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회복을 빌미로 만들어진 학생생활지도고시, 교권을 살려줄까?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조영선 (서울 가재울고 교사)
2023년은 실로 교권의 해였다. 더 이상 이렇게는 어렵다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전국을 뒤흔들었고, 대규모의 교사들이 참여하는 공교육 멈춤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9월4일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교사들을 지원해달라는 외침에 대한 학교현장에 도착한 유일한 응답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할 수 있는 생활지도 고시였다. 교권4법이 개정되었다고 하지만, 이 개정 법률의 근거 역시 ‘교사의 정당한 교육행위’ 인 경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기에 그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생활지도 고시가 가장 구체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실제 생활지도 고시는 2023년 7월 당정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9월에 학교에 도착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의 지도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요구 때문에 고시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실로 광범위하게 생활지도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신체의 자유와 사생활침해 보호 조항인 용의복장, 휴대폰에 대한 압수 행위 등을 명시함으로써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벌이고 있다. 실제 학생에 대한 전방위적인 행동 분야에 대해 교사의 지도 범위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도를 제대로 하려면 학생하나하나를 이해하는 매우 구체적이고 교육적인 접근이 제시되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범위를 커버하면서도 교사가 쓰는 방법은 단 4가지이다. 조언, 상담, 주의, 훈육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도 각 단계마다 어떤 경위로 이런 지도를 했는지 문서로 작성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던가? 조언하고, 문서쓰고, 상담하고 문서쓰고, 주의하고 문서쓰고, 훈육하고 문서쓰는 것이 교사의 지도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생활지도라고 부르는 것은 학생의 행위가 이 상황에 미치는 평가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미끄러져버리면 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조언, 주의, 상담은 모두 언어폭력이나 정서적 학대가 될 수 있다. 단계마다 문서를 쓴다고 정당화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한 교육부는 문서를 쓸 것을 단서로 단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형식적인 문서를 쓰도록 한 것 자체가 교사의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교사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왜곡된 메시지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한 것은 아동학대나 학생인권침해이니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분명해져야 오히려교사들이 ‘정당성’ 다툼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 학생을 추방해서 다른 학생을 보호할 수 있을까?
가장 문제가 큰 단계는 훈육이다. 이제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면 물리적 제지를 당하거나 교실에서 격리될 수 있다. 전제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범위내에서 하라고 되어있지만, 구체적인 학생인권의 법적인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이 역시 교사와 학생을 난감하게 만든다. 어떤 교사는 수업시간에 자는 행위를 수업에서 분리할 만큼 중대한 방해행위라고 생각할 것이며 (실제 sns에 고의적 수면이라는 말이 떠돈적도 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태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을 견디는 상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한 장소에서 격리시킨다는 것은 장소적 배제 뿐 아니라 관계적 배제도 의미한다. 학생들은 쫓겨난 학생을 내쫓긴 학생으로 인식할 것이기에 낙인과 차별의 표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것을 결정하는 권한은 오직 교사가 갖고 있다. 이것은 여러명의 학생들을 대하며 모든 상황을 세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사에게 오히려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학생을 격리하는 기준이 다 다른 상황에서 어떤 격리행위는 심각한 아동학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은 수업 방해 행위자이기 이전에 학습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업방해 행위를 했다고 해서 배제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학습 당사자로서의 학습권을 빼앗는 일이다. 만약 교사가 수업 방해 행위를 한 학생에게 징계 조치를 가해서 그 학생이 학습을 방해받았다는 것이 확인되면, 학교는 이에 대한 보충 수업을 해야 하고, 이 역시 다시 교사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수업 방해로 학생들을 징계하는 조치 역시 교사가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의 기준 역시 모호하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것과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교사의 수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을까? 따라가기 어려운 수업 듣기를 포기하고 그 시간을 견디는 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와 과목 선택형 수능으로, 고등학생 자신이 학교에서 선택한 과목과 수능에서 골라 치를 과목이 서로 다른 경우도 많다. 더욱이 사실상 공동 교육과정이 1학년에서 끝남에 따라 1학년 때 기초 과정에서 배워야 할 양은 늘었다. 그런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사이의 학습 난이도 격차가 큰데다, 고1 내신 성적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른 고1 내신 시험의 난이도와 중3 내신 시험의 난이도 간 격차도 엄청나다. 이런 사이에 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학생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좌절하게 되고, 1학년 때부터 자퇴를 선택하는 학생이 학교마다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다. 공부를 계속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학생들은 더 많은 학원에 가고,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너희는 휴식권이 없다는 고시가 생겼으니 잠을 자면 일어나라고 하고, 불응시 ‘타임아웃’한다고 하여 교사의 권위가 올라가고 수업 분위기가 좋아질까? 자신은 ‘정시러’라 내신이 필요 없으니 스스로 ‘타임아웃’하여 자습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답할까?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타임아웃’이 뭔가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쫓겨나는 일이 무서워서 자신이 행동을 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임아웃 당할 행동의 기준은 누가 결정하는가? 타임아웃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해서 어떤 방식의 타임아웃이라도 학생과 학부모가 수용할 수 있을까? 만약 타임아웃이 되어 흥분했던 학생이 진정할 수있고, 본 교실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고 교실에서 배우는 것에 배제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런 과정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강제적으로 할당된 교육이나 체험은 당사자에게 교실에서 쫓겨났다는 낙인감과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박탈감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 이번에 사회적으로 불거진 발달 장애 아동에 대한 대책으로 특수학급 교사들은 일반 학급에서 문제 발생 시 특수학급이 아닌 별도의 공간과 인력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수 교육 대상자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 일반 학급에서 쫓겨나 머물러야만 하는 공간으로 이해될 경우 특수학급은 격리 시설이자 낙인의 공간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이 위험한 시도를 하고 감정적으로 흥분된 상황이어서 물리적 폭력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교사에게 부여되는 권한의 형태일 때 분리부터 회복까지 모두 교사에 대한 원망과 책임으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 지금의 ‘타임아웃’은 개인을 분리해내는 데 집중하기에, 당사자의 심리적 지원과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수학급 교사를 포함하여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이러한 학생들의 회복을 지원할 수 있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관리자와 상담사와 복지사 또는 특수행동치료사 등 다양한 권한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 상주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위험 상황을 진정되면 어떤 분노가 그러한 폭력적인 시도로 이어졌는지 사례관리위원회를 통해 확인하고 교실 안에서 이것을 도울 수 있는 논의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해당 학생에게도 ‘너를 교실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너를 이 교실에서 도와줄 거야’라는 메시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될 때 학생과 학부모도 적극적으로 이러한 과정에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시에서는 이런 접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셋째, 휴대폰은 압수하고, 태블릿은 나눠주고?
생활지도 고시의 큰 제목 4장은 휴대폰이다. 다 생활지도의 범위 내용 등 추상성이 큰 제목인데 그와 더불어 4장이 아주 구체적인 휴대폰이다. 고시에서는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할 경우 물리적 제지와 압수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휴대폰 사용을 보장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일상적인 휴대전화 사용과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에 대해 수 차례 수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고시가 수업 중 휴대폰 사용 금지이고 이를 어겼을 경우 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라는 것은 교육부도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넘어선 결정을 할 수 없다는 분명한 경계를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의 이번 고시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존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인권이 교사의 업무상 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을 교육부가 확인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가 교육부의 고시를 검사와 압수가 가능하다고 해석하여 갑자기 전화 수거를 시도했을 때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수거에 불응할 경우 학생들의 몸을 수색하여 휴대전화를 빼앗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학교에서의 교사의 교권을 강화할까?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은 다른 한편에서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의 디지털화, AI 교육과정 개발’등과도 배치된다. 교육 복지 차원에서 디지털 기기를 교육청에서 직접 배부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도구를 압수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역량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실제 학생들은 휴대전화라는 하나의 전자 기기만 가지고 오지 않는다. 그 중에 어느 것을 걷고 어느 것은 허용할 것인가? 스마트기기는 디지털 학습 친구라고 하면서 스마트 기기를 걷는 코미디를 연출하는 것이 교권보호 방안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과 관계, 학습, 여가, 배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기기이다. 실제 국가 인권위원회에서도 휴대폰의 수거가 단순히 통신의 자유만이 아니라 일상생활행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였다. 즉 현실적으로 휴대폰이 한 사람의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휴대폰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어야한다. 휴대폰이라는 도구는 유일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범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된 휴대폰을 자신과 타인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으려면 학생들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살피고 성찰할 기회가 주어져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교사가 휴대폰을 압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학생의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의 교권을 주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생활지도 고시는 교사에게 권한을 주는 듯하며 결국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교사들에게 학생들을 통제하고 인권을 침해해도 되는 것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교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이렇듯 교사를 위한다는 생활지도 고시는 학생인권으로 존중되어왔던 영역을 모호하게 하며 교사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실제 당정은 2023년 12월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시작으로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등 교권의 이름으로 학생인권을 무력하려 하고 있다. 오히려 교사를 위하여 지금까지 명시되지 못한 학생인권의 내용을 학칙에 명시하고, 이것이 침해되었을 때 공식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학교내에 만드는 것이 어떨까?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교사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학교의 문제를 받아내는 과녁이 되었던 교사들을 그 과녁에서 구해내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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