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꺼진뉴스 다시보자] 📰 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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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뉴스레터는 당면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지켜보고, 한국 언론이 만들어 낸 좋은 글을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시사 뉴스레터입니다. 첫째, 둘째 그리고 마지막 주에 레터를 이메일로도 받아보세요.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22162)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0

겉으로는 온전해 보였던 것이 톡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전조증상과 우려를 무시하는 동안 문제는 몸집을 키우고,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때가 많죠. 요즘 우리 사회엔 조금만 신경썼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문제들이 자꾸 나타납니다. 우리는 왜 빨리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요.

이번 주 불붙일 뉴스는 제도와 관리감독의 미비함이 드러난 ‘티메프 사태’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문제가 커지기 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를 소개합니다. 급식 노동자들이 참담한 환경의 조리실을 떠나며 학교 급식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국내 노동력을 채우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발 빠른 대처를 위해선 정치권의 노력도 필요하겠죠. 최근 당 대표를 새로 뽑은 국민의힘의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되는데요. 한국 보수 정치의 쇄신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칼럼도 소개합니다. 이제 불붙이러 가볼까요?



#1 사건과 구조: '티메프 사태' 공정위는 무능했고 금융당국은 맹탕이었다

출처: 뉴스1
"e(이)커머스 기업 티몬과 위메프 미정산 사태로 피해 규모가 1조원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상거래 안정성을 해친 전자금융거래의 불완전한 관리와 감독시스템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수년에 걸친 재무건전성 악화에 따른 위험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자상거래 규율 체계는 무능했고, 전자지급결제대행업자(PG사)로 등록된 기업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의 시스템은 맹탕이었다."

✍🏻 임철영/전영주 기자, <아시아경제>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 이른바 ‘티메프 사태’의 불길이 경제 전반에 번지고 있습니다. 향후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거래분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가 사실상 1조원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개인사업자 대상 대출을 늘렸던 은행, 소비자들의 결제 취소에 따른 손실을 떠안을 위기인 결제대행사 등 금융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사태의 시발점은 티몬·위메프 등 유통업체의 도덕적 해이입니다. 사실상 무이자로 자금을 차입하는 레버리지 효과를 노린 지연 정산이 만연했습니다. 길게는 70일 늦게 이뤄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주력 상품이었던 7~8% 할인 가격의 상품권은 단기 자금 조달을 위한 기업어음 역할을 했어요. 이런 부당한 이윤 추구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부실한 규제가 있습니다. 티몬·위메프 등 유통사 및 플랫폼 업체는 ‘PG사’로 등록되어 있는데요.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허가업체’와 달리 형식 요건만 갖춰 등록만 하면 되는 ‘등록업체’이기에 관리 대책이 부실합니다. 강제 영업 취소·정지나 그에 준하는 과징금 조치 수단도 없습니다. 임직원들이 피해를 보상하지 않고 사임했던 이유죠. 결국 공정위는 제도 보완에 나섰는데요.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티메프 사태를 총정리한 <아시아경제>의 기사 일독을 권합니다.

피해자들의 운명이 걸린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 개시 결정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일반 셀러 입장에서는 회생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유형자산이 없는 유통업체의 경우 회생 절차의 성과가 불투명해 회생을 회의적으로 보는 입장도 있어요. 플랫폼 경제의 취약점을 보여준 티메프 사태. 어떻게 해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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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재/기획: 급식이 무너진다

출처: 한겨레 박승연 PD
"요즘의 학교급식실에서는 이런 배움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 외주 인력을 채용해 마치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처럼 효율성에만 급급한 급식실 (…) 이런 급식실에서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고 치우고 씻는 일은 학생들과는 단절된, ‘보람도 없고 보상도 없는’ 고된 노동에 불과하다. ‘제 자신이 잔반이 되는 기분이 드는 일’이라는 말에는 이런 현실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 손고운 기자, <한겨레 21>


투철한 취재 정신과 종합적인 구조 비판 모두 잡았습니다. 연이은 폐암 진단과 절단, 사망 사고, 낮은 산재 인정률 등 급식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가 조금이나마 조명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젠 참담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기보다 떠나는 노동 실무사들이 더 많습니다. <한겨레 21> ‘급식이 무너진다’는 두 호에 걸쳐 손고운 기자가 신분을 숨긴 채 급식실을 떠나는 ‘여사’님들 곁에서 일한 체험기입니다.

학교 현장은 영양교사, 급식 노동자, 학생이 밥을 주고받고, 먹으며 배우는 소통과 배려의 중요성을 망각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영양교사와 급식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는 대신 돈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소비자주의에 갇혔습니다. 조리실무사 인당 200여 명에 이르는 담당 인원에, 화상, 끼임, 약품 사고에 항상 노출되어 있지만 지원보단 학부모와 교육청의 감시, 요구조건만이 쏟아집니다. ‘여사’들은 떠나고, 급식질은 떨어집니다. 학생 1천 명에 2 명의 노동자가 남아있는 경우도 생길 정도로 문제는 심각합니다. 하지만 교육청마저 ‘여사’들이 떠난다면 위탁업체에 돈을 주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학생들은 급식의 모든 과정에서 사람 냄새 없는 밥을 먹게 되죠.

인륜을 한참 벗어난 조리실무사들의 노동 현실도 참담했지만, 교육 없는 ‘공장급식’에 대한 비판은 더더욱 아득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과 일이고, 학생들이 가장 시간을 오래 보내는 곳은 학교인데요. 밥을 만드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그저 배를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만들어진 식사를 하며 과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삭막해진 한국 사회의 근원은 어쩌면 급식 현장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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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피니언: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정말로 보수정치를 대표하겠다면


출처: 경향신문


"한동훈 대표와 국민의힘이 진정 한국의 보수정치를 대표하겠다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그 의지를 천명하고 인정받겠다고 한다면 필히 살펴야 할 일들이다. 친윤계냐, 반윤계냐 같은 조잡한 시비에 갇혀있기에는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나 심상치 않아 더욱 그렇다."

✍🏻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향신문>


한동훈 후보가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됐습니다. 국힘 당대표 선거에서 가장 부각된 것은 친윤 대 반윤의 상호 네거티브였습니다. 한동훈 대표가 김건희 여사를 ‘읽씹’했다는 사실이 최고의 논란이 된 것처럼요. 참패에 가까웠던 총선 이후에도 지속되는 내부 파벌 갈등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칼럼은 한동훈호를 비롯한 앞으로의 한국 보수 정치가 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과연 한국의 보수 정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시민들은 보수로부터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김윤철 교수가 지적하는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대에 걸맞지 않은 가치 수호’입니다. 민주화 이후 명분을 상실한 반공과 민중 배제적 성장주의는 아직도 보수의 구호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저성장과 불평등 심화에도 한국 보수는 개발독재 시대의 신화를 좇고 있죠. 김 교수는 특히 현 정부의 독단적인 태도는 더더욱 ‘보수’와도 거리가 멀다고 비판합니다.

필자는 한동훈호에 보수의 새 규범을 정립할 것을 요구합니다. 기득권층에 대한 변화와 개혁의 요구를 시행해 시대에 부합하는 보수로 거듭나란 것이죠. 김 교수가 강조한 키워드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인데요. 칼럼 전문은 역사적 사례를 들어 보수가 시대의 변화를 마주하며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지 설명합니다. 과연 한국 보수는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칼럼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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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독립언론: ‘이주노동자의 임신’은 고려하지 않는 사회

출처: <일다> 홈페이지 갈무리

“이주노동자는 ‘인력’ 그 자체가 아니다. 20~30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최대 9년 8개월을 머무르는 그 기간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애주기도 맞물린다. 한국의 상황과 이주노동자의 생애주기를 함께 고려해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 우춘희 연구자, <일다>


제목을 보고 흠칫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임신'은 생각해 본 적 없었거든요. 아마 저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의 몸을 '노동하는 몸'으로만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일다>의 섬세한 기사가 지적하듯, 몸은 특정한 역할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일하는 몸은 연애하는 몸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몸이기도 하고, 재생산하는 몸이기도 해요. 특히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여성의 나이는 주로 20~30대인데, 이 시기는 생애 주기상 결혼, 임신, 출산 기간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임신과 재생산권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다> 기사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출산 전후 휴가를 주어야 하지만, 출산휴가를 받는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전무하죠. 대신 임신한 이주노동자가 받아 드는 건 해고 통지입니다. ‘임신 원천 차단’을 위해 남편이 여성 이주노동자 집에 방문하는 걸 막는 사업주도 있고요. 결혼을 이유로 해고당하기도 합니다. 해고 후 재취업에 실패한 노동자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죠.

재생산권은 기본권입니다. ‘임신과 출산 여부와 시기’, ‘성관계 여부와 시기 및 대상’에 대해 여성이 스스로 자유롭게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본권의 사각지대를 살피고 싶은 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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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남긴 편지 

매주 목요일마다 장애인 야학에 갑니다. 교실에 들어서면 이곳저곳에서 말을 걸어와요. “지난주엔 왜 안 왔어?”, “보고 싶었어!” 학생분들은 하고픈 이야기가 많고, 수다 떨 시간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야학 안에서는 학생분들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잘 들리는데, 야학 밖으로 나서면 학생분들은 말 없는 존재가 됩니다. 활동가이기도 한 학생분들은 매주 삭발하며 자신이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기사에 보도되는 내용은 이런 것들이죠. “장애인이 드러누웠다.” “사람들을 방해했다.” “악을 썼다.” 장애인 활동가의 언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사실 세상에서 ‘언어의 분배’는 균등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심지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은 분리됐죠. ‘말하는 입’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일부 남성은 폴리스에 나가 정치를 담당했고, ‘먹는 입’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과 노예는 집 안에서 ‘먹고사니즘’을 책임졌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입이 ‘먹는 입’으로 여겨진다는 건, 달리 말해 ‘인간성(이라는 환상적 가치)’을 상실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인간과 비인간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언어’가 활용됐기 때문이에요.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의 분리는, 인간 내부에서 비인간 동물을 구별 짓는 작업이었던 거죠.

그러니 소통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언어를 쓰는가”보다는 “언어가 언어로 인정받는가. 사회가 그 자의 말을 소리 아닌 말로 이해하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였던 조선어가 ‘소리’로 전락한 일제강점기를 떠올려 봐도 좋아요. 많은 친일 작가는 소리로 전락한 조선어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에, ‘인간의 언어’로 규정된 일본어로 글을 썼죠.

장애인 이동권 시위 보도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은 이런 것들입니다. “과격한 시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화적으로 대화해라.”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대화하면 누가 들어주나요?” 10여 년 전,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한강철교를 기어 건넜습니다.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씨에, 그런 투쟁을 했어요. 지금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지하철에 올라탑니다. 매 시위 투쟁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말하기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대화를 원하지만 듣지 않는 세상과 매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장애인은, 소통할 수 있을까요?

덧.

불균등한 언어의 분배는 인간중심주의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특정 종류의 언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인간성’은 공고화되어 왔으니까요. 예컨대 근대화 시기 소비적 여성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은 ‘육식성의 구강’을 지니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여성을 ‘먹는 입’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면서 남성의 ‘말하는 입’과 구분 짓고, 후자에 ‘인간성’의 가치를 부여한 거죠. 따라서 더 많은 말을 듣길 원하는 이 글이 바라는 건 언어 자체의 ‘전락’입니다. 원숭이와 개, 돌고래, 벌이 지닌 언어를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인간성이 전락할 때, 비로소 인간중심주의에서 비롯된 억압도 사라질 수 있겠지요.

2024. 8. 5.
에디터 만쥬 🌰 드림


만든 사람들: 모래 🏖️, 푸릇 🌿, 산호 🐠, 만쥬 🌰


지난 <꺼진뉴스 다시보자 9호>에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신 '익명의 너구리' 님, '길가는' 님, 'jay_kim' 님, '오늘은' 님 고맙습니다.

저널리즘에 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앞으로도 폴라리스와 함께 계속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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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급식이 무너진다' 보도는 소개 전에 잘 읽었는데 소개 되어서 반갑네요. 한겨레가 꽤 오래 전부터 노동orz,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등 기자가 직접 당사자가 되어서 취재하는 방식을 진행해왔는데 결과물을 보면 확실히 다른 시각이 담기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바람직한 취재방식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기자가 당사자가 될 때 보이는 시각을 담아낼 수 있다는 측면에선 하나의 취재기법으로 잘 활용되면 좋겠네요.
이번 편은 소개된 기사들과는 별개로 에디터의 편지가 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위의 한겨레 기사에서도 드러나지만 언론인이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문제가 정말 많습니다. 오히려 당사자를 왜곡하는 경우도 많고요. 매번 언론인이 당사자가 될 순 없어도 사회적 약자에 공감하려 노력하는 매체가 많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