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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가르칩시다: 한국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식
(MBC 에브리원 성지순례. 이미지 출처 MBC) 1 조선 중기의 일이다. 안동 사람 퇴계 이황이 한참 어린 학자 고봉 기대승과 인간의 감정과 윤리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편지를 주고 받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우선 두 사람의 학문적 깊이에 감탄하였고 자기보다 서른 살 어린 젊은 학자 기대승의 반론에 예의를 갖추어 성실하게 대답하는 퇴계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그 때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퇴계와 동년배이고 퇴계와 함께 경상도를 대표하는 천재로 불리던 합천 사람 남명 조식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조정의 부름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고 고향인 경상도에서만 거처를 옮겨가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문정왕후를 등에 업은 윤원형의 세도정치에 대해서도 서슬퍼런 비난을 퍼붓기도 했고,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의병장으로 이름을 날린 곽재우, 정인홍, 김면이나 재상을 지낸 이산해 같은 인물이 모두 조식의 제자였다. 조식은 퇴계와 기대승 사이의 논변에 감탄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퇴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近見學者。手不知洒掃之節。而口談天理。計欲盗名。而用以欺人。反爲人所中傷。害及他人。豈先生長老無有以呵止之故耶。如僕則所存荒廢。罕有來見者。若先生則身到上面。固多瞻仰。十分抑䂓之如何。伏惟量察。 지금 공부하는 자들을 보면 손으로 마당에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하늘의 이치를 입에 담으니 명성을 도둑질하여 사람을 속이려 하는 것이라, 도리어 사람에게 중상을 입을 것이고 그 해는 타인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선생은 큰 어른이 되어서 어찌 그런 것을 꾸짖어 그만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저 같은 사람이야 성격이 거칠고 독선적이라 찾아오는 이가 드물지만 선생은 몸이 남들보다 높은 경지에 있어 많이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이들을 이제 그만 진정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헤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남명의 말이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지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자기 주변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간단한 예의도 차리지 못하는데 하늘의 이치며 인간의 도덕이며 올바른 정치 같은 고상한 이야기를 입에 담으면 도리어 본인도 해를 입고 남에게까지 해를 입힌다는 말이 요즘 사람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은 커녕 자기 몸 하나, 자기의 본능 하나 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이미 보지 않았는가? 나는 그러면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떠올렸는가? 얼마전 우연히 접한 한 TV 프로그램 내용 때문이다. 2 MBC 에브리원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성지순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김제동, 김이나, 풍자, 송해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고 불교 승려, 개신교 목사, 천주교 신부가 속세를 체험하는 것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관찰 예능이라고 한다. 지난 11월 14일에 방송된 3화에서 송산 스님, 유경선 신부, 차성진 목사가 출연했다. 세 사람이 이태원을 지날 때 차 목사가 LGBT에 대한 각 교단의 입장을 물었다. (방송 중 해당 내용)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흘러갔다. 주제를 먼저 꺼낸 차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성경을 따르는 사람이고 어쨌든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동시에 성경이 말하는 거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을 하거든요. 예를들면 이성애는 항상 올바른 형태로만 존재하나? 그렇진 않단 말이죠. 결국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존재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그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린다던가 아니면 그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권 조차 부정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저는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 말을 들으며 ‘목사가 할만한 말이네’, ‘목사치곤 진보적이네’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도 말 자체도 예의가 없거니와 당사자 앞에서 한다니 더 예의가 없는 말이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보자. “저는 기독교 믿는 분들이 제정신 같지가 않아요. 그치만 그분들의 인권을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진보적인 듯이 말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하는 말이라는게 늘 이런 식이다. 종교의 자유는 종교를 믿을 자유, 종교와 신앙을 강제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지 자기 종교의 교리랍시고 세상에 대해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를 두고 굳이 레위기나 로마서의 구절을 들고 와 논쟁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는 교리나 사상의 문제 이전에 예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당사자 앞에서 죄가 어쩌고 인권이 어쩌고 하면 당사자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말을 피하거나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아 보자.’ 내게는 이 정도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과 헌법이 어떻고 교리가 어떻고 해가며 논쟁을 할 만큼의 체력도 시간도 없다. 그런데 가장 웃긴 건 이거였다. 유경선 신부의 말이다. “저는 종교인들한테는 이런 질문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종교한테 물어 보는 사람들도 계속 돼요 안 돼요를 물어 봐요. 그런데 좀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어요.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저기 나가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반대해서 나간거예요. 종교 안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긍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언론에서도 종교인들에게는 항상 답을 바라는, 종교인들 한테는 너무 폭력적인 질문이에요. 종교는 항상 윤리적인 답을 내려 줘야 하는 그런 게 싫다고 여러분이 말하면서도 자꾸 저희한테 그런 답을 요구 하는, 그런 사회적 통념이 저는 불편하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 사랑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사랑할 수 있어요? 이런 방법을 물어 봤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들은 작사가 김이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거는 진짜 생각지도 못한. 성직자들에게 그런 걸 굳이 물어 보는 게 폭력적인 거라는, 성직자 입장에서는 우리한테 어쩌라는 거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뻔히 알면서 물어보는 거니까.” 내가 이 말을 듣고 정말 기가 찼다. 유 신부는 본인이 신부이고, 신부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나온 이상 좁게는 가톨릭, 넓게는 기독교를 대표해 방송에 나온 사람이다. 애초에 그 종교에서 죄를 운운하지 않았으면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일도 없다. 자기들이 원인을 제공해 놓고 이제와서 자기들한테 묻는 게 폭력적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그리고 성직자가 이런 말에 답을 안 한다면 그들이 이 사회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성소수자 반대 시위에 나간 것도 ‘자연스럽게’ 나간 거라니, 이 말도 정말 웃기다. 성소수자를 치료한답시고 (가톨릭 개신교를 막론하고) 기독교 안에서 행해지는 언어적/물리적 폭력과 감금, ‘교정’이라는 의미에서 행해지는 성폭행들을 생각하면 저런 일을 자연스럽다고 평하는 유 신부의 말과 저런 말에 공감해주는 김이나 씨의 말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누군가는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고도 한다지만, 나는 그 말도 아니라고 하고 싶다. 무식도 때로는 죄가 된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세상을 나쁜 길로 끌고 가는 무식은 죄다. (기독교 교리 내에서의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기회를 두고 다시 논하고 싶다. 한국에서 종교나 신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도, 성직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성경과 교리를 제대로 공부한 이가 드물다. 그들과의 논쟁은 내 체력 낭비일 뿐이고, 조만간 종교적 측면에서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다시 논하고자 한다.) 3 우리의 근대화는 서구화이고 기독화였다. 근대화가 반드시 서구화이거나 기독화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한국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창궐을 겪으면서 근대화는 곧 서구화며 기독화라는 등식을 가지고 살았다. 이런 가치관에 동의하건 말건 한국, 특히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공부를 했다는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 자체를 서유럽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고 인류의 역사가 오로지 그런 유럽적 체계가 지향하는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그다지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의 근본은 우선 무지(無知)다. 이건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거부하고 배우지 않아 생기는 무지가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가치, 지식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아 생기는 비의도적인 무지다. 이런 비의도적인 무지는 한 문화권 안에서 상식이 되고, 이런 상식은 아무 막힘 없이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버린다. 지금까지 우리는 짧게는 70년, 길게는 백여 년 정도 동안 유럽 중심의 사고 방식과 그 우월성이라는 가치를 유무형의 형태로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늘 이집트 이야기를 하고 서유럽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근대 이전의 우리 삶은 전부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어도 서술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 스스로를 변방으로 만들고 있고, 이런 사고 방식은 K-POP이 유행하고 한국 정부와 한국 문화의 일거수일투족에 전세계가 관심을 가지는 지금까지도 한국을 무슨 약소국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각설하고, 나는 성소수자 이야기를 하다가 왜 또 근대 이야기를 하는가?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도 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없다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없었을까 하면 그건 아니다. 음양으로 세계를 설명하던 가치관에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해설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기 때문에 음양이 결합하는 게 법칙이며 그러므로 음양의 결합이 아닌 동성애나 음양을 뒤바꾸는 혹은 음양이 뒤바뀌었다고 하는 트랜스젠더는 잘못된 것이라고 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모든 인간은 음양 이전의 태극이며 음양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각자의 행동에 달려 있으므로 음양으로 성性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세계에 기독교처럼 성소수자에 대해 혐오적 시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종교는 없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슬람권의 성소수자 혐오도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유럽 근대 문명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명도 많다. 전근대 일본 역시도 남성간의 동성애와 동성 성관계가 매우 성행했으며 그것이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근대 이후 일본의 민속을 근대적 학문으로 정립한 민속학자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国男, 1875~1962)는 동성애를 비롯해 비-이성애, 비-일부일처제 적인 성풍속에 대한 서술을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비판이 있다. 근대 이후 한국(조선) 사회에서 성소수자와 비-이성애적 성행위는 점점 음지로 향해갔다. 특히나 1920~3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에로/구로/난센스(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의 준말)’라는 흐름은 ‘엽기’라는 말을 유행시킴과 동시에 비정상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을 구분하며 자신이 사회적으로 비정상에 속해 있지 않음을 안심시키고 비정상과 접촉했음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로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는 조선에도 퍼지게 되었다. 이 당시 일본에서 ‘에로/구로/난센스’의 대상이 된 것은 주로 (특히 여성 사이의) 동성애, 비정상적 성행위, 정신질환, 성적 암시 혹은 노골적인 성묘사가 들어간 글이나 그림, 사이비 종교, 매우 특이한 범죄 등이었고, 이것이 사실상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향을 결정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조선에 퍼지고 조선 내에서는 어떤 풍조가 유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2018년에 나온 박차민정 선생의 『조선의 퀴어』라는 책을 추천한다.) 4 배우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한 게 2000년 9월이다. 그 이전에는 훈련소에 간 여장남자 이야기나 동성 성매매/원조교제, 여학생들 사이의 로맨틱/섹슈얼한 분위기 같은 것을 자극적인 흥미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소위 밀레니엄 이후, 한국 언론에서는 나름대로 차별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삶에 대해 다룬 적도 있고, 영화 <왕의 남자> 이후 일어난 드라마, 영화 작품에서의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동성애 붐은 수많은 작품 속에 동성애자(주로 게이) 캐릭터를 존재하게 했다. 하지만 수많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게이 혹은 남성답지 않은 남성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그 와중에 여성 성소수자들은 아예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퀴어 퍼레이드를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 이후부터는 퀴어축제는 물론이고 동성결혼/시민결합 합법화, 더 나아가서는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다루는 방송도 많아졌다. 하지만 다루는 방식은 늘 비슷하다. 동성애는 변태성욕이며 죄악이고 불법화/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와 기독교 계열 운동가가 등장하고 성소수자에 친화적인 비-성소수자가 등장하고 이름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성소수자(홍석천, 김조광수 등) 한 명을 등장시킨다. 그 자리에 참석한 단 한 명의 성소수자는 어떤 기분일지 내가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고 누군가는 이렇게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류의 방송을 보게 될 때마다 ‘저 한 명’, ‘저 한 명만’을 섭외한 이유가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 한 명은 방송 앞에서 너무 과격한 이야기를 자제하게 될 것이고, 자신들이 겪었던 피해 이야기 중에서 방송에서 언급해도 될 것과 언급해선 안 될 것, 도저히 언급하기 싫은 것을 계속 상기하며 구분해 말하려고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섭외도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5 종교의 자유는 믿을 권리와 믿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지 종교 교리랍시고 아무 언행이나 일삼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한다. 이와 동시에 말하는 사람, 특히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종교인들에게도 교리가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하기 이전에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 줬으면 좋겠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도 성소수자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특정 종교의 거친 언행을 여과없이 내보내는 일을 삼가줬으면 좋겠다.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혹시 상처 받지 않을까,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상처 받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 우리는 그것을 예의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매너라고 하고 비속어로는 싸가지라고 한다.
성소수자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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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독이 든 ‘사과’
박민 KBS 사장이 임명되자마자 방송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교체되었습니다. 도대체 KBS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했습니다. 1. 김의철 사장 해임 9월 12일, KBS 이사회는 적자로 인한 경영 악화, 리더십 상실, 불공정 편향 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직무유기, 고용안정 관련 노사합의를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김의철 사장을 해임제청 표결에 부쳤습니다. 곧바로, 대통령 재가에 의해 김의철 사장은 해임되었습니다. 2. 박민 KBS 사장 임명 김의철 사장이 해임된 후 10월 13일 KBS 이사회 11명 과반인 여권 인사 6명 찬성으로 박민 문화일보 편집국장이 KBS 사장 최종 후보로 결정되었습니다. 박민 후보자는 방송 경험 없는 신문 기자 출신입니다. 박민 후보자는 수차례의 과태료와 지방세 체납 이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3. 폐지, 교체, 인사 박민 사장은 취임식에서 재창조 수준의 조직 통폐합과 인력 재배치를 주저해선 안된다는 개혁을 요구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략기획실장, 보도본부장 등 주요 간부 전원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기존에 진행하던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진행자 교체도 이뤄졌습니다. 폐지된 프로그램은 대표적으로 ‘더 라이브’와 ‘주진우 라이브’가 있습니다. 주진우 라이브의 진행자 주진우 기자도 13일에 급작스레 하차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12일 오후에 라디오센터장 내정자가 주진우 라이브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본인이 센터장을 맡고, 주진우 기자가 하차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통보 정황을 밝힌 라디오 조합원의 입장도 있었습니다. (출처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 보도 내용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위 사례들이 공정성이 훼손된 뉴스였는지 이견이 있음에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보낸 것이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세훈 후보 내곡동 땅 의혹 검증 연속 보도 사례를 들며, 국민의힘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취재진을 고발했지만 검찰이 무혐의를 처분했다고 밝히며 공정성을 훼손한 보도라고 하는 수뇌부 입장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또한, 문제라고 지적한 보도와 관련해 회사와 취재진들에게 공격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KBS 스스로가 잘못된 보도라고 인정해버려 취재진은 대응이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박민 사장의 KBS에서 이런 사태가 있기 전에 최경영, 홍사훈 기자는 KBS를 떠났습니다. 이런 사태가 올 것이란 걸 예상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KBS 사장이 한 번 바뀌면 임원들 월급도 바뀌고, KBS 9시 뉴스 앵커도 바뀌고, 그 외 프로그램 진행자도 바뀝니다. 심지어 프로그램이 비정상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거쳐 폐지됩니다.이런 일을 이명박 정권 때부터 봐왔던 것 같습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KBS 사장 자리는 늘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부에서조차 응원받지 못하고 비판만 받고 있는 KBS입니다. KBS의 미래는 당분간 암울할 것으로 보입니다. KBS 박민 사장의 대국민 사과가 시청자들과 KBS에게 독이 든 ‘사과’였을지 아닌지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선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이진 않습니다. 박민 사장의 임명 다음 날 방송된 KBS NEWS 9의 시작 멘트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KBS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뉴스를 통해 정확하고 편견 없는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책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흔들었던 정파성 논란을 극복하고 앞으로 공영성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뉴스 프로그램으로 방송에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KBS 변화를 함께 지켜보시면서 냉철한 비판 애정 어린 질책 아낌없이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KBS의 앞길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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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알시파 병원 공격,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쟁의 불씨가 더욱 거세져 가는 가운데 안전을 보장받아야할 민간시설인 병원 조차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15일 가자지구 내 최고 의료기간인 알시파 병원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꾸준히 알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의 작전지휘 통제소가 있다고 주장해왔고, 여기에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하마스가 알시파 병원을 지휘통제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곳에 무기를 보관하고 인질을 억류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며 이스라엘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출처 동아일보).  전쟁의 상황에서 환자 및 의료진 수백명과 피란민들이 모여있는 알시파 병원은 그동안 연료, 전력, 식수 부족으로 재난을 겪고 있었는데 이번 공습으로 더욱 심각한 사태를 맞이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작전 수행 불과 30분 전에 대피 경고를 했고, 곧 이어 무장한 전차 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했습니다. 미처 피할 시간도 없이 민간인들이 병원 내 고립되어 굶주림과 부상,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관계자들은 작동을 멈춘 인큐베이터에서 조산아들을 꺼내 포일로 싸서 뜨거운 물 옆에 두며 체온을 유지시키는 등 남은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지속되었습니다. 인권 단체 ‘인권을 위한 의사들’의 국장은 전투원이 사용하는 병원에 대한 군사 행동은 중대한 군사적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국제법상 합법이라 지적하며 “운영중인 병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려면 대안이 없다는 대단히 높은 정도의 군사적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출처 뉴시스). 민간인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요. 18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의 유엔이 난민캠프를 꾸리고 있는 알파쿠라 학교를 겨냥해 공습을 가하여 최소 80여명이 숨졌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학교에 여성과 어린이들의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일보).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공격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군사작전은 자의적인 국제법 해석으로 전시 민간인 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한 것으로 국제 사회가 시급히 개입해야 하는 사안으로 보여집니다. 전시 민간인을 보호하는 국제법 원칙에 대한 재논의 또한 필요합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 설계된 전쟁법인 제네바 협약은 두 차례 세계대전 뒤 인간의 끝없는 잔혹성을 막고자 체결되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인도적 원칙으로 ‘구분의 원칙’과 ‘비례성의 원칙’이 핵심 원칙으로 알려져있는데요.  먼저 ‘구분의 원칙’을 통해 국제인도법상 군사적 표적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전장에서 폭격이 시작되면 사실상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이번 이스라엘군처럼 하마스 타겟을 식별하여 공격하고 있다는 명분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국제인도법의 ‘비례성의 원칙’에서 제1의 정서는 “우발적인 민간인 생명의 손실, 상해 등을 야기할 수 있는 우려가 있는 공격으로서, 소기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군사적 이익보다 과도한 공격”을 금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해석하면 전쟁에서 군사적 이익이 크다면 민간인의 살상도 사실상 허용하고 있기에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출처 중앙일보). 멈추지 않는 전쟁과 잔혹함이 도를 넘어서 인류의 존엄성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서 무차별적으로 희생되고 있는 민간인을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기력함과 슬픔이 밀려옵니다.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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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평화]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애석하게도 오늘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군대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최대한 적게 쓰려고 했으니까 조금만 참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올해 8월 말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TMI이지만 예비군 훈련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월요일에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 코로나19 확진 후 훈련에 참여하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내가 받아야 하는 훈련 이름이 더 당황스러웠다. 살아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저격수 훈련’이라니. 도대체 저격수 훈련은 어떤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현역 시절에 ‘특급사수’ 이력이 있으면 차출당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커뮤니티 글이 검색됐다. 불현듯 8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논산훈련소 사격장은 너무 더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여름에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외부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힘들다. 그때의 나도 그랬고, 빨리 쉬고 싶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단 한 번에(!) 20발 중 18발을 맞췄다. 사격 훈련이 끝날 때까지의 휴식은 물론이고, 어쩌다 보니 중대 1등을 기록해서 특급사수 표창까지 받았다. 그게 내 인생 마지막 특급사수였다. 물론 2년 가까운 군 생활에서 사격 훈련은 한참 더 있었다. 하지만 멋모르던 훈련병 시절 이후 나는 사격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나름의 계기가 있었다. 내가 생활했던 부대 안에는 동원훈련을 위한 사격장이 있었다. 사격장 뒤로는 순찰로가 있었고, 사격이 진행되는 동안엔 안전을 위해서 순찰을 하지 않았다. 군 생활 절반이 채 안 되었던 시기로 기억하는데, 영점 사격을 한창 하던 중 순찰로에서 병사 두 명이 내려오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총기의 조준선 너머로 보이는 표적이 단순한 종이, 플라스틱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총 쏘시는 거 좋아들하시니까 마지막 훈련 열심히 받고 가세요” 마지막 예비군 훈련은 운이 좋게도 3시간이나 일찍 끝났다. 어떻게든 집에 일찍 가고야 말겠다는 예비군들의 집념이 만들어 낸 사격 우수 성과 덕분이었다. 그런데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마냥 유쾌하진 않았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들었던 교관의 말이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뭘 위해서 오늘 총을 40발이나 쏜 걸까? 사격을 즐거워해도 되는 걸까?’ 전투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내 손에 있던 총기가 향했던 곳엔 종이 표적지가 있었지만 세계 곳곳에 있는 누군가의 손에 있는 총기는 살아있는 사람을 향하고 있다. 분쟁, 갈등, 투쟁의 역사에 적혀있는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2023년의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과거의 한반도를 비롯해 수많은 곳에서 사람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벌어졌다. 누군가에겐 투쟁이었고, 누군가는 분쟁 혹은 전쟁이라 표현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분쟁과 전쟁은 비단 사람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국 전쟁이 시작된 지 70년이 넘은 지금도 한반도에선 ‘빨갱이’, ‘종북좌파’ 같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념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시계가 느린 분들이 참 많다.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철 지난 이념을 악용하는 사람도 참 많다. 없는 간첩도 만들어 내던 시대보다야 덜 하겠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분쟁과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도 만들어 냈다.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명제다. 평화가 필요하고,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답은 사실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을 보며 한 가지 확실한 건 ‘힘에 의한 평화’와 같은 거짓말은 하지도, 믿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 무장조직 하마스의 군사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였다. 그 큰 차이가 평화를 만들어줬을까? 오히려 평화를 위한 노력 대신 큰 힘의 차이를 만들어 상대를 억압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 아닐까? 너무 뻔한 말 같지만 그래서 진짜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배경엔 분쟁과 전쟁 속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지속적인 관심이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총구를 들이밀면 총구가 돌아올 것이다. 반대로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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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입시경쟁 교육 현장에서 한 배를 탄 청소년과 교육노동자
(부제: 청소년과 교육노동자의 인권의 상호취약성과 상호의존성) '고양 시민 학생인권 인식도 조사 결과 발표 및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시민 토론회' (고양학생자치연구소 가론)(2023.11.18.토요일) 에 기고한 토론문 입니다.  1. 왜 ‘교권 강화’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걸까? 지난 7월 서이초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후, 고인의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괴롭힘에 대한 논란이 거세졌다. 대중은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에게 문제 제기하는 일 자체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고, 이에 언론도 함께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비도덕적 또는 저항적이거나 반사회적일 수 있는 행동까지도 악마화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여당과 대통령실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공교육 범위를 벗어난 킬러 문항으로 형성된 사교육 이권 카르텔 탓으로 돌리는 동시에, 좌파 교육감들이 학생인권조례를 내세워 학생의 인권만 강조하다가 수많은 교사의 인권을 사지로 내몰고 교권을 위축시킨 것 1)이라는 색깔론과 이념 갈등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8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인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규칙과 질서를 위한 법 집행을 못 하게 막으면 오히려 국민의 인권이 침해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인권을 마치 이해 당사자 간의 충돌 문제처럼 보는 왜곡된 관점을 보여준다. 이어서 그는 사법적 행정 권력으로서의 교권을 강조했다. “교권은 학교의 규칙을 제대로 지키게 하는 것이고, 교권이 확립되지 않으면 다른 학생의 인권도 학습권도 절대 보장될 수 없다”, “인권을 이유로 규칙을 위반하는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국가 권력의 남용을 정당화하면서 “2학기부터 당장 (교권 확립을 위한) 고시를 제정하라” 2)는 직접적인 지시를 내렸다. 8월 17일, 교육부가 발표한 “교원 학생생활지도 고시안”은 불명확하고 자의적인 기준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너무나 많다. 이는 학생에게 방어할 기회조차 없이 교사의 자의적 판단으로 바로 교실에서 분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며 폭력적인 교실 문화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학생에 대한 (물리적) 제지, 분리, 물품의 조사와 보관과 같은 기본권 제한 내용과 간접 체벌을 공식화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법성이 분명하다. 이러한 정부의 인권 침해적인 행정 법규는 어떠한 민주적 지원 체계와 예산을 비롯한 인력과 제도조차 없이 무방비로 학교 현장을 혼란과 갈등 상황으로 내몰고 있었다. 각자도생인 교육 현장에서 인권 감수성을 가진 교사들 또한 무기력하기만 하다. ‘내가 여기서 말해봤자 뭐가 바뀌겠어? 어차피 (관리자의) 답은 정해져 있는데…’라고 그저 문제를 방관하기에는 교사가 너무나도 과도한 독박 업무와 성과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내가 임용 경쟁시험을 통과해 14년 동안 겪었던 교사 사회는 너무나도 공고하게 승진제도를 기반으로 한 노동 착취 관계와 하향식(top-down) 관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개인이 이해관계와 보신주의로 뭉쳐진 조직을 상대로 직접 저항하고 양심의 자유를 운운하기에는 한없이 너무나 약하다. 또한 백인,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 정규직 중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Normal Family Ideology)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교사 사이에서, 심지어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크게 부딪히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교권이란 미명 하의 ‘특권’을 성찰하는 일이 개인적으로도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권의 포기는, 곧 정규직 교사(중간관리자) 사회에서의 낙인, 고립에 의한 불안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교권 논쟁이 학생 인권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이 부당한 이유 대체 ‘교권’이란 무엇인가? 보통 교권은 교사를 위하는 것, 존경하는 것으로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현장 교사 중에서 ‘교사-학생-양육자’의 위계적 관계와 불평등성을 지적하거나 성찰하는 이들이 매우 드물어 보인다. 일상에서 “교사의 말에 학생과 양육자가 순응해야 하며, 교사가 학생에게 무언가를 못하게 하는 일(체벌 및 반성문 강요 금지 등) 또는 학생과 보호자가 교사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일 자체가 교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 3)를 매우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정작 ‘교권’의 실체는 임의적이고 불명확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토론되지 않는다. 교육 당사자조차도 교권을 학생 및 학부모와의 갈등 상황과 맥락을 지우고 이해관계에 맞춰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교육 3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의 관계를 분열시키고 불신하게 만든다. 실제로 ‘교권’은 현장 교사에게 동료와 동료 시민과 돌봄으로 연결될 기회를 빼앗아 버리기도 한다. 고도화된 입시경쟁 교육 안에서 누구나 생명보다 물질과 이윤이 최우선으로 여겨지는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단지 주류 기득권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착취와 희생, 차별을 겪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존엄한 시민 주체(사회적이면서 정치적 존재)로서의 평등한 대화와 토론, 돌봄을 체화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는 전혀 보장받을 수가 없다. 교실에서 민주적인 제도와 문화가 싹을 틔우고 풍성하게 연결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인 경쟁 교육 환경에서 ‘교권’은 국가가 공인하는 체벌과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이미 기존의 학교생활 규정에도 여전히 명시되어 있다. 소위 ‘학생답지 못한’, ‘학생 생활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때, 공공연하게 교실과 학교에서 ‘문제 학생’으로 낙인된다. 교실 밖으로 바로 분리되어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자기 의사를 스스로 표현할 기회조차 없이 진술서와 반성문을 쓰도록 압력을 받는다. ‘정당한 교육활동’이라는 명목으로 간접 체벌과 정서적 학대가 공공연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정당화 해왔다. 여당과 대통령실, 교사들이 대대적으로 교권 강화를 표방하는 가운데, 대중도 함께 나서서 교권 강화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 또한 (청소년·노동자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기득권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성공 신화를 내면화한 노동자 계급일수록, 무한 시험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경험하다 보니, 고소득 상위 계급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상위 가치로 여기며 욕망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개인이 공정한 선발 시험을 통해 상위 계층으로 갈 수 있는 자격증과 졸업장을 갖추고, 높은 스펙(학점, 점수, 해외 연수 등)을 쌓아서 취업 선발 시험에 통과하도록 하며, 이성애 결혼과 동시에 정상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게 하며 기존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모든 과정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안정적으로 실행시켜줄, 국가와 사회의 의무와 책임을 대신해서 처리해 줄 중간관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가속화 하는 생태학살과 무한 자본증식을 추구하는 자본가와 그들의 권한을 위임받은 관리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지우고 은폐한다. 갈등과 폭력의 구조적 원인인 인종과 성별, 계급 불평등이 애초에 없는 것처럼 여기며, 개인이 범법행위를 저지른 사회적 배경과 맥락을 지우며, 사회규범을 어긴 개인을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악마로 규정하기까지 한다. 동시에 정부와 국가가 적극적 평화 추구와 불평등을 철폐하는 사회적 책임을 방관하고 개인에게 미루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교권에 대한 자성과 비판이 더욱 후퇴하고 있다. 3. 교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교권'의 개념, 그리고 교사의 노동권 보장의 필요성 현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교권’은 교사가 학생에게 학교 규칙을 제대로 지키게 하는 것이다. 이때 교사와 학생에게 기본적으로 강제되고 있는 역할에 대해 분석해보자. 교사는 ‘교권’이라는 권력과 권한을 가진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 요구받는다. 학생에게 학습 의무를 부과하고,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규율과 규범을 지키도록 관리 및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강제한다. 동시에 교사에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하게 부과하여 실질적인 노동권과 정치기본권을 심각하게 탄압하고 있다. 교사를 포함한 교육노동자들은 교육정책의 맹목적인 대상이자 현장 실행자로 전락한다. 반면에, 아동 또는 청소년인 학생은 나이를 이유로 ‘미성숙한 존재’로 대상화된다. 그렇기에 학생은 학교라는 획일적 공간 안에서 교사의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학교 자치에 참여할 권리, 노동권과 (투표권을 포함한) 정치권조차 박탈당한다. 교육할 대상으로서 교사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공부할 의무를 갖는 존재 4)로 취급받는다. 이를 통해 기존의 사회체제의 이념과 체제의 규범을 내면화하도록 요구받는다. 수만 명에 달하는 교사들은 거리에 나와 고인을 추모하면서 생존권을 주장했지만, 동시에 노동권과 정치기본권을 위한 투쟁을 위한 목소리를 앞장서서 억압하기도 했다. 특히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에서는 집회 주체들이 나서서 정치 중립적 성격을 표명하고, 질서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선전물 배부를 가로막기도 하고, 사상과 이념, 노동조합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특히 이날, 정규직 교사 중심의 노조들은 검은 점으로 거리에 선 개개인의 교사로 ‘교권 보호를 위한 아동복지법 개정’을 앞다퉈 촉구했다. 5) 비록 이 개정안이 학생과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겪는 교사의 고통과 고충을 최대한 줄이려는 취지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관한 행위는 아동 학대로 보지 않는 ‘면책’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교사들의 움직임이 교사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운동의 흐름과 연대하며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을까? 아동 학대를 부추기는 한국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을까?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자본주의 사회체제와 입시경쟁 교육체제, 차별과 혐오 문화에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나는 교육 현장에서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 근거로 ‘교권강화’를 표방한 경기도 교육청의 무리한 학생인권조례 개악 시도와 각 학교의 학칙 개정 압박이 더해지고 있으며, 청소년 활동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게다가 교육 개혁을 외치는 윤석열 정부는 저출생과 학령기 인구 감소를 빌미로 한 교육 예산 축소로 교원정원을 감축할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교원평가체제를 전환하여 승진·인사·임금과 연계한 직무성과급제로의 개편으로 불안정 교육노동과 교원구조조정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6) "한국 사회는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돌봄 책임을 가족, 특히 여성(어머니를 비롯한 양육자)에게 독점적으로 지운다. 이는 가족(어머니)에게 커다란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그만큼의 독점적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어린이·청소년들은 학대를 당하더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두려워하며 가족 관계에 매달리게 된다. 이는 공공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누리기 어렵게 하며, 삶의 폭을 제한하여 학대 같은 인권침해에 대처할 수 있는 자원과 역량도 줄어들게 만든다." 7)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9월 17일, 아동 관련 학회 전문가들은 “교육 현장을 아동복지법의 아동 학대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킬 수 없다”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해당 아동복지법 조항 개정이 아동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고, 교사의 교육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전반적 인권 보호의 체계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 8)했다. 4. 교사의 노동권과 학생인권과의 연관성 이 교권 논의에서도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들이 있다. 학교 안팎에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림자 취급을 받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며, 시설에 거주하거나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장애인’들이며, ‘교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교육노동자’ 등 무수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실제로 교육활동과 관련된 청소, 급식, 돌봄을 비롯한 필수노동과 행정업무를 비롯해 시간제 계약 강사로 노동하는 교육노동자 중에는 저소득층, 저학력, 여성, 고령의 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교권’과 동시에 생존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 노조할 권리 등을 포함한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노동시간 착취를 당하며 아픈 몸으로 일하다가 노동 시장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결론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부터 교사는 교권이라는 ‘특권’을 가진 노동자였다. 동시에 지식전달자이자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강요받았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무한 경쟁 입시교육 체제 내에서 가속화되는 불평등과 양극화는 교사에게 ‘공정한 평가와 훈육’을 하도록 강제하면서, 죽음의 노동 환경 안에서 각자도생으로 절박하게 버틸 수밖에 없는, 심지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증을 호소하게 만든다. 지금 당장,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인권, 노동권, 정치기본권의 보장이 시급하고 절박하다. 또한,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돌봄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가족을 벗어나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곧 적절한 주거와 다양한 관계가 보장되어야 학대 문제를 더는 감추지 않고 다른 삶을 모색할 수 있다." 9) 청소년과 교육노동자의 인권은 상호취약성을 가지고 상호의존하고 있다. 죽음의 입시경쟁 교육 현장에서 청소년과 비정규직 여성 교육노동자를 비롯한 교육노동자들은 한 배에 탄 것이다. 10) (끝) 1) <서이초 교사 사망에도 헛소리를 하는 대통령실과 여당>, 굿모닝 충청, (2023.07.23.) 2) <[현장영상] '서이초 교사 사망' 2주 만에...윤 대통령 "교권확립 고시 제정하라" >, JTBC, (2023.07.31.) 3 )공현, <[들을 짓는 사람+들] 정말로 학생이 교육의 주체라고 생각하고 있나>, 인권교육센터 들, (2023.10.10.) (직접인용) 4) 공현, <[들을 짓는 사람+들] 정말로 학생이 교육의 주체라고 생각하고 있나>, 인권교육센터 들, (2023.10.10.) (직접인용) 5) <국회 앞에 모인 교사 10만명…"교권보호 4법은 미봉책">, 뉴시스, (2023.10.28.) 6) 최덕현, <윤석열 정권의 교육개악, 어디로 향할 것인가?>, 교육노동자현장실천, (2023.10.27.) 7)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미안하다는 말로는 아동학대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린이·청소년 삶의 사회화가 필요한 이유”, 책<바로 지금,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2023), p.63 8) <아동학회들 "아동-교사 권리 충돌 아냐"…아동학대법 개정 우려>, 연합뉴스, (2023.09.17.) 9)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미안하다는 말로는 아동학대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린이·청소년 삶의 사회화가 필요한 이유”, 책<바로 지금,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2023), p.64 (직접인용) 10)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여성’과 ‘청소년’은 닮은꼴, 한 배에 탔다: 여학생의 ‘우수함’은 차별의 결과일까?”, 책<바로 지금,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2023), p.4
프랑스와 수학...쥐어짜기 수학 교육의 한계
프랑스에 살면서 관찰하고 느꼈던 이웃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아이들은 늘 공부보다 놀기에 바빴다. 동네에는 개구장이 아이들이 많았고, 노인들은 길에 서서 이웃들과 하루종일 수다를 떨었다. 직장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몰려다니며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떠들곤 했다. 출근했다고 한 잔, 점심먹고 한 잔, 달콤한 각설탕을 찍어 먹는 에스프레소는 그야말로 수다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각설탕이 나왔으니 각설하고….  프랑스는 수학 잘하기로 소문난 나라다. 지금까지 총 64명의 필즈상 수상자 중 프랑스인이 받은 메달은 총 14개다. 물론 숫자로만 따지면 미국이 21개로 당연히 제일 많다. 하지만 미국의 인구가 5배나 많으므로 (미국 3억3천만, 프랑스 6천7백만), 인구 대비로 따지면 프랑스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야말로 원탑이다. 수학이나 물리교과서에 나오는 프랑스 수학자의 이름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미스터리 같은 통계도 있다. 바로 수학영재를 뽑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수상자 명단이다. 여기서는 중국이 단연 원탑이다. 러시아와 미국도 강하다. 우리나라 역시 강하다. 우리나라는 2012, 2017, 2019년 참가자 전원이 금메달을 받은 나라로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수학 강국이다. (이쯤에서 미국의 올림피아드 메달이 아시아계 학생들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살짝).  그럼 뭐가 미스터리인가? 바로 프랑스다. 눈을 씻고 봐도 프랑스의 수학올림피아드 성적은 상위권에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이 금메달을 168개나 가져갔고, 미국이 137개, 그리고 1988년에나 되서야 참여하기 시작한 대한민국도 86개의 금메달이 있는데,  자그마치 1967년부터 참여해온 수학 원조의 국가, 프랑스의 금메달은 고작 26개에 지나지 않는다. 가히 OECD 최하위 수학 성적의 나라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통계인가. 이 두 개의 통계를 연관지어 뭘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애들 쥐어짜는 수학교육 방식이 고등학교때까지는 어찌 어찌 잘 작동하지만, 그 이후 학문의 세계에서는 안 통한다는 점만 얘기하고 싶다. 덧) 여러번 언급했지만 물리에 관해서도 비슷한 통계가 있다. 일본은 물리 올림피아드 노-메달 국가로 유명하다.  반면 우리는 물리 올림피아드 최상위 국가로, 수년째 올림피아드 금메달을 휩쓸고 있다. 노벨상 수상 실적은 정반대다.  잠정적인 결론: 애들 쥐어 짜지 말자. 고등학교때까지 놀게 내버려두고, 대학 들어 온 다음부터 쥐어짜자... 작성자: 박인규(서울시립대학교 물리학과)출처본 글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ESC에서 운영 중인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숲사이(원문링크) '에 등록된 정보입니다.ESC: https://www.esckorea.org/숲사이: https://soopsci.com/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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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요즘은 많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안부를 묻는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밤새 모니터를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습과 의료시스템 붕괴, 난민 상황들을 모니터링하고, 그 곳의 활동가들과 간신히 연결을 이어나가면서 지내고 있는 동료들에게, “잘 지내요?”라는 인사가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일 것 같아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또 다시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니까요.  저는 2018년부터 병역거부운동과 무기거래반대운동을 하는 평화활동가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악플과 비난을 경험했어요. 이를테면 ‘군대도 안갔다온 게 어디서 큰 소리냐’, ‘무기가 있어야 우리를 지키는 거다’, ‘빨갱이다. 쳐서 죽여야 된다’ 이런 말들을 들어왔어요. 근데 저를 정말로 상처입게 만드는 말은 그런 말들이 아니더라고요. 전쟁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거나, 정치적으로 필요악이라는 말, 어차피 내 일은 아니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저항 없이 쭈그러드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자포자기와 자조가 섞인 말들이 가져다 주는 절망은 생각보다 큰 것이더군요. 불과 한 달 만에 1만 개의 찬란한 우주가 사라졌는데요 (각주1).  우리 곁에  숨쉬던 그 많은 이웃들을 한꺼번에 잃었는데요.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요. 정말 그럴까요? 가끔은 그 말에 맞서 싸우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사흘 전 신촌역 부근이었습니다. 약속시간에 늦어서 바쁘게 걸음을 서두르고 있었어요. 어디선가 퍽 퍽 퍽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횟집이었습니다. 사람들로 꽉 찬 횟집 앞이었어요. 제 몸통의 반 만한 물살이, 소위 ‘생선’이라고 하죠. 그 물살이가 뜰채에 잡힌 채 아스팔트 위에 마구 내동댕이 쳐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물살이를 회로 뜨기 전에 죽이거나 기절 시키는 과정이었겠지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팔딱거림이 멈출 때까지 몇 번이고 퍽, 퍽, 퍽, 차갑고 단단한 아스팔트 위로 내동댕이 쳐지고 있었습니다. 제 몸통 반만한 물살이가 피를 흘리면서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어요. 물살이가 고통스럽게 죽임당하고 있었고, 그 장면이 너무 끔찍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가던 길을 서둘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순간이 계속 떠올랐어요.  ‘왜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을까.’ 전쟁이 남의 일이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은 어쩌면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믿기지 않는 잔혹한 대량학살을 매일같이 뉴스로 보고 있는데, 그게 너무 끔찍하잖아요. 사상자를 가리키는 어마어마한 숫자들 뒤로, 방금까지 살아 숨쉬던 삶들이 있다는 걸 차라리 믿어버리지 않고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저들의' 죽음과 ‘나의’ 삶을 분리시켜버리는 게 아닐까요?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을테지만, 무언가를 목격한 사람에게는 책임이 부여된다고 믿습니다. 길을 걷다 옆 사람이 갑자기 쓰러진다면 누구든 119에 전화를 걸테니까요.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그 장면들을 우리는 지난 한달 간 계속해서 목격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더 오랜시간 지속되어온 점령과 억압을 애써 외면해왔지요. 저는 그 학살을 목격한 이상, 우리 모두에게 이미 책임이 생겨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해요. 폭력을 승인하지도, 폭력에 익숙해지지도 않을 책임, 그리고 이 전쟁을 끝내라고 말할 책임 말입니다.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 그리고 그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이 세계 9위의 무기수출국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이스라엘 무기수출액은 3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2014년 가자분쟁으로 대다수가 민간인이었던 수천 명 팔레스타인인이 희생된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꾸준히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수출을 허가했고, 한국의 무기기업들은 배를 불려온 것이죠.  바로 지난 달 있었던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기박람회 아덱스 (ADEX) (각주 2)에서는 이스라엘관을 운영하며 이스라엘 국방부와 무기 회사들이 비즈니스를 펼쳤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정당화하며 ‘전장에서 증명된’ 이스라엘의 무기들을 홍보하고 있었어요. 그 무기들의 성능을 증명하는 ‘전장’은 그간 이스라엘 점령군으로부터 셀 수 없는 폭격과 전쟁범죄를 겪은 팔레스타인이지요. 이 전쟁으로 방산업계는 또 한 번 절호의 찬스가 왔다며 무기 판매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크게 웃는 정치 카르텔과 부패한 권력자, 그리고 무기상인들을 곁에 둔 이상, 이 전쟁은 남의 일일 수도, 남의 일이어서도 안됩니다. 전쟁은 우리 일상 속에 켜켜이 쌓인 차별과 착취, 암묵적 동의, 승인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지속됩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다는 말입니다. 무기 판매 중단을 요구하고, 이스라엘 군대를 지원하는 기업들을 보이콧하고,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현지의 상황과 목소리를 알리는 글과 영상을 공유하고, 시위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런 행동들이 있을 때에만 전쟁을 멈출 수 있습니다. 무력감에 젖을 이유가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으니까요.  전쟁을 끝내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 어제 (11/17), 서울 보신각 앞에서는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가 하루 종일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위는 시민들의 신발 기부로 이루어졌어요. 신발들의 수신처였던 참여연대 사무실에는 수십개의 택배 박스가 쌓였습니다. 애초에 2천 켤레를 목표로 시작했던 신발 기부는, 3천 켤레의 신발이 도착하며 마감되었습니다. 그 신발들을 하나 하나 옮기며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습니다. 저마다의 사랑과 희망과 꿈, 그리고 절망과 분노 역시 품었을 삶들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뉴스로, 인터넷으로 들려오는 가자지구의 소식에 눈물 지으며 신발을 모아 보내준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 시민들의 마음과 호소가 하루 동안 보신각 앞을 채웠습니다. 그 호소는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세지가 되어 국내외에 전달되었고요. 전쟁을 끝낼 힘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더더욱 발휘할 때, 우리는 마침내 전쟁을 끝내게 되겠지요. 너무 끔찍해서 때로는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지지만, 그래도 끝까지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바라보자고 용기내어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의 목격자가 된 책임을 함께 지자고요. 그 책임이 때론 버겁고 힘들지 몰라도, 도망가는 것 보다는 덜 버겁지 않을까요. 다음 시위는 11월 26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진행됩니다. 함께해주세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피해주민 긴급구호를 위한 모금에 참여해주세요. (클릭) (각주 1) 지난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약 1만 2천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각주 2) 한국에서는 한 해에도 여러 차례 무기박람회가 열린다. 그 중 가장 큰 규모인 서울 아덱스가 매 홀수년 10월에 개최된다. 올해 서울 아덱스는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성남 서울공항에서 진행됐다. 피스모모를 비롯한 국내 평화/인권/기후 단체들이 아덱스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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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평화] 평화를 위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중
국제 분쟁이 일어나고 일상 속 변화를 실감한 순간이 있나요? 어떤 순간인가요? 나는 생일을 맞이해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서 깼다. 애타게 생일을 기다리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일은 내가 태어난 날인만큼 소중하고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22년 나의 생일을 나는 차마 즐겁게 보낼 수 없었다. 생일 전날 새벽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뒤부터였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나의 생일날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맞이하는 날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정도가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쓸모없어 보였고, 점점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하지만, 충격도 한순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무언가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혼자 걱정만 한다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로, 내 일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로서, 나의 활동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2주 동안 기숙사에 머무르기 때문에, 이제는 집보다 학교가 더 익숙하고 친밀하다. 그렇지만, 또 그만큼 외부 활동을 많이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그래도 나는 그 안에서 나름대로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갈 길을 만들어 갔다. 전쟁이 일어난 후, 학교 내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앉아서만 지켜볼 수 없었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학생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깊이 엉켜있는 역사를 공부했고, 서방권 나라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이 다루었다. 그 뒤, 다른 학생들에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전쟁으로 인해 나타나는 참혹함과 불행함을 벽보에 붙여 알렸다. 외부 활동을 꾸준히 하기는 어려웠지만, 해바라기와 촛불을 들고 반전시위에 학생들과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내 일상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해갔다. 그렇게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어느덧 학교 내 반전 NGO에서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저희 NGO 소식이 궁금하시면! 관심이 있으시면! 🥰 인스타그램 : lets__peace / 이메일 : lets_peace@naver.com) 지금 평화가 가장 필요한 국제 분쟁 지역은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세계지도를 보면 조각 케이크처럼 아주 반듯하게 잘린 지역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이 그러하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처음부터 반듯한 국경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대항해시대를 시작으로 수많은 서방권 국가가 아프리카를 침략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들은 금과 은을 얻기 위해 광산을 캤고, 끝이 보이질 않는 플랜테이션을 만들었으며, 아프리카 부족민들을 짐승 취급했다.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서방권 국가들의 무분별한 약탈과 만행을 저지른 시대가 대항해시대다. 그 당시 국부의 가치는 국가가 얼마나 많은 금과 은을 보유하는지에 있었다. 그렇기에 유럽 열강들은 금과 은을 더 많이 얻기 위한 땅따먹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프리카 대륙이 국부를 늘리는 땅따먹기에 불과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갈라진 땅처럼 조각조각 부서졌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유럽 열강들은 그들의 편의로 그은 국경선 안에 서로 다른 부족들을 강제로 거주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이 가지고 온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이념은 더 많은 갈등과 분쟁을 일으켰다.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프리카 대륙은 분쟁 속에 있다. 외부의 세력에 의해 갈라진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할까. 부족들 간의 크고 작은 갈등과 싸움은 계속 일어날 것이고, 갑작스러운 해방은 나라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조각난 땅 위의 삶은 굉장히 불안하고 무서울 수밖에 없다. 몇백 년간의 지배가 현재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이다. 너무나도 슬픈 건, 이러한 분쟁을 만든 나라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 꼬여버린 실타래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아프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게 참 슬프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많은 나라들은 다른 외부 세력으로 인해 땅이 갈라진 채로 살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다. 그러한 나라들에 평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국제분쟁을 멈추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국제 분쟁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갈등이 전쟁을 낳는다. 전쟁이 일어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과정이 존재한다. 가족 간의 갈등이, 마을의 갈등으로 번지고, 그것은 나라 안의 갈등으로, 결국 나라 간 혹은 나라 안의 전쟁을 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이 빨리 일어나기도 하지만, 몇백 년간의 길고 긴 싸움 끝에 터지는 것이 전쟁이다. 그러한 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것이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처음에 나는 전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좌절이 먼저 들었다. 아무리 전쟁이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켜도 막을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어떤 수가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 내 고민을 수업 때 털어놓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평화 시에 서로 간의 교류와 외교를 잘해야지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서야 교류하려고 하고, 외교를 하려고 하니 해결이 되지 않는 거지.” 너무 와닿는 말이었다. 왜 우리는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만, 극한의 상황까지 가야지만, 그제야 행동하는 걸까.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민간인 차원에서도. 그렇기에 작은 실천도, 매우 소중하다. 우리 안의 평화를, 내 주변의 평화부터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쟁은 거대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작은 눈덩이가 커지고, 커져서 괴물이 된 것이 전쟁일 뿐이다. 작은 눈덩이가 산에서 굴러가는 걸 막는다면, 우리는 전쟁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당연히 시위 한 번이, 발언 한 번이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이고 모이면,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굵직한 사건들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굵직한 사건이 될 수 있는 건, 역사로 남을 수 있는 건 그전에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은 실천이 무의미하지 않다는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걸 계속 명심해야 한다.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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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평화] 돈이 되는 분쟁, 돈이 되는 평화
좋은 군용장비를 보면 멋있다고 느꼈습니다. 기계화부대에서 복무한 탓에 전차나 자주포 같은건 많이 봤지만, 소총이나 개인 보호구 지급은 빈약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요. 북한과 주변 국가들에 대응할 수 있는 최첨단 무기가 개발되면 국뽕이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로켓 발사 성공 이후 그곳에 핵탄두만 실으면 한국은 바로 막강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는 밈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습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고 겹겹으로 열강이 감싸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이니 이정야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튼튼한 군사적 역량이 한국 경제와 일상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요. 그런데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정계에서 쏟아져나왔습니다. 이와 동시에 나토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무기의 빈 자리를 한국의 첨단무기가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북한의 탄환이 러시아로 오래 전부터 제공되어 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 1년 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72%), 한국항공우주산업(75.1%), LIG넥스원(64.8%), 현대로템(74.8%) 등 국내 주요 방산업체의 주가는 급등했다. 이는 록히드 마틴(47.7%), 레이시온(현 RTX, 24.9%), 노스롭 그루먼(54.1%), 제너럴 다이내믹스(33.2%) 등 세계 주요 방산업체들보다도 훨씬 높은 증가율이라고 합니다. (2023.11.03 이로운넷) 한반도에서 잠시 동안 포탄이 오가지 않았을 뿐이지, 한반도의 무기가 대륙을 옮겨 대리전을 준비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과 수다떨며 지나다니던 광화문 일대에 군용 장비가 다니는 열병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순간 한반도가 아직 국제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2015년 6월에 입대했고 8월에 자대배치를 받았는데요.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유서를 쓰고 손톱을 잘라 편지봉투에 넣었습니다. 전입 신고식은 아니었고, 일명 ‘서부전선 포격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 전입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대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사이렌이 울렸고, 한동안은 완전군장을 한 채 취침하며 부대는 출동 준비 상태에서 대기했습니다.  오히려 고착화된 분쟁상황은 이런 시간적인 대기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외의 갑작스러운 침공, 쿠테타 등은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이 대응할 시간을 확보해주지 않습니다. 또한  매 순간이 갈등 폭발 직전의 대기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죽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지금 평화가 가장 필요한 지역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매일 보도가 되는 팔레스타인 지방일지, 지금은 관심이 시들해진 우크라이나 지방 일지, 이제는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도 못하는 미얀마일지 저는 답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부터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주변에 이야기 하고 다니는게 있는데요. 바로 ‘져도 된다’는 것입니다. 지긋지긋한 정치 양극화를 마치려면 지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분쟁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치에서 지면 권력만 잃어버리지만, 분쟁과 전쟁에서 패배의 기미를 보이면 죽음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평화는 경제적이라구요. 한반도미래경제포럼 김지수 대표는 통일은 우리에게 1억 명에 달하는 한국어권 시장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합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물리적으로 이어질 동북삼성의 인구를 다 합친 시장이라면 가능한 숫자입니다. (통일이 무조건적인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상징적인 표현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이렇게 고착화되고 누군가에겐 이익이 되는 분쟁도 평화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떳떳하게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뺏어서 얻어질 이익이 아니라 합쳐서 지켜낼 공동체의 이익을 더 상상하고 싶습니다.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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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AI 시대, 민주주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챗GPT 등장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전,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 발전으로 인해 변화 될 사회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 정치와 정치 양극화, 구별하기 어려운 딥페이크와 허위정보의 확산, 기업의 플랫폼 및 데이터 독점, 플랫폼 노동의 확산과 일자리의 양과 질 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AI를 활용하여 수많은 일들을 더욱 빠르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인간은 AI를 활용하여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됩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로 인해 민주주의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은 시민사회가 디지털 기술 변화에 대해 이해하고 시급히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에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의 시대,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시장의 확장에 따른 사회변화를 이해하고, 이 변화가 민주주의에 미칠 영향과 그에 대한 대응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재단, 노회찬재단,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세교연구소, 지리산이음가 함께 모여 사회의 담대한 전환을 이뤄내고자 하는 논의의 자리들을 만들어가는 ‘민주주의랩'에서 주최한 “위기의 시대, 담대한 전환" 컨퍼런스가 11월 14일부터 5일간 진행되었습니다. “AI 시대, 민주주의 위기인가? 기회인가?”는 그 중 한 세션으로 빠띠가 주관한 세션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아이스브레이킹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들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하기에 앞서 서로 편견을 가지거나, 미워하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각기 다른 사람과 무리들의 공존과 더불어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공론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처럼 각기 다른 별, 별무리가 모여 은하가 되듯이 캠페인즈 은하 체험을 통해 처음 만난 동료 시민과의 유대감을 만들었습니다.   생성형AI시대, 디지털 생태계 위기와 시민사회의 대응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AI의 열풍을 넘어서 범용적 영향력, 기술 취약성과 위험사회적 실체를 파악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자원 배치와 관계의 큐레이션, 사유와 탐구의 탈숙련화라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며 “AI는 자동화된 거대 ‘리믹스 자판기’와 흡사한데, 창의성이 섞여있지만 대체로 주류 구범과 표준화된 세계관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로는 약자와 소수 의견이 보이지 않는 것, 인간 사유 과정이 퇴화되는 것 AI 의존형 인간이 형성되는 것 그리고 노동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반생태주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시민사회의 대응으로는 AI 시민권리 공동 선언, AI 데이터 시민 공유 권리 모색, 약자 타자와 함께 하는 AI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합니다.”라며 발제를 마쳤습니다.  발제자료 다운로드(이광석 교수) AI시대,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윤형중 LAB2050 대표는 “AI 리터러시는 비판적 평가를 넘어 이를 활용할 수 있고, 개념을 알고 구현,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변화된 사회문화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또한 노동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환적 사회보장, 소득분배체계, 사회보험, AI 활용 교육, 소수자 보호, 커뮤니케이션 문화, AI 규범 위한 국제적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라며 인공지능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발제자료 다운로드(윤형중 대표)   생성 인공지능과 민주주의-탈진실사회의 디지털 시민성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은 “(지금은) 가장 많이 배운 사람들이 사는 탈진실의 시대이자 허위정보를 많이 생산하는 정치인이 인기가 높은 시대이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믿을만한 허위정보는 생산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라며 “지금은 알고리즘이 보편화된 알고리즘 사회인데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설계자와 운영자의 의도대로 작동하고 있고 알고리즘은 편향적입니다.”, “탈진실의 시대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제공되고 편향의 영향 확대되고 있습니다.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는 시대입니다.”, “이에 AI 시대의 새로운 시민성, 디지털 시민성이 필요합니다. 그 해답은 교육과 제도의 변화에 있습니다.”라는 제언을 남겼습니다. 발제자료 다운로드(구본권 소장) 인공지능의 시대, 민주주의의 미래 만들기  권오현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장은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오면서 두려움과 우려가 생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있고, 민주주의를 자동화 해볼까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동화에 따른 다양한 대중과 소수자가 배제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며 현재의 상황을 진단했습니다. 또한 “가짜뉴스가 비일비재하게 퍼지고 있는데, 이를 거짓말쟁이의 배당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위정보만 문제가 아니라 진실도 허위정보로 취급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배당금처럼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여러 행동이 필요한데, 허위조작 정보의 공격에 대응, 정책 결정의 자동화/보조적 사용을 감시,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관점 확대와 시민 역량 확보, 집단지성과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한 공론장,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이 고민, 실질적인 기술 통제력 확보를 위한 공동체의 디지털 자산화가 중요합니다.”라며 발제를 마쳤습니다.  발제자료 다운로드(권오현 이사장) 동료 시민들과 나눈 이야기 발제 후 세션에 참여한 시민들도 ‘AI, 민주주의 위기인가? 기회인가?’에 대한 토론을 나눴습니다. 참여한 시민들은 “기술 자체에는 긍정적이고, 가짜를 만드는 기술을 늘면 검증하는 기술도 늘 것. 혼란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표를 통해 의사결정하는데, 그 행위마저 AI 영향에 들게 된다면 위기가 될 것 같아요.”, “자스민혁명. 아랍의 봄 현상. 기폭제가 트위터였는데요. (인공지능이)직접 민주주의의 도구이자 새로운 민주주의가 새롭게 형성될 것이라는 큰 기대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건 기술이자 매체이기 때문에, 매체 그 자체가 민주주의라고 하는 가치를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서 성인이 되기 전, 이해관계가 생기기 전에 미리 의무교육 단계에서 기술을 통해 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것인지 이야기해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캠페이너 여러분은 인공지능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하시나요? 기회라고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논의를 이어가주세요.  *김재경 캠페이너의 후속 토론을 소개합니다. [AI,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를 듣고, [AI, 민주주의의 '기회']를 얘기해보기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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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분단 찾기
숨은 분단 찾기   지난 5월 31일, 서울 지역 시민들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당일 아침 북한의 정찰위성이 발사되었기에 6시 41분을 기해 서울시에서는 경계경보를 발령한 것입니다. 위급재난문자의 내용은 꽤 섬뜩했습니다.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되었으니 대피할 준비를 하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없었지만, 아파트 단지와 거리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이른 아침 날라온 메시지는 많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 뉴스를 검색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 때문에 포털사이트까지 먹통이 되자,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올림픽대로 한가운데를 운전하다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하는지 고민했고, 집에서는 잠든 아이들을 깨워야 할지, 깨운다면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당황해야 했습니다. 물론 이 상황을 무감각하게 흘려보낸 사람들도 있었지만, 요란한 사이렌과 위급재난문자는 한 주가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일 아침 울리는 사이렌은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 신호니, 다시 놀라지 말라는 사전공지를 낳을 정도였습니다. 북한에서 미리 공지한 위성 발사에 서울시가 과잉 대응한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위기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한 것인지를 떠나, 5월 마지막 날의 위급재난 메시지는 단순히 평범한 아침의 일상만을 깨운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분단되어 있다는 것, 지금도 여전히 분단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개입해 작동하고 있음을 일깨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남북의 대치는 일상에서 그렇게 놀랄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군사분계선 주변에는 수십만의 군인과 엄청난 화력의 무기체계들이 집중되어 있음에도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무감각하게 흘러갑니다. 가파르게 오르는 전기요금을 걱정하고, 단골 식당의 기본 반찬 양과 개수가 줄어든 것에 민감해하지 남북 갈등이나 한반도 평화 이슈는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간혹 군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시기의 부모나 아니면 파주나 고성 등 접경지역을 방문할 때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아직도 전쟁 중이란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런 무감각에도 분단 현실은 우리 일상에 매우 깊숙이 작동하고 있다. 분단 자체가 아닌, 분단이 만들어낸 문화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간첩을 조심하고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누군가 숨어 있으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은 꼭 신고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분단 현실에서 북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미워하고, 증오한 70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회사나 공동체에서 상대가 내 편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따지고 싶어하는 편가르기 문화는 대표적인 분단 문화입니다. 우리는 70년 넘게 내 주변 사람이 친구인지 적인지 의심하도록 교육받았고, 의심은 경계를, 경계는 편가르기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편가르기는 어느 한 편에 반드시 속해야 한다는 경직된 이분법을 불러왔습니다. 다양한 선택과 다양한 취향을 존중해주지 못하고 의견도 통일, 입장도 통일, 심지어 메뉴도 통일해야 마음이 편하단 사람이 많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입장은 공동체를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라며 오히려 다양성을 불편하게 느껴왔습니다. 하지만 편가르기와 이분법 논리로 대표회는 경직된 사회는 우리 마음에 여유를 앗아가고 포용과 환대를 가로막았습니다. 옷차림이 좀 이상하거나 헤어스타일이 자유로우면 핀잔을 들었고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학교는 군대처럼 머리를 모두 삭발해야 했습니다. 학교 뿐 아니라 직장도 획일적인 병영문화가 강하게 작동했고, 건강하지 못한 남성성이 주류 문화로 인정받았습니다. 분단은 우리 일상을 병영처럼 획일화시켰고 경직된 사고 안에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환대와 포용은 설 곳을 잃어 왔습니다.   특별히 2023년 올해는 6.25 전쟁이 중단된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을 맺어 전쟁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언제든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전쟁에 정치는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편가르기와 증오를 자극합니다. 상대에 대한 미움이 곧 우리 편의 단결이라는 잘못된 사고가 좀처럼 고쳐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사회에 사이렌이 좀 더 울려야 합니다. 공습경보 사이렌 말고, 분단의 문화가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이렌 말입니다. 일상에 숨어 있는 분단의 문화를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분단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왜 우리 사회가 경직되어 있는지, 왜 우리는 이웃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기 어려워하는지, 무감각한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일상에 숨어 작동하는 분단의 마음을 일깨우지 못한다면 한반도 평화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갈등이 불편한 사람만이 갈등을 끝내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갈등 때문에 치러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느껴야 화해의 길을 용감히 걸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남북의 분단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달아야 평화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의심하고, 그만 미워하고, 그만 증오해도 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만남,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강고한 분단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깨닫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교실에, 우리 사무실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이분법으로 의심과 미움이 어떻게 숨어 작동하고 있는지 찾아봅시다. 그렇게 숨어 있는 분단 문화를 끄집어 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마주할 수 있고, 현실의 한계와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는 변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긴장된 적대감이 아니라 호기심의 환대가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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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의 공매도 전면 금지 발표, 주식시장에서의 의미와 효과는? 📈🚫
금융위원회가 지난 11월 6일 내년 6월까지 주식시장에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치에 따라 당일 코스피 지수는 5.66%, 코스닥 지수는 7.34%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다시 상승세가 꺾여 한 주가 지난 11월 10일 현재 코스피, 코스닥 지수는 공매도 금지조치 이전과 비교해 1% 정도 오르는 정도로 조정되었습니다. (인포스탁 데일리, 2023-11-10) 혹시 낯선 경제 금융 용어가 있다면 다음 내용을 먼저 참고해주세요 📖 공매도(short selling): "공매도는 내 소유가 아닌 주식을 거래소에 팔았다가 되사는 과정에서 차익을 얻는 방법을 일컫습니다. 빌 공(空), 팔 매(賣), 건넬 도(渡)를 써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없는 것을 판다’는 뜻"입니다. 타인에게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약속된 날짜에 주식으로 되갚는 것입니다. 공매도는 주로 주식 가격이 떨어질 걸로 예상될 때 사용하는 투자 방법입니다. (IBK기업은행 블로그, 2021-02-25) 코스피(KOSPI):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가지수라고 할 수 있는 코스피는 한국종합주가지수라고도 불러요. 삼성전자, 네이버, 카카오 등 전 국민이 이름을 아는 기업 대부분이 이 코스피 시장에 상장돼 있어요. 국가 대표 기업들이 포함돼 있는 지수인 만큼 코스피가 오르면 국내 기업들의 가치가 올라가고 증시가 활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코스닥(KOSDAQ): 코스피 상장 자격을 아직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포함돼 있는 시장입니다. 코스닥 지수의 기준 시점은 1996년 7월 1일, 이날의 시가 총액을 1,000포인트로 계산합니다. 계산 방식은 코스피와 동일하고요. 덩치가 큰 만큼 변동성이 작은 코스피에 비해 시장의 출렁임이 큰 편입니다." (서울경제, 2022-02-05)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는 네 번째로, 이전에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때 시행되었습니다. 2021년 5월 이후에는 코스피 200과 코스닥 150지수에 속한 중대형주에만 공매도가 허용되다 이번에 전면 금지된 것입니다. (네이버 시사 상식사전) 공매도의 순기능 ⬆️ 공매도의 가능 대표적인 순기능은 주식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주식을 살 때 당연히 주식이 오를 거라고 예측할 때 삽니다. 하지만 공매도가 있으면, 주식 가격이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도 시장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식시장에 더 많은 돈이 들어옵니다. 주식시장에 자금이 많이 유입되면 왜 좋을까요?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합니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대표적으로 주식을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입니다. 주식은 자기 자본이기 때문에 갚을 필요가 없지만, 은행에서 빌린 돈은 타인 자본이기 때문에 약속한 날짜에 이자를 더해 갚아야 합니다. 공매도 제도는 주식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기업의 건전한 자금 조달을 도울 수 있습니다.   공매도의 역기능 ⬇️ 금융 당국은 이런 공매도를 왜 전면 금지한 것일까요? 공매도 제도의 가장 큰 난점은 공정성과 시장 교란의 가능성입니다. 지금까지 공매도 제도는 거의 기관과 외국인처럼 자본을 가진 주체만 이용해 왔습니다. 돈이 많은 기업이 평범한 개인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쉬운 것처럼 기관과 자본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빌리기 더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공매도가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의 전유물이 되다 보니 시장 교란이나 주가 조작의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매도로 인해 주식시장의 침체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주식시장에 공매도 물량이 많으면,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로 여겨 사람들은 주식 투자를 꺼리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을 포함해 공매도 전면 금지가 네 번 이루어졌는데, 모두 경제적으로 쇼크가 발생했을 때였습니다.    공매도 금지조치,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 공매도 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와 별개로 이번 공매도 금지조차가 적절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번 공매도 조치를 시행하면서 주식시장에서 불법적인 공매도가 너무 많아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단순히 깨진 유리가 많은 도로가 아니라 유리가 다 깨질 정도로 불법이 보편화된 장이었다”고 발언했습니다. 초기 예상보다 빌리지 않고 매도 주문을 내는 무차입 불법 공매도의 규모가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선비즈, 2023-11-06)  다만 이번 조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있습니다. 이번 조치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긴급한 이유 없이 중요한 정책들이 쉽게 바뀌면 투자자들이 어떻게 제도를 믿고 투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가오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이용하는 선거용 전략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금지하면서 6월 말에 상황을 살펴보고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총선과 맞물린 이번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주식 투자와 시장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 혹은 이번 주제를 처음 접하신 분, 다양한 분들의 의견과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관련 정책에 대한 비판, 질문, 개선안 등을 댓글로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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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선을넘는몫소리 편
<선을넘는몫소리>는 대한민국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나 그 마땅한 '몫'을 누리지 못하는 주제 혹은 주체에 주목하는 세 팀으로 이루어진 크루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그럼에도 우리는>을 시작하며 '성평등' 담론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던 빠띠에게는 '이주여성'이라는 주제/주체를 제안한 ‘선을넘는몫소리’가 내심 반가웠다. 일주일 전 <그럼에도 우리는> 활동의 결실인 이주여성 사람책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를 무사히 마친 선을넘는몫소리 팀원 주연과 동찬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이나영책방'에서 만났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을 꾸려가는 빠띠의 활동가 우디(맨 왼쪽)가 ‘선을넘는몫소리’의 팀원 주연(가운데), 동찬(맨 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arti    비슷한 듯 다른 세 팀의 교집합에서 탄생한 <선을넘는몫소리>     ‘선을넘는몫소리’는 빠띠의 <그럼에도 우리는> 프로젝트를 계기로 구성한 프로젝트 팀으로,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곳 '이나영책방'(나영)과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출판사 '힐데와소피'(주연, 애란), 그리고 이들과 꾸준히 협업해온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동찬) 이렇게 3개 주체가 모여 만들어졌다. 힐데와소피와 이나영책방의 주요 관심 주제가 사회변혁, 평화, 북한이라면,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는 디아스포라, 이주민 문제에 주목해왔다. 세 팀은 수시로 연락하며 관심 주제에 관해 자유롭게 논의하며 활동의 교집합을 모색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올해는 '트랜스내셔널', '이주' 등을 주요 키워드로 삼아 선을넘는몫소리를 비롯한 프로젝트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나영책방의 이웃 동네이자 이주민 밀집 지역인 대림동을 참가자들과 함께 탐방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대림동 탐방> 프로그램이다. 동찬이 주도적으로 진행해온 것인데, 이나영책방·힐데와소피가 '우리도 책방 손님들과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협업을 제안해 함께하게 됐다. 사실 선을넘는몫소리도 이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팀이라고 볼 수 있다. <대림동 탐방>에 참여하셨던 분들 대상으로 프로그램 후기 설문조사를 하면, '당사자와 만나 교류하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는 의견이 항상 나온다. 그래서 '사람책 도서관*' 형식으로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의 필요성을 줄곧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책 도서관이란 ‘사람’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독자/청자에게 전달하는 소통·교류 형식을 뜻한다.   "대구의 한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는데, 행사를 해도 매번 그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게 늘 아쉬웠어요.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이미 인식이 개선된 사람들만 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하지만 책방은 대중과의 접점이 넓기 때문에 저희가 만날 일 없는 사람들, 지나가다가 책방에 들어와서 "어? 북한?"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에게도 저희 활동을 알릴 수 있죠."(주연)   대한민국 성평등 담론 경계 밖에 있는 '이주여성'의 '몫소리'를 전한다   세 팀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던 참에 동찬이 빠띠의 <그럼에도우리는> 사업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의 주제는 '성평등'인데, 한국사회에서 이 주제를 다룰 때 일반적으로 그 대상을 '한국여성'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영역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해보자는 취지에서 <그럼에도 우리는>에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여성의 성평등권을 중심으로 이야가 오가는 자리에서 이질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주여성은 젠더폭력을 넘어 인종차별 등 복합적인 차별 층위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란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은닉되는 측면이 있다면, 이주여성은 여기서 한번 더 비가시화되고 은닉되고 있다. 이들 존재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성평등 운동을 하는 여성인권단체이나 페미니즘 단체에선 이주여성 문제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의식이었어요. 이주여성은 이주인권 운동 측면에서만 다뤄지고 있죠. 저희가 성평등을 주제로 한 <그럼에도 우리는>에서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면, 여성인권과 이주인권이 만나 교차하는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동찬)   이때 이주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이주인권 관련 학회에 가보면 이주민 당사자는 한 명도 없다는 게 늘 불편했다. 왜 우리는 뭔가를 매개하지 않고서는 이주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까?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이주민, 탈북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할 때 사실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주연이 대구에서 활동할 때 탈북민 사람책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끝나고 소감을 나눌 때 한 참가자가 "탈북 경험이나 북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당시 사람책을 진행한 탈북민은 현재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대중은 '탈북민이니 탈북 이야기를 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 같다. 이렇게 누군가가 이주민, 탈북민이라는 '집단'으로 타자화, 대상화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선을넘는몫소리가 <그럼에도 우리는>에 참여해 진행한 이주여성 사람책 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 ⓒ선을넘는몫소리   그래서 이주여성 사람책 도서관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를 기획할 때도 연사들이 한국사회가 이주민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서사를 구현하지 않길 바랐다. 한국 사회가 이주여성에게 기대하는 서사, 얼마나 어렵게 한국사회에 정착했고 마침내 어떻게 성공했는지, 그리하여 한국에 얼마나 감사하는지로 끝맺는 서사를 탈피하길 바랐다. 연사들과 행사 전 온라인 미팅을 할 때 이런 전형적인 서사를 피하기 위해 ‘진짜’ 사적인 이야기, 사소해보이지만 사실은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결국 그렇게 연애사, 한국어 정복기처럼 저희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다. 연애 이야기를 하신 최설(북한) 선생님은 “참가자 연령 제한이 있느냐, 야한 이야기 해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웃음). 그리고 부티탄화(베트남) 선생님은 행사를 녹화한다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지 재차 확인하셨는데, 사전 미팅에서 공유하지 않았던 내용을 사람책 도서관에서 이야기하셨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사전 미팅에서 저희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들려주신 거라 들으면서 더 신이 났다. 저희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스스로 ‘이주여성’이라는 프레임을 깨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내고서 매우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같다.     “결혼이주여성이 ‘결혼’이란 행위를 계기로 한국에 온다는 건 곧 한국 특유의 가부장적 환경으로 진입하는 것이라서, 처음부터 성차별을 경험하기 마련이에요.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사회에서 ‘나’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며느리’ 혹은 ‘부인’으로, 한국 남성과 결합했을 때 비로소 그 존재를 인정 받는 종속적 위치에 놓이는 거죠. 이분들에게 ‘온전한 나’로써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서사를 가치 있는 역사로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동찬)   "<당신의 세계로 데려다주세요>에서 가능하면 다양한 배경의 이주여성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북한, 베트남, 콩고민주공화국, 마다가스카르에서 이주한 연사들을 어렵게 모셨는데, 행사 끝나고 북한에서 오신 최설 선생님께서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을 만난 건 처음”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내 이야기 실컷해서 좋았다’를 넘어 ‘다른 이주여성의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소감 듣고 나니까, 다음 기회가 있다면 다양한 배경의 이주여성들이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연)     선을넘는몫소리가 꿈꾸는 변화   그야말로 ‘꿈꾸는’ 변화라면- 일단 법을 싹 고치고 싶다(웃음).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의 존재가 제도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위치성 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다. 국내 이주민 인구 중 중국 동포가 많은 것도 이들이 상대적으로 대한민국 비자를 받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사는 변함없이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틀거리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계속 똑같이 돌아갈 거다. 기존의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다 보면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무엇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을 깨뜨리고 큰 틀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정체성인 것 같다. 하지만 타자와 구분되는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있다는 건 착각이라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또한 사후적으로 구성된 허구라고 생각한다. 동찬은 중국 선양(瀋陽) 태생으로 국경 넘어 한국으로 이주한 지 8년 됐는데, 오랫동안 “중국이 한국과 축구 시합을 하면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 같은 질문에 시달리며 정체성과 한국에 대한 충정 여부를 검증당해왔다. 국적을 비롯한 여러 정체성은 인위적으로 구성된 산물이지 고유한 무엇이 아니다. 국적, 인종, 민족처럼 인위적인 정체성에 의해 구분되고 대상화되지 않고, 각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존중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여기 살아있음이 곧 정체성이 되는 ‘존재의 정체성’을 토대로 만남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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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를 듣고, [AI, 민주주의의 '기회']를 얘기해보기.
2023년 11월 15일 저녁 7시부터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민주주의랩] AI,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라는 내용으로 컨퍼런스가 진행되었다. 필자 역시 직접 참여하려고 신청하였으나 환절기 감기로 참여하지 못해 아쉽지만 유튜브 생중계 형태로 참여하였고, 후속 토론을 캠페인즈에 올리고자 한다. 이번 컨퍼런스 발제들의 핵심 주장을 굳이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면 'AI는 민주주의에 주로 여러 위기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를 위해 같이 해결책을 논의하고 협동해야 한다'이다. 즉, 컨퍼런스 제목에 대한 대답은 이미 AI는 민주주의에 위기로 결론이 났다.  나 역시 대체로 이 내용에 동의한다. 인터넷의 발전 - SNS의 발전으로 이어져온 기술 발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고, 가짜 뉴스에 대한 내용, AI가 재생산할 기존 인간의 편향 등을 고려해도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 분의 발제에서 AI가 민주주의에 가져올 기회에 대해 덜 다루어진 것 같아, 소수 의견으로 보완해보고자 한다. 1. 사유와 탐구의 탈숙련화 강화, 뒤집으면 비숙련의 보완도 가능하다. 첫 번째 발제자이신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님께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문제점 중 하나로 '사유와 탐구의 탈숙련화'효과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AI에게 물어보고 나오는 대답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각하는 힘이 약해지지 않을까?'라는 문제제기다.  필자 역시 이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직접 ChatGPT를 포함한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입장에서, '사유와 탐구의 탈숙련화'를 가져오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비숙련된 분야의 사유와 탐구 숙련화'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번 필자가 캠페인즈에 올린 '고도로 발달한 AI는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철학 분야의 지식을 ChatGPT와의 대화로 보충하였다. 다만, 교수님이 지적하신대로 '사유와 탐구의 탈숙련화'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일부러 한 번씩 ChatGPT가 제시한 철학자들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검증 과정을 거쳤다. 비록 AI의 출력물을 검증의 과정을 거쳤지만, '사유와 탐구의 탈숙련화'를 경계하면서 '비숙련 분야에서 사유와 탐구의 숙련화'를 AI가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AI의 '속도가 문제', 하지만 '속도가 장점' 발제자들이 지적한 '가짜뉴스의 확산', '환각 현상', '편향의 재생산'등은 사실 AI 이전에도 인간 사회에 문제가 되었던 내용들이다. 가짜 뉴스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서동요'에서도 나온다. 현대 시대의 정치인, 연예인을 두고 가짜뉴스로 스캔들을 낸 것과 다름이 없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서동 도련님(薯童房)을 /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보다 더 오래된 기록에서도 아마 가짜 뉴스의 찾아볼 수 있을 거다. 또한, '날씨가 안좋으면 왕 탓'은 어찌보면 기존 인간이 도출하는 '환각 현상'의 거짓이다. 그렇다면 옛날 옛적부터 있어온 사회 문제들이 왜 AI의 문제, 그것도 민주주의의 위기로 작동하는 문제일까? 그것은 바로 AI의 '속도'와 '편의성'이 기존 인터넷과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AI의 최대 능력은 '빠르고 길게 특정 결과물을 출력'하는 것이다. 이 속성으로 인해 ChatGPT를 포함한 AI가 '세종대왕이 맥북을 던지는' 대답과 같은 환각 현상을 보이고(지금은 당연히 고쳐졌고, 심지어 ChatGPT는 이제 이런 질문이 '적절하지 않다'고까지 발언한다)가짜 뉴스의 생산과 확산, 기존 차별적인 내용을 편향적으로 재생산하는 문제 등이 '가속화'되어 더 빠르고 많이 발생하고 전파되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3번에서 짧게 다루겠다. 여기서는 AI의 빠른 '속도'가 민주주의에 기회가 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 AI가 가짜뉴스 생산 등의 민주주의를 위협하 행동 뿐만 아니라 자료 정리/검색 등 민주주의에 유익한 활동에 있어서도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자료 검색의 경우 3번에서 더 자세히 제시하겠지만, 1번에서 제시했던 사례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AI는 정말 많은 내용을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검색할 수 있다. 기존 인터넷 검색과 다른 점은, 인간이 직접 인터넷으로 검색할 때는 불가능한 검색량과 정리를 단시간 내에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숙의'과정에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다.    자료 정리의 경우, 단적인 예시지만 Notion AI등을 활용할 경우, 기존 오랜 시간이 걸리던 신문 기사 스크랩 및 정리를 매우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다. 직접 작성한 Notion AI 사용법 글에서 가져온 자료 화면 중 하나인데, 웹페이지에서 버튼 하나를 클릭하면 노션에 자동으로 웹페이지 스크랩이 되고, 이를 표로 드래그해 옮기기만 하면 자동으로 해당 글의 키워드 추출, 내용 요약, 글 링크, 스크랩 날짜까지 자동으로 정리해준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 혁신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빠른 AI 툴,기능들이 등장할 것이다. 3. AI를 만드는 건 여전히 인간! - 권오현 빠띠 대표 AI가 민주주의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권오현 빠띠 대표가 발제에서 제시하였다. ChatGPT가 농담을 하였다고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소개하며, 여전히 AI를 만드는 건 인간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여전히 사람이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발제에 나왔던 여러 사례처럼 편향적이고 가짜 뉴스를 만드는 AI가 나올 수도 있고, 소수 의견을 반영하고 스스로를 검토하게 하는 AI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MIT Technology Review에서 나왔던 기사에 따르면,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으로 학습시킨 대형 언어모델이 ‘편향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생산하도록 요청하는 것만으로 결과물에서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효과 즉, 편향적이지 않은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결과가 AI의 출력물에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AI가 대량으로 학습한 내용에는 인터넷 어딘가에 있는 '편향을 교정하려는 시도', '소수자를 존중하는 시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인간에 의해 덜 편향적으로 AI가 작동할 방법이 있다는 건, 윤형중 LAB2050대표가 말한 'AI가 커먼즈에서 비롯된'덕분에 가능한, 인류의 커먼즈의 기회다. 또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가짜뉴스 역시 AI로 잡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베타 버젼이지만, 필자는 최근 출시된 GPT Builder로 'Fact Check AI'를 만들고 있다. 목표는 빠띠의 멋진 그룹 중 하나인 K.F.C.(치킨Korean Factcheckers’ Community)수준에 근접하게 팩트를 점검하는 AI를 코딩 없이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베타 버젼의 Fact Check AI에서 다뤄진 [팩트체크] 최저임금보다 실업급여를 더 많이 받는다?를 물어본 결과, 단순 정보 뿐만 아니라 점검할 수 있는 일부 내용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설정한 단계에 따라 기존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을 한번 더 검토하는 과정, 4단계에서 앞선 단계를 모두 검토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K.F.C.에서 진행한 팩트체크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업급여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지만, 제시된 사실에 대해 꽤 높은 퀄리티로 빠르게 검토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잘 다듬으면 많은 사람들이 가짜 뉴스에 대해 빠르고 편하게 반박할 수 있는 도구가 개발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권오현 대표가 말한 대로 결국 '기술을 소유'해야만 AI가 민주주의를 위한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하며, LLM(Large Language Model)이나 LMM(Large Multi Modal)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민사회를 위한 AI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오픈 소스 기반의 AI도 성능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는 하나, 이를 활용할 컴퓨팅 파워는 시민 사회에 있어서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시민을 위한 AI를 위해 시민 사회가 뭉칠 수 있길 바라며,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AI, 시민을 위하는 AI가 개발될 수 있길 바란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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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특례대출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은 합계 출산율 0.78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주택 마련 등의 비용 부담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했고, 지난 8월 29일 국토교통부에서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주거지원 방안으로 ‘신생아특례대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31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 예산안 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는 전체 구입자금 대출 예상액 34조9000억원 중 신생아특례대출 구입자금으로 26조60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경, 231031) 1%대 금리로 내 집 마련 가능한 ‘신생아 특례대출’ 신생아 특례 대출 민간공급 정책은 ▲부부 합산 소득 1억 3천만원 이하(기존 대비 소득 조건 2배 수준 상향) ▲자산 5억 6백만원 이하(전세자금 미포함) ▲대상 주택은 9억 원 이하(85타입 이하이나, 지방은 100타입) ▲무주택자(무주택 2년, 처분 요건 등에 대해서는 검토 중) ▲혼인 여부 관계없이 출산 가구면 가능 ▲임신 중이면 불가 등의 자격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데요. 최대 5억까지 1%대의 이율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특히 내년 3월부터는 신생아 출산 가구를 대상으로 공공분양 주택 특별공급, 이른바 ‘신생아 특공’도 신설되어 출산 가구에 연 7만 가구를 특별공급 또는 우선 공급 할 예정이라서 2023년부터 출산을 경험한 가정은 내 집 마련에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파이낸셜뉴스, 231104) 이외에도 육아휴직 1년6개월 개정안(기존 1년), 육아휴직급여(월 최대 150만원까지), 출산지원금, 첫만남이용권(출생아 당 200만원) 등의 정책들도 저출산을 방어하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 중이거나 시행 예정입니다. (출산정책 NEWS-ALSN) 신생아 특례대출의 경우엔 집값 반등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집값 하락은 방지할 수 있으나, 상승세에 큰 영향을 주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이뉴스, 231108)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의 출산 장려 정책은 대부분 금전적인 것을 지원해 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금전적인 지원이 출산율을 높일 거라고는 크게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일회성 정책 시행과 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  시군 자체 조례에 근거해 지급되는 출산장려금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월 10~200만 원 정도 수준인데요. 양육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출산장려금을 확대하거나 산후조리비 지원 및 공공산후조리원 운영 등 다양한 방식의 출산 장려 정책을 추진 중인데요. 경기도 지자체가 지난해 지급한 출산장려금은 508억 원 수준이지만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 (뉴스1, 231031) 출산장려금을 확대하기 위하여 노력 중인 지자체가 많은데, 이로 인해 지급이 늦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3월 강원도 화천군은 매년 50만 원씩 3년간 150만 원 지원하던 출산장려금을 1회 300만 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는데요. 보건복지부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실질적인 지급은 미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일회성 출산장려금 지원은 출산율과 인구 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라고 지적합니다. 이유는 지원금만 받고 주소를 다시 이전하거나, 자치단체 간 출혈 경쟁 등의 역효과 우려도 크기 때문입니다. (YTN, 231105) 하지만 출산 장려 정책에 대하여 회의적으로만 바라보긴 힘든데요. 출산 장려 사업으로 인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곳도 있기 때문입니다.  출산 장려 효과를 톡톡히 누린 고창군,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 중인 지자체  고창군은 2023년부터 산후조리비(50만 원→200만 원)를 확대 지원(전북 최대)하고 있으며, 관내 분만 산부인과(고창병원) 이용 분만 시 분만진료비 전액 지원과 임신 출산축하용품(50만 원), 산후 건강관리비(20만 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출산장려금을 확대 지원(첫째 300만 원, 둘째 500만 원 셋째 750만 원 넷째 1,000만 원 다섯째 2,000만 원)하고, 기준 중위 소득 150% 이하 출산 가정을 대상으로 산모와 신생아에 대한 건강관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출산장려 사업의 효과로 올해 100번째 생명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뉴스24, 231027) 부산시 수영구는 부산광역시 2023년 출산장려정책 평가에서 3년 연속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는데요. 청년 및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주거 자금 대출이자를 지원하고, 출산가정 산후조리 도우미 비용 중 본인부담금을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전액 지원하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파견비용 지원 사업'으로 안정된 거주 여건을 조성하며 결혼·출산·육아 참여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한국농촌경제신문, 231109) 출산장려를 위한 정책들의 개선이 활발한 상황에서 신생아 특례대출은 과연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까요? 여러분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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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는 연결되어 있다
제목 : 참사는 연결되어 있다 1,134명이 사망한 참사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위치한 ‘라나 플라자'가 붕괴했다. 건물은 오전 8시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쏟아지는 천장을 피하지 못했다. 1,134명이 사망했고, 2,5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참사로 기록 된, ‘삼풍 백화점' 참사 사망자가 502명이었다. 단순 수치로 2배에 달하는 참사였다. 수치로 고통의 무게를 잴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역대 최악의 참사보다 2배 이상의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참사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덮쳤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무너진 라나 플라자 라나 플라자는 붕괴할 수밖에 없는 건물이었다. 붕괴 당시 라나 플라자는 총 9층 높이였다. 하지만, 애초에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주인 소헬 라나(Sohel Rana)는 상업용 4층짜리 건물로 2007년에 처음 지었다. 지하는 주차장 겸 소헬 본인의 사무실이었다. 1층엔 다른 사무 공간과 상업 건물, 2층엔 상점과 은행들이 들어서 있었다. 3~4층은 다국적 의류 기업의 옷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이곳에서 주로 하청을 받아 옷을 생산했다. 2023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의류 산업은 전체 GDP의 16%를 차지할 정도로 큰 산업이다. 수출 규모로는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다.  이렇게만 보면 전혀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사무실이 있고, 은행이 입점해 있고, 봉제 공장이 있는 건물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건물이 무허가 건물이었다는 점이다. 무허가 건물이라 정부의 관리 감독이 소홀했고, 건물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건물에 입점하면 할수록 건물주는 돈을 벌게 되어 있다. 이에 소헬 라나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무허가 증축을 이어간다. 4년 동안 총 4층의 건물이 무허가로 증축됐다. 증축을 제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 무허가 건물에 증축 허가와 관리 감독이 있을리 없다. 무리한 증축은 붕괴 원인이 됐다. 건물이 올라갈 수록, 지반은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건물 옆에 금이 가고, 기둥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갔다. 사고의 징조였다. 건축 엔지니어인 압둘라 라자크 칸은 건물주인 소헬 라나에게 건물 붕괴 위험이 있으니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건 소헬 라나 자신 뿐이었다. 생계를 위해 출근했던 3,000여 명의 사람들은 2013년 4월 24일 오전 8시 45분 무너지는 건물에 파묻혔다. 파묻힌 사람 중 1/3은 사망했고,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깔린 사람들은 팔을 절단하며 구조됐다. 비록 살아 남았지만, 그들이 참사 이전과 동일하게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다. 무너진 잔해에 척추를 다쳐 걸을 수 없는 상황에 먹여 살려야 하는 자식을 위해 걷게 되기를 소망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라나 플라자 참사는 이익을 위한 무리한 증축에, 충분히 대피 시킬 수 있었음에도 책임지지 않은 인재가 겹친 참사였다. 건물주였던 소헬 라나는 참사 직후 인도로 도망치다가 잡히기 도했다. 그리고 참사 3년 만에 재판장에 섰다.  어느 한 사람의 이익, 사회의 부정 부패가 극심할 수록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들이 피해를 받는다. 이익 앞에 그들의 안전과 생계는 안중에서 사라진다. 애초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참사를 겪고서도 방글라데시 여공들은 또다시 옷을 만들러 가야 했다. 나라 전체 GDP의 16%를 차지하고, 전 세계 수출 2위를 차지하는 산업인 만큼 생계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참사 당일, 붕괴 조짐을 일하는 노동자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터로 보내졌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건물이 무너졌다. 참사의 책임이 어느 한 사람에게만 있지는 않다 참사의 책임을 어느 한 사람에게만 물게하는 건 자칫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 책임이 있을 수는 있으나, 온전히 그 사람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라나플라자 참사도 마찬가지다. 참사가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참사 희생자들이 어느 브랜드의 옷을 만들고 있느냐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글로벌 SPA 브랜드 들의 옷을 만들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시민들은 온라인 상에서 누가 내 옷을 만들었냐라며 #whomademyclothes 해시태그를 달기 시작했다. 일부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오기도 했다. 참사가 발생하고 난 뒤, 방글라데시에 가장 많은 하청공장을 가지고 있던 H&M에 변화를 촉구하는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라나플라자에서 일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의류 노동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3,000다카(월 4만 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참사 이후 국제사회 압박과 최저임금 인상 시위에 못이겨 월 최저임금이 5,300다카(7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  또한 H&M은 방글라데시 현지 하청업체들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고층 빌딩의 스프링 쿨러 설치, 비상계단 사이 방화문 설치 등이었다. 또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1500곳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클린 클로즈 캠페인은 방글라데시에 있는 H&M 공급업체 32곳을 조사했는데, 이들은 H&M과 이른바 골드 파트너십 관계에 있었다. 이 대기업에서 특히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생산하는 공장을 선별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클린 클로즈 캠페인은 이들 공급처의 건물에서 안전에 미흡한 점 518가지. 화재에 취약한 점 836가지, 전기 안전상의 문제 650가지를 발견했다. 그런데 H&M은 2014년 지속 가능성 보고서와 웹사이트에 건물 안전 및 화재 안전과 관련한 모든 조치를 기한 내에 모두 시행했다고 선전했다.”*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참사는 돈을 벌려는 개인의 탐욕과 값싸게 옷을 생산하려는 기업의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에서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안전은 비용으로 치부됐고, 최대한 아껴야 하는 것이 됐다. 그렇게 싼 값에 생산 된 옷을 사 입는 건 방글라데시 현지인들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 나라들이었다. 참사 당시 시간당 24센트 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일터로 나갔고, 여전히 저임금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입는 옷도 없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나라의 참사가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 이유다.  방글라데시 파업, 생계를 위한 싸움 현지시각으로 지난 9일, 방글라데시는 파업에 돌입했다. 현재 월 최저임금인 9만 원을 올려달라는 요구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9년을 마지막으로 코로나 여파로 인해 최저임금이 4년 째 동결됐는데, 그 과정에서 물가는 끊임없이 상승해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측은 월 27만 원을 요구했고, 정부는 14만 원을 제시한 상태다. 이러한 요구에 반발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세계의 의류 공장으로 불리는 방글라데시가 파업하면, 옷 값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현재까지 약 300개 의류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 파업이 계속된다면 어쩌면 이들이 만든 옷을 입는 우리들의 옷 값도 비싸질지 모른다. 정부와 노조는 계속해서 협상을 하고 있고, 가장 많은 공장을 가진 H&M은 "근로자와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새 최저 임금을 지원한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임금 인상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어느 한 나라의 참사가, 어느 한 나라의 파업이 우리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옷을 만들다가, 우리가 먹을 음식을 재배하다가 참사를 맞은 것일 수도 있고, 파업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적인 참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요즘, 나와 관련한 참사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심을 갖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참사가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파업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우리와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해당 참사의 맥락을 제대로 살펴보고, 나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작은 관심이라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내가 먹고, 입고, 마시는 무언가를 위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장 환경주의>(카트린 하르트만/ 에코리브르/ 초판 2쇄/ 2019)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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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스포츠] 나화린 선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
나화린 선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 성전환 여성 사이클 선수에 대한 논란들   이 글에 성전환 선수를 향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필자의 주된 목적이다. 독자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실패작은 아닐 것이라는 마음으로 펜을 든다. 지난 6월 7일, 숱한 논란을 남기며 강원도민체육대회가 끝났다. 나화린 성전환 여성 선수의 여성 사이클 경기 출전 때문이다. 나 선수는 국내 최초 성전환 여성 선수로 출전해 경륜과 스크래치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60~80km 개인 도로에서 2위를 차지해 아쉽게도 3관왕에 오르지는 못했다. 나 선수는 대회 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출전 소식을 접한 언론은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신체조건과 운동 수행능력을 기술하며 나 선수의 유리함을 들었다. 그리고 공정성과 형평성을 논했다. 각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출전 타당성을 논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 독설을 쓰는 무분별함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논란을 예견한 듯 나 선수는 말했다. “내가 상을 받으면 대중의 공감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명예로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참고 기사 :  [인터뷰] 트렌스젠더 사이클 선수 나화린 “내 출전으로 불공정함을 말하고 싶었다” 여성신문. 2023.07.01 LGBT: 트랜스젠더 사이클 선수 나화린이 꿈꾸는 '명예로운 우승 BBCnews 코리아. 2023.07.07   스포츠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스포츠’는 특정 신체활동을 통해 목적을 이루는 놀이, 즉 재미를 주는 행위다. 그 어원 역시 마찬가지다. 라틴어로 ‘Desportare’는 ‘즐기다’라는 뜻이다. 고대 프랑스어에서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아서 ‘Deport’ 또는 ‘se Desporter’로 바꿔 썼다. 프랑스의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영어에 흔적을 남긴 프랑스어 중 하나가 ‘Desport’다. 영어로 ‘Disport’로 바뀌었고 재미나 흥미 또는 휴식을 주는 활동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현재는 Di가 빠진 Sport로 쓰이고 있다.   사전 및 어원적 의미는 이제 접어두고 어느 고대 의철학자의 눈으로 스포츠(운동)를 보자.  검투사들의 의사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주치의였던 클라우디우스 갈레누스는 명의였다. 아우렐리우스는 갈레누스를 “의사 중 첫째요, 철학자 중 유일무이다”라고 평하며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갈레누스는 스포츠의 효험에 대해 <작은 공으로 운동하는 것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작은 공으로 하는 스포츠는 신체를 건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영혼을 기쁘게 한다. 이는 신분, 부(富), 시간에 제한 없다.” 갈레누스의 눈에도 스포츠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심신을 건강하고 즐겁게 하는 놀이다.   21세기 스포츠가 자본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미디어와 결합했어도, 본래 모습인 놀이와 즐거움은 그대로다. 다만, 즐기는 대상과 범위가 다양화된 매체를 통해 늘었을 뿐이다. 이제 세계화와 미디어 발전에 맞춰 해외 스포츠를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추세에 사람들은 좋아하는 해외 선수의 유니폼을 구매하고, 동영상을 시청하며, 따라 한다. 그리고 즐긴다. 또 새벽을 깨워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보는 즐거움은 말릴 수 없다.  한 마디로 21세기엔 놀고 즐기는 행위가 세계화되었다.     근육량이 공정성의 유일한 잣대인가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정의와 공정을 원한다. 하지만 공정한 사회는 늘 멀리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불공정한 지옥 같은 조선에서 떠나 더 나은 새로운 삶을 바라는 마음을 투영한 단어다. 하지만 현실은 힘들고 냉정하다.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갑갑하다. 공정한 사회 대체재로 스포츠는 마음을 달래기에 제격이다. 스포츠는 불공정과는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선수의 등장은 단번에 공정을 앗아간 듯 보였다. 대중의 감정은 긍·부정으로 뒤섞였다. 불공정에 분노한 대중은 나 선수를 불의의 화신으로 낙인찍고 배설 같은 폭언을 뱉었다. 이것도 모자라 나 선수 개인 블로그까지 방문하여 부정한 댓글로 공격했다. 분노의 불은 시민의식까지 태워버렸다. 동시에 응원의 글도 있었다. 응원은 나 선수의 버팀목이었다.   분노엔 언론도 한몫했다. 대다수 언론은 나 선수의 신체조건 즉 180cm의 키, 몸무게 72kg 그리고 골격근량 32.7kg을 나열한다. 그리고 일반 여성의 평균 골격근량이 20~22kg임을 비교한다. 그러나 이는 비교 대상 오류다. 왜냐하면 여성 사이클 선수들의 평균 골격근량과 비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와 일반 평균 여성의 골격근량을 비교하면 선수의 골격근량이 월등한 건 당연하다. 언론은 비합리적인 근거로 나 선수가 유리하다고 독자를 유도했다.   골격근량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근육과 그 근육의 분포다. 사이클 선수는 하체 근육이 다른 신체 부위보다 많이 사용한다. 페달링의 반대급부로 균형을 잡아주는 팔, 어깨, 코어 근육도 같이 사용된다. 이는 기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언급 없이 근육량이 많다, 고로 유리하다는 식의 논의는 전성기 시절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랜스 암스트롱을 비교한 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근육량이 많으니 사이클 경기에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비교다.   이뿐 아니라 기타 운동 생리학적 요소 역시 언급조차 없었다. 운동은 단순히 근육량과 신체구조만으로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 운동은 협응력, 근 신경, 균형 감각 등이 하나로 합쳐 수행능력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외부조건을 극복한다. 극복한 결과는 기록이다. 이는 배제한 채 근육량과 신체조건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덧붙이자면 위와 같은 이유로 랜스 암스트롱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가상 대결은 단연 랜스 암스트롱이 승자다. 석판, 파피루스에서 종이를 거쳐 디지털까지, 매체 무게만큼 쓰는 이의 책임도 가벼워졌다.   나 선수가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   성전환 선수인 미국의 수영 선수 리아 토머스, 뉴질랜드의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 한국의 나화린 선수의 출전을 대하는 반응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여성 경기에 참가한다는 소식과 함께 엄청난 양의 보도가 쏟아졌다는 점이다. 또 언론 대다수와 누리꾼 사이에서는 성전환 선수가 여성 스포츠를 지배하리라는 둥, 여성 스포츠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둥 억측과 불신이 난무했다. 소수 언론만이 그들의 참가를 응원했다. 경기 결과는 다수 언론과 누리꾼의 예측과 달랐다. 리아 토머스와 나 선수의 위력은 특정 레이스에서만 유효했다. 로렐 허버드는 시상대에 서지도 못했다.   차이점도 있다. 두 서양 국가는 성전환 선수의 여성 경기 참여에 대한 논의가 일찍이 시작했다. 정치권까지 가세한 미국의 찬반 양 진형은 극렬하게 대립한다. 뉴질랜드는 미국보단 성전환 선수에 대해 좀 더 포용적이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 논의를 시작할 때다. 차별금지법도 계류 중인 때에 성전환 선수의 여성 경기 참여 논의는 이른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 선수의 등장으로 미룰 수 없게 됐다.   스포츠는 즐거운 놀이 그 자체다. 놀이에 경쟁과 타이틀이 붙으면서 공정성 문제가 대두됐다. 성전환 선수의 출전은 공정성이라는 믿음에 반한다고 믿는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생물학적 남성성이란 믿음 외에 성전환 선수의 절대 경쟁우위는 아직 과학이 밝히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논의와 합의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덧붙여, 나 선수는 “저의 대회 출전이 이슈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냉혹한 사회의 시선에도 물러서지 않고 용기를 내어 대회에 출전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페리 클래스는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인생에서 단맛과 쓴맛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아서 앞으로 다가올 일에 물러서지 않는다”고 했다. 나화린 선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나화린 선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는 스포츠계에 만연한 영웅 서사와 승리 지상주의를 걷어내고 스포츠에서 소외되거나 들리지 않던 다양한 스포츠 서사를 발굴하는 웹진<움직> 2호 _스타트에 실린 글.  글쓴이 _ 자피러스 |  모두의 운동장 저자 (북저널리즘)  [모두의 스포츠] 웹사이트 : https://culturalaction.org/sportsforall [모두의 스포츠]웹사이트에서 웹진<움직>, 호호체육관, 모두의 운동회 전반의 소식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의스포츠 #스포츠권 #청소노동자 #여성노동자 #체육관노동자 #스포츠 #모두의스포츠 #노동자의스포츠권 #호호체육관 #모두의운동회 #차별없는스포츠 #메달보다인권 #대안체육회 #대안스포츠 #스포츠시민운동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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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으로서 공통 인공지능을 상상해야 한다
인과 염으로 창조된 AI의 시대, ‘시민권’으로서 공통 인공지능을 상상해야 한다 반세기 전, 인공지능이 여전히 SF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던 시대에 로봇공학자인 한스 모라벡은 “진일보한 기술의 시대에 컴퓨터는 인간에게 어려운 것들을 쉽게 처리하게 되겠지만 인간에게 쉬운 작업들은 컴퓨터에게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컴퓨터는 인간의 연산 능력을 쉽게 대체하지만 반대로 땅에 떨어진 물건을 집거나 춤을 추는 등의 간단한 행동을 처리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선견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는데, 최근의 챗 GPT 광풍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공지능은 컴퓨터에게 어려운 육체 작업이 아닌 지적이고 창조적인 분야부터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한스 모라백(Hans Moravec) 근육이 아닌 뉴런을 대체하는 것이 오늘날 생성 AI가 도달하고자 하는 특이점일 것이다. 근육을 대체할 자원은 이미 넘쳐난다. 일자리, 주거, 연금, 보험, 사회보장제도 등에서 밀려나 매 순간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들은 이제 보편적인 생명 양식이 되었다. 비싼 돈을 들여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를 개발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과거에는 노예가, 근대에는 값싼 임노동자들이 그 물리적 에너지를 대신했고 오늘날에는 임금노동에서도 밀려난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과 비임금 자영업자들, 하도급과 아웃소싱에 포박당한 프리랜서들이 이를 대체한다. 생성AI는 이러한 육체적,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모라벡이 설정한 최후의 지형들, 예컨대 예술과 과학의 영역을 정복하고자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음악을 작곡하는 활동은 문제를 설정하고 대상을 재현하는 인지와 결부되어 있는데, 이 부문을 자동화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진보는 자동화는 자동화이되 인지의 자동화이며 뉴런을 기계화하는 동시에 생산수단으로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인지자동화의 전환은 어떤 것들을 대체하게 될까? 수많은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챗 GPT와 얼마나 흥미로운 작업들을 했는지 전시하면서 이미 묵시록적인 결론을 얻었다. 문화 창조에 관련된 모든 행위들이 데이터베이스화 되고 패턴화되며 자동화된다. 더 이상 일러스트레이터도, 작곡가도, 성우나 배우도, 디자이너도 스토리텔러도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는 기시감. 그것은 아직 생성 AI가 비즈니스화 되지 않는 단계임에도 모두의 뇌리에 박혀 있다. 산업 기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뉴런 기계들도 새로운 자본주의의 교외를 만들어낸다. 건당 보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세노동자(micro worker)들이 등장했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데이터들을 분류하는 작업, 노이즈를 필터링하고 이미지 인식을 반복 숙달시키는 작업, 번역과 설문, 그리고 이 과정을 검토하고 적합한지 채점을 매기는 모니터링에 이르기까지 미세노동자는 건당 1달러 이내의 푼돈을 받으면서 그중 20%를 운영 주체인 아마존과 구글 등이 떼어간다. 아마존은 이들 미세노동을 총망라하는 플랫폼 ‘메카니컬 터크’를 운영하며 엄청난 정보기술 도약을 이뤄냈고, ‘클릭워커’, ‘애픈’ 같은 플랫폼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전 지구의 수많은 미세노동 결과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테크 기업들은 미세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가? 먼저 그것은 임금 형식이 아닌 건당 보수 형식을 취하며, 그것도 아주 작은 패키지 작업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 노동과정의 구조 자체가 불투명하다. 미세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 결과물이 무엇을 만드는지, 그리고 어떤 기업이 그것을 가져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러한 미세노동의 현실을 파헤친 필 존스의 책 『노동자 없는 노동』은 이런 플랫폼에 등록된 사람들의 90%가 건당 0.1달러 이하의 보수를 지급받으며, 이마저도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힌다. 또한 상당수의 보수가 ‘보상(prize)’이라는 미명 하에 현금이 아닌 게임화폐, 특정 사이트에서만 쓸 수 있는 마일리지나 포인트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또한 일은 매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시간보다 긴 대기 시간을 거쳐야지만 얻을 수 있고 마치 게임처럼 할 수 있는 즐거운 활동처럼 포장되어 작업은 언제나 가치 절하된다. 최근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미드저니, GPT, DallE 같은 인공지능들은 진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수많은 미세노동자들의 인과 염이 새겨진, 생존을 위해 도박처럼 뛰어드는 ‘잉여’들이 빚어진 결과물이다. 이들 미세노동자들은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 플랫폼 등 빅 테크 자본이 운영하는 광활한 네트의 영토에 여기 저기 널려있는 자원들, 우리가 사진을 찍고 글을 남기고 뭔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데이터들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생성 인공지능은 천재적인 기업가와 발명가들, 기술 관료들의 기술혁신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전 지구의 시민사회는 이런 혁신담론이 자아내는 환등상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리좀처럼 얽혀진 수많은 인간 뉴런과 피땀어린 노동이 생성한 ‘공통지성’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이란 용어는 마치 과학자들과 기업 회장들이 이 모든 걸 발명했다는 듯 장막을 씌운다. 이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전 지구의 민주적 시민사회는 인공지능의 탈을 쓴 공통지성이 어떤 식으로 블랙박스화 되는지, 이 과정에서 어떻게 미세노동이 수탈당하는지 감시하고 이의제기 할 수 있어야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제한 없이 보편적으로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사용하고, 발전시키고, 향유하는 주체는 사기업이나 경찰국가가 아닌 인과 염을 몸에 지닌 보통의 사람들이다. ‘공통지성’ 이란 개념은 결국 인공지능을 창조하고, 사용하고, 향유하는 데 있어 보편적인 시민권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산의 약수터와 우리가 숨쉬는 공기, 공원과 수자원, 삼림처럼 이 리좀화된 기계뉴런들은 공통적이고, 보편적이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커먼즈(commons)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는 새로운 문화창조와 예술을, 그리고 진보된 리터러시와 민주주의를 상상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을 ‘공통지성의 커먼즈’로 재발명하는 과정은  당연한 시민권을 주장하는 것이며, 인지자동화 시대에 인간 뉴런을 잉여로 만드는 미세노동 수탈에 반대하는 저항이기도 하다.  글쓴이 _ 신현우(기술문화연구자, 문화연대 집행위원)정보기술 공간에서의 노동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연구하는 기술문화연구자이다. 플랫폼, 게이밍,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걸쳐진 IT 기술문화를 미디어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문화연대 집행위원, 계간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과 기술, 기술비판이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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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집회” VS “약속 지켜라” 건보공단에서 무슨 일이?
원주 혁신도시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건물 앞에 커다란 버스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지나가며 “저거 봐, 시위한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다 금방 화제를 바꾸며 멀어집니다. 얇은 외투를 걸치고 나들이 가기 좋은 가을 날씨에,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농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500여 명의 노조원들이 11월 1일부터 무기한 천막 농성에 돌입했고, 11명은 단식 농성을 병행합니다. 건보공단 측은 노조원들이 공단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문에 차벽을 세우고 진입로를 방호 펜스로 둘렀는데, 노조원들이 공단 옆 방호 펜스를 넘어 공단 본부로 진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3일, 건보공단 측은 집회에 참여한 400여 명의 노조원을 폭력행위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23.11.03]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조원 400명 폭력행위 등으로 고소 [23.11.03] KBS 보도 영상 👔공단 관계자: "이들의 농성 행위는 자신들의 권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타인의 권리와 권익은 일체 외면하는 행위다. 공단 본부 건물 광장 및 주 출입구 점거로 인해 방문 민원 대응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고객센터 노조:  "공단이 과도한 채용 절차를 들이밀고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한 전환의 취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23.11.03] 건보공단, 결국 고객센터 노조 고소‥갈등은 더욱 심화 익숙한 평행선입니다. 사측은 파업, 농성, 점거 등으로 인한 불편을 이야기하고 노동자 측은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 등을 주장합니다. 오래된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밖으로 분출된 모양새입니다. 사실, 건보공단을 비롯한 여러 공기업에는 고질적으로 고객센터 노동자의 처우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대부분 기관과 노동자 사이에 민간업체가 존재합니다. 공단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고용은 민간업체를 통해서 하므로 고용불안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올해 초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발표한 전수조사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 상담센터는 80% 이상이 민간 위탁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김윤숙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상담사는 2년에 한 번씩 민간 위탁 재계약 때마다 노동자 수십 명이 강제 퇴사, 이전을 당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소속사가 바뀔 때마다 신규 입사로 처리되는 바람에 임금인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 김 상담사의 2019년 임금 실수령액은 160만 원대였다. 현재도 근속 수당, 식대를 포함해도 월급은 183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23.01.11] 정부가 외면하고 민간기업이 착취한다, 공공기관 민간 위탁 콜센터 전수조사 11월 8일, 전국의 민주노총 콜센터 노동자들이 원주에서 결의대회를 열게 된 것 또한 이런 문제가 비단 건보공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은 아래 다섯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습니다.  저임금, 고용구조개선, 간접고용 직접고용 전환 제대로 된 표준용역계약서, 임금체계 마련  감정노동자 보호조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사업장 내 보호조치  노조를 설립할 권리 등 노동3권 보장 참가자들은 “감정노동자보호법 제정 5년이 지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정부 대책이 제시됐음에도 콜센터 상담 노동 현장은 그대로”라면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간접고용”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인권위가 조사하고 여러 정책연구 전문가들이 ‘간접고용’을 문제로 꼽았지만 사회적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결의대회가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년 전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을 소속기관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시간만 지난 채 해고 협박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23.11.08]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공단, 다시 파업에 나선 노동자… “직접고용 전환하라” 위에서 언급된 ‘약속’은 2021년 10월에 건보공단이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소속기관을 공단으로 전환하기로 했던 일을 말합니다. 건보공단 본사는 2년 전에도 소란스러웠습니다. 소속기관 전환을 요구하며 노조가 파업과 농성을 진행했고, 공단 측은 노조원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참여자들의 본사 건물 진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설치하고, 건물 입구에는 공단 직원들이 24시간 대기했습니다. 고객센터 노조와 공단 노조의 합의를 촉구하며 이사장이 단식 농성을 하는 상황도 벌어졌죠. 노조원 진입 막으려…철조망 설치한 건보공단 (2021.07.09/뉴스투데이/MBC)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른 듯 하였으나, 2년이 지난 지금도 소속기관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데 1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고용 전환을 위한 협의체 구성에도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소속 전환이 진행되지 않은 데에 더해 전환 대상과 채용 방식에 관한 부분에서 갈등은 촉발되었습니다. 노조 쪽 설명을 들어보면, 간접고용 상태인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 소속을 공단 소속기관으로 전환하는 합의가 이뤄진 지 2년째이나 이를 결정짓기 위한 노·사·전문가 협의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협의회 자리에서 공단이 제시한 안을 보면, 공단은 정규직화가 가시화한 2019년 2월 이후 입사자 700명을 대상으로 공개경쟁 채용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상담사 1,693명 중 41.3%에 해당한다. [23.11.01] 정규직화 과정 40% ‘물갈이’…건강보험 콜센터 노동자 파업 돌입 ‘정부 전환 기준일 이후 채용자 700여 명을 공단이 해고하려 한다’는 노조의 주장에 공단은 “2019년 2월27일 민간 위탁 정책 추진 방향 절차 발표 전까지 민간 위탁 수탁기관에 근로하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정부 전환 기준일 이후 채용자 700여 명은 원칙적으로는 전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23.11.03]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조합 불법점거에 고소장 제출 공단은 올해 10월 노·사·전문가 협의체에서 약속과 다른 안을 냈다. 안에 따르면 2017년 5월~2019년 2월27일 입사자는 ‘제한경쟁 대상자’, 2019년 2월28일 이후 입사자는 ‘공개채용 대상자’라고 했다. 제한경쟁 대상자는 소속기관으로 가기 위해 필기시험, 인성 검사, 두 번의 면접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하면 탈락, 즉 해고다. 공개채용 대상자는 새로 이력서를 내고 필기시험, 인성 검사,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운이 나쁘면 최대 700여 명이 해고될 수 있다. 노조가 고민 끝에 총파업에 돌입하고 집단 단식농성, 천막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3.11.09] 건강보험공단은 '소속기관 전환' 약속을 지켜라 - 김금영(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서울지회장) ⛺ 건보공단 앞에서 시작된 단식과 노숙 농성은 이제 10일 차를 넘어섰습니다.  집회를 막기 위한 울타리를 설치, 그 울타리를 부수고 진입, 이를 경찰에 고소하는 등 서로의 강경책이 이어지며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상담센터 소속 전환과 노동자의 권리 투쟁, 건보공단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의견을 이야기 해주세요! 🗣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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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갈등, 투쟁의 역사
피라미드 같은 고대의 거대 건축물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고대 도시나 유물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혹시 외계인이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고대인을, 그 이전에 근본적으로 인간의 힘 그 자체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지만 재미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 신전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걸 보면서 그런 음모론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음모론에는 유럽인들이 세운 게 아닌데 대단해 보이면 그것을 외계인의 작품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태도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서유럽 백인들의 기본 마인드이고 근대 이후 세계의 기본 마인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1945년 이후의 분쟁은 국가와 국가의 분쟁 보다는 비-국가적 분쟁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1945년 이후를 긴 평화(Long Peace)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참으로 기만적인 말이다. 1, 2차 대전의 당사자 강대국들이 자기네 땅에서 안 싸웠다고 이 세상을 평화롭다고 말하는 것도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그 싸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강대국들 자신이라는 점을 쏙 빼놓고 말한다는 점에서도 참으로 책임감도 없고 반성도 없는 문제가 많은 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평화였는가? 베트남전쟁은 평화였는가? 자기들이 만들지 않았는데 좋아 보이는 것은 죄다 외계인이 세운 것이고 자기들이 한 나쁜 일은 자기들 탓이 아니라는 태도. 이것이 서유럽 백인들의 기본 마인드이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과학이 오랜 시간 가져왔던 태도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국제 분쟁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은 자원이 많거나 전략적 요충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자원이 많아서 어리석고 악한 독재정권이 이를 꽉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거나(이른바 자원의 저주),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포기할 수 없어서 분쟁은 정말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는 식의 설명들 말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우리는 독도의 자원 때문에 독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독도에 별 자원이 없으면 우리는 독도를 일본인들에게 그냥 넘겨줄 수 있을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순전히 지정학적인 이유로 알박기를 하는 것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슨 지정학적인 이유로 죽어가면서도 그 땅을 나가지 않는 것일까? 가끔은 우리 세계와 우리 지구가 사실은 ‘세계들’, ‘지구들’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엄연히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지구는 당연히 단 하나지만, 그 지구를 바라보고 그것을 각자의 머릿속에서 재구성해 만들어낸 세계/지구는 수십억 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만들어진 세계/지구의 일정 부분, 특히나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개념은 미국이 만들어 놓은 줄 세우기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 잘잘못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길어야 백년인 우리네 인생에서 그렇게 남이 만들어둔 안경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다소 억울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앎을 얻는 과정을 배움이라고 표현한다. 배움은 나의 앎이 어떤 위치에서 이루어져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고, 그 깨달음을 통해 나의 앎이 수많은 인과관계 중 일부에 해당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앎이란 우리의 사회, 세계, 우주의 일부에 불과하며 나의 앎, 타인의 앎이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를 파악해야 하며,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어떠한 구조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끝없이 돌아보며 고민해야 한다. 그게 바로 공부다. 우리의 앎에 그런 조건, 인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작게는 잘못된 앎을 가지는 것이고 태도가 오만한 것이지만 크게는 윤리와 정의에 어긋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국제 분쟁들에 대해서 대강의 원인과 결과를 정리해두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참고로 삼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분쟁/학살의 원인과 형태에 의한 분류 #영토 영토의 통치권, 개발권, 점유 등을 두고 싸우는 경우 #민족 민족, 부족 단위의 갈등, 학살 #종교 종교 혹은 종교관의 차이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 학살 #이념 이념 갈등으로 인해 벌어진 갈등, 학살 #자원 석유, 천연가스, 광물, 토지, 수자원 등을 두고 벌어진 갈등, 학살 #식민지와분할통치 갈등, 학살의 원인이 강대국의 식민통치, 분할통치 등과 관련이 있는 경우 #역사적갈등 1900년 이전, 즉 전근대 이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갈등 #전쟁범죄 전쟁의 와중에 벌어진 집단 학살, 약탈, 방화, 강간 등 #재난 갈등, 학살의 원인 중에 자연재해가 있는 경우 #기후위기 지구온난화, 사막화 등의 기후변화로 인해 생겨난 갈등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일본-러시아, 쿠릴열도) #영토 #역사적갈등 러시아와 일본이 조약을 맺어 아이누족이 살던 땅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일본은 쿠릴 열도(일본 이름 치시마)를, 러시아가 사할린 전역을 가지자는 내용이었다. 일본이 세력이 강해지면서 1904~1905년에 러일전쟁이 벌어졌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은 사할린 남부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2차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소련이 사할린을 수복하고 쿠릴 열도까지 점령했다. 당시 소련의 수장 스탈린은 홋카이도 북부까지 러시아 땅으로 삼고 싶었지만 미국의 반대로 쿠릴 열도를 가지는 정도로 만족하게 되었다. 이후 벌어진 도쿄재판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은 쿠릴열도의 영유권을 포기한다는 조약을 새로 맺게 되었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 문제를 다루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 중국 등 실제로 일본에게 피해를 입었던 국가들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다. (독도 문제도 이와 걸려 있다.) 1950년대 이후 일본이 다시 국세를 회복하자 일본은 시코탄 섬, 하보마이 군도, 쿠나시르 섬, 이투루프 섬이 쿠릴열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러시아에게 다시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것이 바로 쿠릴열도 분쟁, 일본에서 말하는 북방영토 분쟁이다. 일본의 우익들은 이 네 개 섬을 모두 돌려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일본 공산당 등 좌익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만이 유효하고 그 이후의 조약은 모두 문제가 있는, 무효에 가까운 조약이라고 주장하면서 쿠릴열도 전체를 돌려받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홋카이도가 비교적 비-자민당 세력이 강세인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는 아이누족과 일본인, 러시아인들이 널리 걸쳐살고 있고, 징용, 징병으로 끌려간 조선인들도 살고 있다. 이 문제까지 겹치면서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1894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영토 #민족 #종교 1894년부터 1917년까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을 원하던 여러 민족과 종교를 탄압한 사건들을 총칭해 부르는 말이다. 아르메니아 인이 기독교인으로 가장 많은 학살을 당했지만 그 이외에 그리스정교회나 가톨릭, 튀르크 족 이외의 다른 이슬람교 부족들도 대규모 학살을 당해 근대 최초의 제노사이드라 불리기도 한다. 적게는 60만 명에서 많게는 150만 명 정도가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튀르키예와 다른 이슬람국가, 동유럽 국가들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한다. 아직도 가해의 주체가 누구인가(국가인가 민간단체인가 둘 다인가), 피해의 규모가 얼마인가 등을 두고 다투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튀르키예 사이에 우호 분위기가 일자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는 이 사건을 언급하며 이슬람 국가들을 비난하기도 하였다.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 조약(일본-중국/대만, 센카쿠열도혹은조어도) #영토 #자원 센카쿠 열도, 댜오위다오(조어도)는 무인도다. 명나라 영락제 때 만들어진 지도에 중국 땅으로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그 이후의 중국 지도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류큐 왕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결국 오키나와 현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894년~1895년에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중국의 북양함대가 일본에게 패배했다. 중국의 직예총독 이홍장이 시모노세키로 가 이토 히로부미와 조약을 체결하며 대만과 요동의 통치권을 일본에 할양하게 되었다. 이때 조어도는 언급이 되지 않았다. 바로 직전인 1895년 1월, 후쿠오카 출신의 오키나와 상인 코가 타쯔시로(古賀辰四郞)가 조어도가 주인 없는 섬임을 확인하고 일본 정부의 땅으로 편입시켰다. 문제는 1960년대 이후 이 땅에 상당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후다. 중국과 대만에서는 이 땅이 고대 중국 지도에도 표시된 중국 땅인데 청일전쟁 중에 일본이 불법으로 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애초부터 이 땅이 류큐 열도의 일부인 암초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904년 독도(한국-일본) #영토 #식민지와분할통치 러일전쟁 당시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은근슬쩍 편입한 일본은 지금도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원래 무인도였으니 먼저 선점하는 사람이 임자 아니냐는 주장(무주지 선점론),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전후처리 과정에서 미국이 독도를 일본 땅의 일부인 것처럼 이야기했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1904년~1098년 독일의 나미비아 학살 #민족 #식민지와분할통치 나미비아에는 원래 코이코이족, 반투족, 산족, 헤레로족, 나마족 등이 살고 있었는데 1884년에 독일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독일인들은 이곳에 광산을 건설하고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가축, 토지를 빼앗았다. 독일의 폭력으로 삶의 기반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이 지역 원주민들은 결국 독일인들의 광산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남성들은 폭행, 여성들은 성폭행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게 되었다. 이를 견디지 못한 헤레로족의 사무엘 마하레로가 사람들을 이끌고 독일인들을 공격해 폭력/성폭력의 가해자 140여 명을 처형하고 그 이외의 독일 남성과 여성, 어린이 등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군대를 보내 나미지아 원주민들을 토벌하게 했다. 독일군은 무차별적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했는데 1904년 8만 5천 명 가량이던 헤레로족이 1908년에는 만 오천 명으로 줄어들었을 정도였다. 독일인들은 무기를 이용한 살해는 물론 사막이나 바다에서 아사를 시키거나 맹수에게 사람을 산 채로 던져주기, 생체실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 지역 원주민들을 살해했다. 나미비아에서는 독일에게 이 문제에 대한 인정과 사과, 배상을 요구했지만 독일은 이 일이 히틀러 이전의 일이므로 사과나 배상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정치인 개개인이 사과 발언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아직 정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기록되어 있다. 1920년 아일랜드 정부법(아일랜드-영국, 북아일랜드) #영토 #민족 #종교 #이념 #식민지와 분할통치 #역사적 갈등(1900년 이전부터의 갈등) 오랜시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를 둘로 나누어 개신교 신자가 많이 사는 북아일랜드를 영국 땅으로 남기고 가톨릭 신자가 많이 사는 나머지 땅을 독립시키게 되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아일랜드 문제를 오랜 기간 동안의 식민과 비식민, 착취와 피착취 문제라고 이야기하는데 영국인들은 이를 종교 갈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족과 종교, 역사 문제, 식민지 문제에 더해 왕정을 지지하는 사람과 공화제를 지지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도 존재하고 아일랜드에 주재하는 영국인들이 대체로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한편 오랜 기간 착취에 시달렸던 아일랜드인들은 진보, 개혁, 더 나아가서는 맑시즘(IRA)을 지지한다고 하는 이념 문제도 존재한다. 1972년에는 영국에서 비폭력 아일랜드인 시위대를 향해 사격을 실시해 14명을 죽인 일이 있었고(피의 일요일) 1982년에는 IRA 활동혐의로 체포된 정치범들이 자신들을 일반범죄자가 아니라 정치범으로 대우해달라는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아일랜드 단식투쟁). 과거 식민시절부터 현대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 대해 영국 정부가 사과를 하긴 했지만 영국의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재난 #민족 #이념 1923년 9월 1일,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관동지역 전역에 진도 6의 강진이 발생해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 지진 이후 사람들이 혼란한 와중에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가 조선인, 중국인과 함께 일본인들을 죽이고 정치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정부는 이를 방관하며 조장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소문은 언론을 타고 계속 확대 재생산 되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거나 지진의 원인이 조선인이라는 말까지 돌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3~4주 동안 대학살이 벌어졌다. 이를 관동대학살이라 한다. 같은 해 12월 5일 <독립신문>에서는 학살에 의한 사망자 수를 6,661명이라고 했고 일본의 기독교 사회주의자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1878~1933)는 2,500명 이상의 조선인이 학살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의 기독교청년회관에서 매년 추모식을 진행하고 있고 1945년 이후로는 도쿄도지사도 이곳에 참석하거나 사과 문구를 보냈지만 2017년부터는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지사에 의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의 난징 함락 #영토 #민족 #전쟁범죄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중국이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분열되어 있고 군대의 질과 양 모두 수준이 낮다고 판단해 중국을 순식간에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많은 시간과 자원, 인명피해를 발생시켜야 했다. 이로 인해 일본군 내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강해지게 되었다. 결국 일본군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난징을 지키겠다는 열의를 보였지만 능력이 부족했던 난징 수비 사령관 탕성즈(唐生智당생지, 1889~1970)는 결국 12월 12일 오후 다섯 시에 10만 명의 군인들과 25만 인민들을 그대로 두고 핵심 참모들만 대동한 채 난징을 빠져나갔다. 12월 13일 오전 네 시, 일본군이 난징성에 입성해 정부청사를 점령하면서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난징대학살이다. 일본인들은 총알을 아끼기 위해 칼이나 몽둥이로 사람을 죽였고 학살 대상은 군인에서 민간인, 성인 남성에서 여성과 아동, 노인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 당시 일본군은 점령지에서의 약탈과 방화를 교범에도 명시하고 있었다. 이런 교육 방식에 더해 일본군 내에 만연해있던 가혹한 군기 문화, 중국인에 대한 우월감, 전쟁 과정에서 생겨난 강한 적개심 등이 학살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었다. 6주 동안 벌어진 대학살에 대해 일본에서는 지금도 중국이 학살자 수를 부풀린다거나 학살은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1990년대에 이후 사회가 우경화되면서 직접적으로 이를 조롱하는 일본인들까지 존재한다. 1941년~1945년 홀로코스트(The Holocaust) #영토 #민족 #종교 #이념 #전쟁범죄 1932년, 나치당은 총선을 통해 독일의 제1 정당이 되었고, 1933년 1월에는 히틀러가 정권을 받아 독일을 통치하게 되었다.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홀로카우스토스(ὁλόκαυστος)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희생양을 불태우며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뜻한다. 나치독일에서는 이를 엔틀뢰중(Endlösung; 최종해결책)이라 불렀다. 가장 많이 수용되고 사망한 것은 역시 유대인이다. 유대인 이외에도 집시, 소련의 군인과 민간인, 정치범, 여호와의 증인 신도, 남성 동성애자, 장애인, 폴란드인 등이 강제수용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1944년 5월 타타르 족 이주 정책 실시 #민족 #영토 타타르 족은 몽골고원에서부터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에 걸쳐 살던 유목민이고 이 중에서 크림 반도에 사는 이들을 크림 타타르라 부른다. 러시아 제국이 망하고 이들은 크림 인민 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세속주의 이슬람 공화국을 세워 잠시 독립을 했지만 곧 볼셰비키의 침공을 받아 무너지게 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들을 3일만에 전부 화물칸에 싣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버렸다. 이 과정에서만 8천 명이 사망했고 그 전후 사망한 사람까지 합치면 최소 3만 명 이상의 피해자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크림 타타르족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주로 살고 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선언(팔레스타인-이스라엘 등, 가나안, 시나이반도) #민족 #종교 #영토 #식민지와분할통치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열강들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분쟁이 시작되었다. 가나안 영토, 시나이 반도에 대한 분쟁은 물론 여러 종교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 문제, 골란 고원의 실효지배를 둘러싼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 사이의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정부 수립, 9월 9일 북한 정부 수립 #이념 #영토 #식민지와분할통치 #전쟁범죄 1949년 12월 7일 국부천대(國府遷臺) #영토 #이념  중국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장졔스가 이끌던 국민당이 정부를 대만으로 옮긴 사건. 이를 계기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대만(중화민국)이 성립하였고 지금까지 두 나라의 문제를 양안(兩岸) 문제라 부른다. 1951년 5월 23일 티베트 17조 협의 #영토 #이념 #민족 #자원 #종교 티베트는 고대부터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하며 살았다. 고대에는 선비족이 이곳에 살았고 기원후 633년이 되어 지금의 티베트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티베트 왕국을 송첸캄포가 건국했다. 당시의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당나라를 상대로도 강력한 군사력을 발휘했던 티베트 왕국은 1750년 청나라 건륭제에 의해 청나라의 보호령이 되었다. 청나라가 멸망한 후 티베트는 독립을 선언했지만 열강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향해 진격하자 티베트와 중국은 17개 협의를 맺어 티베트는 자신들이 중국의 일부임을 선언하고 중국은 티베트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마오쩌똥의 정책이 계속 실패로 돌아가 경제가 심각하게 악화되고 공산당 내에서도 마오의 정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일자 마오는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선동을 시작해 과거의 구습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자는 명목을 내세우며 문화대혁명을 벌이게 되었다. 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한 환경파괴는 물론, 종교 탄압을 위해 사원 파괴, 종교인 학살, 공개된 장소에서의 강제 성관계 지시 등을 벌였다. 이 과정을 다룬 영화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1997)>이다. 티베트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와 정치적 탄압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핵개발이나 원자력 발전으로 생겨난 방사능 물질을 이 지역에 버리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만 정부도 티베트는 중국 영토이며 티베트인은 중국인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54년 11월 1일 알제리 전쟁 발발 #민족 #식민지 #역사적갈등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것은 1830년대의 일이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후, 1945년 5월 8일에 나치가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하자 알제리 인들이 모두 거리에 나와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때 벌어진 프랑스인들의 알제리인 학살을 세티프 구엘마 학살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이를 계기로 알제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1954년까지 프랑스는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하는 것처럼 지속적인 학살과 테러를 자행했다. 그러던 중 호치민이 중심이 된 베트남 독립은 알제리인들에게 매우 큰 자극이 되었다. 1954년 11월 1일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은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을 선언하고 1962년 3월 19일까지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인들은 알제리에서는 물론 프랑스 본토의 알제리인에 대해서도 학살과 강제수용을 자행했고 알제리 민족해방전선도 프랑스인과 온건파 알제리인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 1959년 르완다 내전 시작 #민족 #식민지 #전쟁범죄 1959년 르완다 내전이 시작되었다. 르완다와 부룬디 지역에는 후투족과 투치족 등이 자유롭게 각자의 영역을 지켜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문제는 벨기에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벌어졌다. 벨기에 사람들은 키와 콧대의 길이 등을 이유로 투치족을 더 우월한 부족이라고 평가하고 이들에게 권력을 주며 이 일대를 통치하게 했다. 벨기에는 소수의 투치족에게 권력을 몰아주고 다수의 후투족들의 권력을 빼앗고 후투족 족장들을 살해하거나 추방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재편했다. 부룬디에서도 이와 관련해 내전이 벌어졌지만 두 민족의 사람수나 재산에 큰 차이가 없었으므로 일방적인 학살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르완다는 달랐다. 권력은 투치족이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수는 후투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권력을 쥔 투치족과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후투족 사이에서 내전이 벌어졌고 계속되는 내전 끝에 1994년 4월 7일, 르완다 학살이 벌어졌다. 후투족 민병대가 약 3개월 동안 투치족을 최소 50만 명 이상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제의 양극화 속에서 대체로 직업이 없었던 후투족 젊은이들이 이곳에 대거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이 시기에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가 최소 천 명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1960년 11월 13일 과테말라 내전 발발 #민족 #정치 #자원 #식민지 과테말라는 1954년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 군부가 통치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오요라 불리는 유럽 이주민들의 후손과 친-군부 인사들이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고 대다수의 과테말라 국민들은 소작농이나 빈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60년 11월 13일 젊은 좌익 장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 쿠데타는 금방 진압되고 실패했지만 이 일이 기폭제가 되어 수많은 좌익 단체들이 결성되어 과테말라 정부와 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은 1996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는데 이 사이에 과테말라 정부는 미국, 이스라엘, 대만 등의 지원을 받아 좌파 지식인, 노동조합에 가입된 사람, 종교인, 언론인, 학생, 기타 반정부적으로 보이는 사람 약 20만 명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 1962년 3월 2일 버마 군사반란과 네윈의 집권 #민족 #종교 #식민지 버마(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인들은 이 지역을 쉽게 다스리기 위해 그 지역 부족에게 토지의 경영을 맡겼는데 그렇게 선택된 사람들이 바로 로힝야족이었다. 버마족을 비롯해 미얀마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민족들이 로힝야족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또 대체로 불교를 믿는 다른 민족과 달리 로힝야족이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점도 있다. 영국이 미얀마를 떠나고, 네윈이 무혈 쿠데타로 집권을 하면서 정치, 경제 분야에서 나름대로 힘을 발휘하던 로힝야족이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네윈의 집권 이후 버마족의 힘이 강대해지자 다른 민족들은 버마족에 대한 경계를 하는 편인데 로힝야족의 탄압에 대해서만은 동일하게 같은 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2012년 로힝야족 남성이 라카인족 여성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과 추방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기도 했다. 1962년 10월 20일 중인전쟁 발발 #영토 #민족 #식민지와분할통치 #역사적갈등 인도와 중국의 국경분쟁은 사실상 티베트 땅을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가 히말라야 주변에 있던 작은 부족국가들을 정복하고 달라이라마가 중국을 피해 인도로 망명하면서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은 티베트의 종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인도는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가하면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티베트 근처에서 군사행동을 벌이려 했다. 영국의 지원을 받아 자신만만해 하던 인도는 설마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중국군은 오랜기간 국민당, 일본과 싸웠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1962년 10월 20일 중국이 공격을 시작했고 중국은 뛰어난 화력을 갖춘 인도군을 재래식 보병으로 정밀타격하고 보급로를 끊으며 계속 승리를 거뒀다. 중국은 인도 국경까지 밀고 들어갔고 세계 열강들은 한국전쟁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계속 밀리던 인도는 결국 비동맹 원칙을 깨고 미국에게 중국에 폭격을 가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소련도 이를 승인했다. 결국 중국은 11월 21일 전쟁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제3세계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인도는 이 일로 완전히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인도는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인정하고, 중국도 인도가 네팔과 부탄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 이 전쟁은 끝이 나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는 이 이후에도 티베트, 히말라야 지역을 두고 계속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다. 1967년에는 시킴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중국이 군사행동을 벌였다가 인도에게 패했고 2017년에는 부탄을 두고 중국과 인도가 서로 심리전을 벌이다가 투석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고  2020년에는 카슈미르에서 주먹과 돌, 몽둥이 등을 이용해 백병전을 벌였고 2022년에도 인도 타왕에서 패싸움이 벌어졌다. 이들의 싸움에 대해 부탄과 네팔, 티베트 사람들의 입장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66년 5월 26일 가이아나 독립 #식민지와분할통치 #영토 #자원 1966년 영국령 기이나라 불리던 지역이 독립하면서 과야나에세키바(Guayana Esequiba) 지역의 영유권 문제가 불거졌다. 과거 베네수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스페인과 영국은 과야나에세키바를 두고 싸움을 거듭하며 뺏고 빼앗기기를 거듭했는데 가이아나가 독립하면서 이 땅을 두고 가이아나와 베네수엘라 사이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가이아나가 이 영토를 개발하려고 하면 베네수엘라에서 경제적, 군사적 제재를 시행해 방해를 하는 방식으로 분쟁이 진행되었다. 과야나에세키바는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석유가 매장되어 있기도 하며 가이아나 영토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1975년 4월 17일 크메르루주 집권 #이념 #식민지와분할통치 캄보디아의 극좌 무장단체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했다. 과격한 방식으로 집권을 하고도 국가의 발전이나 민생의 안정을 이루지 못했고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괴상한 정책들을 쏟아내자 크메르 루주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져갔다. 이에 크메르루주와 지도자 폴 포트는 캄보디아 민족주의와 자신만들만의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도시에 살던 사람들을 지방으로 추방해 강제노동을 시켰고, 스포츠 선수, 연예인, 학자, 학생, 공무원, 의료인, 종교인, 외국인 등을 학살했는데 이것이 바로 킬링필드다. 심지어는 안경을 쓰거나 손이 부드러운 사람, 배가 나온 사람,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책을 똑바로 드는 사람 등을 지식분자로 몰아 그 가족들까지 고문하고 살해했다. 또 10세 미만의 아동들을 부모와 떼어놓고 고문기술, 사격 등을 가르쳐 사람들을 죽이게 했고, 지방 간부들은 모든 여성을 성폭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대학살극은 197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공격하면서 끝이 나게 되었지만, 미국은 베트남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크메르루주 정권을 지원했다. 시간이 흘러 2006년부터 2022년까지 크메르루주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주동자인 폴 포트는 이미 죽은 뒤였다. 매년 5월 20일은 킬링필드 희생자 추모의 날이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통일 #이념 #식민지와분할통치 1975년 12월 7일 동티모르 사태 #영토 #민족 #자원 #전쟁범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침공해 강제 병합했다. 이 당시 동티모르인 18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이를 취재하던 호주인 기자와 뉴질랜드 기자들도 인도네시아군인들에게 처형당했다. 이 이후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은 이 지역에서 최소 10만 명 이상의 동티모르인을 죽였다. 1999년, 인도네시아의 학살 계획을 사전에 입수한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 이를 APEC에 긴급 안건으로 제기해 인도네시아에 대한 선진국들의 경제적 원조를 하면서 동티모르의 학살을 막고 독립을 지원한 일이 있다. 이로 인해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동티모르는 2002년에 완전히 독립했다. 1976년 2월 27일 서사하라 독립 선언 #식민지와분할통치 #영토 #민족 서사하라 지역은 고대부터 베르베르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 대항해시대 이후 여러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분할점령했는데 잠시 모로코 왕국이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가 스페인이 다시 빼앗아 식민지로 삼았다. 그래서 이 지역을 한때 스페인령 사하라라고 했다. 서사하라 원주민들은 계속 독립을 요구했고, 모코로에서는 스페인이 자신들에게 이 땅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UN에 스페인을 제소하기까지 했다. 1974년, 스페인이 민주화 운동으로 어지러워지면서 식민지들을 포기하게 되었는데 이 틈을 타 모로코가 이 지역을 군사점령했다. 이에 앞서 1973년 서사하라인들이 중심이 되어 폴리사리오 전선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진행했는데 모로코가 군사적 개입을 시작하자 1976년 폴리사리오 전선은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했다. 지금도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은 독립운동을 진행중이다. 1982년 4월 2일 포클랜드 전쟁 발발 #식민지와분할통치 #영토 포클랜드 제도는 아르헨티나 근처, 남극 바로 위에 있는 영국령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이 섬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 전에는 누가 여기에 살았는지, 정확히 언제 누가 발견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1810년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이 땅은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 영토가 되는가 했는데 영국이 실효지배를 했고 1833년에는 군대를 보내 아르헨티나 주민들을 추방하면서 완전한 영국 땅이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악화되고 민심이 악화되자 아르헨티나에서는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자 군대를 일으켜 포클랜드 제도를 공격했다. 당시 포클랜드에는 소수의 영국군이 주둔중이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이 섬을 점령하고 포로로 잡은 영국군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영국의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마가릿 대처 영국 수상은 즉시 군대에 명령을 내려 포클랜드 탈환을 지시했다. 영국이 승리한 후, 아르헨티나의 레오폴도 갈티에리 대통령은 자국 국민들에게 아르헨티나가 승리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되면서 패전 소식이 아르헨티나 내부로 빠르게 전해졌다. 결국 이후 아르헨티나 정치는 악화되어 거의 2년 동안 네 명의 대통령이 바뀔 정도로 불안정해졌고, 인기가 떨어지고 있던 대처는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일조하게 되었다. 1983년 11월 15일 북 키프로스 독립 선언 #영토 #민족 #종교 1960년 키프로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키프로스는 8할 정도가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 인이었다. 이를 이유로 1974년, 그리스와 키프로스의 통합을 추진하는 그리스인 중심을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 군은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키예 인들이 모여 사는 키프로스 섬 북부를 ‘보호’라는 명목으로 점령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키프로스 전체에서 튀르키예 인들은 키프로스 섬 북부로, 그리스 인들은 그 이외의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키프로스 섬 북부 사람들이 키프로스 연방 튀르키예 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UN에서 중재를 시작했지만 남 키프로스 사람들은 쿠데타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북 키프로스 사람들은 공화국의 승인을 요구하며 타협점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1983년 11월 15일, 북 키프로스가 완전히 독립을 선언하면서 중재는 결렬되었다. 지금까지도 연방제 방식의 통합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남북 각각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1990년 11월 2일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발발 #영토 #이념 소련 몰도바 공화국의 일부였던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독립을 요구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의 중재를 통해 1992년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는 화해를 했지만 지금도 트란스니스트리아 사람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다. 원래 같은 지역이었던 두 나라는 소련의 성립 이후 친소련 성향의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루마니아 왕국에 속해 있었던 몰도바로 나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1991년 11월 27일 소말리아 내전 발발 #역사적갈등 #영토 #민족 #이념 #식민지와분할통치 원래 소말리아 땅은 에티오피아 왕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고, 지금의 소말릴란드 땅에는 아달 술탄국이 있었다. 1880년대 들어서 소말릴란드 해안가는 영국이 점령하고 내륙은 에티오피아가 점령하게 되었다. 1936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점령했다. 이 시기 이 지역을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라 불렀다. 1945년 이탈리아가 패전을 하고 무솔리니 부부와 그 일당들의 시체가 거리에 매달릴 무렵에는 영국이 잠시 이 지역을 지배했다가 1950년부터 다시 이탈리아가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소말리아 지역이 독립한 것은 1960년의 일이다. 소말리아가 독립한 직후 소말리아에는 대-소말리아 주의가 퍼지면서 에티오피아와 국경분쟁을 벌이게 되었다. 전쟁이 계속되자 1969년 시아드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셰르마르케 대통령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시아드 바레는 마레한 족 출신 아버지와 오가딘 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제 발전과 영토확장을 국시로 삼고 국내의 불만을 억누르며 독재를 하던 시아드 바레는 소말리아가 군사적 요충지임을 이용해 소련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외교를 행했는데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에티오피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발생했다. 에티오피아는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아 소말리아에게 군사적 압력을 가했고 라틴 아메리카와 동아프리카를 휩쓴 금융위기와 시아드 바레의 자기 부족 중심의 정치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결국 소말리아는 시아드 바레와 반 시아드 바레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게 되었다. 1987년에는 작은 규모의 내전에 불과했지만 1991년, 반 시아드 바레 파인 통일 소말리아 회의(USC)가 모가디슈를 점령하면서 바레 정권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 시기를 다룬 영화가 조인성, 김윤석 등이 출연한 <모가디슈(2021)>이고 이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소말리아 내부의 갈등을 소말리아 내전이라고 부른다. 소말리아 정부군과 각 부족, 씨족 사이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1993년에 벌어진 모가디슈 전투를 다룬 영화가 바로 <블랙 호크 다운(2001)>이다. 내전으로 인해 살기 어려워진 소말리아 청년들은 해적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는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이 내전에 참전하게 만들었고 한국의 청해부대도 피랍된 한국 선박을 구조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작전을 펼친 바 있다. 그 와중에 소말릴란드 지역은 1993년에 부족간의 화해를 이루며 독립하고 자신들끼리 평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소말리아 측에서는 소말릴란드가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금은 내전으로 인해 소말릴란드에 대한 행동은 없는 상태다. 1992년 8월 14일 압하지야(Аԥсны) 전쟁 발발 #영토 #민족 #역사적갈등 압하지야는 압하지야인들이 사는 땅이다. 이들은 이전부터 조지아(그루지아)로부터의 독립을 원했지만 조지아가 이를 묵살해왔다. 결국 압하지야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조지아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였고 사실상의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 전쟁 과정에서 압하지야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조지아인들에 대한 인종청소가 벌어졌는데 1989년 525,000명이었던 압하지야 인구가 216,000명으로 줄어들 정도였다. 전쟁 자체는 1993년에 끝났지만 인종청소는 1998년까지 계속되었고 조지아는 이에 대한 복수와 영토 수복을 위해 지금까지 군사행동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과 서유럽세계에서는 압하지야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93년 10월 21일 부룬디 내전 #영토 #민족 #자원 #정치 #식민지 #역사적갈등 부룬디에는 트와족, 투치족, 후투족 등이 살던 왕국이었다. 독일과 벨기에가 차례로 브룬디 왕국을 점령했는데 벨기에는 항상 부족들을 이간질 시미켜 식민지를 다스렸다. 1962년 부룬디가 독립하고 투치족 중심의 독재정권이 서면서 후투족을 탄압해 왔다. 1972년 이후로는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해 왔는데 1993년 드디어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후투계 민주정당인 부룬디 민주전선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쿠데타 시도는 있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런데 부룬디 대통령이 비행기 요격사건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를 계기로 후투족과 투치족 극단주의자들이 무장봉기를 하게 되었고 서로 학살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2005년 5월에 종료되었는데 이때까지 최소 25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2월 28일 코소보 전쟁 발발 #영토 #민족 #역사적갈등 코소보는 원래 세르비아의 발상지였지만 후에는 오스만 제국 휘하로 편입되었다. 이 이후로는 세르비아인이 아니라 알바니아인들이 코소보에 살게 되었다. 1815년, 세르비아가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한 후 발칸전쟁(1912)을 거쳐 코소보를 차지하였다. 세르비아와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코소보를 세르비아화 시키고자 하였는데 이후에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서면서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티토는 코소보 내의 세르비아화를 중지하고 모든 민족의 생존권과 거주권을 자유롭게 보장하려 하였다. 티토라는 지도자 하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듯 했지만 티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분리되었고 과격파 세르비아인인 밀로셰비치가 유고의 대통령이 되면서 코소보를 세르비아의 역사적 성지라는 이유로 자치권을 박탈하고 다시 세르비아화를 추진했다. 결국 코소보는 알바니아인들을 중심으로 독립을 선언했고 급진파를 중심으로 코소보 군대가 결성되면서 상황이 험악해졌다. 문제는 코소보 독립군이 인신매매, 마약밀매, 장기매매 등으로 자금을 마련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코소보와 알바니아인의 자유를 외치는 코소보와 코소보를 범죄집단으로 보는 유고 군대가 충돌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코소보 전쟁(혹은 코소보 사태)이다. 코소보, 세르비아, 그리고 인접국인 몬테네그로는 물론 NATO가 개입하면서 이 전쟁은 대규모 국제전이 되었고 밀로셰비치는 이 기회를 빌려 알바니아에 대한 인종청소를 시행했다. 이 전쟁은 살짝 특이하게도 서구 학계에 화제가 되었는데 전쟁범죄를 일으킨 밀로셰비치에 대한 NATO의 공격에 대해 위르겐 하버마스, 수전 손택 등이 지지를 표시했고 선전포고 없이 기습 공격을 벌인 NATO에 대해서 노엄 촘스키가 비판적인 입장을 표시하여 학자 개개인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2003년 2월 다르푸르 학살 시작 #영토 #민족 #자원 #기후위기 #전쟁범죄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 이 지역에는 이전부터 아프리카 흑인과 아랍계 이슬람교도들 사이에 갈등이 있어 왔다. 또 유목민인 바가라족과 농경민족은 푸르족, 자가와족, 마살라이트족이 있었다. 문제는 기후위기였다. 인구의 증가와 토지의 사막화로 인해 유목민들이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목초지를 만들려는 유목민들과 경작지를 유지, 확대하려는 농경민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랍계 유목 민병대들은 정부와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의 비호하에 약탈, 방화, 강간 등을 벌였고 2003년 2월에 이에 대항해 흑인 반군이 조직되었다. 정부에서는 이를 핑계 삼아 흑인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했다. 이 내전/학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지금까지 최소 3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2008년 8월 26일 남 오세티야(South Ossetia, Хуссар Ирысто) 독립 #민족 #역사적갈등(1900년 이전부터의 갈등) 오세티야는 오세트 인들이 사는 땅이다. 러시아 제국이 오세티야를 러시아 땅의 일부로 병합했고, 소련 혁명 직후에는 오세티야를 둘로 나눠 북 오세티야는 소련의 일부로, 남 오세티야는 그루지야(조지아) 공화국의 일부로 삼았다. 소련이 해체된 후 남 오세티야는 조지아의 일부가 되었지만 오세트 인들이 반발하면서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남 오세티야는 조지아 통치령과 오세트 자치령으로 나뉘게 되었다(1991~1992 오세티야 전쟁). 이후 남 오세티야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부를 성립하고 독립을 선포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8년 러시아와 손을 잡은 남 오세티야는 군대를 일으켜 조지아가 통제하던 지역을 전부 탈환했지만 지금도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남 오세티야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2011년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건설 #기후위기 #자원 에티오피아는 2011년부터 청나일강 부근에 수자원 확보를 위한 댐을 짓고 있다. 하지만 사막화로 인해 나일강 하류의 수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댐이 건설되면 청나일강에 수자원을 의존하고 있는 이집트는 수자원이 급감하고 오염된 물을 마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이 댐을 두고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수단이 계속 협상을 진행했지만 지속적으로 협상재개와 결렬을 반복 중이다.  2014년 야지디족 학살 #민족 #종교 #전쟁범죄 이라크, 시리아 지역을 점령한 ISIL은 야지디족에 대한 학살을 시행했다. 야지디족은 야지드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야지드교는 야지단이라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아브라함 계열 종교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인 ISIL은 이들에 대한 학살을 벌였다. ISIL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나디아 무라드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4년 2월 28일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영토 #민족 #이념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땅이지만 러시아계 주민이 60%, 우크라이나계 주민이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러시아계 주민들은 군사력도 강하고 경제력도 높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차지하길 원했고, 15% 정도를 차지하던 타타르인들은 과거에 자신들을 크림반도에서 추방했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이로 인해 정치적인 불안정이 늘 존재하는 곳이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는 독재 친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를 지지하는 친서방 과도정부가 들어섰다(유로마이단 혁명). 러시아에서는 이것이 쿠데타에 의한 불법적인 정권탈취라고 비난했는데 그 해 2월 25일, 친러시아계 주민들이 크림반도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나와 우크라이나 과도정부 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틀 뒤, 세르게이 익쇼노프라는 범죄단체 수장 출신의 정치인이 갑자기 등장해 20여 명의 무장병력으로 크림반도의 관공서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크림반도 총리가 된 세르게이 익쇼노프는 푸틴에게 크림반도의 치안과 안보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고 푸틴은 2월 28일에 러시아 군대를 크림반도로 보내 순식간에 점령해버렸다. 결국 3월 17일 크림반도에서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독립투표가 벌어졌고 크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하게 되었다. 2014년 4월 6일 돈바스 전쟁 #영토 #민족 #이념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인해 친러 성향이 강하던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도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돈바스 지역은 원래 소련으로부터의 독립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가 강한 곳이었지만 우크라이나의 계속되는 부정부패와 정책 실패는 돈바스의 상황을 계속 악화시켰다. 돈바스 지역의 평균임금은 1993년에는 소련 독립 시기(1991년)에 비해 80%나 하락할 정도였고 헐리우드에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그리고 싶으면 이곳을 촬영해간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이 이후로 돈바스는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도 원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유로마이단 혁명이 벌어졌고 이 기회를 틈타 우크라이나 안에서 자치를 원하던 지역들이 모두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시위나 군사행동을 벌였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군사행동을 벌인 곳이 바로 돈바스였다. 이 전쟁은 결국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이것이 확대된 것이 바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2014년 4월 30일 우루무치 역 테러 사건 #영토 #민족 #식민지 시진핑 주석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시찰한 직후 벌어진 위구르족의 자살 폭탄 테러다. 총 79명 사망. 원래 위구르 땅에는 몽골계 유목민인 준가르라는 사람들이 살았다. 이들은 끝까지 청나라에 저항하면서 청나라를 괴롭혔고, 건륭제는 준가르 사람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메운 것이 준가르 이전에 원래 살던 위구르족과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등이다. 근대에 들어서 청나라의 힘이 약화된 후에는 독립과 병합을 반복하다가 1955년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청나라 때부터 독립 혹은 이슬람 문화권과의 병합을 원하던 이 지역 사람들이 다시 중국 정부에 불만을 품게 된 것은 1980년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의 일이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이렇게 밀려난 빈민, 농민공들이 신장 지역까지 오게 되면서 선주민들과 한족 빈민/농민공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 것이다. 2014년의 테러를 기점으로 시진핑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였고 이것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신장 위구르 재교육 수용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위구르인들은 강제 노동은 물론 폭행, 성폭행, 강제 개종, 강제 결혼 등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23년 9월 19일 아르차흐 분쟁 #영토 #민족 아제르바이잔과 아르차흐 공화국 사이에서 일어난 20시간 동안의 군사충돌. 이 일로 아르차흐 공화국은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Наго́рный Караба́х)라 불리는 이 지역은 원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스탈린 시절에 소련의 침공을 받고 소련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985년에 고르바초프가 취임하면서 이 지역이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소련이 해체된 후에는 아제르바이잔의 일부가 되었는데 그곳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전쟁이 벌어졌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의 1차 전쟁에서는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승리해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했지만 2020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전쟁을 벌일 때에는 아제르바이잔이 승리하면서 이 지역의 일부를 통치하게 되었다. 결국 2023년 아제르바이잔이 이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고 아르차흐 공화국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완전히 아제르바이잔 땅이 되었다. 브라마푸트라(Brahmaputra)강 댐 건설 #영토 #자원 중국이 이 지역에 향후 댐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티베트 지역에서 시작해 인도와 방글라데시로 흘러가는 이 강의 수로가 댐 건설에 의해 바뀔 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고 물을 무기로 삼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와 안 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은 인도와 중국이 이 문제로 다시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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