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 사회에 대한 객관적 지식은 가능한가?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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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민 활동의 확산으로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갑니다.

사회에 관한 객관적 지식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실'만을 다뤄야 하고 가치를 담고 있는 의견은 개인의 자유의지 영역에 둬야 한다며, '주관적인 가치로부터 분리된 객관적 사실의 추구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지식의 ‘경험적 사실이나 사실판단이 이론이나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점에 따라 사회와 관련해서는 객관성을 말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 더 나아가 사회과학에서는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하여 '옳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 사회에 대한 객관적 지식은 어떻게 가능할지 (사회)과학철학/방법론의 관점에서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는 의견이 아닌 사실에 대한 서술만이 팩트를 체크 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좁고 엄격하게 말하는 팩테체크의 관점보다는, 의견의 경우에는 의견에 전제 되어 있는 사실들의 '맥락'을 파악하여 '팩트'가 아닌 '트루스'를 종합적으로, 맥락적으로 체크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팩트체커들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회과학은 사회적 사실들을 밝혀야 한다고들 한다.




I. 팩트지상주의의 근원, 가치자유과학


과학과 가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적 사실(정확하게는 ‘경험’)과 주관적 믿음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경험론의 전통”(퍼트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견해는 '경험(적 사실)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진위를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의 기초이지만, 가치판단은 주관적이이기 때문에 편향이나 오류를 낳고 검증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견해에서 가치 주장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과학 지식의 객관성을 훼손하고 편향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주관일 뿐이니 팩트를 가져오라'는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일상에서의 상식적 표현은 이와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치자유과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의 추구는 실증주의의 중심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치자유과학은 연구문제를 선택하거나 연구결과를 활용할 때 가치가 개입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막스 베버는 물 자체(객체)는 알 수 없고, 인간은 인간의 인식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신칸트주의에 입각하여 “경험적 사실 확인과 실천적 가치판단의 분리”를 주장하며, 가치연관성은 경험적 연구 대상의 선택과 구성을 위한 학문적 관심에 대한 철학적 해석으로 위치시키고, 연구는 가치자유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관점을 정립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베버의 논의에 따라 사회과학은 사실만을 다루며 행위결과에 대한 조건적 예측을 정식화 하는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행위 목표는 정당화 할 수 없으며, 과학적 지식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베버에게서 가치판단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베버의 가치자유과학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가치의 이분법'을 함의하게 됩니다.


(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 또한 경험적 사실이 이론과 가치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며, “이론들을 창조적으로 고안하는 ‘발견의 맥락'과 이론들의 진위를 검사하는 ‘정당화의 맥락'을 구분"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가설이나 이론을 평가하는 정당화의 과정은 엄격한 논리, 통제된 경험적 시험, 치밀한 검증/반증 등을 통하여 주관적 요소들의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과학지식의 진위를 확인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II. 과학은 가치와 분리할 수 없다.


가치자유과학, 주류사회과학, 팩트만이 맞다고 하는 주장들이 지식주장의 기초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험적 사실’일 것입니다. 경험적 사실은 ‘인간에 의해 경험 된 것에 대한 서술’입니다. 경험은 인간의 지각에 의해 인지된 것을 말하며, 경험적 사실은 인간에 의해 인지된 경험을 인간의 사유에 입각하여 서술한 것입니다. 이는 객관적 지식의 기초로서의 경험이라는 관념이 인간중심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1] “경험의 이론 적재성 명제”

  • “해석되지 않은 경험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경험은 ‘이론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이론 의존적' 또는 ‘이론 적재적'”이다.
  • “경험의 의미나 내용은 … 인식 주체가 지각 정보를 해석하여 구성하는 것이며, 따라서 해석에 동원하는 ‘주관적인' 가정이나 이론이나 가치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2] “이론의 경험적 미결정성 명제"

  • “‘주관적인 이론'을 (덜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 시험한다고 하더라도 … 간단하게 이론을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가적인 가정들의 조절을 통해 대체로 방어할 수 있다.
  • 즉 “경험이 이론의 진위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경험은, 그리고 경험에 의해 서술된 사실은 더더욱, 가치와 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확실성을 완전히 보증해주는 만능키로서의 특정한 과학적 방법 같은 것은 없으며, 과학자들은 과학에서의 이론의 정합성을 확인하기 위해 경험증거들과의 일치의 정확성, 내적 및 외적 일관성, 적용 범위의 광범성, 단순성 및 결실성 등의 평가 기준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이는 이 기준들이 “규칙이 아니라 가치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토마스 쿤)  뿐만 아니라 “이론 선택은 기본적으로 정교하고 복잡한 가치판단의 사안"이며 이는 과학적 방법의 선택 및 적용과 뗄 수 없도록 연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입각하여 주관적인 경험을 다룰 것입니다. 가치자유과학의 관점을 가진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믿을만한 지식을 여전히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과학은 가치로부터 분리할 수 없습니다. 


자유, 평등, 공정, 정직, 개방, 비판 등의 사회적 가치 없이는 과학이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과학은 특히 세계의 객체들에 대한 인간의 통제와 유물론적 전략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내장하고 있으며, 그 가치는 경험 자료의 선택과 이론 구성의 길잡이”(lacey, 1999)라는 점에서, 과학과 가치는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지식에 대한 신뢰 자체가 가치관련적이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가? 가치를 통해 알 수 있는가? 아니면 사실과 가치의 복합을 통해 알 수 있는가? 혹은 알 수 없는가?




III. 사회적 사실 또한 가치와 분리할 수 없다. 


지식주장이 사회적인 것에 대해서 이루어진다면 자연과학에서보다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사회적인 것들은 의미와 의도를 내포하며 가치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사회연구에서 배제하기 어려운(배제해서도 안되는) 실업, 양극화, 불평등, 주류경제학의 ‘합리적 행위' 등과 같은 단어들은 단어 그 자체가 부정적인/긍정적인 가치평가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정의, 공정, 범죄 등 수많은 단어들이 개별적인 서술의 층위에서도 평가와 서술은 혼재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것에 대한 서술은 가치자유적/가치배제적일 수 없습니다. 즉 “사실과 가치의 복합"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념들을 가치 자유적 언어로 … 분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철학자의 환상일 뿐”입니다.(Gorski, 2013) 이러한 상황은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이 객관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가치자유과학은 중립적 어휘를 사용한다거나 외국어를 차용한다거나 기술적 신조어를 고안하는 등의 대응을 합니다. 그리고 가치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량화 전략’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여러 시도에 의한 겉보기에 가치중립적인 정보는 항상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는 판단과 평가가 요청됩니다. 가치는 주관적이라며 그토록 배제하고자 하는데, 정말 가치관련적이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아래는 나치 치하에 이루어진 일에 대한 서술입니다. 

  • 나라의 인구가 줄었다
  •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다
  •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 수백만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어떤 서술이 가장 적합 할까요? 네 번째 서술이 가장 가치관련적이지만, 동시에 더 많은 진리를 제공하며, 가장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의 세 진술은 가치중립적으로 표현된 듯 하지만 잘못된 이해를 가져옵니다. 가치배제적 서술은 글의 의미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며 핵심을 회피하게 됩니다. 로이 바스카가 제시한 이 유명한 사례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적 분리가 불가능하며, 주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가치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사회적인 것의 접근에서 가치의 배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운 사실판단은 없다. 가치 배제의 시도는 또 다른 가치를 적재하는 것이다.”(이기홍, 2015)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사회과학적 설명은 다른 설명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과학 지식은 평가적, 규범적, 도덕적 판단을 포함하는 사실과 가치의 혼합물"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사회구조/사회제도/사회문화가 발생시키는 문제에 대한 연구는 그것에 대한 비판일 수밖에 없으며, 그 비판의 함의는 변형의 필요성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IV.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가치? 사실이 상대적일 수 있고, 가치가 객관적일 수 있다.


사실은 인간의 인식 밖에 객관적으로 물 자체나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경험'을 통해 사유 속에 포착하여 개념적으로 구성할 때 ‘사실'이 됩니다. 사실은 인간의 인식 외부의 객체를 포착하여 재생산한 사회적 구성물인 것입니다. 사실은 이론에 의존하고 가치에 의해 구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경험적 사실이 가치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련'과 '구성', 그로 인한 '제약'이 '결정'의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은 인간의 주체적이도 능동적인 활동의 생산물이지만 그 객체와의 상호작용에서 획득하는 지각에 근거하고 지각의 안내를 받는다. 객체들은 그것들에 대한 주체의 지각을 매개로 경험적 인식의 방향과 내용과 경계를 한정한다.”(이기홍, 2015)

현실에서 사실과 가치는 완전히 분리하여 한 가지를 배제할 수 없지만, 이는 두 가지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가 사실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사실이 가치에 의해 일부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지식이 가치관련적이라는 것은 모든 지식이 똑같이 타당하다는 '판단적 상대주의'로만 이해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믿음은 같은 대상에 대한 조금씩 다른 인식들의 관계 형성 속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된다는 '인식적 상대주의'로 이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의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상대주의는 가치를 배제할 수 없는 인간의 인식/경험/이론에 기초한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사실이 가치관련적이어서 주관적이더라도, 인간의 인식 밖의 객체의 성질에 준거하고자 하는 사실적 서술들의 사회적 생산 속에서 가치는 객관성을 확보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치판단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판단에 기초합니다. ‘x에 관해 무엇이 참인가?’와 ‘x에 관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는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질문이 아니며, 동등한 질문입니다. 참이지만 믿지 않는다거나 참이 아니지만 믿는 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 됩니다.(콜리어, 2010) 사실도 가치도 주관적 인식에 기초합니다. 사실과 가치는 둘 다 “외부세계와 인간의 상호작용 형태"이며, “경험적 증거에 대한 주관적 해석"입니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은 둘 다 정확하거나 그릇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과 가치는 객관과 주관의 상이한 영역에 속하는 범주가 아니라, 주관의 영역 안에서 상대적으로 잠정적으로 구별되는, 그리고 인간의 인식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경계가 변화하는 계기들일 뿐이다.” 
“사실과 가치의 문제는 우리가 특정한 대상이나 사태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문제"이다.(노양진, 2005)

가치자유과학의 사실-가치 이분법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이분법은 가치 논의를 자의적인 것, 권력과 독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가치 문제에 대한 합리적 토의를 봉쇄합니다. “토론의 방해자"이자 “사유의 방해자"로 기능하는 것입니다.(퍼트남, 2010) “과학은 가치를 배제(해야)한다는 이상 자체로 가치판단"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객관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V.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이 객관적일 수 있는가?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라 사실과 가치가 분리 불가능하고, 가치도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면, 사회과학이 가치관련적이라는 사실이 사회과학의 객관성을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객관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1] 존재론적 객관성
존재론적 객관성은 “객체가 인식 주체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근대 이후 철학자들은 존재론을 형이상학이라 배책하고 인식론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자연)과학은 인간의 인식 외부의 과학의 대상으로서의 객체를 상정하고 그것에 대해 탐구하지 않으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작업해오고 있습니다. 존재론적 객관성은 확실한 지식주장을 찾고자 하는 과학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관점에 대한 확인 자체가 과학적 지식 생산의 결과를 저절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2] 인식론적 객관성
많은 사람들은 '객관성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서술과 동일한 것'이라는 관점의 인식론적 객관성을 추구해 왔습니다. 인식론적 객관성은 “주체의 인식이 그 대상 객체를 정확하게 모사하거나 재현함으로써 획득하는 속성"인 것입니다. 이는 “인식과 객체의 상응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존재론적 객관성을 잊고 인식론적 객관성에에만 매달리는 것입니다. 앞서 열심히 살펴본 인간의 경험이나 이론에 기초하여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인식론적 객관성의 확인은 주체의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서 객체의 자기 운동에 개입하는 실천-그 인식에 기초한-을 통해서만 가능"(관찰과 실험 같은!)합니다. 현실에서 인신론적 “객관성은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의 문제이기보다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는 주장들을 판단하는 기준에 도달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절차적 객관성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주체의 의도적 객관성일 뿐이며 결과에서 객관성을 보증할 수는 없습니다. 존재론적 객관성의 추구에 기초한 인식론적 객관성의 추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3] 상호주관성
완전한 객관성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상호주관성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상호주관성 이외에는 객관성은 없다. 객관성은 지식과 객체의 상응의 문제가아니라 다른 주체들과의 의견 일치의 문제이다”(로티, 1998)
“실질적으로 ‘인식의 객관성을 직접 확인하거나 확보할 수 없는 조건에서 상호주관성은 객관성의 이용가능한 최선의 대체물"(Leccy, 1999)

이와 같이 상호주관성을 '불가능한 객관성의 대체물'로 여기기도 하지만 ‘상호주관성’이 반드시 객관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은 객관성으로 나아가는 객관성의 단계적 접근으로서의 상호주관성을 생각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상호주관적이라는 것은 “인식의 절차와 결과를 다른 주체들의 비판적 심사에 개방하고 승인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과학의 진보는 절차적으로 객관적인 연구를 끊임없이 수행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결과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결과적 객관성은 이상으로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조금 더 나아져가는 부분적이고 상대적인 과정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개방과 비판은 과학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객관성은 정도의 문제"가 됩니다. “객관성은 상호주관적 비판의 포용뿐 아니라 그것의 절차와 결과 둘 모두가 비판들에 반응하는 정도에 있는 것"입니다. 과학의 객관성은 경험이나 사실, 이론 등 각 요소의 환원으로는 다다를 수 없지만 각 요소들의 복합적 접근을 통해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VI. 나가며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에서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둘 모두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와 '상호주관적이고 사회적인 토의'가 객관성의 확보에 핵심적인 것이 됩니다. 사회과학에서는 지식 주장에 대한 ‘결정적 시험'이 불가능하며, 지속적인 비판과 검증밖에는 지식 주장의 객관성을 확인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에서는 ‘상호주관성'의 범위를 과학공동체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는 더 광범한 사회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과학의 민주주의이기도 할 것입니다.


팩트지상주의도 문제이지만, 팩트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이론적재성에 대한 적절한 인식이, 혹시나 모든 지식주장이 정파적일 수밖에 없다거나, 객관적 지식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으로 과하게 나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경험적 인식을 통해 구성된 사실이 가치/이론관련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인식하고자 한 그것은 인간으부터 독립된 과학/지식의 대상입니다. 옳고 그름은 그 대상의 성질로부터 규정되는 것이지 인간의 경험이 맘대로 결정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론/가치에 영향 속에서 과학적 절차/방법에 따라 더 나은 지식주장을 업그레이드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과학자 공동체/언론/전문가/시민참여 등과 관련한 개방과 비판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은 전문가주의/엘리트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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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도 유사한 논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한 구절을 공유합니다! "<과학>과 <정치>의 결정적인 구별을 볼 희망은—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에도—전혀 없다." 브뤼노 라투르, "존재양식의 탐구", 31.
토론에서는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고, 서로 다른 시각과 의견을 존중하며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가치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하여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