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혁신도시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건물 앞에 커다란 버스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지나가며 “저거 봐, 시위한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다 금방 화제를 바꾸며 멀어집니다. 얇은 외투를 걸치고 나들이 가기 좋은 가을 날씨에,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농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500여 명의 노조원들이 11월 1일부터 무기한 천막 농성에 돌입했고, 11명은 단식 농성을 병행합니다. 건보공단 측은 노조원들이 공단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문에 차벽을 세우고 진입로를 방호 펜스로 둘렀는데, 노조원들이 공단 옆 방호 펜스를 넘어 공단 본부로 진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3일, 건보공단 측은 집회에 참여한 400여 명의 노조원을 폭력행위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23.11.03]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조원 400명 폭력행위 등으로 고소
👔공단 관계자:
"이들의 농성 행위는 자신들의 권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타인의 권리와 권익은 일체 외면하는 행위다. 공단 본부 건물 광장 및 주 출입구 점거로 인해 방문 민원 대응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고객센터 노조:
"공단이 과도한 채용 절차를 들이밀고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한 전환의 취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23.11.03] 건보공단, 결국 고객센터 노조 고소‥갈등은 더욱 심화
익숙한 평행선입니다. 사측은 파업, 농성, 점거 등으로 인한 불편을 이야기하고 노동자 측은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 등을 주장합니다. 오래된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밖으로 분출된 모양새입니다. 사실, 건보공단을 비롯한 여러 공기업에는 고질적으로 고객센터 노동자의 처우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대부분 기관과 노동자 사이에 민간업체가 존재합니다. 공단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고용은 민간업체를 통해서 하므로 고용불안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올해 초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발표한 전수조사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 상담센터는 80% 이상이 민간 위탁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김윤숙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상담사는 2년에 한 번씩 민간 위탁 재계약 때마다 노동자 수십 명이 강제 퇴사, 이전을 당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소속사가 바뀔 때마다 신규 입사로 처리되는 바람에 임금인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 김 상담사의 2019년 임금 실수령액은 160만 원대였다. 현재도 근속 수당, 식대를 포함해도 월급은 183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23.01.11] 정부가 외면하고 민간기업이 착취한다, 공공기관 민간 위탁 콜센터 전수조사
11월 8일, 전국의 민주노총 콜센터 노동자들이 원주에서 결의대회를 열게 된 것 또한 이런 문제가 비단 건보공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은 아래 다섯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습니다.
- 저임금, 고용구조개선, 간접고용 직접고용 전환
- 제대로 된 표준용역계약서, 임금체계 마련
- 감정노동자 보호조치
- 건강권 보호를 위한 사업장 내 보호조치
- 노조를 설립할 권리 등 노동3권 보장
참가자들은 “감정노동자보호법 제정 5년이 지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정부 대책이 제시됐음에도 콜센터 상담 노동 현장은 그대로”라면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간접고용”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인권위가 조사하고 여러 정책연구 전문가들이 ‘간접고용’을 문제로 꼽았지만 사회적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결의대회가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년 전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을 소속기관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시간만 지난 채 해고 협박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23.11.08]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공단, 다시 파업에 나선 노동자… “직접고용 전환하라”
위에서 언급된 ‘약속’은 2021년 10월에 건보공단이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소속기관을 공단으로 전환하기로 했던 일을 말합니다. 건보공단 본사는 2년 전에도 소란스러웠습니다. 소속기관 전환을 요구하며 노조가 파업과 농성을 진행했고, 공단 측은 노조원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참여자들의 본사 건물 진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설치하고, 건물 입구에는 공단 직원들이 24시간 대기했습니다. 고객센터 노조와 공단 노조의 합의를 촉구하며 이사장이 단식 농성을 하는 상황도 벌어졌죠.
노조원 진입 막으려…철조망 설치한 건보공단 (2021.07.09/뉴스투데이/MBC)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른 듯 하였으나, 2년이 지난 지금도 소속기관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데 1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고용 전환을 위한 협의체 구성에도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소속 전환이 진행되지 않은 데에 더해 전환 대상과 채용 방식에 관한 부분에서 갈등은 촉발되었습니다.
노조 쪽 설명을 들어보면, 간접고용 상태인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 소속을 공단 소속기관으로 전환하는 합의가 이뤄진 지 2년째이나 이를 결정짓기 위한 노·사·전문가 협의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협의회 자리에서 공단이 제시한 안을 보면, 공단은 정규직화가 가시화한 2019년 2월 이후 입사자 700명을 대상으로 공개경쟁 채용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상담사 1,693명 중 41.3%에 해당한다.
[23.11.01] 정규직화 과정 40% ‘물갈이’…건강보험 콜센터 노동자 파업 돌입
‘정부 전환 기준일 이후 채용자 700여 명을 공단이 해고하려 한다’는 노조의 주장에 공단은 “2019년 2월27일 민간 위탁 정책 추진 방향 절차 발표 전까지 민간 위탁 수탁기관에 근로하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정부 전환 기준일 이후 채용자 700여 명은 원칙적으로는 전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23.11.03]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조합 불법점거에 고소장 제출
공단은 올해 10월 노·사·전문가 협의체에서 약속과 다른 안을 냈다. 안에 따르면 2017년 5월~2019년 2월27일 입사자는 ‘제한경쟁 대상자’, 2019년 2월28일 이후 입사자는 ‘공개채용 대상자’라고 했다. 제한경쟁 대상자는 소속기관으로 가기 위해 필기시험, 인성 검사, 두 번의 면접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하면 탈락, 즉 해고다. 공개채용 대상자는 새로 이력서를 내고 필기시험, 인성 검사,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운이 나쁘면 최대 700여 명이 해고될 수 있다. 노조가 고민 끝에 총파업에 돌입하고 집단 단식농성, 천막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3.11.09] 건강보험공단은 '소속기관 전환' 약속을 지켜라 - 김금영(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서울지회장)
⛺ 건보공단 앞에서 시작된 단식과 노숙 농성은 이제 10일 차를 넘어섰습니다.
집회를 막기 위한 울타리를 설치, 그 울타리를 부수고 진입, 이를 경찰에 고소하는 등 서로의 강경책이 이어지며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상담센터 소속 전환과 노동자의 권리 투쟁, 건보공단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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