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바다 위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차를 달렸다. 도착한 곳은 인천 연안부두에 위치한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인천 중구 항동). 차를 몰고 A동 지하주차장에 진입했다. 지하 1층은 주차공간이 좁았다. 한 층 더 내려갔다. 곳곳에 주차 자리가 비어 있었다. 수상한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번호판이 없는 외제차였다.
틀림없이 이런 차가 더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3층 주차장에 진입하자 마주친 건 빨간색 포르쉐 스포츠카. 역시 번호판은 없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인 여성이 스포츠카 옆에서 얄궂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두 남성은 그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 중이었다.
차를 돌려 빠져나가기 위해 주차장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얼마 못 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 주차장 통로까지 번호판 없는 차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수산물타운’ 주차장에서 목격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의아한 장면의 연속.
“어디 찾아오셨어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경계하며 물었다. 수산물타운에 왔다고 답하자, 남성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여기 차 못 돌려요. 후진해서 나가세요.”
번호판 없는 외제차들은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중고차로 보였다. ‘수산물타운’ 주차장에 횟감을 사러온 손님들의 차량 대신 선적 대기 중고차로 짐작되는 차량만 가득한 상황. ‘국내 최대’를 자랑하던 인천국제수산물타운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음이 틀림없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축구장 4개 크기, 연면적 5만 7550㎡ 규모의 초대형 상가다. 지하 3층, 지상 4층으로 규모로 4개동, 전체 802개 호실로 구성됐다. 분양대행업체에 따르면, 건물 외형을 지어올리는 데만 약 1800억 원이 들었다.
그날 저녁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찾아간 이유는 지난 5월 도착한 제보 메일 한 통 때문이다.
“억울함과 허탈한 마음에 용기 내어 글을 작성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건물 준공이 완료됐지만 4년째 대부분 공실로 수분양자(상가를 분양받은 사람)의 고통만 남겨졌습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그곳 이름을 넣어보니, 몇 년 전 발행된 기사들이 먼저 뜬다.
<인천 항동에 들어서는 초대형 수산물 테마파크>
<국내 최대 어시장… 수익률 ‘살아있네’>
각동 1층에는 수산물 도・소매점, 2층에는 활어 전문 식당, 3~4층에는 노래방, 카페, 스크린골프장, 찜질방, 공연장 등이 생긴다는 소식이었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장밋빛 미래’를 노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보자 서희성(42) 씨가 이야기한 현실은 장밋빛이 아니라 잿빛이었다. “국내 최대 어시장”의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찾아갔다.
소월미도로 가는 항구 근처 공단지역. 인근에는 물류회사 간판이 붙은 컨테이너가 쌓여 있었다. ‘축구장 4개 규모’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아봤다. 이상했다.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A, B, C, D동으로 구분된 건물 내부 역시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B동 1층으로 들어갔다. 565평(1864.69㎡)이나 되는 상가 내부는 깜깜했다. 퀴퀴한 먼지 냄새가 풍겼다.
천장에는 “행사코너”, “제철코너” 등이 적힌 간판이 매달려 있었다. 수조와 수산물 판매대 위에는 먼지만 가득했다. 수조 뒤에는 에어컨 실외기 10대 정도가 놓여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는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도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D동으로 가봤다. 어두운 내부로 들어가자, 바로 왼쪽에 분양홍보관 사무실 위치를 알리는 가판대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아예 장사를 했던 흔적조차 없었다. 상가 1층 바닥에는 구획을 나누는 흰색 선만 그려져 있었다.
C동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1층에는 생선회를 떠와서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꾸며져 있었다. 캠핑용 의자와 고기 불판 설치가 가능한 식탁을 갖춘 텐트 약 20개도 보였다. 캠핑 분위기로 한껏 꾸몄으나, 여기에도 역시 손님은 없었다. 2층부터 4층까지 올라가 봤다.
“주인 직접 임대, 010-XXXX-XXXX”
불 꺼진 텅 빈 상가 유리창마다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날 인천국제수산물타운에서 광어, 우럭보다 더 자주 만난 건 이런 안내문이었다.
마지막으로 A동을 찾았다. 드디어 도다리, 아나고 등 물고기가 보였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유일한 수산물 판매업체가 1층에서 영업 중이었다. 손님은 나 한 명이었다. 날짜를 바꿔 점심 시간에도 가보고, 저녁 시간에도 가봤다. 하지만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제보자의 말 그대로였다. 불 꺼진 건물, 텅 빈 상가, 비린내 없는 어시장, 선적 대기 중고차만 가득한 주차장.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거의 ‘유령타운’이었다.
“시행사가 처음부터 판을 잘못 깔았어요!”
제보자 서 씨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만든 시행사 대표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건축 사업은 2017년 본격 시작됐다. 서 씨는 이때 지인 소개로 1.5평(전용면적 4.42㎡) 수산물 판매대 자리 한 칸을 약 1억 6000만 원에 계약했다. 이중 8500만 원은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
시행사는 연 수익률을 ‘12%’라 광고했다. 일부 분양대행업체는 수익률을 20%까지 부풀리기도 했다. 2017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허위・과장광고로 보고 경고 조치를 했지만 광고는 달라지지 않았다.
“공실률 없는 특수상가 프리미엄”이라는 광고가 무색하게도,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터졌다. 미분양률은 약 36%. 서 씨가 확보한 채권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시행사 소유 미분양 호실은 총 290개다. 전체 802개 호실 중 512개만 분양됐을 뿐이다(2024년 6월 기준).
건물의 준공 예정일은 2019년 10월이었다. 준공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행사는 4개월 뒤인 2020년 2월부터 상가 입점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그조차 말뿐이었다. 건물 사용승인은 2020년 3월 27일에야 떨어졌다. 준공 예정일로부터 5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인천 중구청의 건물 사용승인 후에도 장사는 불가능했다. 바로 옆이 바다인데도, 어시장에는 바닷물(해수)이 나오지 않았다. 바닷물 없는 어시장이라니. 알고 보니, 바닷물을 공급하는 펌프에 모터가 설치되지 않은 채 준공이 떨어졌다. 해수 공급 펌프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서 씨는 2020년 5월 인천 중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중구청에서 건축사무소의 감리 의견을 듣고 (건물 사용) 최종 승인을 해주는 것 아닌가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아직도 해수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시장의 제일 중요한 해수가 안 나오면 어떻게 장사를 하나요? 현재(2020년 5월)까지 4개 동 1층의 총 500여 개 점포 중 장사를 하는 곳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천 중구청은 “해수 사용 등에 대해서는 건축법상 정하고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입점 등에 관한 사항은 계약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해수 펌프 등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모든 시설 공사는 2020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처음 약속한 준공 예정일에서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그동안 임차인을 구할 수도 없었고, 직접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대출을 끼고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1년 2개월간 아무 수입 없이 이자만 낸 셈이다.
수익률을 부풀린 허위・과장광고와 대규모 미분양 사태에 이어, 바닷물도 공급되지 않는 등 1년 2개월이나 지연된 공사. 그러는 동안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성패를 좌우할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렸다.
서 씨는 2020년 8월 시행사에 분양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확정 입점 예정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입점할 수 없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제가 (시행사 대표에게) 위약금도 필요 없으니까, 계약 취소하고 원금만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법대로 하라’고 하더라구요.”
서 씨는 한 달 뒤 시행사를 상대로 분양대금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분양대금 약 1억 6000만 원과 위약금 1600만 원 상당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서 씨는 시행사가 확정입점 예정일, 상가의 규모, 주차장 크기, 공실률 등을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서 씨의 손을 들어줬다. 시행사가 서 씨에게 분양대금과 위약금을 전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시행사는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 최종 승소까지 걸린 시간만 2년 3개월. 그런데 서 씨는 끝내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법대로 하라고 해서 법으로 이겼는데, 이번엔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구요.”
시행사는 2020년 미분양 상가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약 480억 원을 대출받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건축 과정에서 받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금을 갚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출금 상환마저 2022년 3월부터 연체됐다. 시행사는 지방세 등 약 6억 원의 세금도 체납했다. 시행사 소유의 280개 호실 상가 중 일부는 압류된 상태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유령타운을 넘어 이제 ‘시한폭탄’이 돼가는 중이다. 폭탄이 터지면 수분양자들은 물론, 금융권과 지역경제가 줄줄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서 씨는 해마다 대출 연장 기한이 돌아올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대출금 8900만 원을 갚을 방법은 없는데, 시행사는 분양대금을 돌려줄 계획도 없어 보인다.
“시행사 대표는 이런 말도 하더라구요. ‘어머니뻘 되는 나이 지긋한 수분양자도 (시행사에게) 상가 다시 가져라고 울고 그러는데, 당신(서 씨) 분양대금을 어떻게 돌려주느냐’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피해자는 한두 명이 아니다. ‘연안부두 국제수산물타운 소유자 모임’ 커뮤니티에 가입한 피해자만 340여 명. 상가에서 들어오는 수익은 한 푼도 없지만 대출이자는 꼬박꼬박 갚아야 한다. 분양계약을 파기하고 대금을 돌려받고자 해도 시행사는 ‘마음대로 하라’며 배짱을 부리고 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늪에 발목이 빠져 있는 상황.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네 곳의 업체가 분양을 대행했다. 한 분양대행업체 대표는 “우리 회사에서만 약 900억 원의 분양 실적을 올렸다“고 말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이 언제쯤 정상화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시행사 대표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기도 “애매한”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는 수백 명, 피해금액은 수백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아무도 처벌받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지난달 12일과 16일 시행사 대표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준공 인허가 과정의 문제와 예상 수익률 과대광고 등에 관해 묻고자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신 역시 없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코멘트
3이런 사건도 한국의 선분양 제도의 폐해로 봐야할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다가도 요즘 아파트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실 공사 논란 등을 생각해보면 물건도 안 보고 사야하는 제도가 맞는 건가 싶습니다. 사건만 보면 피해자분들은 너무 억울할 것 같네요. 시공사와 준공 허가를 내준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하지 않을까요?
아.... 추가 보도가 시급해보입니다. 이런 사건이 한두번 나는게 아닌데 막을 수 있는 제도가 있을런지 궁금해지네요.
“법대로 하라고 해서 법으로 이겼는데, 이번엔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구요.” 법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을 읽고 있는 저조차도 화나는데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