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0
[6411의 목소리] 상담, ‘넓은 우주’를 알아가는 일 그리고 나의 밥줄
상담, ‘넓은 우주’를 알아가는 일 그리고 나의 밥줄 (2024-08-12) 안주현 | 상담사 개인상담뿐 아니라 집단상담, 교육, 워크숍 등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필자 제공 선생님, 편지는 처음이네요. 창밖으로 굵은 비가 묵직하게 내리꽂히는 깊은 여름밤이에요. 상담은 다 끝났는데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지 않아 펜을 들어봅니다. 이런 날이 가끔 있어요. 내담자의 이야기가 잘 소화되지 않는 날이요. 이런 날은 괜스레 딴청으로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맞이하는 일은 설레는 일이에요. 내담자에게 이 시간이 환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일이고요. 하지만 방음 처리가 된 사각형의 밀폐된 상담실에서 내담자와 단둘이 마주 앉아, 그분이 풀어놓는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은 온전히 제가 홀로 감당해야 하잖아요. 게다가 우리는 직업윤리상 비밀보장의 의무가 있으니 어딘가에 마구 털어놓을 수도 없고요. 물론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제게는 저를 가르쳐주신 많은 선생님과 제 상담자이신 당신과 함께 수련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지요. 무엇보다 제게 마음을 내어주고 있는 내담자가 제 앞에 있고요. 하지만 가끔 제가 무대 위에서 듀엣 춤을 추고 있는 댄서처럼 느껴지곤 해요.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무대 뒤에 있어요. 제겐 해내야 하는 저만의 몫이 있잖아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 순간 제가 해내야만 하는 그런 역할이요. 제가 삐끗하는 순간 제 파트너인 내담자가 다칠 수도 있으니, 50분이라는 시간 동안 피하지 않고 집중해서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요. 중견 상담자인 저는 아직도 동료들끼리 모이면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섰을까? 하고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여기가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도 우리가 이 일을 시작했을까? 하는 질문도 하고요. 이 일의 가장 괴로운 점은 하면 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어떤 일들은 경력이 쌓이면 좀 더 수월해지고, 능숙해지잖아요. 하지만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넓은 우주를 마주하는 일처럼 느껴져요. 선생님들께서는 말씀하시죠. 잘할 수 없는 일이니 잘하려고 하지 말아라… 이런 선문답과 같은 말씀들이요. 광고 그러니 우리는 계속 공부를 해야 하죠. 온갖 교육, 강의, 워크숍, 교육분석, 슈퍼비전, 관련 서적 읽기 등등. 실제 상담하는 시간뿐 아니라 거의 그에 상응할 만큼 공부와 수련을 위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쓰게 되지요.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초심 상담자들이 가장 크게 충격받는 부분이잖아요. 많은 상담자가 영리적인 목적만을 가지고 상담을 시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정페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로 좋은 상담자의 자질을 판가름하려고 할 때는 너무 당황스러워요. 내담자의 복지를 위해 애쓰는 것이 상담자 자신의 복지를 무시하고 희생시켜야 한다는 말은 아닐 텐데도요. 여전히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많은 상담자가 계약직의 지위에 연봉 3천만원의 수입이라도 보장되는 자리를 찾아 헤맨다는 건 서글픈 일이에요. 지금은 상담사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이 우리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죠. 하지만 실상은 우리를 하나로 대표할 수 있는 국가 자격증도 아직 없어요. 법적 지위가 없으니 그에 따른 법적 의무나 권한도 한계도 없고, 우리 자신을 보호할 법적 근거도 부족하고요. 상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비상 상황 대응 시스템을 갖춰보려고 해도 법적 근거가 없으니 지자체에서 거부하면 그만이고요. 내담자가 중요한 만큼 상담자인 저희도 중요하잖아요. 상담은 내담자의 복지와 안녕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상담자에겐 생계를 이어 나가게 해주는 밥줄이기도 해요. 안전한 근무 환경에서 안정되게 내 할 일을 이어갈 수 있고, 상담의 유일한 도구인 나를 더 좋은 상담사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돈이 없어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저는 지금까지도 이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고, 다른 일보다 이 일이 더 좋아요. 사람을 알아가는 일, 존재와 존재로 내담자와 만나는 일. 가끔은 이 일이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제 돌이킬 수는 없겠다 싶어요. 선생님, 하소연 같은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비가 이렇게 쏟아지니 내일은 하늘이 아주 맑을 것 같아요. 이렇게 삶은 다채롭고 다층적이네요. 조만간 찾아뵐게요. 건강하세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
1
·
대덕구의회는 하모니의회?
대덕구의회는 하모니의회? -이번에 또 안 하니, 원구성? 지긋지긋하다! 2024.08.14. 대덕구의회 원구성을 다루고 있는 오늘,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와요. 도대체 뭐 때문에, 이들은 아직도 원구성을 안 한 걸까요? 2022년 전반기 원구성 당시처럼, 후반기 원구성까지 자리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덕구의회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드리기 위해, 대덕구의회 원구성 상황을 일지처럼 구성해봤습니다. [기] 원구성 갈등의 시작 2024년 7월 12일, 제277회 대덕구의회 임시회 집회 공고와 함께 대덕구의회 후반기 의장단 구성을 위한 선거 일정이 공고됩니다. 제277회 임시회는 7월 24일 실시되었고, 의장 후보자 등록은 7월 23일까지, 부의장 후보자 등록은 7월 24일까지였어요. 지난 뉴스레터에서 대전시의회 의장 선거에서 후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대덕구의회도 마찬가지로 공개하고 있지 않아요. 대덕구의회는 선거 전날까지 후보자 등록을 받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여유가 없기도 하고요.  시간이 흘러 후보자 등록이 끝나고 보니 의장 후보에는 전반기 의장직을 수행했던 김홍태 의원만이 등록했고, 부의장 후보에는 아무도 등록하지 않았어요.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지시나요? 다시 한번 보고 가는 대덕구의회 정당별 의원 수 대덕구의원 탈당으로 인해, 정당별 의원 수에 변화가 있었는데요. 2022년 당선 당시에는 국민의힘 의원 4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4명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유승연, 전석광 의원이 탈당 하면서 국민의힘 의원 4명(김홍태, 이준규, 조대웅, 양영자 의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김기흥, 박효서 의원) 무소속 유승연, 전석광 의원 2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승] 원구성 갈등의 전개 7월 24일 오전 10시, 본회의를 열어 후반기 의장을 선출해야 했겠죠? 하지만 본회의장에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인 김홍태, 이준규, 조대웅 의원 3명만 출석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정회를 선포 했어요.  그리고 같은 날 오후에 다시 본회의가 열리게 됐는데요. 의장후보에는 김홍태 의원만 단독으로 입후보 했어요. 1차, 2차 투표 모두 과반 득표를 얻지 못해 다시 의장 후보 공고부터 해야될 처지에 놓이게 된거죠. 이렇게 자연스럽게 4:4로 갈라지며 갈등이 심화되고 있죠. 그러면 어떻게 갈등이 발생했는지 살펴볼게요. 더불어민주당 김기흥, 박효서 의원과 무소속 전석광 의원 본회의 시작과 함께 본회의장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기자회견은 '대덕구의회 김홍태 의장의 부당한 후반기 의장 연임 시도' 에 대해 반대하는 기자회견이었고요.  기자회견 내용은 '1991년 이후 대덕구의회에서 단 한 번도 연임 금지의 불문율이 깨지지 않았고, 김홍태 의장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유례 없는 의장 연임을 추진하고 있어 그동안 지켜온 민주주의 합의 정신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이야기 했어요. 여기서 출석한 의원 3명, 기자회견 한 의원은 3명이잖아요. 그럼 2명의 의원은 어디있던걸까요?  국민의힘 양영자 의원은 같은 정당의 의견을 따를거로 예상되지만, 본회의장에 출석하지 않았고요. 무소속 유승연 의원은 본회의장도, 기자회견에도 참석하지 않았어요. 양영자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홍태 의원의 의장 연임에 반대한다고 밝혔어요. 그런데 왜 연임 반대하는 의원들은 의장 후보가 없어? 대덕구의회 구성을 살펴봐야하는데요. 현재 대덕구의회 다선의원은 김홍태 의원이 재선으로 유일해요. 김홍태 의원을 제외한 의원들은 모두 초선인거죠. 대덕구의회 기본조례에서 의장 선거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1차, 2차 투표까지 과반을 얻지 못하면 결선투표까지 하게 돼요. 결선투표에서도 득표수가 같을 경우 최다선의원이 의장에 당선 돼요. 그러니까 결선투표까지 가게 되면 김홍태 의원의 연임 반대하는 의원들 입장에서는 누가 후보로 나와도 김홍태 의원이 다시 의장으로 선출 되는 거죠. 이러한 이유로 후보를 내지 않은 것으로 추측 돼요. [전] 원구성 갈등의 폭발 띠모는 여기가 갈등의 폭발인지 모르겠어요. 아직 원구성은 현재진행형이니까요. 의장 선거 부결 이후 7월 26일 국민의힘 김홍태, 이준규, 조대웅 3명의 의원은 대전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어요.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전반기에도 법과 원칙을 무시한 채 의장 자리를 요구하며 의회를 보이콧하더니 지금도 얼토당토않은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와 과거에 의장 연임 한 사례가 있다라고 이야기 했어요. 대덕구의회 연임 사례가 없어? 연임 사례가 있어요. 연임 사례는 지방자치가 다시 시작한 90년대에 찾아 볼 수 있었는데요. 띠모가 찾아와봤어요. 무보수 명예직이었던 90년대를 제외하고 보면 5대의회 때 연임을 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어요.하지만 이때도 의장 연임에 대한 문제, 의장 선거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해서 있었고 결국 사임 하고 다시 의장선거를 진행했어요. 연임을 하긴 했으나 의장직을 내려놓은 것까지 확인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전반기 의회 원구성 당시 합의한 내용을 말했는데요. '의석수 변동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반기에 맡지 않은 당이 의장을 맡기로 한다'고 합의했었다고 해요.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이 탈당하면서 변화가 생겼으니 변수가 발생한거죠.  이러한 내용들이 원구성 실패에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순히 연임을 반대한다거나, 연임을 해야 하는 양쪽의 근거는 너무나도 부족해요. 이렇게 장기간 원구성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닌 양쪽의 잘못이라고 봐요. 양쪽 모두 의장직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 그 근거를 대덕구 주민분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결] 엔딩이 없는 대덕구의회 대덕구의회 원구성의 결말은 아직 안났어요. 마치 매주 기다리는 드라마, 웹툰 같은 걸까요...? 대덕구의회는 다음주인 8월 20일(화요일)에 다시 의장 선거를 진행해요. 19일이 의장 후보 제출 마감이니 아직 누가 다시 후보로 나왔는지 알 수 없어요. 띠모는 이 결과가 이제 궁금하지 않아요. 그저 자리를 위해서만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대덕구의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띠모의 생각 띠모는 고민이 드는데요. 의장 연임을 반대한다고 하는 의원들은 의장 연임한다고 민주주의 정신이 위협 받는다고 했었죠. 그런데 어떤 의장이 될건지도 모르는 의장 선거를 하는게 연임보다 더 큰 위협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의장 연임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연임을 하면 안 된다라는 이유는 단순히 자리싸움이라고 봐요. 그렇다면 어떤 의원이 의장을 할 거고, 대덕구의회의 운영 방향, 대덕구청 견제 방향 등을 제시했어야 하죠. 현재 김홍태 의장도 연임을 하는 것은 욕심을 넘은 탐욕이라고 밖에 안 보여요. 전반기 원구성도 원만하게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같은 문제가 발생한거죠. 전반기 의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왔었는지 설명도 필요하죠. 그리고 연임을 해야 한다면, 연임을 해야 되는 이유, 어떤 역할을 더 해나가겠다든지의 설명도 필요한데 그저 연임만을 주장하고 있죠.  지난 5월 21일 대덕구의회는 보도자료를 냈어요. 전반기 주요 의정 뉴스라고 하면서 발표했는데 첫번째 이슈가 전반기 의회 원구성이었어요. 대덕구의희는 하모니의회? ①제9대 대덕구의회 전반기 원구성 ‘위기를 기회로’=제9대 대덕구의회는 초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은 ‘전화위복(轉禍爲福)’ 의정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여야 간 이견으로 다소 아쉬움을 남겼던 전반기 원구성 과정 이후 ‘하모니 의회’로 화합과 존중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 (출처: 대덕구의회 보도자료) 정당 간 갈등을 넘어 같은 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는데 어떤 화합과 존중을 실천하고 있다는 걸까요? 아무도 믿지 않을 하모니의회 이런 말 보다 실제 의정활동으로 보여줬야 하죠.  띠모는 대덕구의회의원들이 최소한 의정활동비를 반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의정활동비는 의정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하기 위해서 지급하는 비용이죠.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 비용 등이겠죠? 그런데 지금 원구성 지연으로 사실상 의정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죠.만약에 다음주에 원구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 달가량 대덕구의회의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노동을 하지 않았는데, 의정활동비를 받는다라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문제를 두번이나 연달아 초래했다면 의정활동비를 반납하는 등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모습도 보여줘야죠. 김홍태 의원도 의장직 불출마를 선언하고 초선 의원들 간 투표를 통해 의장을 선출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안하고 협의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길 바라요.개인의 명예 등 다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지방의회의원은 선출직 공직자예요. 그만큼 더 높은 도덕성과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해요. 의장직을 왜 맡아야 하는지, 어떻게 의회를 운영해 나갈것인지 이야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연임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대덕구 정책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의원의 역할이죠.  원구성 이후 대덕구의회를 비롯한 지방의회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지방의회에서 결선투표까지 과반을 얻지 못하면 최다선, 연장자가 당선 된다라는 규정이 있어요. 이는 원구성이 이뤄지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인거죠. 이 규정이 맞다라고 볼 수는 없죠. 단순히 의원을 많이 하고, 나이가 많다라는 이유로 의장을 해야 될 이유는 없으니까요. 의장 선거에서 어떤 규정이 필요할지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해보여요. . . 지방의회 원구성이 실패하는 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가게 됩니다.원구성을 못하는 기간 만큼 지방의원은 본연의 업무를 전혀 하지 못하고요. 그렇다면 그 동안의 의정활동비*는 어디에 쓰인 걸까요?  지방의원은 원구성 실패가 지속되는 기간에 의정활동비를 반납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지방의원의 의정비는 매달 정해진 급여인 '월정수당'과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는 데 쓰이는 '의정활동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재 의정활동비는 비과세 항목인데다,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있지 않아요.)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이 글은 뉴스레터로 발행된 지난 띠모크라시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띠모크라시 모아보기🧡 띠모크라시 구독하기💚
·
1
·
연구자복지법, 기본법에서 공제회법으로?
한국 사회에서 연구 노동은 지속불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인문학의 철학 전공자 현황을 살펴보면, 2024년 기준 한국연구자정보(KRI)에 등록되어 있는 철학 전공자는 50대 약 900명, 30대 약 250명이다. 전공자 수가 20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위기를 나타내며 전공의 다양성 또한 심각하게 저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인문사회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추세이다. 일부 연구자들이 대학이나 한국연구재단 소속으로 강의나 사업에 참여를 하고 있으나 이는 매우 제한된 기회로 연구자들의 불안정성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인문사회기초연구 학문후속세대지원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의 경우 2024년 선정률 24.6%에 그쳤으며 B유형의 경우 선정률 약 30%로, 사업 시행 초기 선정률 약 60%에 비교해봤을 때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를 비롯한 일반연구지원, 저술출판지원사업, 명저번역지원사업 등 2024년 인문사회분야 신규과제 평균 선정률은 21.2%이다. 즉, 10명 중 8명은 1년 동안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연구자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있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 특히 2021년 정청래 의원 대표 발의 ‘기초학술기본법안’, 2022년 강득구 의원 대표 발의 ‘기초학술기본법안’, 그리고 2023년 유기홍 의원 대표 발의 ‘인문사회학술기본법안’ 등, 실제 입법 절차까지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이처럼 기본법에 대한 논의는 다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연구자 복지법으로 기본법이 아닌 공제회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본법의 경우 법적 수혜 대상에 대한 법과 그 대상에 대한 기본법을 따로 제정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법의 경우 대표적으로 예술인 복지법을 들 수 있는데,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과 ‘예술인 복지법’, 크게 두 가지 법안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예술 활동의 의미와 예술인의 정의를 명시하고 있다. 즉, 기본법을 통한 안전망 구축은 두 단계로 법을 제정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예술인은 헌법 제22조 2항 “저작가·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와 같이 헌법적으로 그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공제회법의 경우 해당 법만을 제정하면 공제회를 설립할 수 있다. 다만 연구자 공제회법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연구자를 정의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둘째, 기본법의 경우 국가 예산에 의해 사업 방향과 규모가 정해지는 등 국가에 종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2023년 R&D 예산 삭감 사태를 통해 국가 주도의 사업이 가지는 위험성을 경험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제회법을 통해 법적 교원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놓인 불안정 연구자, 예비 연구자 등을 폭넓게 포괄하여 연구자의 생활 안정과 복지증진을 도모하고 고등교육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연구자 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한다. 연구자 공제회법은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약칭 건설근로자법을 뼈대로 한다. 그 이유는 건설근로자의 초단기 노동, 비연속 노동 등과 같은 근무 형태가 불안정 연구자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자 공제회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쟁점 또한 존재하는데, 첫째, 사업주가 다양하다. 연구자의 경우 사용자가 학교, 기관, 정부 부처 등으로 강의에 따라, 사업에 따라 사용자가 다를 수 있다. 둘째, 연구자의 범위 또한 합의가 필요하다. 2023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 2023-02 “대학 밖 학술단체에 대한 현황조사와 불안정 연구자를 위한 지원 및 연구안전망구축 방안 연구”에서 제시한 연구자 공제회법 가안에 따르면, 제2조(정의) 2항 ““연구자”란 「학술진흥법」 제2조에 따른 국내의 연구자로서 연구 및 교육에 종사하는 자와 「고등교육법」 제29조2 및 제30조에 따른 대학원·대학원대학에 재학·수료 등을 하거나 한 자를 말한다”로 제시되어 있다. 「학술진흥법」 제2조에 따르면 교원 및 겸임교원, 평생교육시설 교원, 연구원, 과학자 및 예술가, 박사학위소지자 등인데, 여기에 「고등교육법」 제29조2 및 제30조에 따른 대학원생을 포함한 것이 연구자 공제회법 가안의 연구자의 범위이다. 이것이 사각지대에 있는 불안정 연구자 및 예비 연구자 등을 충분히 포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셋째, 연구자의 자격 증명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아래 연구자의 자격 예시 표와 같은 방식으로 연구자의 자격을 증명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즉, 재직증명서, 재학증명서, 연구실적, 강의실적 등으로 연구자의 자격을 등록 및 갱신할 필요가 있다. 다만 몇 편의 논문을 기준으로 할지, 몇 년을 기준으로 삼을지에 관하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연구자의 자격 예시> 지위 상태 증명 전임 교원   재직증명서 박사학위 소지자 소속 O 재직증명서 소속 X 연구업적 5년 1편 강의 5년 3학점 대학원생 (박사학위 미소지자) 수료 연구업적 5년 1편 수료 5년 미만 강의 5년 3학점 재학 재학증명서   연구자 공제회법은 가안 제1조(목적)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이 법은 연구자의 고용안정과 직업능력의 개발·향상을 지원·촉진하고 연구자에게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는 등의 복지사업을 실시함으로써 연구자의 고용개선과 복지증진을 도모하고 고등교육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연구자 공제회법에서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연구자 공제회는 퇴직공제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연구자의 연구 생애 주기에 맞춰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논문 게재료 지원, 저금리 등록금 대출, 도서 구입비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연구자 공제회법 제정과 공제회 운영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 또한 존재한다. 첫째, 공제회법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 정도 이상의 인원을 갖춰야 한다. 둘째, 공제회는 연구자와 사업주, 국가의 재원 등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학의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연구자 공제회법은 기본법보다 절차상으로는 간단하나 여전히 고려해야 하는 문제, 해결하는 문제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속한 연구자 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기본법보다 공제회법이 효과적이며 퇴직금을 쌓을 수 없는 불안정 연구자의 퇴직금 지급과 더불어 각종 복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의 최소 안전망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재 제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법안으로 연구자 공제회법을 제안한다.
[연구원정]그 많은 디지털(게임) 데이터는 누구의 것일까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제3의 재산으로서 데이터의 체계적 정립(오병철, 2021) 요약 - 왜 이 논문을 선택하여 읽었는가 이번주는 제 연구 주제와 관련되어 기본 개념을 잡을 수 있는 논문을 읽어봅니다. 새로 제 글을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소개를 다시 하자면, 제 연구 주제는 “게임 소비자의 디지털 재화 소유권(또는 이용권) 보호”입니다. 게임 소비자들이 현금을 주고 구매하는 게임 내 아이템이나 디지털 다운로드 형태의 게임 콘텐츠에 대한 권리가 완전한 소유의 형태가 아니라 ‘이용권’에 불과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주된 연구 방향은 게임사와 소비자 간 ‘이용권’ 계약을 어떻게 하면 ‘소유권’ 계약으로 바꿀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논문은 디지털 재화 및 소유권에 대한 기존 선행 연구와 개념을 정리하고자 선정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데이터와 법적 혼란 디지털 데이터(이하 ‘데이터’)는 새로운 거래 대상이나, 현재 민법에서 이에 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데이터의 법적 규율에 대해서 이미 “데이터권”이라는 이름 하에 여러가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데이터의 성격이 다양하여 논의가 쉽지 않고, 범주화가 되지 않은 상태로 논의되어 오히려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데이터”를 “인지적 노동의 결과인 관념”으로 정의하고, 이를 범주화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분석하여 데이터에 대한 재산권을 새로이 구성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로써 법적으로 안정적으로 규율된 상태에서 데이터를 유통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표입니다. 데이터에 이름표 달기 저자는 논의에 앞서 가장 먼저 데이터의 범주화를 위해 “데이터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데이터는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고, 관찰이나 창작과 같은 정신적인 노동에 따라 생성되는 것이므로 저자는 “인지적 노동의 결과인 관념”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유형의 저장매체가 없더라도 존재할 수 있고 전달될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고 봅니다. 다음으로는 데이터의 존재 형식을 살피는데, 이는 독립적인 재산권의 객체로 다룰 수 없는 아날로그 데이터를 논의에서 배제하기 위함입니다. 데이터의 형식은 “저장매체를 통해 전통적인 유체물”이 된 ‘물화(物化)’와 코드화 되어 전기 신호로 전달될 수 있는 ‘전화(電化)’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물화된 데이터는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의 데이터도 포함하는데, 예컨대 책을 예로 들자면 ‘책’이라는 유형의 저장매체와 ‘글’이라는 데이터를 별도로 분리해서 법적 권리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기 때문에 이 논의에서 아날로그 데이터는 배제됩니다. 그리고 데이터의 분류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하기 전 기존의 논의들을 먼저 살펴봅니다. 기존에는 총 세 가지의 분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개인정보와 비개인정보, 지식재산권이 적용되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로 나누는 ‘데이터의 내용에 따른 분류’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공공데이터와 민간데이터로 구분하는 ‘주체에 따른 분류’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기계생성 데이터와 인간행위 데이터로 구분하는 ‘생성 근거에 따른 분류’입니다. 이러한 분류들은 다양한 데이터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정확한 구분 원리를 제시하지 못해 이에 따라 법적 권리를 분석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새로이 데이터에 대한 분류를 제시합니다. 큰 분류는 두 가지로, 대상 관찰이나 다양한 데이터에서 도출되는 ‘추출적 데이터’와 사람의 창작적 노동으로부터 생성되는 ‘창조적 데이터’입니다. 이 분류는 데이터의 귀속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분류입니다. 추출적 데이터는 관찰이나 도출이 되는 ‘대상’의 권리와 추출을 해내는 ‘추출자’의 두 주체 중 누구에게 데이터를 귀속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반면 창조적 데이터는 창작한 자에게 데이터가 귀속되므로 귀속문제를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많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일까 위의 구분은 데이터의 귀속 문제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자는 ‘추출적 데이터’가 ‘추출 대상에게 가역적 영향을 주는 경우’ 데이터를 대상에게 귀속시키고, ‘가역적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 데이터를 추출자에게 귀속시키는 “귀속결정론”[1]을 제시합니다. 예컨대 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제품의 사용 패턴을 분석하여 얻은 소비자 빅데이터는 비가역적 영향 데이터로 해당 제품의 사용자가 아닌 데이터를 분석한 기업에게 귀속됩니다. 이는 해당 데이터에서 추출된 데이터가 추출의 대상인 개인에게 역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 추출 노력의 주체에게 데이터를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저자는 데이터가 유형의 저장 매체와 분리되어 독립적인 객체로 인정되기 때문에, 데이터 그 자체를 민법 제98조의 물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음을 소개합니다. 데이터 소유권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에서 데이터의 물건성을 부정하는 것이 다수의 견해로 나타나고 있지만, 민법 제98조의 확장적 해석을 통해 물건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려는 견해도 있습니다. 특히, 데이터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특정성, 독립성, 배타적 지배가능성을 확보하고 공시가 가능한 경우 소유권 부여의 요건을 갖추게 되어 민법상 물건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소유권 논의에 대해 본인이 제시한 데이터의 새로운 분류에 따른 권리 성격을 제시합니다. 추출적 데이터 중 추출 대상에게 가역적 영향을 주는 데이터에 해당하는 개인정보와 같은 데이터는 ‘인격권’의 객체이고 정보주체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정보주체와 분리될 수 없는 배타적인 지배권입니다. 하지만 비가역적 영향 데이터는 추출에 노동력을 투입한 추출자에게 귀속되는 것이며, 재산권의 객체가 됩니다. 저자는 데이터를 ” ‘전화(電化)된 노동’ 그 자체로서 물건도 아니고 인간의 행위도 아니지만 디지털 기기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는 실체를 갖는 제3의 가치“로 봅니다. 따라서 추출된 데이터는 추출자가 물건과 마찬가지로 배타적 지배권을 가지게 됩니다. 한편 창조적 데이터 중 지식재산권의 대상이 아닌 데이터는 창조한 자가 그 노력의 대가로 재산적 지배권을 갖게되는 배타적 지배권의 객체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SNS 등 서버에 저장된 지식재산에 해당하지 않는 개인이 창조한 데이터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규정할 경우 피상속인의 재산권으로 간주되어 민법에 따라 상속인에게 상속할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권리, 데이터권 저자는 위의 새로운 분류에 따라 나눈 권리를 기존의 권리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새로운 “데이터권”[2]으로 신설할 것을 제시합니다. 대상은 추출자가 권리를 갖는 추출적 데이터와 지식재산권 대상이 되지 않는 창조적 데이터입니다. 이 권리는 권능에 따라 다시 데이터 지배권, 데이터 용익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지배권’은 데이터 추출 대상에게 가역적 영향을 주지 않는 추출 데이터를 추출한 자나 지식재산권에 해당하지 않는 창조적 데이터를 창조한 자가 원시취득 하는 형태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취득 형태는 타인에 대한 권리 양도나 상속을 가능케 합니다. ‘데이터 용익권’은 데이터 그 자체를 변경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작용에 따라 다시 ‘데이터 보유권’, ‘데이터 접속권’, ‘데이터 가공권’, ‘데이터 담보권’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보유권’은 데이터권자에게 복제본을 제공받아 이용할 수 있으며 변경, 새로운 복제본의 생성 권리는 가지지 않습니다. 데이터는 복제본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특성상 제공계약 종료 시 보유권자인 양도인은 제공받은 데이터를 삭제하고 더 이상 보유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계약해야 할 것입니다. ‘데이터 접속권’은 데이터를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유권과 유사하지만, 단순히 접속하여 활용하는 권한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이터 가공권’은 데이터권자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추출한 제2차 데이터를 원시취득 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저자는 가공권에 대하여도 앞서 살펴본 추출적 데이터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사가 수많은 자율주행 차량으로부터 데이터를 추출하여 확보하고자 할 때, 이것이 추출 대상 데이터의 권리가 귀속된 자율주행 차량 점유자에게 가역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추출된 데이터의 권리는 자율주행차량 점유자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추출 대상 데이터 권리자와의 가공권 계약으로 추출 데이터 활용의 법적 안정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위 권리들은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담보권은 실현이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데이터가 재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관념이 전화(電化)’된 것으로 데이터권을 담보로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논문의 결론 이 논문은 데이터의 체계적 분석을 통해 재산적 가치를 갖는 일반적이고 다양한 데이터와 개인정보를 규범적으로 격리하여 데이터 활용에 대한 장애물을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먼저 데이터를 “인지적 노동의 결과인 관념”으로 정의하고, 데이터의 유형분류를 통해 물건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권리객체로 설정하였습니다. 이것을 창조적 데이터와 추출적 데이터로 구분한 후 추출적 데이터는 추출 대상에게 가역적 영향을 주는 데이터와 대상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데이터로 나누었습니다. 가역적 영향을 주지 않는 데이터는 추출자의 노동의 산물로서 추출자에게 귀속시키는 귀속결정론을 수립하였고, 지식재산권의 법리에 해당하지 않는 창조적 데이터는 창조자에게 귀속시키도록 하여 기존의 법질서에서 공백상태에 있는 데이터의 귀속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저자는 또한 데이터라는 실체를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절대권으로서 데이터권을 제안하며 구체적인 권리로 데이터 지배권과 데이터 용익권의 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데이터권의 수립을 통해 지금까지 정리되지 않았던 데이터의 개념 및 새로운 재산권의 형성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일반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실현하고 안정적 데이터 유통 확보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연구에는 어떻게 적용할까 데이터의 내용적 특성과 생성 원리에 따른 구분으로 물권적 성격을 규정한 이 논문은 게임 아이템이나 디지털 다운로드 형태의 게임 콘텐츠 등 데이터 귀속 권리에 대한 선행연구로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소유권’은 민법의 기초가 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으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재화의 소유권에 대해 논의한 다른 연구들을 더 많이 찾아보아야 선행연구 제시가 가능할 것입니다. [1] 오병철, “제3의 재산으로서 데이터의 체계적 정립”, 「정보법학」 제25권 제2호, 175면. [2] 오병철, “제3의 재산으로서 데이터의 체계적 정립”, 「정보법학」 제25권 제2호, 169면. ⓒ 2024.8.17. LEEMINJI,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향후 작성자의 학술적 연구를 위한 초안으로, 작성자의 허락없이 복사, 인용, 배포,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
[연구원정] 해외에서는 교사의 "스트레스"와 "번영"을 어떻게 측정하고 있을까?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지난 2주간 교사의 번영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해외에서는 교사의 스트레스와 교사의 번영을 어떻게 측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한 편의 논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연구는 최근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일어난 큰 변화와 그에 따른 교사들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논문 제목은 "Thriving Beyond Resilience Despite Stress: A Psychometric Evaluation of the Newly Developed Teacher Stress Scale and Teacher Thriving Scale”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회복탄력성을 넘어 번영하기: 새로 개발된 교사 스트레스 척도와 교사 번영 척도에 대한 심리측정 평가) 입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크게 바뀌었죠. 교육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학교들은 갑자기 원격 수업, 대면 수업, 또는 이 둘을 섞은 혼합 수업 등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모든 교사들에게 어려움을 안겼지만, 특히 특별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는 더 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미국의 유아 교사들은 이미 많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지만, 팬데믹으로 상황이 더 악화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잘 적응하고, 심지어 성장하고 번영하는 교사들도 있었습니다.  논문을 쓴 연구진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일부 교사들은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도 잘 견디고 심지어 번영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들은 교사들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또는 얼마나 빨리 '회복'하는지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 연구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을 넘어서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번영(Thriving)'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어떤 요인들이 교사들의 스트레스와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보호 요인 모델' 이론과, '번영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보호 요인 모델'에 따르면  개인의 강점이나 사회적 지원과 같은 보호 요인이 역경에 대한 대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내에서의 긍정적인 관계나 정서적 지원이 교사들의 스트레스 회복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번영 이론'에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네 가지(굴복, 생존, 회복, 번영)로 나누고 있으며, 여기서 '번영'은 단순히 스트레스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연구의 핵심은  앞선 두 이론을 바탕으로 두 가지 새로운 측정 도구를 개발하고, 검증한 것입니다. 교사 스트레스 척도(TSS)는 두 가지 주요 원인을 밝혀냈습니다. 하나는 '학교 기반 지원의 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관련 요구사항'입니다.  쉽게 말해, 교사들은 학교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과도한 업무 요구를 받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교사 번영 척도(TTS)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찾아냈습니다.                                적응성과 유연성, 개인적 강점과 전문적 성장, 긍정적 마인드셋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고, 자신의 강점을 살리며,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교사들이 더 잘 '번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스트레스와 번영이 서로 반대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높으면 번영하기 어렵고, 반대로 번영 능력이 높으면 스트레스를 잘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는 단순히 교사들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을 넘어,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는 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교사 지원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만들 때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서 스트레스 관리 기술 뿐만 아니라 적응력을 키우고 긍정적 사고방식을 함양하는 내용을 포함할 수 있겠죠.  또한, 이 연구는 교사의 번영이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교사 지원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교육 현장의 실제 상황을 반영하고, 교사들의 웰빙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이 연구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교사들의 스트레스와 번영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스트레스와 번영이 서로 반대 관계에 있으면서도 교사의 정신 건강과 직업 만족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기존의 제가 가지고 있던 관점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이 연구에서 제시한 교사 번영의 세 가지 핵심 요소(적응력과 유연성, 개인적 강점과 전문성 성장, 긍정적 사고방식)가 기존에 제가 생각했던 번영의 하위 개념(심리적, 정서적, 사회적, 직무 관련, 기본적 욕구)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더 깊이 탐구해보아야 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소개한 논문이 향후 국내 교사의 번영에 대한 개념과 측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 ⓒ 2024.8.16.  HWANG SOO JUNG,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향후 작성자의 학술적 연구를 위한 초안으로, 작성자의 허락없이 복사, 인용, 배포,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
2
·
[연구원정] ‘가계자산'과 '복지태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 논문 리뷰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 리뷰 논문 선정 동기 2022년 한국사회학에 게재된 게재된 양종민, 김도균 박사님의 “가계자산과 복지태도: 자가소유와 자산규모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를 리뷰하고자 합니다. 제 관심 연구 키워드는 복지태도의 정치경제적 영향요인입니다. 본 연구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를 설정한 전형적인 양적 연구로, 위 논문을 자세하게 리뷰한다면 조작화와 변수 설정, 통계 해석 등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본 논문을 선택하였습니다. 또한, 복지태도의 다양한 영향요인 중 가계의 상이한 감세 혜택인 ‘재정복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는데, 본 논문의 교신저자 김도균 교수님 께서는 한국 사회의 재정복지 및 자산기반복지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본 연구와 이론적 배경이 일부 중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연구 목적과 이론적 배경 본 연구는 가계자산, 즉 자가소유 여부와 자산가격 수준에 따라 어떻게 복지태도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가계자산이 복지태도에 미치는 인과메커니즘은 케메니와 캐슬스의 선행 연구로부터 알 수 있듯 지출제약의 측면과 자산효과 측면으로 나뉩니다. 먼저, 케메니는 주택 주택점유형태와 복지국가 간의 상쇄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주택구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 조세부담이 심해질 경우 복지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택효과로 인한 복지지출 제약효과를 의미합니다. 다음, 캐슬스는 주택자산은 복지대체제로서 기능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주택소유자들은 노년에 임대료 부담이 없기 때문에 노후 사적보험처럼 활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연구 가설 본 연구는 위와 같이 케메니와 캐슬스의 연구이론을 바탕으로, 가계자산이 복지태도에 미치는 인과메커니즘을 지출제약의 측면과 자산효과 측면으로 구분하고, 가계자산이 어떤 방식으로 복지태도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위 연구의 연구가설은 주택소유 및 자산규모가 사회적 위험 대비 인식, 복지지출 확대에 대한 태도,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각각 탐구합니다. 주택소유 및 자산규모가 사회적 위험 대비 인식에 미치는 영향 1-1 : 유주택자가 무주택자에 비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비가 잘 되었다고 인식할 것이다. 1-2 : 부동산 자산의 규모가 클수록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비가 잘 되었다고 인식할 것이다. 1-3 : 유주택자가 무주택자에 비해 자산규모가 클수록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비가 더욱 잘 되었다고 인식할 것이다. 주택소유 및 자산규모가 복지지출 확대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 2-1 : 유주택자가 무주택자에 비해 복지지출 확대에 반대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2-2 : 부동산 자산의 규모가 클수록 복지지출 확대에 반대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2-3: 유주택자가 무주택자에 비해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반대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주택소유 및 자산규모가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 3-1:유주택자가 무주택자에 비해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반대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3-2: 부동산 자산의 규모가 클수록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반대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3-3: 유주택자가 무주택자에 비해 자산규모가 클수록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더욱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 연구 결과 한국사회 분배인식 조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 데이터를 ‘순서형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통해 분석한 내용 중 주요 결과를 요약하자면, 이하와 같습니다. 첫째, 사회적 위험 대비인식과 관련하면, 자가를 소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자산규모가 높을 수록 보다 인식이 강화되었습니다. 둘째, 복지지출 확대 태도에 관련하여 자가소유 자체로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부동산 규모가 클 경우 복지지출 확대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셋째, 반면 재분배정책에 대한 태도에서는 유주택자일수록 부정적이었고, 자산규모가 높을 수록 보다 훨씬 부정적이었습니다. 한편, 자가소유 여부와 자산규모의 상호작용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고, 자산규모가 클수록 복지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강화되고 있었습니다. 🔑 결론 종합해보자면, 자가소유 여부만으로는 자가소유계층을 단일한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 자가소유 여부 보다는 주택을 포함한 총 자산규모가 복지태도를 상이하게 만든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 연구는 주택과 복지국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기존의 지배적인 케메니의 연구에 의하면, 주택정책이 자가소유 또는 공공임대를 지행하는지에 따라 복지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상이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이분법적 해석일 수 있으며, 본 연구는 복지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는 주택소유 여부 자체 보다는, 주택가격 및 자산가치의 수준임을 밝혔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개인적 리뷰 본 연구를 리뷰하면서, 기존의 지배적인 연구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변수를 포함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탄탄한 이론적 배경과 적절한 조작화를 채택하고, 통계 자료를 첨예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연구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복지태도 영향 요인으로 일차원적인 가구 소득수준이 아닌, 보다 입체적인 시각에서 가계의 재정복지 수혜 또는 사적 보장제도 수준에 대한 요인을 채택하는 연구를 리뷰하며 연구방법을 비교하고자 합니다. ⓒ 2024.8.16. KIM DAHYEON,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향후 작성자의 학술적 연구를 위한 초안으로, 작성자의 허락없이 복사, 인용, 배포,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
인문학술장의 자율성과 재생산을 위한 소고
한국의 인문학계는 오랫동안 '위기'라는 말로 자신의 상황을 표현해 왔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것을 단순한 '위기'가 아닌 '재앙'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재앙의 근원은 '학술장의 부재'에 있으며, 이는 단순히 학생들이나 사회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 부족 때문이 아니라 연구자들과 학술 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술장이 직면한 문제는 그 뿌리가 깊고 복잡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술장은 여러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인문학’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주장들과 달리 나는  인문학이나 이론적 연구들이 한국 사회의 의제나 일상인들의 삶과 유리되었다던가, 학자들이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글을 쓰지 못하여 위기에 빠져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이지 않은가? 서점 매대에는 인문학을 다룬 대중적인 교양서들이 차고 넘치고, 유투브에는 인문학 셀러브리티들과 그 워너비들이 끊임없이 교체되는 중이다. 지금은 7-80년대처럼 함석헌이나 도올의 강의를 듣기 위해 종로를 찾아가 강당을 채우는 시대가 아니다. 인문학이 교양대중을 찾아가고 있다. 학자들은 ‘자리를 못 잡아서’ 생계의 길을 찾기 위해 교양과 학술상업출판의 영역으로 달려간다. 또 다른 학자들은 ‘자리를 잡은 김에’ 인문학 대중의 셀러브리티가 되어 개인적 평판을 높이려 시도한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 위기의 한 모습이다. 학술장 바깥의 대중은 물론, 연구자들 스스로가 인문학을 ‘삶을 위한’ 것으로 여기면서, 인문학은 정말로 ‘삶을 위한’ 것이 되었다. 그러니까 학부 교양 수업에서 열심히 가르쳐서 문해력을 길러주고, 비판정신을 함양하는 것이 ‘인문학’이 된 것이다. 인문학은 삶 전반에 관한 것이고, 인문 이론의 탐구는 누구든 책을 읽을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비싼 장비와 실험재료 그리고 여러 해에 걸친 도제식 교육이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도 아닌 인문학은 대학 밖에서 하면 된다는 주장이나온다(김우재, “코로나 시대의 인문학”, 한겨레신문 2020년 6월 30일).  그런데 사실 대다수의 인문학자들은 이런 이야기에 일일이 반응할 시간이 없다. 교양, 교육, 학술상업출판 영역의 반대편에선 학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KCI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쓰고, 좀 더 노력하여 주로 영어로 SCI나 A&HCI 같은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학술지에 논문을 쓴다. KCI 한편에 100점, A&HCI 한편에 100점에서 600점(학교마다 다르다). 1년에 200점에서 1000점 정도까지, 연구자라면 응당 개인 실적 점수를 채워야 한다. 이 개인점수가 연구재단의 연구비를 신청하거나, 교수 임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혹은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은 현실감각 없는 사람이 된다. 창조적 역량과 체력이 어마어마하거나, 하나의 아이디어로도 여러 편의 논문을 잘 쪼개서 쓰는 훈련이 된 사람들은 1년에 여러 편의 논문을 뚝딱뚝딱 쓰지만 필자와 같은 보통의 인문학자들은 1년에 두 편의 논문을 쓰면 이미 기진맥진이다. 그런데 이 글들은 누가 어떻게 읽을까?  인문사회분야의 제 영역에도 자연과학의 경우처럼 학술지 논문이 주된 교류 수단이고, 그래서 인용지수를 통해 학문적 퀄리티를논할 수 있는 분야가 있기는 하겠지만, 앞서 말한 이론장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이 논문들은 그다지 읽히지 않는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상술하자면 여기서 ‘읽는다’는 건 논문을 읽는 행위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논문 출판’의 가장 주된 목적과 관련된 읽기 행위, 즉 동료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의 재료로 읽고 인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인문학술 이론장의 연구자들의 논문은 그런 의미에서라면 별로 ‘읽히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한국인 연구자들의 이론 연구를 읽지 않아도 내 개인점수를 채우기 위한 또 다른 이론 논문을 얼마든지 쓸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별처럼 빛나는 철학 대가들의 저작들이 있고, 영미 학술장엔 내 논문의 논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중견, 석학들의 논문이나 단행본이 많다. 내 영혼이 그들과 직접 교통하는데, 굳이 옆을 돌아볼 필요는 없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에 이론의 대가나 석학이 없기 때문일까? 많은 연구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는 서구 이론의 해설자들만 있지 한국적 상황에서 길러낸 창조적 이론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반응이나, ‘서구에서 인정받는 책을 쓴 (한국 학술장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 이론가가 얼마나 되나’ 같은 반응들이 대표적이다. 확실히 아주 작은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그런 이론가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연구자 개개인의 실력을 문제 삼는 의미에서 대가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에 동의하기도 힘들다. 한국의 이론 대가나 석학은 말하자면 지금 모두 ‘슈뢰딩거의 석학’이다. 많은 이들이 박스 속에서 ‘석학임’과 ‘석학 아님’의 중첩상태에 놓여 있다. 확인을 하려면 뚜껑을 열고 관측적 개입을 해야 하는데, 지금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한국의 연구자들이 서로의 저작을 읽고, 인용하고, 토론 주제로 올리고, 그 사람에 대한 논문이나 책을 쓰지 않으니 슈뢰딩거의 석학들은 지금 계속 박스 안에서 존재하며 비존재한다.  즉 한국 인문학술 이론장엔 좁은 의미의 ‘학술장’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먼저, 학술장이 대학 입시, 교육과정, 교원 평가 시스템 등에 종속되어 자율성을 상실했다. 인문학의 가치와 의미가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외부의 기준에 의해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구자들은 극심한 경쟁 속에서 개인주의적 성과창출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연구자들 간의 학술적 교류와 협업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인문학계에서 독창적인 이론가나 학파의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학문의 발전은 연구자들 간의 활발한 토론과 비평, 그리고 이를 통한 상호 발전에서 이루어지는데, 현재의 한국 인문학계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연구자들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이다. 정년트랙 전임교수 자리는 극히 제한적이며,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단기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연구자들로 하여금 장기적인 연구 의제를 추구하기보다는 무한경쟁 속에서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게 만든다.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서는 깊이 있는 연구나 혁신적인 시도, 동료 연구자와의 토론과 논쟁을 통한 학술장 전체의 발전보다는 당장의 논문실적을 쌓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학술지 논문 중심의 평가 제도이다. 현재의 시스템은 연구자들의 업적을 주로 학술지 논문의 수로 평가하고 있어, 깊이 있는 연구를 담은 단행본이나 공저 논문집 등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연구의 질적 저하와 파편화를 초래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하나의 큰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기보다는, 같은 내용을 여러 개의 논문으로 쪼개어 발표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는 학문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셋째, 위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학술전문 단행본에 대한 체계적인 경시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포함한 학술전문 단행본은 한 연구자의 깊이 있는 사상과 이론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평가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해 한국의 인문학 연구가 국제 학계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현행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사업을 확대한 '국가박사제'의 도입이다. 이는 일정 수의 박사급 인문사회 연구자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재임용)과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연구자들이 장기적인 연구 의제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연구자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둘째, 학술전문 단행본과 공저 논문집에 대한 평가 개선이다. 이들 저작에 대해 학술지 논문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연구자들이 더욱 깊이 있고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는 연구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 간의 협업을 촉진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셋째, 대학출판부의 역할 강화 및 학술전문출판 영역의 확대이다. 대학출판부를 통해 질 높은 학술전문서를 출판하고, 이를 대학 평가에 반영하는 등의 방식으로 학술전문출판의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는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가 보다 넓은 독자층에게 전달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학술 출판의 질적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서평논문에 대한 평가 개선이다. 서평논문은 학술장 내에서의 토론과 비평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수단임에도 현재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인정과 평가 개선이 필요하다. 서평논문의 활성화는 연구자들 간의 상호 비평과 토론을 촉진함으로써, 학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인문학이 곧 학술정치이자 학술비즈니스라고 주장한다. 이는 외부의 정치나 비즈니스 논리가 학술장에 침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학술장 자체가 고유의 정치와 비즈니스 논리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연구자들은 개인 연구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함께 좋은 학술장을 만드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연구 성과를 높이는 것을 넘어, 학문 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특히 어느 정도 명망과 고용안정을 쟁취한 중견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뿐만 아니라 동료 연구자들, 특히 신진 연구자들의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비평하며, 상호 인정과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는 학문의 세대 간 전수와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또한, 연구자들은 힘을 모아 제도 개선과 예산 확보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연구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문학 전체의 발전과 그 사회적 가치의 인정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
3
·
[연구원정] 투자자들은 얼마나 녹색채권에 관심을 가질까요?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2주간 사회적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쭉 이어왔습니다. 이번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회성과를 측정하고 나면 어디에 도움이 될까요?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수립하고, 활동을 해내는 사람들에게 필요할 겁니다. 또 어디가 있을까요? 바로 금융시장입니다. 기업에게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을 요구하는 만큼 금융시장에서도 사회성과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녹색채권(Green bond, GB)’에 대한 하나의 논문을 소개합니다. 🪙금융시장과 사회성과 이번 원데이클래스에서 정리한 논문은 “Aruga, K. (2024). Are retail investors willing to buy green bonds? A case for Japan.”입니다. ESG 투자의 효과, ESG가 재무성과에 미치는 영향, 기업의 지속가능성 등을 위주로 다루는 Journal of Sustainable Finance & Investment에 게재된 논문입니다. 이 논문의 저자는 개인투자자의 관점에서 녹색채권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확인합니다. ‘개인투자자들은 녹색채권을 어떻게 바라볼까? 누가 녹색채권에 투자할까? 어느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까?’ 와 같은 질문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Aruga(2024)는 대규모 투자기관을 중심으로 다뤄진 녹색채권의 WTP(소비자가 지불할 의사가 있는 금액, Willingness to Pay)를 개인수준에서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최근 국내 소셜섹터의 확장을 위해 자금운용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임팩트 투자, 대안금융(공동체금융), 크라우드 펀딩과 같은 사회적금융이 그 예입니다. 사회적금융은 일반 금융보다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한다는 점도 있지만, 개인 영역에서 소규모 투자를 통해 사회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개인투자자에 초점을 둔 Aruga(2024)의 연구는 국내의 사회적 금융 시장과 사회적가치 측정 연구에서 여러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녹색채권 프리미엄은 존재할까요? 논문의 저자는 녹색채권 시장의 확장을 위해서, 개인투자자들의 녹색채권 WTP(소비자가 지불할 의사가 있는 금액)를 확인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일본의 3대 대도시에 거주하는 개인투자자들 1,346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였습니다. 연구질문 개인투자자들의 녹색채권에 대한 WTP는 얼마인가 개인투자자들의 이타적인 수준, 녹색채권에 대한 지식, 투자 빈도가 녹색채권 WTP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연구는 개인투자자들의 녹색채권에 대한 WTP를 확인하기 위해 수익률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이타적인 수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수준, 투자 빈도를 확인하고, 각 변수에 따라 녹색채권을 투자할 의사를 측정하였습니다. Aruga(2024)는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을 위한 활동을 목적으로 발행된 녹색채권에 대해 투자자들은 보통의 채권보다 더 적은 수익률을 제공하더라도 투자할 것이라고 가정하였습니다. 이를 그리니엄(Greenium, 녹색채권 프리미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녹색채권이 기존채권과 동일한 수익률일 경우, 녹색채권을 구매할 의향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녹색채권의 수익률이 달라질 때 마다 투자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질문하였습니다. 그 결과, 평균적으로 수익률이 1.13% 더 낮더라도 녹색채권을 투자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개인투자자들의 이타적인 수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수준, 투자 빈도가 높을 수록 이러한 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즉, 개인투자자들이 보통의 채권보다 더 낮은 수익률의 녹색채권에 투자할 의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며, Aruga(2024)를 통해, 개인의 자산운용에서 환경적 가치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투자자들이 녹색채권의 효과성(채권을 통해 실질적으로 환경에 기여한 정도)에 어느정도 관심을 갖는 가를 함께 확인하여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을 자세히 분석한다면, 녹색채권 시장 확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녹색채권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에게 효과성과 신뢰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녹색채권을 통해 얼마나 환경문제가 개선되었는지, 또 그러한 성과가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지 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비재무적 성과 측정 방법론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연구입니다. ⓒ date. YJ, Ro.,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향후 작성자의 학술적 연구를 위한 초안으로, 작성자의 허락없이 복사, 인용, 배포,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
1
·
모델을 넘어, 한국을 넘어
모델 안전을 넘어선 AI 안전의 필요성 by 🤔어쪈 지난주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가 쓴 ‘AI 안전성 논의가 아예 잘못되었다(The AI Safety Debate Is All Wrong)’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올해 초 AI 윤리 북클럽에서 읽은 <권력과 진보> 저자이기도 한 그는 사실 비교적 일찍부터 AI에 관심을 가지며 기술의 경제적 함의를 연구한 바 있는데요. 이번에 쓴 글에서 나타난 그의 입장은 놀라우리만치 AI 윤리 레터에서 지적해 온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현재 AI 안전성 논의는 AGI의 잠재적인 파멸 위협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어 기술 개발 및 사용 주체의 의도나 권력 구조를 간과한 채 AI 모델의 정렬(alignment)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음 이는 AI의 불필요한 의인화를 넘어 이미 발생중인 실질적인 위험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AI 산업에 대한 과장 광고 효과로서 투자와 인재 유치에만 도움이 될 뿐임 AI 안전성 논의는 주요 AI 개발 및 사용 주체이자 권력을 가진 기술 기업과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시민 요구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함 이른바 AGI 논쟁은 AI 윤리 레터의 시작부터 함께해 온 주제입니다. 뉴스레터 초기부터 지금의 기술 기업들의 정반대편에 서있는 팀닛 게브루를 소개하고, AGI가 가리고 있는 현실을 보자고 말해왔죠. AI 하이프 뉴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AI 윤리 논의를 혼탁하게 만드는 과장 광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겉보기에 마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AI가 실제로는 어떻게 학습되고 작동하는지를 다루고, 미래가 아닌 지금 바로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지적했습니다. 최근에는 AGI를 주제로 북클럽도 진행하여 성황리에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대런 애쓰모글루와 AI 윤리 레터가 계속해서 지적해온 AGI 논쟁을 차치하고서라도 저는 여전히 지금의 AI 안전성 논의가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단일 AI 모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AI 안전이라는 주제가 기술적 문제 해결에만 천착하는 문제는 이미 지난 레터를 통해 다룬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술적 문제 역시 충분히 다루고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픈AI, 구글, 앤스로픽, 네이버 등 AI 기업들이 내놓은 AI 안전성 프레임워크는 하나같이 GPT-4o, Gemini 1.5 Pro, Claude 3 Opus 등 그들이 개발한 최신 AI 모델의 위험성 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험성 평가란 해킹 문제를 풀 줄 아는지, 생화학 무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지, 사용자를 속일 수 있는지 등을 의미합니다. AI 정렬 문제란 거창하게는 AI가 인간 사회의 가치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챗봇이 어떤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할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대런 애쓰모글루가 지적한대로 과도한 의인화로 인해 AI 안전이 너무 축소된 모습이죠. 단일 AI 모델을 대상으로 한 평가는 최신 AI 연구 및 산업 동향과도 동떨어져있습니다. 요즘 AI 업계의 키워드인 AI 에이전트 내지는 에이전트 워크플로우(agentic workflow)는 하나 이상의 AI 모델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전제합니다. 위 도식을 예로 들자면, 실행 (Execution), 맥락 제공 (Context), 작업 생성 (Task Creation), 우선순위 설정 (Prioritization) 등의 모듈 각각에 AI 모델이 위치하여 에이전트로 기능하는 것이죠. 실제로 많은 서비스가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소 복잡한 구조의 ‘시스템’으로서의 AI 서비스를 두고 단일 AI 모델만을 AI 안전 평가 대상으로 삼는 것을 효과적이라고 보긴 어렵죠. 실제로 복수의 AI 모델을 활용하면 개별 AI 모델로는 불가능하던 위험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많은 종류의 기술들 중 단일 객체로 구성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여러 모듈로 구성된 시스템이죠. AI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일 AI 모델이 부적절한 출력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서 안전하다고 홍보해도, 여러 개의 AI 모델과 다른 기술들을 활용해 만든 복합적인 시스템은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AI 안전성은 모델 안전성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이렇게 모델이 아닌 시스템을 보면서 AI 안전에 대한 시야를 넓히면 시스템이 기술로만 구성되는 것도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요. 다음에는 이처럼 AI 안전을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회기술적 접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AI 윤리가 궁금한 사연 by. 🤖아침 AI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하는 뉴스레터를 1년 남짓 운영하며 줄곧 느끼는 갈증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한국, 좀 더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에 발을 디딘 비판적/대안적 AI 담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웬 푸념? 조금 부연해보겠습니다. AI 기술에 관련된 이야기는 흔히 서구-영어권을 위주로 서술됩니다. 이 세계관의 중심에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술적 혁신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또다른 주연급인 EU는 법규제 등 제도적 장치를 선도하는 역할이고, 중국은 기술개발과 제도 측면에서 모두 발빠르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사실상의 적대 진영으로 자리합니다. 이 세계관에서 한국을 포함한 여타 국가에게 중요하다 여겨지는 것은 위 국제질서 속에서 생존하는 일입니다. 서구 기업과 적극 협력하거나, 아니면 실리콘밸리 자본에 잠식되지 않는 독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 산업을 육성하며 자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규제를 마련하거나, 기본 전제는 비슷합니다. 즉 기술은 서구에서 나와 비서구로 전파되거나, 비서구에서 따라잡아야 하는 무언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입니다. 기술은 서구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것도 아닙니다. 각 지역의 기술 개발은 서구 기술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여러 비판적 연구, 언론 보도, 활동가의 개입 덕분에 우리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저임금 노동이 AI용 데이터를 만들고, 컴퓨팅 인프라를 위한 광물이 세계 각지에서 채굴되는 의존 관계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같은 비판적 담론은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 하나는 AI 기술이 기존 권력 구조를 강화 재생산하는 방식을 보여줌과 함께 남반구 세계(제3세계/다수세계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의 관점을 드러내어, 서구 중심의 AI 세계관에 균열을 내는 것입니다. AI를 둘러싼 개념을 다양한 관점에서 재정립하는 작업(사례1, 사례2), 참여-개입-연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사례1, 사례2), 비-서구에 초점을 맞춘 언론 활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같은 노력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서구 - 남반구]로 확장된 구도에서도 한국 같은 지역은 다소 모호한, 희미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고 느낍니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AI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기술 비판 담론 역시도 서구-영어권을 주축으로 활발한 조건 속에서, 한국 등지에 주목하는 비판적 AI 논의가 실제로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곳을 기반으로 힘쓰는 연구자, 기술 종사자, 교육자, 활동가, 창작자, 언론 종사자, 정책전문가 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실제로 이들의 노력 덕에 노동, 교육, 기후 등 AI를 둘러싼 여러 이슈에서 사회적 대화가 풍부해지고 있고요. 그러니까 제가 국내 논의에 아직 과문해서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겠지요. 이 뉴스레터 역시도 서구나 남반구의 관점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를 찾아 배우고 연결하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럼에도 아쉽습니다. AI 관련 논의가 사회적 가치보다 산업 육성, 국제 경쟁, 트렌드 적응 같은 것에 쏠려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건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적 개입은 물론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곳’, 한국 그리고 나아가 동아시아의 이야기가 획기적으로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역적 현실에 충분히 발딛지 못한 기술 비판 담론은, 주류 질서에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에 편취될 위험을 갖는 것 아닐까요? 예컨대 AI 윤리/안전 분야 일각에서 ‘다양성’이라는 키워드가 ‘AI 주권 확보’를 위해 국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동원되거나 ‘리터러시’ 개념이 ‘AI 서비스 사용자 비중’으로 환원되는 양상을 보며, ‘AI 윤리’가 정치안보/경제 논리를 맞닥뜨릴 때 어떤 효력을 가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다시 말해 앞서의 서구 중심 AI 세계관이나 거기서 뻗어나오는 발전주의 논리가 AI 윤리 논의를 포섭하여 무력화할 위협이 있으며, 이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 중 하나는 지역적 현실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리잡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국경의 테두리 안에서만 진행되는 논의 역시 (그간의 비판적 담론이 보여주듯 현실과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개별적 국가 내부의 사회적 이슈로만 머물러서는 '발전주의'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다른 곳의 사정을 파악하고, 그곳의 비판적 목소리와 이곳의 목소리를 연결하고 확장하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역적 맥락을 구체화하고, 특정 국가 이상으로 더 넓은 연대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통해 국가주의/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른 AI 발전론을 견제하는 하나의 축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적 맥락은 앞서 언급한 서구 및 남반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한국과 주변 지역의 위치성과 관계성 측면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독자 피드백 중 종종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이 주변에 잘 없는데 뉴스레터 같은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요지의 의견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감사한 일입니다. 동시에, 이같은 공간이 더 넓고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첫머리에서 동아시아를 호출한 것은 이런 연유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한국과 여러 특성을 공유하는 지역에서 AI 윤리 관련 논의를 확장하고 연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대만 등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공간은 한국과 지정학적 맥락뿐만 아니라 근현대를 거쳐오며 평화, 노동, 환경, 젠더 등 다양한 시민 연대를 실천해온 역사적 맥락 또한 공유합니다. 이같은 조건이 AI 기술에 관한 비판적 논의에서 공통의 지점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즉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목소리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자체도 더 다듬어야 할테고요. 우선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 AI 윤리와 관련된 주요 이슈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찾아보려 합니다. 거창한 취지와 별개로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고요. (일본이나 대만 등지에서는 한국의 이루다 이슈 같은 것이 없었을까요?) 이 주제에 관해 조언이나 팁이 있으신 분, 같이 디깅하고 싶으신 분은 연락 주세요.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
수익률 뻥튀기에 월세 먹튀까지… 피해자 두 번 울렸다 [유령타운의 비명 2화]
똑똑한 눈이 달려서 자기 자리를 알아서 찾아간다는 돈. 그 종착지는 언제나 건물주의 주머니였다. 서울 동대문・남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며 30대를 보낸 김용균(48) 씨의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건물주 되는 게 어렵다면, 점포 주인이라도 되자!’ 김 씨는 자영업을 접고 발전소 협력업체에서 석탄관리 일을 하면서도 ‘점포 주인’이란 꿈을 접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부동산경매 학원에 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저금리 시대에 서울 아파트 값이 폭등하는 등 너도나도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던 2017년. 직장 동료가 “상가 분양을 알아본다”며 김 씨에게 함께 임장(현장방문)을 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아파트형 공장, 지식산업센터 등 상가 분양이 유행을 타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분양사무실이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사업지는 인천 서쪽 끄트머리, 중구 연안부두에 위치했다. 소월미도로 가는 항구 근처 공단 밀집 지역이다. 축구장 4개 크기로 지어진다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4개동 802개 호실의 대규모 상가였다. “압도적인 빅 체인지가 시작된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희소가치가 높은 공실률 없는 특수상가”“인천구도심 재생사업 등 다양한 대규모 개발비전의 중심”“연 수익률 12.44%” 분양사무실에 놓인 홍보 팸플릿 문구가 김 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1.5평(전용면적 4.42㎡)짜리 점포 분양가는 1억 2000만 원. 홍보물에 나온 수익률을 적용하면, 월세로만 100만 원 이상 기대됐다. ‘홍보물이 다소 과장됐더라도, 월세 70~80만 원은 받을 수 있겠는데?’ 김 씨는 “꽤 괜찮은 노후 대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쉽게 뛰어들 일은 아니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부지에서 약 800m 떨어진 인천종합어시장이 마음에 걸렸다. 김 씨는 다시 한번 발품을 팔아 인천종합어시장으로 향했다. 1977년에 지어진 어시장은 500개 호실로 규모는 컸으나 낡고 오래돼 이용이 불편했다. 특히 주차 시설이 좋지 않았다. 김 씨는 회를 사먹으며 직접 상인들을 인터뷰했다. 인천종합어시장의 월세는 최소 180만 원. “우리야 장사 잘되고, 월세 낮으면 얼마든지 가게를 옮길 마음이 있지!” 김 씨는 직접 만든 명함을 상인들에게 건넸다. 그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이 준공되면 다른 곳보다 월세를 싸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쯤 했으면, 현장조사는 끝. 김 씨는 2017년 11월 상가 분양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김 씨는 분양금 1억 2000만 원 중 4900만 원은 대출로 충당했다. 수산물타운 준공이 끝나면, 드디어 월세 내던 사람에서 받는 사람으로 전환. 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동대문시장에서 도매 경험이 없었다면 상가 분양을 안 받았을 텐데… 이제 와서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802개 호실 중에서 512개만 분양됐다. 미분양률은 약 36%.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상가 대부분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텅 빈 상태다. 상인도 없고 손님도 없고 물고기도 없으니, 그야말로 이름만 ‘수산물타운’인 셈이다.(관련기사 : ‘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임차인 구해달라고 해도 저희가 중개를 안 해요. 이미 분양 단계부터 망한 자리예요.” 지난 6월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에 오래된 인천종합어시장이 있잖아요. 아파트단지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잖아요. 누가 차 타고 거기(인천국제수산물타운)까지 나가겠어요.” 김용균의 현장조사와 예측이 크게 빗나간 상황. 인천종합어시장은 지은 지 5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재개발 계획은 정해진 바가 없다. 설령 재개발한다 해도 그쪽 상인들이 모두 인천국제수산물타운으로 이전한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 김 씨가 분양사무실에서 들었던 “예상 수익률 12%”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시행사는 예상 수익률을 지나치게 부풀려 2017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한마디로 허위・과장광고였다. 건물의 준공 예정일은 2019년 10월이었다. 하지만 건물 사용승인은 5개월이 더 지난 2020년 3월 27일에야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도 장사는 불가능했다. 어시장에 바닷물(해수)이 나오지 않았다. 바닷물 공급 펌프에 모터가 설치되지 않은 채 준공이 떨어진 거였다. 시설 공사는 2020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처음 약속한 준공 예정일에서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김용균 씨는 임차인을 못 구해 골머리를 앓았다. 월세 수입은커녕 매달 대출금 이자만 내고 있다. 이른 시일 내 시장 정상화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때 시행사 대표가 김 씨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분양받은 상가를 저한테 임대해주십시오. 제가 상가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임대 조건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4만 원. 첫 3개월 무상임차 단서가 있었지만, 김 씨에겐 거부할 일이 아니었다. 김 씨는 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임대차 기간은 2020년 8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시행사 대표는 법인 ‘인천연안수산시장농축산복합’을 만들어 4개 동 1층 수분양자들에게 점포를 빌렸다. 월세만 들어온다면 점포 주인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월세요? 지금까지 밀린 거 다 필요 없으니까, 시행사 대표가 빨리 (상가에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김 씨가 분양받은 상가가 있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 A동으로 가봤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유일한 수산물 판매업체가 영업 중이었다. 손님은 나 한 명이었다. 점심 때 한 번, 다른 날 저녁 때 또 한 번 방문했지만 사정은 똑같았다. 어쨌든 영업 중이니 분명 임대료를 낼 터. 하지만 여기에도 꼼수가 있었다. 수산물 판매업체는 시행사 대표와 임의로 이중 임대차계약을 맺고 들어왔다. 김 씨를 비롯해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2개월 치 임대료밖에 받지 못했다. 시행사 대표에게 임대료를 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상가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 등이 전부였다. 김 씨를 포함 상가분양 피해자 68명은 법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2021년 9월 시행사 대표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밀린 임대료를 지급하고 상가를 비워달라는 요구다. “(시행사 대표는) 이 사건 각 상가를 해당 원고들(상가분양 피해자)에게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는 외에 미납 차임 및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 또는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있으므로 (…)” (건물 인도 소송 1심 판결문, 2022. 10. 14.)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지난 5월 결국 승소했다. 대법원까지 2년 4개월이나 걸린 긴 싸움이었다. 하지만 시행사 대표는 여전히 임대료를 주지 않고 있다. A동 1층 수산물 판매업체는 지금도 영업 중이다. 허위・과장광고에 당한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시행사 대표에게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시행사 대표가 ‘알 박기’ 식으로 버티는 동안, 그의 아들은 시행사 명의 A동 4층 상가에 대형 카페를 차려 장사를 하고 있다.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법원에 수산물 판매업체 카드 매출채권 가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은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시행사 대표는 수산물 판매업체의 카드 단말기를 자기 아들 사업자 명의 기계로 바꿔치기했다.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시행사 대표와 그의 아들을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2022년 고소했다. 강제집행면탈이란, 강제집행을 피하고자 고의로 재산을 숨기는 등 행위를 말한다. 경찰 수사 결과는 2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게, 상가주인이 되겠다는 김 씨의 꿈은 인천 연안부두 바닷가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 노후를 생각해서 시작한 일인데, 제 공부가 부족했나 봅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해결이 난망한 ‘부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현장이다. 대규모 미분양과 공실 사태, 물고기와 비린내 없는 축구장 4개 규모의 ‘유령타운’이 그걸 증명한다. 시행사는 2020년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미분양 상가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약 480억 원을 대출받았다. 건축 과정에서 받은 PF 대금을 갚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출금은 2022년 3월부터 연체됐다. 시행사는 지방세 등 6억 원가량을 체납했다. 시행사 소유의 일부 상가는 압류된 상태다. 하지만 시행사 대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김 씨 등이 제기한 소송 외에도, 분양대금반환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가 더 있다. 그 소송 역시 시행사 측이 패소했지만, 위약금은커녕 분양대금 원금조차 갚지 않고 버티고 있다. 현행법상 분양 과정에서 허위・과장광고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연안부두 국제수산물타운 소유자 모임’ 커뮤니티에 가입한 피해자만 340여 명. 피해자는 이들만이 아니다. 세금 체납은 공공의 피해로 이어진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담보로 수백억 원의 돈을 댄 금융권 역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 중구청은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구청 관계자는 “손님이 없어 공실 상가가 된 건 소비자 선택의 영역이다, 관에서 공실 상가에 대해 지원하거나 해결해줄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과 16일 시행사 대표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준공 인허가 과정의 문제와 예상 수익률 과대광고 등에 관해 묻고자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신 역시 없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5
·
‘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유령타운의 비명 1화]
서해 바다 위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차를 달렸다. 도착한 곳은 인천 연안부두에 위치한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인천 중구 항동). 차를 몰고 A동 지하주차장에 진입했다. 지하 1층은 주차공간이 좁았다. 한 층 더 내려갔다. 곳곳에 주차 자리가 비어 있었다. 수상한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번호판이 없는 외제차였다. 틀림없이 이런 차가 더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3층 주차장에 진입하자 마주친 건 빨간색 포르쉐 스포츠카. 역시 번호판은 없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인 여성이 스포츠카 옆에서 얄궂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두 남성은 그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 중이었다. 차를 돌려 빠져나가기 위해 주차장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얼마 못 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 주차장 통로까지 번호판 없는 차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수산물타운’ 주차장에서 목격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의아한 장면의 연속. “어디 찾아오셨어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경계하며 물었다. 수산물타운에 왔다고 답하자, 남성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여기 차 못 돌려요. 후진해서 나가세요.” 번호판 없는 외제차들은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중고차로 보였다. ‘수산물타운’ 주차장에 횟감을 사러온 손님들의 차량 대신 선적 대기 중고차로 짐작되는 차량만 가득한 상황. ‘국내 최대’를 자랑하던 인천국제수산물타운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음이 틀림없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축구장 4개 크기, 연면적 5만 7550㎡ 규모의 초대형 상가다. 지하 3층, 지상 4층으로 규모로 4개동, 전체 802개 호실로 구성됐다. 분양대행업체에 따르면, 건물 외형을 지어올리는 데만 약 1800억 원이 들었다. 그날 저녁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찾아간 이유는 지난 5월 도착한 제보 메일 한 통 때문이다. “억울함과 허탈한 마음에 용기 내어 글을 작성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건물 준공이 완료됐지만 4년째 대부분 공실로 수분양자(상가를 분양받은 사람)의 고통만 남겨졌습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그곳 이름을 넣어보니, 몇 년 전 발행된 기사들이 먼저 뜬다. <인천 항동에 들어서는 초대형 수산물 테마파크><국내 최대 어시장… 수익률 ‘살아있네’> 각동 1층에는 수산물 도・소매점, 2층에는 활어 전문 식당, 3~4층에는 노래방, 카페, 스크린골프장, 찜질방, 공연장 등이 생긴다는 소식이었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장밋빛 미래’를 노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보자 서희성(42) 씨가 이야기한 현실은 장밋빛이 아니라 잿빛이었다. “국내 최대 어시장”의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찾아갔다. 소월미도로 가는 항구 근처 공단지역. 인근에는 물류회사 간판이 붙은 컨테이너가 쌓여 있었다. ‘축구장 4개 규모’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아봤다. 이상했다.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A, B, C, D동으로 구분된 건물 내부 역시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B동 1층으로 들어갔다. 565평(1864.69㎡)이나 되는 상가 내부는 깜깜했다. 퀴퀴한 먼지 냄새가 풍겼다. 천장에는 “행사코너”, “제철코너” 등이 적힌 간판이 매달려 있었다. 수조와 수산물 판매대 위에는 먼지만 가득했다. 수조 뒤에는 에어컨 실외기 10대 정도가 놓여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는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도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D동으로 가봤다. 어두운 내부로 들어가자, 바로 왼쪽에 분양홍보관 사무실 위치를 알리는 가판대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아예 장사를 했던 흔적조차 없었다. 상가 1층 바닥에는 구획을 나누는 흰색 선만 그려져 있었다. C동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1층에는 생선회를 떠와서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꾸며져 있었다. 캠핑용 의자와 고기 불판 설치가 가능한 식탁을 갖춘 텐트 약 20개도 보였다. 캠핑 분위기로 한껏 꾸몄으나, 여기에도 역시 손님은 없었다. 2층부터 4층까지 올라가 봤다. “주인 직접 임대, 010-XXXX-XXXX” 불 꺼진 텅 빈 상가 유리창마다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날 인천국제수산물타운에서 광어, 우럭보다 더 자주 만난 건 이런 안내문이었다. 마지막으로 A동을 찾았다. 드디어 도다리, 아나고 등 물고기가 보였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유일한 수산물 판매업체가 1층에서 영업 중이었다. 손님은 나 한 명이었다. 날짜를 바꿔 점심 시간에도 가보고, 저녁 시간에도 가봤다. 하지만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제보자의 말 그대로였다. 불 꺼진 건물, 텅 빈 상가, 비린내 없는 어시장, 선적 대기 중고차만 가득한 주차장.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거의 ‘유령타운’이었다. “시행사가 처음부터 판을 잘못 깔았어요!” 제보자 서 씨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만든 시행사 대표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건축 사업은 2017년 본격 시작됐다. 서 씨는 이때 지인 소개로 1.5평(전용면적 4.42㎡) 수산물 판매대 자리 한 칸을 약 1억 6000만 원에 계약했다. 이중 8500만 원은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시행사는 연 수익률을 ‘12%’라 광고했다. 일부 분양대행업체는 수익률을 20%까지 부풀리기도 했다. 2017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허위・과장광고로 보고 경고 조치를 했지만 광고는 달라지지 않았다. “공실률 없는 특수상가 프리미엄”이라는 광고가 무색하게도,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터졌다. 미분양률은 약 36%. 서 씨가 확보한 채권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시행사 소유 미분양 호실은 총 290개다. 전체 802개 호실 중 512개만 분양됐을 뿐이다(2024년 6월 기준). 건물의 준공 예정일은 2019년 10월이었다. 준공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행사는 4개월 뒤인 2020년 2월부터 상가 입점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그조차 말뿐이었다. 건물 사용승인은 2020년 3월 27일에야 떨어졌다. 준공 예정일로부터 5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인천 중구청의 건물 사용승인 후에도 장사는 불가능했다. 바로 옆이 바다인데도, 어시장에는 바닷물(해수)이 나오지 않았다. 바닷물 없는 어시장이라니. 알고 보니, 바닷물을 공급하는 펌프에 모터가 설치되지 않은 채 준공이 떨어졌다. 해수 공급 펌프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서 씨는 2020년 5월 인천 중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중구청에서 건축사무소의 감리 의견을 듣고 (건물 사용) 최종 승인을 해주는 것 아닌가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아직도 해수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시장의 제일 중요한 해수가 안 나오면 어떻게 장사를 하나요? 현재(2020년 5월)까지 4개 동 1층의 총 500여 개 점포 중 장사를 하는 곳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천 중구청은 “해수 사용 등에 대해서는 건축법상 정하고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입점 등에 관한 사항은 계약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해수 펌프 등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모든 시설 공사는 2020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처음 약속한 준공 예정일에서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그동안 임차인을 구할 수도 없었고, 직접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대출을 끼고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1년 2개월간 아무 수입 없이 이자만 낸 셈이다. 수익률을 부풀린 허위・과장광고와 대규모 미분양 사태에 이어, 바닷물도 공급되지 않는 등 1년 2개월이나 지연된 공사. 그러는 동안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성패를 좌우할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렸다. 서 씨는 2020년 8월 시행사에 분양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확정 입점 예정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입점할 수 없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제가 (시행사 대표에게) 위약금도 필요 없으니까, 계약 취소하고 원금만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법대로 하라’고 하더라구요.” 서 씨는 한 달 뒤 시행사를 상대로 분양대금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분양대금 약 1억 6000만 원과 위약금 1600만 원 상당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서 씨는 시행사가 확정입점 예정일, 상가의 규모, 주차장 크기, 공실률 등을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서 씨의 손을 들어줬다. 시행사가 서 씨에게 분양대금과 위약금을 전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시행사는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 최종 승소까지 걸린 시간만 2년 3개월. 그런데 서 씨는 끝내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법대로 하라고 해서 법으로 이겼는데, 이번엔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구요.” 시행사는 2020년 미분양 상가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약 480억 원을 대출받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건축 과정에서 받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금을 갚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출금 상환마저 2022년 3월부터 연체됐다. 시행사는 지방세 등 약 6억 원의 세금도 체납했다. 시행사 소유의 280개 호실 상가 중 일부는 압류된 상태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유령타운을 넘어 이제 ‘시한폭탄’이 돼가는 중이다. 폭탄이 터지면 수분양자들은 물론, 금융권과 지역경제가 줄줄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서 씨는 해마다 대출 연장 기한이 돌아올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대출금 8900만 원을 갚을 방법은 없는데, 시행사는 분양대금을 돌려줄 계획도 없어 보인다. “시행사 대표는 이런 말도 하더라구요. ‘어머니뻘 되는 나이 지긋한 수분양자도 (시행사에게) 상가 다시 가져라고 울고 그러는데, 당신(서 씨) 분양대금을 어떻게 돌려주느냐’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피해자는 한두 명이 아니다. ‘연안부두 국제수산물타운 소유자 모임’ 커뮤니티에 가입한 피해자만 340여 명. 상가에서 들어오는 수익은 한 푼도 없지만 대출이자는 꼬박꼬박 갚아야 한다. 분양계약을 파기하고 대금을 돌려받고자 해도 시행사는 ‘마음대로 하라’며 배짱을 부리고 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늪에 발목이 빠져 있는 상황.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네 곳의 업체가 분양을 대행했다. 한 분양대행업체 대표는 “우리 회사에서만 약 900억 원의 분양 실적을 올렸다“고 말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이 언제쯤 정상화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시행사 대표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기도 “애매한”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는 수백 명, 피해금액은 수백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아무도 처벌받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지난달 12일과 16일 시행사 대표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준공 인허가 과정의 문제와 예상 수익률 과대광고 등에 관해 묻고자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신 역시 없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3
·
구글 검색 너 독점 맞음
1. 구글 검색 너 독점 맞음 온라인 검색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는 미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구글이 애플 등 기기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탑재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을 통해 불법적으로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해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용자가 기기의 초기 설정값을 바꾸지 않은 채 인터넷 브라우저나 검색엔진 등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 기업들이 관습이라고 포장한 기본 검색 엔진 설정에 대한 위법성을 판단하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검색 엔진은 단순히 정보의 접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의 수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검색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특히 이 판결의 중요성이 두드러집니다. 이 판결이 실제로 어떤 정책적 변화를 일으킬지 눈여겨봐야겠습니다. 2. 회의주의자로 살아남기 역사적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벌이는 전쟁과 긴밀한 관계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전 뉴스레터에서 살펴보았듯, 많은 AI 기술이 오늘의 전쟁과 죽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목소리도 다른 뉴스레터에서 전해드렸습니다. 며칠 전 'AI 시대의 무기 판매상'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AI 기업인 팔란티어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하여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에 AI 분석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습니다. 관련 국내 기사를 찾아보니 이 발표 이후 해당 기업의 주가가 어떻게 변동되었는지 다루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AI와 전쟁, 그리고 주식시장.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를 비롯한 여러 전쟁의 한 가운데 인류의 번영을 위해 개발되었다는 각종 AI 기술이 사용되는 것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들이 이러한 추세에 동조하는 것, 그리고 그런 거래의 이면에는 무관심해보이는 인류의 미래가 암담해 보이는 것은 저 뿐일까요? AI 기술의 첨단에 서 있는 기업들의, '인류의 번영'을 위한다는 선언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더 읽어보기- How Tech Giants Turned Ukraine Into an AI War Lab (Time, 2024-02-08)- 🦜전쟁 기술을 거부하는 노동자들 (2024-04-15)- 🦜전쟁과 죽음의 기술 (2023-10-30) 3. 국산 거대 언어 모델 추가요 LG AI 연구원에서 거대 언어 모델 EXAONE 3.0 7.8B을 발표했습니다. 해당 모델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로 공개되었습니다. 같이 발표한 기술 보고서에서 '책임 있는 AI' 를 모델 학습 및 평가와 더불어 별개의 장으로 할애하여 다룬 것이 돋보입니다. 다만 AI 윤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몇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술 보고서에서 다루는 모델의 위험성을 논함에 있어서 악의를 가진 오용에 집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대 생성 모델의 '선용'과 '오용'의 애매한 경계에 대해서는 지난 레터에서도 논의한 적 있죠. 또 다른 하나는 편향을 측정하는 방법에서의 정확성인데요, 이는 EXAONE 3.0 7.8B 모델의 자체의 한계라기보다는 해당 모델을 평가하는 데 사용한 벤치마크 데이터의 한계입니다. 기술 보고서를 보면, 지역 편향의 예시로 지역의 난방비와 소득수준의 연관성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과연 지역 편향의 문제일까요? 거대 언어 모델을 비롯한 각종 생성 모델의 사회적 영향력을 평가하는 데에 안정성이나 편향이 널리 사용되지만, 이러한 측정 지표의 유효성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거대 생성 모델이 온 세상 곳곳에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 모델의 위험성이나 영향력을 정확하게, 많은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측정할 수 조차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AI 개발의 현주소입니다.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
5
·
911 메모리얼과 세월호 기억교실, 이태원 참사, 아픔을 기억하는 명징한 방법
미국 뉴욕의 경제 중심 월가(Wall Street)에는 꼭 가 봐야 하는 곳이 있다. 즐거운 곳은 아니다. 오히려 가슴 아픈 곳. 바로 9/11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WTC) 메모리얼 & 뮤지엄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은 가장 공포스러운 곳이 되었다. 미국 경제의 상징건물이었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거짓말처럼 차례로 무너졌다. 납치된 항공기가 쌍둥이 빌딩을 뚫고 무너뜨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이 세기의 대폭발 테러는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다.  지금 이곳에는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안에는 WTC의 마지막 기둥과 파편, 당시 희생자들이 지나갔을 계단의 일부와 건물의 한 면 등이 테러의 상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참사의 흔적인 먼지가루들이 시간이 멈춘 듯 보존된 상점의 옷 위에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  9/11 메모리얼 & 뮤지엄 안에는, 카메라에 담을 수 없게 된 구역이 있다. 당시 사건을 재현한 역사관이다. 이곳에서는 아픔을 세세히 기억하고 명징히 드러내 밝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  9/11 사건이 터진 8시부터 분단위로 세계무역센터의 상황, 대통령 및 정부 대응, 경찰 대응, 소방관 대응 등 전과정이 디테일하고도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날의 언론보도, 뉴스 상황, 주변인들의 반응 등의 영상들은 우리가 바로 그 날에 들어간 듯 생생하게 녹화되었다.  유치원에 참여 중이던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사건 소식을 접하고 급히 자리를 뜨는 모습부터, 일사천리로 대응이 진행되는 과정과 뉴욕 및 주변 도시 각지에서 경찰과 소방관, 응급 의료진들이 모여든 지도까지. 뿐만 아니라, 신고가 들어온 시각과 당시 전화로 신고하고 대응하는 음성 녹음도 그대로 들을 수 있다. 벽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들면 관람자가 직접 그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항공기가 첫번째 건물을 통과해 폭파되고, 두번째 항공기가 두번째 건물을 통과한 뒤,  각 건물의 몇번째 층 희생자가 전화를 걸었는지, 또 그 목소리도 확인 가능하며, 건물이 무너진 뒤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애썼던 혹은 목숨을 잃은 영웅들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충격을 금치 못하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하나도 남김없이 주워 담았다.  다른 한편으로 납치된 항공기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 음성 등 모든 자료들이 총동원되었다. 테러범이 공항 출입을 하는 CCTV 영상 기록. 테러범들이 조종실을 침입하여 나누던 대화도 녹음된 음성과 번역된 문자로 귀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채로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메세지나 음성 녹음을 남긴 항공기 안의 희생자들의 목소리와 문자 내용도 확인하게 된다.  “비행기에 조금 문제가 생겼어. 별 일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랑해. 다른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 줘.”  “비행기가 납치된 것 같아. 여보, 사랑해. 아들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 줘.” 그날의 행적은 사소한 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았다. 불탄 소방차, 희생자의 구두, 가방 등. 몇 시 몇 분 몇 초라는 시각까지도. 당시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위한 멘탈 치료도 이루어진 걸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끝일까. 기억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두번 다시 동일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 다음일 것이다.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은 당시 사건 기록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후 정부가 어떻게 사건을 규명하고,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를 다시 일으켜 세웠는지, 또 기업들은 어떻게 사회적 재난에 기부로 마음을 보탰는지 보게 된다. 사건의 원인 규명 과정, 재건 과정, 새로이 지어가는 세계무역센터의 타임랩스 영상.  지나는 길 한쪽 벽에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금언이 적혀 있다.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없을 것이다. - 베르길리우스” 이 문구는 묘하게 기시감을 준다. 바로 얼마 전 10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참사 기억식, 4월 16일에 이와 비슷한 문구를 똑같이 되새겨 본 적이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미국의 재난에 대응하는 방법, 기억하는 방법을 보자니 세월호 참사의 기억관 및 기억교실이 사뭇 안타깝게 느껴진다. 당시의 상황 및 원인 규명, 정부, 해경, 언론의 대응, 희생자들의 유품이나 가족들의 아픔 등.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드러난 게 없고, 드러내려 하지 않고, 심지어 대통령이 그 시각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국가 재난 사건에서, 단지 책임자를 찾자는 것 이상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소소하다 못해 참담하다. 희생자들의 가족들만이 세월호 참사 기록단을 만들고 운영하며, 그 날을 기억하려 애쓴다. 국가도, 기업도, 사회도 그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했을까. 몇 해 뒤 일어난 이태원 참사 역시, 그 연장선 상에서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참사의 대응에 대한 논란만 존재할 뿐이다. (연합뉴스_ 장보인 기자_"기동대 있었다면 이태원참사 피해 최소화" 경찰들 진술) 심지어 2024년 6월 문을 연 이태원 참사 임시 추모 공간 ‘별들의 집’ 도 11월에는 재개발로 인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 (뉴시스 홍연우 기자 ‘시한부’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 석달 후엔 어디로 가야하나) 사회적 재난의 기억들이, 매 순간 잊혀지고 반복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망각으로 가는 순간,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떻게 예방 혹은 재건해야 할지, 여전히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가슴 아픈 기억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호 참사 가족단이 이룩한 것들도 우리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기억 교실이 남아 있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을 위로할 수 있고, 법률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재건했는지 더불어 기록하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매번 일어나는 재난에 늘 같은 방식으로 흐지부지 지나쳐 버린다면, 우린 그 참사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희생자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지점에서 9/11 메모리얼과 뮤지엄의 기억 재생 방법과 그 대처는 우리의 아픔과 참사를 기록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줄지도 모른다. 반복되어선 안되는 역사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말처럼 결코 시간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서는 안된다.  
·
10
·
‘쥐그림’ 구속영장 치던 그 시절… 윤석열 풍자 가수도? [우상의 정원 18화]
풍자와 패러디는 그에겐 빼놓을 수 없는 도구였다. “이번에 KTV가 저작권법으로 고소했지만, 사실…. 건희야(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네가 한 거잖아. 직접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맞다이(맞상대) 떠야지. 뒤에 숨지 말고!“ 대통령 풍자 노래를 만들었다가 고소당한 가수 백자(본명 백재길, 52세)는 이번엔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패러디했다. 지난 1일, KTV 고소 규탄 기자회견 중 나온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정책방송원(KTV)은 지난 3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가수 백자를 형사고소했다. 대통령실이 올해 설 명절 메시지로 가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라는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백자가 “탄핵이 필요한 거죠”로 개사해 부른 걸 문제 삼았다.(관련기사 : “풍자 유튜버 고소? 명품백 받은 죄인부터 잡아가라”) 백자가 유튜브 계정 ‘가수 백자tv’에 올린 풍자 영상은 KTV의 신고로 게시 3일 만에 삭제됐다. 이번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 대통령 부부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는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저작물 무단 이용을 문제 삼는 거지만, 사실 뒤에선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기 때문.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를 해서 저를 괴롭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별건으로 또 다른 (형사 사건이) 들어올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제가 활동했던 다른 건을 갖고 국가보안법 문제를 건다거나… 윤석열 정부에선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2024. 7. 16. 백자 인터뷰)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KTV 민간인 고소 사건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있었던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2010년 ‘G20 쥐 그림 사건’이다. 그해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서울 곳곳에는 회의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됐다. 2010년 10월 31일 자정. 대학강사 박정수 씨는 그날 분필 대신 스프레이를 잡았다.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 틀을 대고,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렸다. G20 포스터에는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청사초롱이 그려져 있었다. 박 씨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포스터 오른쪽 편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마치 쥐가 청사초롱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박 씨와 일행들은 서울 곳곳에서 22개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경찰에 붙잡혔다. 훈방 조치 정도로 끝날 법한 ‘낙서’ 사건. 하지만 수사기관은 오히려 사건을 키웠다. ‘공안 검사’를 등장시켰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2부가 사건을 맡았다. ‘불순한 의도’를 밝히겠다는 취지였다. 수사기관이 주목한 건, 이들이 그린 동물이 토끼나 호랑이가 아닌 ‘쥐’라는 점이었다. 쥐 그림이 누군가를 연상시킨다는 것. 바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다. 해프닝에 가까운 풍자 낙서가 무려 ‘공안사건’으로 비화된 상황. 당시 박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의 입장을 이렇게 항변했다. “쥐라고 하는 형상에는 꼭 그렇게 단순하게 특정인만 결부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 사회의 거대한 권세라든가 많은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이나 우리의 건강한 시민의식을 갉아먹는 그런 어떤 병균을 옮기는 그런 모든 사람들, 어떤 영혼의 상징적 표현이다. (…) 제 등 뒤에서 등을 떠민 배후를 묻는다면 이 시대의 무거운 공기가 아닐까 생각한다.”(2010. 11. 17.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인터뷰 중) 강제수사도 동원했다. 서울남대문경찰서는 박 씨와 동료를 긴급체포했다. 그리고 공동손괴 혐의로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수사기관은 박 씨 주변부까지 수사망(?)을 넓혔다. 배후세력을 찾겠다는 거였다. 그가 학술연구모임인 ‘수유+너머’ 회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검경은 쥐 그림을 그렸거나 지켜봤던 회원 5명 전원을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결국 박 씨는 유죄를 확정받았다. 2011년 1심 법원은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씨에 대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벌금 200만 원의 원심이 확정됐다. “이 사건 공용물건을 훼손한 범죄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피고인 박 씨가 G20 행사를 방해할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한 방법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해학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예술적 표현의 일종으로도 보여질 수도 있는 점 (…) 여러 양형조건을 참작하여 피고인에 대해 벌금형을 선택하여 판결한다.”(1심 판결문 양형이유)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서 ‘G20 쥐 그림’ 사건이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해프닝에 가까운 사건에, 수사기관은 온 힘을 다해 강제수사란 칼날을 휘두르고, 결국 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낸 전력이 있어서다. 가수 백자의 법률대리인 김종귀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두 사건의 유사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쥐 그림’ 사건을 피상적으로 접하신 분들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벌금형을 받았다고 생각하실 수가 있는데, 공용물건 손상죄로 유죄 판결이 난 것입니다.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서도 대통령실이나 KTV가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걸고 싶었겠죠. 하지만 (해당 혐의로는) 유죄가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저작권법이라는 걸 이용해서 (민간인을) 고소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쥐 그림’ 사건과 동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024. 8. 1. 기자회견) 윤홍기 사단법인 오픈넷 연구원도 “이번 KTV의 민간인 고소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와 정부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기 위해 시민들을 형사 절차로 겁박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반민주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풍자물에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이제는 공공기관이 나서서 일단 저작권 침해를 무리하게 주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KTV는 가수 백자를 고소하기에 앞서, 지난해 11월 유튜버 ‘건진사이다’ 채널을 운영하는 ‘조장’ 이필승(가명) 씨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조장 이 씨는 주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공적 활동 영상을 활용해 풍자 영상을 만들어왔다.(관련기사 : 김건희 저격 고소당한 유튜버 “채널 폐쇄 목적 확실”) KTV가 민간인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한 건, 2007년 설립 이래 이때가 처음이다. 사건을 담당한 수서경찰서는 피의자 조사 일주일 만에 이 씨를 검찰로 송치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받고 사건이 빛의 속도로 넘어가더라고요. 조금 의아하긴 했습니다. (…)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검찰이 (피의자가) 유튜버들이니까 괘씸하게 보고, ‘범죄 혐의가 악의적이고 재범의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족들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될 수 없습니다.”(2024. 7. 15. 건진사이다 인터뷰) 이 씨에 대한 KTV의 형사고소를 대리한 법률대리인이 최지우 변호사(법무법인 자유)라는 사실도 ‘숨은 의도’에 대한 의심에 힘을 더한다. 최 변호사는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실 행정관 출신으로, 현재 영부인 김건희 씨가 연루된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 등을 대리하고 있다. 백자 역시 스스로 같은 절차를 밝을 거라 예상한다. “검찰도 여론이 부담스러우니 (기소 여부를) 쉽게 결정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일단 압수수색을 같은 걸 해서 대통령 부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여사님의 뜻을 따라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죠.”(2024. 7. 16. 백자 인터뷰) 셜록은 KTV에 반론을 요청했다. KTV는 지난달 22일 “‘가수 백자tv’와 ‘건진사이다’ 채널은 KTV의 저작물의 무단사용 외 개·변조의 정도가 심하고 악의적으로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 등을 침해해 저작권법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추가 질의는 이메일로 이어졌다. KTV는 가수 백자 형사고소 사건에서 선임한 법률대리인에 대해서도 답변했다. KTV는 착수금 495만 원에 법무법인 동백과 위임계약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동백은 언론사 뉴스토마토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민사소송에서도 원고 KTV를 대리하고 있다. KTV는 정부법무공단을 선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법무공단은 국가로펌으로 다양한 유형의 국가소송을 하기 때문에 수임제안을 하였으나 업무분야에 ‘형사고소’는 수임하지 않아 계약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3
·
🧭[경제] 꽁꽁 얼어붙은 세계 위를 반도체가 걸어다닙니다
요즘 테크, 경제 부문에서 반도체만큼 주목받는 주제가 있을까요? 또 제대로 논해보자면 반도체만큼 국제, 외교, 과학기술, 국내 산업 동향과 정책까지 모든 분야를 파고들어야 하는 주제도 없죠. 그래서 폴라리스가 눈이 번쩍번쩍해지는 광활한 반도체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엔비디아가 연 3세대 시장의 주요 반도체와 기업 핵심 요약 정리, 레이스 너머의 패권 전쟁, ‘반도체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상황까지. 이상 탐사 정보 브리핑이었습니다. 그럼 모두 준비 되셨나요? 3, 2, 1. 반도체로 딥다이브! "기술은 경쟁의 주도권을 결정하고, 혁신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칩워>, 크리스 밀러 #1 엔비디아, 왜 난리래? 요새 여기저기서 ‘엔비디아’란 이름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엔비디아가 장안의 화제인 이유는 이 기업의 주가가 4개월 만에 두 배 가량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AI 반도체가 있었죠. 현재 엔비디아는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요. AI와 반도체, 그리고 AI 반도체는 무엇이고 어떤 관계일까요? AI는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을 컴퓨터 과학으로 구현한 기술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2020년대 이후 발전한 생성형AI는 딥러닝으로 빅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을 뜻합니다. 비비의 밤양갱을 아이유가 부른 것처럼 만든다던가, 프롬프트에 명령을 입력하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등 현재 생성형AI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죠. 생성형AI 산업은 반도체 없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생성형AI가 학습할 빅 데이터를 저장하고, 비메모리 반도체는 생성형AI를 구현하기 위한 초고속 계산을 하기 때문이에요. 메모리 반도체는 저장 기능을 수행하는 반도체입니다.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강한 분야죠. 비메모리 반도체는 명령을 실행하는 반도체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제작 단계는 설계(팹리스)와 생산(파운드리), 검수(디자인하우스)로 나뉘어 있어요. 이중 우리가 AI반도체라고 부르는 것은 비메모리 반도체에 속합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요? AI 반도체는 아직 딱 정의되진 않았습니다. AI에 사용하는 반도체 모두(CPU, GPU, NPU)를 AI 반도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AI 맞춤형으로 제작된 반도체만(NPU) AI 반도체라고 하는 사람이 있죠. 엔비디아는 이중 현재 AI 데이터 센터 구축에 필요한 핵심적인 반도체인 ‘GPU’를 만듭니다. 이 GPU, 다른 기업도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왜 엔비디아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을까요? 엔비디아가 현재 AI 반도체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쿠다(CUDA, 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라는 소프트웨어 덕분입니다. ‘쿠다’는 엔비디아에서 무료로 배포한 AI 개발 플랫폼이예요. 약 10년 동안 ‘쿠다’를 기반으로 전 세계 AI 개발 생태계가 형성되었는데, 이 ‘쿠다’는 엔비디아의 GPU에서만 작동합니다. 이미 전 세계의 많은 개발자들이 이 ‘쿠다’라는 플랫폼에 익숙한 나머지 다른 GPU를 사용하기가 힘든 환경이 형성되었다고 해요. 생성형AI를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에 5천만 원까지 호가하는 엔비디아의 GPU를 울며 겨자먹기로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이에 여러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독점 체제를 깨겠다고 나섰습니다. 인텔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인 ‘H100’의 대항마로 ‘가우디3’를 내놨습니다. 앞으로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요? 전 세계 반도체 역사와 이를 둘러싼 쟁점을 담은 책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감이 잡히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보러가기 #2 두 세계 이야기: TSMC와 삼성전자 엔비디아 주가가 4월 말인 지금은 고점에서 살짝 떨어졌죠. 하락장이 본격 시작한 날은 대만에서 25년 만에 가장 강한 지진이 났던 지난 4일이었습니다. 지진 때문에 TSMC가 공장 가동을 멈췄거든요. 지난 글에서 잠깐 언급됐던 TSMC, 대체 얼마나 중요한 기업이기에 그럴까요? TSMC는 여러 업체에서 설계한 비메모리 반도체를 대신 맡아서 생산해 주는 기업입니다. 엔비디아에서 설계(즉, 팹리스)한 AI 반도체를 대신 생산(파운드리)해주는 곳도 TSMC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TSMC가 갖춘 영향력은 상당히 센데요, 팹리스-파운드리 구조를 만든 기업이 TSMC거든요. 1980년대 말 탄생해 시장을 개척하며 ‘고객사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전략과 우수한 기술력으로 전 세계에서 고객을 모았죠. 그 결과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60%를 차지하는 기업이 됐습니다. 엔비디아가 AI 개발 플랫폼을 독점하면서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것처럼, TSMC도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반쯤 독점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기업이 된 거예요. 지진으로 TSMC 공장이 멈췄다는 소식에 엔비디아 주가가 요동친 건 지극히 당연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물량이 막혀 장사를 못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재밌게도 창업자 모리스 창은 창업한 뒤에도 몇 년간 지금 본업과 다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고려했다고 해요. 한 기업에서 초청받아 공장을 방문한 뒤, 그는 생각을 접고 파운드리 사업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당시 세계 1위였던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상당히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갓 시장에 뛰어든 TSMC가 따라잡기 어려웠습니다. 삼성전자는 기어이 세계 1위를 차지했고,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 됐습니다. 그런데 메모리 반도체의 위상이 예년만 못합니다. 비메모리 반도체가 AI와 함께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로나19로 활황을 맞았던 전자기기 시장이 가라앉는 과정에서 큰 손실을 봤거든요. 활황을 맞아 메모리를 많이 생산해 뒀는데,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재고를 떠안은 겁니다. 두 기업이 믿는 구석은 HBM, 고대역폭메모리라는 제품입니다. 원래 램 한 개가 들어갈 자리에 램을 몇 개씩 쌓아 올려서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제품입니다.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AI 반도체에 필요합니다. HBM을 아주 잘 만드는 회사가 두 기업입니다. SK하이닉스는 HBM이란 개념을 창조한 회사고요, 엔비디아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TSMC와 협력하기로 했어요. 삼성전자는 그런 SK하이닉스보다 HBM 기술 경쟁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만으로 미래를 그리기에 부족한 시대입니다. 비메모리와 파운드리에서 무언가 보여줘야만 해요. 다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외교입니다. 자, 잠시 세계를 무대로 한 권투 링으로 가볼까요? 깊이 읽어볼 기사로는 지난 2021년 매일경제에서 발행한 TSMC 관련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잘 설명해 읽을 만해요. 🧭글 보러가기 #4 한국은 어떡하나  이 밥그릇 싸움에서 한국은 과연 제 몫을 지킬 수 있을까요? 대외적으로 한국의 위치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효자 특산물’인 메모리 반도체의 입지는 좁아졌거든요. 전문가들도 지난 2년 새 메모리 중심인 국내 산업구조의 약점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평가하고요. 설상가상 믿었던 메모리 반도체의 수출액은 5년 사이 반토막이 났고, 현재 고공성장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한국은 3.3%의 낮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아니 그럼 기업은 뭐하고 있지?’ 의문이 드실텐데요. 기업들도 반도체 전선에 갇혀 엔비디아 독주를 용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쿠다 대항마 만들기, 자립 첨단 반도체 만들기, 틈새 국가로 진출해 독점적 지위 확보하기. 다양한 방법으로 저마다 경쟁력을 높이고 있죠. 그중 쟁점은 비메모리 분야, 특히 빅테크와 같은 대형 고객사의 수주를 따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능이 좋은 상품을 내놓고, 첨단 공정기술을 탑재해야 할 테지요.  ‘반도체 산업 터줏대감’인 삼성전자도 비장의 무기를 준비중입니다. 최첨단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인데요. 차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인 *GAA 공정(Gates All Around)을 3나노 반도체부터 먼저 적용하며 2나노 반도체부터 GAA 공정을 적용하는 TSMC를 견제했습니다. 수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목표죠. 또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표적인 AI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선두권을 두고 경쟁중이고요.  (*GAA 공정 =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전류가 흐르는 구조인데요.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주요 나라와 산업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형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해보이는 대목입니다. 이미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자급자족’ 첨단 반도체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에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팹 조성을 조건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9조 원을 받기도 했죠. 미국의 큰손, 대형 고객의 수주를 딸 수 있을지 혹은 남의 나라 좋은 일만 해주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한국도 나름 기업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정부는 최근 한국형 칩스법, 이른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경기 남부에 조성해 ‘메모리 파운드리’ 생산 중심지를 2040년까지 만들겠다 발표했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22조원을 투자하고, 정부는 세제 혜택과 전력, 용수 등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입니다. 더불어, 반도체 투자세액공제를 25%까지 확대하고 올해 반도체 지원 예산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렸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국가적 지원이 재벌 특혜, 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는 반면, 안보 경제가 달린 문제인 만큼 필연적이라는 의견도 있고요. 전문가의 빅픽쳐는 조금 다릅니다. 기업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R&D) 지원이라는 입장이죠. 예컨대, 기업들의 R&D 자금이나 시설 투자에 인센티브를 늘리면 그 자금이 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학과 연구기관까지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인데요. 다만, 반도체 관련 R&D 예산 삭감의 여파로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로 내년 정부 예산은 지난해 대비 크게 축소됐는데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연구 부문은 26% 감소율을 기록, 중소/중견 팹리스기업을 육성, 지원하는 예산 역시 200억원이나 감소했습니다. 쉽지 않은 싸움.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마주한 단기, 장기간 과제를 뚫을 돌파구가 요원해보입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칩워>를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흥미로웠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저자인 크리스 밀러가 현대 역사의 분기점이 된 군사력을 제2차 세계대전의 강철과 알루미늄, 냉전 시대 핵무기, 그리고 현재 미·중 패권 싸움의 ‘컴퓨터의 힘’(computing power)이라고 보는 점이었어요. 우리가 매일 끼고 자는 스마트폰부터 저 멀리서 날아가는 미사일까지, 반도체는 우리가 먹고살 거리부터 군사력까지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더군요. 반도체 산업이 중요하다는 건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데 레터를 준비하면서 여러 기사를 읽어보고, 책을 읽었을 때 어딘가 찜찜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삼성과 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은 주가, 즉 숫자로만 산업을 평가합니다. 실적을 까고 보니 예상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 예상보다 돈을 벌지 못했다는 식으로요. 좀 더 찾아보니, 이 거대하고 굳건해 보이는 산업의 이면에는 황폐하고 허약한 구조가 있었습니다. 먼저 질병 산재 문제입니다.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을 얻은 황유미 씨가 23살에 돌아가셨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후 반도체 노동자 인권 단체 반올림이 출범했고, 황유미 씨가 사망하고 10여 년이 지나서야 삼성전자는 중재 협약을 통해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사과와 보상,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여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은 일하다 죽고, 일하다 병에 걸려도 사회와 기업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구조는 반도체 산업뿐만이 아니라 첨단산업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다음으로 물 문제입니다. 반도체 공정에는 깨끗한 물이 필요합니다. 반도체 기업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의 양은 107만 톤에 달합니다. 첨단산업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반도체 수요는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른 물 사용량은 지금의 3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 가뭄과 폭우의 주기가 잦아져 점점 더 물을 저장하기 힘들어집니다. 지역에서는 변기 내릴 물도 없어 밖에서 볼일을 해결하거나 마실 물도 없다는데, 정부와 기업이 계획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근 팔당댐에서도 물을 공급할 수 없어 강원 화천댐의 물까지 끌어 쓸 계획이라고 합니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착취해 반도체 산업을 지속한다면 우리가 얻게 될 것은 무엇일까요? 어마어마한 경제적 수익과 모두가 두려워할 세계 최강의 군사력? 그러나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잘 살고 부강한 나라’를 얻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도시에서 칩 하나만 덩그러니 살아남는 미래가 되지 않길 바라며 레터를 마칩니다. 에디터 선심🔆 드림 만든 사람들: 선심🔆, 보라 🍇, 푸릇 🌿, 산호 🐠
·
6
·
지방의회 원구성 특이하다, 특이혀
지방의회 원구성 특이하다, 특이혀 - 드디어! 대전시의회 원구성이 완료됐어요 2024.07.24. 지난 뉴스레터를 통해 7월 10일 의장 선거 2차투표 결과(조원휘 의원 11표, 박주화 의원 9표, 이병철 의원 1표, 이재경 의원 1표)까지 알려드렸죠. 2차투표에서도 과반 득표자가 없어 결국 결선투표까지 진행했어요. 최다 득표자인 조원휘 의원과 다음 득표자인 박주화 의원의 결선투표였는데요. 결과는 조원휘 의원 15표, 박주화 의원 7표로 조윈휘 의원이 의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의장 선거 이후 진행된 부의장 선거에서는 제1부의장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송대윤 의원, 제2부의장에는 국민의힘 황경아 의원이 당선되었어요.  7월 15일에는 상임위원장까지 선출하며 원구성을 완료했어요. 행정자치위원장에는 국민의힘 정명국 의원, 복지환경위원장에는 국민의힘 이효성 의원, 산업건설위원장에는 국민의힘 송인석 의원, 교육위원장에는 국민의힘 이금선 의원, 운영위원장에는 국민의힘 이용기 의원이 선출되었어요.  조원휘 의장은 후반기 원구성 관련하여 "시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는데요. 그리고 본회의 마지막 날에는 "대전시의원 모두 초심을 되새기며 상생의 의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대의기관으로서 본분을 잊지 않고 집행부에 대한 견제, 감시와 함께 시민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앞으로 의회를 어떻게 운영해나갈지 잘 지켜봐야겠죠. 오늘 소개했던 조례 내용인 갑천 물놀이장 건설에 대한 대전시 정책 방향 견제, 송활섭 의원의 성희롱 징계 문제 등 보여줘야 할 것들이 바로 앞에 있어요. 남은 2년, 전처럼 대전시 정책에 무조건 동의만 하는 의회가 될지는 띠모와 함께 열심히 지켜보자고요! 헤이 띠모, 5개 구의회 원구성 상황 알려줘 1) 대덕구의회 대덕구의회 원구성은 이번주에 진행되어요. 어제(7/23)까지 의장・부의장 후보 등록을 마쳤고, 오늘(7/24) 오전 10시에 선거를 진행합니다. 상임위원장 선거는 내일(7/25)이네요.   2) 동구의회동구의회는 7월 10일 의장・부의장 선거를 시작으로, 7월 12일 상임위원장 선거까지 마쳐 원구성을 완료했어요. 의장에는 국민의힘 오관영 의원이, 부의장에는 국민의힘 강정규 의원이 선출됐어요.   3) 서구의회서구의회는 6월 20일 본회의에서 의장・부의장 선거를 진행했어요. 상임위원장 선거는 7월 1일 진행했고요. 의장에는 더불어민주당 조규식 의원이, 부의장에는 국민의힘 정현서 의원이 당선됐어요.  4)유성구의회유성구의회는 6월 24일 의장・부의장 선거를 진행해, 국민의힘 김동수 의원과 국민의힘 여성용 의원이 각각 의장, 부의장으로 선출되었어요. 다만, 투표는 재적의원 14명 중 국민의힘 의원 9명만 참여했는데요.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은 “다수당인 국민의힘이 후반기 의장단을 독점했다"며 모두 투표에 불참했어요.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 만으로도 투표는 가능했지만, 이후 협치를 잘 해나갈지는 지켜봐야해요.  5)중구의회중구의회는 7월 8일 의장・부의장 선거를 진행했는데요. 투표 당일, 재적의원 11명 중 5명만 참여해 의결 정족수 미달로 회의가 진행되지 못했어요. 오후로 미뤄진 회의에서는 6명 참여로 의결 정족수를 충족해 투표를 진행했죠. 그렇게 더불어민주당 오은규 의원이 의장으로, 국민의힘 김옥향 의원이 부의장으로 선출되었어요. 이 갈등은 초선인 오은규 의원이 후보자 등록 마지막날 갑자기 의장 후보자로 등록하며 시작됐어요.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결정한 의장 후보자(육상래 의원)이 있음에도 출마한 것인데요. 이후 상임위원장 선출 등 원구성은 마쳤지만, 내부 갈등이 예상됩니다. . . 지역 불문, 의회 불문! 계속 반복되는 원구성 실패. 이대로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요? 지방의회 원구성 실패는 해결될 수 있을까요? 시민의 입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뉴스레터로 발행된 지난 띠모크라시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띠모크라시 모아보기🧡 띠모크라시 구독하기💚
·
2
·
[속보] 돌려 돌려 대전시의회
[속보] 돌려 돌려 대전시의회 - 원구성이 되지 못해 ▲가 된 대전시의회 2024.07.10. 벌써 대전시의원의 임기가 2년이 지났어요. 이제 다음 지방선거까지 대전시의회를 이끌어갈 의장을 뽑아야 되는데, 계속해서 선출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상임위원장 선출 등 후반기 의회 원구성도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선출이 계속 안 되고 있는지 띠모가 정리해왔어요. 원구성이 뭐야? 원구성은 지방의회가 활동과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의회 조직을 구성하는 걸 말해요. ①의회의 의장과 부의장을 뽑은 후②상임위원회에 각 위원을 배치하고 위원장을 뽑고③특별위원회에 각 위원을 배치하고 위원장을 뽑아요.더 자세한 설명은 지난 뉴스레터를 참고해주세요! 1. 의원 총회 결과가 뒤집히다 먼저 시간을 좀 되돌려볼게요. 6월 24일, 대전시의회 다수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원 총회를 열어 김선광 의원을 당내 의장 후보로 선출했어요. 그런데 조원휘 의원이 이에 불복하고 의장 후보 등록을 진행한 거예요. 이때부터 갈등이 시작된 거죠. 그런데 본회의 전날 조원휘 의원이 의장 후보 사임을 발표했어요. 띠모는 이렇게 갈등이 마무리되는 줄 알았어요. 2. 의장 선거가 진행되다 6월 26일, 대전시의회 제279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의장 선거를 진행했는데요. 김선광 의원이 단독후보였어요. 그런데 본회의 시작 직후 정회가 선언되며 명분 없는 자리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속개된 본회의 1차 투표에서 김선광 의원이 찬성 11표, 무효 11표로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했어요. 이어진 2차 투표는 김선광 의원을 포함한 11명의 의원이 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았고, 정족수 미달로 의장 선출이 무산됐어요. 이렇게 원구성의 시작인 의장 선거부터 아예 진행되지 못하게 되었어요. 3. 2차투표를 진행하다 투표 무산 이후, 의회사무처는 ‘회기 계속의 원칙’에 따라 2차 투표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어요. 지방자치법 제79조에는 회기계속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는데요. 지방의회에 제출된 의안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한 것 때문에 폐기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에요. 2차투표가 가결과 부결된 상황이 아니고, 계류된 것으로 본 거죠. 그래서 의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아 2차투표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단 거예요. 그렇게 7월 3일, 김선광 후보에 대한 2차투표가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재적의원 22명 중에 찬성 11표, 무효 11표로 또 부결 처리되었습니다. 해당 의장 선거는 부결된 것으로, 의장 선거를 공고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4. 의장 후보가 무더기로 등장하다 2차투표 부결 이후, 대전시의회 홈페이지에는 7월 10일 의장 선거를 재진행하며 7월 8일까지 의장 후보 등록을 받는다는 내용이 올라왔어요.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총 5명(기존 6명, 1명 사퇴)의 의원이 후보로 등록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김선광 의원은 2번의 선거 이후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요.  * 박종선·박주화·송인석·이병철·이재경·조원휘 의원 등록(송인석 의원 사퇴) 5. 같은 실수는 반복된다 유명한 말이 있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번 9대 대전시의회는 지난 8대의회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어요. 지난 8대 대전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였어요.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권중순 의원을 후반기 의장으로 내정하고 임시회를 개회해 의장 선거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1차투표부터 3차투표까지 과반을 얻지 못해 의장 선출에 계속 실패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4차 투표만에 권중순 의원이 의장에 선출되었지만, 당내 의원 간 갈등 문제만 남겼죠.  지난 대전시의회와 이번 대전시의회가 정말 데칼코마니 같지 않나요? 똑같이 다수당에서 의장 후보를 결정했지만, 부결된 과정이 너무 실망스러워요. 그리고 그 과정에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두 시당의 역할도 부재한 것도 문제에요. 두 당 모두 원구성 실패 책임을 물어 의원들을 징계했지만, 거기까지였어요. 반복되는 원구성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죠. 이번 9대의회에서 국민의힘 대전시당이 제 역할을 찾아 하길 바라봅니다. 그런데 의장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우선 의장은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어요. 의장은 다른 상임위원장보다 더 많은 업무추진비를 사용 할 수 있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업무추진비를 활용할 수 있는게 장점이겠죠. 두번째는 상임위원회 회의를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의장은 회기 중에 본회의 진행이 주 역할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회의 준비 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죠. 그 시간에 지역 행사, 토론회 등을 갈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본인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죠. 그래서 의장이 되면, 다음 지방선거 때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많아요. 상임위원회에 배정된 의원들보다 좀 더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이죠. 이외에 왜 의장을 하려고 하는지 다른 생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의장 후보를 공개하는 건 어떨까? 그런데 언론보도가 아니면, 우리는 의장 후보에 누가 나왔는지 알기 어려워요. 대전시의회 뿐만 아니라 다른 의회 홈페이지에서도 누가 의장 후보로 등록했는지 찾기 어렵죠. 선거를 진행하는데,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 왜 시민에게 공개를 하지 않는 걸까요? 띠모는 의장 후보 등록이 끝나면 의회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전광역시의회 기본조례를 살펴봐요 먼저 대전시의회 기본조례를 잠깐 보면요. 대전광역시의회 기본조례 12조에서 ‘① 의장 또는 부의장이 되고자 하는 의원은 해당 선거일 2일 전일의 공무원 근무시간까지 의회사무처에 서면으로 후보자 등록을 하여야 한다. 이 경우, 후보자 등록은 중복으로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의장 선거 2일 전에 후보자 등록을 해야 된다고 되어 있어요. 이 기간을 최대한 늘려보자는 거예요. 의장 선거할 때 후보 공개도 안 하지만, 우리는 의장 후보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의회를 운영할지, 대전시는 어떻게 견제・감시할지 등 목표와 비전 등을 알 수 없어요. 본회의장에서 10분 이내 정견 발표는 가능하지만, 1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적고 시민이 그걸 지켜보기에도 현실적으로 어렵죠. 그래서 띠모가 다음과 같이 생각해봤는데요. 띠모의 제안이 뭐냐면요: 대전광역시의회 기본조례 12조 개정안 대전광역시의회 기본조례 12조  ‘① 의장 또는 부의장이 되고자 하는 의원은 해당 선거일 15일 전까지  공무원 근무시간까지 의회사무처에 서면으로 후보자 등록을 하여야 한다. 이 경우, 후보자 등록은 중복으로 할 수 없다’ 후보자 등록을 마친 의원은 다음 항목을 제출하여야 한다. 대전시의회 의장 후보 공약 대전시의회 의장 후보 정견 대전시의회 운영 방향 그 밖에 의장 선거에 필요한 사항 의장 선거 15일 전까지 후보 등록을 마치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의장 후보 공약, 운영 방향 등을 담은 간략한 자료를 의회에 제출하고 이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거예요. 시민에게 최소한으로라도 정보공개를 하자는 거죠. 그리고 의회 홈페이지에 공고하면 되기 때문에 별다른 시스템 구축 비용도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이런 내용은 원구성 이후 시민들이 의정활동을 모니터링 할 때 기준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의장이 된 의원이 본인이 말한 대로 의회 운영을 하고 있는지 새로운 기준으로 세울 수도 있고요. . . 띠모는 의회가 시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만큼, 의회를 대표하는 의장 선거에서 시민에게 최소한의 정보공개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조례 개정을 통해서요! 이러한 띠모의 제안,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이 글은 뉴스레터로 발행된 지난 띠모크라시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띠모크라시 모아보기🧡 띠모크라시 구독하기💚
·
5
·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③ : 표현의 자유 다시 생각하기
서니조의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 ① 수익 창출 중지 ② 젠더 기반 폭력 근절 ③ 표현의 자유 다시 생각하기 유튜버 쯔양의 과거를 사이버렉카 유튜버 ‘구제역’에 건넨 것으로 알려진 변호사A. 그는 모 경제일간지에서 기자로도 일했습니다. (변호사A는 폭행 및 협박 등 혐의를 받는 쯔양 전 연인의 법률 대리인이었고 이때문에 쯔양의 사생활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변호사A는 또 다른 사이버렉카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지난달 10일 이 사건을 처음 공론화 한 이후 자신이 일하는 언론사를 통해 <유명인의 과거를 폭로한다면...명예훼손 성립할까[최우석 기자의 로이슈]>라는 글을 썼습니다. (현재는 삭제됐습니다.) 그는 쯔양을 둘러싼 논란을 언급하면서 “이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될까”라는 말을 꺼낸뒤 정보통신망법 상으로는 처벌되기 어렵지만 형법 상으로는 처벌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고, 표현된 사실에 공익성이 있다면 언론사가 아니더라도 그 표현은 보호가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표현’ 그 자체를 옹호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을 인용하며 ‘표현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명인의 과거를 폭로하는 행위는 일종의 ‘표현’=그것은 모든 국민의 자유]라는 굉장히 단순한 등식을 만들어냅니다. 폭로 대상이 누구인지, 폭로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표현의 자유’의 영역인지는 다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누구로부터의 ‘표현의 자유’인가? 현재는 천부적 인권으로 여겨지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 freedom of expression)는 여느 사회적 가치, 사회적 권리처럼 ‘쟁취된 것’ 입니다. ‘천부적’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하늘에서 무언가 뚝 떨어졌다는 설명이 아닙니다. 왕이나 종교의 지배가 당연하던 전근대·근대 사회에서, 인간 개개인은 왕권이나 종교도 뛰어넘는 존재에게서 특정 권리를 부여 받았으므로,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 행사는 당연하지 않다는 저항의 도구로 해당 표현이 쓰인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투쟁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모국이었던 영국에서 자유주의 사상가들로부터 시작되었고 또 활발히 전개됐습니다. ‘사상의 자유 시장’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한 것으로 유명한 1644년 영국 존 밀턴(John Milton)의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그는 당시 ‘출판 허가제(일종의 검열)’를 비판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외쳤습니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도록 하라”는 유명한 문구도 여기서 나옵니다. 17세기 영국은 정치적(왕당파vs의회파)·종교적(영국국교회vs가톨릭vs청교도) 갈등으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밀턴(의회파이자 청교도)의 저술이 반대 쪽에 의해 고발 당하자 밀턴은 이 글을 썼습니다. (다만 밀턴은 이를 자유주의적으로 접근했다기보다 신학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빌려준 것은 책을 읽고 양심의 명령에 따라 선과 악을 선택하라는 의미’라며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으나 표현의 자유는 곧바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오히려 권력층, 지식인층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이는 이웃나라인 영국의 지배층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근대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1790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서 프랑스 혁명이 급진적이란 이유로 비판했습니다.  대조적으로 영국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1791년 발표한 <인권 Rights of Man>에서 이를 반박하며 프랑스 혁명을 옹호했는데, 그는 국가 반역자로서 유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당시 “뚱뚱하고 부유하고 명성 있는 사람들”(지배계층을 묘사하는 표현)은 프랑스 혁명을 옹호한 페인에 대해 “차가운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묘사돼 있습니다(John Keane, 1995). 이후 19세기 초 유행한 공리주의에서는 소수 지배계급보다 다수의 피지배계급이 향유할 몫을 늘리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고, 공리주의 이후 빛을 발한 자유주의에서는(19세기 후반) 자유 토론 그 자체를 통해 우리는 진리(truth)를 알 수 있다는 믿음으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게 됩니다. 어찌되었든 ‘표현의 자유’란 그 시작부터 발전 과정 내내 국가(또는 권력)의 개인(또는 일반 시민) 규제에 대한 투쟁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 전제정치가 낳은 달갑지 않은 자식”인 셈입니다(John Keane, 1995). 표현을 엄격히 통제하며 억압하고자 했던 국가들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된 개념이 ‘표현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국가만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정치권력, 국가만은 아니었습니다. 시드니 대학교 정치학 교수 존 킨(John Keane)은 민주주의에 대한 창의적 사고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언론과 민주주의 The Media and Democracy>(1991)에서 언론·출판의 자유(표현의 자유)가 시장으로부터 위협 당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이념이 발생한 근대 초기에는 전제 정치에 대한 교정 수단으로 시장 경쟁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장에선 소규모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당시 인쇄업은 영세민의 직업이었습니다) 당연히 탈중심적이었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지킬 핵심 요소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인쇄, 출판, 언론 영역은 대기업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고, 존 킨은 이미 당시 언론 재벌이었던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등을 포함하여 시장자유주의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언론 및 커뮤니케이션 산업에서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공공이익 중심으로 규정되어 온 정보 개념을 사적 전유가 가능한 상품 개념 중심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시장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를 제약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커뮤니케이션의 자유와 무제한의 시장자유 사이에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의견 시장에서 개인적 선택의 자유라는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기업담화의 특권을 정당화하며 나아가 시민보다 투자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개인적 선택의 자유란 거대기업(king-sized business)이 어떤 것을 듣거나 읽고 보는 데 관계되는 사람들의 선택행위를 조직하고 결정하기 위해 심지어는 검열하기 위해 행사하는 권력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 같은 책, 번역본(1995), 116p 게다가 ‘표현의 자유’는 자신이 위협 당하기도 하지만, 특정 대상을 위협하는 위치에 서기도 합니다. 젠더·섹슈얼리티 등을 연구하는 매튜 홀(Matthew Hall)과 제프 헌(Jeff Hearn)은 <리벤지 포르노 Revenge Pornography>(2017)에서 “언론 자유와 성적 해방이라는 형태의 자유주의가 포르노그래피를 주류로 이끄는 현상”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포르노그래피를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여성은 종속적이고 남성은 힘을 가진 지배자의 모습으로 위치하는 경향을” 만드는 것이라 본다면,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자유주의가 포르노그래피를 주류화, 즉 젠더 차별을 주류화 시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권력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만들어진 ‘표현의 자유’가 20세기에 와서는 “여성에게 미칠 수 있는 잠재적 해악을 고려하지 않는” 데에 쓰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80년,  앤드리아 드워킨(Andrea Dworkin)과 캐서린 맥키넌(Catharine MacKinnon)과 같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반포르노그래피 조례를 제안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근거는 수정헌법 제1조였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조례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미국 역사학자 조안 호프(Joan Hoff)는 <For Adult Users Only : The Dilemma of Violent Pornography(성인 전용: 폭력적 포르노그래피의 딜레마)>(1989)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페미니스트와 자유옹호론자들 간의 이러한 의견 충돌(포르노그래피를 제재하는 데에 대한 의견 불일치)은 드라마틱하고 법적으로 해결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말과 달리 행동은 그렇지 않으며(여성들은 성과 관련한 문제에서 완전한 자유 표현을 경험할 수 없다고 조안 호프는 말했습니다)’, 또한 “반포르노그래피 조례가 다루려고 하는 여성에 대한 해악에 전혀 대응하지 않기 때문(wholly unresponsive to the very problem of harm against women)”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주장의 맥락 파악해야 사이버렉카 문제가 공론화 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관심을 보였습니다. 해당 사태 이후, 온라인상 악의적 명예훼손에 따른 수익은 몰수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조인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비슷한 내용에 더해 명예훼손 형량을 높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조승환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 등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법안 통과는 낙관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중요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공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근간이 된다는 데서 민주적 지배의 핵심 수단이며, 당연히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이자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표현은 모든 표현이 아니며,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주요 요소인만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유도 민주주의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문재완, 2011). 사이버렉카 문제를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복잡한 과제’로 본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오남용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을 틀에 박힌 이분법 안에서 사용하기보다는 좀 더 맥락에 맞게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이버렉카 문제는 표현의 자유 vs 개인의 사생활 보호 구도가 아닙니다. ‘주목(attention)을 상품화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나쁜 주목, 비공익적 주목을 걸러낼 것인가’, ‘공익적 주목과 비공익적 주목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등에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2013)에서 여성주의 시선으로 인권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모든 인간이 인권을 갖는다는 근대적 인권 개념의 보편주의는, 진보적인 동시에 문제적인 사유 방식이다. (중략) ‘강자의 인권’일 경우에도 진보적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중략) 인권 개념의 보편성은 사회적 약자에게 적용될 때만 ‘인권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중략) 즉, 표현의 자유는 아무 때나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저항일 때만 권리로 존중될 수 있다.” 김정재, & 왕준열. (2024, July 16). “쯔양 협박” ’난교 파티’…날뛰는 “사이버레커” 규제 법안 나올까. 중앙일보.  박상혁, 서어리. (2024, July 19). ‘구제역’에 쯔양 과거 제보한 변호사, ‘사이버렉카, 명예훼손 어렵다’ 기사 썼다. 프레시안. 전상욱.  (2024, July 31). [세평] 사이버렉카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 대전일보.  조동현. (2024, August 3). 사이버 레커 수익 몰수한다...‘쯔양법’ 잇따라 발의 [국회 방청석]. 매경이코노미.  문재완. (2011).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 청자(聽者) 중심의 표현의 자유 이론을 위한 시론 ―. 세계헌법연구, 17(2), 85-110. 정희진. (2013).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Delegard, Kirsten. "Minneapolis Anti-pornography Ordinance." MNopedia, Minnesota Historical Society. (accessed August 9, 2024). Hall, M., & Hearn, J. (2017). Revenge Pornography: Gender, Sexuality and Motivations (1st ed.). Routledge.  Keane, J. (1991). The Media and Democracy. Polity Press.
·
6
·
3주간 일곱번 ‘반성문’ 다시쓰기… 직장 내 괴롭힘 인정 [회사에 괴물이 산다 11화]
[지난 이야기] 보육교사 이정윤(가명)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계속 사표를 쓰라고 강요당한다. 확인서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반성문’도 강요당했다. 하나의 사건으로 3주간 일곱 번 다시 쓴 적도 있다. 이정윤의 정신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스스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우울증으로 휴직을 요청했던 그에게 원장은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해고 사유는 크게 두 가지. ▲병가 기간이 끝나고도 출근하지 않고 무단결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적응장애와 우울증이 있어서 영유아를 돌보는 업무를 맡기기에 부적절하다는 것. 그런데 이유가 서로 충돌한다. 이정윤의 정신질병이 심각하지 않다고 간주해서 병가 연장을 반려해놓고, 또 동시에 그의 정신질병이 심각해서 보육 업무를 맡길 수 없다는 논리라니. “두 번째 그렇게 하고(자살충동) 나서 남편이 너무 슬퍼하는 걸 봤죠.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저는 반대로 생각해보지는 못했어요. 만약에 반대로 남편이 그렇게 죽어버렸다면…. 내가 너무 큰 상처를 준 거더라고요. 그럼 내가 마음을 한번 바꿔보자, 죽으려고 했던 그 에너지를 살려고 하는 용기로 한번 바꿔보자, 생각했어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조용히 죽는 길이 아니라 시끄럽게 사는 길을 택했다. ‘경기도 마을노무사’ 제도와 김요한 노무사(노무법인 노동을잇다)의 도움이 컸다. 함미영의 존재는 말할 것도 없다. 용기 내어 사실확인서를 써준 전 동료 교직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다. 2023년 10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원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지속적인 퇴사 강요 중 부적절한 표현 ▲부당한 확인서·시말서 작성을 여러 차례 강요 ▲민감한 개인정보(노조 가입 사실)의 공표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과태료도 부과됐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과태료 부과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2019년 이후 접수된 3만 9316건 중, 과태료 부과는 고작 1.3%(501건)에 불과하다. 지난 14일 고용노동부가 밝힌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처리 결과 현황’에 따른 수치다. 산재도 승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2월 1일, 이정윤의 적응장애 등을 ‘업무상질병’으로 판정했다. 약 한 달 뒤인 3월 11일에는 부당해고도 인정됐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금지 기간인 산재요양 기간 중 발생한 해고”이므로 “위법하며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세 기관 모두 이정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어린이집 측은 세 가지 결정에 모두 불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과태료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는 등, 이의제기 절차에 들어갔다. 7월 5일 중앙노동위원회 날. 이정윤은 걱정이 컸다. 현장에서 원장을 만나면 어떡하나. 그 상황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날도 미리 진정제를 먹고, 공황발작에 대비해 응급약을 챙겼지만…. 심판위원들 앞에 이정윤이 자리했다. 그리고 바로 뒷자리에 남편이 앉았다. 혹시라도 이정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장 손을 뻗어 구할 수 있도록. 다행히 원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정윤은 미리 준비해간 한 장 반짜리 최후진술서를 직접 또박또박 읽었다. 눈물이 조금 나고 손이 약간 떨렸지만 참을 만했다. “‘힘들었던 일터로 왜 돌아가려 하느냐?’ 제가 요즘 받는 질문입니다. 제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한, 그것도 부당함에 의한 퇴사로 제가 사랑했던 일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현장으로 돌아가서 제가 사랑하는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 가진 힘이 작다고 해서 포기하라고 강요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윤 중앙노동위원회 최후진술 2024. 7. 5.) 판정 결과는 ‘초심유지’. 부당해고가 다시 한 번 인정됐다. 네 번째 승리다. 사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보육교사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 그중 이정윤과 같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결국 인정받는 경우가 흔치 않을 뿐이다. 2021년 직장갑질119 등이 진행한 ‘2021 보육교사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1.5%(246명)가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를 묻는 질문에는 78.0%(192명)가 ‘원장 등 어린이집 대표’라고 답했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61.4%(121명)가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의료적 진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36.6%(126명)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보육교사 해고 사건 경험이 많은 김요한 노무사는 이정윤이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갑갑하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많은 현장에서 본 “상투적인 수법”이란 거다. “보육교사가 근로조건이나 법 위반 문제를 지적하면, (사용자가) 그 교사를 몰아내기 위해 쓰는 레퍼토리거든요. 교사들에게 ‘이 중에 누구랑 같이 일하기 싫은지 적어내라’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형성하는 건 아주 오래된 얘기예요.”(김요한 노무사 전화인터뷰 2024. 6. 25.) 김 노무사는 “재원은 다 공적으로 운영되는데, 운영은 (원장) 개인에게 위탁을 줘서 마음껏 사적 전횡을 휘두를 수 있게 한다”는 제도적 문제도 지적했다. 엄연히 ‘국공립’ 어린이집이지만 위탁운영자일 뿐인 원장 개인이 인사 등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다. “제가 살아 있는 건 사실 남편 덕분이에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우울증은 이정윤을 소파 하나만 한 세계에 가둬버렸다. 특히 집에서 어린이집이 가깝기 때문에, 혹시나 외출을 했다가 학부모나 동료교사나, 최악의 경우 원장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웠다. 뭘 잘못해서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남편은 생업도 미루고 늘 이정윤의 곁을 지켰다. 남편은 그를 달래서 차에 태우고, 공원으로 카페로 데리고 나갔다. 일부러 집에서 적당히 멀고, 사람도 그리 붐비지 않는 카페만 찾아 다녔다. 지난 6월 21일 기자가 이정윤을 만난 경기 용인시의 한 카페도 그런 곳이었다. 평일 낮 대형 카페의 2층은 역시 한적했다. 인터뷰 도중 이정윤의 눈길이 때때로 계단 쪽을 향했다. 누군가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릴 때였다. 그때마다 그는 목소리를 약간 낮추고, 올라오는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약속장소를 정할 때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만약에 카페에 갔는데 누구를 만나기라도 하면…. 저는 원장을 보거나 어떤 괴롭힘 상황에서만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비슷한 사람을 보거나 비슷한 상황이 되면 이게 이렇게(공황발작이) 딱 되더라고요.”(이정윤 전화 인터뷰 2024. 6. 15.) 지금도 이정윤은 시간마다 상황마다 다른 약들을 챙겨 먹어야 한다. 기자를 만난 날도 미리 진정제를 먹고 왔다. 인터뷰 중에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 그때의 고통이 다시 살아날까봐. “사실 공황장애라는 게 뭔지 잘 몰랐어요. 근데 겪어보니, 이게 제가 통제한다고 통제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괴롭힘과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어떤 스위치가 탁 켜지면 그게(공황발작이) 딱 오더라고요. 굉장히 무섭더라고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아직도 고통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산재 요양기간은 10월까지 다시 연장된 상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됐다. 산재도, 부당해고도 인정됐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과, 노동위원회가 이정윤이 당한 피해와 고통을 인정하고 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어린이집의 복직 통보는 아직. 이제 남은 건 그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일뿐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도 잘 안다. 가끔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보자고 했던 이유도 다 이정윤의 ‘마음건강’을 가장 먼저 걱정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정윤에게는 어린이집으로 꼭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결국 (어린이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내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가긴 가야죠. 나중에 그런 걸(이직이나 퇴사) 하더라도, 내 첫 번째 발걸음은 내 원래 일터로 돌아가는 거여야 해요.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그게 어디든 집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결국엔 제가 (어린이집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예요.”(이정윤 인터뷰 2024. 6. 21.) 어디서부터인가 언제부터인가 뭔가 잘못돼서 길이 어긋났다면 일단은 처음에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그런 다음 새로운 길로 갈지언정. 그게 바로 잘못돼 있던 모든 것들을 끝맺는 마지막이자, 동시에 새로운 것들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카페 앞마당에 들꽃들이 피어 있다. 꽃무리를 향해 이정윤의 눈길이 간다. 발길도 자연스레 그쪽을 향한다. 어느새 손길을 뻗어 조심스레 꽃을 만진다. “원래 꽃을 참 좋아해요.” 그의 아담한 손이 눈에 들어온다. 일터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동료들과 신뢰를 나누고, 가족들과 편안한 일상을 누리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 손에 돌려받아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지난달 1일 A 원장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듣길 바란다며 “상처 받은 분들이 많은데 조용히 극복하고 지내려 하니 시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틀 뒤 C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이정윤이 원장과 부원장을 상대로 낸 공동감금과 공동강요 혐의 고소건이 ‘불송치’로 종결됐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이정윤 측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C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산재 승인 ▲부당해고 인정 등 세 가지 결정을 모두 반박했다. 우선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결정에 대해 “면피성 행정”이라 비판하고, “괴롭힘이라 할 만한 사안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개원 초기) 운영상 조금의 미숙함은 있을지언정 직장 내 괴롭힘은 있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산재 판정 과정에서도 어린이집 측은 “(이정윤의 주장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거나 매우 과장된 것”(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 판정서 인용)이란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산재 승인에 대해 C 변호사는 “사용자(어린이집) 측에서 (부당함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부당해고 인정에 대해서는 “해고의 실질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되진 않으나 다만 절차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는 있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어린이집의 ‘진짜 주인’인 광주시 측 생각은 어떨까. 광주시청 국공립어린이집 담당자는 지난 6월 28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어린이집과 이정윤) 양쪽에 자료를 다 요구해둔 상태”라며, “자료를 입수한 뒤 각각 면담을 통해서 방향을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해당 어린이집의 위탁 만료일은 오는 10월 31일로, 재위탁 심사를 앞두고 있다. 담당자는 “(위탁)계약 해지 사유라 판단되면 계약해지나 재계약 불가도 가능하지만, 어쨌든 그건 따져봐야 할 문제”라며, “(법적) 결정이나 판결을 기다리면서 확인하는 중”이라 답했다. <끝> 취재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2
·
개천에서 용 안 나는 ‘부자’ 올림픽
2024 파리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진행되는 경기와 선수들의 서사, 메달 순위에 주목하게 된다. 여자 양궁이 단체전 10연패 신화를 세우는 걸 보며 역시 한국은 활의 민족이구나 으쓱하기도 하고, 예능에서 ‘탁구 신동’ 소리를 듣던 신유빈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에 감화되기도 하고, 높은 메달 순위를 보며 소위 ‘국뽕’이 차오르는 걸 대중은 쉽게 경험한다. 하지만, 이런 행복하고 멋진 올림픽의 이면에는, 경제력이 높은 국가가 대부분 올림픽 메달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에어컨 없는 대표팀 숙소 vs 따로 빌린 200억 호텔 파리 올림픽은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하며 여러 시도를 하였는데, 이로 인해 선수단 숙소에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것은 유명하다. 종합적으로 열악한 숙소 환경으로 인해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국 올림픽 대표 선수단은 따로 객실용 냉풍기를 설치하거나, 따로 경기장 인근 호텔로 숙소를 옮기기도 했다. 수많은 슈퍼스타가 모여있는 걸로 유명한 미국 농구 대표팀의 경우, 따로 200억 호텔을 통째로 빌린 사실이 뉴스로 다뤄지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기후 위기에 주목하고, 여러 환경적인 대안을 실행하려는 노력 자체는 좋다. 하지만 참여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선수단에 더 좋은 컨디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건, 국가의 경제력 차이에 따라 선수들의 컨디션 차이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후’를 강조하다 스포츠에서 지켜져야 할 ‘페어 플레이’ 정신에서는 멀어진 셈이다. 만약 숙소 차이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좋은 스포츠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선 고가의 장비 및 시설을 갖추거나 전문가를 다수 영입할 수 있는, 경제력이 좋은 국가가 올림픽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기 유리하다. 한국의 역대 하계올림픽 성적, GDP 순위에 대체로 비례 그렇다면 한국의 올림픽 성적도 경제력에 비례했을까? GDP 순위 자료가 명확한 1960년부터 2021년 동안 치뤄진 하계올림픽 메달 순위(금메달 갯수 우선 집계 기준)와 명목 GDP 순위를 비교해 그래프로 나타내보았다. 조사 결과, 대체로 한국의 하계올림픽 메달 순위는 GDP 순위에 비례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 메달 순위 10위 이내에 진입한 해는 1984년으로, 당시 명목GDP순위는 세계은행(World Bank) 데이터 기준 21위였다. 이후 대한민국은 하계올림픽에서 항상 메달 순위 20위 이내에 들었으며, 두 번을 제외하고는 10위 이내에 들었다. 다른 국가, 다른 올림픽 성적에서도 나타나는 ‘머니 파워’ GDP 순위와 올림픽 성적이 비례하는 건 한국 뿐만이 아니다. 2021년에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 기준, 메달 순위 상위 10개 국가와 GDP 순위 상위 10개 국가를 종합해 표로 그려본 결과, GDP 순위가 높은 국가들이 메달 순위도 높은 모습을 보여줬다. GDP 순위가 10위 이내인데도 올림픽 메달 상위 20위 이내에 들지 못한 국가는 인도 뿐이었다. 국가 올림픽 순위와 GDP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들 역시 앞선 분석을 뒷받침한다. 살펴본 모든 연구에서, GDP는 국제 스포츠 성적에 직ㆍ간접적으로 비례했다[1][2][3]. 우선, GDP가 국가 스포츠 국제대회 성적에 강한 연관성을 보였으며[2], GDP가 국가 올림픽 메달 순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1]. 한 국가가 올림픽에 파견한 선수단 규모 역시 메달 순위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GDP가 많은 국가일수록 선수단을 많이 파견하기 때문으로 나타났다[1][3]. 종합해 보면, 올림픽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 간 빈부격차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대회다. 스포츠를 직업으로 할 수 있게 하고, 시청하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올림픽의 순기능을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 올림픽에 어떻게 하면 GDP가 메달 획득에 영향을 덜 미치게 할지, 전 세계 스포츠 팬들과 올림픽 운영위원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Aaron Daniel Snowberger, Choong Ho Lee. (2021). An Investigation into the Correlation between a Country’s total Olympic Medal Count, GDP, and Freedom Index Through History. 한국정보통신학회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전북. [2]Nassif, N., & Raspaud, M. (2023). National Success in Elite Sport: Exploring the Factors that Lead to Success. Springer. https://doi.org/10.1007/978-3-031-38997-9 [3]이장영, 강효민. (2013). 국가의 인구규모, 경제수준이 선수규모 및 동ㆍ하계 올림픽 성적에 미치는 영향. 한국체육정책학회지 제11권 제2호, pp. 97~109 [데이터 출처] - 국제스포츠정보센터 국제종합경기대회 하계 올림픽 안내 페이지 - 위키피디아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메달 집계 - KOSIS(국가통계포털) GDP 데이터 - WorldBank GDP Data *이 글은Libertine 캠페이너의 '올림픽, 꼭 해야 하는 걸까요?'글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성하였습니다.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