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정치를 꿈꾸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민주보다 공화에 대해 다루는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
공화주의(republicanism)란?
‘공화’란 무엇일까? ‘공화’라는 말 자체는 아주 오래전 중국 대륙에 있던 주나라의 ‘려왕’을 통해 탄생했다. 려왕이 나라를 폭압적으로 다스릴 때, 여러 제후가 반란을 일으켜 려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를 가리키면서 처음 사용됐다. 요는 ‘왕 없이 운영되는 정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서양의 혼합정을 뜻하는 republic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공화주의의 역사에 대해서는 ‘동양과 서양의 공화주의 역사’를 다룬 2편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편에서는 공화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유, 법치 그리고 공동선이다. 이 3가지를 갖추어야 공화주의가 추구하는 건강한 정치공동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우린 왜 건강한 공동체를 원할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공동체가 건강해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제 3가지 이념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비-지배의 자유
아일랜드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Noel Pettit)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으로 비지배(Non-Domination)의 자유를 주장한다.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누구도 ‘주인’이나 ‘노예’가 아닌 상태다. 즉, 공화주의적 자유는 타인의 의지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서로가 서로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기서 법이 등장한다. 법은 공동체 구성원간 지켜야 할 규칙이자 원칙인 동시에 서로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법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의지를 제한하는데, 국가의 개입이 공정하다는 전제하에 법의 제한은 구성원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인 ‘비-지배의 자유’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법치
법에 의한 다스림, 법치를 계속 이야기해보자. 법치는 타인의 자의적 지배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주인과 노예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법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단순히 법이 존재하는 것을 넘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돈과 권력으로 법을 유리한 대로 이용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기에 민주국일지언정 ‘공화’국으로 보기엔 어려울 듯하다.
앞서 말한, 비-지배의 자유는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말이 어렵다. 쉽게 생각해보자. 어떤 노예와 그 주인이 있다. 주인이 노예를 예뻐해 자그마치 10년 간의 특별 휴가를 허락했다. 노예는 자유로운가 아닌가?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노예는 여전히 예속(남의 지배나 지휘 아래 매임) 상태다. 노예가 간섭 없이 편하게 지내더라도 결국 노예는 주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과 행동이 제약된다.
하지만 법은 다르다. 판사가 죄인에게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지배가 아니다. 판사는 범죄자를 지배할 수 없다. 그저 법의 집행자일 뿐이다. 법치에 기반한 비-지배 자유가 이루어진 것이다.
공동선(common good)
마지막 세 번째는 공동선과 시민의 덕성(civic virtue)이다. 앞서 비지배의 자유와 법치를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현실과 이상은 많이 다르다는 걸 잘 안다. 법치만으론 완벽하지 않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동선이 요구된다. 공화주의의 법은 공동선을 향해야 한다. 공동선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법이 특정 계층, 특정 집단처럼 사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 그것이 바로 공동선이다.
공동선이 무엇인지 잘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공동선은 어떠 어떠하다며 정의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선은 우리 사회의 여러 계층, 분야, 집단이 함께 논의하고 의견을 조율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민의 덕성이 중요하다. 시민의 덕성 없이는 공동선을 달성할 수 없다.
시민의 덕성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 구성원의 시민적 덕성은 공동체 전체에게 이로운 방향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하여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사익을 밀어내고, 사회를 좀 먹는 부패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시민의 덕성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냐고? 한순간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는 무제한의 공포 상태,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가 열린다.
나오며
공화주의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민중(people)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를 억압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공화주의가 오용되어 과도하게 집단을 우선하게 될 경우,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 2023년은 검찰 독재라고 불릴 만큼 민주주의가 편의에 따라 오용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동선을 논의하며 공화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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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 및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
성찰과성장.com
코멘트
5이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부분 '각자도생'이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할 답이라 생각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이니 말씀대로 더 '공공선'에 대해 고민하고 말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