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패러디는 그에겐 빼놓을 수 없는 도구였다.
“이번에 KTV가 저작권법으로 고소했지만, 사실…. 건희야(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네가 한 거잖아. 직접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맞다이(맞상대) 떠야지. 뒤에 숨지 말고!“
대통령 풍자 노래를 만들었다가 고소당한 가수 백자(본명 백재길, 52세)는 이번엔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패러디했다. 지난 1일, KTV 고소 규탄 기자회견 중 나온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정책방송원(KTV)은 지난 3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가수 백자를 형사고소했다. 대통령실이 올해 설 명절 메시지로 가수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라는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백자가 “탄핵이 필요한 거죠”로 개사해 부른 걸 문제 삼았다.(관련기사 : “풍자 유튜버 고소? 명품백 받은 죄인부터 잡아가라”)
백자가 유튜브 계정 ‘가수 백자tv’에 올린 풍자 영상은 KTV의 신고로 게시 3일 만에 삭제됐다.
이번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 대통령 부부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는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저작물 무단 이용을 문제 삼는 거지만, 사실 뒤에선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기 때문.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를 해서 저를 괴롭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별건으로 또 다른 (형사 사건이) 들어올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제가 활동했던 다른 건을 갖고 국가보안법 문제를 건다거나… 윤석열 정부에선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2024. 7. 16. 백자 인터뷰)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KTV 민간인 고소 사건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있었던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2010년 ‘G20 쥐 그림 사건’이다.
그해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서울 곳곳에는 회의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됐다. 2010년 10월 31일 자정. 대학강사 박정수 씨는 그날 분필 대신 스프레이를 잡았다.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 틀을 대고,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렸다.
G20 포스터에는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청사초롱이 그려져 있었다. 박 씨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포스터 오른쪽 편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마치 쥐가 청사초롱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박 씨와 일행들은 서울 곳곳에서 22개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경찰에 붙잡혔다.
훈방 조치 정도로 끝날 법한 ‘낙서’ 사건. 하지만 수사기관은 오히려 사건을 키웠다. ‘공안 검사’를 등장시켰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2부가 사건을 맡았다. ‘불순한 의도’를 밝히겠다는 취지였다.
수사기관이 주목한 건, 이들이 그린 동물이 토끼나 호랑이가 아닌 ‘쥐’라는 점이었다. 쥐 그림이 누군가를 연상시킨다는 것. 바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다. 해프닝에 가까운 풍자 낙서가 무려 ‘공안사건’으로 비화된 상황.
당시 박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의 입장을 이렇게 항변했다.
“쥐라고 하는 형상에는 꼭 그렇게 단순하게 특정인만 결부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 사회의 거대한 권세라든가 많은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이나 우리의 건강한 시민의식을 갉아먹는 그런 어떤 병균을 옮기는 그런 모든 사람들, 어떤 영혼의 상징적 표현이다. (…)
제 등 뒤에서 등을 떠민 배후를 묻는다면 이 시대의 무거운 공기가 아닐까 생각한다.”(2010. 11. 17.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인터뷰 중)
강제수사도 동원했다. 서울남대문경찰서는 박 씨와 동료를 긴급체포했다. 그리고 공동손괴 혐의로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수사기관은 박 씨 주변부까지 수사망(?)을 넓혔다. 배후세력을 찾겠다는 거였다. 그가 학술연구모임인 ‘수유+너머’ 회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검경은 쥐 그림을 그렸거나 지켜봤던 회원 5명 전원을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결국 박 씨는 유죄를 확정받았다. 2011년 1심 법원은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씨에 대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벌금 200만 원의 원심이 확정됐다.
“이 사건 공용물건을 훼손한 범죄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피고인 박 씨가 G20 행사를 방해할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한 방법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해학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예술적 표현의 일종으로도 보여질 수도 있는 점 (…) 여러 양형조건을 참작하여 피고인에 대해 벌금형을 선택하여 판결한다.”(1심 판결문 양형이유)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서 ‘G20 쥐 그림’ 사건이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해프닝에 가까운 사건에, 수사기관은 온 힘을 다해 강제수사란 칼날을 휘두르고, 결국 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낸 전력이 있어서다.
가수 백자의 법률대리인 김종귀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두 사건의 유사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쥐 그림’ 사건을 피상적으로 접하신 분들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벌금형을 받았다고 생각하실 수가 있는데, 공용물건 손상죄로 유죄 판결이 난 것입니다.
KTV (민간인 고소) 사건에서도 대통령실이나 KTV가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걸고 싶었겠죠. 하지만 (해당 혐의로는) 유죄가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저작권법이라는 걸 이용해서 (민간인을) 고소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쥐 그림’ 사건과 동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024. 8. 1. 기자회견)
윤홍기 사단법인 오픈넷 연구원도 “이번 KTV의 민간인 고소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와 정부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기 위해 시민들을 형사 절차로 겁박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반민주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풍자물에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이제는 공공기관이 나서서 일단 저작권 침해를 무리하게 주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KTV는 가수 백자를 고소하기에 앞서, 지난해 11월 유튜버 ‘건진사이다’ 채널을 운영하는 ‘조장’ 이필승(가명) 씨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조장 이 씨는 주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공적 활동 영상을 활용해 풍자 영상을 만들어왔다.(관련기사 : 김건희 저격 고소당한 유튜버 “채널 폐쇄 목적 확실”)
KTV가 민간인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한 건, 2007년 설립 이래 이때가 처음이다. 사건을 담당한 수서경찰서는 피의자 조사 일주일 만에 이 씨를 검찰로 송치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받고 사건이 빛의 속도로 넘어가더라고요. 조금 의아하긴 했습니다. (…)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검찰이 (피의자가) 유튜버들이니까 괘씸하게 보고, ‘범죄 혐의가 악의적이고 재범의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족들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될 수 없습니다.”(2024. 7. 15. 건진사이다 인터뷰)
이 씨에 대한 KTV의 형사고소를 대리한 법률대리인이 최지우 변호사(법무법인 자유)라는 사실도 ‘숨은 의도’에 대한 의심에 힘을 더한다. 최 변호사는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실 행정관 출신으로, 현재 영부인 김건희 씨가 연루된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 등을 대리하고 있다.
백자 역시 스스로 같은 절차를 밝을 거라 예상한다.
“검찰도 여론이 부담스러우니 (기소 여부를) 쉽게 결정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일단 압수수색을 같은 걸 해서 대통령 부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여사님의 뜻을 따라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죠.”(2024. 7. 16. 백자 인터뷰)
셜록은 KTV에 반론을 요청했다. KTV는 지난달 22일 “‘가수 백자tv’와 ‘건진사이다’ 채널은 KTV의 저작물의 무단사용 외 개·변조의 정도가 심하고 악의적으로 저작재산권, 저작인격권 등을 침해해 저작권법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추가 질의는 이메일로 이어졌다. KTV는 가수 백자 형사고소 사건에서 선임한 법률대리인에 대해서도 답변했다. KTV는 착수금 495만 원에 법무법인 동백과 위임계약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동백은 언론사 뉴스토마토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민사소송에서도 원고 KTV를 대리하고 있다.
KTV는 정부법무공단을 선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법무공단은 국가로펌으로 다양한 유형의 국가소송을 하기 때문에 수임제안을 하였으나 업무분야에 ‘형사고소’는 수임하지 않아 계약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코멘트
3시간이 흘러서 이 사건을 돌아보면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퇴보했었는지를 되새기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독재'와 다름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비판, 풍자 등에 제갈을 물리려는 시도를 멈추길 바랍니다.
풍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하는가가 그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요.. 소시민(?)끼리 서로 웃고, 술 한 잔 할 수 있는 것들을 너무 크게 바라보고 무서워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마 찔리는 것이 많아서겠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이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탄압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직접적인 탄압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KTV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한 것이 더 없어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부당한 수익창출이 있어 그에 대해 피해당사자가 문제 삼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아쉬운 대응이네요. 다른 일에 집중해서 지지율로 승부를 보는게 정도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