술 획득, 실전 경험 습득 등을 통한 군사동맹 강화 등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당장의 군사력 강화보다는 ‘전략적인 진영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북한이 한국과의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파병을 택했다는 시선도 있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한반도 안보에 빨간 불이 켜진 건 사실입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전쟁시 군사 지원’을 명시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개입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된건데요.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안보 정책을 펼쳤던 정부의 노선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해보입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상황에 또다른 불확실성으로 무장한 트럼프 2기 행정부도 맞이하게 됐습니다. 트럼프 2기의 등장은 우리 안보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까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Reuters #3 트럼프 2.0과 김정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승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습니다. 취임식은 내년 1월 20일. 각국 정상들이 앞다퉈 트럼프 당선인에게 신속하게 축하인사를 건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식 전, 이달 중순으로 트럼프와의 만남을 성사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요. 다시 돌아온 트럼프 2기.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해온 외교는 구멍이 뚫릴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트럼프라는 변수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한미 관계에서 떠오르는 쟁점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입니다. 미국은 분담금을 협상의 지랫대로 삼아 안보와 경제 이슈까지 엮을 수도 있고요. 북한의 경우, 트럼프는 유세 현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분을 드러내며 두 사람의 관계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북한의 입장 또한 미국과의 대화를 꺼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전문가들은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있습니다. 이에 한국이 트럼프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관계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자, 그러면 한국은 어떤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까요? BBC 코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재집권 시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크게 3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1. 북미 비핵화 협상은 가능한가: 아직까지는 가능성 낮음 5년 전과 달라진 점은 트럼프에게 북한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대선 공약에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합니다. 북한 또한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러-우 전쟁 파병, 화성-19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핵 기술을 고도화시켰고, 핵을 보유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죠. 현재 미국에서도 ‘비핵화’보다 ‘비확산’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가: 한국과 주변국들의 역할이 중요 트럼프가 바이든이 체결한 다자 군사협력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연 트럼프는 바이든과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북한 핵 확장억제의 노선을 따라갈지 (그렇게 된다면 협상에서 한국에게 핵우산 비용을 더 청구할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북한 핵동결,’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을 하는 방향으로 기울지는 두고봐야 알 수 있습니다. ‘비핵화냐, 핵우산이냐, 혹은 핵 동결이냐’의 문제는 바이든 정권때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를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있고요. 만약 트럼프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결국 한국도 자체적인 핵무장을 해야하지 않나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더 이상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게 핵무장 찬성론의 골자입니다. 3. 핵무장이 방법일까? 다만, 현실적으로 핵무장은 ‘시기상조’ 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가능하려면 원자력협정 개정, 핵확산방지조약 탈퇴 등 거쳐야하는 관문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편,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이 북미대화에 끼어들어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최근 11월 1일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담기기도 했고요. 현재 한미 동맹관계는 아직까지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로도 읽힙니다.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제 3의 진영을 만들자는 일본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판 나토’ 전략도 있습니다. 아시아에도 집단안보체를 결성해 중국과 북한의 무력 공격 위협에 대응하자는 것인데, 어찌됐건 이 모든 전략들의 향방은 미국의 태도 변화에 좌지우지 되겠습니다. 최근 ‘핵균형’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립니다. 이 논리가 성립되려면 먼저 평화란 무엇인지, 국제사회가 합의한 평화의 기준과 정의를 살펴보아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이론과 현실과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에디터레터에서 평화에 대해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Pixabay 에디터가 남긴 편지전쟁은 평화의 반대일까요, 평화의 수단일까요? 국제정치학의 오랜 난제라지만,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죽어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질문은 기만으로 들립니다. 전쟁을 통해 이루는 평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냐고 묻게 됩니다.하지만 평화협상도, 국제사회의 제재도 힘을 잃은 지금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죠.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군사학의 고전을 펴낸 베게티우스의 말입니다. 강대강. 힘대힘. 공포의 균형. 그게 정말 우리가 가야 할 길일까요? 평화란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답답해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에 대한 글을 찾아 나섰습니다. 혹시 여기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하나씩 읽었습니다. 그중 가장 울림이 있었던, 칼럼의 일부를 공유합니다.“이스라엘의 국가 폭력에 대한 비판이 하마스의 테러리즘을 정당화한다는 작금의 논리는 제로섬게임의 규칙일 뿐이다. 냉전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어느 한 편에 대한 비판이 다른 한 편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제로섬게임은 냉전의 게임 규칙이 됐다.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북한의 붉은 세습왕조에 대한 비판이 남한의 국가 폭력을 정당화한다거나 남한의 개발독재에 대한 비판이 북한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는 식의 진영 논리가 그렇다. 지성사의 관점에서 볼 때, 냉전의 가장 큰 폐해는 우리의 의식 세계를 제로섬게임의 규칙에 가두어 두었다는 데 있다.“칼럼의 필자는 노벨 평화상이 ‘임자를 찾았다‘고 하면서도, 니혼히단쿄의 ‘기억 정책’(원폭 희생자와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자를 연결하는 것)이 어디로 튈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본 우익이 아우슈비츠의 유대인과 원폭 희생자를 동일시해 침략과 가해의 역사를 지우려 하듯이, 복잡하게 얽힌 전쟁의 피해자를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일은 많은 맥락을 소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의식이 제로섬게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과거를 반성하는 일도, 현재를 인지하는 일도, 미래의 평화를 그리는 일도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제로섬게임이 지배하는 의식 세계에 존재합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정말 전쟁을 대비해야 할까요? 2024. 11. 18.에디터 모래🏖️ 드림 만든 사람들: 콜리🥦, 부기🐢, 산호🐠,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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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일 동안 지하철 바닥을 기었다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6 열 개의 달이 지나고 새로운 달이 찾아왔습니다. 한 해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태양력에 따라 우리는 수많은 일, 월, 년의 끝을 겪는데요. 반면 세상만사에는 끝이 없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미해결된 과거사와 참사, 고질적이기까지 한 문제가 그렇습니다. 해결이 지난해 보여 끝이 어디일지 감이 오질 않고, 완전한 치유와 변화를 맞이하더라도 힘겹게 얻어낸 가치를 지켜내며 진보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이번 꺼뉴다보는 이처럼 끝없이 언급되고 회상되어야 하는 이야기들로 이뤄졌습니다. 첫 번째 기사는 이태원 참사 생존 피해자 김초롱 씨의 연재 기사입니다. 참사에서의 경험과 그 이후의 시간을 나누며 참사를 둘러싼 진실, 남은 자들의 회복에 다가서는 기획입니다. 두 번째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현재를 담은 인터뷰입니다. 폭압적인 통제 정책을 펼친 정부와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 체제에서 국가와 지역이 끔찍한 착취와 폭력을 주도했던 과거를 마주할 수 있죠. 마지막 기사는 장애인 활동가분들의 오체투지 운동 100일째를 다룬 기사입니다. 오체투지를 통해 장애인이 배제된 사회를 고발하고 그에 저항하는 장면이 담겨있습니다. 지속적인 상기와 발화가 필요한 주제들인데요. 꺼진 뉴스를 다시 보는 시도가 그 일환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꺼지지 않도록 애쓰는 여정에 함께해주실 수 있을까요? 1. 연재·기획 :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그런데, 정말 그것으로 된 것일까. 다시 10월이 시작되었고 2주기를 맞이하며, 다시금 느낀다.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다른 이름의 참사가 생겨나고, 책임자들의 변치 않는 태도가 우리 모두를 아프게만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 '이만하면 되었다'는 말로 쉽게 우리 사회를 냉소하지 않을 것, 글의 힘으로 모두와 연대할 것, 그리하여 종국에는 반드시 옳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도모할 것. 다시 한 번, 연대를 위한 연재를 시작한다." ✍🏻 김초롱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 김성욱 김초롱 씨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입니다. 회복을 위해 주치의가 글쓰기를 권한 것을 계기로, 초롱 씨는 본인의 상담기록을 편지와 일기 형식으로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태원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는지, 이후 어떤 일과 말들이 상처가 되었고, 위로가 되었는지 초롱 씨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털어놓습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스스로가 생존자가 아니라고 부정하던 초롱 씨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인식하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태원은 잘못이 없고, 할로윈은 잘못이 없고, 그날 모였던 사람들은 잘못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롱 씨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태원에 갈 것이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피해자로서의 자격에 대한 평가는 ‘水’라는 필명을 벗게 했습니다. 다른 생존자의 자살을 알리는 기사에 “이게 진짜 PTSD지, 진짜 힘들면 내년에 또 이태원에 갈 거란 개소리는 못 할 거다.”라며 그의 선언을 인용한 댓글이 달린 것입니다. 초롱 씨는 비로소 본인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며, 비난이 이태원 상인과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이태원을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일의 과정과 삶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꼭 보아달라 당부했습니다. 참사 후 2년,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가 출범했습니다. 참사의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더불어, 생존자들과 유가족의 트라우마 관리와 치료 지원까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중요한 시점에 초롱 씨의 연재 또한 재개된다고 합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 손을 잡는 의미로, 20여 편의 글을 차분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2. 인터뷰 : 겨우 살아남은 아이가 말했다 “우리한테 사과해야 해요” "이제껏 수차례 호출된 ‘국가의 공식적 사과’는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 살아남아 노인이 된 피해 생존자, 그리고 이름표 하나 없이 매장된 수많은 아이들의 묘가, 눈감고 모른 척하던 국가와 사회에 묻고 있다. 불과 40년 전까지 일어났던 처참한 아동 인권유린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없느냐고"✍🏻 박미소 기자, <시사IN> ⓒ 시사IN 박미소 기자  시사IN 박미소 사진기자는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 5명을 만나 이들의 삶의 궤적을 기록했습니다. 피해 생존자들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움을 온몸으로 거쳐갔습니다. 선감학원은 1942년부터 1982년까지 운영된 아동 강제수용소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수용소를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설치했고, 해방 이후에는 경기도가 직접 시설을 운영했습니다. 부랑아 대책이라는 명목 하에 권위주의 정권은 10대 소년들을 선감학원에 강제 입소시켰고, 시설은 소년들에게 폭력, 강제노동 등 학대와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대부분 가정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거리로 내몰린 청소년들이 피해자였습니다. “취약한 아동들은 보호가 아닌 ‘발본색원’해서 선도해야 할 존재”였다고 기사는 덧붙입니다. 선감학원 사건은 폐원 4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국가의 인권유린 사건이라 인정받고 있습니다. 2024년 6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는 선감학원 피해자 1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와 경기도가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이 선감학원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지만 정부와 경기도, 피해자 측 모두 항소했습니다. 법적 다툼은 장기화될 전망입니다. “겨우 살아남아 노인이 된 소년들.” 조복동(74), 최명호(72), 김춘근(75), 김용식(69), 김혁원씨(57)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끝나지 않는 국가 폭력에 대해 질문을 던져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기사를 읽으며 고령, 장애 등의 이유로 집단수용시설에 수용된 이들도 떠올랐는데요. 기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장애여성공감의 <시설사회>를 권합니다. “시설 문제는 시설 담장 안이 아니라 시설을 필요로 하는 사회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라고 책은 말합니다. 왜 특정 인구만 시설에 구금되는 것일까요. 인터뷰와 책을 읽으며 “시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3. 독립언론 : [투지일기] 마지막 100번째 포체투지, 6분의 호소 이제까지 불구의 신체가 바닥을 기어가는 행위는 ‘구걸하는 행위’로 읽혔다. 그러나 전장연은 이를 “시민불복종 행동”이라고 명명하며 ‘싸우는 신체’로 규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버려진 신체를 출근길에 고스란히 내보이는 행위는 어떻게 싸우는 행위로 변모하는가. 비마이너는 그 싸우고자 하는(鬪) 의지(志)를 쫓아 기록하고자 한다. 이른바 ‘투지일기(鬪志日記)’다. ✍🏻 하민지, <비마이너>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어떤 숫자는 많은 의미를 담기도 한다.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 600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기준 폐지를 위한 광화문 지하도 농성 1842일,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23년. (…) 이 시간 동안 우리가 외치고 있는 것은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만들자는 것” 지난 5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서울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시작한 지 600일이 되던 날,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남긴 말입니다. 이제 이 숫자에 ‘포체투지 100일’이 덧붙을 것 같습니다. 포체투지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비마이너 기획연재 <투지일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포체투지란 무엇일까요. 이마, 양 무릎과 팔꿈치 등 몸의 다섯 부위를 땅에 대는 오체투지를 아실 텐데요. 포체투지는 오체투지가 불가능한 장애인 활동가가 오체투지 대신 ‘기어가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시민불복종 행동이자, 장애인 인권 실상에 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입니다. 기어갈 포(匍)를 써서 ‘포체투지’라고 이름이 붙었습니다. 포체투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지역사회 건립이지만, 포체투지 참여 활동가들은 장애인권리법안 7개 제•개정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투지일기의 기사들은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활동가가 열차에 탑승한 후,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는 포체투지를 시작합니다. 몇 분 되지 않아 서울교통공사 보안관이 열차 칸에 찾아와 시위를 중단시키고, 포체투지 참여 활동가들은 열차에서 하차하게 ‘됩’니다. 기사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 중 인상적인 것은 보안관이 이동식 안전 발판을 기어가는 활동가 머리맡에 내려놓으며 활동가의 전진을 막는 간이벽이자 방패로 자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교통약자의 원활한 승하차를 위한 발판마저도 시위 제재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현장에서 매번 나오는 ‘불법’, ‘안전’, ‘소란’, ‘대중’이란 언어를 사람들이 참으로 자의적이고 편협하게 쓰고 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매 투지일기와 다른 날의 일기가 크게 구분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입니다. 시민들이 ‘응원합니다’라며 시위에 지지를 표하거나,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 측의 제재에 문제를 제기할 때, 혹은 활동가들을 향해 차가운 시선과 불평을 던지는 모습에서 그날 일기의 인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포체투지의 목표 중 하나는 시민에게 우리사회 장애인으로서의 삶과 공존 방법을 알리는 일일 것입니다. 꺼진 뉴스를 ‘다시’ 보는 것. 100일째를 맞으며 마무리한 포체투지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 꺼뉴다보의 취지와 포체투지를 진행한 활동가분들의 바람이 만나는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맘때가 되면 날씨만큼이나 기분이 묘해집니다. 10월 말을 거세게 훑고 지나간 이태원 참사의 상흔 때문입니다. 10월 한 달 저를 훑고 간 말들을 여러분에게도 전달하려 합니다. 10월 한 달을 학교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 행동을 진행하며 보냈습니다. 함께 논문을 읽고, 걷고, 추모 대회에 참여했습니다. 29일 2주기 당일에는 학교 광장에 부스를 설치해 추모 메시지를 받고, 오픈 마이크를 열었습니다. 한 분의 발언 때문에 온종일 아팠습니다. 이태원에서 나고 자랐다는 발언자 분께서는 김초롱 씨처럼 그날의 트라우마에 괴로워하고 계셨습니다. 여느날처럼 집으로 돌아가던 길, 개성 넘치고 화려한 이태원에 있던 소방차와 몰려 있는 사람들이 구경거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만 두려워져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죄책감이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발언자께서는 언젠가 그런 날이 오거든 꼭, 꼭 도움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참사 이후 자신은 학교에 제세동기가 비치된 곳을 숙지하고,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CPR 교육을 받으며 살아간다고요. 자신이 2년 전에 손을 보탰어도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말씀하시면서도, 모든 일이 자신 때문인 것처럼 여기시는 그분 때문에 슬퍼졌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맞는 핼러윈데이에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란 예측에 귀만 기울였어도, 구청에서 인파대책을 마련하고 경찰관들이 배치되기만 했어도, 그 좁은 골목길을 통제만 했어도 우리 모두가 이러한 트라우마를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그날 저녁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며 또다른 말을 곱씹었습니다. 10월 26일,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 행동 말미의 영상에서 한 유가족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늘이 참 예쁘네요. 구름 한 점 없고, 그리고 우리는… 슬프네요. 그래도 용기를 내야죠.” 매년 이맘때 쯤, 혹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는 슬플 것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명하고, 책임자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고,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행보와 삶을 지지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 없는 안전 사회가 올 때까지. 10월 한 달의 유일한 기쁨이었던 한강 작가의 글처럼 말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습니다. 이별하지 않습니다. 2024. 11. 4.에디터 푸릇🌿 드림  만든 사람들: 콜리🥦, 푸릇🌿, 산호🐠, 해안🌊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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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워하는 마음, 기억하는 행동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5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벚꽃이 피면 마음이 아리다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고통을 분담하고자 했습니다. 이제는 단풍이 물들고 날이 추워지면 자식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유가족들을 또 마주하게 됐습니다. 반복되는 비극에도 기어코 희망을 잃지 말자고 말해야 하는데, 희망을 붙잡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 일인지요. 그럼에도, 좋은 뉴스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번 주에도 폴라리스 레터를 열어주셨겠지요. 항상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폴라리스가 소개할 세 개의 기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하는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쳤습니다. 혹은 겉으로 보기에 빛나는 축제, 예쁜 옷, 반도체 사업의 이면에 숨어있는 문제를 끄집어내고자 애쓴 보도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기사가 많지만, 우리가 한 번쯤 꼭 들여다보면 좋을 보도를 엄선하고자 했습니다. 1. 사건과 구조 :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이태원 참사 원인' 지목된 이유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이임재 전 서장을 포함한 용산경찰서 관계자 3명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이태원 참사가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고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거나 그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던 인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 이은기 기자, <시사IN>  ⓒ 시사IN 박미소 10월 28일입니다. 올해 시월의 마지막 월요일이네요. 그리고 이태원 참사 2주기 하루 전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기사 제목이 석연치 않을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는 상관관계가 있을 법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요. 우리네 삶 속 모든 일에는 수많은 구성원과 그 역할이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 다른 개체가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내용의 일을 해내며 같은 목표를 설정하기도 합니다. 국가와 여러 기관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는 ‘안전하고 행복한 터전 구축하기’겠지요. 각 책임자가 다방면에 흩어져 제 역할을 하는 것은 각자가 맡은 주요 기능이 다르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어느 하나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호 보완해 가며 최소한의 틀을 유지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합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안전망이 있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이니까요. 그렇기에 ‘참사의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는 길고 방대한 답이 나와야 합니다. 참사에 책임이 있는 주체는 정말 많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밀집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걸맞은 사전 대책을 세워야 했던 용산구청, 용산경찰서, 서울경찰청 등이 있겠지요. 이미 알고 계시듯 용산구 관계자들은 10월 29일에 많은 인파가 모일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기사에서는 그럼에도 각 담당자가 인파 대비와 현장 해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언급합니다. 한정적인 행정력을 갖고 집무실 경호와 집회•시위 인근 인력 배치라는 막중한 신규 업무를 우선 수행해야 하니 이전처럼 기존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탓이죠. 여러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우리는 늘 새로운 책임이 생겼을 때 원래 있던 자원을 다시 쪼개가며 이를 소화하는 일에 익숙할까요? 하물며 이전처럼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됐을 경우, 혹은 타당한 의사결정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에 왜 실무자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을까요? 시민들의 생명보다 앞서 다뤄지는 사안은 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걸까요? 올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주일 전인 10월 21일은 성수대교 붕괴 참사 30주기였습니다. 오랜 시간 반복되는 참사 속에서 우리가 맞이한 건 무엇인지 고민에 잠기는 때입니다. 9월부터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특조위가 활동을 마무리할 시점에는 우리 사회가 자그마한 변화라도 이뤄냈길 바라며 기사를 전해 드립니다. 뉴스 보러 가기🔥 2. 연재·기획 : 쓰레기 오비추어리 Trash Obituary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책임성 확보를 위한 법 개정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유민채 전 청주 북이면 추학1리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농촌으로 서울·경기도 등 전국 각지에서 쓰레기들이 몰려온다. 소각장 인근 주민이 농사지은 배추밭에 검은 분진이 까맣게 내려앉는다. 농촌에 엄청난 쓰레기를 들이부으면서 어떻게 안전하고 건강한 생명 먹거리를 생산하라고 하나.”"✍🏻 창간기획팀, <경향신문> ⓒ 경향신문 ‘테무깡’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테무나 알리익스프레스, 타오바오처럼 저렴하게 물건을 판매하는 업체에서 대량으로 공산품을 구매하고 언박싱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즘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필수 콘텐츠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테무깡의 이면에는, 경향신문이 지적한 대로 ‘짧게 살고 오래 죽는 공산품의 생애’가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공산품의 생애를 현장에서 들여다보고 5개의 시리즈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대표적인 플라스틱 쓰레기인 의류 폐기물은 어디서 생산돼 누구에게 가닿고, 또 어디서 버려질까요? 유달리 빨라진 생산·소비·폐기의 속도는 이를 파악하기 어렵게 합니다. 지역에 쓰레기 산이 쌓이고, 공산품이 이동하면서 수많은 탄소발자국이 찍혀도 어느 한 국가나 기업, 주체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5개의 시리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시골로 떠넘긴 도시 쓰레기’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언젠가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는 없는 문제라고 눙쳐버리기로 합의한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문제라면 시골로 보내버리면 그만이라는 발상이 대표적이겠지요. <경향신문>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아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있던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내어 독자의 눈앞에 내놓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구매한 옷이 어떤 나비효과를 부르는지 낱낱이 보여줍니다.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인터랙티브 기사와 지난 12일 막을 내린 ‘쓰레기 오비추어리’ 전시회는 <경향신문> 창간기획팀의 절실함과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네요. 여느 때처럼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3. 독립언론 : 열아홉, 간이 녹았다 "취업 14개월 만인 2021년 12월, 간이 녹아내렸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주치의는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가족들을 불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위독했던 상황. 겨우 만 열아홉이었다. 기적적으로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다. 몸 밖으로 나온 선우 씨의 간은 형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잠에서 깨어났지만 더 큰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 김연정 기자, <셜록> 일러스트 신지현 ⓒ셜록 독자님은 ‘반도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국내 반도체 대기업? 애플의 시총을 제쳤다는 엔비디아의 주식? 반도체 관련 뉴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는 대기업의 화려한 실적과 주가입니다. 하지만 반도체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죠. 이번에 소개할 글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반도체 공장으로 간, 수많은 ‘반도체 소녀’, ‘반도체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입니다. 독립언론 <셜록>이 만난 김선우(가명)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20년 10월,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습니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에 보탬이 되려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동급생 중 ‘1호’로 취업했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구리나 주석 등 간 독성물질이 가득한 작업장과 3교대 근무, 열이 없으면 ‘감기에 걸려도 출근하라’던 상사였습니다. 선우 씨에게 주어진 장비는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 장갑, 비닐장갑이 전부였습니다. 얇은 마스크는 퀴퀴한 냄새를 막기에 부족했고, 화학물질로 오염된 방진복은 개인이 집에서 세탁해야 했습니다. 입사한 지 약 1년 만에 병원을 찾은 선우 씨는 ‘지금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우 씨의 간은 조직검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기적적으로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선우 씨는 퇴사 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지난 3년간 든 약값과 치료비만 2억 원에, 당분간 경제 활동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아 치료비 부담이라도 덜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1년 8개월 만에 나온 결과는 ‘불승인‘이었습니다.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어 업무 관련성은 낮다는 이유였습니다. 회사도 작업환경측정 결과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 결과를 받았다는 사실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작업환경측정 제도에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사업장에서 다루는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 요인만을 대상으로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지난해 8월 내놓은 중등직업교육 발전 방안에는 ‘제2의 마이스터고 붐’을 조성하겠다며, 첨단산업 중심 마이스터고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주는 사람도, 위험 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장비도 없는 곳에서 일해야 하는 현실에서 ‘제2의 마이스터고 붐’이 일어도 괜찮은 걸까요. 한국의 반도체 점유율과 반도체 주가를 고민하기 전에, ‘반도체 소녀’, ‘반도체 소년’들을 보호할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1. 편지는 독자가 한 명뿐인 특이한 글입니다. 편지를 쓸 때만큼은 그 유일한 수신자를 떠올리고서는 눈앞에 있지도 않은 그 사람 눈치도 좀 살피고 그에게 필요한 말은 무엇일지 헤아리며 말을 고르고 또 고릅니다. 이 말도 아니고, 저 말도 아니라고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편지조차도 실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뱉는 글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서두가 길었는데요. 독자분‘들’이 있는 편지지만, 저도 요즘 제 머릿속에 꾸준히 등장하는 생각을 꺼내놓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근래 저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며 자주 경악했고요, 동시에 하루하루 지내는 게 고단해 매일 만나는 내일이 뜸한 것 같다는 모순적인 생각도 했고요, 그러다가 다가오는 10월 29일을 종종 떠올리곤 했습니다. 2. 토요일이었던 10월 26일에 이태원 참사 시민 추모대회에 다녀왔습니다. 해가 지는 시각이나 추워진 저녁 바람이 꼭 1주기 추모대회 때와 비슷했습니다. 별이 빨리 보였고, 공기는 차가웠어요. 생존 피해자 이주현 씨의 발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년에 생존 피해자로서 발언했던 본인이 올해 다시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정부가 피해자를 면밀히 조사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책임 회피에 가까웠던 정부의 행보를 꼬집었습니다. 스스로가 피해자인지 모른 채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염려와 그에 따른 진상 조사의 필요성을 함께 전하시기도 했어요. 추모대회에는 다른 참사의 피해자분들도 참여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아리셀 참사 유가족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이 자리해 주셨어요. 중학생 시절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던 저는 이후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회복, 그리고 안전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가를 늘 따집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분이 앞으로 내리는 주요 결정에는 이제 사회적 재난이 평생에 걸쳐 뒤따라오겠죠. 3. 휴대폰 용량 정리를 하다가 친구에게 썼던 편지의 초고(?)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더라고요. 해마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생애주기에 따르면 특히 지금의 우리는 큰 변화를 맞이해야 할 시기라고. 그 때문에 우리가 요즘 새삼스레 고민이 많아진 것 같다고. 그렇지만 열아홉부터 매해 생일마다 편지를 주고받는 애정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꾸준할 것이라고. 우리 사이에 여전한 것이 있어 위안이 된다고 적혀있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그렇게 변하지 않고 여전한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을 지내다가도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마음. 남아있는 자들을 살피는 관심.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행동. 그리고 그리움 같은 것이요. 반복되는 참사에 가끔은 무력감을 느끼고 축 가라앉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함을 손에 쥔 채 서로를 살피고 돌보며 모두 잘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독자분들에게 이번 한 주가 따뜻하고 버틸 만한 시간이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2024. 10. 28.에디터 콜리🥦 드림 만든 사람들: 콜리🥦, 반달🌙, 모래 🏖️, 부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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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무지개도 비가 그쳐야 뜬다🌈
폴라리스 항해도 vol. 120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은 캐릭터 이야기로 레터를 열어볼게요. 혹시 ‘감자도리’를 기억하시나요? "도리도리도리도리 감자도리 / 빨간 망토 작은 눈에 감자도리 / 고구마가 되고 싶어 꿈을 꾼다 / 모험을 떠난다!" 멜로디를 흥얼거리셨다면 반갑습니다. 저와 동년배이실 것 같네요. 감자도리는 고구마가 되고 싶은 감자예요. 자라면서 자신이 주변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지죠. 가족, 친구, 선생님, 심지어 마트 종업원까지 모두 고구마인 세상에서 자신만 감자라는 사실은 그를 외롭게 합니다. 그래서 감자도리는 고구마가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나요.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갈망,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야기이죠.  한국에도 정체성을 이유로 소외를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퀴어는 한국 주류 사회로부터 마치 감자도리처럼 여겨져요. 이성애, 성별 일치감이 당연한 세상에서 성적 지향,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립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퀴어의 분투가 점차 사회적 목소리로 확산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최근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 퀴어 의제를 다뤄보겠습니다.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판결>,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교실>, <2024년 미디어 콘텐츠 속 퀴어>를 순서대로 따라갑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적 합의’라는 말로 퀴어를 미루는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 볼게요. 감자로 태어난 사람이 고구마가 되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면서요. 질문으로 꽉 찬 레터를 보낼 때면 독자님 의견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댓글과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中 - #1 법정에서 삶과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퀴어 끝이 보이지 않는 폭염을 뚫고 비가 온 7월 어느 날, “사랑이 또 이겼습니다.” 동성부부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인정한 첫 대법원판결이었습니다. 2019년, 동성부부이자 실질적 혼인 관계인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는 “인정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용민 씨는 소성욱 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했습니다. 공단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 배우자에 대해서도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얼마 지나고 등록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담당 건강보험공단 직원은 ‘착오 처리’였다고 설명하며 소성욱 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시켰습니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착오’가 만든 8개월간의 피부양자 자격은 없는 셈이 됐습니다. 담당 직원은 소성욱 씨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음을 전제로 8개월분의 건강보험료 등 합계 115,560원을 납입할 것을 고지했습니다. 소성욱 씨는 위 처분에 2021년 2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소 씨의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결과는 원고 승소였습니다. 그러나 공단의 상고로 판단은 다시 대법원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 18일, 대법원장은 “동성 동반자를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제도: 보험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고 지원을 재원으로 하여, 국민에게 발생하는 질병ᆞ부상 등 사회적 위험을 보험의 방식으로 대처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보험제도로서 국가가 헌법상 국민의 보건에 관한 보호의무를 실현하기 위하여 마련한 사회보장의 일환이다. 이는 국가공동체가 구성원인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에 해당한다. *피부양자제도: 건강보험제도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서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이 경제적 능력이 없어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더라도 직장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에 기반하여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이번 대법원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명시적으로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실상 혼인 관계의 집단과 동성 동반자 집단을 달리 취급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즉, 이번 판결은 공단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한 것을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보았고, 이는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 했습니다. 사실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되어 왔는데요. 이번 판결은 동성 동반자의 사실혼을 인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선례를 남겼습니다. 아래는 판결문 발췌입니다. “동성 동반자를 직장가입자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로, 그가 지역가입자로서 입게 되는 보험료 납부로 인한 경제적인 불이익을 차치하고서라도,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에서조차도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  박한희 공익변호사는 위 판결문의 구절이 문제의 본질을 짚어낸다고 설명합니다. 즉, 대법원은 피부양자 자격 불인정이 경제적 손실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침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죠. 애당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소성욱 씨가 월 소액을 부담하면 지역가입자로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굳이 소송함으로써 얻을 이득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존재를 부정당했던 동성부부에게 실질적, 금전적 손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법적 잣대로 자신들의 삶이 지워지고 재단당하는 경험, 즉 ‘존재가치의 침해’가 이들 부부에게 더 큰 손실이었습니다. 다만, 이번 대법원의 결정에 기뻐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판결의 보충의견은 법원이 “미래의 일을 앞당겨 현재의 법으로 선언할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확실히 말합니다. 입법부의 역할이 도드라지는 대목입니다. 대법관들은 “후속 판결과 입법을 통하여 동성 동반자들의 법적 지위에 대하여 더욱 포괄적이고 명확한 법리나 제도가 축적되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지는 글들은 정치권과 사회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글 보러 가기 #2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라고요? 퀴어 문제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선무라 했던가요? 누군가에겐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퀴어 청소년의 경우 더욱 위태로운 생사의 비탈길에 서 있습니다. 청소년 퀴어를 가장 괴롭게 하는 건,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하듯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퀴어를 부정하는 학교와 가정의 반응 때문이죠.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걱정한 이유로 '가족, 친구의 부정적 반응'을 꼽은 응답자 비율이 평균 80%를 차지하고 있어요. 아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는 대구MBC의 ‘들어보니’는 기댈 곳 없는 청소년 퀴어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냈습니다. 우선 성 정체성에 관련된 고민을 교사에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퀴어 관련 교육이 부족하다 보니, 퀴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교사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 상담 기관도 좋은 선택지가 못 됩니다. 실제로 상담 기관을 이용해 본 청소년 퀴어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나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다시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올해 4월 폐지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의 퀴어들을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했으니까요. 학생인권조례마저 사라진 학교에서 청소년 퀴어의 존재는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학생인권조례는 특정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장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주류적 경향과 다른 성적지향을 가진 개인, 그리고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들 또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동등한 주체라는 점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도록 교육하려는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맨 처음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 지역에서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숫자가 급증했다는 자료가 있지도 않습니다. - 학생인권조례, 오해 넘어 이해로, 국가인권위원회(2023) 존재의 부정은 제도권이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 밖으로 내몰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청소년 퀴어는 자살 위험군이지만, 이들만을 위한 국가의 자살 예방 대책은 전무합니다. 성장한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7월 도입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성소수자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실태조사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실시한 실태 조사가 전무한 탓에 퀴어가 얼마나 있는지, 퀴어가 겪는 차별은 무엇이며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논의를 시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퀴어가 없는 존재가 되는 건 현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가상의 세상을 그리는 미디어에서도 퀴어의 존재는 부정당하곤 합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3 원작 속 퀴어 캐릭터, 드라마에선 사라졌다고? 대중문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했던가요.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정년이>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퀴어가 지워지거나, 납작하게 재현됐습니다. 두 작품 원작은 모두 작중 캐릭터의 퀴어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죠. 웹툰 <정년이>는 여성 국극단 속 여성들의 경쟁, 연대, 사랑을 다뤘는데요.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주인공 정년이와 연인 관계였던 캐릭터 ‘부용’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속 인물 ‘흥수’는 게이지만, 영화 예고편에서는 마치 여자 주인공의 연인처럼 비쳤고요. 이처럼 퀴어 서사는 상업성과 맞물리며 종종 삭제되거나 감춰지곤 합니다. ‘도둑맞은 퀴어’라는 칼럼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퀴어베이팅’이라는 용어만큼이나 퀴어 서사를 이성애 서사, 혹은 퀴어가 등장하는지 알 수 없는 서사로 둔갑시키는 행태를 지적할 만한 ‘헤테로(heterosexual, 이성애)베이팅’ 같은 용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이죠. 먼저 ‘퀴어베이팅(Queer-baiting)’이라는 용어에서 ‘베이팅(baiting)’은 미끼를 의미합니다. 본편에 퀴어 서사가 등장할 것처럼 편집한 예고편은 퀴어베이팅의 대표적인 예시예요. 퀴어 팬덤의 구매력을 노리고 퀴어 친화적으로 편집한 예고편을 공개한 다음, 정작 본편에서는 예고편과 다른 서사를 보여주는 미디어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퀴어베이팅’이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소설의 폭발적 증가, 퀴어 문학 팬을 만든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영화로 각색되면서 인물의 정체성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왜 캐릭터의 게이 정체성이 예고편에는 나올 수 없었는지 질문이 남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퀴어 서사는 단순히 삭제되는 것을 넘어 노골적인 혐오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곧 공개될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교회 단체로부터 ‘동성애 미화를 중단하라’는 반대에 부딪혔죠. 이에 박상영 작가는 “혐오의 민낯은 겪어도 겪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한편 퀴어 콘텐츠가 양적으로 많아졌고, 법적 권리를 위한 투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건 그만큼 퀴어 이슈가 중요한 사회적 갈등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퀴어 의제의 ‘속도’와 ‘방향’을 고민하며 변화를 만들어 나갈 때가 아닐까요? 대중문화에서는 퀴어가 그저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일상임을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논문이 있습니다. <한국 성소수자들의 넷플릭스 퀴어 콘텐츠 수용에 관한 탐색적 연구>입니다. 하단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논물을 정리한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37명의 성소수자에게 앞으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물었더니, 많은 이들이 ‘한국판 논스톱’ 같은 시트콤을 꼽았습니다. 그동안 퀴어는 주로 특수한 사랑이나 비일상적인 존재로만 재현되어 왔습니다. 가족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 서로의 끔찍하고 귀여운 면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시트콤 속 인물들의 일상성은 지금껏 주류 미디어가 담아내지 않는 것이었죠.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퀴어들도 이미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밥을 먹으며, 평범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 보러 가기 #4 퀴어에게 뒤로 가라는 정치, 이제는 뒤안길로 세상에서 가장 퀴어 프렌들리한 것은? 정답, 번호표 기계. 밀릴 일 없이 순번 정확하니까. 퀴어 인권에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란 말이 지겹도록 따라붙습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의 입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 더 급선무’라고 변주되기도 했습니다. 정치는 퀴어가 궁극적으로 차별받는 무대입니다. 번번이 다수 집단에 밀려 동등한 권리를 얻을 기회가 지연되곤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18년째 국회를 체류 중인 차별금지법이죠. 주된 원인은 종교계의 영향력이 꼽힙니다. 특히 많은 인구와 조직적인 행동력으로 한국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독교는 대대적으로 성소수자 차별을 주창합니다. 정치인들이 성소수자에 연대하다 이들의 항의를 받거나, 주요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돌연 입장을 철회하는 사건은 비일비재합니다. 명확히 퀴어의 편에 서는 정치인이 부재하다 보니, 극우·보수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퀴어들은 배제됩니다. 퀴어 의제보다 우선해야 할 의제가 있다며 퀴어혐오 발언을 한 후보자나 정당에 눈물을 머금고 투표하도록 압박합니다. 선거 패배를 대의보다 개인을 우선한 퀴어들의 이기심으로 탓하는 경우들도 있죠. 퀴어를 차별하는 정치, 그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정치철학자 박이대승 씨는 퀴어 차별의 원인을 종교계의 혐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무관심’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신이 감각하지 못하는 타인의 구조적 차별과 폭력에 무관심하고, 구조적 개선을 외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이기도 합니다. 시민을 길러내는 가장 기초 현장인 교육계부터 돌아봅시다. 최근 서울을 포함해 여러 지자체 학생인권조례가 잘못된 성 인식을 주입한다는 이유로 폐지되었습니다. 교육청에서 페미니즘, 성교육 등 다양성 도서를 유해 도서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조전혁 보수 진영 교육감 후보는 ‘페미니즘과 동성애 교육을 폐지할 것’이며, 교원의 사상을 검열할 것임을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종교계, 정치인, 시민 모두가 퀴어에게 새치기를 했습니다. 결여된 민주 의식으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뒤로했습니다. 그 결과는 성에 대한 그릇된 교육, 규정, 자유 탄압의 메시지가 사회를 잠식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비단 성소수자에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 여성, 노동자 등 다른 소수자들의 운동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연대 대신 혐오와 소수의견 취급이 만연합니다. 퀴어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차별에 동조했던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고, 평등을 위한 행보에 함께할 때입니다. 🧭글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판결문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을 공유합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건강보험제도의 보호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사회와 국가의 공인된 보호를 받을 존재가치를 부정 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퀴어는 “‘숨겨진 나’와 ‘드러내는 나’가 따로 존재하는 분열의 상태에서 불안한 삶을 강요당할 수 있다.” 저에게도 ‘숨겨진 나’와 ‘드러내는 나’ 따로 존재하는 순간들이 있는데요. 이 ‘간극’을 떠올리니 1년 중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날은 과연 몇 일이나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손에 꼽는 ‘나다울 수 있는 날’을 묘사하면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요. 을지로 일대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행진하던 날, 울면서 춤추며 애도하던 날, 친구와 스탠딩코미디쇼를 관람하며 웃은 날, 바바라 해머 감독의 영화 속 관객의 모습에서 나를 본 날,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바다를 본 날.  위처럼 '예외적인 시간'과 사회와 불화하는 일상을 살다보면 모순적인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행정, 제도적 인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가령 판결문의 내용처럼 '숨겨진 나'가 제도적인 현실때문에 미래의 배우자를 부양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래전부터 국가는 돌봄과 부양의 책임을 가족이라는 경제공동체에 맡겨왔고 '숨겨진 나'는 그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는데, '드러내는 나'로 살면 최소 나라는 존재와 내가 맺는 관계를 국가에게 소명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렇게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 분노하길 반복하면, 퀴어를 비롯한 ‘국회 정치’에서 밀려난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근엔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매주 화요일 국회 앞에서 사랑하는 자식이 “평등히 살길” 바라며 권리중심 지원체계를 요구하는 시위를 자주 봅니다.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돌봄과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나' 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자고, 쉬고, 친밀함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상은 삶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일테지요. 돌봄/부양 체계가 더 다양한 가족과 관계의 형태를 포함하길, 그리고 돌봄의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 뿐만 아니라, 모두가 사회 제도적 돌봄을 차별없이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레터를 마칩니다.  2024.10.21 에디터 산호🐠 드림 만든 사람들: 해안🌊, 모래🏖️, 푸릇🌿, 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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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을 향하여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4 가을이 깊어지면서,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거리를 걷다가 금방 지나가버릴 이 계절이 아쉬워 슬퍼지곤 합니다. 올해도 어느덧 100일 남짓 남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빠르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바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0일이란 시간은 여전히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의미 있는 삶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할 기사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응급실 대란을 데이터 저널리즘으로 심도 있게 구현한 경향신문의 기사입니다. 조선일보의 기획은 거대 플랫폼 기업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고요. 마지막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인터뷰입니다.  짧은 가을의 끝자락에서, 남은 100여 일 동안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폴라리스는 그런 여정에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1. 사건과 구조 : '응급실 대란'을 기록하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환자들은 충북 청주에서 서울로, 강원 양구에서 강릉으로, 경남 함안에서 대구로 100km가 넘는 거리를 응급실을 찾아 이동했다. 겨우 응급실에 도착하더라도 수술에 불가해 큰 병원을 찾는 도중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 황경상·이수민·권정혁 기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가짜뉴스입니다. 죽어 나가요? 어디에 죽어 나갑니까?" '방탄 총리'로 변신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대정부질문 중 한 말입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국민이 죽어 나간다는 야당의 지적이 가짜뉴스라고 맞받은 건데요. <경향신문>은 한덕수 총리의 '가짜뉴스' 발언을 '뉴스'로 반박했습니다. 의료 대란이 200일을 넘어선 가운데, 지난 2월 20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응급실 뺑뺑이' 사례 34건을 분석했습니다. 환자들이 응급실에 도착해 최초 처치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 이송 거절 평균 횟수,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한 사례 등을 지역별로 분석해 디지털 콘텐츠 소개했습니다. 환자 13명이 사망했고 이 중 3명은 10대 미만이었습니다. 이송 시간이나 거절 횟수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계산에서 제외했는데도 그렇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을 두고 '가짜뉴스'라고 밀어붙이는 정치인을 마주할 때마다 시민들은 주장의 진위를 궁금해합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 당장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르고 취재하는 게 언론인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기사였습니다. 최선의 방법이 어떨 때는 데이터가 되고, 또 어떨 때는 최대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되겠죠. 이번에 <경향신문>이 선택한 방법은 데이터였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응급실 르포를 택할 때, 데이터를 선택한 방식이 신선해 폴라리스 식구분들께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2. 연재·기획 : EU, 유튜브·틱톡 알고리즘도 조준 "최근에는 거대 플랫폼이 필요에 따라 알고리즘을 조작한 사례도 확인됐다. 지난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학자들이 알고리즘과 정치 편향성의 상관관계를 연구할 때, 메타(페이스북 모회사)는 의도적으로 양질의 신문 기사를 알고리즘이 더 많이 제공하도록 해 연구 결과를 왜곡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저작권 침해부터 마약 거래, 딥페이크 성 착취까지. 전 세계는 범죄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구글·메타·아마존과 같은 거대 플랫폼은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기능하고 있죠. 지금껏 플랫폼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행위는 규제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의 <’범죄 방조자’ 거대 플랫폼> 시리즈는 거대 플랫폼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다룬 기획입니다.  거대 플랫폼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었습니다. 삶에 재미를 더해주기도 했죠.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플랫폼의 세계에 묶어두고, 알고리즘을 통해 그 지배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알고리즘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끊이질 않습니다. 유튜브 등 대표적 플랫폼 기업의 추천 알고리즘은 ‘비공개’로 운영돼 왔는데요. 유튜브는 이용자의 영상 시청 이력, 시청 시간, 검색 기록 등을 바탕으로 여러 영상 콘텐츠를 추천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변수들을 어떻게 조합해서 추천이 이뤄지는지, 구체적 작동 원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최근 국제사회는 알고리즘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초대형 플랫폼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도 규제하기 시작했는데요. 플랫폼에 불법·유해 콘텐츠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시작한 거죠. EU는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불법 약물 거래·혐오 발언 조장 등 불법 콘텐츠 확산에 알고리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플랫폼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를 짚음으로써 그들이 다해야 할 법적·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제껏 플랫폼은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한국 정부도 거대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입니다. 플랫폼의 무분별한 성장 뒤, 감춰진 책임을 바로잡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디지털 공간을 더 안전하고 공정한 공간으로 재편하기 위한 움직임을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3. 인터뷰 : "나를 사랑하자" 다짐 말라는 정신과 의사, 그 이유는 "무기력이 해결되면 다른 문제는 없었던 것처럼 치부되는데 사실 무기력이 나타났다는 건 '나 자신과의 관계'가 이미 훼손돼있다는 증거다. 한국은 굉장한 경쟁 사회라 무기력한 것도 싫지만 무기력하지 않게 돼 다시 경쟁을 하기도 싫은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는 다시 무기력감이 올라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지만 때로는 질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걸 주목하지 않는다." ✍🏻 유지영, 이정민, <오마이뉴스> ⓒ 유노라이프 정신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져 갑니다. 자신의 증상과 의학적인 조치에 깊은 관심을 가진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의 SNS 알고리즘에도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자전적 이야기와, 전문의들의 콘텐츠가 자주 뜹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희망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수많은 이에게 병을 유발하고 있단 생각에 씁쓸해집니다. 높아진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이 묘하게 불쾌한데요. 일종의 ‘강박관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꼭 낫고야 말겠다는, 혹은 나의 질환이나 특성도 분명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기능임을 확인받고 싶다는 욕구가 느껴져요. ADHD로 사례를 들자면, 주의가 산만한 특성이 원시시대에는 유리한 기능이었을 것이라며 위로하는 콘텐츠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사람이 꼭 쓸모 있어야만 하나요? 정신과 전문의 설경인 씨의 ‘나를 사랑하자 다짐 말라’는 말은 이러한 시각을 향한 일침입니다. ‘비정상적’인 정신질환과 특성을 제거해 천편일률적인 ‘정상 상태’, ‘생산적 상태’로 조정시키는 것. 그것이 정신의학에 대한 관심의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사람이 좀 비생산적이고, 우울하고, 산만하고, 불안하고, 착각을 하고, 기분이 날뛰면 어떤가요? 정신질환에 대한 강박, 심지어는 나를 보듬어줘야만 한다는 강박 없이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설경인 씨의 요지입니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그것을 위해 우리가 손보아야 할 것은 개인일까요, 사회일까요? 우리 관심의 궁극적 목적은 아픈 채로도 살아가는 것이어야 하며, 그를 위해 사회를 성찰하고 바꾸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에디터가 남긴 편지 정신과의 대목은 환절기입니다. 인간 뇌는 참 복잡하고 또 단순해서 계절이 바뀌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이번 주 폴라리스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인지 초겨울인지 헷갈릴 정도로 급격히 변해버린 날씨에 읽어보기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한평생 우울보다 불안이 더 큰 고민이었는데요. 예컨대 이런 겁니다. '내 기사에 악성 댓글이 달린다'라는 건조한 사실에 걱정이라는 살이 붙으면서 '난 좋은 기자가 될 수 없고 앞으로도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악성 댓글의 영향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겠지 아 인생아' 이런 결론으로 흘러갑니다. 누군가는 비웃을 테지만,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걱정 인형’ 독자분들은 제 편지를 보면서 고개 끄덕이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걱정 인형들에게 도움이 될 기사를 발견해서 여러분께도 소개하고 싶어요. 에픽테토스가 "인간은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 때문에 고통받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 그 자체보다 이를 확대해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듯 해요. 기사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 편향’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인지 편향’이란 불안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단서를 확대해 인지하고 긍정적인 단서는 무시하는 현상을 뜻해요. 이때 걱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을 순간순간 알아차려야 한대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아는 게 먼저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자세한 방법은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걱정 인형들 필독입니다!) 내 마음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제대로 '인지'하는 데서 시작하는 듯합니다.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이 인지하는 일, 거대 플랫폼이 국민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입안자들이 인지하는 일, 현대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그리 특수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언론은 우리 사회가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내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제대로 인지하는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래볼게요!)  2024. 10. 07.에디터 반달🌙 드림 만든 사람들: 반달🌙, 부기🐢, 푸릇🌿, 만쥬🌰  폴라리스 구독하기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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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 경연에 등장한 비건식🥗 근데 이제 사시미를 곁들인…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3 공기가 긴 여름 내내 머금던 물기를 털어냈는지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눈에 띄게 쾌청해진 하늘에 바뀐 계절을 실감하다가도 다시 일상을 지낼 때는 그 흐름을 매 순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달라진 바람과 온도에 둘러싸여 살지만, 오히려 늘 함께하기에 변화를 금방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는 듯해요. 우리 몸을 감싸는 옷차림, 낮과 밤의 길이처럼 일상을 구성하는 꽤 큰 요소가 휙휙 바뀌었는데도요. 이번 기사들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본인과 먼 이야기라고 여겼을 주제도 사실은 모두가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읽게 되는 기사들입니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상속세 문제를 다룹니다. 일부만 해당하는 주제 같지만, 사실 사회 불평등 구조를 모양 짓는다는 데에서 모두가 연결된 문제죠. 두 번째 기사인 자영업 리포트에서는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23.5%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이 처한 문제상황을 살필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비건 지향인이 쓴 <흑백요리사> 리뷰인데요. 비건 요리를 향한 시선을, 더 나아가서는 비건과 연결된 여러 사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름이 가긴 가는 거냐며 해가 갈수록 심하게 불평해 대는데, 결국 가을이 오긴 왔습니다.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거나 해결책이 요원해 보이는 문제도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긴 할 텐데요. 기사 속 주제가 나중에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상상해 보며 기사를 읽어볼까요? 이거야말로 꺼진 뉴스에 불씨를 다시 지피는 방법이니까요.☺️ 1. 사건과 구조: 물려받을 재산, 있습니까? 다가온 ‘대상속의 시대’ "정액으로 정해져 있는 공제액 일부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 가능한 일이다. (중략) 문제는 이를 위한 명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상속세는 중산층이 내면 부당한 세금’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는다는 것이다." ✍🏻 김동인 기자, <시사IN> ⓒ시사IN 조남진 상속세를 다루는 기사는 차고 넘칩니다. 대부분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와 비교하고, 상속세 인하가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죠. 인하론의 대표적인 근거로는 아파트값 인상으로 상속세 부과 대상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 제시됩니다. 겨우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부자들의 전유물인 상속세’를 내는 건 이상하다는 거죠. 정치권도 이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는데요. 예컨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속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세금이 중산층을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기사는 보편적인 문법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는 기사겠죠. 이번에 소개하는 <시사IN> 기사가 그렇습니다. 김동인 기자는 묻습니다. 정말로 현재 상속세 부과 대상들을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는가? 사실 ‘서울 아파트’ 값으로 여겨지는 ‘10억 원’ 이상 순자산 가구는 전체 가구의 10.3% 수준입니다. 정치권이 말하는 중산층은, 실제로는 중산층이 아닌 상류층에 가까운 집단인 거죠. 더 나아가 기사는 양극화의 관점에서 상속세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상속받는 이들과 상속받을 게 없는 이들 사이에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의 ‘중산층세’ 프레임부터 양극화 문제까지. 기사의 홍수 속에서 ‘한 끗 다른 관점’을 찾아 헤매는 독자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2. 연재·기획: "오늘 맥주 한병 팔았다"…서울대생 아지트 '녹두호프'의 몰락 [창간기획, 자영업 리포트] "그가 폐업도 하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폐업은 공짜가 아니다. “건물주에게 폐업 얘기를 꺼냈더니 가게를 원상 복구하고 나가라더군. 주변에 물어보니 최소한 800만원은 나갈 거래. 그 돈이 어디 있어?”" ✍🏻 박진석, 조현숙, 하준호, 전민구, 김현동 기자, <중앙일보>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성공하면 대박, 망하면 쪽박인 자영업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서민 갑부에 나오는 자영업자 성공 신화를 자주 보았기 때문일까요? 자영업자의 실패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 조용한 몰락을 중앙일보 창간기획 <2024 자영업 리포트>가 주목합니다. 기사는 자영업자 51명을 찾아가 각자가 처한 어려움을 먼저 듣습니다. 하루 매출이 맥주 한 병에 불과한 가게, 배달 플랫폼 수수료에 분노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과잉 경쟁에 밀려난 원조 스터디 카페의 이야기에 자영업자의 현실이 낱낱이 담겨있습니다. 자영업자는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최저임금이나 수수료 상한제 같은 큰 이슈부터 야간 돌봄 확대, 주차시설 설치 같은 생활 밀착형 요구까지 다양합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주점 휘가로에서 일하는 김태수(62) 씨는 정부의 국군의 날(10월 1일) 임시공휴일 지정에 불만을 토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휴일이 길어지면 밖으로 나가지만 절대 집 주변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만 죽어나는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죠. 단순히 기금 규모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25조 원 소상공인 종합대책’은 복잡한 현실을 해결하긴 역부족입니다. 고된 하루, 사람들은 타인의 노동으로 치유받아 다시 일어설 힘을 찾습니다. 직접 요리를 할 힘조차 없을 때, 돈을 내고 먹는 따뜻한 한 끼는 큰 위안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소득의 추락, 과잉 경쟁과 과잉 노동, 원가 급등과 부채 상승이 자영업자를 옥죄고 있죠. 정치권의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사회가 함께 공감하는 일이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요? 후속 보도까지 예정된 기획 첫 기사는 아래 링크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3. 오피니언: '흑백요리사'에 나온 혁명적 메뉴, 재료 알면 더 놀랄걸요 "대체육이나 비건 사시미와 같은 요리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고기에 길들여진 입맛을 거부하고 동물권, 환경 등을 이유로 채식을 지향하려는 이들에게는 '가짜 고기'는 간절할 것이다. 이렇게라도 동물을 덜 죽일 수 있다면 이야말로 밥상 혁명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비건 요리에 가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부당하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 ✍🏻 이현우,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나야, 들기름”.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를 아시나요? 시청하지 않더라도 SNS 피드에 뜨는 영상으로나마 프로그램을 접한 분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답게 화려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광활한 세트장과 식기구가 잘 갖춰진 조리대, 그리고 화려한 등장 효과에 놀라는 참가자 모습을 자주 비춥니다. <흑백요리사>가 대형 스케일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연출 방법은 동물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거대 수조를 심사위원 뒤로 옮겨 와 경연 주제를 발표하고, 수많은 동물을 앞에 나열해 놓고서 출연진들이 발 빠르게 그를 가져가 조리하도록 구성해 긴박함을 연출합니다. 제작진에게는 동물이 회차의 주제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소재가, 참가자에게는 요리의 재료이자 다음 경연 진출을 결정짓는 무기가 되는 것이죠. 이런 장면을 보면, 정말 많은 동물이 매 순간 살상된다는 사실이 온 살갗으로 느껴집니다.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장면들이 어떻게 다가올까요? 조리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저 요리가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먹어봐야겠다는 결심까지. 동물이 ‘음식’으로서 식생활의 기반이라는 의식이 더욱 견고해지지는 않을까요? ‘육식문화‘가 크게 기여하고 있는 식량부족과 기후위기는 인지하기 어려워지고요. 이런 <흑백요리사>에서 비건 음식이 등장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비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남정석 셰프가 출연하고, ‘셀럽의 셰프’라는 닉네임을 가진 요리사는 채소로 ‘비건 사시미’를 만듭니다. 다른 요리사들은 비건 사시미를 맛보고 싶다며 큰 관심을 보입니다. 시청자 반응도 비슷합니다. 비건 사시미를 궁금해하고,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평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없이도 재미를 이끌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 흥미가 앞서 언급한 동물권과는 약간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심은 동물과의 유사성, 즉, ‘특정한 맛과 식감의 재현 가능성’에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예를 들어, 비건 사시미를 맛봤을 때 사람들이 비트로 참치를 얼마나 훌륭히 ‘흉내’ 냈을지를 살핀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기사에서는 음식에 담긴 과정이 다르다면, 그 자체만으로 특정 요리의 모방이 아닌 독립적인 요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순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동물 소비가 없었다면 우리는 채소를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로 재편집해 다양한 맛과 식감을 이미 즐기고 있었을 수도 있죠. 또한 가끔은 모순적인 방법으로라도 우리가 믿는 선과 공존을 실현할 수도 있는 법이고요. (실은 저는 이걸 모순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하려는 행위로 바라보긴 합니다.) 독자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독자님의 확장된 감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사를 실어 보냅니다.    뉴스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1.  안녕하세요, 독자님. 레터를 쓸 때 제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건 독자님들 인데요. 이번 호를 쓰는 동안에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레터를 읽고 있는 당신은 왜 폴라리스를, 그리고 언론과 기사를 저버리지 않을까.” 사실 기사를 꾸준히 읽는다는 건 꽤 지난한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에서 ‘좋은 기사’를 찾고 읽길 멈추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2.   사실 저는 ‘절식’을 선언한 적이 있어요. 음식을 끊은 건 아니고, 기사를 잠시 끊었어요. 기자를 꿈 꾸는 사람이 기사를 안 읽는다니! 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때는 지면을 가득 채운 비극을 감당하는 게 버거웠던 것 같아요. 예컨대 상쾌하게 추석 명절을 보낸 후 신문을 들추면 ‘추석 일가족 참변’ 같은 헤드라인이 보이잖아요. 산재, 딥페이크, 이하전쟁, 선감학원… 매일 매일 슬픈 일이 벌어지는데, 세상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죠.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느라 개정안 입법이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또 누군가가 범죄 피해를 당했다.’ 이런 레퍼토리의 기사가 익숙해져 버린 시대니까요.  3.  물론 이제는 ‘절식’하지 않습니다. 대신 폴라리스 독자님들과 함께 읽을 기사를 찾아 헤매요. 비극을 외면하진 않겠다고 생각할 때, 한국 언론에 문제점이 차고 넘치는 줄 알면서도 냉소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저는 최승자 시를 떠올려요. <20년 후에, 지芝에게>에서 시인은 어린아이인 지芝에게 말합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화자는 자신이 몰락하는 21세기의 어느 날을 예감하면서도 20년 뒤 성인이 될 지芝의 빛나는 시작을 빌어주죠.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하고요.  최승자 시를 잘 알진 못하지만 <20년 후에, 지芝에게>가 최승자 시 중 무척 예외적인 시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극단의 자기부정’, ‘절망적 호소’ 같은 구절로 수식되는 시인이잖아요. 당장 <20년 후에, 지에게>에서 몇 장을 넘기면 이런 문장이 발견되죠.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단지 최승자의 시집에 비극이 가득하다는 이유로 -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진실이라는 이유로 - 저는 멋대로 그녀의 시집을 기사와 동일시 해버리곤 합니다. 그러고선 공포스러운 세상에서도 읽고 쓰길 멈추지 못하는 마음 가장자리에, 어른이 된 지芝가 살아갈 세상이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주 자의적인 해석이지만요. 시의 마지막 연에 이를 때쯤이면 이런 마음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지금 어린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시대가 너무 가혹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어른인 나는 이 시대를 열심히 보고 기록해야겠다.’ 조금 거창한 마음이지요? 4.  시간이 흘러 또다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옵니다. 어느새 제가 폴라리스에 합류한 지도 2년이 되어 가고요. 아마 지금 쓰는 글이 제 마지막 에디터레터가 될 것 같아요. 폴라리스를 떠나게 되었거든요. 그렇지만 폴라리스를 향한 애정과, 독자님들께 소개할 기사를 찾던 ‘거창한 마음’은 이 자리에 오래오래 남겨둘 생각이에요. 20년 후, 지芝가 살게 될 가을의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비는 마음 말이에요.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폴라리스의 항해도 기대해 주세요!  2024. 09. 30.에디터 만쥬🌰 드림 만든 사람들: 만쥬🌰, 해안🌊, 모래🏖️, 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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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연금개혁 똑바로 했잖아? 이런 얘기 안 했어💰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9 폴라리스 독자님들은 황금연휴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구직자(백수)라, 연휴의 영향을 받지 않고 평소와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요. 구직 활동을 하다 보면 마주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자기소개서의 나는 ‘일하고 싶어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라고 외치지만 막상 일하게 되면 퇴사를 꿈꿀 것 같다는 거예요. 예전엔 일자리에서 물러나 연금을 받으며 살 때가 되면 이런 딜레마도 끝나리라 생각했지만, 이젠 미래를 생각하면 공포심이 앞섭니다. ‘국민연금 고갈’은 공포를 키우는 데 일조했고요. 지난 국회에서 연금 개혁이 무산된 이후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떨어졌는데요. 다행히도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다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연금 개혁을 ‘숫자’의 문제로 간주합니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몇 퍼센트로 할 것인가, 몇 살부터 보험료의 차등을 둘 것인가…. 하지만 숫자에 가려진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본 목적을 떠올리면 더욱 중요한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폴라리스는 이번 연금 개혁에서 절대 지워져서는 안 될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처서 매직’도 비껴간 무더운 추석 연휴, 폴라리스와 함께 보내주세요.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이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며, 사회참여ㆍ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여 사회통합과 행복한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 사회보장기본법 제2조   #1 17년 만의 연금개혁, 뭐가 달라지냐면 90년생은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을 거라는 말, 자주 들어보셨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4대 개혁’ 중 하나인 연금개혁안을 지난 4일 발표했습니다. 여야 또한 절충안을 찾아 내년 정기 국회에서는 관련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죠. 폴라리스가 소개할 조선일보 기사는 독자가 제일 궁금해할 만한 Q&A 4개로 연금개혁안을 정리했습니다. 삽입된 그래픽을 보시면 이해가 배로 쉬우니, 일독을 권합니다. 전문가 의견은 다양합니다. 나이가 아닌 ‘지불 능력’이 보험료율을 결정해야 하는데, 20대 이하부터 50대까지 보험료율 인상 폭을 달리하는 게 위험하다는 우려도 나오고요. 이와 달리 세대 간 공정성 확보를 위한 해법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번 개혁안에서 제일 복잡한 이슈는 ‘자동 조정 장치’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신규 수급자 기준으로 연금 수급 총액의 17% 가까이 깎인다”고 장치 도입에 반대 의사를 보였습니다. 반면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자동조정장치는 한마디로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향후 연금수급액이 줄어들도록 설계됐는데요.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장치는 ‘최근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과 ‘기대 여명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액을 조정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현 제도대로면, 내년 물가상승률이 5%일 때, 올해 100만 원이던 연금액이 이듬해에는 105만 원이 되겠죠. 그런데 자동조정장치가 작동하면 가입자 수 증감률(Ex. 1.0%)과 기대여명 증감률(Ex. 0.5%)의 합을 물가상승률에서 제하고 인상하는 겁니다. 현 제도라면 105만 원을 받았겠지만, 자동 조정 장치가 작동하면 103만 5천 원을 받는다는 게 위 기사의 설명입니다. 이번 연금개혁안은 노후 소득 보장과 기금 고갈 등의 문제를 최대한 보완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가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이번에도 놓쳤다는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글 보러가기 ⓒ연합뉴스 #2 숫자에 가려진 사각지대 ‘더 내고 더 받기,’ ‘덜 내고 덜 받기’ 등 지금까지 주로 논의됐던 국민연금 개혁안은 근로 소득 징수를 전제로 합니다. 이는 국민연금이라는 제도가 낳는 격차와 불평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1) 근로 소득이 낮은 경우 2) 회사 부담이 아닌 아닌 개인이 보험료를 100% 부담하는 경우 (지역가입자) 3) 연금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들 등은 사각지대에 놓이기 마련입니다.  먼저,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사회보험’ 이라는 것을 염두해야 합니다. 이 제도는 필연적으로 소득이 높고 가입 기간이 긴 사람, 즉 노동시장에서 고용이 안정된 사람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보험료를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납부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노후 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여기에서 사각지대 및 가입자 간 격차 문제가 등장합니다. 사각지대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했거나(적용제외자), 가입했더라도 실업 등 소득상실로 가입이력을 쌓지 못하는(납부예외 및 장기체납) 가입자들을 의미합니다. 숫자로 보면 격차가 더욱 와닿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2020년 말 기준 약 1263만명이라고 추정합니다. 가입자 연령군 10명 중 4명이 사각지대인 셈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격차 문제는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상용직 임금노동자는 연금가입율이 90% 후반대인데 ‘임시일용직’ 정규직 노동자는 53.8%, 비정규직 노동자는 42.8% 불과합니다. 2021년 기준, 비임금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나 프리랜서) 수는 788만명 가량에 달하는데, 이들의 가입률도 낮은 편입니다. 플랫폼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1.7%에 그쳤습니다. 요약하자면, 노동시장 중심부와 주변부의 격차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별 노후 소득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소득 격차는 노동 시장의 양극화에서 비롯되고요.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문제는 복잡합니다. 고용 형태 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에 따라서도 국민연금 수혜자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음 파트에서 함께 살펴보시죠. 🧭글 보러가기 #3 국민연금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연금에도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성별 연금격차는 성차별적인 노동·복지 구조로 인해 발생합니다. 성별 연금격차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로 수령 인구 격차입니다. 남성에 비해 연금 수급 자격을 얻는 여성의 수가 적은 거예요. 두 번째로 수급 금액 격차입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수령액이 낮은 거예요. 국민연금에서도 성별 연금격차가 나타납니다.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남성이 여성보다 1.3배 많고, 수령자와 수령액도 두 배 가량 많습니다. 성별 연금 격차가 분명히 나타나지만, 아직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지표는 없습니다. 국민연금의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①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이에게 준다. ② 소득에 비례해서 준다. ③ 오래 납부한 만큼 더 준다(10년 단위). 간단한 성별 연금격차를 유발하는 공식입니다. 한국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기간 동안 일하지 못하고, 동등한 소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복지 제도에서도 불리합니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남성보다 취약한 존재입니다. 여성은 고용과정에서의 차별은 물론 경력단절, 임금차별, 불안정고용에 노출되곤 합니다. 성차별적 노동구조는 여성의 지속적이고 평등한 소득 획득에 장애물이 됩니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복지 서비스 수급 요건을 획득하고, 수령 금액 증식하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경향신문에서 자세한 사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출산크레딧 부여 자격을 첫째 아이 출산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성별 연금격차 해소를 위한 일보 진전이긴 하나 한계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첫 아이에게 크레딧을 부여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납부 인정 기간도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남녀 모두에게 지급되는 혜택이라 여성에게 불리한 연금구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실제로 출산·양육 크레딧 수혜자 98%가 남성이란 통계도 있고요.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 복지 제도는 여성의 생계를 보장하지 않고, 여성이 남성부양자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국민연금 개혁에는 섬세한 젠더 관점을 바탕으로 한 성평등한 변화가 꼭 필요합니다. 🧭글 보러가기 ⓒ연합뉴스 #4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요? 국민연금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으려면 정년 연장 논의도 필요합니다. 정년은 국민연금 개혁에서 아주 중요한 변수입니다. 국민연금 의무가입 기간은 59세, 법정 정년은 60세인 현 구조에서는 59세까지 보험료를 내고 63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60세에 퇴직하고 63세부터 연금을 받는다면 3년의 소득 공백이 생기겠죠. 그런데 최근 정부는 의무가입 기간을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가입자가 돈을 내는 기간을 늘려 재정을 안정시킨다는 취지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정년 연장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거예요. 의무가입 기간은 늘어났는데 정년은 그대로라면, 퇴직 후 소득이 없어도 연금 보험료는 계속 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취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납부 기간을 늘리려면 일할 수 있는 기간도 늘려야 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더 중요한 문제인데요.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방법’에서 노동계와 정부•경영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어요. 노동계는 법적 정년 연장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부터 정년 연장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보다 청년 고용이 쉽지 않아 기존 고령 노동자의 계속 고용이 절실하기 때문이에요. 정부와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취업의 경우 퇴직 전과 동일한 직무를 수행함에도 임금이 과하게 삭감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한 일자리로 내몰리게 되는 겁니다. 이는 한국의 노인이 빈곤한 이유이기도 하죠. 정년을 바꾸는 건 단순히 퇴직 시점을 정하는 것이 아닌 고령 노동자의 노동 가치와 존엄성을 재고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때입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둘 다 덩치가 크고, 회색이며, 사람들한테 아주 인기가 있고, 비둔해 움직이기 힘들다.” 독일의 연금 전문가인 힌리히스 브레멘대 교수는 연금 개혁의 어려움을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했습니다. 연금기금의 규모 자체가 워낙 큰 데다가, 인구구조 및 산업 변화와 같은 사회경제적인 변수에 유동적으로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이죠. 개혁을 잘못했다간 표심을 잃을 수도 있고요.   한국에서 국민연금은 공적 연금 제도로서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가지지만, 몇 년 사이 낮아진 소득대체율 때문에 일각에선 ‘용돈’ 연금이라는 비판도 합니다. 몇십 년째 개혁에 관한 논의는 이뤄졌지만 이렇다 할 해법은 없어 보이는 국민연금, 우리는 이 제도에 굳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까요? 개혁이 필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해야 할까요? 제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문뜩 든 의문들인데요. 에디터 레터 지면을 활용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차근차근 찾고자 합니다. (주의: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다소 장황하지만, 제 고민의 흔적을 함께 따라가 주시겠어요? 1. 기금 수익률, 기금 안정이 제일 중요해? 자, 우리는 여태까지 재정 안정이냐 노후 소득 보장이냐 식의 이분법 담론을 접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논의에 꼭 언급되는 단어들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었죠.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인지 수치 얘기가 계속된 이유는 국민연금이 근로 세대가 퇴직 세대를 부양하는 부분적립방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입니다. 부분적립방식은 보험료 수입을 바로 급여로 지급하지 않고, 남은 자금을 기금으로 적립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현재 상황으로서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보험료 수급은 줄고 연금 지출은 늘 수 밖에 없죠. 언론, 정치권이 기금 고갈 '공포'를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정권들은 '재정 안정, 노후 소득 보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조율하기도 했고요. 최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개혁안도 이와 크게 빗나가진 않았습니다.  2. 세대 간 개인들의 연대가 정말 답일까?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개혁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당장 내야 하는 보험료나 수급액을 조정할 수는 있어도, 인구 구조가 계속 악화한다면 국민연금의 불안정성과 기금 소진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죠.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교수는 재정 안정이 지출 시점 노동 세대의 생산성에 달려있기 때문에 현재 논의되는 저축식 해법은 효용성이 크게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노동 세대의 생산성은 인구, 사회경제적인 변수 및 불확실한 상황에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고요. 혹시나 지금보다 인구구조 상황이 더 안 좋아져 연금 수입액을 초과하는 수준까지 보험료를 올린다면, 가입자들 사이에 오히려 제도 불신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점점 공적 연금의 효용성을 느끼지 못하겠죠. 민간 연금과의 경쟁에서 국민연금은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을거고요. 중요한 것은, 고소득자 가입자들은 알아서 민간 연금과 같은 플랜 비를 찾을 테지만,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은 노후 소득 보장에서 점점 더 밀려날 것입니다. 현재 정부가 제시한 개혁안대로 보험료와 세대별 차등 적용을 한들, 노동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사회 위기에 사각지대 인구는 연금의 수혜자가 되기 더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됐던,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운용된다면,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게 공적연금은 여전히 노후 소득의 큰 기둥입니다. 금융시장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사적연금이나 금융상품에 비해 안전성도 비교적 높고, 애당초 사적연금과 목표부터 다르고요. 3. 든든한 사회라는 뒷배가 필요해 현재 제안된 개혁안을 비롯한 다른 모수 개혁안들은 살펴보면, ‘국민연금기금을 소진하면 절대 안 된다’는 신념이 작용했다고 원종현 국민연금기금 상근전문위원은 말합니다. 아니, 기금 소진을 막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지만, 원종현 위원은 연금 개혁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기금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노후 보장, 즉 공적연금제도 자체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논리를 따라가보면,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곧 노후 보장 강화로 이어집니다. 예컨대, 소득대체율을 인상해 노후 소득이 기초생활을 보장하게 하고, 근로기간에 납부하는 보험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죠. 이는 공적연금제도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미 4월, 500명의 연금개혁 시민대표단 중 다수는 숙의 토론을 통해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적정 연금 보장’을 선택했습니다. '더 내고 더 받기'를 통한 노후 보장을 선택한 셈이죠.  다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근로소득 뿐만 아니라 국가도 국민연금의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 고민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즉, 보험료를 개인 가입자들이 더 내는 방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현행 보험료율 9%는 각 근로자의 소득에서만 징수합니다. 하지만 근로소득만으로 노후 사회보장제도 전체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노동 능력 여부, 고용 형태, 성별, 나이 등에 따라 격차도 벌어질 수밖에 없죠. 한 세대는 단일한 계층으로 구성되지도 않고요. 일각에서는 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 기반을 넓힌다면 보험료율은 낮아질 수 있고, 일부 국가가 시행하는 자산소득 등 다양한 소득원에 대한 보험료 부과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험료의 양보다, 분배의 질서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자,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앞으로 국회는 어떤 안을 내놓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구독자님은 이번 개혁안,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로 의견 알려주세요!  2024. 09. 16.   에디터 산호🐠 드림 만든 사람들: 반달🌙, 모래🏖️, 푸릇🌿, 산호🐠 🧳폴라리스 방학 공지🌕 폴라리스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레터를 열어보셨을 쯤이면 막 시작된 추석 연휴를 즐기고 계시겠네요. 폴라리스 에디터들도 한 주 동안 재정비와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폴라리스 레터는 9월 30일 꺼뉴다보 13호로 돌아옵니다. 모두 몸 조심하시고, 건강하고 아프지 않은 한가위 되시길 빕니다. 다음 레터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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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페이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2 이 코너의 제목은 ‘꺼진뉴스 다시보자’지만, 이번 호에서 다시 보고자 하는 뉴스는 꺼진 뉴스가 아닙니다. 먼저 한국을 태우고 있는 딥페이크 성착취와 연결해 이른바 ‘성산업’을 생각하는 기획 보도를 가져왔습니다. 지난 주에는 23명이 사망하는 화재 사고가 난 아리셀의 대표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구속됐죠. 아리셀 참사 유족을 돕고 있는 이주민 활동가를 인터뷰한 기사를 다음으로 보여드립니다. 그리고 불씨가 꺼지지 않게 전력을 다하는 법조 전문 독립언론 <코트워치>도 소개해 드립니다. 조금 버거우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 불길을 마주하러 가 볼까요? ⓒ한겨레 & 곽진산 기자 1. 연재·기획: 30조 성산업 불패의 공범들 "30조~37조원 규모로 추산됐던 성매매 산업을 지탱하는 주범은 성구매자와 성매매 알선자이지만, 주변에 기생하며 이익을 얻는 공범들의 존재도 만만치 않다. 성매매 장소 제공자와 성매매 대리 예약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 한겨레 탐사팀, <한겨레>  한창 공개 중인 <30조 성산업 불패의 공범들>을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딥페이크 성착취가 한국을 태우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성폭력은 타인이 존엄을 갖춘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라는 의견을 접했는데요, 그런 모습을 가장 강렬하게 경험하는 곳이 성매매 업소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석유를 부은 듯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성착취란 불을 같이 지켜보고, 불을 끌 방법을 생각하기 위해 이 기획 보도를 소개합니다. <30조 성산업 불패의 공범들>의 좋은 점은 ‘건물주’에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언론이 기존 성산업을 보도할 때 주로 주목했던 판매자와 구매자 대신 다른 축에 주목했고, 성산업은 공간을 소유한 사람이 묵인하며 자라 왔다는 점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성착취 산업 또한 공간이 없으면 존속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 거부 한 번이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해바라기센터 옆에 성착취 공간이 운영되는 어이없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뉴스 보러 가기🔥 2. 인터뷰 : “그들의 울분과 절망…고스란히 옮기고 싶었다” ⓒ경향신문 "통역이란 원래 “오버하지 않고 정제된 감정으로 말만 옮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참사의 상처를 가까이서 접하다 보니 “유가족들이 뭔가를 표현하려고 해도 황망하고 언어를 상실한 상태라고 판단했다”며 “담담하게 내용만 전달할 게 아니라 울분, 분노, 절망까지도 고스란히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편향적인 통역사는 ‘명예 유가족’이 되었습니다. 화성 아리셀 참사 유가족의 통역을 맡고 있는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의 이야기입니다. 목이 메어 울음을 터뜨리는 유가족을 대신해, 정부를 향해 질타하고 유가족의 울분, 분노, 절망을 옮깁니다. “언어를 상실한 상태”에 놓인 유가족에게 필요한 건 정제된 감정으로 옮겨진 말이 아닐 거란 생각에서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편향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 사회와 언론이, 아리셀 참사에 편향적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는데요. 아리셀 참사 이후 일주일 뒤, 시청역에서 일어난 사고에 우리는 더 공감하고, 울분을 토하고, 분노하진 않았는지, ‘이주노동자’의 일이라는 생각에 아리셀 참사에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이주노동자를 가시화하겠다는 박 소장의 다짐이 어쩐지 더 결연하게 들리는 요즘입니다. 박 소장의 인터뷰는 지금껏 비가시화하며 일관했던 이주노동자 문제를 머지 않아 눈 앞에서 마주할 한국 사회에 꼭 불 붙어야 할 목소리 중 하나입니다. 뉴스 보러 가기🔥 3. 독립 언론 : 오송참사 첫 판결 "2023년 7월 15일 발생한 미호강 범람은 피고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지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2024. 5. 31. 전OO 현장소장에 대한 선고) ✍🏻 최윤정 기자, <코트워치> 이번 코너는 불 붙일 매체를 소개해 볼게요. 한 사건의 1심 재판부터 최종심까지 따라가는 독립언론, <코트워치>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의 모든 갈등과 과제가 사법부로 모이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모두 소장으로 제기되고 법대로 판단한 결과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요. 전에 소개드린 <자꾸 법원이 특종을 한다>(시사IN) 기사에도 이 문제점이 잘 드러나 있죠. 기소발, 최종 판결 기사는 넘쳐나지만 모순되게도 법정 공방 과정을 담은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독립언론 <코트워치>는 이 공백에 주목합니다. 올 5월에 나온 오송참사 최종 판결을 기억하시나요? 재판부는 ‘미호강 범람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못 박으며 책임자에게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했죠. 곧 공개될 코트워치의 프로젝트 <오송참사 첫 판결>은 최종 판결로 이어진 4개월 동안의 재판 과정을 담는다고 합니다. 미호강의 범람을 막지 못했던 ‘임시 제방의 높이’가 주요 쟁점이 된 재판 현장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기사를 쓰는 동안 사건에 머무르고 다시 새로운 뉴스를 찾아 떠나길 반복합니다. <코트워치>의 강점은 법정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건을 깊이 있게,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요. 법원발 특종이 강세한 언론 환경에서 <코트워치>가 만들어갈 변화가 기대됩니다. 뉴스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안녕하세요 독자님, 어떤 편지를 띄울지 고민하다 그간 제 머릿속을 장악한 단어를 풀어보려 해요. 바로 ‘딥페이크 성범죄’입니다. 사진 한 장이면 성착취물이 뚝딱 만들어지는 세상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 크게 분노했지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큼의 충격을 받진 않았습니다.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 22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에도 덤덤했어요. 전국에서 택시를 목격하는 수만큼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가해자와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한편으로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딥페이크 성범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오래된 문제의 또 다른 형태에 가까웠죠. 일전에는 N번방과 지인능욕방이, 웹하드 카르텔이 있었습니다. 방을 운영했던 가해자가 처벌받았을지 몰라도 성착취를 ‘놀이 문화’즘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뿌리 뽑지 못했습니다. 성착취물을 시청하고 소지해도 처벌받지 않기에 가해자들은 성착취물을 콘텐츠로 소비했죠. 심지어 돈으로 교환되는 수익구조가 만들어질 때까지 어떤 조치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무수한 실패가 모여 오늘의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왔습니다. 더해진 문제라면 기술을 빌려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한 피해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지인의 셀카를 저장해 성착취물을 만들고 학교, 지역, 직장 등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판매하는 과정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지난한 성착취의 계보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요? 당연한 얘기를 끊임없이 하는 게 힘들지만, 당장 반대할 수 있는 것은 반대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먼저 ‘조심하라’는 말은 듣지 않겠습니다. 피해 예방법으로 여성들에게 프로필 사진을 내리라 권유합니다. 낮에 귀가하고, 긴 바지를 입는다고 여성이 안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범죄를 여성의 조심성과 연결 짓는 이 말은 결국 여성의 일상을 옥죕니다. 딥페이크 범죄를 즉각 수사하고, 소지하고 공유한 가해자까지 처벌해 ‘놀이’가 아닌 ‘범죄’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는 게 먼저여야 합니다. 한편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기술 발전이 낳은 그림자로 규정하는 흐름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교육부가 디지털 규범 및 윤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해법을 제시했지만 오로지 기술 발전과 교육 간의 공백에서 출발한 문제는 아닙니다. 여성을 인격과 감정을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가능하게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일시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보다 “너네들 얼굴로는 성착취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교실 속 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부디 딥페이크 성범죄의 다음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폴라리스도 위 이슈를 추적하며 독자님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024. 09. 02.에디터 해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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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여자 좋아하세요?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1 언론을 향한 비관론이 횡행합니다. 언론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거나 ‘권력의 감시자'라고 불리던 시절은 끝났죠. 기자는 ‘기레기’로 격하된지 오래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함께 일하는 폴라리스 에디터 분들은 성실히 기사를 찾습니다. 좋은 기사를 만나면 신나서 단톡방에 공유해주고요. 저는 간간히 답신으로 펭수가 엉덩이를 흔드는 ‘흥 폭발’ 이모티콘을 보냅니다. 비관론에 안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제가 폴라리스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입니다. 이번 호 폴라리스는 총 네 편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BBC코리아 기사는 빛나는 취재원이, 3개월 간 바다를 누빈 한국일보 기사는 성실하고 집요한 취재가 눈에 띕니다. 한겨레21 칼럼은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면 좋을, 첨예한 문제를 다루고요.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획은 언론의 의제 설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기자 다섯 명으로 구성된 셜록은 기자상을 여러 번 탈 정도로 탐사-르포보도에 능하죠. 네 편의 기사를 읽은 후, 독자님들은 언론에 대한 희미한 희망을 찾게 되실까요? 비관론 속에서도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는 그 날까지, 폴라리스의 항해는 계속 됩니다! ⓒBBC News 코리아 #1. 영상: '휠체어 타고 바다 수영해요'...학생들이 만든 제주도 첫 무장애 해수욕장 “저희가 직접 해보니깐 더 알겠는 거예요. 저희보다 더 영향력 있으신 어른들이 해낼 수 있었던 일인데, 그럼 더 빨리 실행이 됐을 수 있는데 왜 안 하셨을까. 저희가 피땀 눈물 흘려가며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저희 사례 참고하셔서 많이들 해주세요. ✍🏻 기획 이선욱, 영상 최유진 <BBC News 코리아> “하나, 둘, 셋” 하고 외치자 수중 휠체어가 미는 힘을 받아 데굴데굴 모래 위를 달립니다. 물에 첨벙 들어가더니 금새 안정적으로 둥둥 뜹니다. 물속에서 뜰 수 있는 수중 휠체어는 방향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고, 파도를 느끼며 떠다닐 수도 있습니다. 교통약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표선고등학교의 인권 동아리 ‘이끼’ 부원들이 기획한 프로젝트입니다. 당초 해수욕장 장애인주차구역 증설로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장애친화적이지 않은 해수욕장 환경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전환됐습니다. 모래사장에서 이동이 가능한 휠체어를 발견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그 휠체어를 처음 봤을 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라고 학생들은 말했습니다. 지원금을 받아 수중 휠체어 2대와 매트를 구입하고, 표선 해수욕장에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고작 수능 예제문제 풀고있어야 할 고3들이 나서서 하고 있는데 어른분들이 뭘 못하시겠어요” 라고 합니다. 고작이라고 하기엔 이들은 어른들도 하지 못한 제주도 조례도 개정하려고 합니다. 수중 휠체어 구입을 위해 공적 지원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죠. 경험하지 못한 불편함을 기꺼이 상상하고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영상 보러 가기🔥 ⓒ한국일보 유대근 기자 (조업 과정 중 그물에 딸려온 쓰레기의 사진을 찍어 포토 모자이크 기법으로 물고기를 형상화했다.) #2. 연재ㆍ기획 : 추적 - 지옥이 된 바다 "기자님, 아무 어촌이나 가서 어선을 하루만 태워달라고 해보세요. 어떤 배라도 상관없어요. 해양 쓰레기 문제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후세들은 완전히 망한 거예요."  ✍🏻 유대근 기자, <한국일보> 태평양 어딘가에 떠다닌다는 쓰레기 섬, 플라스틱 쓰레기에 찔려 죽은 해양 동물들.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압니다. 해양 쓰레기는 해수면 온도를 높이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죠. 하지만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쓰레기 섬과 바다거북의 죽음을 또 잊어버리고 맙니다.  한국일보는 비가시화된 해양 쓰레기 문제를 심층 취재 했습니다. 첫 번째로 주목한 건 뱃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뱃사람들에게 해양 쓰레기는 일상의 문제였습니다. 유대근 기자는 베테랑 어부들과 함께 배에 올라타 망망대해로 향해 보고 들은 것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풍선처럼 부푼 그물 자루에서 쏟아진 쓰레기 더미, 태연하게 쓰레기 틈에서 고기를 골라내는 외국인 선원, 폐그물로 가득 채워진 200L 포대….  사실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어부들이 바다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지점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음 챕터인 ‘늙은 어부의 고백’은 멸종위기종 몽크물범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한중일 어부를 추적했습니다. 결론은 해양 쓰레기 문제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딱 잘라 나눌 수 없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바다에 떠다니는 폐기물은 어민만 위협하지 않습니다. 어선이나 여객선에 걸려 배가 고장나면 대형 인명피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이 머지 않았습니다. 기사 보러 가기🔥 ⓒ에스투(S2)엔터테인먼트 #3. 비평ㆍ칼럼 : 섹시한 여자는 잘못이 없다 "이성애가 여성주의에 반하는 것 또한 아니다. 여성이 이성에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고자 하는 욕망에 솔직하려는 노력은 분명 또 다른 여성주의적인 고민이다. 이성애자 여성이 남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것 또한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이성애 여성의 중요한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연혜원 ‘퀴어돌로지’ 공저자·사회학 연구자, <한겨레21> 예쁜 여자를 좋아하세요? 섹시한 여자, 귀여운 여자, 청순한 여자. 매력있는 여성에게 붙는 키워드는 외모와 상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의 미와 성은 페미니즘에서 아주 복합적인 논의 대상입니다. 메일 게이즈, 코르셋 담론은 여성의 미와 성이 남성의 시선 하에 구성되어 착취되는 문제를 부각합니다. 미디어는 성상품화 등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대표적인 수단입니다. 뒤틀린 여성의 미와 성은 나이, 지위, 직업을 막론하고 많은 여성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외모 강박과 식이장애는 물론, 운동선수의 활동성 강화 대신 신체부위를 부각하는 유니폼과 같이 왜곡된 성과 미는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장애물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여성의 미와 성은 단순한 억압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성범죄와 성상품화 등, 욕망이 늘 여성에게 불쾌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죠. 여성에게는 불필요하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자유도 있지만, 욕망되고 싶은 자유도 있습니다. 또 욕망되는 여성성은 이성애자 남성만의 것이 아니죠. 섹시한 여성은 여성, 그리고 또다른 존재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외모와 신체의 여성들은 욕망의 대상에서조차 비켜간 무성적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조롱받기도 하죠. 그런 여성들이 스스로를 성적 존재로 어필하는 전복의 행동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연일 강력한 젠더폭력 사건이 이어지고, 젠더 감수성 향상보단 여성혐오의 강화를 지켜보게 됩니다. 여성으로 존재함 자체가 위험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많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성적인 여성이 되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퀴어돌로지』 저자 연혜원 씨는 잠시 숨을 돌리기를 권합니다. 비판의 화살이 남성에게 욕망되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다른 바람직한 성 수행 방식의 고정틀을 만드는 일입니다. 남성의 착취적인 시각으로 구성된 성을 답습하는 것도 문제지만, 욕망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금기시해서도 안 됩니다. 성과 미는 그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비판과 행동의 방향은 여성을 착취하는 사람들과 구조에게 향해야죠. 지치고 분한 시간이지만, 투쟁의 방향은 항상 점검되어야 합니다. 기사 보러 가기🔥 ⓒ셜록 #4. 독립언론/인터뷰 : 반도체, 말기암, 불승인… 나는 홀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그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문서로도 남아 있지 않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문제가 있던 곳이라도 ‘문제 없는 작업장’이 될 수 있잖아요. ✍🏻 김연정 기자, <셜록>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개가 사람을 문 건 사고다. 사람이 개를 문 건 사건이다. 언론은 사건을 다룬다.” 언론 보도는 ‘비일상적 사건’을 다룹니다. 뉴스의 조건은 새로운 것이니까요. 뉴스의 조건을 곱씹을 때면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비일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언론은 무엇을 보도를 해야 할까?’ 일터가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것. 유방암에 걸리고 파킨슨병에 걸리는 것. 그렇게 누군가가 죽고, 죽음 이후에도 기업의 책임 인정과 보상은 없는 것. 모두 ‘사건’으로 여겨져야 마땅한 ‘비일상’입니다. 동시에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린, 일상이 된 비일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라서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획은 귀합니다. 산재 피해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다시 ‘사건’으로 공론화하고, 구조적 문제까지 지적하거든요. 한국은 산재 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평균 214일이 걸립니다. 산재 인정 범위도 무척 협소하고요. 기사에 나오는 최 씨는 4년이 걸려 불승인 판정이 나왔죠. 이의제기 후 심사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뒤 결과를 받아보기 전 사망한 노동자는 최근 5년 간 111명에 달한다고 해요. 기사는 말합니다. “유해물질 가득한 연구실에서 그녀를 지켜 줄 ‘우산’이 있었다면 최씨의 삶은 지금과 달라졌을까.” 이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일터에는 그녀를 지켜줄 우산이 없었으니, 우리 사회라도 그녀를 지켜줄 우산이 되어야 한다고. 가랑비에 옷 젖듯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는 시대입니다. 작은 우산을 건네는 마음으로, 폴라리스 독자님들께 기사를 건넵니다. 기사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안녕하세요, 비평/칼럼을 맡은 에디터 ‘푸릇’입니다. 이번 호 에디터레터에서는 젠더 관련해서 기사 하나를 더 소개하려 합니다.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씨가 성노동자에 대해 쓴 글입니다. 현재 여성들 사이에서는 성노동자들*에 대한 강렬한 비난 여론이 형성돼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아프리카 BJ 과즙세연 씨가 있었는데요. 그녀는 선정적인 방송을 진행하며 수익을 얻는 ‘벗방’ BJ입니다. 이른바 ‘개저씨’의 표상이 된 하이브 방시혁 의장과 베벌리 힐스에서 목격된 후 SNS상에는 그녀의 방송클립이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과즙세연 씨가 출연한 넷플릭스 예능 ‘더 인플루언서’가 전파를 타며 성노동자들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 불붙었습니다. 과즙세연 씨를 비롯해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조회수를 위해 신체를 부각한 사진을 올리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여성 시청자들은 이들을 비판하며 메이크업 아티스트 ‘리사배’, 틱톡커 ‘케지민’ 등의 크리에이터들을 연호했습니다. '열심히, 정당한 방법으로 일하는 여성'들을요. 이처럼 현재 많은 여성들에게 성노동자의 이미지란 ‘남성에게 눈이 멀어 여성운동의 장애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적’인 듯 합니다. 여성들이 분노할 사건들이 많긴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밴드 그룹 QWER에서 활동하는 쵸단 씨도, BJ 시절 방송에서 성폭행 교수 퇴출운동을 한 모교 학우들을 모욕한 것이 드러나 비판받았죠. 여성들이 그들에게 이렇게 화가 난 이유도 이해가 가고, 저 역시 BJ들의 언행에 아찔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가장 전면에서 돌을 맞아야 하는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노동자들보다 먼저 성산업이 있었고, 폭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왜곡된 이미지에 대한 수요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성산업의 활발한 플레이어처럼 보일지라도, 자본주의와 여성혐오가 결탁한 성산업이 근본이자 선행한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착취의 문제도요. 디지털 성노동자들로 운을 뗐으니, 엑셀방의 사례를 들자면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은 포주 방송인입니다. 성매수자들의 후원 금액 순위가 엑셀에 고스란히 표시되는 시스템에서 성노동자들은 자극적으로 경쟁하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퇴출되지 않고 살아남아 계속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요. 성노동자들은 연대할 수 없는 존재일까요? 올해 초 파주 용주골의 여성 성노동자들은 ‘여성친화도시를 만들겠다’는 미명 하에 하루아침에 살던 곳에서 쫓겨났습니다. 시의 제대로 된 안내도 없었고,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녀들에게 넉넉한 지원도 없었습니다. 취약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성노동뿐이던 그녀들에게 이러한 조처는 다시 성노동의 굴레에 빠지게 하는 짓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성노동자들에 대한 어떤 이해도 대책도 수립하지 않고 그저 없어져야 할 존재로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비판도 하지말자는 게 아닙니다. 가장 전면에서 돌을 맞아야 하는 것이 성노동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비판의 대상은 성산업을 유지시키는 포주와 신용구조, 매수자여야 합니다. 여성들의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불법촬영과 딥페이크 범죄 및 모든 젠더폭력 가해자들과 공모자들, 나몰라라하고 있는 경찰, 검찰, 국가. 피해자들을 공동체에서 내모는 방조자들.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조롱으로 일관하는 왜곡된 성인식을 가진 남성들이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에 쉬운 비판을 선택해선 안 됩니다. 페미니스트들은 근간을 흔드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의 비판과 행동은 더욱 집요하고 심도 있어야 합니다. *성노동자: 에디터는 이 글에서 ‘성노동자’라는 용어를 택했습니다. ‘매춘’이 폭력인지 노동인지는 여성주의의 중요한 토론 주제 중 하나입니다. 에디터는 ‘성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피해자, 계몽의 대상으로 보기보단 이들을 노동하는 주체요, 노동 과정에서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부각하고자 했습니다. 2024. 8. 26. 에디터 푸릇🌿 드림 만든 사람들: 모래🏖️, 푸릇🌿, 산호🐠, 만쥬🌰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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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국가 정상영업합니다 이민자 대환영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2 지난 2월 2일, 국회에서 법안 하나가 발의됐습니다. 이름은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민 정책을 총괄할 부처로 출입국‧이민관리청을 만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법안은 여권 핵심 인사가 추진 중이고, 또 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어서 중요한 법안입니다. 외국인 이주자와 어울려 살아가는 한국 사회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거든요. 이번 호 폴라리스는 이민청과 이민 정책에 주목했습니다. 이민청을 제안한 배경, 정부의 이민 정책이 품고 있는 두 가지 구조적 결함, 그리고 이주자와 공존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아쉽게도 이민청을 만들게 된 배경과 이주자의 현실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번 호가 더 나은 해결책을 상상하는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 지금껏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하지만 다가오고 있던 오래된 미래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우린 노동자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왔다.” (”Wir riefen Arbeitskräfte, und es kamen Menschen.”) 스위스의 작가 막스 프리슈(Max Frisch, 1911~1991), 이탈리아인 이주 노동자의 삶을 다룬 책에 서문을 써 주며 #1 저출생과 지방 소멸, 환장의 콜라보 ‘출입국‧이민관리청’, 줄여서 이민청은 세워지게 된다면 앞으로 출입국과 국적, 이민 관련 업무와 정책을 전담하게 될 정부조직입니다. 지금까지는 출입국과 법무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여러 부처가 이민 정책을 나눠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능을 이민청 아래 한데 모으겠다는 겁니다. 이민청 설립에 불을 붙인 사람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한 위원장은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이민청 준비를 지시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해 이민청 제안 이유와 목표를 밝혔습니다. "이민 정책은 할 거냐 말 거냐 고민할 단계를 지났고, 안 하면 인구재앙으로 인한 국가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필요한 외국인만 정교히 판단해 예측 가능성 있게 받아들이고, 불법 체류자를 더 강력히 단속하는 등 정부가 관리·통제해서 '그립'을 더 강하게 잡겠다.” 이민청이 제안된 배경은 인구 감소와 지역 불균형입니다. 합계출산율이 바닥이 없는 듯 추락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현실을 모르는 분은 드물 겁니다. 괜찮은 일자리와 인프라가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특히 젊은) 인구가 비수도권 산업 현장과 대학 캠퍼스에서 사라졌습니다. 노동자와 학생의 빈자리를 바로 이주자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낮은 처우로 숙련공이 계속 유출되며 인력 수급난에 빠진 조선업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지난해 신규 채용한 노동자의 86%가 외국인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학부생 99%가 외국인이었던 지방 대학도 있었습니다. 정작 수도권으로 떠난 젊은 인구는 긴 노동, 성차별 등으로 출산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해 저희가 발행한 레터에서 더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정부는 줄어드는 출생자 또한 이주자를 활용해 보완하려 합니다. 지난해에는 이민청 제안과 더불어 외국인 가사노동자 확대, 외국인 유학생 정착 유도 등의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이주자와 같이 사는 미래를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은 이주자를 절실히 원합니다. 반대로 이주자에게 한국은 매력 있는 나라일까요? 이민은 태어나 자란 곳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삶을 꾸리고자 감행하는 행동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제법 그럴 것도 같습니다. 이민자 출신인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재를 모셔오겠다고 여러 유인책을 발표했는데 질문은 이거예요. 그 사람들이 와요? 63개국 고급 인력을 대상으로 아시아 11개국 중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를 조사한 2017년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끝에서 1·2위를 다툽니다.” (2024년 2월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이 의원의 인터뷰는 이주자의 입장에서 ‘한국으로의 이민’에 대한 여러 지점을 다루었습니다. 깊이 읽어 볼 기사로 이 의원의 인터뷰를 제안해 드립니다. 이 의원은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는데요, 다음 글에서 짚어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 ⓒvectorjuice #2 “당신은 인간이 아닌 소모품입니다” 한국 이민 정책의 핵심은 외국인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노동력’으로 취급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소개한 인터뷰에서, 이자스민 의원은 외국인 노동자가 “한 번 쓰고 버리는 화장지처럼” 여겨진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런 문제가 집약된 게 내국인 직원을 구하지 못한 사업장에 외국인 노동자를 제공하는 고용허가제(E-9)입니다.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부터 함께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그 여파를 살펴볼까요? 우선 고용허가제는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합니다. 사용자가 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임금체불, 폭행 등 부당한 처우를 노동자가 입증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어요. 그러나 언어와 제도에 서투른 외국인 노동자가 부당함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고요.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사업장 변경 금지는 이주 노동자의 협상력을 박탈하고, 자의 사직하면 추방된다는 위협을 통해 노동자를 사업주에게 극단적으로 종속시킨다’고 지적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용허가제는 재입국특례 신청권도 사업주에게만 부여합니다. 재입국특례는 4년 10개월 근무 후 본국에 갔다 다시 돌아와 근무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인데요. 사업주가 고용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비자가 연장되지 않기에,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주의 의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죠. E-9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가족 결합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외교, 공무, 행정, 학업 등 대부분의 외국인 체류자 가족에게는 동반(F-3) 자격이 부여되는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비숙련 노동자의 가족은 제외되어 있어요. 이처럼 고용허가제는 직업 선택의 자유, 가족결합권 등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 기울어진 권력 관계를 제도화합니다. 위계관계만 있을 뿐 업무 환경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허점이 많죠. 고용허가제를 활용하는 사업장이 주로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라는 점은 문제를 심화하고요. 이러한 제도는 결국 열악한 거주 환경, 위험한 노동 환경, 저임금, 임금체불 등 문제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2020년 고용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70% 가량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쓰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전체 근로자 중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은 3.4%에 불과하지만, 산재 사망 사고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2.3%에 달했죠. 2017년에는 자동차부품회사에서 일하던 네팔 청년이 사업장 변경 제한에 비관해 자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유서에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고용허가제도가 외국인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어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은 대게 부고의 형식으로 드러납니다. 아래 기사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부고와 함께 구조적 문제를 잘 분석한 기사들이에요. 마음이 쓰이는 독자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1️⃣ 만리타향에서 죽은 남편, 사과도 재발 방지책도 없다2️⃣ 속헹이 떠난 비닐하우스에 남은 동료들3️⃣ 개돼지만도 못한 죽음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등록 이주자’,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가 되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의 미등록 이주자는 43만명에 달하는데요. 지난해 정부가 늘리겠다고 발표한 고용허가제 입국 인력 16만5천 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노동계는 미등록 이주자를 ‘양산’하는 고용허가제를 개편하지 않으면 입국 인력을 늘려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사업장 변경 제한에 더해 ‘지역 제한’까지 추가했고요. “당신은 인간이 아닌 소모품”이라고 말하는 국가가, 이민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글 보러 가기 #3 ‘이주’ ‘여성’ ‘돌봄노동자’라면 한국이 좋겠어? 이번엔 이주 문제를 인구, 재생산, 돌봄 문제와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물론 여성들의 이야기를 할 겁니다. 이주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공장, 건설 현장, 농촌에서 일하는 개발도상국의 남성노동자? 여성 이주자들 또한 결혼과 돌봄 노동으로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해왔습니다. 1️⃣ 이주 여성이여, 국민의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라 결혼 이민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었고, 특히 2000년대 들어 농촌 지역의 인구유출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결혼 정책으로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이주해왔죠. 2022년 출생아 수의 절반이 다문화 가정 출생아일정도로 이주여성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재생산 주체입니다. 허나 한국 사회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정, 지역사회 고립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40% 이상의 여성이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도망을 간다’는 이유로 한국어 교육을 방해받거나 외출 제한, 신분증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제결혼 가정의 남편과 아내의 나이 차이는 10세 이상이 평균이고, 매매혼과 다름없는 제도란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죠. 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의 체류자격 유지를 위한 신분 증명을 해 줄 주변인은 남편이 거의 유일합니다. 가정 내에서 피해를 입더라도 체류가 걸려 있고, 언어적 한계와 지역 사회의 고립으로 인해 귀책 증명도 어려워 고스란히 피해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 놓치고 있는 사실, 이주여성은 일한다 이주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한국 사회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인구이기도 합니다. 결혼이민비자(F-6)로 한국에 들어온 여성들도 절반 가까이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농어촌에서는 무급으로 가족사업에 참여하고 있죠. 이주여성의 절반이 200만원 이하의 저임금을 받고, 고용 및 산재보험 가입률도 낮습니다. 정부 운영 센터에서도 선주민 노동자들에 비해 호봉, 수당, 휴가 등 노동권의 여러 측면에서 차별을 겪고 있죠. 이주여성들과 가장 긴밀히 연결된 직종이 있다면, 바로 돌봄노동입니다. ‘이주의 여성화’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코로나19 이후로 선진국에 간호사, 간병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이주해 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전세계적 추세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주의 여성화 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미 국내 간병노동자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입니다. 돌봄노동은 강도는 높지만 저임금에, 사회적 인식도 낮고, 스트레스와 성희롱 등 여건도 취약한 기피 노동의 한 종류입니다. 여성이 가정에서 당연히 할 일이라 생각되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하고요. 때문에 이주여성들에게 전가됩니다. 최근에도 이주여성에게 돌봄노동을 외주화하는 것에 대해 큰 이슈가 불거졌죠. 3️⃣ 돌봄 그까이꺼 다른 여자한테 싼값에 시키죠. 바로 올 6월 서울시 시범 예정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서비스’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소득수준의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월 100만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돌봄노동자의 공급이 시급한 건 사실입니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의하면 돌봄노동자 수요에 비해 공급은 30%에 불과합니다.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비판에 부딪치는 이유는 문제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 성차별, 가사로 대표되는 돌봄노동의 불평등한 분담, 돌봄노동의 평가 절하,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등을 해결하는 노력은 부족합니다. 여성의 돌봄노동을 더 취약한 이주 여성에게 외주화하는 데 그치는 거죠. 글을 읽으신 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주여성이라면, 한국으로 이주하고 싶으실까요? 한국 여성이라면, 한국에서 계속 아이를 낳고 일하시고 싶을까요? 어쩌면 ‘한국배제의 여성화’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글 보러 가기 ⓒmacrovector #4 결국 정치의 문제,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실제로 이민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 당국의 모습을 보면, 이 사회가 지금보다 더 많은 이주민을 맞을 준비가 됐나 의문이 듭니다. 이주는 말 그대로 한 인간이 새로운 정치 공동체에 속하는 것인데, 한국이 과연 ‘다름’을 마주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래서 박이대승 칼럼니스트는 이민이 경제적 문제이기에 앞서 정치와 사회의 문제라고 정의합니다. 이민 확대란, 한 정치 공동체의 ‘동료 회원’을 모집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죠. 마치 멤버가 부족해져서, 혹은 공동체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새 회원을 모집하는 것 처럼요. 다만, 글이 이주민을 ‘노동력’이 아닌 ‘동료’라고 초점을 두는 데에는, 어찌됐건 정치 공동체란 시민들이 평등하게 공동체를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 정치 공동체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은 이 공동체 회원 모집에 조건을 걸어왔습니다. ‘동등하지 않을 것.’ 앞서 말씀드린 이주민 차별 역사가 이를 방증하기도 하죠. 중요한 것은, 이 조건이 이민 정책의 시작인 ‘차별 금지’와 상충된다는 것입니다. 이 ‘차별금지’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애초에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 없거니와, 장기적으로 큰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하기도 합니다. 차별을 제재하지 않으면 사회적 그룹 사이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비단 이주민 문제 뿐만 아닐테죠. 18년 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이를 역력히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요? 여전히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만연합니다. 다만, 낯선 동료의 등장은 공동체에게 도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2022년 2월, 울산으로 이주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초등학교 입학 소식에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자 고 노옥희 울산교육청 교육감이 한 말입니다. 이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구축해야 할까, 한국에서도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할까 등 의문이 드신다면 시사인의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울산 정착 1주년’ 기사 정독을 권해드립니다. 기사는 울산의 이야기가 “시작은 외지인이지만, 그 끝은 한국인들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현대중공업부터 교육청, 구청, 경찰서, 다문화센터까지 긴밀한 협조 체계가 만들어진 이례적인 사례이기도 한데요. 기사는 다가올 미래를 먼저 경험한 울산의 이야기, 이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 맺을 수 있었는지를 조명합니다. 🧭글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1.  폴라리스 레터를 읽으시는 독자님들.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잘 지내냐”는 말은 인삿말로 자주 쓰이죠.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잘 지내지” 답하곤 하지만, 사실 정말 잘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정치에는 희망이 없는 듯하고, 취업은 안 되고, 불안은 횡횡하니까요. “그럼, 잘 지내지.” 이 말을 달고 사는 저도 하루를 씹어 삼키는 일이 버겁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굴러 떨어지고 싶은 모든 계단을 성실히 밟아 올라요.  지치고 피곤할 때 저는 두 가지 일이 하고 싶어지는데요.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어집니다. 전자가 ‘너도 나처럼 힘들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후자는 ‘나는 고통 속의 너보단 낫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이렇게 부박한 마음은 대게 저보다 약한 존재에게 향합니다. 저항하지 못하니까. 폭력은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법이잖아요. 다들 아시지요? 사장은 아버지에게 소리치고, 아버지는 밥상을 엎고, 어머니는 아이를 발가벗겨 마당에 내쫓고, 아이는 개를 때렸다. 2.  힘든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라 그런 걸까요. 폭력과 배제, 혐오로 안위를 찾으려는 시도들도 만연한 듯해요. 이슬람 사원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사장 앞에 돼지머리를 놓았고, 몇 년 전에는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기도 했죠. 이민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말하는 한국에서 이주자 혐오는 일상입니다. 실제로 2022년 홍성군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이 48.8%에 달했어요.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면 정말 우리 삶은 조금 더 괜찮아질까요? 당연히, 더 괜찮아지지 않습니다. 소수자와 약자에게서 고통이 시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찾으려면 우리는 폭력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거에요. 개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사장으로. 3.  세계화는 대규모의 이주민을 양산했습니다. 이주자 증가로 사회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사실 이주자는 사회의 기성 권력관계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이주 여성은 출산, 양육, 가사 등 재생산 노동에 투입되는데, 이러한 이주를 통해 젠더적 위계구조는 유지, 보수되죠. 마찬가지로 외국인 노동자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하청업체에 주로 배치됩니다. 양극화된 노동 시장의 최하층에 밀어 넣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계화 시대에 계급적 위계구조는 강화되고요.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자국 여성들의 경제 활동 진출과 청년들의 중소기업 비선호 속에서 비어버린 위계구조의 하층에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자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주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젠더, 계급 위계구조 위에 서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죽은 산업 현장은 한국인 노동자가 죽은 바로 그 곳이기도 하고, 여성 이주자가 투입된 돌봄 노동의 자리에는 여전히 저소득 비정규직 여성들이 남아있어요. 특정 형태의 노동과 성별을 저평가하고 차별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위계구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또 다른 타자를 양산하는 게 해법이 될 순 없겠죠. 개를 때리고 아이를 발가벗겨 내쫓아도-더 불행한 타자를 만들어도 인생이 살 만해지지 않듯이 말입니다.  4.  멕시코 치아피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은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저는 힘들 때 상처 입히거나 베풀고 싶어진다고 적었습니다. 원주민 여성의 말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것’ 뿐만 아니라 ‘베푸는 것’ 또한 해답이 아닌 이유를 보여주는 듯해요. 우리는 구조 위에 연루되어 있고, 베풂은 찰나의 흡족함을 주겠지만 우리가 연루된 세상은 바꾸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니 다시금 저와 같은 사회-공동체-권력구조 위에 사는, 이주민을 포함한 여러분의 안위를 물어봅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에디터 만쥬 🌰 드림 만든 사람들: 보라 🍇, 만쥬 🌰, 푸릇 🌿, 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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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앗! 한국 주식, 미국보다 싸다 🧾💸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8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는 속담이 있는 나라에서 가장 뼈아픈 할인이 있습니다.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입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비슷한 경제력과 기업들이 있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가격이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의미해요. 소위 동학개미들이 땀 흘려 번 돈을 주식에 투자해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죠. 오늘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몸을 던져 한국 주식 시장의 불공정을 파헤칩니다. 대주주는 주식 가치가 떨어져도 돈을 벌고, 소액주주는 주식 가치가 떨어지면 돈을 잃는 구조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짚어볼게요. 최근 이슈인 ‘코스피 폭락’, ‘상속세’도 함께 다루니 관련 의견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재벌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은 한국의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보유 주식의 주가를 싸게 유지하는 데 만족한다. 실제 부를 감추기 위해 미로처럼 얽힌 지주회사를 상장해 전체 주식 시장을 희석시키고 있다" - 미국 언론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 슐리 렌 #1 “삼성전자 주가는 다른 나라보다 항상 쌌다” 우선 우리가 왜 하필 지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알아야 하는지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지난 5일 월요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하루 하락 폭을 기록했습니다. ‘블랙 먼데이’는 일본은행의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위한 깜짝 금리 인하로 촉발되었습니다. 미국 주가가 폭락했고,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 거죠. 그런데 한국 하락 폭이 훨씬 더 컸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죠. 올해 초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외국 자본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 주식을 샀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미적댔고, 외국 투자자들이 실망하던 차에 미 증시가 휘청이니 외인이 대거 팔고 나가면서 5일 주가가 폭락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럼 한국 주식은 얼마나 다른 나라보다 저평가되었을까요? 주식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척도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씁니다. 높을수록 주식이 고평가됐다는 뜻이고, 낮을수록 저평가되었다는 뜻입니다. 한국 주식은 PBR로 봤을 때 지금 당장, 또 예전부터 오랫동안 저평가됐습니다. 올해 1월 말 기준 코스피의 PBR은 0.9로 OECD 38개 국가 증시 중에서 뒤에서 2등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45개국 증시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평균 1.2를 기록하며 선진국, 신흥국, 아시아태평양보다 적게는 약 30%, 많게는 약 50% 낮았습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 Book-value Ratio): 시가총액 ÷ 순자산. 시가총액, 즉 모든 상장주식과 주가를 곱한 값을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 즉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으로 나눈 수치. 순자산은 기업이 축적해 놓은 여윳돈이어서 많으면 많을수록 기업이 건실하다는 뜻인데, 시가총액이 그런 순자산보다 많다면 주식이 고평가된다는 뜻이겠죠. 저평가는 왜 문제일까요? 기업, 자본, 국내 개인투자자 세 주체의 시각에서 보겠습니다. 기업은 자금 조달 역량에서 다른 나라 기업보다 밀리는 문제가 생깁니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이 시장에 주식을 내놓는 방법이니까요. 자본, 특히 외국 자본은 저평가가 지속되어 큰 이익을 거둘 수 없는 한국 시장에 투자하기를 꺼리게 됩니다. 똑같은 논리로, 국내 개인투자자 또한 한국을 포기하고 해외 주식 시장을 선택하게 됩니다. 실제로 개인투자자의 해외 직접 투자는 약 10년 동안 20배나 늘어났습니다. 셋이 모이면, 한국 기업과 주식 시장은 돈이 모이지 않아 침체에 갇힐 수 있습니다. 어쩌다 한국 주식은 저평가되었을까요? 기사와 보고서 모두 ‘주주환원’을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주주환원이란 기업이 거둔 이익을 주주를 위해 쓰는 행동입니다. 예컨대 수익을 주주에게 나눠줄 수도 있고(배당), 상장된 주식을 산 다음 폐기해서 시장에 남은 주식 수를 줄이고 가치를 높여줄 수도 있습니다(자사주 매입). 배당금을 더 주면 주주가 투자하려는 의지가 높아질 텐데 안 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기업이 나서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쌓아둔 돈을 성장을 위해 재투자하지도(ROE, 자기자본이익률) 않습니다. 그러니 주가가 오르지도, 주식을 사고 싶어지지도 않는 겁니다. 읽을 기사로는 <중앙일보>에서 올해 초 낸 기획 기사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상황과 배경, 원인을 간단하면서도 폭넓게 설명한 기사입니다. 🧭글 보러가기 ⓒpixabay #2 재벌, 재벌, 재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소액주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대주주의 그룹 사유화, 한국 증시 저평가의 고질적인 원인입니다. 전문가들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지속하는 이유로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를 짚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대기업 총수는 경영권 강화를 위해 번 돈을 곳간에 쌓아두기만 합니다(낮은 ROE). 그 돈으로 대기업 총수가 가진 주가는 높게, 인수하려는 계열사의 주가는 낮게 평가해 합병합니다. 인수하려는 계열사의 소액주주들은 당연히 피해를 봅니다. 총수의 편의에 따라 한 회사의 가치가 이리저리 휘둘리는 셈이죠. 약 10년 넘게 언론과 시민사회가 지적하고 있지만, 해결이 안 되는 모양새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계열사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과정에서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두산밥캣은 연 매출 10조 원이 넘는 두산그룹 계열사의 알짜 기업입니다. 이를 두산에너빌러티에서 때어나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두산로보틱스로 합친다는 것이죠. 총수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고 ‘밥캣’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전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그룹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인수합병 문제가 있었습니다. 2015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삼성그룹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부당 합병을(원래는 1:1.0 혹은 1:1.3, 실제 합병 비율은 1: 0.35로 책정) 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도 벌어졌습니다. 시민단체와 행동주의 펀드는 합병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동의하며 인수합병이 성사됐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부정 청탁을 한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고,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이뤄진 이유는 적법한 과정(상속세)보다 ‘싸게’ 먹혔기 때문이죠. 국민연금은 이 과정에서 2천451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같은 해 이뤄진 SK C&C와 SK의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최태원 회장의 지분이 높은 SK C&C의 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왜 재벌의 편법 증여와 이를 위한 ‘꼼수’ 인수·합병이 반복될까요? 전문 경영인 체제가 아닌 가족 경영인 체제에서 상속세를 회피하고자 함이 아닐까요? 다음 글에서는 상속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관관계를 살펴봅니다. “윤석열 정부의 뺨을 때렸다”고 표현되는 두산밥캣 사례를 비롯해 대기업의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된 사례를 <주간경향>에서 다뤘습니다. 🧭글 보러가기 #3 이게 다 상속세 때문이라고요? 요즘 뜨거운 논쟁거리인 ‘상속세율 인하’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되었습니다. 올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토론회에서도 대통령은 상속세법 개편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가치 제고,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상속세 개편을 포함해 법인세 세액 공제,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의 세법 개정안을 지난 7월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폴라리스가 다루고자 하는 건 ‘상속세 개편’입니다. 상속세 개편이 기업 가치 제고에 정말 도움이 될까요? 우선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는 측 논리 구조는 이렇습니다. 첫째, 기업이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세금 부담을 떨어트리고자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 둘째, 상속세를 감당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받기 등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런 부정행위가 반복될수록 기업이 저평가될 것이고, 따라서 상속세율을 인하하면 기업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는 소액 투자자에게도 긍정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낙수효과가 떠오르는 논리 구조네요. 그런데 OECD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상속세 인하 사이의 인과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상속세율을 OECD 평균인 30%로 인하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OECD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인과관계 등과 같은 별도 연구 없이 상속세율을 인하하면 국가의 재정적 어려움을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류덕현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상속증여세 인하로 18조 6천억 원 규모의 감세가 이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감세 정책을 폈던 이명박 정부도 5년 간의 감세 규모가 45조 8천억 원에 그쳤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3년간 시행된 세법 개정으로 총 감세 규모는 약 76조 원입니다. 인과관계가 증명된 적 없는 상속세 인하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려고 들기보다, 재정 문제 극복에 초점을 맞춘 정책도 필요해 보입니다. 🧭글 보러가기 ⓒpixabay #4 동학개미 지키는 확실한 방법 정부의 밸류업 프로젝트는 과녁을 벗어난 화살과 같아요. 법인세 감면, 배당 소득세 감면, 과세 특례 등 세법 개정안에 집중하면서 정작 핵심은 피해 갔죠.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된 원인은 ‘나쁜 기업 지배구조’입니다. 본질적인 해결책은 ‘모든 주주를 위한 결정을 하는 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무엇보다 일반주주와 지배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게 중요합니다. 경영진이 지배주주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도록 제재하고, 기업의 이익이 모든 주주에게 비례적으로 배분되도록 만드는 거죠.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볼게요. 먼저 이사회가 달라져야 합니다. 독립된 이사회가 투명하게 운영될 때 소액주주의 권한이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껏 대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휘두르는 동안 이를 견제하지 못한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쳤죠. 소액주주의 이익이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어요. 특히 소액주주는 결집이 어렵고 전문성이 부족한 만큼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증시 되살리기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해요.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독립된 이사회가 PBR 저평가 이유를 분석하고, 구체적인 개선책과 현황을 주주들에게 공유하며, ROE(자기자본이익률) 개선계획을 1년 단위로 투명하게 업데이트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사회의 전문성과 감시 의무가 강화되면 총수 일가가 지금처럼 과도하게 이익을 편취하는 게 어려워질 거예요. ‘상법 개정’이 지배구조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상법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까지 확대하는 겁니다.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로 한정돼 있어요. 이 때문에 이사회가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주주의 이익을 희생시켜도, 회사에만 손해가 없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죠.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해도, 불공정 합병을 일삼아도, 자사주 마법을 부려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입니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정준호 의원 개정안]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에 21대 국회에서 이용우ㆍ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이 대표 발의됐습니다. 정부·여당과 재계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지난 7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한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논의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반대는 여전히 거셉니다. 지분 10%를 가진 사람은 10% 이익, 지분 1%를 가진 사람은 1% 이익을 가져가자는 상식적인 제안이 왜 거부되는지 궁금하실 거예요. <한겨레> 기사가 이를 잘 정리했습니다. ‘재계가 반대하는 3가지 쟁점’을 읽고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파악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한국 증시 저평가, 알고 보니 경영진이 주식의 가치를 훔친 결과였습니다. 1400만 명에 이르는 국내 투자자들이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희생만 할 순 없죠. 기업 지배 구조 개선과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빠져나오는, 느리지만 가장 정확한 길입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코리아 디스카운트... 제겐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께는 이번 주 폴라리스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요즘 경제에 관심이 생겨 책을 읽고 있는데도, 경제나 투자가 여전히 남의 집 얘기 같아요. (상속세는 확실히 남의 집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정말이지 잘 바뀌지 않는데, 간혹 ‘주변’ 때문에 변하는 듯해요. 지난 달쯤인가, 한국거래소에 견학을 다녀왔어요. 말 한마디만 걸어도 쭈뼛대시던 젊은 강연자가 연단에서 투자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엄청나게 밝아지는 거예요. 노는 물 만난 사람처럼 한국거래소의 역사와 한국 주식시장의 흐름을 설명하시는데, 저런 애정과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하면 못 할 게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투자와 한국 주식 시장에 꽤 관심을 두고 있어요. 경제 공부를 하다 막힐 때는 주변에 전공하는 친구에게도 도움을 자주 받습니다. 내 평생 주식 같은 건 절대 안 할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최근에는 그 친구에게 지도 편달을 받아 ISA 계좌도 만들었어요. 친구가 사라는 주식 샀는데, 이대로만 하면 저도 투자 잘하게 되겠죠? 친구에게 관련 책을 소개해달라고 부탁도 했답니다. 아직 그 책들을 다 읽진 못했지만 사놓기만 해도 든든한 마음, 아시는 분들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 덕분에 생전 관심 없던 ‘경제’ 분야에도 눈이 틔워지는 경험, 요 며칠 저를 설레게 했던 일 중 하나인데요. 여러분에게 폴라리스가 그런 ‘주변’과 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폴라리스를 만나서 독자분들이 새로운 관심사를 갖게 된다거나, 전혀 몰랐던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하게 되는 모습을 가끔 상상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좋은 기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겨요. 폴라리스가 여러분에게 좋은 주변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이 긴 텍스트를 함께 호흡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답장하기’는 언제나 열려있어요! 2024. 08. 19. 에디터 반달🌙 드림 만든 사람들: 보라🍇, 선심🔆, 반달🌙, 해안🌊 지난 13일 공개한 <[경제] 꽁꽁 얼어붙은 세계 위를 반도체가 걸어다닙니다>에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신 '생생이', 'jay_kim', '익명의 너구리', '오늘은', '이연주', '도이' 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언제든지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 폴라리스가 다뤘으면 하는 주제 제안도 환영합니다!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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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꽁꽁 얼어붙은 세계 위를 반도체가 걸어다닙니다
요즘 테크, 경제 부문에서 반도체만큼 주목받는 주제가 있을까요? 또 제대로 논해보자면 반도체만큼 국제, 외교, 과학기술, 국내 산업 동향과 정책까지 모든 분야를 파고들어야 하는 주제도 없죠. 그래서 폴라리스가 눈이 번쩍번쩍해지는 광활한 반도체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엔비디아가 연 3세대 시장의 주요 반도체와 기업 핵심 요약 정리, 레이스 너머의 패권 전쟁, ‘반도체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상황까지. 이상 탐사 정보 브리핑이었습니다. 그럼 모두 준비 되셨나요? 3, 2, 1. 반도체로 딥다이브! "기술은 경쟁의 주도권을 결정하고, 혁신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칩워>, 크리스 밀러 #1 엔비디아, 왜 난리래? 요새 여기저기서 ‘엔비디아’란 이름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엔비디아가 장안의 화제인 이유는 이 기업의 주가가 4개월 만에 두 배 가량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AI 반도체가 있었죠. 현재 엔비디아는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요. AI와 반도체, 그리고 AI 반도체는 무엇이고 어떤 관계일까요? AI는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을 컴퓨터 과학으로 구현한 기술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2020년대 이후 발전한 생성형AI는 딥러닝으로 빅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을 뜻합니다. 비비의 밤양갱을 아이유가 부른 것처럼 만든다던가, 프롬프트에 명령을 입력하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등 현재 생성형AI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죠. 생성형AI 산업은 반도체 없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생성형AI가 학습할 빅 데이터를 저장하고, 비메모리 반도체는 생성형AI를 구현하기 위한 초고속 계산을 하기 때문이에요. 메모리 반도체는 저장 기능을 수행하는 반도체입니다.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강한 분야죠. 비메모리 반도체는 명령을 실행하는 반도체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제작 단계는 설계(팹리스)와 생산(파운드리), 검수(디자인하우스)로 나뉘어 있어요. 이중 우리가 AI반도체라고 부르는 것은 비메모리 반도체에 속합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요? AI 반도체는 아직 딱 정의되진 않았습니다. AI에 사용하는 반도체 모두(CPU, GPU, NPU)를 AI 반도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AI 맞춤형으로 제작된 반도체만(NPU) AI 반도체라고 하는 사람이 있죠. 엔비디아는 이중 현재 AI 데이터 센터 구축에 필요한 핵심적인 반도체인 ‘GPU’를 만듭니다. 이 GPU, 다른 기업도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왜 엔비디아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을까요? 엔비디아가 현재 AI 반도체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쿠다(CUDA, 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라는 소프트웨어 덕분입니다. ‘쿠다’는 엔비디아에서 무료로 배포한 AI 개발 플랫폼이예요. 약 10년 동안 ‘쿠다’를 기반으로 전 세계 AI 개발 생태계가 형성되었는데, 이 ‘쿠다’는 엔비디아의 GPU에서만 작동합니다. 이미 전 세계의 많은 개발자들이 이 ‘쿠다’라는 플랫폼에 익숙한 나머지 다른 GPU를 사용하기가 힘든 환경이 형성되었다고 해요. 생성형AI를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에 5천만 원까지 호가하는 엔비디아의 GPU를 울며 겨자먹기로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이에 여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독점 체제를 깨겠다고 나섰습니다. 인텔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인 ‘H100’의 대항마로 ‘가우디3’를 내놨습니다. 앞으로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요? 전 세계 반도체 역사와 이를 둘러싼 쟁점을 담은 책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감이 잡히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2 두 세계 이야기: TSMC와 삼성전자 엔비디아 주가가 4월 말인 지금은 고점에서 살짝 떨어졌죠. 하락장이 본격 시작한 날은 대만에서 25년 만에 가장 강한 지진이 났던 지난 4일이었습니다. 지진 때문에 TSMC가 공장 가동을 멈췄거든요. 지난 글에서 잠깐 언급됐던 TSMC, 대체 얼마나 중요한 기업이기에 그럴까요? TSMC는 여러 업체에서 설계한 비메모리 반도체를 대신 맡아서 생산해 주는 기업입니다. 엔비디아에서 설계(즉, 팹리스)한 AI 반도체를 대신 생산(파운드리)해주는 곳도 TSMC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TSMC가 갖춘 영향력은 상당히 센데요, 팹리스-파운드리 구조를 만든 기업이 TSMC거든요. 1980년대 말 탄생해 시장을 개척하며 ‘고객사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전략과 우수한 기술력으로 전 세계에서 고객을 모았죠. 그 결과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60%를 차지하는 기업이 됐습니다. 엔비디아가 AI 개발 플랫폼을 독점하면서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것처럼, TSMC도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반쯤 독점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기업이 된 거예요. 지진으로 TSMC 공장이 멈췄다는 소식에 엔비디아 주가가 요동친 건 지극히 당연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물량이 막혀 장사를 못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재밌게도 창업자 모리스 창은 창업한 뒤에도 몇 년간 지금 본업과 다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고려했다고 해요. 한 기업에서 초청받아 공장을 방문한 뒤, 그는 생각을 접고 파운드리 사업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당시 세계 1위였던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상당히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갓 시장에 뛰어든 TSMC가 따라잡기 어려웠습니다. 삼성전자는 기어이 세계 1위를 차지했고,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 됐습니다. 그런데 메모리 반도체의 위상이 예년만 못합니다. 비메모리 반도체가 AI와 함께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로나19로 활황을 맞았던 전자기기 시장이 가라앉는 과정에서 큰 손실을 봤거든요. 활황을 맞아 메모리를 많이 생산해 뒀는데,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재고를 떠안은 겁니다. 두 기업이 믿는 구석은 HBM, 고대역폭메모리라는 제품입니다. 원래 램 한 개가 들어갈 자리에 램을 몇 개씩 쌓아 올려서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제품입니다.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AI 반도체에 필요합니다. HBM을 아주 잘 만드는 회사가 두 기업입니다. SK하이닉스는 HBM이란 개념을 창조한 회사고요, 엔비디아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TSMC와 협력하기로 했어요. 삼성전자는 그런 SK하이닉스보다 HBM 기술 경쟁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만으로 미래를 그리기에 부족한 시대입니다. 비메모리와 파운드리에서 무언가 보여줘야만 해요. 다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외교입니다. 자, 잠시 세계를 무대로 한 권투 링으로 가볼까요? 깊이 읽어볼 기사로는 지난 2021년 매일경제에서 발행한 TSMC 관련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잘 설명해 읽을 만해요. 🧭글 보러가기 #4 한국은 어떡하나  이 밥그릇 싸움에서 한국은 과연 제 몫을 지킬 수 있을까요? 대외적으로 한국의 위치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효자 특산물’인 메모리 반도체의 입지는 좁아졌거든요. 전문가들도 지난 2년 새 메모리 중심인 국내 산업구조의 약점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평가하고요. 설상가상 믿었던 메모리 반도체의 수출액은 5년 사이 반토막이 났고, 현재 고공성장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한국은 3.3%의 낮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아니 그럼 기업은 뭐하고 있지?’ 의문이 드실텐데요. 기업들도 반도체 전선에 갇혀 엔비디아 독주를 용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쿠다 대항마 만들기, 자립 첨단 반도체 만들기, 틈새 국가로 진출해 독점적 지위 확보하기. 다양한 방법으로 저마다 경쟁력을 높이고 있죠. 그중 쟁점은 비메모리 분야, 특히 빅테크와 같은 대형 고객사의 수주를 따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능이 좋은 상품을 내놓고, 첨단 공정기술을 탑재해야 할 테지요.  ‘반도체 산업 터줏대감’인 삼성전자도 비장의 무기를 준비중입니다. 최첨단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인데요. 차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인 *GAA 공정(Gates All Around)을 3나노 반도체부터 먼저 적용하며 2나노 반도체부터 GAA 공정을 적용하는 TSMC를 견제했습니다. 수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목표죠. 또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표적인 AI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선두권을 두고 경쟁중이고요.  (*GAA 공정 =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전류가 흐르는 구조인데요.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주요 나라와 산업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형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해보이는 대목입니다. 이미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자급자족’ 첨단 반도체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에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팹 조성을 조건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9조 원을 받기도 했죠. 미국의 큰손, 대형 고객의 수주를 딸 수 있을지 혹은 남의 나라 좋은 일만 해주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한국도 나름 기업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정부는 최근 한국형 칩스법, 이른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경기 남부에 조성해 ‘메모리 파운드리’ 생산 중심지를 2040년까지 만들겠다 발표했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22조원을 투자하고, 정부는 세제 혜택과 전력, 용수 등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입니다. 더불어, 반도체 투자세액공제를 25%까지 확대하고 올해 반도체 지원 예산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렸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국가적 지원이 재벌 특혜, 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는 반면, 안보 경제가 달린 문제인 만큼 필연적이라는 의견도 있고요. 전문가의 빅픽쳐는 조금 다릅니다. 기업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R&D) 지원이라는 입장이죠. 예컨대, 기업들의 R&D 자금이나 시설 투자에 인센티브를 늘리면 그 자금이 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학과 연구기관까지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인데요. 다만, 반도체 관련 R&D 예산 삭감의 여파로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로 내년 정부 예산은 지난해 대비 크게 축소됐는데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연구 부문은 26% 감소율을 기록, 중소/중견 팹리스기업을 육성, 지원하는 예산 역시 200억원이나 감소했습니다. 쉽지 않은 싸움.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마주한 단기, 장기간 과제를 뚫을 돌파구가 요원해보입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칩워>를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흥미로웠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저자인 크리스 밀러가 현대 역사의 분기점이 된 군사력을 제2차 세계대전의 강철과 알루미늄, 냉전 시대 핵무기, 그리고 현재 미·중 패권 싸움의 ‘컴퓨터의 힘’(computing power)이라고 보는 점이었어요. 우리가 매일 끼고 자는 스마트폰부터 저 멀리서 날아가는 미사일까지, 반도체는 우리가 먹고살 거리부터 군사력까지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더군요. 반도체 산업이 중요하다는 건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데 레터를 준비하면서 여러 기사를 읽어보고, 책을 읽었을 때 어딘가 찜찜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삼성과 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은 주가, 즉 숫자로만 산업을 평가합니다. 실적을 까고 보니 예상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 예상보다 돈을 벌지 못했다는 식으로요. 좀 더 찾아보니, 이 거대하고 굳건해 보이는 산업의 이면에는 황폐하고 허약한 구조가 있었습니다. 먼저 질병 산재 문제입니다.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을 얻은 황유미 씨가 23살에 돌아가셨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후 반도체 노동자 인권 단체 반올림이 출범했고, 황유미 씨가 사망하고 10여 년이 지나서야 삼성전자는 중재 협약을 통해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사과와 보상,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여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은 일하다 죽고, 일하다 병에 걸려도 사회와 기업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구조는 반도체 산업뿐만이 아니라 첨단산업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다음으로 물 문제입니다. 반도체 공정에는 깨끗한 물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기업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의 양은 107만 톤에 달합니다. 첨단산업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반도체 수요는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른 물 사용량은 지금의 3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 가뭄과 폭우의 주기가 잦아져 점점 더 물을 저장하기 힘들어집니다. 지역에서는 변기 내릴 물도 없어 밖에서 볼일을 해결하거나 마실 물도 없다는데, 정부와 기업이 계획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근 팔당댐에서도 물을 공급할 수 없어 강원 화천댐의 물까지 끌어 쓸 계획이라고 합니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착취해 반도체 산업을 지속한다면 우리가 얻게 될 것은 무엇일까요? 어마어마한 경제적 수익과 모두가 두려워할 세계 최강의 군사력? 그러나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잘 살고 부강한 나라’를 얻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도시에서 칩 하나만 덩그러니 살아남는 미래가 되지 않길 바라며 레터를 마칩니다. 에디터 선심🔆 드림 만든 사람들: 선심🔆, 보라 🍇, 푸릇 🌿, 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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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뉴스 다시보자] 📰 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0 겉으로는 온전해 보였던 것이 톡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전조증상과 우려를 무시하는 동안 문제는 몸집을 키우고,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때가 많죠. 요즘 우리 사회엔 조금만 신경썼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문제들이 자꾸 나타납니다. 우리는 왜 빨리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요. 이번 주 불붙일 뉴스는 제도와 관리감독의 미비함이 드러난 ‘티메프 사태’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문제가 커지기 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를 소개합니다. 급식 노동자들이 참담한 환경의 조리실을 떠나며 학교 급식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국내 노동력을 채우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발 빠른 대처를 위해선 정치권의 노력도 필요하겠죠. 최근 당 대표를 새로 뽑은 국민의힘의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되는데요. 한국 보수 정치의 쇄신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칼럼도 소개합니다. 이제 불붙이러 가볼까요? #1 사건과 구조: '티메프 사태' 공정위는 무능했고 금융당국은 맹탕이었다 "e(이)커머스 기업 티몬과 위메프 미정산 사태로 피해 규모가 1조원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상거래 안정성을 해친 전자금융거래의 불완전한 관리와 감독시스템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수년에 걸친 재무건전성 악화에 따른 위험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자상거래 규율 체계는 무능했고, 전자지급결제대행업자(PG사)로 등록된 기업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의 시스템은 맹탕이었다."✍🏻 임철영/전영주 기자, <아시아경제>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 이른바 ‘티메프 사태’의 불길이 경제 전반에 번지고 있습니다. 향후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거래분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가 사실상 1조원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개인사업자 대상 대출을 늘렸던 은행, 소비자들의 결제 취소에 따른 손실을 떠안을 위기인 결제대행사 등 금융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사태의 시발점은 티몬·위메프 등 유통업체의 도덕적 해이입니다. 사실상 무이자로 자금을 차입하는 레버리지 효과를 노린 지연 정산이 만연했습니다. 길게는 70일 늦게 이뤄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주력 상품이었던 7~8% 할인 가격의 상품권은 단기 자금 조달을 위한 기업어음 역할을 했어요. 이런 부당한 이윤 추구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부실한 규제가 있습니다. 티몬·위메프 등 유통사 및 플랫폼 업체는 ‘PG사’로 등록되어 있는데요.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허가업체’와 달리 형식 요건만 갖춰 등록만 하면 되는 ‘등록업체’이기에 관리 대책이 부실합니다. 강제 영업 취소·정지나 그에 준하는 과징금 조치 수단도 없습니다. 임직원들이 피해를 보상하지 않고 사임했던 이유죠. 결국 공정위는 제도 보완에 나섰는데요.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티메프 사태를 총정리한 <아시아경제>의 기사 일독을 권합니다. 피해자들의 운명이 걸린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 개시 결정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일반 셀러 입장에서는 회생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유형자산이 없는 유통업체의 경우 회생 절차의 성과가 불투명해 회생을 회의적으로 보는 입장도 있어요. 플랫폼 경제의 취약점을 보여준 티메프 사태. 어떻게 해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2 연재/기획: 급식이 무너진다 "요즘의 학교급식실에서는 이런 배움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 외주 인력을 채용해 마치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처럼 효율성에만 급급한 급식실 (…) 이런 급식실에서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고 치우고 씻는 일은 학생들과는 단절된, ‘보람도 없고 보상도 없는’ 고된 노동에 불과하다. ‘제 자신이 잔반이 되는 기분이 드는 일’이라는 말에는 이런 현실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손고운 기자, <한겨레 21> 투철한 취재 정신과 종합적인 구조 비판 모두 잡았습니다. 연이은 폐암 진단과 절단, 사망 사고, 낮은 산재 인정률 등 급식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가 조금이나마 조명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젠 참담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기보다 떠나는 노동 실무사들이 더 많습니다. <한겨레 21> ‘급식이 무너진다’는 두 호에 걸쳐 손고운 기자가 신분을 숨긴 채 급식실을 떠나는 ‘여사’님들 곁에서 일한 체험기입니다. 학교 현장은 영양교사, 급식 노동자, 학생이 밥을 주고받고, 먹으며 배우는 소통과 배려의 중요성을 망각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영양교사와 급식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는 대신 돈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소비자주의에 갇혔습니다. 조리실무사 인당 200여 명에 이르는 담당 인원에, 화상, 끼임, 약품 사고에 항상 노출되어 있지만 지원보단 학부모와 교육청의 감시, 요구조건만이 쏟아집니다. ‘여사’들은 떠나고, 급식질은 떨어집니다. 학생 1천 명에 2 명의 노동자가 남아있는 경우도 생길 정도로 문제는 심각합니다. 하지만 교육청마저 ‘여사’들이 떠난다면 위탁업체에 돈을 주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학생들은 급식의 모든 과정에서 사람 냄새 없는 밥을 먹게 되죠. 인륜을 한참 벗어난 조리실무사들의 노동 현실도 참담했지만, 교육 없는 ‘공장급식’에 대한 비판은 더더욱 아득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과 일이고, 학생들이 가장 시간을 오래 보내는 곳은 학교인데요. 밥을 만드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그저 배를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만들어진 식사를 하며 과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삭막해진 한국 사회의 근원은 어쩌면 급식 현장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뉴스 보러 가기 🔥 #3 오피니언: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정말로 보수정치를 대표하겠다면 "한동훈 대표와 국민의힘이 진정 한국의 보수정치를 대표하겠다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그 의지를 천명하고 인정받겠다고 한다면 필히 살펴야 할 일들이다. 친윤계냐, 반윤계냐 같은 조잡한 시비에 갇혀있기에는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나 심상치 않아 더욱 그렇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향신문> 한동훈 후보가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됐습니다. 국힘 당대표 선거에서 가장 부각된 것은 친윤 대 반윤의 상호 네거티브였습니다. 한동훈 대표가 김건희 여사를 ‘읽씹’했다는 사실이 최고의 논란이 된 것처럼요. 참패에 가까웠던 총선 이후에도 지속되는 내부 파벌 갈등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칼럼은 한동훈호를 비롯한 앞으로의 한국 보수 정치가 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과연 한국의 보수 정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시민들은 보수로부터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김윤철 교수가 지적하는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대에 걸맞지 않은 가치 수호’입니다. 민주화 이후 명분을 상실한 반공과 민중 배제적 성장주의는 아직도 보수의 구호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저성장과 불평등 심화에도 한국 보수는 개발독재 시대의 신화를 좇고 있죠. 김 교수는 특히 현 정부의 독단적인 태도는 더더욱 ‘보수’와도 거리가 멀다고 비판합니다. 필자는 한동훈호에 보수의 새 규범을 정립할 것을 요구합니다. 기득권층에 대한 변화와 개혁의 요구를 시행해 시대에 부합하는 보수로 거듭나란 것이죠. 김 교수가 강조한 키워드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인데요. 칼럼 전문은 역사적 사례를 들어 보수가 시대의 변화를 마주하며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지 설명합니다. 과연 한국 보수는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칼럼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4 독립언론: ‘이주노동자의 임신’은 고려하지 않는 사회 “이주노동자는 ‘인력’ 그 자체가 아니다. 20~30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최대 9년 8개월을 머무르는 그 기간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애주기도 맞물린다. 한국의 상황과 이주노동자의 생애주기를 함께 고려해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춘희 연구자, <일다> 제목을 보고 흠칫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임신'은 생각해 본 적 없었거든요. 아마 저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의 몸을 '노동하는 몸'으로만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일다>의 섬세한 기사가 지적하듯, 몸은 특정한 역할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일하는 몸은 연애하는 몸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몸이기도 하고, 재생산하는 몸이기도 해요. 특히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여성의 나이는 주로 20~30대인데, 이 시기는 생애 주기상 결혼, 임신, 출산 기간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임신과 재생산권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다> 기사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출산 전후 휴가를 주어야 하지만, 출산휴가를 받는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전무하죠. 대신 임신한 이주노동자가 받아 드는 건 해고 통지입니다. ‘임신 원천 차단’을 위해 남편이 여성 이주노동자 집에 방문하는 걸 막는 사업주도 있고요. 결혼을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합니다. 해고 후 재취업에 실패한 노동자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죠. 재생산권은 기본권입니다. ‘임신과 출산 여부와 시기’, ‘성관계 여부와 시기 및 대상’에 대해 여성이 스스로 자유롭게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본권의 사각지대를 살피고 싶은 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에디터가 남긴 편지  매주 목요일마다 장애인 야학에 갑니다. 교실에 들어서면 이곳저곳에서 말을 걸어와요. “지난주엔 왜 안 왔어?”, “보고 싶었어!” 학생분들은 하고픈 이야기가 많고, 수다 떨 시간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야학 안에서는 학생분들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잘 들리는데, 야학 밖으로 나서면 학생분들은 말 없는 존재가 됩니다. 활동가이기도 한 학생분들은 매주 삭발하며 자신이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기사에 보도되는 내용은 이런 것들이죠. “장애인이 드러누웠다.” “사람들을 방해했다.” “악을 썼다.” 장애인 활동가의 언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사실 세상에서 ‘언어의 분배’는 균등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심지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은 분리됐죠. ‘말하는 입’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일부 남성은 폴리스에 나가 정치를 담당했고, ‘먹는 입’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과 노예는 집 안에서 ‘먹고사니즘’을 책임졌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입이 ‘먹는 입’으로 여겨진다는 건, 달리 말해 ‘인간성(이라는 환상적 가치)’을 상실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인간과 비인간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언어’가 활용됐기 때문이에요.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의 분리는, 인간 내부에서 비인간 동물을 구별 짓는 작업이었던 거죠. 그러니 소통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언어를 쓰는가”보다는 “언어가 언어로 인정받는가. 사회가 그 자의 말을 소리 아닌 말로 이해하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였던 조선어가 ‘소리’로 전락한 일제강점기를 떠올려 봐도 좋아요. 많은 친일 작가는 소리로 전락한 조선어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에, ‘인간의 언어’로 규정된 일본어로 글을 썼죠. 장애인 이동권 시위 보도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은 이런 것들입니다. “과격한 시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화적으로 대화해라.”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대화하면 누가 들어주나요?” 10여 년 전,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한강철교를 기어 건넜습니다.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씨에, 그런 투쟁을 했어요. 지금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지하철에 올라탑니다. 매 시위 투쟁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말하기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대화를 원하지만 듣지 않는 세상과 매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장애인은, 소통할 수 있을까요? 덧. 불균등한 언어의 분배는 인간중심주의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특정 종류의 언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인간성’은 공고화되어 왔으니까요. 예컨대 근대화 시기 소비적 여성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은 ‘육식성의 구강’을 지니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여성을 ‘먹는 입’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면서 남성의 ‘말하는 입’과 구분 짓고, 후자에 ‘인간성’의 가치를 부여한 거죠. 따라서 더 많은 말을 듣길 원하는 이 글이 바라는 건 언어 자체의 ‘전락’입니다. 원숭이와 개, 돌고래, 벌이 지닌 언어를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인간성이 전락할 때, 비로소 인간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억압도 사라질 수 있겠지요. 2024. 8. 5.에디터 만쥬 🌰 드림 만든 사람들: 모래 🏖️, 푸릇 🌿, 산호 🐠, 만쥬 🌰 지난 <꺼진뉴스 다시보자 9호>에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신 '익명의 너구리' 님, '길가는' 님, 'jay_kim' 님, '오늘은' 님 고맙습니다. 저널리즘에 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앞으로도 폴라리스와 함께 계속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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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뉴스 다시보자] 📰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9 세상이 동지를 빼앗아가고, 탄광이 남편을 삼켜도 꿋꿋이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인생을 정성스럽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데요.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은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일정 나이가 지나면 면허를 뺏어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오만한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계산해 네 인생의 길이 정해져있다고 판단하는 건 얼마나 가혹한가.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하기 전에, 타인에게 정성을 다해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월요일입니다. 이번 주도 함께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1 인터뷰: 이진순의 열림, 김민기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하나 바꾸고 싶은 게 있어. ‘쉼표’라는 말인데, (중략) 근데 이게 쉼표가 아니라 ‘숨표’라고. (중략) 쉬는 게 아니고 전체를 살리기 위한 숨표! 마이너리티(소수자)라고 보는데 마이너리티가 아니고. 복지가 그냥 퍼주는 게 아니란 얘기. 아, 근데 말이 길다. 내가 취했네.”✍🏻 이진순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한겨레> 지난 21일 세상을 떠난 故 김민기(1951~2024) 씨는 거인입니다. 가사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와 극단 ‘학전’이 한국 사회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본인은 그렇게 불리기를 굉장히 꺼렸던 인물이었습니다. 얼마 전 <S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나오듯, 그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존재를 물심양면 돕는 ‘뒷것’을 자처했고 실천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언론 인터뷰도 그는 드물게 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가 2015년 이진순 현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과 진행한 인터뷰로 <한겨레>에 2편에 걸쳐 실렸습니다. 그가 걸어 온 큼지막한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도, 그의 행동과 말을 정제하지 않고 전달하면서 인간 김민기를 드러냅니다. 그는 인터뷰를 앞두고 긴장해 막걸리를 사와 같이 마시고, 턱을 괴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비록 우리 세대와 멀어 보이지만, 꼭 알아야 할 김민기라는 인물을 잘 알려주는 귀한 인터뷰여서 일독을 권합니다. 두 번째 편은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2 기획 ㆍ 지역: 광부엄마 산업전사는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를 이끈 탄광 뒤편에는 열악한 환경과 혹독한 노동 강도를 감수하면서 석탄과 잡석을 가려낸 선탄부의 희생이 있었다. 남씨와 최씨는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지만 그 덕에 이만큼이라도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었다”며 “탄광 속 여자들을, 엄마들을 기억해 달라”고 웃어 보였다.✍🏻 최기영 신세희 김오미 김태훈 최두원 기자, <강원일보>  탄광에 여자 광부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깊은 지하에서 캐낸 석탄 중 잡석을 골라내는 일을 지금껏 여성 광부가 해왔답니다. 강원일보는 2개월간 심층 취재를 거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림자 노동을 길어 올렸습니다. 광업소의 유일한 여성 노동자인 ‘선탄부’는 광부이자 엄마, 아내였고 산업재해의 피해자였습니다. 기사는 선탄부의 삶을 추적하며 석탄산업의 역사, 폐광지의 아픔과 모순을 돌아봅니다. 담담히 그 시절을 회고하는 인터뷰에 내리던 스크롤을 잠시 멈추게 됩니다. 선탄부 대부분이 광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었어요. 아이들의 주린 배가 두려워 남편을 삼킨 광산에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죠. 상처 많은 삶이었지만 고통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탄광 산업을 지탱했다는 자부심, 아이를 키워냈다는 보람이 있었죠. 그 끝이 병든 몸과 수북하게 쌓은 약봉지여도, 광부 엄마는 오늘도 용감하게 일어섭니다. 산업 재해 인정을 위해 동료의 손을 잡고 근로복지공단으로 향해요. 독자님과 여성 광부의 삶을 기억하고, 뒤늦은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3 오피니언: '방 안의 코끼리' 된 고령자 운전, 면허 반납만이 능사인가 "한국에서는 이미 존재했던 문제를 외면하다 사건이 생기고 나서야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 갑작스러운 반동의 모멘텀이 작동해 급조된 해결책을 내놨다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조선일보> 7월 초, 시청역 추돌 사고 이후 고령 운전자와 관련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여론은 일정 연령이 지나면 면허를 반납해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갔지만, 칼럼은 이를 ‘에이지즘(나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대신, 운전자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운전 능력 평가나 해외에서 도입하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을 제안하는데요. 급하게 과제를 제출하거나 부랴부랴 보고서를 제출해 본 경험, 다들 있으실 거예요. 그런 경험은 우리에게 닥친 상황을 면피하게 해주지만, 면피가 습관이 되어 더 큰 눈덩이로 돌아오는 경험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을 겁니다. 배가 침몰하면 해경 해체로, 압사로 사람들이 죽으면 행사 폐지로. 바로 이런 것들이 정희원 교수가 말하는 ‘급조된 해결책’이겠죠. 더 나은 해결법을 위해 논의하는 시간이 꼭 필요해 보입니다. 뉴스 보러 가기 🔥 #4 문화: 곧 잘릴 사주네요 부적 20만원입니다 "고민을 털어놓을 창구, 덕담 들을 기회 정도로 활용한다면 사주는 제 효용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수천 년에 걸쳐, 앞일을 점치는 술수는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 ✍🏻 이상원 기자, <시사IN> 사주 좋아하시나요? 그 전에, 사주를 믿으시나요? 저는 사주에 돈깨나 쓴 ‘과몰입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MBTI로 자기소개를 하는 것처럼 제 소개를 해보자면, 병자년에 태어난 병화일주의 사람입니다. 사주를 봐주는 사람에 따라 누군가는 제 일주를 ‘촛불’이라고 하기도 하고, ‘태양’이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사주의 어플화 덕분일까요. 사주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어떤 학문이 아닌, 힙한 통계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막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가 알아가보자며 어플을 켜 사주를 봐주기도 하고 이런 현상을 반영한듯 최근 사주를 소재로 한 연애 예능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시사IN> 기사는 사주명리학의 열풍 현상을 소개하며 ‘사주를 과장하여 잇속을 챙기는 일탈’을 경계해야 한다고 짚어줍니다. 가볍게 기분전환을 위해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에디터가 남긴 편지    여러분은 현재 한국 기성 언론이 권력의 애완견이라 생각하시나요? 2주 전 토요일 저녁, <MBC>의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유시민 작가와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가 나와 “유튜브가 미디어 세계를 어떻게 바꿨는가”란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했습니다. 언론에 관한 여러 쟁점이 나왔는데 제 눈길을 끄는 건 함정취재에 관한 부분이었어요. 유시민 작가는 기성 언론이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청탁 수수 논란’을 보도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류 언론이 하지 못한 것을 유튜브 언론이 해냈다”라며 유튜브 언론을 칭송했습니다. 저는 유 작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원칙 없는 ‘사이다성’ 보도를 칭송하는 현상이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널리즘에는 원칙과 목적이 존재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민주주의와 시민을 위해 정보 불평등성을 없애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원칙을 중심으로 저널리즘 윤리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윤리란 건 법처럼 딱 칼로 자를 수 없어 상황마다 유동적이긴 합니다. 다만 이 윤리를 지키는 일이 저널리즘 원칙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고, 기사의 품질을 담보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죠. 문제가 된 <서울의 소리>의 김건희 여사 잠입취재는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입취재는 기자가 신분을 숨기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사안을 보도하는 행위입니다. <뉴스타파>의 “쿠팡 잠입취재”, <한겨레>의 “대한민국 요양보고서”가 대표적입니다. 그 전신 격인 <한겨레>의 “노동OTL”을 쓴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칼럼에서 잠입취재 가이드라인을 설명합니다. ▲중대한 공익에 관한 결정적 증거인가 ▲다른 취재 방법을 시도한 뒤 마지막에 시도한 것인가 등입니다. 이 가이드라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서울의 소리> 잠입취재는 정당한 것이었을까요? 영부인의 국정농단 실마리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공익에 관한 증거는 맞습니다. 하지만 해당 영상이 결정적인 근거라고 할 수 없고, 다른 방법을 모두 시도한 뒤 마지막에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유튜브 생태계에서 시선을 끌기 위한 ‘사이다’ 용 보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죠. 물론 유시민 작가를 필두로 한 여러 독자의 기성 언론을 향한 실망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실제로 정파적 보도를 일삼는 언론사들도 많고요. 그러나 그 안에서도 어떤 기자들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권력의 이면을 파헤치려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무관심은 상황을 악화할 뿐입니다. 시민들의 지지를 잃는다면 좋은 언론은 수입이 끊기고, 권력과 강하게 밀착한 일부 언론만이 살아남아 더 안 좋은 환경을 만들겠죠. 폴라리스는 지금까지 한국 언론의 좋은 기사들을 찾아 소개했습니다. 앞으로도 노력할 테니, 관심을 두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2024. 7. 29.  에디터 선심 🔆 드림 만든 사람들: 보라🍇, 해안🌊, 반달🌙, 선심🔆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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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극우화 방지 특강 👩‍🏫 한국 필수 시청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7 요즘 들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인권과 다양성의 시초 같던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했고, 하루아침에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먹고 살기 팍팍할 때마다 극우가 새로운 대안처럼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무섭게 세를 넓혀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극우 막는 처방전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나려 해요. 떠들썩하게 선거를 치른 나라로 갑니다! 여권은 넣어두고 호기심만 챙겨 주세요. 각국 선거 결과 브리핑을 듣고 유럽에서 극우가 약진한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극우화 특징도 준비되어 있으니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북부 지역에 살면서 이민자들을 실은 버스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봐야 했어요. 치안이 불안정해서 무서웠죠.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며 보안 정책을 펼치는 국민연합 의원들을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프랑스 국민연합(극우 정당) 선거캠프에 참여한 아나엘 씨 #1 2024 세계 선거의 해, 키워드는? 무려 42억 명.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소로 향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느 국가 하나 빠짐없이 내외 정세 긴장을 겪는 지금, 그 상황을 집약하여 보여줄 주요 선거들이 올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입니다. 4.10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강화됐고, 민주당 주도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특검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보수 여당과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예상보다 약진했고, 제3당이자 좌파 정당인 정의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우경화된 선거 결과라 할 수 있죠. 대형 분쟁국들에서도 선거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란히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푸틴은 무려 5선째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개입한 이란도 조기 대선을 치릅니다. 라이시 전 대통령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히잡 시위로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에 반기를 든 국민들의 선택은 온건 정책을 약속한 마수드 페제스키안이었습니다. 자국은 물론, 타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앞으로 두 분쟁의 향방이 어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더 서쪽으로 이동해보겠습니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선 뚜렷한 극우화 추세가 확인됐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주요국 극우 정당들이 눈에 띄게 많은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지난 대선에도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르펜이 이끄는 RN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EU에 쌓인 회원국들의 불만이 드러난 결과인데요. 현재 유럽 전역은 경제난과 이주자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공동체 EU가 요구하는 명분과 협력에서 벗어나 자국의 독자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고자 하는 거죠. 브렉시트로 그 첫발을 당긴 영국도 올해 조기 총선을 치렀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통과된 ‘르완다 정책’은 주변 국가들의 반이주 정서를 들쑤시기도 했죠. 영국은 14년 만에 노동당이 정권교체를 이뤘습니다. 노동당은 친기업적 행보, 불법 이주자 대응 강화 등 기존의 좌파 색깔을 지운 ‘우클릭 공약’으로 민심을 얻었습니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나이젤 패라지도 선전했습니다. 영국이 상당히 극우화되고 있음을 실감하시겠죠. 대서양을 건너면 11월 대선을 치르는 미국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극적인 총격 사건을 겪으며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는데요. 바이든 현 대통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후보 퇴진 요구가 나올 정도로 지지율이 저조합니다. 바이든 임기 동안 경제가 회복됐다곤 하나 민생이 실감할 정도는 아니며, 그에 따라 이주자에 대한 불만과 경계는 강화됐습니다. 바이든은 젊은 진보 유권자들의 민심을 크게 잃었습니다. 비인륜적일 정도의 이스라엘 지원과 흑인, 성소수자 등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주요한 원인입니다. 바이든은 극우화된 유권자의 마음도 돌리지 못했고, 지지층이 기대한 극우화 방지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선거 소개에 극우화란 단어가 유독 많이 나온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극우화의 원인, 유럽과 우리나라의 극우화, 극우화를 방지하는 선거제도에 대해 차례로 논해보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2 극우는 ‘이것’을 먹고 자랐다 ‘유럽이 우경화된다’는 말, 익숙하게 들으셨을 겁니다. 시리아발 난민 위기, 브렉시트를 지나며 꾸준히 언급된 주제이지요. 민주주의와 선진성의 표상이었던 유럽의 변화가 심상치 않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이번 꼭지에서는 ‘유럽의 우경화’라는 현상이 나타난 배경과 국제 사회에 가져올 영향을 함께 보겠습니다. 극우가 약진하는 원인은 대개 세 가지로 꼽힙니다. 고물가, 경제난, 그리고 이민 정책입니다. 유럽과 중동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전쟁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에너지난을 가져왔죠. 여기에 강력한 환경 규제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농가 부채는 증가했고, 농민들은 트랙터 시위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두드러진 갈등은 ‘난민’입니다. 소도시와 지방을 중심으로 난민이 수용되면서 주민들의 반감은 커졌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우호적이었지만, 경제난이 길어지자 난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여론이 우세했습니다. 물론 외부의 변화가 전부는 아닙니다. 기존 집권 세력이 추진해 온 ‘정치적 목표’에 더 집착한 나머지 국민을 설득하거나 민생을 수습하는 일에 소홀했고, 극우는 이런 빈틈을 파고든 것이죠. 프랑스ㆍ영국ㆍ이란에서 잇따라 치러진 선거에서도 “민생을 실패한 정부는 필패한다”는 메시지가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극우 정당은 이민과 국경 통제와 생필품 부가가치세 폐지 등의 정책으로 민심을 달랬고 유권자는 응답했습니다. 극우는 혼란한 세상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극우는 단순히 우파 가장자리가 아닙니다. 인류가 오랜 시간 발전시킨 인권·자유·평화의 가치를 경시하는 세력입니다. 이에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각자도생이 거세질 거라는 우려가 큽니다. 함께 해결해야 하는 기후, 전쟁과 난민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겠죠. 여성 인권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선 만 명이 넘는 여성은 극우 집권으로 임신 중지권이 타격받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답니다. 자유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공간인 유럽에서 고립주의를 지지한다면, 서구를 비롯해 한국에 가져올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 보러가기 #3 한국의 ‘뿌리 깊은’ 극우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볼까요. 올해 총선에서는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며 보수당이 참패했지만, 윤석열 정부와 2030 남성 유권자들의 우경화는 확연히 두드러집니다. 대통령은 공적 발언에서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정치적 반대자와 반국가 세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극우 성향 인물을 공공기관장이나 중앙부처 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했죠. ‘외부’ 요소가 침범해 ’내부‘를 위협한다. 극우가 사람들의 분노를 동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레임입니다. 사회적 긴장에서 비롯된 불안을 이권을 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거죠. 여기서 외부 요소는 극우 세력이 규정한 표준 시민을 벗어나는 존재라면 모두 포함됩니다. 동성애, 페미니스트 등에 대한 혐오 행동과 담론이 크게 퍼진 이유입니다. 앞서 보았듯 유럽의 극우는 이민자를 외부의 존재로 낙인찍었는데요. 한국 극우의 뿌리엔 반공이 있습니다. 이념 전쟁이 남긴 분단 체제에서 정부가 수립된 만큼 반북·반공의 뿌리가 깊죠. 한국 극우의 특징은 또 있습니다. 보수와 극우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보수 정부가 극우 성향을 드러낸 건 이번 정부만이 아닙니다. 보수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있어요. 민주화 백래시로 등장한 극우 단체가 ‘빨갱이 척결’ ‘동성애는 악마‘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울 때, 보수는 이들과 구분되면서 진보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만한 정치적 의제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보수 엘리트들은 극우 정치를 간혹 우려하고 때론 거리를 유지하지만, 결국은 용인하고 엄호하죠. 충성심 높은 유권자를 확보해 보수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최근 극우의 새로운 지지층인 2030 남성은 안티페미니즘을 축으로 강하게 결집합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모은 건 새로 등장한 극우 정당이 아닌 보수정당이었습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간판 공약으로 제시하고 구조적인 성차별을 부정하는 등 극우 남성들에게 적극 어필했죠.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많은 국가의 젊은 세대에서 정치적인 성별 격차가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만큼 격차가 뚜렷한 곳은 없다고 짚었는데요. 대통령은 한국의 성평등 수준이 대부분의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은 묻어둔 채, ‘급격한’ 성평등 추진에 불만을 품은 젊은 남성들을 공략했다고 설명합니다. 극우가 한국 사회에 내린 깊은 뿌리, 그리고 극우와 보수가 하나 되어 자연스럽게 세력을 과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진단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도 ‘극우에게 동의하지 않는 다수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겠죠.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다음 글을 읽으며 그 실마리를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4 “어떻게 극우를 막을 것인가” 우리를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에 던져진 질문일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좌나 우가 아닌 ‘극단’입니다. 일부 극단적인 세력이 결집하여 만든 후보, 정당을 국민의 대표로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민의를 반영한다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정당, 정치, 이념, 인물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앞서 언급한 유럽 의회 선거, 기억하시나요?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RN이 대승을 거뒀는데요. 하지만 프랑스의 총선 결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RN이 유럽 의회 선거에서 대승하고 나서,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조기 총선을 선언했죠. 이 총선에서 좌파연합이 RN을 크게 밀어냈습니다. 마크롱의 일방적인 연금개혁과 우경화된 난민법으로 민심을 크게 잃은 집권당과 극우 정당의 대안으로 떠오른 좌파연합은 프랑스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프랑스 헌법은 가장 뻔하지만, 가장 명확한 해법인 ‘선거 제도’에 민주주의를 맡겼습니다. 일종의 안전장치를 걸어둔 셈인데요. 물론 이번 조기 총선은 프랑스 국민들의 시민의식, 극단을 막겠다는 정치권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심에는 ‘제도’가 있습니다. 선거 제도의 힘과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한 선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프랑스 결선투표제, 조금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요. A 후보가 당선되려면 우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의 표를 얻어야 합니다. 1차에서 이미 당선이 확실시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후보가 출마하는 1차 투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겠죠. 이후에는 1차 때 12.5% 이상 득표한 후보들끼리 결선, 즉 2차 투표를 진행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흔히 ‘소신’ 투표라고 부르는, 나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투표가 프랑스에선 가능합니다. 결선투표제의 가장 큰 효용은 극단주의의 집권을 막는다는 데 있습니다. 극단적인 소수의견의 과대 대표를 방지하는 것이죠. 유권자들이 광범위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는, 결선투표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좌파연합인 NFP(신인민전선)에서 134명, 범여권에서 82명이 사퇴한 덕분에 RN과 맞붙은 280여 선거구 중 200개 이상에서 1대1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결선에서 RN 후보들이 대거 낙선한 이유입니다. 극단을 막기 위한 차악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시민들은 투표장에 나서 선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원 배지를 사수하는 것보다 극단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정치인들의 의지도 인상 깊습니다. 전통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가까운 정치 세력이 극우 차단이라는 명분으로 뜻을 모았으니까요. 대의민주주의의 존속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어서 우리의 선거제도도 다시금 정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프랑스 총선으로 배웠습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정치가 실패했기에 사회가 붕괴한 걸까요, 사회가 실패했기에 정치가 붕괴한 걸까요? 이번 호 딥다이브를 준비한 에디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사실 전 개인적으론 제도로 수습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단 생각이 들 만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희망을 크게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더 이상 간극을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은 여성혐오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의 연속, 인면수심의 범죄, 약자에 대한 동정 대신 조롱과 착취, 부패… 겨우 제도로 이런 인간들을 중화할 수 있을까?건강한 생각은 아니죠.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에디터로서 갖춰야 할 균형 있는 견해도 아닙니다. 그래서 버나드 크릭의 『정치를 옹호함』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크릭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란 다양한 집단의 이해와 이익을 적절히 조정·합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한 측의 승리만을 위한 지저분한 알력 다툼도, 선전전도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정치 없는 정치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합의와 조정보다는 내 몫이, 내 어떤 지위나 주장도 훼손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풍경. 현재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며, 이번 호 레터 주제 ‘극우화’의 가장 문제적인 측면입니다. 극우화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보수적 사상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정치 없음’입니다. 인내, 타협, 양보, 사고의 전환,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합의, 그리고 전진. 지금의 정치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정치의 정수…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정치를 되찾아오기 위해서겠지요. 사실 에디터 레터 초반에 언급한 저의 절망의 원인들도 사법적 좌절, 정치적 효능감의 상실, 어긋나는 행정이란 제도적 측면에 걸쳐 있으니까요. 저는 제도가 곧 한 사회의 정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라 생각합니다. 여성과 경제적, 정치적 약자들이 동등한 정치 주체가 아니니까, 내가 소속된 집단을 완벽히 이해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대표자가 선출되지 않으니까.기능하지 못하는 제도를, 동등하게 정치하지 못하게 하는 이 제도를 어떻게 손볼 것인가. 어떤 제도로 어떻게 정치를 되찾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내 몫을 조금도 빼앗기지 않으려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에, 합의와 조정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할 수 있을까?폴라리스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엔 어떤 답이 준비돼 있나요? 2024. 07. 22 에디터 푸릇🌿 드림  만든 사람들: 푸릇🌿, 해안🌊, 모래🏖️, 반달🌙 답장하기 폴라리스 구독하기 지난 폴라리스 읽기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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