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은 쿠팡이 약속하는 배송 예정일을 지키지 못하면 위탁 운영 계약이 해지될 수 있습니다.
해지 기준이 월 0.5%인 로켓배송과 달리, 로켓설치는 0.1%로 1천 개 중 1개만 늦어도 안 됩니다.
인간을 기계로 보는 기업이라 생각합니다. 저 속도로 결코 설치가 불가능한데, 이를 해라고 독촉하는 기업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네요.
국가·지자체 등 공공이 운영하는 재활시설의 부재는 이를 ‘기피시설’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과 상호작용한다. 공공이 개입하지 않으니 민간 시설에서 문제가 반복되고, 재활시설 기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지역사회에 안착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식이다.
마약은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이미 투약 후 중독에 빠진 이들이 사회로 돌아오게끔 재활시설 역시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마약투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이 일단 큰 게 걱정이죠. 재활시설의 부재와 폐쇄적인 조직 역시도 개선이 필요한데, 그 중심에 공공이 구심점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형병원엔 의사가 없고 지역엔 병원 자체가 드물고 소방인력은 먼 거리를 왔다갔다해야하며 심신이 지쳐가는군요.
작년 8월 24일 기사입니다. 대통령 이승만을 제대로 알자’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소수가 다수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독재가 북한에서 펼쳐지고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좌우합작 이후 (한국이) 북한처럼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고 우익 색깔론을 펼치던 이승만학당의 이영훈 씨의 말이 정말 황당합니다. 모든 걸 이승만의 사상에 입각해서 해석하려던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정부의 성향에 편승(아니다 기생이라 해야할까요) 하려는 이기적인 역사관을 심어주려는 음흉한 의도로만 보여집니다.
이미 2년 전부터 물밑작업이 있어왔군요. 아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반일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등 교수의 색깔론도 생각났습니다.
“친일한 서정주와 박정희 쿠데타도 잘 한 점이 있지 않을까?”
같은 교과서의 서정주 소개 부분에서는 “서정주 시인은 1945년 해방이 되자 친일 행위에 대하여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라고 변명하였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에 끌려가서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라고 고백했다”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친일 변호에 차용되는 논리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는데 그게 중립적인거 아냐? 이런 의도로 교과서를 집필 한 것 같네요. 어떻게 생각해라는 의도 뒤엔 역사적 아픔을 숨기고 교묘하게 일제의 악행을 미화하기 쉽죠.
이 기사를 읽는데 일본이 군수물자를 싣고자 철로를 깔려고 훼손한 임청각이 생각났습니다. 고유한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데 그걸 부숴뜨리고 말살하는 현 정부의 움직임이 너무 속상하네요.
검경완박 이후 업무 부담이 경찰에 쏠리면서 경찰 인력 분배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이 컸네요. 과도한 업무량, 실적압박에 시달리니 경찰 내에서도 직업에 대한 회의감도 커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반지성주의가 뻔뻔하게 고개를 들이내미는 것 같네요. 모르는 것이 솔직하다고 착각하시는 건 아닌지요.
이미 실패한 것을 무리해서 감행하느라 예산만 낭비했다는 지적이 크군요. 왜 굳이 감행했어야만 했는지. 그 실효성이 타당했는지조차 없이 사업을 강행한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극우의 움직임이 심상찮아 보입니다. 높은 실업률을 포함한 경제적 불평등과 동독과 서독의 분단 역사가 맞물린 걸 보며 베를린 장벽은 보이지 않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군요.
법설계자들과 자본주의의 폐해가 모여있네요. 수요가 되면 돈이 된다. 가해자도 피해자처럼 만들어 형량을 낮추어도 문제없다. 너도좋고 나도 좋다는 태도가 만연해져버렸죠. 법 위로 군림한 탐욕이 피해자의 도움을 내쳐버린 경우라 보여집니다.
피고인들은 정신질환 때문에, 좌절된 꿈 때문에, 분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변명합니다.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행위를 애써 분리하고 있습니다.
구역질이 나고 분노가 나는 부분이 이 대목인데.. 성범죄 피해자들은 일상으로 원복이 불가한 상황입니다. 꿈이 아니라 삶이 파괴된 이들의 마음을 어찌 아나요..
혼밥을 먹으며 밥친구 콘텐츠로서 영화 요약 리뷰 영상을 보고,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계가 리스크가 된 사회에서 연애 프로그램으로 대리만족한다. 관념적 친구, 관념적 서사, 관념적 사랑까지. 구독 경제의 대두가 현대 도시인의 삶의 증상이듯, 관념 경제의 부상도 그런 증상의 일종으로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우동집 근처를 지나가는데 웨이팅 하러 오신 손님들로 입구가 장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가게 입구 옆에 ‘쉐프의 우동 편의점에서도 구매 가능합니다’ 라는 가판대가 걸린 걸 보며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인 여유가 부족한 사회의 이면도 떠올리게 됩니다. 이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가도 직접 방문해서 맛보는 경험 조차도 소수에게 몰리는 문제도 있구요.
해를 거듭할수록 급증한 수치를 보면 아찔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 것일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