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국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영국 초등학교 급식을 바꾸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데요, 건강식이 아닌 정크푸드로 음식이 나온 걸 보고 한 번 놀랐고 가지, 감자 등 채소의 이름도 모르는 걸 보며 교육마저 부재하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20년이 흐른 지금 영국도 SNS나 유튜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알고리즘이나 유튜브 광고로 나오는 정크푸드 광고가 빈번해진 것 같습니다. 정부가 먼저 나와 조치를 취하는 걸 보며 우리나라는 어떤가 생각이 드는데요. 알고리즘이 내가 원하는 정보 위주로 취합해서 보여주는데 익명의 여러 사람들에 의해 알고리즘이 원치않게 뜨는 것 같더군요. 인스타그램을 넘기다보면 굳이 먹지 않아도 될 마라탕이나 탕후루 등 정크푸드 광고가 자주 나올 때면 피로감이 솟기도 해요. 알고리즘에 의해 수요가 늘어난 탕후루, 소금빵 그리고 두바이초콜릿은 자본가의 이익만 높일 뿐 수요자의 건강수명은 낮추는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관료화와 폐쇄적 소통 체계가 문제로 꼽힌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설비 투자는 물론 기술 연구 관련 의사결정도 늦어지며 시장을 이끄는 초격차 기술이 나오기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조직문화에 변화가 필요할 거 같아요. 직장인 최대 커뮤니티 ‘블라인드’(신빙성 논란도 있지만) 에서 부정적인 평판이 많이 나오네요. 관료주의, 꼰대, 워라밸이 좋지 않다…
주요 산업도 점점 익숙해지는 단계고 차별화가 더욱 두드러졌지만 조직까지 개선해야하는 숙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요.
나이를 드실 만큼 드시고, 배운 만큼 배우시고, 사회 생활 하실 만큼 하신 으르신들이 어째 옹졸하게 저런 태도로 나가시나요. 아직 사회 생활을 시작한 뉴진스 멤버들은 좋은 어른들이 사라지고 못된 어른들의 놀음에 놀아나는 걸 원치 않다는 걸 보여준 신호라고 봅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합니다. 소외당하는 존재에 마음이 불편하던 시기였는데 오늘 이 기사 보다가 울화가 치밉니다. 하이브 어르신들. 평생 그렇게 사십시오. 돈 벌어서 사옥 확장 하시고 지저분한 퍼포먼스로 당신네들 입맛대로 맞는 가수들 육성하십시오. 당신들의 사욕은 의장의 체중만큼 감당할 수 없이 거북하실테니까요. 팬들은 그대들을 외면할 테니까요.
일부는 재미로 혹은 창작의 자유라고 부르겠지만 기사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을 다룹니다. 더욱 정교하고 교묘하게 AI 생성물이 나오면서 범죄로 악용하는 사람 역시 증가하고 있네요. 금전적 혹은 정신적 피해사례가 늘어날 것 같습니다.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군 문제는 더욱이나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의심스러운 행보라 걱정입니다.
요즘 SNS에서도 광고아닌 것 처럼 속여 피드로 올려서 피로한데, 이 외에도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앱도 점검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가 보 담수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매일 환경부 담당 부서에 전화해도 안 받고, 실무자 면담도 거절하더라고요. 어떻게라도 의견서를 전달하기 위해 세종보에 찾아가니 집시법 위반이래요. 정말 우리는 여기 천막으로 내몰린 거예요. 어떻게 되살아난 금강인데, 우리는 꼭 이 강을 지켜낼 거예요. 그래야만 해요.”
기후정의행진 이후에도 며칠간 무력했는데, 130일 동안 지킴이 활동을 멈추지 않은 이들을 보면서 희망을 놓으면 안된다고 또 다짐하게 됩니다.
코로나처럼 보여지는 대상에 혐오를 붙일까 걱정인데요.. 동물권과 기후위기라는 측면에서 더욱 살펴봐야할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성범죄를 고작 도덕에 어긋나는 일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딥페이크 성착취가 횡행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배덕감’을 위해 함께 범죄를 저지르자는 대화를 자주 볼 수 있다. 대학 동문들 사진 등을 합성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사건 주범도 ‘배덕’을 느끼려 범행을 한다고 말했었다.
배덕감… 한없이 가벼워지는 범죄의식과 그저 일탈로 치부하는 태도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아이들은 원래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재미를 찾는다. 그걸 나무라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제작진들도 주 시청층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채널에 연령제한 표시도 없을뿐더러 위험을 알리는 안내 문구 하나 없다. 재미를 위한답시고 자극적인 내용만 추구하는 콘텐츠 제작자들의 책임의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23년 10월 17일 자 기사입니다. 기사에 언급된 두 캐릭터(빵빵이와 옥지) 의 어원부터 원색적이고 내용은 혐오와 폭력이 너무 만연하더군요. 재미있으니 수요가 있고 그에 따라 팝업 스토어로 두꺼운 팬심을 확보하는 콘텐츠 제작자와 그것을 허락하는 기업에게서 자본의 암면까지 생각하게 합니다.
‘사회 구조’ 자체가 ‘수용소’화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수용소라는 장소를 용인하는 사회, 그래서 수용소가 있는 사회는 특정 존재를 국민이 아니라고, 불온한 존재라고, 더러운 존재라고 낙인찍고 배제하고 차별하도록 만든다.
정상성이란 범주를 만들고 비정상을 나누어 배제하고 차별할 때 난민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비단 난민 뿐일까요. 비인간동물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에서 다르다고 배제하고 지우는 과정은 얼마나 폭력적인가요. 수용소화된사회에서 서로를 감시하고 배척하면 공공의 개입은 사라지고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비극이 나타나지요. 정상에서 벗어난 이들이 마주할 수 있고 관계맺는 운동이 시작될 때 변화가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많은 의제가 나와서 좋았고 전국 각지에서 오신 분들이 모여 목소리 보태고 행진까지 하니 힘이 났던 집회였습니다. 행진 인파가 몰려 지친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그럼에도 농사, 후쿠시마 오염수, 청소년, 팔레스타인 전쟁, 동물권, 여성, 장애인, 공공교통 등 이야기를 한 번에 들으니 너무 좋습니다. 캠페인즈에 자주 올려주신 뉴스 덕에 이야기가 잘 들어온 거 같구요. :) 감사합니다.
이쯤되면 저는 기독교인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신을 믿고 그 뜻을 따라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이라면, 세상에 나고자란 이들 중에 의미없는 이들 없겠지요. 다만, 악이 발생할 수 밖에 없던 시스템의 부재, 돌봄의 부재, 빈곤, 폭력 등의 상황을 개개인을 일일히 구재할 수 없을지라도 헤아릴 줄 알아야겠지요.
나와 다른 삶을 살았을지언정, 의견이 다를지언정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공감의 출발점인데, 그것없이 나만 옳다는 고집은 무지의 증거라고 보여집니다. 반성도 공감도 배움도 없는 안창호 국가인원위원장님.
지역에 남아있고 싶은데 일자리 때문에 수도권으로 올라올 수 밖에 없고.. 인프라며 산업자체가 수도권에 몰리니 일자리가 쏠림이 심각합니다.
한 대표이사는 박물관 운영과 소녀상 지키기 활동의 어려움을 거론하면서 "일본 정부는 많은 돈을 투자해서 우리의 활동을 막고 있다. 강연을 가면 일본 측은 편지를 보내서 우리 보고 거짓말한다고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독일 사회도 의심한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냐'고, '한국사람들은 돈을 달라고 하기 위해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라고 말했다.
일본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는데 우리나라는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게 옳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