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화린 선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
성전환 여성 사이클 선수에 대한 논란들
이 글에 성전환 선수를 향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필자의 주된 목적이다. 독자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실패작은 아닐 것이라는 마음으로 펜을 든다.
지난 6월 7일, 숱한 논란을 남기며 강원도민체육대회가 끝났다. 나화린 성전환 여성 선수의 여성 사이클 경기 출전 때문이다. 나 선수는 국내 최초 성전환 여성 선수로 출전해 경륜과 스크래치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60~80km 개인 도로에서 2위를 차지해 아쉽게도 3관왕에 오르지는 못했다. 나 선수는 대회 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출전 소식을 접한 언론은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신체조건과 운동 수행능력을 기술하며 나 선수의 유리함을 들었다. 그리고 공정성과 형평성을 논했다. 각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출전 타당성을 논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 독설을 쓰는 무분별함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논란을 예견한 듯 나 선수는 말했다. “내가 상을 받으면 대중의 공감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명예로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인터뷰] 트렌스젠더 사이클 선수 나화린 “내 출전으로 불공정함을 말하고 싶었다” 여성신문. 2023.07.01
LGBT: 트랜스젠더 사이클 선수 나화린이 꿈꾸는 '명예로운 우승 BBCnews 코리아. 2023.07.07
스포츠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스포츠’는 특정 신체활동을 통해 목적을 이루는 놀이, 즉 재미를 주는 행위다. 그 어원 역시 마찬가지다. 라틴어로 ‘Desportare’는 ‘즐기다’라는 뜻이다. 고대 프랑스어에서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아서 ‘Deport’ 또는 ‘se Desporter’로 바꿔 썼다. 프랑스의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영어에 흔적을 남긴 프랑스어 중 하나가 ‘Desport’다. 영어로 ‘Disport’로 바뀌었고 재미나 흥미 또는 휴식을 주는 활동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현재는 Di가 빠진 Sport로 쓰이고 있다.
사전 및 어원적 의미는 이제 접어두고 어느 고대 의철학자의 눈으로 스포츠(운동)를 보자.
검투사들의 의사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주치의였던 클라우디우스 갈레누스는 명의였다. 아우렐리우스는 갈레누스를 “의사 중 첫째요, 철학자 중 유일무이다”라고 평하며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갈레누스는 스포츠의 효험에 대해 <작은 공으로 운동하는 것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작은 공으로 하는 스포츠는 신체를 건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영혼을 기쁘게 한다. 이는 신분, 부(富), 시간에 제한 없다.” 갈레누스의 눈에도 스포츠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심신을 건강하고 즐겁게 하는 놀이다.
21세기 스포츠가 자본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미디어와 결합했어도, 본래 모습인 놀이와 즐거움은 그대로다. 다만, 즐기는 대상과 범위가 다양화된 매체를 통해 늘었을 뿐이다. 이제 세계화와 미디어 발전에 맞춰 해외 스포츠를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추세에 사람들은 좋아하는 해외 선수의 유니폼을 구매하고, 동영상을 시청하며, 따라 한다. 그리고 즐긴다. 또 새벽을 깨워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보는 즐거움은 말릴 수 없다.
한 마디로 21세기엔 놀고 즐기는 행위가 세계화되었다.
근육량이 공정성의 유일한 잣대인가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정의와 공정을 원한다. 하지만 공정한 사회는 늘 멀리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불공정한 지옥 같은 조선에서 떠나 더 나은 새로운 삶을 바라는 마음을 투영한 단어다. 하지만 현실은 힘들고 냉정하다.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갑갑하다. 공정한 사회 대체재로 스포츠는 마음을 달래기에 제격이다. 스포츠는 불공정과는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선수의 등장은 단번에 공정을 앗아간 듯 보였다. 대중의 감정은 긍·부정으로 뒤섞였다. 불공정에 분노한 대중은 나 선수를 불의의 화신으로 낙인찍고 배설 같은 폭언을 뱉었다. 이것도 모자라 나 선수 개인 블로그까지 방문하여 부정한 댓글로 공격했다. 분노의 불은 시민의식까지 태워버렸다. 동시에 응원의 글도 있었다. 응원은 나 선수의 버팀목이었다.
분노엔 언론도 한몫했다. 대다수 언론은 나 선수의 신체조건 즉 180cm의 키, 몸무게 72kg 그리고 골격근량 32.7kg을 나열한다. 그리고 일반 여성의 평균 골격근량이 20~22kg임을 비교한다. 그러나 이는 비교 대상 오류다. 왜냐하면 여성 사이클 선수들의 평균 골격근량과 비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와 일반 평균 여성의 골격근량을 비교하면 선수의 골격근량이 월등한 건 당연하다. 언론은 비합리적인 근거로 나 선수가 유리하다고 독자를 유도했다.
골격근량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근육과 그 근육의 분포다. 사이클 선수는 하체 근육이 다른 신체 부위보다 많이 사용한다. 페달링의 반대급부로 균형을 잡아주는 팔, 어깨, 코어 근육도 같이 사용된다. 이는 기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언급 없이 근육량이 많다, 고로 유리하다는 식의 논의는 전성기 시절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랜스 암스트롱을 비교한 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근육량이 많으니 사이클 경기에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비교다.
이뿐 아니라 기타 운동 생리학적 요소 역시 언급조차 없었다. 운동은 단순히 근육량과 신체구조만으로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 운동은 협응력, 근 신경, 균형 감각 등이 하나로 합쳐 수행능력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외부조건을 극복한다. 극복한 결과는 기록이다. 이는 배제한 채 근육량과 신체조건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덧붙이자면 위와 같은 이유로 랜스 암스트롱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가상 대결은 단연 랜스 암스트롱이 승자다. 석판, 파피루스에서 종이를 거쳐 디지털까지, 매체 무게만큼 쓰는 이의 책임도 가벼워졌다.
나 선수가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
성전환 선수인 미국의 수영 선수 리아 토머스, 뉴질랜드의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 한국의 나화린 선수의 출전을 대하는 반응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여성 경기에 참가한다는 소식과 함께 엄청난 양의 보도가 쏟아졌다는 점이다. 또 언론 대다수와 누리꾼 사이에서는 성전환 선수가 여성 스포츠를 지배하리라는 둥, 여성 스포츠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둥 억측과 불신이 난무했다. 소수 언론만이 그들의 참가를 응원했다. 경기 결과는 다수 언론과 누리꾼의 예측과 달랐다. 리아 토머스와 나 선수의 위력은 특정 레이스에서만 유효했다. 로렐 허버드는 시상대에 서지도 못했다.
차이점도 있다. 두 서양 국가는 성전환 선수의 여성 경기 참여에 대한 논의가 일찍이 시작했다. 정치권까지 가세한 미국의 찬반 양 진형은 극렬하게 대립한다. 뉴질랜드는 미국보단 성전환 선수에 대해 좀 더 포용적이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 논의를 시작할 때다. 차별금지법도 계류 중인 때에 성전환 선수의 여성 경기 참여 논의는 이른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 선수의 등장으로 미룰 수 없게 됐다.
스포츠는 즐거운 놀이 그 자체다. 놀이에 경쟁과 타이틀이 붙으면서 공정성 문제가 대두됐다. 성전환 선수의 출전은 공정성이라는 믿음에 반한다고 믿는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생물학적 남성성이란 믿음 외에 성전환 선수의 절대 경쟁우위는 아직 과학이 밝히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논의와 합의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덧붙여, 나 선수는 “저의 대회 출전이 이슈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냉혹한 사회의 시선에도 물러서지 않고 용기를 내어 대회에 출전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페리 클래스는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인생에서 단맛과 쓴맛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아서 앞으로 다가올 일에 물러서지 않는다”고 했다. 나화린 선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나화린 선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는 스포츠계에 만연한 영웅 서사와 승리 지상주의를 걷어내고 스포츠에서 소외되거나 들리지 않던 다양한 스포츠 서사를 발굴하는 웹진<움직> 2호 _스타트에 실린 글.
글쓴이 _ 자피러스 | 모두의 운동장 저자 (북저널리즘)
[모두의 스포츠] 웹사이트 : https://culturalaction.org/sportsfor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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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언론에서 나 선수와 평균 여성의 키와 근육을 비교해놓고 불공정하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군요ㅠㅠ 비난의 화살을 향하게 하기 위함이었을까요? 트렌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에게는 여전히 너무 공격적인 내용의 글과 댓글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