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평화]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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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반복되는 국제분쟁을 바라보며, 우리 주변의 평화를 상상한 캠페이너들의 기록을 소개합니다. 

애석하게도 오늘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군대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최대한 적게 쓰려고 했으니까 조금만 참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올해 8월 말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TMI이지만 예비군 훈련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월요일에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 코로나19 확진 후 훈련에 참여하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내가 받아야 하는 훈련 이름이 더 당황스러웠다. 살아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저격수 훈련’이라니.

도대체 저격수 훈련은 어떤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현역 시절에 ‘특급사수’ 이력이 있으면 차출당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커뮤니티 글이 검색됐다. 불현듯 8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논산훈련소 사격장은 너무 더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여름에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외부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힘들다. 그때의 나도 그랬고, 빨리 쉬고 싶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단 한 번에(!) 20발 중 18발을 맞췄다. 사격 훈련이 끝날 때까지의 휴식은 물론이고, 어쩌다 보니 중대 1등을 기록해서 특급사수 표창까지 받았다.

그게 내 인생 마지막 특급사수였다. 물론 2년 가까운 군 생활에서 사격 훈련은 한참 더 있었다. 하지만 멋모르던 훈련병 시절 이후 나는 사격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나름의 계기가 있었다. 내가 생활했던 부대 안에는 동원훈련을 위한 사격장이 있었다. 사격장 뒤로는 순찰로가 있었고, 사격이 진행되는 동안엔 안전을 위해서 순찰을 하지 않았다. 군 생활 절반이 채 안 되었던 시기로 기억하는데, 영점 사격을 한창 하던 중 순찰로에서 병사 두 명이 내려오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총기의 조준선 너머로 보이는 표적이 단순한 종이, 플라스틱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출처: Unsplash
“총 쏘시는 거 좋아들하시니까 마지막 훈련 열심히 받고 가세요”

마지막 예비군 훈련은 운이 좋게도 3시간이나 일찍 끝났다. 어떻게든 집에 일찍 가고야 말겠다는 예비군들의 집념이 만들어 낸 사격 우수 성과 덕분이었다. 그런데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마냥 유쾌하진 않았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들었던 교관의 말이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뭘 위해서 오늘 총을 40발이나 쏜 걸까? 사격을 즐거워해도 되는 걸까?’ 전투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내 손에 있던 총기가 향했던 곳엔 종이 표적지가 있었지만 세계 곳곳에 있는 누군가의 손에 있는 총기는 살아있는 사람을 향하고 있다. 분쟁, 갈등, 투쟁의 역사에 적혀있는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2023년의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과거의 한반도를 비롯해 수많은 곳에서 사람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벌어졌다. 누군가에겐 투쟁이었고, 누군가는 분쟁 혹은 전쟁이라 표현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분쟁과 전쟁은 비단 사람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국 전쟁이 시작된 지 70년이 넘은 지금도 한반도에선 ‘빨갱이’, ‘종북좌파’ 같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념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시계가 느린 분들이 참 많다.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철 지난 이념을 악용하는 사람도 참 많다. 없는 간첩도 만들어 내던 시대보다야 덜 하겠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분쟁과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도 만들어 냈다.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명제다. 평화가 필요하고,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답은 사실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을 보며 한 가지 확실한 건 ‘힘에 의한 평화’와 같은 거짓말은 하지도, 믿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 무장조직 하마스의 군사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였다. 그 큰 차이가 평화를 만들어줬을까? 오히려 평화를 위한 노력 대신 큰 힘의 차이를 만들어 상대를 억압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 아닐까?

너무 뻔한 말 같지만 그래서 진짜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배경엔 분쟁과 전쟁 속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지속적인 관심이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총구를 들이밀면 총구가 돌아올 것이다. 반대로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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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 의한 평화 ... 가능성과 설득력 있는 이야기입니다 만 ... 힘 만 있다고 평화가 유지, 지속 가능할 까요 ? 힘을 키우는 것은 평화를 지키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만의 하나를 대비하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힘 키우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과 평화를 유지, 지속 시키기 위한 서로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Give and Take ~ ! 처럼 상대에게서 먼저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 ! 상대에게 먼저 줄 생각을 하면서, 받을 생각을 해야만 평화 유지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마법처럼 한 번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전쟁으로 인해 죽는 사람들, 동물들, 살아남았음에도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더 많은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요구합니다.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날 모의 총기 사격을 체험하게 한 학교도 있었지요. 시즌3까지 나온 인기 군 예능에서도 총기는 참 쉽게 다루어집니다. 서로를 향해 모의 총을 쏘는 장면을 보며 명중했다고 패널들이 감탄하고, 총을 쏴서 붉은 색소의 병을 깨뜨리고... 정말 공포스러워요. 과연 강력한 무기로 안전과 평화를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인지, 반드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인 듯 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도 처음 총을 쐈을 때, 군복을 입었을 때가 기억나네요. 지금 돌이켜보면 생명에 대해, 평화에 대해 어느 순간 내가 무뎌졌구나 싶어요.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대화에 의한 평화'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이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