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시민권’으로서 공통 인공지능을 상상해야 한다

20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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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염으로 창조된 AI의 시대,
‘시민권’으로서 공통 인공지능을 상상해야 한다


반세기 전, 인공지능이 여전히 SF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던 시대에 로봇공학자인 한스 모라벡은 “진일보한 기술의 시대에 컴퓨터는 인간에게 어려운 것들을 쉽게 처리하게 되겠지만 인간에게 쉬운 작업들은 컴퓨터에게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컴퓨터는 인간의 연산 능력을 쉽게 대체하지만 반대로 땅에 떨어진 물건을 집거나 춤을 추는 등의 간단한 행동을 처리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선견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는데, 최근의 챗 GPT 광풍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공지능은 컴퓨터에게 어려운 육체 작업이 아닌 지적이고 창조적인 분야부터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한스 모라백(Hans Moravec)


근육이 아닌 뉴런을 대체하는 것이 오늘날 생성 AI가 도달하고자 하는 특이점일 것이다. 근육을 대체할 자원은 이미 넘쳐난다. 일자리, 주거, 연금, 보험, 사회보장제도 등에서 밀려나 매 순간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들은 이제 보편적인 생명 양식이 되었다. 비싼 돈을 들여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를 개발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과거에는 노예가, 근대에는 값싼 임노동자들이 그 물리적 에너지를 대신했고 오늘날에는 임금노동에서도 밀려난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과 비임금 자영업자들, 하도급과 아웃소싱에 포박당한 프리랜서들이 이를 대체한다. 생성AI는 이러한 육체적,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모라벡이 설정한 최후의 지형들, 예컨대 예술과 과학의 영역을 정복하고자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음악을 작곡하는 활동은 문제를 설정하고 대상을 재현하는 인지와 결부되어 있는데, 이 부문을 자동화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진보는 자동화는 자동화이되 인지의 자동화이며 뉴런을 기계화하는 동시에 생산수단으로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인지자동화의 전환은 어떤 것들을 대체하게 될까? 수많은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챗 GPT와 얼마나 흥미로운 작업들을 했는지 전시하면서 이미 묵시록적인 결론을 얻었다. 문화 창조에 관련된 모든 행위들이 데이터베이스화 되고 패턴화되며 자동화된다. 더 이상 일러스트레이터도, 작곡가도, 성우나 배우도, 디자이너도 스토리텔러도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는 기시감. 그것은 아직 생성 AI가 비즈니스화 되지 않는 단계임에도 모두의 뇌리에 박혀 있다. 산업 기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뉴런 기계들도 새로운 자본주의의 교외를 만들어낸다. 건당 보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세노동자(micro worker)들이 등장했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데이터들을 분류하는 작업, 노이즈를 필터링하고 이미지 인식을 반복 숙달시키는 작업, 번역과 설문, 그리고 이 과정을 검토하고 적합한지 채점을 매기는 모니터링에 이르기까지 미세노동자는 건당 1달러 이내의 푼돈을 받으면서 그중 20%를 운영 주체인 아마존과 구글 등이 떼어간다. 아마존은 이들 미세노동을 총망라하는 플랫폼 ‘메카니컬 터크’를 운영하며 엄청난 정보기술 도약을 이뤄냈고, ‘클릭워커’, ‘애픈’ 같은 플랫폼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전 지구의 수많은 미세노동 결과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테크 기업들은 미세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가? 먼저 그것은 임금 형식이 아닌 건당 보수 형식을 취하며, 그것도 아주 작은 패키지 작업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 노동과정의 구조 자체가 불투명하다. 미세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 결과물이 무엇을 만드는지, 그리고 어떤 기업이 그것을 가져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러한 미세노동의 현실을 파헤친 필 존스의 책 『노동자 없는 노동』은 이런 플랫폼에 등록된 사람들의 90%가 건당 0.1달러 이하의 보수를 지급받으며, 이마저도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힌다. 또한 상당수의 보수가 ‘보상(prize)’이라는 미명 하에 현금이 아닌 게임화폐, 특정 사이트에서만 쓸 수 있는 마일리지나 포인트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또한 일은 매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시간보다 긴 대기 시간을 거쳐야지만 얻을 수 있고 마치 게임처럼 할 수 있는 즐거운 활동처럼 포장되어 작업은 언제나 가치 절하된다.


최근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미드저니, GPT, DallE 같은 인공지능들은 진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수많은 미세노동자들의 인과 염이 새겨진, 생존을 위해 도박처럼 뛰어드는 ‘잉여’들이 빚어진 결과물이다. 이들 미세노동자들은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 플랫폼 등 빅 테크 자본이 운영하는 광활한 네트의 영토에 여기 저기 널려있는 자원들, 우리가 사진을 찍고 글을 남기고 뭔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데이터들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생성 인공지능은 천재적인 기업가와 발명가들, 기술 관료들의 기술혁신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전 지구의 시민사회는 이런 혁신담론이 자아내는 환등상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리좀처럼 얽혀진 수많은 인간 뉴런과 피땀어린 노동이 생성한 ‘공통지성’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이란 용어는 마치 과학자들과 기업 회장들이 이 모든 걸 발명했다는 듯 장막을 씌운다. 이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전 지구의 민주적 시민사회는 인공지능의 탈을 쓴 공통지성이 어떤 식으로 블랙박스화 되는지, 이 과정에서 어떻게 미세노동이 수탈당하는지 감시하고 이의제기 할 수 있어야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제한 없이 보편적으로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사용하고, 발전시키고, 향유하는 주체는 사기업이나 경찰국가가 아닌 인과 염을 몸에 지닌 보통의 사람들이다. ‘공통지성’ 이란 개념은 결국 인공지능을 창조하고, 사용하고, 향유하는 데 있어 보편적인 시민권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산의 약수터와 우리가 숨쉬는 공기, 공원과 수자원, 삼림처럼 이 리좀화된 기계뉴런들은 공통적이고, 보편적이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커먼즈(commons)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는 새로운 문화창조와 예술을, 그리고 진보된 리터러시와 민주주의를 상상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을 ‘공통지성의 커먼즈’로 재발명하는 과정은  당연한 시민권을 주장하는 것이며, 인지자동화 시대에 인간 뉴런을 잉여로 만드는 미세노동 수탈에 반대하는 저항이기도 하다. 



쓴이 _ 신현우(기술문화연구자, 문화연대 집행위원)
정보기술 공간에서의 노동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연구하는 기술문화연구자이다. 플랫폼, 게이밍,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걸쳐진 IT 기술문화를 미디어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문화연대 집행위원, 계간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과 기술, 기술비판이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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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기술 공공재'라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싶네요. 자본은 달리고, 국가는 쫓아가고 있는데, 시민사회는 '어쩌면 좋지?'하고 당황해 하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디지털 기술에 의한 사회의 급변에 대해 인지하고 논의하고 대응하면 좋겠습니다.

결국 인공지능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케팅의 의도 때문인지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이미지가 있네요. 인공지능의 필요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공공재로서 다뤄지면 좋겠습니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인간이나 노동이 모두 소외되어도 괜찮은게 아니라요.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인공지능을 공통지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전에 이 기술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걸 배웠네요.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많은 일들을 인공지능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끊임없이 진행 중이며,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통 인공지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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