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이 대안 미디어가 될 수 있을까?
이상한 질문이다. 종이신문은 ‘레거시 미디어’(과거에 널리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신기술에 밀린 매체)를 상징하는 매체다. 이젠 구시대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매체라는 거다. 종이신문의 대안이었던 매체들도 레거시 미디어가 되려는 마당에 종이신문이라니!
우선, 종이신문의 ‘현실’부터 알아보자.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표한 <2022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2022년의 종이신문 구독률은 4.6%였다. 텔레비전 뉴스 이용률은 76.8%, 인터넷 포털은 75.1%였다.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종이신문의 미디어 영향력은 작다. 종이신문 산업 자체도 쪼그라들고 있다. 동 기관의 <2022 신문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2021년 종이신문 사업체 수는 2020년 대비 11.5%나 줄어들었다. 매출액 면에서도 심각한 저성장이다. 2021년 매출액은 2012년 대비 3.7% 올랐는데, 같은 기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10.7%P 증가했다. 종이신문의 산업적 영향력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이미 한물갔는데다 다시 성장할 잠재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종이신문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이신문이 미디어 산업의 대안이 될 수는 없어도, 개인의 정보 수용 방식의 대안이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에게 정보 이용 방식의 대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뉴스를 공급하는 저널리즘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뉴스 소비문화에도 큰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는 것이 굉장히 피로하고 비생산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뉴스 보는 게 해가 되는 세상
우선 정보가 너무 많이, 또 빨리 쏟아진다는 것이 문제다. 1986년에 한 명의 사람에게 하루 동안 주어지던 정보량은 85쪽짜리 신문 40개가 지닌 정보량에 맞먹었다. 2007년에는 174개 수준으로 증가했다.[1] 같은 해에 첫 번째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했고, 페이스북도 일반인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오늘날 개인에게 주어지는 정보량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정보의 전반적인 질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늘어난 정보량의 대부분은 SNS, 동영상 플랫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차지한다. 이들 출처의 특징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익명 플랫폼들에서 쏟아지는 허위조작정보들은 거짓의 확산을 넘어 진실의 위기까지 일으키고 있다. 꼭 거짓이 아니어도 무의미하거나 혐오를 담고 있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정보들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정보의 양은 늘어났으나 질은 떨어진 상황에서 개개인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온라인 미디어 환경은 현명한 정보 처리를 어렵게 한다. 앞서 말한 익명 플랫폼들은 차치하고, 뉴스 플랫폼으로만 한정해서 보아도 정보 환경은 위태하다. 플랫폼은 잠재적 독자의 클릭을 끌어낼 만한 뉴스를 제공하도록 피드 알고리즘을 구성한다. 피드 알고리즘이 작동함에 따라 자극적인 가십거리나, 화제성이 매우 높은 소수의 이슈가 독자에게 주로 제공된다. 독자는 일부 자극적인 이슈에 대해 불필요할 만큼 자세히 알게 되고, 화제성은 적지만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입장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수용하는 확증 편향 문제나,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정 편향 문제도 심각하다. 편향은 실시간이나 다름없는 디지털 미디어의 속도와 결합하며 더욱 큰 악효과를 낳는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이며 부정적인 일부 뉴스만을 끊임없이 전달받는다. 결과는 왜곡되고 비관적인 세계관에 갇힌 개인들이다.
지금 우리가 종이신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정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희망보다 절망이 가득해 보이는 상황이다. 대안이 없을까? 필자의 제안은 종이신문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종이신문에 실린 기사들은 일단 언론사에 의해 한번 선정된 기사들이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특정할 수 있는 전문 기자들에 의해 작성된, 비교적 질이 높은 정보들이다. 뉴스레터 등의 뉴스 다이제스트 서비스들이 이미 존재하긴 하지만, 분량과 깊이 면에서는 종이신문이 앞선다. 정보량의 한정(유의미한 정보의 선택)과 질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종이신문은 확실한 강점을 지닌다. 자극성이나 편향 등의 문제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종이신문에는 정치, 사회, 지역,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기사들이 고루 배치된다.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있으면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도 있고, 평소엔 전혀 관심 없는 주장이나 분야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속도가 비교적 느리다는 것도 장점이다. 재난·안전 관련 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속보는 사실 천천히 알게 되어도 큰 상관이 없다. 하루에 한 번 배송되는 종이신문 특성상 남들보다 하루 정도 늦게 기사를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개별 이슈를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끝없는 알림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덤이다.
정보 수용 상의 장점 말고도 종이신문은 적지 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종이신문에는 진지한 기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사나 일상을 다룬 만화를 보며 낄낄거릴 수도 있고, 여행지나 문화행사를 추천한 기사를 읽어보며 여가를 계획하는 데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가 구독한 신문에서는 작가별 초단편 소설을 기획하여 싣기도 했다. 신문이 ‘인쇄물’이라는 것도 은근한 장점이다. 눈도 비교적 편안하고, 종이의 질감이나 신문을 넘기는 손맛을 느껴보는 재미도 있다. 스크린타임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장점으로 여기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신문 외적으로도 효과를 봤는데, 매일 아침 신문을 가져와 하루를 준비하면서 읽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아침 루틴으로 작용하면서 삶에 안정감을 줬다.
중요한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종이신문을 마치 예찬하는 듯이 글이 흘러가긴 했으나, 당연히 종이신문에도 한계는 있다. 원칙적으로 저널리즘 자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종이신문을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속은 그대로인데 껍데기만 바꾼다고 괜찮아질 리 없다. 개인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언론계를 향해 자성과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지속되어야 한다. 종이신문이라는 형식 자체의 단점도 언급해야만 한다. 앞서 종이신문이 편향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절대적 중립이나 객관성은 사실 존재할 수 없고, 각각의 신문사는 판이한 입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신문사의 선택에서부터 편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보의 전달이 일방향적이고, 오보의 수정이 어려우며, 시공간적 제약이 뚜렷하다. 사실은 바로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종이신문이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종이신문은 다른 모든 미디어가 그러하듯이 뚜렷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는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선택의 가능성이 곧 변화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종이신문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는 ‘알 수 없다’이고 정론적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이미 종이신문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대안이다. 거시적인 구조가 아무리 나빠진다 해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 Hilbert, M., & López, P. (2011). The World’s Technological Capacity to Store, Communicate, and Compute Information. Science, 332(6025), 60–65.
코멘트
7저는 종이신문을 더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판매하는곳을 정말 찾기 힘든 거 같아요.. 한번 인쇄된 활자는 수정할 수 없다는 점과 콘텐츠의 중요도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서 우선순위 판단이 쉽다는 게 좋아요!
그러고 보니 정말 종이 신문은 지면을 고심해서 채우고 배치한 '아트'를 가지고 있었군요. 1면에 뭐가 있는지가 관심사였는데, 이제는 신문사 '메인 화면'에 뭐가 있는지만 신경썼던 것 같네요. 1면과 메인화면은 또 다른 것 같아요. 요즘의 디지털로 보는 신문과는 참 다른 경험을 줬던 것 같네요. 등굣길에 신문을 들고다니며 버스에서 요리조리 접어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