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가습기 살균제 피해 29년, 아직도 탄원서를 씁니다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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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6411의 목소리] 가습기 살균제 피해 29년, 아직도 탄원서를 씁니다 (2024.01.08)

허정자 │ 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가족

숨진 딸 의영이보다 두 살 많은 93년생 오빠와 엄마 뒤엔 당시 사용했던 가습기 통이 놓여 있다. 필자 제공

제 딸 의영이는 1995년 10월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한 산부인과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기와 함께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뒤 의영이가 감기 증세를 보였습니다.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건조하면 안 좋다며 가습기를 잘 틀어주라고 했습니다. 1993년 5월생 아들도 감기에 자주 걸려 집에서 가습기를 계속 사용했었는데, 때마침 티브이에서 방송인 김연주씨가 “세균과 물때를 다 없애준다”며 유공(현 에스케이) ‘가습기메이트’를 선전하는 광고에 혹해 남편에게 사 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바로 동네 마트에서 ‘가습기메이트’를 사 왔습니다.

저는 매일 가습기를 틀었고, 아기 코밑에도 바로 대주며 쐬게 했습니다. 하지만 증세는 좀처럼 낫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더 큰 병원을 찾아 서울서부역 건너편 소화아동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영아실에 입원시키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오후 5시쯤 위급하다는 연락이 와 병원에 도착하니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기 좀 살려달라고 수없이 외쳤습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우리 딸 의영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태어난 지 50일 만인 11월23일, 의영이의 짧은 삶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렇게 내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참 힘들고 마음 아프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러 티브이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독성 화학약품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엄마가 아기를 죽인 셈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아프지 말라고 살균제를 넣었던 가습기가 아기를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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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기가 쌕쌕거리며 입술이 파랗게 되어 힘들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 딸을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들었으니 저도 딸아이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한동안은 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와 아기를 죽인 죄인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도 제가 힘들어할까 봐 표현은 안 하지만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29년이 지난 지금도 딸아이 또래 애들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의영이 생각이 납니다.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현재 환경부 산하 환경산업기술원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는 7891명, 사망 피해자는 1843명에 이릅니다. 이 보이지 않는 ‘공기 살인’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제 딸 의영이가 첫번째 사망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제 딸은 아직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아니라네요. 너무나도 기가 막힌 일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우리 딸 의영이는 “모세기관지염과 흡입성 폐렴”이 사망 원인이라는 사망진단서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환경관련성 평가서, 환경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환경평가서가 있지만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사망하였고, 시간이 많이 지나 의무 진료 기록이 없어서 아직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2019년 개정 시행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의해 ‘가습기 살균제 노출 확인자에 해당한다’는 환경부 통보만 받았을 뿐 개별 심사도 대기 중입니다. 흡입성 폐렴도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나왔는데, 정작 의영이는 피해자가 아니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살균제의 특정 성분이 폐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에서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에스케이케미칼(유공), 애경, 이마트 관계자들과 2023년 10월26일 재판에서도 서로 변명만 하는 변호인들을 보면서 분노한 남편은 탄원서를 썼습니다. 2024년 1월11일 이들 기업 관계자들의 과실치사 혐의 형사재판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에어로졸 형태로 분무되어 폐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염증을 일으킨다는 실험 결과도 나와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멸시효는 30년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숨쉬기 힘들어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죽어간 사람들이 있는데, 도대체 제 딸 의영이가 살아보지 못한 29년은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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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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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멸시효가 30년이라니 정말 화가 나는 소식이네요. 누구나 일상에서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습기에, 의심없이 사용할만한 살균제라는 물품에 사망자가 나왔는데도 그 아무도 책임지는 곳이 없다니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정말 화가 나서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이 아픔이 어떻게든 위로 받았으면 합니다.

너무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픕니다.. 건조한 환경이 아이에게 불편함(코막힘, 감기 등)을 줄 수 있기에 적절한 습도를 위한 가습기를 사용했을 것이고, 깨끗하지 못한 가습기가 오히려 질병을 유발한다는 뉴스(정말 많이 봤죠)를 보고 걱정스러워서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을 사용했을 거예요.. 마트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 폐를 섬유화시키는 유독성 물질일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요... 저도 가끔 주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냥 다들 걸어가는 길도 쉬었다 가야하고, 달리기는 꿈도 못 꾸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음이 분명하고, 이미 수많은 피해자가 있는데도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는 나라라니 참담합니다ㅠㅠ.. 해당 제품을 만들고 판매했던 회사들은 너무나 잘 나가고, 여전히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구요... 돈 많은 기업인들만 이 나라 국민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5년쯤 어떤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문제를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도 이미 몇년 전부터 피해자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했었는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났는데 조속히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전 2심 선고에서 1심 결과를 뒤엎고 유죄가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가해자들에게 선고된 금고 4년형은 피해자들이 겪은 아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그리고 마땅한 책임을 지시길 바랍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438980?sid=102
뉴스에서 한참 나올때는 관심을 가지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에 공감 했었는데,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되었다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자꾸 잊게 되네요. 읽는 내내 마음이 많이 먹먹했습니다. 조금이나마 이 댓글이 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잊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29년동안 해결되지 않는 이런 문제가 묻히지 않고 많이 사람들이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이런 행태는 언제고 반복될 수 있고,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문제인거 같아요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어나고 퍼지면 좋겠습니다.
답답하고 괴로운 그 마음 백만분의 일도 못느끼겠지만 정말 더이상 이런일이 없길, 그리고 그때도 없었어야했던 일이 일어난 만큼 관련이 있다면 피해를 인정해주는것이 한번 놓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것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요즘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함을 부정당하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는데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중에 여전히 구제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해 소송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비슷한 고민이 더 커진다고 느꼈습니다. 질병을 얻고, 피해가 명확함에도 피해를 내 손으로 입증해야 하는 방식이 옳은 것인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법에서는 이 싸움의 유효기간을 30년으로 잡았을지 몰라도 제대로 된 해결을 위해선 법을 뛰어넘는 공동체의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소심에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판결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1월11일 기업 관계자들의 과실치사 혐의 형사재판 항소심 선고에서는 꼭 납득할만한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이야기를 읽으니 당시의 상황을 더욱 짐작할 수 있게 되네요.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그 과정조차도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생명이 보다 더 존중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련 기업들이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것도 통탄스러웠는데, 의무기록이 없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정말 안타깝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멸시효는 30년. 지금이라도 피해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듣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되기를(이런 말을 또 쓰지 않도록...).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같이 만들면 좋겠습니다.

첫째로, 이러한 사안에 대한 토론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피해를 실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둘째로, 이러한 사안에 대한 공적인 조치와 책임이 필요합니다. 관련 기관과 당국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안전성과 피해 예방을 위한 규제 강화와 모니터링을 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을 제공하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