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숨은 분단 찾기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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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입니다. 화해와 일치, 평화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숨은 분단 찾기

 

지난 5월 31일, 서울 지역 시민들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당일 아침 북한의 정찰위성이 발사되었기에 6시 41분을 기해 서울시에서는 경계경보를 발령한 것입니다. 위급재난문자의 내용은 꽤 섬뜩했습니다.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되었으니 대피할 준비를 하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없었지만, 아파트 단지와 거리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이른 아침 날라온 메시지는 많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 뉴스를 검색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 때문에 포털사이트까지 먹통이 되자,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올림픽대로 한가운데를 운전하다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하는지 고민했고, 집에서는 잠든 아이들을 깨워야 할지, 깨운다면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당황해야 했습니다. 물론 이 상황을 무감각하게 흘려보낸 사람들도 있었지만, 요란한 사이렌과 위급재난문자는 한 주가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일 아침 울리는 사이렌은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 신호니, 다시 놀라지 말라는 사전공지를 낳을 정도였습니다. 북한에서 미리 공지한 위성 발사에 서울시가 과잉 대응한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위기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한 것인지를 떠나, 5월 마지막 날의 위급재난 메시지는 단순히 평범한 아침의 일상만을 깨운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분단되어 있다는 것, 지금도 여전히 분단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개입해 작동하고 있음을 일깨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남북의 대치는 일상에서 그렇게 놀랄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군사분계선 주변에는 수십만의 군인과 엄청난 화력의 무기체계들이 집중되어 있음에도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무감각하게 흘러갑니다. 가파르게 오르는 전기요금을 걱정하고, 단골 식당의 기본 반찬 양과 개수가 줄어든 것에 민감해하지 남북 갈등이나 한반도 평화 이슈는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간혹 군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시기의 부모나 아니면 파주나 고성 등 접경지역을 방문할 때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아직도 전쟁 중이란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런 무감각에도 분단 현실은 우리 일상에 매우 깊숙이 작동하고 있다. 분단 자체가 아닌, 분단이 만들어낸 문화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간첩을 조심하고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누군가 숨어 있으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은 꼭 신고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분단 현실에서 북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미워하고, 증오한 70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회사나 공동체에서 상대가 내 편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따지고 싶어하는 편가르기 문화는 대표적인 분단 문화입니다. 우리는 70년 넘게 내 주변 사람이 친구인지 적인지 의심하도록 교육받았고, 의심은 경계를, 경계는 편가르기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편가르기는 어느 한 편에 반드시 속해야 한다는 경직된 이분법을 불러왔습니다. 다양한 선택과 다양한 취향을 존중해주지 못하고 의견도 통일, 입장도 통일, 심지어 메뉴도 통일해야 마음이 편하단 사람이 많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입장은 공동체를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라며 오히려 다양성을 불편하게 느껴왔습니다. 하지만 편가르기와 이분법 논리로 대표회는 경직된 사회는 우리 마음에 여유를 앗아가고 포용과 환대를 가로막았습니다. 옷차림이 좀 이상하거나 헤어스타일이 자유로우면 핀잔을 들었고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학교는 군대처럼 머리를 모두 삭발해야 했습니다. 학교 뿐 아니라 직장도 획일적인 병영문화가 강하게 작동했고, 건강하지 못한 남성성이 주류 문화로 인정받았습니다. 분단은 우리 일상을 병영처럼 획일화시켰고 경직된 사고 안에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환대와 포용은 설 곳을 잃어 왔습니다.

 

특별히 2023년 올해는 6.25 전쟁이 중단된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을 맺어 전쟁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언제든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전쟁에 정치는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편가르기와 증오를 자극합니다. 상대에 대한 미움이 곧 우리 편의 단결이라는 잘못된 사고가 좀처럼 고쳐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사회에 사이렌이 좀 더 울려야 합니다. 공습경보 사이렌 말고, 분단의 문화가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이렌 말입니다. 일상에 숨어 있는 분단의 문화를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분단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왜 우리 사회가 경직되어 있는지, 왜 우리는 이웃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기 어려워하는지, 무감각한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일상에 숨어 작동하는 분단의 마음을 일깨우지 못한다면 한반도 평화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갈등이 불편한 사람만이 갈등을 끝내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갈등 때문에 치러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느껴야 화해의 길을 용감히 걸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남북의 분단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달아야 평화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의심하고, 그만 미워하고, 그만 증오해도 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만남,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강고한 분단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깨닫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교실에, 우리 사무실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이분법으로 의심과 미움이 어떻게 숨어 작동하고 있는지 찾아봅시다. 그렇게 숨어 있는 분단 문화를 끄집어 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마주할 수 있고, 현실의 한계와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는 변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긴장된 적대감이 아니라 호기심의 환대가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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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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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경계를, 경계가 편가르기를 불러일으켜 이분법적인 사고와 문화를 형성했다는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편을 나누고 상대방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분단에서 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예요.. 일상에서도 분단을 잊지않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외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단이 오래 지속될 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는 떨어지고, 적대감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듭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는 환경이 상대에 증오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환대하는 문화이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군대 문화도 분단에서 비롯되었죠. 분단 자체뿐만 아니라 분단에서부터 시작된 문화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는 말에 굉장히 공감됩니다.
분단체제 하의 분단문화는 공기와 같이 잘 인식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질곡인 듯 합니다. 이제는 많이 약해졌다고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빨갱이'라는 딱지에 입을 닫아 왔을까요? 평화와 다양성에 대립하는 그 힘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분단 문화라는 말을 처음 접하네요. 계속 편을 가르고 확인하고, 우리 편이 아니면 배척하거나 억지로라도 같은 집단으로 만들려는 문화는 말그대로 다양성을 빼앗을 뿐입니다. 한 곳에서만 계속 살아와서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런 불안과 적대감을 경험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습니다.

남북의 대치가 우리의 일상에서 무감각하게 흘러간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예전에 비폭력 운동을 함께 하던 친구가 군대 훈련소에서 전화를 주었습니다. 자신이 사격 1등을 했다며, 그렇게 받은 상으로 전화를 해서 울더라고요. 입대를 원치 않는 청년들을 군대로 데려가 총을 쥐게 하는 것... 저는 이 전화를 받았을 때를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휴전을 실감했던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한 분단의 문화를 찾아내어 함께 평화를 위한 움직임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