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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
[6411의 목소리]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 (2022-05-11) 김도윤 │ 타투유니온 지회장 지난해 9월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타투이스트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에서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오른쪽)이 진정 및 긴급구제신청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제니야! 오랜만이다. 얼굴 맞대고 앉아본 건 고등학교 졸업하고 23년 만인가? 사법시험 준비한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는데, 중년의 판사가 되었네. 잘 어울려. 진심이야. 나? 난 디자인 그만뒀어. 이제 17년차 타투이스트야. 까만 옷 입은 네 동료들은 나보고 불법의료시술자라고 말하지만. 지난달 헌법재판소에서 선고가 있다고 연락이 오더라. 급한 일을 미루고 가봤는데, 까만 옷 입은 이들이 나란히 앉아 판결문을 읽더니 휘리릭 들어가더라. 그럴 거면 그냥 인터넷에 공지하지 왜 시간 낭비 하는지 모르겠어. 하여튼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타투는 의료행위라고 하더라. 폭력적인 코스프레 같았어. 결론은 자기들한테 묻지 말고, 국회의원 졸라서 입법을 하라는 거야. 매듭을 잘못 묶은 건 사법부인데, 엉망인 매듭은 입법부한테 풀라는 거지. 광고 삼권분립? 그렇지, 케이(K)-삼권분립 최고지. 들어봐봐. 지난해부터 갑자기 국세청 직원들이 타투 스튜디오를 찾아왔어. 문신업으로 사업자등록을 내라는 거야. 몰랐어? 우리 정식 사업자등록 가능해. 2015년에는 고용노동부의 미래유망신직업 17개에 타투이스트도 포함됐어. 물론 직업코드도 있고. 정말이야. 웃기지? 물론 우리도 정식으로 등록하고 세금 내면서 떳떳하게 하고 싶지. 그런데 국세청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단속당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불법의료행위를 했다’며 최저 형량 징역 2년을 선고받아야 해. 이게 말이 되니? 그림 그리고 징역 2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 내 동료들은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해. 성실한 동료들이 그렇게 떠나가는 걸 보면서도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어. 결국 우리는 투명인간이 되는 것을 선택해. 사업자등록 없이 일하면 단속돼도 보통 벌금형으로 끝나거든. 이게 케이-삼권분립이야. 삼권분립이 너무 잘돼서, 입법·사법·행정, 서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전혀 몰라. 웃으면서 말하지만 난 진짜 슬퍼. 타투가 의료라는 법원 판례는 1992년에 만들어졌거든.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 판례를 그대로 베껴왔어. 그런데 그 일본마저도 2020년에 이 판례 폐기했어. 이제 진짜 한국만 불법이야. 물론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 시절엔 모든 국민이 타투를 싫어했지. 우리 어렸을 때는 문신을 한 사람은 조폭 아니면 조폭 흉내 내고 싶은 양아치라고 했으니까. 광고 그런데 이 궤변이 30년이나 연명하다 보니 이제는 의사들이 타투로 돈을 벌어. 지금 네이버에서 ‘눈썹타투’라고 검색해봐. 유료광고하는 업체 100%가 의원들이거든. 이제 밥그릇이야, 큰 밥그릇. 궤변 위에 쌓아올린 겁나게 큰 밥그릇. 의사협회는 국민의 안전을 핑계대며 타투 법제화를 막아. 지지난달에는 의사협회가 타투합법화 저지 티에프(TF)도 만들었더라. 부끄러운 줄을 몰라. 정작 병·의원에서도 타투를 하는 건 의사가 아니야. 당연히 우리 같은 비의료인이지. 그러니 병·의원이 타투를 하면 더 큰 범죄가 돼. 의사면허 대여, 불법의료시술 지시 및 알선 그리고 홍보, 불법계약 등등. 이런 게 적발돼 의사면허가 정지되는 사례도 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나 보더라. 1조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시장이니까. 더 웃긴 건 타투는 의사가 직접 해도 불법이라는 거야. 왜냐하면 전세계에서 의료기기 인증을 받고 생산되는 타투 용품은 없거든. 세계에서 타투를 의료행위로 분류한 곳이 한국밖에 없는데, 누가 한국만을 위해 의료기기 인증을 받겠냐고. 의사도 비의료기기로 타투를 할 수밖에 없는,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상황인 거지. 결국 한반도에서 이뤄지는 모든 타투는 불법이야. 제니야, 이것 봐. 네 동료들이 망쳐놓은 건 나랑 내 동료의 삶뿐만이 아니야. 양심 없는 의사들도 돈벌이에 혈안이 돼서 의료의 존엄함마저 버렸어. 광고 그리고 보니 너 눈썹 타투 했네? 아! 받는 건 불법이 아니고, 타투를 하는 것만 불법이라고? 물론 알지. 작업을 청탁한 손님이 갑자기 돌변해서 신고하겠다며, 되레 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거든. 제니야, 같이 웃으면 어떻게 해? 내가 웃으면서 말한 건 진짜 웃겨서가 아니잖아. 갑자기 불안하네. 내가 연예인한테 타투를 해줬는데, 어떤 한가한 녀석이 신고를 했어. 곧 2심 재판이 시작돼. 판사들이 문화적 소양은 부족해도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웃음의 맥락도 파악 못 하는 너를 보니까 갑자기 불안해진다. 광고 그냥 우리 10년쯤 지나거든 다시 보자. 그때는 나도 투명인간이 아닐 테니, 맥락을 파악하지 않아도 되는 웃음을 지니고 있을 거야. 널 위해 기도할게. 내 아내가 목사거든.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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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캠페인즈 이슈 시상식 : 캠페이너가 선정한 2023년 이슈는?
12월 중순부터 이런 문구와 포스터가 돌아다녔습니다.  “2023년을 이렇게 마무리 할 수 없는 당신! 유쾌한 시상식에 초대합니다!” 이슈 시상식은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12월 28일 서울숲 인근에서 모였던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프로그램 시상식 1부에서는 성과공유회가 있었습니다. 2023년 8월 그랜드오픈 이후 부지런히 성장한 캠페인즈✨를 자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기능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지지해요💪  캠페이너의 지속가능한 활동 위한 응원 자랑스런 참여의 상징 뱃지 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은하에서 내 별을 찾기 혐오와 차별 없는 더 나은 공론장 더 활발하고 재미있게 소통할 준비가 됐어요🔔  더 빠르고 재밌게 소통하게 해주는 알림 더 많은 사람과 이슈를 발견하는 검색과 구독 추천 다양한 활동을 더 편하게 구독자들에게 전하는 소식 이어서 2024년 1월 캠페이너들에게 공개될 기능도 미리 공유했습니다. 이 시기의 우리에게 필요한 바로 그 공간🚀팩트체크 콘텐츠를 한 눈에 알 수 있어요! 중요한 뉴스를 공유하고 코멘트를 나눠요! 피드에서 내가 관심갖는 사람과 맥락을 볼 수 있어요! 정보가 더 안전하게 보호되고 관리돼요! 캠페이너들이 무럭무럭 키운 캠페인즈✨ 얼만큼 자랐을까요?  2023년 12월 27일 기준 캠페인즈에 가입한 캠페이너는 13,450명, 그리고 은하에 참여한 캠페이너는 620명입니다! 2023년에 올라온 콘텐츠는 투표 173개 / 토론 576개 / 캠페인 136개에 달했습니다🎊 한 해 동안 캠페이너들이 많은 관심을 가진 콘텐츠도 소개했습니다. 단순히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거나 보도량이 많던 이슈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캠페인📣 Stop Japan's Ocean Dumping of Nuclear Wastewater - oceanfreenuclear 캠페이너조회수 268,341 안산 가을이 살해 사건 엄벌 촉구 서명 - 동물권행동 카라 캠페이너 참여수 50,282 토론📝 아기와 동물을 같이 키운다고? - 김윤일 캠페이너조회수 6,192 산업재해 피해자로 마주한 삶 - 김용균재단 캠페이너좋아요 35 교권 침해가 아닌 노동권의 보호: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며 - 최성용 캠페이너댓글 38  투표🗳️ 인터넷 실명제 도입해야 할까요? - 이선우 캠페이너조회수 10,355 기후위기 대응,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정의로운 전환 충남 도민회의투표수 756 🏆달라진 세상 시상 시상식에 앞서 약 3주 동안 진행된 ‘🏆️이슈 어워즈 : 달라진 세상’에는 200여건의 투표가 이뤄졌습니다. 2023년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킨 이슈를 선정하는 투표인데요. 캠페인즈팀이 엄선한 후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전세사기  🗳️선거제도개편   👩‍🏫공교육 멈춤의 날 ♿️장애인 이동권  ♻️일회용품 규제 철회  후보 중 ‘전세사기’ 이슈가 50건을 득표해 1위를 차지했습니다. 투표에 참여한 캠페이너들은 이런 의견도 남겼습니다.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불릴만큼 부동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입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선택하게 되는 전세제도에 허점이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에 대한 구제책에도 빈틈과 소외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구요. 언젠가는 탈이 날거라고 생각한 전세사기/전세제도에 달라진세상을 시상합니다.” “달라진 세‘상’이라는 이름에 와닿는 후보를 고르게 된 것 같습니다. 전세사기는 세상이 좋게 달라진 쪽은 아니지만, 세상이 뒤집힐 정도로 큰 피해규모 때문에 꼽았어요.” 전세사기 이슈 관련 활동을 하는 권지웅 캠페이너께서 대리수상을 해주셨습니다. 캠페이너들이 전세사기 이슈를 선택한 것에 대한 인사와 함께, 앞으로도 전세사기 이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테이블 시상 2부에서는 시상식에 참가한 캠페이너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직접 시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테이블별로 ‘따 놓은 당 상’, ‘노력이 가 상’, ‘설상가 상’에 해당하는 사회이슈를 논의했답니다. “이태원참사 이후에 지하철 문화가 바뀌었어요. 안전요원이 러시아워에 등장하기도 하고, '그만 타세요'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사람이 꽉 찼어도 예전처럼 강하게 밀고 들어가는 현상이 안 일어나는 것 같아요. 슬픈 노력과 희생에 의해서 변화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장연 '지하철 같이 탑시다'로 토론을 해봤어요.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이 이전엔 많았는데 2023년 이후에는 ‘오죽하면 그러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조금 불편해도 공감된다는 말이 있어서 눈물이 좀 나왔습니다.” 각 테이블의 논의를 바탕으로 세가지 상을 수상했는데요. 수상 이슈와 선정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설상가 상🥇 거대 양당에 의한 정치혐오걱정하던 사회 문제를 더 악화되게 한 사건을 선정했습니다. 따 놓은 당  상🥇 총선 그리고 후쿠시마 오염수2024년에는 가장 많이 관심을 받을 것 같은 이슈를 선정했습니다. 노력이 대단 상🥇 전장연, 같이 탑시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 변화가 부족해 아쉬웠던 이슈를 선정했습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더 긍정적인 이름을 붙이고 싶어 상 이름을 ‘노력이 대단 상’으로 바꿨습니다. 🎁경품 추첨 시상식에 오신 분을 위해 준비한 경품을 추첨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경품은 팀 크루들이 직접 감사한 마음을 담아 준비했는데요. 선물도 선물이지만 어떤 마음과 이유로 준비했는지도 전해드렸어요.  “우리가 사회 이슈로 함께 만나 고민하는 사람들이기에, ‘타인에 대한 관심’은 계속해서 가져가고 발전시켜야할 패시브 스킬이라고 생각해요. 연말에는 서로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만 나누기 마련인데, 이럴 때일수록 행복함이 미치지 않는 구역을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합니다😀” “연대하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더 따듯하게 함께 연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선물을 드립니다.” 이렇게 다양한 캠페이너들이 모인 🎺2023 이슈 시상식🎺이 마무리 되었는데요. 디지털 시민광장 캠페인즈를 응원해주시는 마음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해동안 캠페인즈를 찾아주신 모든 캠페이너 여러분, 감사합니다!  캠페인즈는 2024년에도 열심히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시민 활동 생태계를 위해 성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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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함께 평화’ 집담회 : 함께 상상한 평화의 미래
캠페이너들이 같은 기간동안 동일한 주제로 사회 이슈에 대한 토론을 만드는 ‘함께 프로젝트’ 지난 11월에는 ‘함께 평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캠페이너와 평화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집담회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함께 평화에 참여한 캠페이너들이 본인의 글을 직접 소개했습니다.  “나 하나 목소리낸다고 변하는 게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 평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전부터 일상생활에서부터 평화를 자꾸 이야기하고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의 분위기에서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작은 실천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팔레스타인이라고 명명되는 사태들에 너무 많은 왜곡, 뒤틀림이 섞여있는 듯 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은 어땠을까? 모두가 나름의 판단의 근거가 있겠고 그로 인해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팔레스타인 내부인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함께 평화 페이지’에서 확인해보세요! 🧊아이스브레이킹 하나의 주제로 모였다 할지라도 각자의 배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마련인데요. 먼저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을만한 질문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캠페인즈 시즌이슈 시리즈인 ‘국제 분쟁,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에 답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평화를 상상하는 질문들 더 진솔하고 다른 곳에서는 편하게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위해 질문을 기반으로 집담회가 진행되었는데요. 그 중 몇 가지 질문과 참가자들의 발언을 공개합니다.  1) 미디어가 국제 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팔레스타인 입장에서의 보도는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디어는 좀 더 부추기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의 인권과 존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미디어 뒤에 있는 원동력은 현장에서 70여 년동안 이어진 사건 그 자체라고 봐야 합니다.”  “미디어의 폭력성에 우리가 우려를 많이 하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알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거든요.” 2) 평화는 왜 중요할까요?  “먼저 ‘평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합니다. 누군가 ‘하마스가 테러를 하지 않았다면 평화로웠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데 이스라엘이 평화롭지 않게 되니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온 상황이죠.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은 그동안 본인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요? 말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듣지 않은 우리 탓인 거죠. 우리도 방치하는 데 일조했기에 하마스가 테러를 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평화가 뭘까?'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화, 중요하지', '평화 필요한 거야'라고 생각은 해도 평화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의를 하는데, 평화가 뭔지에 대해 정의하고 합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권도 그렇고 평화도 그렇고 그 개념이 뭔지를 아는 것도 필요할 수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언제 이야기하는지, 어떤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의 평화이냐'가 중요합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던 것을 빼앗겼을 때 그리고 결핍이 생겼을 때에 비로소 평화에 대해 고민하게 되거든요.” “평화가 모두의 평화라면 나는 어떤 윤리적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남의 나라 일에 대해 가장 실감하는 방법은 그 나라 친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지순례도 많이 갑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과연 팔레스타인 친구는 얼마나 되나요? 이런 것들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결국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힘을 위임한 정부가 역할입니다. 한국 정부는 교묘하게 계속 결의안에서 기권을 해왔는데요. 이스라엘의 잘못된 점령 정책에서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해온 게 미국과 한국입니다. 국가는 가만히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를 이어내는 힘은 실감에서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믿는 인권과 존엄과 평화를 옳다고 믿는 힘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를 압박하고 밀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회고 “중,고등학교 때 팔레스타인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는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최근까지 이 주제에 대해 돌아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누구의 평화인가?' '누구의 인권인가?' 이야기를 나눌 때 결핍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대화나 생각을 나누는 게 필요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요. 잘 온 것 같아요.” 대화의 장이 끊이지 않고,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행동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캠페인즈는 디지털 시민광장으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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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함께 안전’ 집담회 : 함께 상상한 노동의 미래
캠페이너들이 같은 기간동안 동일한 주제로 사회 이슈에 대한 토론을 만드는 ‘함께 프로젝트’ 12월에는 ‘함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캠페이너와 ‘노동, 안전, 산업재해’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집담회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집담회를 영상으로도 구경하실 수 있답니다! 🧊아이스브레이킹 겹치는 주제로 모였다 할지라도 각자의 배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마련인데요. 먼저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을 질문부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캠페인즈 시즌이슈 시리즈인 ‘캠페이너 여러분은 안전하게 일하고 있나요?’에 답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안전하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위험성 평가는 모든 사업장 대상으로하는데 제가 속한 사업장에서는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왜 내가 다니던 곳에서는 해본 적이 없지?' 라는 의문이 들면서 안전한 곳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네요.” “체크는 첫 번째 ‘안전하다’에 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정신적 피해의 위험이 있더라고요. 직장에는 사람의 관계, 조직문화와 조직 구조에서 오는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운동 진영의 분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요. 헌신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주변에서 실제 번아웃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병가도 못 쓰고 치료도 못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더 안전한 노동을 상상하는 질문들 더 진솔하고 다른 곳에서는 편하게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위해 질문을 기반으로 집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1)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란 무엇일까요?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중지할 수 있는 곳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노동환경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상태가 필요합니다.” “노동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노동자가 갖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아파서, 지쳐서 떠나지 않도록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해요.” “작업중지권 관한 최근에 있었던 사고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대제철 불법파견 사내하청업체 문제가 있었습니다. 불법파견 리스크를 해소한다고 협력업체를 모두 자회사로 포함시켰는데 한 달도 안 되어 자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설비의 일부가 파손이 돼서 작업중지를 요청했습니다. 자회사는 원청에 요청했고, 작업중지가 안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2차사고가 발생했고요. 작업중지를 요청한 자회사 사람을에게 현대제철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자회사는 작업중지를 요청한 직원에게 감봉처리가 되었습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해서는 이런 다단계 구조부터 해소해야 합니다. 원청이 책임질 것은 다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2) 산재는 무엇때문에 반복될까요? “원인은 ‘전부 다'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기업은 효율만 중시하고 안전 예방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직업성 암 등 문제 되는 것을 보면 유해물질도 사용하거나 급식실 노동자 폐암처럼 우리가 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동권, 안전문제 교육이 잘 안 되는 것도 문제고요. 반복되는 이런 문제를 아예 막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데요. 흔히 말하는 ‘후진국형 재해', 그런 죽음들 정도는 막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생산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 현장의 문제가 강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작업이나 위험한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북유럽에서 건설노동은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게 왜 위험한 일이야?’라고 되려 물을 정도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놓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산업재해가 누구한테 반복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반적인 격차나 불평등. 노동시장 외에서 발생합니다.” 3) 많은 시민들이 산재에 관심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서사’에 대한 생각을 해봤어요. 이게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미디어 언론이 그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경우 한겨레, 경향이 1면에 싣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연대가 퍼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언론이 관심을 가져서 문제의식이 확산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 산재의 경우도 국민일보 취재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산업재해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주 많이 일어난다는 서사가 필요합니다.” “산재 문제의 경우 시민의 관심뿐만 아니라 국회와 언론의 관심을 가져야지만 풀어집니다. 큰 흐름에서 주목받아야만 해결되거나 왜 사회는 이를 주목하지 않는가는 항상 의문인데요. 지역의 커뮤니티를 회복하여 내 일상의 주제로 다가오게 만들어야지 이슈가 끊기지 않고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고 “올해 가장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난 기업이 배달의 민족. 라이더유니온 분과 얘기를 하다가, 배달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는 형태가 대부분 교통사고더라고요. 교통사고라서 노동을 벗어난 일상적인 사고처럼 느껴지거나, 배달 노동자가 실수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운전을 한 사람의 책임만 생각하고 무리한 배차, 무리한 알고리즘 등 기업의 책임은 빠져있습니다. 기업이 문제라는 생각은 공유되고 있는 것 같지만 때때로 잊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과 범위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자리였습니다.“ “기고글을 쓰면서 5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간 순으로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놓쳤던 것들을 많이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산업재해와 중대재해, 노동재해의 관점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나눠서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많이 배운 자리였어요. 살면서 노동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그런 기회였습니다. 협동조합 활동가로서 조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모여서 관심을 가지고 모여서 운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대화의 장이 끊이지 않고,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행동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캠페인즈는 디지털 시민광장으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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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제도가 바뀌면 정치가 바뀐다[선거제 논의 시리즈 1편]
글 작성 시점으로부터 약 3달 후인 2024년 4월 10일,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이하 총선)이 실시될 예정이다. 이번 선거로 4년동안 국회에서 국민을 대표해 일할 국회의원 300명을 선출하게 된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예비후보 등록을 23년 12월 12일부터 받기 시작했음에도, 선거를 진행하기 위한 '선거 제도'는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까지 선거제를 두고 정당 간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선거제 논의 시리즈]를 기획하여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차례대로 다뤄보고자 한다. [22대 총선 논의 시리즈]1편 - 선거제도가 바뀌면 정치가 바뀐다(선거제도의 중요성) <-2편 - 선거제, 진짜 논의되어야 할 것들 <-3편 - 미정(22대 총선 분석) *일반적으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비례성'개념을 '대표성'에 포함시켜 서술한다. 글의 제목에서 역설하듯이, 이번 글은 ‘선거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주장할 예정이다. 선거제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1월 말 ~ 12월 초(캠페인즈 트렌드 검색 결과 - 이미지 첨부는 따로X)이후 선거제와 관련된 여러 논의가 다양한 매체 - 뉴스, 기사, 칼럼, 토론회 - 등이 이루어졌지만 정작 ‘선거제가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 정치 상황을 생각했을 때, 대중 입장에서는 ‘정치 혐오’, ‘정치 무관심’에 사로잡혀 선거제도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기껏 선거제를 바꿨더니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해서 의미없게 만들지 않나, 양당 다 싫은데 대안으로 뽑을 군소정당들의 역량은 너무나도 부족해보이지 않나. 따라서, ‘어떤 선거제’ 이전에 ‘왜 어떤 선거제’가 좋은지, 그리고 그 이전에 ‘왜 선거제 논의가 중요한지’를 다루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선거’와 ‘선거 제도’의 중요성 선거 제도의 중요성을 설명하려면, 우리는 우선 ‘선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다루어야 한다. 선거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를 증명하듯, 대부분의 민주주의 지표는 이 ‘선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모든 사람들이 직접 토론해서 의견을 조율해서 다수결로 모든 안건을 조율하면 좋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각자 너무 바쁘게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대표를 대신 뽑는 ‘선거’를 하게 됐다. 따라서 **선거 제도는 ‘국민의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지를 정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선거 제도’가 극한으로 잘못 작동하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부정 선거’가 이루어지고 더 이상 선거에 의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 실제로 북한과 중국도 모두 형식상으로는 ‘민주주의’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며, 형식적인 ‘선거’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한국도 해방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체육관에서 유신헌법을 앞세워 강압적인 선거를 강요했던 역사가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 제도의 차이가 ‘부정 선거’까지 유발할 차이를 만들진 않겠지만, 국민들이 선거 제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경각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하다. 선거 제도가 바뀌면 정치가 바뀐다 선거 제도가 바뀌면 어떤 점이 바뀔까? 2편과 3편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의 표가 더 선거 결과에 잘 반영되는, ‘대표성(비례성)’이 변할 수 있다. 위 이미지는 21대 총선 결과를 다른 선거제도가 적용되었다고 가정했을 때의 표 변화이다(무려 킹무위키 피셜). 실제 21대 총선과 다른점은, 연동형 선거제도로 인한 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가정했고  21대 총선보다 더 높은 연동률 - 정당 지지율이 50%에서 100%로 가도록 조정됐으며 연동형 제도에 의한 초과의석만큼 비례의석이 늘어났다. (독일식 선거제와 유사한데, 어렵다면 간단히 이 뉴스를 참고하면 좋다) 그 결과, 대표적 소수정당인 정의당의 의석이 26석이나 증가하였고, 국민의당의 의석은 20석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두 정당은 실제 선거결과와 비교했을 때 정당 단독으로 법안 발의도 가능해졌고(10명), 교섭단체를 구성해(20인 이상) 국회에 추가적인 발언권 획득이나 국고보조금 지원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 선거제 변화에 따른 소수 정당의 진입 가능성을 두고, 단순히 소수 정당이 국회에 많이 진입한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실 소수 정당이 많아지면 의견 충돌로 인해 법안 통과가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소수 정당의 국회 진입을 위한 제도 변화보다 소수 정당의 역량 강화 - 정당원을 조직하고 정당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며, 정당 수준에서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과 아젠다를 제시하는 게 먼저라는 주장도 타당하다. 필자 역시 정치인의 대표성과 능력 모두 중요하다는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대표성’이 먼저 보장되어야 ‘능력’역시 키우고 발휘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소수 정당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 키운 역량이 발휘될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야 정당 구성원들의 역량 강화 동력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거대 양당을 제외한 소수 정당에 유의미한 정당 지지율이 집중되는 이유 역시 두 거대 정당의 정치적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선거 제도 변화는 이런 국민들 목소리가 제대로 선거 결과에 반영되게 하여 정치를 바꿀 수 있다. 국민들의 목소리가, 국민의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기 위해 중요한 선거 제도. 22대 총선에 적용될 선거 제도에 대해 고민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가? 정치적 이상과 현실적 문제들을 고려하여 2장에서 추가로 알아보고자 한다.
선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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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회복을 빌미로 만들어진 학생생활지도고시, 교권을 살려줄까?
교권회복을 빌미로 만들어진 학생생활지도고시, 교권을 살려줄까?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조영선 (서울 가재울고 교사) 2023년은 실로 교권의 해였다. 더 이상 이렇게는 어렵다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전국을 뒤흔들었고, 대규모의 교사들이 참여하는 공교육 멈춤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9월4일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교사들을 지원해달라는 외침에 대한 학교현장에 도착한 유일한 응답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할 수 있는 생활지도 고시였다. 교권4법이 개정되었다고 하지만, 이 개정 법률의 근거 역시 ‘교사의 정당한 교육행위’ 인 경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기에 그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생활지도 고시가 가장 구체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실제 생활지도 고시는 2023년 7월 당정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9월에 학교에 도착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의 지도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요구 때문에 고시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실로 광범위하게 생활지도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신체의 자유와 사생활침해 보호 조항인 용의복장, 휴대폰에 대한 압수 행위 등을 명시함으로써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벌이고 있다. 실제 학생에 대한 전방위적인 행동 분야에 대해 교사의 지도 범위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도를 제대로 하려면 학생하나하나를 이해하는 매우 구체적이고 교육적인 접근이 제시되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범위를 커버하면서도 교사가 쓰는 방법은 단 4가지이다. 조언, 상담, 주의, 훈육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도 각 단계마다 어떤 경위로 이런 지도를 했는지 문서로 작성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던가? 조언하고, 문서쓰고, 상담하고 문서쓰고, 주의하고 문서쓰고, 훈육하고 문서쓰는 것이 교사의 지도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생활지도라고 부르는 것은 학생의 행위가 이 상황에 미치는 평가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미끄러져버리면 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조언, 주의, 상담은 모두 언어폭력이나 정서적 학대가 될 수 있다. 단계마다 문서를 쓴다고 정당화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한 교육부는 문서를 쓸 것을 단서로 단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형식적인 문서를 쓰도록 한 것 자체가 교사의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교사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왜곡된 메시지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한 것은 아동학대나 학생인권침해이니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분명해져야 오히려교사들이 ‘정당성’ 다툼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 학생을 추방해서 다른 학생을 보호할 수 있을까? 가장 문제가 큰 단계는 훈육이다. 이제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면 물리적 제지를 당하거나 교실에서 격리될 수 있다. 전제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범위내에서 하라고 되어있지만, 구체적인 학생인권의 법적인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이 역시 교사와 학생을 난감하게 만든다. 어떤 교사는 수업시간에 자는 행위를 수업에서 분리할 만큼 중대한 방해행위라고 생각할 것이며 (실제 sns에 고의적 수면이라는 말이 떠돈적도 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태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을 견디는 상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한 장소에서 격리시킨다는 것은 장소적 배제 뿐 아니라 관계적 배제도 의미한다. 학생들은 쫓겨난 학생을 내쫓긴 학생으로 인식할 것이기에 낙인과 차별의 표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것을 결정하는 권한은 오직 교사가 갖고 있다. 이것은 여러명의 학생들을 대하며 모든 상황을 세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사에게 오히려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학생을 격리하는 기준이 다 다른 상황에서 어떤 격리행위는 심각한 아동학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은 수업 방해 행위자이기 이전에 학습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업방해 행위를 했다고 해서 배제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학습 당사자로서의 학습권을 빼앗는 일이다. 만약 교사가 수업 방해 행위를 한 학생에게 징계 조치를 가해서 그 학생이 학습을 방해받았다는 것이 확인되면, 학교는 이에 대한 보충 수업을 해야 하고, 이 역시 다시 교사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수업 방해로 학생들을 징계하는 조치 역시 교사가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의 기준 역시 모호하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것과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교사의 수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을까? 따라가기 어려운 수업 듣기를 포기하고 그 시간을 견디는 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와 과목 선택형 수능으로, 고등학생 자신이 학교에서 선택한 과목과 수능에서 골라 치를 과목이 서로 다른 경우도 많다. 더욱이 사실상 공동 교육과정이 1학년에서 끝남에 따라 1학년 때 기초 과정에서 배워야 할 양은 늘었다. 그런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사이의 학습 난이도 격차가 큰데다, 고1 내신 성적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른 고1 내신 시험의 난이도와 중3 내신 시험의 난이도 간 격차도 엄청나다. 이런 사이에 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학생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좌절하게 되고, 1학년 때부터 자퇴를 선택하는 학생이 학교마다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다. 공부를 계속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학생들은 더 많은 학원에 가고,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너희는 휴식권이 없다는 고시가 생겼으니 잠을 자면 일어나라고 하고, 불응시 ‘타임아웃’한다고 하여 교사의 권위가 올라가고 수업 분위기가 좋아질까? 자신은 ‘정시러’라 내신이 필요 없으니 스스로 ‘타임아웃’하여 자습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답할까?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타임아웃’이 뭔가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쫓겨나는 일이 무서워서 자신이 행동을 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임아웃 당할 행동의 기준은 누가 결정하는가? 타임아웃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해서 어떤 방식의 타임아웃이라도 학생과 학부모가 수용할 수 있을까? 만약 타임아웃이 되어 흥분했던 학생이 진정할 수있고, 본 교실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고 교실에서 배우는 것에 배제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런 과정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강제적으로 할당된 교육이나 체험은 당사자에게 교실에서 쫓겨났다는 낙인감과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박탈감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 이번에 사회적으로 불거진 발달 장애 아동에 대한 대책으로 특수학급 교사들은 일반 학급에서 문제 발생 시 특수학급이 아닌 별도의 공간과 인력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수 교육 대상자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 일반 학급에서 쫓겨나 머물러야만 하는 공간으로 이해될 경우 특수학급은 격리 시설이자 낙인의 공간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이 위험한 시도를 하고 감정적으로 흥분된 상황이어서 물리적 폭력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교사에게 부여되는 권한의 형태일 때 분리부터 회복까지 모두 교사에 대한 원망과 책임으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 지금의 ‘타임아웃’은 개인을 분리해내는 데 집중하기에, 당사자의 심리적 지원과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수학급 교사를 포함하여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이러한 학생들의 회복을 지원할 수 있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관리자와 상담사와 복지사 또는 특수행동치료사 등 다양한 권한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 상주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위험 상황을 진정되면 어떤 분노가 그러한 폭력적인 시도로 이어졌는지 사례관리위원회를 통해 확인하고 교실 안에서 이것을 도울 수 있는 논의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해당 학생에게도 ‘너를 교실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너를 이 교실에서 도와줄 거야’라는 메시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될 때 학생과 학부모도 적극적으로 이러한 과정에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시에서는 이런 접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셋째, 휴대폰은 압수하고, 태블릿은 나눠주고? 생활지도 고시의 큰 제목 4장은 휴대폰이다. 다 생활지도의 범위 내용 등 추상성이 큰 제목인데 그와 더불어 4장이 아주 구체적인 휴대폰이다. 고시에서는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할 경우 물리적 제지와 압수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휴대폰 사용을 보장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일상적인 휴대전화 사용과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에 대해 수 차례 수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고시가 수업 중 휴대폰 사용 금지이고 이를 어겼을 경우 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라는 것은 교육부도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넘어선 결정을 할 수 없다는 분명한 경계를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의 이번 고시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존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인권이 교사의 업무상 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을 교육부가 확인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가 교육부의 고시를 검사와 압수가 가능하다고 해석하여 갑자기 전화 수거를 시도했을 때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수거에 불응할 경우 학생들의 몸을 수색하여 휴대전화를 빼앗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학교에서의 교사의 교권을 강화할까?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은 다른 한편에서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의 디지털화, AI 교육과정 개발’등과도 배치된다. 교육 복지 차원에서 디지털 기기를 교육청에서 직접 배부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도구를 압수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역량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실제 학생들은 휴대전화라는 하나의 전자 기기만 가지고 오지 않는다. 그 중에 어느 것을 걷고 어느 것은 허용할 것인가? 스마트기기는 디지털 학습 친구라고 하면서 스마트 기기를 걷는 코미디를 연출하는 것이 교권보호 방안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과 관계, 학습, 여가, 배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기기이다. 실제 국가 인권위원회에서도 휴대폰의 수거가 단순히 통신의 자유만이 아니라 일상생활행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였다. 즉 현실적으로 휴대폰이 한 사람의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휴대폰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어야한다. 휴대폰이라는 도구는 유일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범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된 휴대폰을 자신과 타인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으려면 학생들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살피고 성찰할 기회가 주어져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교사가 휴대폰을 압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학생의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의 교권을 주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생활지도 고시는 교사에게 권한을 주는 듯하며 결국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교사들에게 학생들을 통제하고 인권을 침해해도 되는 것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교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이렇듯 교사를 위한다는 생활지도 고시는 학생인권으로 존중되어왔던 영역을 모호하게 하며 교사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실제 당정은 2023년 12월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시작으로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등 교권의 이름으로 학생인권을 무력하려 하고 있다. 오히려 교사를 위하여  지금까지 명시되지 못한 학생인권의 내용을 학칙에 명시하고, 이것이 침해되었을 때 공식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학교내에 만드는 것이 어떨까?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교사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학교의 문제를 받아내는 과녁이 되었던 교사들을 그 과녁에서 구해내는 길일 것이다.  
종이신문이 대안 미디어가 될 수 있을까?
종이신문이 대안 미디어가 될 수 있을까? 이상한 질문이다. 종이신문은 ‘레거시 미디어’(과거에 널리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신기술에 밀린 매체)를 상징하는 매체다. 이젠 구시대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매체라는 거다. 종이신문의 대안이었던 매체들도 레거시 미디어가 되려는 마당에 종이신문이라니! 우선, 종이신문의 ‘현실’부터 알아보자.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표한 <2022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2022년의 종이신문 구독률은 4.6%였다. 텔레비전 뉴스 이용률은 76.8%, 인터넷 포털은 75.1%였다.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종이신문의 미디어 영향력은 작다. 종이신문 산업 자체도 쪼그라들고 있다. 동 기관의 <2022 신문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2021년 종이신문 사업체 수는 2020년 대비 11.5%나 줄어들었다. 매출액 면에서도 심각한 저성장이다. 2021년 매출액은 2012년 대비 3.7% 올랐는데, 같은 기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10.7%P 증가했다. 종이신문의 산업적 영향력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이미 한물갔는데다 다시 성장할 잠재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종이신문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이신문이 미디어 산업의 대안이 될 수는 없어도, 개인의 정보 수용 방식의 대안이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에게 정보 이용 방식의 대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뉴스를 공급하는 저널리즘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뉴스 소비문화에도 큰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는 것이 굉장히 피로하고 비생산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뉴스 보는 게 해가 되는 세상 우선 정보가 너무 많이, 또 빨리 쏟아진다는 것이 문제다. 1986년에 한 명의 사람에게 하루 동안 주어지던 정보량은 85쪽짜리 신문 40개가 지닌 정보량에 맞먹었다. 2007년에는 174개 수준으로 증가했다.[1] 같은 해에 첫 번째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했고, 페이스북도 일반인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오늘날 개인에게 주어지는 정보량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정보의 전반적인 질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늘어난 정보량의 대부분은 SNS, 동영상 플랫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차지한다. 이들 출처의 특징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익명 플랫폼들에서 쏟아지는 허위조작정보들은 거짓의 확산을 넘어 진실의 위기까지 일으키고 있다. 꼭 거짓이 아니어도 무의미하거나 혐오를 담고 있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정보들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정보의 양은 늘어났으나 질은 떨어진 상황에서 개개인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온라인 미디어 환경은 현명한 정보 처리를 어렵게 한다. 앞서 말한 익명 플랫폼들은 차치하고, 뉴스 플랫폼으로만 한정해서 보아도 정보 환경은 위태하다. 플랫폼은 잠재적 독자의 클릭을 끌어낼 만한 뉴스를 제공하도록 피드 알고리즘을 구성한다. 피드 알고리즘이 작동함에 따라 자극적인 가십거리나, 화제성이 매우 높은 소수의 이슈가 독자에게 주로 제공된다. 독자는 일부 자극적인 이슈에 대해 불필요할 만큼 자세히 알게 되고, 화제성은 적지만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입장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수용하는 확증 편향 문제나,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정 편향 문제도 심각하다. 편향은 실시간이나 다름없는 디지털 미디어의 속도와 결합하며 더욱 큰 악효과를 낳는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이며 부정적인 일부 뉴스만을 끊임없이 전달받는다. 결과는 왜곡되고 비관적인 세계관에 갇힌 개인들이다.  지금 우리가 종이신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정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희망보다 절망이 가득해 보이는 상황이다. 대안이 없을까? 필자의 제안은 종이신문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종이신문에 실린 기사들은 일단 언론사에 의해 한번 선정된 기사들이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특정할 수 있는 전문 기자들에 의해 작성된, 비교적 질이 높은 정보들이다. 뉴스레터 등의 뉴스 다이제스트 서비스들이 이미 존재하긴 하지만, 분량과 깊이 면에서는 종이신문이 앞선다. 정보량의 한정(유의미한 정보의 선택)과 질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종이신문은 확실한 강점을 지닌다. 자극성이나 편향 등의 문제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종이신문에는 정치, 사회, 지역,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기사들이 고루 배치된다.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있으면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도 있고, 평소엔 전혀 관심 없는 주장이나 분야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속도가 비교적 느리다는 것도 장점이다. 재난·안전 관련 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속보는 사실 천천히 알게 되어도 큰 상관이 없다. 하루에 한 번 배송되는 종이신문 특성상 남들보다 하루 정도 늦게 기사를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개별 이슈를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끝없는 알림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덤이다. 정보 수용 상의 장점 말고도 종이신문은 적지 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종이신문에는 진지한 기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사나 일상을 다룬 만화를 보며 낄낄거릴 수도 있고, 여행지나 문화행사를 추천한 기사를 읽어보며 여가를 계획하는 데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가 구독한 신문에서는 작가별 초단편 소설을 기획하여 싣기도 했다. 신문이 ‘인쇄물’이라는 것도 은근한 장점이다. 눈도 비교적 편안하고, 종이의 질감이나 신문을 넘기는 손맛을 느껴보는 재미도 있다. 스크린타임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장점으로 여기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신문 외적으로도 효과를 봤는데, 매일 아침 신문을 가져와 하루를 준비하면서 읽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아침 루틴으로 작용하면서 삶에 안정감을 줬다.  중요한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종이신문을 마치 예찬하는 듯이 글이 흘러가긴 했으나, 당연히 종이신문에도 한계는 있다. 원칙적으로 저널리즘 자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종이신문을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속은 그대로인데 껍데기만 바꾼다고 괜찮아질 리 없다. 개인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언론계를 향해 자성과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지속되어야 한다. 종이신문이라는 형식 자체의 단점도 언급해야만 한다. 앞서 종이신문이 편향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절대적 중립이나 객관성은 사실 존재할 수 없고, 각각의 신문사는 판이한 입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신문사의 선택에서부터 편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보의 전달이 일방향적이고, 오보의 수정이 어려우며, 시공간적 제약이 뚜렷하다. 사실은 바로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종이신문이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종이신문은 다른 모든 미디어가 그러하듯이 뚜렷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는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선택의 가능성이 곧 변화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종이신문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는 ‘알 수 없다’이고 정론적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이미 종이신문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대안이다. 거시적인 구조가 아무리 나빠진다 해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  Hilbert, M., & López, P. (2011). The World’s Technological Capacity to Store, Communicate, and Compute Information. Science, 332(6025), 60–65.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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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가습기 살균제 피해 29년, 아직도 탄원서를 씁니다
[6411의 목소리] 가습기 살균제 피해 29년, 아직도 탄원서를 씁니다 (2024.01.08) 허정자 │ 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가족 숨진 딸 의영이보다 두 살 많은 93년생 오빠와 엄마 뒤엔 당시 사용했던 가습기 통이 놓여 있다. 필자 제공제 딸 의영이는 1995년 10월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한 산부인과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기와 함께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뒤 의영이가 감기 증세를 보였습니다.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건조하면 안 좋다며 가습기를 잘 틀어주라고 했습니다. 1993년 5월생 아들도 감기에 자주 걸려 집에서 가습기를 계속 사용했었는데, 때마침 티브이에서 방송인 김연주씨가 “세균과 물때를 다 없애준다”며 유공(현 에스케이) ‘가습기메이트’를 선전하는 광고에 혹해 남편에게 사 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바로 동네 마트에서 ‘가습기메이트’를 사 왔습니다. 저는 매일 가습기를 틀었고, 아기 코밑에도 바로 대주며 쐬게 했습니다. 하지만 증세는 좀처럼 낫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더 큰 병원을 찾아 서울서부역 건너편 소화아동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영아실에 입원시키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오후 5시쯤 위급하다는 연락이 와 병원에 도착하니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기 좀 살려달라고 수없이 외쳤습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우리 딸 의영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태어난 지 50일 만인 11월23일, 의영이의 짧은 삶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렇게 내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참 힘들고 마음 아프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러 티브이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독성 화학약품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엄마가 아기를 죽인 셈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아프지 말라고 살균제를 넣었던 가습기가 아기를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광고 아직도 아기가 쌕쌕거리며 입술이 파랗게 되어 힘들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 딸을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들었으니 저도 딸아이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한동안은 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와 아기를 죽인 죄인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도 제가 힘들어할까 봐 표현은 안 하지만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29년이 지난 지금도 딸아이 또래 애들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의영이 생각이 납니다.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현재 환경부 산하 환경산업기술원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는 7891명, 사망 피해자는 1843명에 이릅니다. 이 보이지 않는 ‘공기 살인’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제 딸 의영이가 첫번째 사망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제 딸은 아직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아니라네요. 너무나도 기가 막힌 일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우리 딸 의영이는 “모세기관지염과 흡입성 폐렴”이 사망 원인이라는 사망진단서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환경관련성 평가서, 환경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환경평가서가 있지만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사망하였고, 시간이 많이 지나 의무 진료 기록이 없어서 아직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2019년 개정 시행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의해 ‘가습기 살균제 노출 확인자에 해당한다’는 환경부 통보만 받았을 뿐 개별 심사도 대기 중입니다. 흡입성 폐렴도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나왔는데, 정작 의영이는 피해자가 아니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살균제의 특정 성분이 폐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에서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에스케이케미칼(유공), 애경, 이마트 관계자들과 2023년 10월26일 재판에서도 서로 변명만 하는 변호인들을 보면서 분노한 남편은 탄원서를 썼습니다. 2024년 1월11일 이들 기업 관계자들의 과실치사 혐의 형사재판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에어로졸 형태로 분무되어 폐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염증을 일으킨다는 실험 결과도 나와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멸시효는 30년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숨쉬기 힘들어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죽어간 사람들이 있는데, 도대체 제 딸 의영이가 살아보지 못한 29년은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재해·위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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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피습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이 글은 이재명 피습에 대해 이뤄진 얼룩소의 토론을 보고 필자의 의견을 일부 가져와 편집하였습니다.  2024년 1월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피습을 당한 큰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를 두고 여러 논란이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헬기로 이송된 것은 특혜인가' , '부산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것은 지방 의료를 무시한 것이다' 등의 비판이 있죠. 저는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보고, 해당 비판들에 대해서도 한 번 점검해 보았습니다.  1.  이재명 헬기 이송에 대해 이 부분은 서툰댄서님의 답글을 포함해서, 여론에서도 집중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이 논쟁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 의해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1)이재명이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것은 특혜이다.2)이재명이 부산에서 치료를 받지 않고 서울로 이송된 것은 민주당이 말한 지방 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주장과 대비된다(부산의사회 성명서 참고)두괄식으로 말하자면, 사실 이 1번과 2번은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없다. 이재명 대표 피습의 본질은 혁명읽는사람 얼룩커가 이야기한 대로 '사람이 칼에 찔려 목숨을 위협받은'사안이며, 김민석 얼룩커가 이야기한대로 '미디어의 정치인 악마화'가 원인이 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혜에 대한 논란도 구조적으로 잘못된게, 정치인이라 특혜를 받기는커녕 정치인이라 오히려 피습을 당한 것이 아닌가? 비판과 논쟁이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함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각각의 '논쟁'에 대해 짧게 의견을 붙여본다. 1)이재명이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것은 특혜이다.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긴 해도, 이재명이 한국의 제1야당의 대표라는 점에서, 무언가 '특혜'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판단해 볼 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재명 대표가 서울대병원으로 헬기로 이송된 것이 특혜라는 주장은 가능한 주장이지만, 가치판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헬기로 이송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2022년 통계를 보아도 등산객이나 응급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헬기가 출동한 적은 많았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인도 상황에 따라 헬기로 환자가 이송되는 것은 의외로 꽤 자주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가치판단의 영역'으로 놔둔 이유는 병원 대 병원 헬기이송에 대해 평소 얼마나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통계나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혁명읽는사람 얼룩커가 인용한 기사를 보면,소방청 발언에 따라 헬기 이송 기준은 충족하는 것으로 보인다.2)이재명이 부산에서 치료를 받지 않고 서울로 이송된 것은 민주당이 말한 지방 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주장과 대비된다(부산의사회 성명서 참고)사안을 천천히 보았을 때 '보건복지부가 발표하는 ‘권역외상센터 평가’에서 4년 연속으로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는 등 외상치료에서 손꼽히는 병원'에서 굳이 서울로 이송 후에 치료를 받은 것은 조금은 의아? 아쉽기는 하다. 헬기 이송을 둘러싸고 이런 문제제기들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이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이보다 더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짐은 이재명 대표 주위 사람들이 더 많이 겪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당연히 환자 혹은 환자의 가족들의 의견이 우선되어야 함에도 물고 뜯는 현실에서는 공격할 빌미가 하나 늘어난 셈이다.그리고 사실 한 명의 환자가 부산에서 서울로 이송되었다고 해서 진짜 응급한 환자들이 부산에서 서울로 이송을 요청할 것도 아닐 것이고, 만약 이재명이 받은 헬기 이송이 특혜라면 더더욱 일반적으로 부산의 의료 체계는 앞으로도 존중받고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한데, 사실 부산 정도면 지방 의료 체계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선 거론될 지역은 아니지 않을까? 진짜 지방 의료 체계가 심각한 지역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2. 이재명 피습에 대한 정치적 셈법에 대한 논의.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재명 대표의 피습 이후 나 역시 속으로 정치적 셈법을 적용해 저울질해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위에 게시한 얼룩소 콘텐츠에는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논하는 것보다 이 문제의 본질인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논하고 싶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재명 피습에서 중요한 것은 다가올 총선에 미칠 영향보다 '증오의 정치', '가짜뉴스와 편향성의 확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이 칼에 찔려 쓰러졌는데 정치적 셈법을 논하는 게 유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앞서 지방 의료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논할때 말했듯이 현실 정치는 권력에 치우친 단기적 문제를 더 우선시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시스템상 '표 싸움'은 선거 기간에 1순위 목표가 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정치적 신념이 있고 올바른 정책을 지향하고 제시한다고 해도, 입법되지 않은 정책(명령,조례 등 포함), 실행되지 않은 정책은 의미가 매우 떨어진다. 사실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은 정당과 정치인들은 순수하게 정치적 신념을 피력함과 동시에 시민들이 올바르게 판단하여 투표하는 것이다. 물론, 순수하게 이렇게 돌아가는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안다(심지어, 한국의 민주주의 '수치'는 매우 높은 편이다 - 윤석열 정권 하에서 하락했고, 더 내려갈 예정이지만). 요약하면, 나는 이재명 피습에 대해 여의도 셈법을 말하는 것의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고 선호하지 않으나, 총선이 3달 남은 시점에서 충분히 생각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셈법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얼룩소 콘텐츠의 덧글창을 확인하면 참고가 될 것이다.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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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 손’ 논란, 본질을 흐리는 건 누구인가
‘넥슨 집게 손 논란’ 들어보셨나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넥슨에서 제공하는 유명 게임 ‘메이플 스토리’의 캐릭터 홍보영상이 새로 공개되었는데, 영상 속 캐릭터가 ‘집게 손’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온라인에 퍼졌습니다. 문제를 제기한 누리꾼들은 해당 영상을 작업한 스튜디오의 한 직원(A 씨)이 개인 SNS에 ‘페미니즘’을 여러 번 언급한 점으로 미루어 이것이 의도된 표현이라고 판단, 넥슨과 해당 스튜디오에 거센 항의를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비슷한 이슈에는 대체로 발 빠르게 대처했던 기업답게 넥슨은 바로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고 입장을 냈습니다. 어떤 이들은 넥슨의 빠른 대처에 감명받았고, 어떤 이들은 너무 섣불렀다고 말합니다. 넥슨이 공식 입장을 내면서 결국 온라인상에서 만들어진 ‘페미 직원의 의도된 혐오 표현 삽입 가설’이 큰 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넥슨의 뒤를 이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스튜디오에서도 입장문을 게시했는데요. 그러고나니  온라인상에서는 ‘해당 직원이 의도임을 인정했다’라는 이야기까지 떠돌았습니다.  ‘인정했다더라’라는 정보는 유저들의 분노를 더욱 들끓게 했습니다. 그리고 유저를 분노하게 한 책임은 아래로, 아래로 위임되었습니다. 넥슨에서 외주업체로, 다시 특정 직원에 대한 공격으로 점점 날이 선 분노가 쏟아졌죠. 업체는 한 차례 더 입장을 내며 해당 직원이 퇴사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직원은 아직 재직중이며, 퇴사했다고 발표한 것은 직원들을 보호하려는 조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사무실을 찾아와 A 씨가 어디 있는지 묻거나 다른 직원들의 사진을 촬영하는 등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만한 여러 상황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업체는 영상 속 문제가 된 장면을 작업한 담당자는 온라인상에서 지목된 A 씨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SNS에 ‘페미해줄게’라고 선언하는 여성으로 그려지던 작업자는 사실 40대 남성 (B 씨)이었습니다. 물론 남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일도 있겠습니다만, 작업 의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B 씨의 SNS를 조사했다는 사람은  없었고요. 업체가 밝힌 바에 따르면 문제가 되었던 장면은 ‘캐릭터가 왼손으로 반쪽 하트를 만들면 손에서 하트가 나오는 연출’을 의도로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작업의 특성상 작업자 개인이 의도를 가지고 특별한 손동작 같은 것을 그려 넣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케치부터 전 과정을 작업 감독과 원청의 담당자까지 다수의 인원이 검수하고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23.12.04] 넥슨 다른 ‘집게 손가락’도 남자가 그렸다···입 연 뿌리 - 경향신문 뜬구름도 잡을 수 있다 일부 유저들은 특정 순간을 포착한 한 장면을 보고 ->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이 남성 혐오 표현이라고 규정 -> 해당 영상을 제작한 넥슨의 외주 스튜디오 밝혀낸 뒤 -> 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영상과 직원들의 개인 SNS를 조사 -> SNS에서 ‘페미니즘’ 언급한 직원을 발견 -> 그 언급을 ‘의도’로 해석한 뒤 이슈를 확산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벌어졌고요. 처음에는 작은 의심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더해지고 보태지면서 확신으로 흘렀죠. 이 과정에서 모인 분노는 타겟 색출에 열을 올립니다. 그리고 진상조사부터 책임까지 몽땅 외주를 맡겨버린 넥슨은 분노를 더 좁은 한곳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직원이 남성 혐오를 조장할 목적으로 영상에 프레임 단위로 ‘집게 손가락’을 넣는 것은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분노는 이것을 가능한 일로 상정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흔히 “뜬구름 잡는 소리 한다”는 말을 하는데요. 실시간으로 이슈가 부풀고 왜곡될 수 있는 환경에서 다수의 목소리는 뜬구름도 잡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전해지는 뉴스를 그대로 믿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군요. 넥슨이 바로 ‘손절’했던 이유 ‘특정 성별을 혐오할 의도로 집게손가락을 그려 넣었다’는 생각은 콘텐츠를 외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공급자는 유저를 붙잡기 위해 ‘강경 대응’같은 입장을 내놓게 됩니다. 소위 ‘페미 묻었다’고 말이 나오는 작품이나 작업자를 배척함으로써 유저의 심기를 달랬던 일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의 등장으로 시끄러웠던 2010년대 후반을 한참 지나온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관행입니다. 이번 사건은 의혹으로 시작한 것을 넥슨이 공식 입장을 통해 빠르게 사과하면서 기정사실이 되어 일이 더 커졌습니다. 콘텐츠의 최종 권리와 책임을 갖는 원청에서 해당 장면에 혐오가 표현된 것으로 규정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된 것입니다. [23.12.01] ‘집게 손가락’ 향한 빗나간 손가락질…넥슨은 못 이긴 척 ‘여혐’ 거들었다 - 경향신문 업계 밖의 목소리도 한몫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고 몇몇 정치인들은 영상 속 캐릭터의 손 모양이 나쁜 의도를 띈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장면을 그린 사람과 연출 의도가 전혀 다른 것이었음이 밝혀진 뒤 뱉은 말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장 의원은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을 공격하기 위해 조장되는 억지 논란 자체도 문제이지만, 공적인 권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억지에 과도한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함으로 인해 결국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일은 그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 왔다"라며 "자신의 정치적 언행이 사회에 가져오는 파급력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입을 닫고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23.12.05] 넥슨 사상검증에 동참한 의원들, 해명도 반성도 없다 - 오마이뉴스 언론의 부채질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수준입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나 개념조차 이해하지 않고 논란에 살만 더하는 글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개인 SNS 정보와 실명 등을 ‘나무위키’에 따른 정보라며 기사에 언급합니다. 보도 윤리는 고사하고 사실확인조차 되지 않은 내용을 옮겨적기 바쁘죠. 물론 이런 글을 쓴 사람들도 이 사태의 무게를 전혀 나눠지지 않습니다. 2021년, GS25의 이벤트 포스터에 들어간 집게 손가락 그림이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언론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는데요. 시간이 지났음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언론인권센터는 “취재도 팩트체크도 없이 익명성을 기초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출입처로 삼아 자극적인 소수 의견과 일방적인 문제 제기를 보도하는 것은 직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한 뒤 “언론은 온라인 여초·남초 커뮤니티 내의 현상만을 보도하는 행태를 멈추고 다각도로 사안을 취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언경 뭉클미디어인권연구소 소장은 “언론이 상업적 키워드로서 ‘여성과 남성의 대결’이 ‘잘 팔린다’는 학습이 된 것 같다”며 “기업도 억울한 피해를 보도록 해선 안 되는데 이를 구경하고 방조하고 부추기는 보도는 결과적으로 논란에 가담하는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21.06.04] “여초·남초 커뮤니티 출입처 삼는 취재 행태 멈춰야” - 미디어오늘 ‘게임업계 비상’ 등의 보도 문구는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하는 듯 다른 콘텐츠에 대한 전수조사까지 이뤄지면서 게임업계 다른 노동자들이 억울한 업무를 짊어지기도 했지요.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는 한 넥슨 직원이 프레임 단위로 ‘손가락’ 검열 업무를 하느라 겪는 고충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고, 이것은 다시 언론에 의해 퍼졌습니다. 그림을 그린 당사자가 혐오를 의도한 연출이 아니라고 주장했음에도 불이 붙은 분노의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하청업체로서 원청의 요구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스튜디오 측 주장에 ‘사건의 본질을 흐리지 말라’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23.12.07] 게임업계 남혐 논란 점입가경...뿌리 측 본질 흐리기에 넥슨 직원 반발 - 아시아에이 본질은 뭘까요? 분노한 사람들이 여전히 사건을 비난하는 이유는 콘텐츠에 ‘혐오 표현’이 들어가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슈 관련 기사나 영상의 댓글을 보면, ‘남혐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모든 혐오에 반대’한다는 의견들이 보입니다. 의도가 아닐지언정 어떤 요소가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유발한다면 수정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렇다면 콘텐츠 전수조사의 대상이 집게 손가락에 한정되어선 안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의 노출이 너무 심하지는 않은지, 대사에 장애인이나 이민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있지는 않은지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옛날 게임만 그랬을까? 슬프게도 이 시스템은 2017년의 게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붕괴3rd’는 현재 구글 앱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권에 오른 액션 모바일 게임이다. 이 게임엔 여성 캐릭터를 성희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메뉴 화면에 있는 여성 캐릭터의 가슴, 배, 허벅지, 사타구니, 팔, 머리를 찌르면, 캐릭터가 “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부끄러워한다. 찌를 때마다 ‘호감도’가 올라가고, 캐릭터의 능력치가 증가한다. 게이머는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좋든 싫든 캐릭터를 성희롱해야 한다. 이런 기이한 게임 시스템의 바탕에는 ‘이 여성이 말은 싫다고 해도 내게 강간이나 성추행을 당하면 쾌감을 느낄 것이다’라는 왜곡된 믿음을 전파하는 강간문화가 있다.  [17.12.25] '여혐 재미' 가르치는 게임들 - 여성신문 본질은 쉽게 가려지곤 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지만 손가락으로도 본질은 가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몇 가지 당연한 부분이 잘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습니다. 일터에서 일어난 일로 사생활을 침해받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회사는 직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는 신체 구조상 가까이 붙어있죠. 주먹을 쥐었다 펴는 동작에서 한 프레임만 캡처하면 남혐 표현이 만들어집니다.  11월 28일, 한국여성민우회는 기자회견을 위해 개인 연명을 받으면서  취합한 의견을 문서로 공개했습니다. 9,429명의 목소리가 정리된 문서를 보면 많은 사람이 ‘평등한 게임 문화’를 소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게 손가락에 분노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게임업계에서 혐오가 사라지길 원합니다. 게임업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하려면 넥슨처럼 영향력이 큰 기업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넥슨은 직원을 동원해서 게임 속 집게 손가락을 찾을 게 아니라, 평등한 게임 문화를 위해 책임 있는 행보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넥슨은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 손’ 억지 논란을 멈춰라:  게임 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 몰이를 규탄한다>  기자회견 연명에 동의한 25,511명의 시민들 중  9,429명이 작성한 의견 모음
젠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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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서페대연 편
'서페대연'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 동아리'라는 풀네임에서 알 수 있듯 서울 기반의 페미니즘 운동단체인 '서울여성회'에서 이끄는 공동체로, 대학에서부터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자 한다. 2017년 공식으로 출범해 6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나,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와 동시에 더욱 거세진 '백래시(backlash)'로 인해 대학사회에서 점차 비가시화하는 페미니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올해 <그럼에도 우리는> 2기에 참여해 <페미니즘 원데이 클래스 : 원데이가 평생이 될지도>를 진행한 것도 페미니즘 운동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서페대연 활동가 지수를 만나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서페대연 활동가 지수(왼쪽)와  빠띠 활동가 리디아가 <그럼에도 우리는2>에서 서페대연이 진행한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Parti 대학 내 점점 강해지는 '안티-페미니즘'에 대항하기 위하여 서페대연은  대학 내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 있고 일부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실의 문제로 좌충우돌하는 상황에서 서울여성회의 선배들과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학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7년부터 대학 내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만드는 활동을 해왔으나, 코로나19 이후 대학 캠퍼스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 뒤로도 페미니즘은 백래시로 인해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에브리타임(전국 400개 대학을 대상으로 학업 지원 서비스 및 커뮤니티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커뮤니티 활동은 철저하게 필터링됐다. 이렇게 페미니즘 공동체가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가 더 가까이, 더 넓게 다가가서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럼에도 우리는>에 참여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보기로 했다.   페미니즘의 문턱을 낮추는 ‘원데이 클래스’  초반에는 방학 중에 주1회씩 총 3회차로 진행되는 장기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그런데 서페대연 기존 회원들만 대상으로 한다면 참여자를 모으는 데 무리가 없겠지만, 우리의 취지는 기존 회원 외 더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었기 때문에 방학 중에 프로그램을 여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학기 시작 무렵으로 진행 시기를 옮기고, 더 쉽고 가볍게 참여할 수 있도록 원데이 클래스로 형태를 변경했다. 그리고 원데이클래스를 열기에 앞서 기존 회원들과 '페미니스트데이'란 이름으로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워크숍에서는 서페대연이 지향해야 하는 페미니스트 공동체 상(像)은 무엇인지, 페미니스트 공동체로서 어떤 문화와 언어와 규칙을 만들어가야 할지 논의하고 마음을 맞춰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원데이클래스는 페미니즘 연구자 선생님들의 강연을 중심으로 참여자들이 편하게 서로의 관심사나 고민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획해 9월 11일, 12일 2회에 걸쳐 이화여대와 덕성여대에서 진행했다. 첫 회는 이화여대에서 진행되었는데,  여성학자 전희경 선생님께서 <페미니즘으로 다시 만난 세계>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쉽게 잘 설명해주셨다. 선생님께서 페미니즘과 차별, 인권을 연결해 설명해주셔서,  참여하신 분들도 페미니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감을 남겼다.  페미니즘이 무엇인가에 관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모이고 뭉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원데이 클래스에서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전에 선생님께 페미니즘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십사 부탁드렸고,  이를 반영해 선생님께서는 강의 중에 '지속가능성'으로서의 페미니즘 공동체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잘 설명해주셨다. 강의에 이어진 참여자 토론에서는 인상 깊었던 강의 내용과 함께, 책이나 강의로만 접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실제 대학 사회에서 구현하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번째 회차에서는 김주희 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님께서 <백래시, 동시대 경향성과 페미니스트 대안>이란 주제로 백래시에 관한 강의를 해주셨다. 김주희 선생님께서도 서페대연 단체를 소개해주시며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페미니즘을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피드백이 나오기도 했다. 두 차례 원데이클래스를 마친 후에도 참여했던 분들과 연을 이어가기 위해 영화 모임이나 운동 모임을 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서페대연이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했다(웃음). 원데이클래스 이후 서페대연에 가입한 참여자들도 있다.   "원데이클래스 참여자분이 "이런 게 없는 줄 알고 속상해 하고 있었는데, 홍보 포스터 보고 남들 몰래 사진 찍어놓고 찾아왔어요"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기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대학 캠퍼스 안에서 페미니즘 활동 홍보물을 찾아보는 것조차 힘들어진 상황이 된거죠. 서페대연 홍보물이 거의 유일한데, 그마저도 내가 이걸 보고 있는 장면을 누가 볼까봐 무서워서 몰래 봐야 하고요. 바로 이런 지점에서 서페대연이 학내에서 계속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싶어서요."  (지수) 서페대연이 기획한 ‘원데이 클래스'에서 김주희 교수님의 백래시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 ⓒ서페대연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쉽고 가까이 다가가려면 다양한 활동 방식이 필요하다 동아리를 운영하려면 지켜야 할 형식 같은 것들이 있어서, 활동을 기획할 때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전통적인 방식을 적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는2>에서 다른 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걸 보면서 좋은 영감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등대’ 팀이 게임을 매체로 활용한다거나, ‘선을넘는몫소리’ 팀이 이주여성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자리를 열거나, 이런 방식이 저희에게는 낯선 것들이었다. 페미니즘도 전통적인 ‘운동’ 방식이 아니라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원데이클래스 참여자들과 운동 모임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전 같았다면 ‘페미니스트끼리 왜 운동을?’ 했을 거다(웃음). 사실 이번에  원데이클래스를 4회 정도 하고 싶었는데 강사 섭외에 실패해서 2회밖에 진행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또 2회 모두 남녀공학이 아니라 여대에서 진행한 것도 아쉽다. 앞으로 원데이클래스는 꾸준히 했으면 좋겠고, 처음 기획대로 방학 중 3주차 워크숍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페대연이 대학 내 페미니즘 불씨를 살려내려는 이유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면 안 된다’는, 세상이 성평등하게, 더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운동을 지속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다. 세상을 바꾸려면 행동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나 또한 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존엄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활동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지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세상 아닌가.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고집’을 부리다 보면 활동을 지속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또 하나는, ‘사람’이다. 서페대연 회원들 중에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운동을 계속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공동체다. 페미니즘 공동체를 재건하고 새로 구축해 나가는 것. 서페대연은 대학사회 안에 페미니즘 공동체를 구축해 이를 기반으로 대학사회를 변화시키고, 이 변화를 대한민국 사회 전체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래서 대학 내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만들어 이 공동체의 힘으로 대학 문화와 제도, 구조를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대학 문화, 대학 사회 자체가 붕괴된 상황에서 이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이 ‘주인’이기 보다 ‘소비자’, ‘고객’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정말 슬플 때는 서페대연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사람들이 모를 때다. 코로나 시국에 정말 힘들고 답답했던 게, 학교에 갈 수 없다 보니 에브리타임에서 우리를 필터링하면 존재를 알릴 방법이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 회원들이 순번을 짜서 각자 아이디로 저희 홍보물을 계속 올렸다. 삭제되면 다음 사람이 다시 올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최대한 서페대연 소식이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서페대연 회원들 에브리타임 계정이 다 신고 당해서 정지되곤 한다(웃음). 그렇게 어렵게 홍보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에브리타임에서 보고 왔다”고 하면 정말 감격스럽다. 이 한 명을 위해 우리는 계속 회원 수십 명 계정이 정지되어도 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새로 찾아오는 회원 한 명을 위해 캠퍼스 안에 홍보물 붙였다가 떼이면 다시 붙이고, 욕 먹고, 다시 붙이고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우리가 여기 있다, 당신 혼자가 아니다”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숫자로 꿈꾸는 세상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서울 지역 내 대학이 몇 곳이나 되죠? 서울 지역 전 대학에  페미니즘 공동체가 생기는 것. 서페대연 지회면 더욱 좋겠지만(웃음)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페미니즘 공동체 자체가 없는 학교가 많거든요. 어느 학교에나 페미니스트가 있으니, 이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서 활동하고 지지 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가는 게 서페대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수) 워크샵 활동을 하며 변화를 만드는 실천을 고민하는 서페대연 팀 ⓒ서페대연 📝 글ㅣ한승희기자로 소셜 섹터에 발을 들여놓은 뒤 다양한 조직에서 매니저, 활동가, 연구원, 기획자로서 이런저런 글을 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들과 현장 이야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진 | 데모스X5팀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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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글로벌 슈퍼 선거의 해, 세계의 미래는?
2024년은 ‘글로벌 슈퍼 선거의 해’라는 타이틀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굵직한 선거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선거만 열거해도 당장 1월에는 대만 대선이 기다리고 있으며, 3월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선, 그리고 4월에는 한국의 총선과 11월에는 대미를 장식할 미국 대선이 있습니다.  대만 대선, 반중 세력의 승리? 대만 대선, 반중 성향의 민진당이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데요. 최근 대만해협 위기 고조로 인해 대만 선거가 ‘미중 대리전’이라고 불리고 있는 만큼 대선 향후 결과에 미중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선을 열흘 앞두고 중국 정찰풍선이 등장하여 팽팽한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하였습니다(출처 서울신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대선, 전쟁 중의 선거 전쟁 중인 두 나라의 리더를 뽑는 대선이 3월에 나란히 대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과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의 재선 가능성 타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6월 예정되어 있는 EU 유럽회의 선거에서 극우 세력이 득세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유럽의 앞날이 어떻게 변화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총선, 심판론과 신당 창당 등 혼란 속 승자는? 한국의 총선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에 대한 심판론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필두로 이낙연 대표까지 탈당 및 신당 창당 이야기 등이 나오면서 어수선한 가운데 바로 어제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가 피습당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혼란에 혼란을 더하고 있습니다.  슈퍼 선거해의 하이라이트, 미국 대선  대미를 장식할 슈퍼 선거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미국이 될 것 같습니다. 바이든과 돌아온 트럼프의 양자대결이 관전 포인트였는데 중도층을 공략한 공화당 헤일리 후보의 예상치 못한 잔잔한 돌풍도 불고 있습니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써 자격이 없다고 판결을 내린 콜로라도 법원에 괴한이 테러를 저지르는 사건도 일어나는 소동이 있기도 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리더의 영향력은 한 조직의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만큼 무거운 책임도 뒤따르는 법입니다. 그 리더를 뽑는 선거는 그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합니다. 리더의 모습은 우리의 투표를 통해 바뀔 수 있습니다. 혼돈의 시대, 차악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정말 각국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가 뽑히길 바랍니다.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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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가상] 한숨만 나오는 장애인 이동권
2023년은 유난히도 이슈가 많았던 한 해였던 거 같은데요. 그중에서도 오랜기간 변화가 더디다고 느끼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그들의 시선으로 복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vs. 호주 장애인 이동권 인식 하반신 마비 장애인 박위의 유튜버채널 위라클에는 우리나라와 호주의 실험카메라 영상이 있습니다. 호주의 경우 평평한 아스팔트 인도와 장애인 탑승이 원활한 교통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나서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우리나라는 그와는 상반되는 모습에 미간이 찌푸려졌습니다.  모두가 하나인 것 같은 모습의 호주, 그리고 혼자인 것 같이 느껴지는 한국. 이 상반되는 모습을 보면서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늘 크게 남기에 제도와 시설보단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한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올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장애인이 탑승하자마자 출발하는 버스기사, 장애인 좌석에 앉아서 다른 곳에 않으면 안 되는지 물어보는 승객, 그리고 그에대해 하나씩 대응해 나가는 장애인 유튜버의 모습을 보면서 주변을 더 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사회에서 장애인 인식에 대한 교육도 부족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장애인의 이동권 관련법 법적으로 장애인의 이동권은 충분히 보장받고 있을까요? 이 또한 아닙니다.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주요한 개념은 건축물에 대한 접근권과 이동 편의시설을 규정한 이동권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 두 가지 권한에 대한 주관부서가 달라서 장애인등편의법과 교통약자법에 따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명시하고 있는 대상의 범위가 모두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명시되지 않은 운송수단도 있는데요. 블럭형식으로 되어있어 울퉁불퉁하고 나무나 기타 시설 때문에 휠체어가 지나갈 만큼의 공간이 확보되지 못한 인도는 휠체어 사용자,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보행까지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제4조(접근권) 장애인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장애인등편의법, 보건복지부) 제3조(이동권)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제4조(국가 등의 책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과 여객시설의 이용편의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교통약자법, 국토교통부) 또한 건축물에 접근하는 것과 이동하는 것은 실상 하나의 개념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법률로 한 부서가 관리했을 때 효율적이고 신속한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의 결실로 이뤄낸 기술적인 발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변화가 더딘 이유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이기에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느끼는데요. 그래서 장애에 대하여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 유튜버들의 활동이 너무 소중하고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는 편인데요. 최근 시각장애인 유튜버 채널인 원샷한솔에서 약자동행 기술박람회를 방문한 영상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한 업체의 대표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기술을 스크랩하고 기술로 발전시킨 사례때문입니다. 영상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신 모습과 댓글을 통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커져감을 느낍니다. 인식 변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장애인 유튜버들을 보는 수동적 행동뿐만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드네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낙담하지 않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2024년에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모두가 더욱 노력하는 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유롭게 의견 나눠주세요.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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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는 수입품이 아니다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보다 공화에 대해 다루는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공화가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려면, 공화주의가 탄생한 역사 배경과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지 그 변천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화주의의 유래와 그 역사적 진화 과정을 살펴본다면, 공화의 진정한 의미와 중요성을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공화주의의 역사를 살펴보자. 공화(republic)의 유래  서양에서 사용되는 '공화국' 또는 '공화'라는 용어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기원했다. 이 라틴어 표현에서 'res'는 '사물', '물건', '재산'을 의미하는 명사이며, 'publica'는 '공적인'을 뜻하는 형용사다. 이 두 단어의 조합을 간결하게 해석하면, '레스 푸블리카'는 '공적인 것' 또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는 공화주의가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복리를 중시함을 암시한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레스 푸블리카를 “공동의 법과 이익에 의해 결속된 공동체로서의 국가”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동의 법과 이익’이다. 특정 개인 또는 소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위한 국가가 레스 푸블리카인 것이다. 그래서 공화는 단순히 왕정이나 귀족정 등만이 아닌 다양한 정치 체제 요소가 섞여 있는 ‘혼합정’을 의미하기도 했다. 공화주의의 진화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미국의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Jr), 프랑스의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등 여러 철학자에 의해 공화주의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와 인민(people)이 덕성을 갖춘 상태에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절대권력을 제한'하는 형태의 공화정을 제안했다. 이와 비슷하면서 다르게, 제임스 매디슨은 다수가 권력을 독점해 소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로서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호 견제와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공화를 '혼합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토크빌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시민의 자발적 결사'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공화 사상가들의 이론은 공화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를 비극으로 이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주의의 핵심 사상 중 하나로 '비-지배의 자유'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1편에서 언급한 필립 페팃(Philip Noel Pettit)은 이 개념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다. 페팃에 따르면, '비-지배의 자유'란 개인이 타인의 자의적인 의지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상태다. 그는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자유를 넘어서, 어떠한 외부 권력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자유 상태를 강조한다. 페팃의 이론은 공화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동양 공화의 뿌리: 려왕에서 군신공치까지  공화는 서양만의 개념이 아니었다. 동양의 '공화' 개념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사마천의 '사기본기(史記本紀)'다. 기원전 841년, 주나라 백성들이 려왕(厲王)을 나라 밖으로 추방한 후, 13년 간 왕이 없는 상태에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라는 두 재상이 정치를 맡았다. 이 시기를 가리켜 '공화'라고 불렀다. 후에 공백화라는 인물이 려왕을 대신해 국가를 통치했다는 기록이 발견되긴 했지만, 역사적 맥락을 떠나 '공화'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왕이 없는 상황에서 신하들이 국가를 다스리는 상황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려왕 사례를 통해 우리는 '공화'가 단순히 서구에 국한되지 않고, 동양에도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유교에서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천하는 모두의 것)'을 정치의 근본 방향으로 채택했다. 이는 정치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덕치(덕을 통한 통치)와 함께 법치를 중시하는 관점을 반영한다. 유교는 법치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고, 특히 사대부 계층의 도덕적 자기 수양을 중요시했다. 조선을 포함한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정과 귀족정이 혼합된 '군신공치(君臣共治)' 체제가 정착되었다. 이 체제에서 사대부와 신하들은 왕의 권력을 견제하며 국정을 공동으로 운영했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혼합정 형태의 공화(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동 통치)가 이미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만의 공화를 재구성할 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는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자연스레 인식했다. 이러한 생각은 임금이란 백성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이며, 만약 임금이 주권을 빼앗겼다면(혹은 포기했다면) 백성이 직접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 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명시했으며, 1948년 제헌헌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단순히 서양의 '공화' 개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공화주의는 서양만의 전유물이 아닌, 동양에서도 과거부터 이어 내려온 가치였음을 잊지 말자. 이제 우리의 과제는 '우리만의 공화주의'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권력 분산, 시민의 덕성, 자발적 결사, 소수의 권리 보호 등 기존의 공화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반영해야 한다.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양의 전통과 가치를 통합한 새로운 정치적 접근을 통해 공화주의를 재구성할 때 우리 사회에 더욱 적합하고 대중이 느끼는 '답답한 현실 정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발족,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고 있나요?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손잡아줘서 고맙습니다” 12월 16일 서울 중구에서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발족식이 열렸습니다. 삼풍백화점 참사(1995), 씨랜드 화재 참사(1999),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1999), 대구 지하철 참사(2003), 가습기 살균제 참사(2011),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2013), 세월호 참사(2014),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2017년) 총 8번의 우리 사회를 아프게 휩쓸고 지나갔던 재난의 자리에 여전히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참사 유가족과 관계자 120명이 한데 모였습니다(출처 경향신문). 발족선언문에서 안타깝고 인상적이었던 부문은 “새로운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애끓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참사를 외면하고 지우는 사회, 국민이 아닌 것처럼 대하는 정부 등 모든 참사는 너무 닮아 있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왜 참사는 반복되는 것일까요. 예방과 대책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참사는 시간에 묻혀버립니다. 허무한 사고로 가족과 친구를 떠나보내고 애도의 기간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가운데도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할수록 세상은 이제 그만 잊으라며 차가워집니다. 오히려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까지 일어나는 상황이 발생해도 그를 위한 보호막도 없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마음은 피해자가 알듯 참사가 반복될 때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먼저 발 벗고 현장을 찾은 이들은 바로 다른 참사의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삼풍백화점 참사 피해자인 손영수씨(참사피해자연대 감사)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가 발생하자 허리 디스크를 앓는 와중에도 달려가 위로를 전하기도 했고, 인현동 화재 참사 피해자 이재원씨(운영위원·70)는 대형 화재가 있을 때면 현장에 가서 피해자들에게 ‘도울 일이 없는지’ 찾아다녔습니다(출처 한겨레).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사회가 그들을 외면할 때 더욱 피해자들은 서로 위로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연대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는 이미 재난 참사 피해자 협회 연대(FENVAC·펜박)라는 이름으로 재난 당한 사람들이 재난 당한 사람에게 출동하는 일종의 '유족 911'이 있습니다. 이들은 국가와 협약을 맺어 국가의 이름으로 파견됩니다. 경험이 있는 당사자야 말로 무엇이 필요한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출동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재난 출동과 달리 사고 현장에 심리 치유팀이 파견되기도 하고, 피해자들과의 주기적인 모임을 조직하며, 재판 과정에 동행하기도 합니다(출처 고발뉴스). 참사 피해자들의 연대가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와 의의는 어떤 것일까요. 그들이 스스로 연대하여 바로잡기 위해 모이기 전에 정부와 사회가 앞장서서 참사를 직시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온전히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요.  참사는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매일 가는 백화점에서, 지하철에서, 학생들의 수학여행에서, 관광지에서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예측하고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는 막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난 참사에 대해 어떤 반성과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위로를 건네고 있을까요? 자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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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의 보호입원제도,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장애인 언론매체 <함께걸음>입니다.  *함께걸음은 장애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1988년 3월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전문 언론매체로 35년간 (격)월간지를 발행해오고 있습니다. 📚 <함께걸음>에서는 '이슈광장’이라는 코너를 통해 장애계 이슈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청취해보고자 합니다. 전문가들의 주장이 아닌 대중들의 논리와 견해를 진솔하게 담아보고자 하오니 여러분들의 의견을 기탄없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동일 내용의 투표 콘텐츠로도 의견을 받고 있습니다! 첫 번재 이슈는 ‘정신병원의 보호입원제도’입니다.🏥 여러분,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신 적이 있나요?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포스터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우울증, 조울증, 망상, 공황장애 등 현대인이 겪는 다양한 정신질환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들거나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등의 이유로 정신병동을 찾은 사람들이 입원 치료를 받는 과정, 의료진들과 가족 보호자의 일상을 그려냅니다.   드라마 첫 화에는 ‘오리나’씨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입원 첫날부터 정다은 간호사에게 “자신이 남편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엄마가 병원에 가둬두려 한다”며 퇴원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정다은 간호사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실은 오리나 씨가 일방적으로 해당 남성을 스토킹하여 접근 금지 명령까지 받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다은 간호사는 지속해서 퇴원을 요청하는 오리나 씨를 달래기 위해 짝사랑을 착각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오리나 씨는 ‘액팅아웃(감정의 표현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때로는 파괴적, 공격적 형태로 나타남)’을 하며 간호사의 뺨을 때리고 병실을 나와 옷을 벗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이후 간호사와 의사는 이 상황의 내용을 공유한 뒤, 의사가 ‘오리나’ 환자의 보호자에게 ‘보호입원등신청서’를 주며 “오리나 님이 퇴원을 요구하셔서 보호입원으로 전환하는 겁니다. 보호자 분들께서 72시간 이내에 서명을 하지 않으면 오리나 님은 퇴원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中 정다은 간호사와 오리나 환자의 장면 ⓒ넷플릭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리나 씨는 ‘본인은 자의입원을 한 것인데 왜 퇴원을 할 수 없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합니다.   오리나: “저 나갈게요. 퇴원수속 해주세요. 저 자의입원 했어요. 언제든 퇴원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정다은 간호사:“자의가 아니라 동의입원인데 바로 퇴원은 안 되고요. (의사)선생님이 치료랑 보호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을 하시고 보호자님도 동의를 하게 되면 보호입원으로 전환이 돼서 퇴원은 좀 힘들 수 있으세요”   오리나 씨의 사례처럼 자의입원과 보호입원과 관련된 사항은 실제로 정신병동 안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현재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른 입원인지 여부에 따라 자발적 입원(자의입원, 동의입원)과 비자발적 입원(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자의입원은 환자 스스로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는 물론 치료 필요성을 인식, 입원한 경우로 환자가 퇴원을 원하면 즉시 퇴원할 수 있습니다. 동의입원은 정신질환자가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입원하는 경우로 퇴원 희망 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며 의사가 치료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72시간 동안 환자의 퇴원 의사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 보호자 동의가 있으면 보호입원 등 비자발적 입원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 퇴원을 희망하는 오리나 씨, 환자의 치료를 위해 보호입원으로 전환을 제안하는 의료진. 여러분들은 어떤 상황에 더 공감을 하시나요? 🗣️ 오리나 씨, 가족, 의료진들의 대화를 바탕으로 여러분들은 현재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설명하고 있는 정신병원의 입원형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가요? 💬 기타 의견을 남겨주세요 (ex.<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고 든 여러 가지 생각, 더 나은 제도를 위한 제언 등) *위 내용은 여러분들의 답변에 도움을 드리기 위한 질문 리스트입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 여러분들의 솔직한 의견과 생각을 1월 10일까지 적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은 24년 2월에 발간될 함께걸음 401호에서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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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닛더피스클럽 편
평화라는 단어가 얼마나 소중한 단어이고, 희생이 따르는 단어인지 알게 되는 요즘이다. 연일 국제적으로 안 좋은 뉴스가 나온다. 그런 뉴스들을 접하면 모두가 다 같이 평화를 추구하고, 연대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분명 나만 추구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고, 그 모임이 커뮤니티가 되고, 그 커뮤니티가 다시 다른 커뮤니티와 엮여 확장성을 갖게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닛더피스클럽은 뜨개질을 통해 평화를 엮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뜨개질을 통해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전하는 장을 만들고, 함께 행동한다. 이런 모임이 새로운 모임으로 계속 엮이고 확장될 수 있다면, 어쩌면 정말 평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인터뷰하면서 계속해서 뜨개질하는 닛더피스클럽을 만나 보았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닛더피스클럽’의 팀원 라일락(왼쪽)과 봄봄(오른쪽)이 워크숍 활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닛더피스클럽   닛더피스클럽의 탄생   닛더피스는 평화를 엮는다는 의미다. 영어단어 닛(Knit) 자체가 바늘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순 뜨개질이 소품을 만들 수도 있지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엮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추구하는 가치를 나열해보면, 생태주의, 비건, 동물권, 퀴어 등이다. 이런 가치들을 뜨개질하면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뜨개질을 통해 기후 행진에 필요한 깃대와 퀴어한 모자를 만들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라일락과 봄봄. 두 사람은 이벤트를 통해 만났다. 라일락이 운영하던 작업실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봄봄이 당첨됐다. 인스타 이벤트였는데, 봄봄은 출근하기 전에 이벤트에 참여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던 중 서로가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바로 같이하게 됐다.  둘 다 제로 웨이스트 방식으로 뜨개질하고 싶다는 니즈가 있었다. 소재도 친환경으로 쓰고 싶었다. 대개 아크릴이나 플라스틱 제품을 많이 쓰는데 값이 싸고 취급하는 곳도 많지만 둘 다 그런 제품 사용을 지양했다. 재사용 면실을 사용하자는 등 소재 면에서도 니즈가 일치했다. 또한, 멋진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다. 뜨개질하면 물질적인 결과물이 나오지만, 더 중요한 건 같이 하는 사람들과 활동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의 생각이 잘 맞았다.   ‘닛더피스클럽’의 라일락이 워크숍 참가자에게 뜨개질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닛더피스클럽   닛더피스클럽의 닛(Knit) : 기후위기 행진과 연말 모임 활동   기후위기 행진은 라일락, 봄봄 모두 처음부터 하고 싶은 활동이었다. 둘 다 관심 주제가 기후위기여서 당연히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전에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뜨개질로 현수막을 크게 만들어 행진했던 걸 본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우리도 우리만의 가치를 담은 제품을 만들어서 행진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그럼에도 우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뜨개질 워크숍을 열었다. 참가자들 대부분이 뜨개질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었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뜨개질을 하며 깃발을 만들었다. 7~8명이 함께 작업을 했는데 힘들면 잠깐 뜨개질을 내려놓고 소파에 기대거나 스몰토크로 쌓인 긴장을 푸는 편안함이 좋았다. 이후 기후위기 행진에 참여했다. 피켓이나 박스로 만든 게 아니다 보니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보신 분들도 계셨고 사진도 많이 찍으셨다.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의 방식으로 가치를 전달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다줄 때 또 다른 연결고리가 생기는 거 같았다.   기후위기 행진이라는 큰 산을 넘으니까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워크샵을 하고,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등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건 깃발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이야기들과 결과를 어떻게 아카이빙 하고, 기후위기 행진 후기 나눔을 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을 다음에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2023년 우리의 일정은 마무리 단계다. 기후위기 행진했을 때가 하이라이트였다. 현재는 그동안 했던 것들을 아카이빙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말에는 <퀸의 뜨개질>을 보면서 뜨개질 모임을 할 예정이다. 퀴어와 뜨개질이 섞여 있는 영화인데 활동 마무리도 영화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 돌보는 시간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닛더피스클럽’의 봄봄과 라일락 및 워크숍 참여자들이 923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닛더피스클럽   뜨개질로 만드는 커뮤니티와 자기 효능감   “가장 뿌듯했던 건, 코바늘을 처음 사셨던 분들이 지금은 각자 알아서 실과 코바늘을 사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뜨개질이 본인만의 취미가 된 거다.” (라일락)   현재 오픈 채팅방도 운영중인데, 구성원들이 알아서 기획하고 모임을 하신다. 이런 느슨한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게 변화라고 생각한다. 뜨개질로 만들 수 있는 게 다양하고 일상에서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신 것 같다. 본인이 만든 걸 단톡방에 올리면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또한, 뜨개질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찾은 분들도 있다. 뜨개질은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 서툴든 아니든 내가 만들어낸 창작물이다. 그러다 보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실제 자기효능감을 되찾은 분도 계셔서 뿌듯하다.   “초반에는 제가 알려주는 선생님이었는제 이제 참여자들이 저를 알려주고 있다. 이것 역시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봄봄)   “일상이 무료하고, 고립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뜨개질로 다시 자기 효능감을 되찾은 분도 있다고 느꼈다. 큰 행위가 아님에도 성취감을 주고, 효능감이 증가하는 변화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라일락)   유튜브에는 다양한 도안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영상도 있고 멋진 결과물을 지향하는 오프라인 모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임에서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면서 만드는 것 자체로 새로운 도안이 되게 하고 싶었다.  뜨개질이 서툴러 한 코 한 코가 일정하지 않아도, 모양내는 대로 자유롭게 만들며 예쁨이 규격화되어 있지 않은 느낌으로 모임을 이끌었다. 뜨개질은 열린 기술과 같다. 각자의 노력과 정성이 담긴 뜨개질을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있고 활용하면서 수정할 수 있다. 참여자들도 자연스럽게 이 부분을 이해하면서 좋아해 주셨다. 한편, 뜨개질이 사회적으로 여성적인 취미로 이야기되기도 하고, 여성들이 많이 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접근을 다르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이번 워크숍에도 성별을 구분해 참가자를 받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참여자 성별의 편향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남성분들 참여는 없었고 논바이너리, 퀴어 분들은 참여하셨다. 활동을 성별로 가늠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참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 되도록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워크숍에서 산호초 모양의 뜨개질을 공유하고 있는 닛더피스클럽 워크숍 참가들 ⓒ닛더피스클럽 ⓒParti   닛더피스클럽의 또 다른 ‘엮음'을 위해   “작은 목표 중 하나는 시민단체와 연대해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동물해방운동을 하는 새벽이생추어리에서 겨울을 날 때 필요한 돼지 옷이 필요한데 시중에서 돼지 옷을 팔지 않으니까 이불을 많이 쓴다. 그런 돼지에게 뜨개질로 만든 옷을 주면 좋지 않을까. 물론 돼지가 잘 입지 않는다고 한다. (웃음) 아무튼, 필요할 것 같은데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찾아서 만들어 보고 싶다.” (봄봄)   “닛더피스클럽과 더불어 운영하는 커뮤니티를 잘 엮고, 각각의 커뮤니티를 통해서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 뜨개질을 통한 효능감과 함께 다양한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 한강에서 비건 포틀럭 파티를 하며 산호초를 뜨개질했다. 자연스럽게 기후위기와 산호초의 멸종 위기가 나오며 다양한 정보를 나눴다. 뜨개질의 목표가 제품의 아름다움이 아닌, 과정을 통한 또 다른 가치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잘 엮고 싶다.” (라일락)   📝 글ㅣ한승희기자로 소셜 섹터에 발을 들여놓은 뒤 다양한 조직에서 매니저, 활동가, 연구원, 기획자로서 이런저런 글을 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들과 현장 이야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진 | 데모스X5팀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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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보다 공화에 대해 다루는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공화주의(republicanism)란?     ‘공화’란 무엇일까? ‘공화’라는 말 자체는 아주 오래전 중국 대륙에 있던 주나라의 ‘려왕’을 통해 탄생했다. 려왕이 나라를 폭압적으로 다스릴 때, 여러 제후가 반란을 일으켜 려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를 가리키면서 처음 사용됐다. 요는 ‘왕 없이 운영되는 정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서양의 혼합정을 뜻하는 republic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공화주의의 역사에 대해서는 ‘동양과 서양의 공화주의 역사’를 다룬 2편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편에서는 공화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유, 법치 그리고 공동선이다. 이 3가지를 갖추어야 공화주의가 추구하는 건강한 정치공동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우린 왜 건강한 공동체를 원할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공동체가 건강해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제 3가지 이념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비-지배의 자유  아일랜드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Noel Pettit)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으로 비지배(Non-Domination)의 자유를 주장한다.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누구도 ‘주인’이나 ‘노예’가 아닌 상태다. 즉, 공화주의적 자유는 타인의 의지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서로가 서로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기서 법이 등장한다. 법은 공동체 구성원간 지켜야 할 규칙이자 원칙인 동시에 서로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법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의지를 제한하는데, 국가의 개입이 공정하다는 전제하에 법의 제한은 구성원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인 ‘비-지배의 자유’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법치  법에 의한 다스림, 법치를 계속 이야기해보자. 법치는 타인의 자의적 지배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주인과 노예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법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단순히 법이 존재하는 것을 넘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돈과 권력으로 법을 유리한 대로 이용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기에 민주국일지언정 ‘공화’국으로 보기엔 어려울 듯하다. 앞서 말한, 비-지배의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말이 어렵다. 쉽게 생각해보자. 어떤 노예와 그 주인이 있다. 주인이 노예를 예뻐해 자그마치 10년 간의 특별 휴가를 허락했다. 노예는 자유로운가 아닌가?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노예는 여전히 예속(남의 지배나 지휘 아래 매임) 상태다. 노예가 간섭 없이 편하게 지내더라도 결국 노예는 주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과 행동이 제약된다. 하지만 법은 다르다. 판사가 죄인에게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지배가 아니다. 판사는 범죄자를 지배할 수 없다. 그저 법의 집행자일 뿐이다. 법치에 기반한 비-지배 자유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동선(common good)  마지막 세 번째는 공동선과 시민의 덕성(civic virtue)이다. 앞서 비지배의 자유와 법치를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현실과 이상은 많이 다르다는 걸 잘 안다. 법치만으론 완벽하지 않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동선이 요구된다. 공화주의의 법은 공동선을 향해야 한다. 공동선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법이 특정 계층, 특정 집단처럼 사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 그것이 바로 공동선이다. 공동선이 무엇인지 잘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공동선은 어떠 어떠하다며 정의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선은 우리 사회의 여러 계층, 분야, 집단이 함께 논의하고 의견을 조율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민의 덕성이 중요하다. 시민의 덕성 없이는 공동선을 달성할 수 없다. 시민의 덕성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 구성원의 시민적 덕성은 공동체 전체에게 이로운 방향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하여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사익을 밀어내고, 사회를 좀 먹는 부패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시민의 덕성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냐고? 한순간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는 무제한의 공포 상태,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가 열린다. 나오며  공화주의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민중(people)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를 억압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공화주의가 오용되어 과도하게 집단을 우선하게 될 경우,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 2023년은 검찰 독재라고 불릴 만큼 민주주의가 편의에 따라 오용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동선을 논의하며 공화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기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 글 작성 및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 사회에 대한 객관적 지식은 가능한가?
사회에 관한 객관적 지식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실'만을 다뤄야 하고 가치를 담고 있는 의견은 개인의 자유의지 영역에 둬야 한다며, '주관적인 가치로부터 분리된 객관적 사실의 추구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지식의 ‘경험적 사실이나 사실판단이 이론이나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점에 따라 사회와 관련해서는 객관성을 말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 더 나아가 사회과학에서는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하여 '옳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 사회에 대한 객관적 지식은 어떻게 가능할지 (사회)과학철학/방법론의 관점에서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는 의견이 아닌 사실에 대한 서술만이 팩트를 체크 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좁고 엄격하게 말하는 팩테체크의 관점보다는, 의견의 경우에는 의견에 전제 되어 있는 사실들의 '맥락'을 파악하여 '팩트'가 아닌 '트루스'를 종합적으로, 맥락적으로 체크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팩트체커들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글은 이기홍의 2015년 논문 [사회과학에서 가치와 객관성]의 논의를 요약 및 재정리하여 쓴 것으로, 2021년 12월 6일에 다른 곳에 업로드했던 글의 상당 부분을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 더불어 이 글의 모든 인용은 해당 논문에서의 인용입니다. I. 팩트지상주의의 근원, 가치자유과학과학과 가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적 사실(정확하게는 ‘경험’)과 주관적 믿음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경험론의 전통”(퍼트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견해는 '경험(적 사실)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진위를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의 기초이지만, 가치판단은 주관적이이기 때문에 편향이나 오류를 낳고 검증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견해에서 가치 주장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과학 지식의 객관성을 훼손하고 편향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주관일 뿐이니 팩트를 가져오라'는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일상에서의 상식적 표현은 이와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이러한 관점을 ‘가치자유과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의 추구는 실증주의의 중심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치자유과학은 연구문제를 선택하거나 연구결과를 활용할 때 가치가 개입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막스 베버는 물 자체(객체)는 알 수 없고, 인간은 인간의 인식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신칸트주의에 입각하여 “경험적 사실 확인과 실천적 가치판단의 분리”를 주장하며, 가치연관성은 경험적 연구 대상의 선택과 구성을 위한 학문적 관심에 대한 철학적 해석으로 위치시키고, 연구는 가치자유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관점을 정립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베버의 논의에 따라 사회과학은 사실만을 다루며 행위결과에 대한 조건적 예측을 정식화 하는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행위 목표는 정당화 할 수 없으며, 과학적 지식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베버에게서 가치판단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베버의 가치자유과학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가치의 이분법'을 함의하게 됩니다.(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 또한 경험적 사실이 이론과 가치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며, “이론들을 창조적으로 고안하는 ‘발견의 맥락'과 이론들의 진위를 검사하는 ‘정당화의 맥락'을 구분"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가설이나 이론을 평가하는 정당화의 과정은 엄격한 논리, 통제된 경험적 시험, 치밀한 검증/반증 등을 통하여 주관적 요소들의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과학지식의 진위를 확인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무엇일까요?II. 과학은 가치와 분리할 수 없다.가치자유과학, 주류사회과학, 팩트만이 맞다고 하는 주장들이 지식주장의 기초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험적 사실’일 것입니다. 경험적 사실은 ‘인간에 의해 경험 된 것에 대한 서술’입니다. 경험은 인간의 지각에 의해 인지된 것을 말하며, 경험적 사실은 인간에 의해 인지된 경험을 인간의 사유에 입각하여 서술한 것입니다. 이는 객관적 지식의 기초로서의 경험이라는 관념이 인간중심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1] “경험의 이론 적재성 명제” “해석되지 않은 경험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경험은 ‘이론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이론 의존적' 또는 ‘이론 적재적'”이다. “경험의 의미나 내용은 … 인식 주체가 지각 정보를 해석하여 구성하는 것이며, 따라서 해석에 동원하는 ‘주관적인' 가정이나 이론이나 가치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2] “이론의 경험적 미결정성 명제" “‘주관적인 이론'을 (덜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 시험한다고 하더라도 … 간단하게 이론을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가적인 가정들의 조절을 통해 대체로 방어할 수 있다. 즉 “경험이 이론의 진위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경험은, 그리고 경험에 의해 서술된 사실은 더더욱, 가치와 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확실성을 완전히 보증해주는 만능키로서의 특정한 과학적 방법 같은 것은 없으며, 과학자들은 과학에서의 이론의 정합성을 확인하기 위해 경험증거들과의 일치의 정확성, 내적 및 외적 일관성, 적용 범위의 광범성, 단순성 및 결실성 등의 평가 기준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이는 이 기준들이 “규칙이 아니라 가치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토마스 쿤)  뿐만 아니라 “이론 선택은 기본적으로 정교하고 복잡한 가치판단의 사안"이며 이는 과학적 방법의 선택 및 적용과 뗄 수 없도록 연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입각하여 주관적인 경험을 다룰 것입니다. 가치자유과학의 관점을 가진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믿을만한 지식을 여전히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과학은 가치로부터 분리할 수 없습니다. 자유, 평등, 공정, 정직, 개방, 비판 등의 사회적 가치 없이는 과학이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과학은 특히 세계의 객체들에 대한 인간의 통제와 유물론적 전략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내장하고 있으며, 그 가치는 경험 자료의 선택과 이론 구성의 길잡이”(lacey, 1999)라는 점에서, 과학과 가치는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지식에 대한 신뢰 자체가 가치관련적이라는 것입니다. III. 사회적 사실 또한 가치와 분리할 수 없다. 지식주장이 사회적인 것에 대해서 이루어진다면 자연과학에서보다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사회적인 것들은 의미와 의도를 내포하며 가치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사회연구에서 배제하기 어려운(배제해서도 안되는) 실업, 양극화, 불평등, 주류경제학의 ‘합리적 행위' 등과 같은 단어들은 단어 그 자체가 부정적인/긍정적인 가치평가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정의, 공정, 범죄 등 수많은 단어들이 개별적인 서술의 층위에서도 평가와 서술은 혼재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것에 대한 서술은 가치자유적/가치배제적일 수 없습니다. 즉 “사실과 가치의 복합"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념들을 가치 자유적 언어로 … 분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철학자의 환상일 뿐”입니다.(Gorski, 2013) 이러한 상황은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이 객관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가치자유과학은 중립적 어휘를 사용한다거나 외국어를 차용한다거나 기술적 신조어를 고안하는 등의 대응을 합니다. 그리고 가치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량화 전략’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여러 시도에 의한 겉보기에 가치중립적인 정보는 항상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는 판단과 평가가 요청됩니다. 가치는 주관적이라며 그토록 배제하고자 하는데, 정말 가치관련적이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아래는 나치 치하에 이루어진 일에 대한 서술입니다.  나라의 인구가 줄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어떤 서술이 가장 적합 할까요? 네 번째 서술이 가장 가치관련적이지만, 동시에 더 많은 진리를 제공하며, 가장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의 세 진술은 가치중립적으로 표현된 듯 하지만 잘못된 이해를 가져옵니다. 가치배제적 서술은 글의 의미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며 핵심을 회피하게 됩니다. 로이 바스카가 제시한 이 유명한 사례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적 분리가 불가능하며, 주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가치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사회적인 것의 접근에서 가치의 배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운 사실판단은 없다. 가치 배제의 시도는 또 다른 가치를 적재하는 것이다.”(이기홍, 2015)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사회과학적 설명은 다른 설명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과학 지식은 평가적, 규범적, 도덕적 판단을 포함하는 사실과 가치의 혼합물"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사회구조/사회제도/사회문화가 발생시키는 문제에 대한 연구는 그것에 대한 비판일 수밖에 없으며, 그 비판의 함의는 변형의 필요성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IV.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가치? 사실이 상대적일 수 있고, 가치가 객관적일 수 있다.사실은 인간의 인식 밖에 객관적으로 물 자체나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경험'을 통해 사유 속에 포착하여 개념적으로 구성할 때 ‘사실'이 됩니다. 사실은 인간의 인식 외부의 객체를 포착하여 재생산한 사회적 구성물인 것입니다. 사실은 이론에 의존하고 가치에 의해 구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경험적 사실이 가치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련'과 '구성', 그로 인한 '제약'이 '결정'의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은 인간의 주체적이도 능동적인 활동의 생산물이지만 그 객체와의 상호작용에서 획득하는 지각에 근거하고 지각의 안내를 받는다. 객체들은 그것들에 대한 주체의 지각을 매개로 경험적 인식의 방향과 내용과 경계를 한정한다.”(이기홍, 2015) 현실에서 사실과 가치는 완전히 분리하여 한 가지를 배제할 수 없지만, 이는 두 가지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가 사실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사실이 가치에 의해 일부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지식이 가치관련적이라는 것은 모든 지식이 똑같이 타당하다는 '판단적 상대주의'로만 이해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믿음은 같은 대상에 대한 조금씩 다른 인식들의 관계 형성 속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된다는 '인식적 상대주의'로 이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의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상대주의는 가치를 배제할 수 없는 인간의 인식/경험/이론에 기초한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사실이 가치관련적이어서 주관적이더라도, 인간의 인식 밖의 객체의 성질에 준거하고자 하는 사실적 서술들의 사회적 생산 속에서 가치는 객관성을 확보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가치판단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판단에 기초합니다. ‘x에 관해 무엇이 참인가?’와 ‘x에 관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는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질문이 아니며, 동등한 질문입니다. 참이지만 믿지 않는다거나 참이 아니지만 믿는 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 됩니다.(콜리어, 2010) 사실도 가치도 주관적 인식에 기초합니다. 사실과 가치는 둘 다 “외부세계와 인간의 상호작용 형태"이며, “경험적 증거에 대한 주관적 해석"입니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은 둘 다 정확하거나 그릇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과 가치는 객관과 주관의 상이한 영역에 속하는 범주가 아니라, 주관의 영역 안에서 상대적으로 잠정적으로 구별되는, 그리고 인간의 인식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경계가 변화하는 계기들일 뿐이다.” “사실과 가치의 문제는 우리가 특정한 대상이나 사태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문제"이다.(노양진, 2005) 가치자유과학의 사실-가치 이분법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이분법은 가치 논의를 자의적인 것, 권력과 독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가치 문제에 대한 합리적 토의를 봉쇄합니다. “토론의 방해자"이자 “사유의 방해자"로 기능하는 것입니다.(퍼트남, 2010) “과학은 가치를 배제(해야)한다는 이상 자체로 가치판단"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V.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이 객관적일 수 있는가?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라 사실과 가치가 분리 불가능하고, 가치도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면, 사회과학이 가치관련적이라는 사실이 사회과학의 객관성을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객관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1] 존재론적 객관성존재론적 객관성은 “객체가 인식 주체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근대 이후 철학자들은 존재론을 형이상학이라 배책하고 인식론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자연)과학은 인간의 인식 외부의 과학의 대상으로서의 객체를 상정하고 그것에 대해 탐구하지 않으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작업해오고 있습니다. 존재론적 객관성은 확실한 지식주장을 찾고자 하는 과학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관점에 대한 확인 자체가 과학적 지식 생산의 결과를 저절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2] 인식론적 객관성많은 사람들은 '객관성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서술과 동일한 것'이라는 관점의 인식론적 객관성을 추구해 왔습니다. 인식론적 객관성은 “주체의 인식이 그 대상 객체를 정확하게 모사하거나 재현함으로써 획득하는 속성"인 것입니다. 이는 “인식과 객체의 상응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존재론적 객관성을 잊고 인식론적 객관성에에만 매달리는 것입니다. 앞서 열심히 살펴본 인간의 경험이나 이론에 기초하여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인식론적 객관성의 확인은 주체의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서 객체의 자기 운동에 개입하는 실천-그 인식에 기초한-을 통해서만 가능"(관찰과 실험 같은!)합니다. 현실에서 인신론적 “객관성은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의 문제이기보다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는 주장들을 판단하는 기준에 도달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절차적 객관성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주체의 의도적 객관성일 뿐이며 결과에서 객관성을 보증할 수는 없습니다. 존재론적 객관성의 추구에 기초한 인식론적 객관성의 추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3] 상호주관성완전한 객관성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상호주관성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상호주관성 이외에는 객관성은 없다. 객관성은 지식과 객체의 상응의 문제가아니라 다른 주체들과의 의견 일치의 문제이다”(로티, 1998)“실질적으로 ‘인식의 객관성을 직접 확인하거나 확보할 수 없는 조건에서 상호주관성은 객관성의 이용가능한 최선의 대체물"(Leccy, 1999) 이와 같이 상호주관성을 '불가능한 객관성의 대체물'로 여기기도 하지만 ‘상호주관성’이 반드시 객관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은 객관성으로 나아가는 객관성의 단계적 접근으로서의 상호주관성을 생각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상호주관적이라는 것은 “인식의 절차와 결과를 다른 주체들의 비판적 심사에 개방하고 승인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과학의 진보는 절차적으로 객관적인 연구를 끊임없이 수행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결과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결과적 객관성은 이상으로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조금 더 나아져가는 부분적이고 상대적인 과정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개방과 비판은 과학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객관성은 정도의 문제"가 됩니다. “객관성은 상호주관적 비판의 포용뿐 아니라 그것의 절차와 결과 둘 모두가 비판들에 반응하는 정도에 있는 것"입니다. 과학의 객관성은 경험이나 사실, 이론 등 각 요소의 환원으로는 다다를 수 없지만 각 요소들의 복합적 접근을 통해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VI. 나가며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에서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둘 모두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와 '상호주관적이고 사회적인 토의'가 객관성의 확보에 핵심적인 것이 됩니다. 사회과학에서는 지식 주장에 대한 ‘결정적 시험'이 불가능하며, 지속적인 비판과 검증밖에는 지식 주장의 객관성을 확인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에서는 ‘상호주관성'의 범위를 과학공동체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는 더 광범한 사회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과학의 민주주의이기도 할 것입니다.팩트지상주의도 문제이지만, 팩트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이론적재성에 대한 적절한 인식이, 혹시나 모든 지식주장이 정파적일 수밖에 없다거나, 객관적 지식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으로 과하게 나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경험적 인식을 통해 구성된 사실이 가치/이론관련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인식하고자 한 그것은 인간으부터 독립된 과학/지식의 대상입니다. 옳고 그름은 그 대상의 성질로부터 규정되는 것이지 인간의 경험이 맘대로 결정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론/가치에 영향 속에서 과학적 절차/방법에 따라 더 나은 지식주장을 업그레이드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과학자 공동체/언론/전문가/시민참여 등과 관련한 개방과 비판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은 전문가주의/엘리트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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