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진행되는 경기와 선수들의 서사, 메달 순위에 주목하게 된다. 여자 양궁이 단체전 10연패 신화를 세우는 걸 보며 역시 한국은 활의 민족이구나 으쓱하기도 하고, 예능에서 ‘탁구 신동’ 소리를 듣던 신유빈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에 감화되기도 하고, 높은 메달 순위를 보며 소위 ‘국뽕’이 차오르는 걸 대중은 쉽게 경험한다. 하지만, 이런 행복하고 멋진 올림픽의 이면에는, 경제력이 높은 국가가 대부분 올림픽 메달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에어컨 없는 대표팀 숙소 vs 따로 빌린 200억 호텔
파리 올림픽은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하며 여러 시도를 하였는데, 이로 인해 선수단 숙소에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것은 유명하다. 종합적으로 열악한 숙소 환경으로 인해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국 올림픽 대표 선수단은 따로 객실용 냉풍기를 설치하거나, 따로 경기장 인근 호텔로 숙소를 옮기기도 했다. 수많은 슈퍼스타가 모여있는 걸로 유명한 미국 농구 대표팀의 경우, 따로 200억 호텔을 통째로 빌린 사실이 뉴스로 다뤄지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기후 위기에 주목하고, 여러 환경적인 대안을 실행하려는 노력 자체는 좋다. 하지만 참여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선수단에 더 좋은 컨디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건, 국가의 경제력 차이에 따라 선수들의 컨디션 차이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후’를 강조하다 스포츠에서 지켜져야 할 ‘페어 플레이’ 정신에서는 멀어진 셈이다. 만약 숙소 차이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좋은 스포츠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선 고가의 장비 및 시설을 갖추거나 전문가를 다수 영입할 수 있는, 경제력이 좋은 국가가 올림픽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기 유리하다.
한국의 역대 하계올림픽 성적, GDP 순위에 대체로 비례
그렇다면 한국의 올림픽 성적도 경제력에 비례했을까? GDP 순위 자료가 명확한 1960년부터 2021년 동안 치뤄진 하계올림픽 메달 순위(금메달 갯수 우선 집계 기준)와 명목 GDP 순위를 비교해 그래프로 나타내보았다.
조사 결과, 대체로 한국의 하계올림픽 메달 순위는 GDP 순위에 비례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 메달 순위 10위 이내에 진입한 해는 1984년으로, 당시 명목GDP순위는 세계은행(World Bank) 데이터 기준 21위였다. 이후 대한민국은 하계올림픽에서 항상 메달 순위 20위 이내에 들었으며, 두 번을 제외하고는 10위 이내에 들었다.
다른 국가, 다른 올림픽 성적에서도 나타나는 ‘머니 파워’
GDP 순위와 올림픽 성적이 비례하는 건 한국 뿐만이 아니다. 2021년에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 기준, 메달 순위 상위 10개 국가와 GDP 순위 상위 10개 국가를 종합해 표로 그려본 결과, GDP 순위가 높은 국가들이 메달 순위도 높은 모습을 보여줬다. GDP 순위가 10위 이내인데도 올림픽 메달 상위 20위 이내에 들지 못한 국가는 인도 뿐이었다.
국가 올림픽 순위와 GDP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들 역시 앞선 분석을 뒷받침한다. 살펴본 모든 연구에서, GDP는 국제 스포츠 성적에 직ㆍ간접적으로 비례했다[1][2][3]. 우선, GDP가 국가 스포츠 국제대회 성적에 강한 연관성을 보였으며[2], GDP가 국가 올림픽 메달 순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1]. 한 국가가 올림픽에 파견한 선수단 규모 역시 메달 순위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GDP가 많은 국가일수록 선수단을 많이 파견하기 때문으로 나타났다[1][3].
종합해 보면, 올림픽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 간 빈부격차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대회다. 스포츠를 직업으로 할 수 있게 하고, 시청하는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올림픽의 순기능을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 올림픽에 어떻게 하면 GDP가 메달 획득에 영향을 덜 미치게 할지, 전 세계 스포츠 팬들과 올림픽 운영위원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Aaron Daniel Snowberger, Choong Ho Lee. (2021). An Investigation into the Correlation between a Country’s total Olympic Medal Count, GDP, and Freedom Index Through History. 한국정보통신학회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전북.
[2]Nassif, N., & Raspaud, M. (2023). National Success in Elite Sport: Exploring the Factors that Lead to Success. Springer. https://doi.org/10.1007/978-3-031-38997-9
[3]이장영, 강효민. (2013). 국가의 인구규모, 경제수준이 선수규모 및 동ㆍ하계 올림픽 성적에 미치는 영향. 한국체육정책학회지 제11권 제2호, pp. 97~109
[데이터 출처]
- 국제스포츠정보센터 국제종합경기대회 하계 올림픽 안내 페이지
*이 글은Libertine 캠페이너의 '올림픽, 꼭 해야 하는 걸까요?'글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성하였습니다.
코멘트
7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더 재밌는 분석이 되겠다 싶은 글이네요. 올림픽 종목 중에서 소득의 영향이 가장 높은 종목과 그렇지 않은 종목을 나눠서 살펴보면 더 명확하게 문제의식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권도의 경우 큰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세계 각 곳에 확산된 배경 중 하나였는데요. 그래서인지 올림픽 메달리스트 국가도 다양해졌습니다. 반면 비용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알려진 양궁의 경우 한국이 압도적으로 올림픽 메달을 차지하고 있죠.(물론 이건 경제적 여건만 반영되지 않았겠지만요) 유사하게 이번 올림픽에서 1점을 쏜 차드 대표팀을 한국 기업이 지원하겠다고 발표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스포츠 선수가 올림픽에 참여하기까지 얼만큼의 비용이 드는지, 종목별로 어떤 차이가 나고, 실제 성적은 어땠는지 비교해보면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 같습니다.
부자 나라가 올림픽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잘 보여주셨네요. 좋은 분석글 감사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인용하고 싶습니다!
엘리트 체육이라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스포츠가 이제는 기술과 자본 기반의 산업이 되어가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제시하신 분석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올림픽 종목 메달 수도 선진국과 비례한다고 하는데, 인프라(자본)가 잘 받쳐주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지구촌 올림픽이기보다 선진국의 약진을 보여주는 이면이 느껴져 씁쓸하기도 합니다.
숙소에서 편안히 쉬었는지 여부가 선수들의 컨디션으로도 직결된다는 것을 프랑스에서는 예견하지 못했던 걸까요?ㅠㅠ ‘기후’를 강조하다 ‘페어 플레이’ 정신에서 멀어졌다는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공정함이 별로 느끼지지 않는 선수단 숙소 현장이라 안타깝긴 하네요. ㅠㅜ
"종합해 보면, 올림픽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 간 빈부격차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대회다." 공감하는 문장입니다. GDP 상승과 올림픽 성적을 비교해 보여주신 그래프가 인상적이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