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

미국 뉴욕의 경제 중심 월가(Wall Street)에는 꼭 가 봐야 하는 곳이 있다. 즐거운 곳은 아니다. 오히려 가슴 아픈 곳. 바로 9/11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WTC) 메모리얼 & 뮤지엄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은 가장 공포스러운 곳이 되었다. 미국 경제의 상징건물이었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거짓말처럼 차례로 무너졌다. 납치된 항공기가 쌍둥이 빌딩을 뚫고 무너뜨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이 세기의 대폭발 테러는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다. 

지금 이곳에는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안에는 WTC의 마지막 기둥과 파편, 당시 희생자들이 지나갔을 계단의 일부와 건물의 한 면 등이 테러의 상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참사의 흔적인 먼지가루들이 시간이 멈춘 듯 보존된 상점의 옷 위에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 

9/11 사건 당시의 소방차 잔해/사진 백아인

9/11 메모리얼 & 뮤지엄 안에는, 카메라에 담을 수 없게 된 구역이 있다. 당시 사건을 재현한 역사관이다. 이곳에서는 아픔을 세세히 기억하고 명징히 드러내 밝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 

9/11 사건이 터진 8시부터 분단위로 세계무역센터의 상황, 대통령 및 정부 대응, 경찰 대응, 소방관 대응 등 전과정이 디테일하고도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날의 언론보도, 뉴스 상황, 주변인들의 반응 등의 영상들은 우리가 바로 그 날에 들어간 듯 생생하게 녹화되었다. 

유치원에 참여 중이던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사건 소식을 접하고 급히 자리를 뜨는 모습부터, 일사천리로 대응이 진행되는 과정과 뉴욕 및 주변 도시 각지에서 경찰과 소방관, 응급 의료진들이 모여든 지도까지. 뿐만 아니라, 신고가 들어온 시각과 당시 전화로 신고하고 대응하는 음성 녹음도 그대로 들을 수 있다. 벽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들면 관람자가 직접 그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항공기가 첫번째 건물을 통과해 폭파되고, 두번째 항공기가 두번째 건물을 통과한 뒤,  각 건물의 몇번째 층 희생자가 전화를 걸었는지, 또 그 목소리도 확인 가능하며, 건물이 무너진 뒤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애썼던 혹은 목숨을 잃은 영웅들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충격을 금치 못하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하나도 남김없이 주워 담았다. 

다른 한편으로 납치된 항공기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 음성 등 모든 자료들이 총동원되었다. 테러범이 공항 출입을 하는 CCTV 영상 기록. 테러범들이 조종실을 침입하여 나누던 대화도 녹음된 음성과 번역된 문자로 귀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9/11테러 희생자들의 사진/ 사진 백아인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채로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메세지나 음성 녹음을 남긴 항공기 안의 희생자들의 목소리와 문자 내용도 확인하게 된다. 

“비행기에 조금 문제가 생겼어. 별 일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랑해. 다른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 줘.” 

“비행기가 납치된 것 같아. 여보, 사랑해. 아들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 줘.”

그날의 행적은 사소한 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았다. 불탄 소방차, 희생자의 구두, 가방 등. 몇 시 몇 분 몇 초라는 시각까지도. 당시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위한 멘탈 치료도 이루어진 걸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끝일까. 기억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두번 다시 동일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 다음일 것이다.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은 당시 사건 기록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후 정부가 어떻게 사건을 규명하고,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를 다시 일으켜 세웠는지, 또 기업들은 어떻게 사회적 재난에 기부로 마음을 보탰는지 보게 된다. 사건의 원인 규명 과정, 재건 과정, 새로이 지어가는 세계무역센터의 타임랩스 영상. 

지나는 길 한쪽 벽에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금언이 적혀 있다.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없을 것이다. - 베르길리우스”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없을 것이다 - 베르길리우스 /사진 백아인

이 문구는 묘하게 기시감을 준다. 바로 얼마 전 10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참사 기억식, 4월 16일에 이와 비슷한 문구를 똑같이 되새겨 본 적이 있다. 

안산 단원고 4/16 기억교실 앞 플랜카드 “10년, 당신들을 기억하는 마음은 변함 없습니다.” / 사진 백아인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미국의 재난에 대응하는 방법, 기억하는 방법을 보자니 세월호 참사의 기억관 및 기억교실이 사뭇 안타깝게 느껴진다. 당시의 상황 및 원인 규명, 정부, 해경, 언론의 대응, 희생자들의 유품이나 가족들의 아픔 등.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드러난 게 없고, 드러내려 하지 않고, 심지어 대통령이 그 시각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국가 재난 사건에서, 단지 책임자를 찾자는 것 이상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소소하다 못해 참담하다. 희생자들의 가족들만이 세월호 참사 기록단을 만들고 운영하며, 그 날을 기억하려 애쓴다. 국가도, 기업도, 사회도 그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했을까.

몇 해 뒤 일어난 이태원 참사 역시, 그 연장선 상에서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참사의 대응에 대한 논란만 존재할 뿐이다. (연합뉴스_ 장보인 기자_"기동대 있었다면 이태원참사 피해 최소화" 경찰들 진술) 심지어 2024년 6월 문을 연 이태원 참사 임시 추모 공간 ‘별들의 집’ 도 11월에는 재개발로 인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 (뉴시스 홍연우 기자 ‘시한부’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 석달 후엔 어디로 가야하나) 사회적 재난의 기억들이, 매 순간 잊혀지고 반복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망각으로 가는 순간,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떻게 예방 혹은 재건해야 할지, 여전히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가슴 아픈 기억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호 참사 가족단이 이룩한 것들도 우리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기억 교실이 남아 있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을 위로할 수 있고, 법률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재건했는지 더불어 기록하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매번 일어나는 재난에 늘 같은 방식으로 흐지부지 지나쳐 버린다면, 우린 그 참사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희생자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지점에서 9/11 메모리얼과 뮤지엄의 기억 재생 방법과 그 대처는 우리의 아픔과 참사를 기록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줄지도 모른다. 반복되어선 안되는 역사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말처럼 결코 시간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서는 안된다.  

WTC의 마지막 기둥. 최후까지 무너지지 않고 있던 기둥으로 희생자와 그들을 추모하는 문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사진 백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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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4.16 세월호 참사

구독자 55명

한국은 수많은 사회적 참사를 겪었지만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서 매번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참사를 잊지 않고, 참사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가 메모리얼 파크가 아닌가 싶네요. 기억해야만 하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큰 만큼 한국에서도 잠사를 잘 기억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좋겠습니다.

베를린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보고 한동안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나요.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의미가 변질되지 않고 추모를 위한 공간이 한국에서도 ... 꼬옥 마련되길!!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조명 사이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 몰랐네요. 이런 방식으로도 참사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새로운데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적 재난/참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네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돈 받으려고 그런다'라고 하거나, 기념 공간을 만드는 것이 '세금 낭비'라고 하거나.. 하는 인식들이 바뀔 수 있도록 애쓰면 좋겠습니다.

늘 일어나는 재난과 참사이니 뭘 따로 공간까지 만들어 기억해야하느냐고 질문과 비난 하는 분들에게 이 글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언제까지고 사고가 발생하고 추모하고, 기억하고 이런 굴레를 넘기 위해 기억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참사를 잘 기억하고, 기억으로 남기는 방식을 배우고 싶네요. 우리는 이런 기억을 이야기할 때마다 정치적인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참사 그 자체를 바라보고 배웠으면 합니다. 앞으로 반복되지 않게..

참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기록하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게 치열하게 고민해 바꾸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우리사회에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회적참사는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모두의 문제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네요. 잘 읽었습니다.

세월호 추모공원은 세금낭비다, 돈 잔치 마라고 혐오방송하던 세력들이 떠오릅니다. 추모하고 기억하는 힘은 세고 변화로 이어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참사가 반복되고 회피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지 되짚어도 봐야겠습니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에는 정말 참사에 관련된 모든 기억이 보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유가족분들과 일부 시민들 외에는 참사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는 것처럼 움직이는 한국 사회의 모습과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이라 마음이 아프네요...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