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책임? 아니요, 다정한 라이프스타일입니다.
‍ 때로는 비영리 생태계에서(누구는 소셜 섹터라고도, 임팩트 생태계라고도, 사회적 경제라고도 부르는) 일하는 것이 답답할 때가 있어요. 예상보다 더디게 변화하는 속도에 가끔 회의도 들고요. 비슷한 배경의 사람, 관점, 기술, 솔루션을 접할 때면 생태계가 좁게만 느껴져요. 그래서 생태계 바깥에서 움트는, 업계와 무관한 누군가가 만드는, 조금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사례를 발견할 때면 반갑고, 궁금합니다. 기대도 하고요. 사회변화를 얘기하는 콘텐츠, 서비스, 제품이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 <카인들리(kindlyy)>라는 봉사 큐레이션 서비스는 주말 여행 정보를 담은 뉴스레터 <주말랭이>에서 발견했어요. 비영리의 매체·커뮤니티·네트워크가 아닌, MZ세대가 즐겨 찾는 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있죠. 봉사라는 납작한 언어를 “Good things. You Can”, “It’s okay even once” 등으로 발랄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평범한 직장인의 1인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이 서비스가 어떻게 비영리 문법과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 <카인들리>를 소개해 주세요. 카인들리는 봉사 활동을 6가지 취향으로 나누어 선별하고 소개하는 봉사 큐레이션 플랫폼입니다.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봉사라는 관심사로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지향해요. 특히 봉사를 시작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초심자를 위해 친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활동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춰요. 6가지 취향 카테고리는 사회복지, 동물, 자연환경, 우리동네, 재능기부, 해외 봉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사용자가 자신의 관심사나 능력에 맞는 봉사 활동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요. ‍ | 기존의 봉사 포털 서비스와는 다른 <카인들리>만의 특징은? 많은 사람이 봉사 정보를 찾다가 포기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정보가 없거나 흩어져 있고, 때로는 폐쇄적이고 불친절하기 때문이죠. 자신의 취향을 기반으로 적합한 봉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어요. <카인들리>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과 같은 감각적인 큐레이션을 지향합니다. 봉사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알기 쉽게 제안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직관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이미지와 상황을 연상할 수 있는 카피라이팅을 조합해 콘텐츠를 만듭니다. ‍봉사 활동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왜 이 봉사가 필요하고, 어떤 사람들이 도움을 받는지, 돕는 사람(참여자)에게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등의 메시지를 스토리로 담아내요. 기존의 봉사 정보가 날짜, 장소, 주의사항 정도만 제공한다면, <카인들리>는 봉사의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 형식으로 감각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래야 봉사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더 쉽게 봉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 | 서비스의 주 사용자, 선호 활동이 궁금해요. 20대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사용자가 다수입니다. 이 세대는 체험과 경험에 대한 니즈가 커요. 또한 뻔하지 않고, 귀엽고, 즐거운 봉사를 선호하죠. 예컨대 유기견 봉사, 플로깅, 생태공원 가꾸기 같은 활동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교육 분야의 봉사가 더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 | 봉사 활동 참여자의 선호와 실제 봉사 수요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다소 힘든 봉사 활동은 참여가 낮아요. 봉사가 일상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는다면 봉사자 공급이 더 많아질 것이고, 봉사자의 공급이 많아지면 어느 정도 분산되리라 생각해요. ‍ | 카인들리만의 운영 방침이 있나요?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금전 거래가 포함된 기부·봉사는 소개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돈에 대해 민감할 수 있고, 자칫 봉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그 시작을 방해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에요. 둘째, 기존의 봉사단체들이 사용하는 어법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따르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꾸준히 해야 한다'와 같은 부담스러운 표현 대신 '한 번만 해봐'라는 식의 가벼운 접근을 선호해요. 셋째, 봉사라는 단어 대신 '좋은 일'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봉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더 친근하게 다가가려면 기존의 이미지/ 어법과는 다른 표현과 언어가 필요하죠. 넷째, 카인들리의 브랜드 정체성과 저의 정체성을 분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카인들리가 저라는 개인이 아닌, 독립적인 브랜드로 인식되길 바랍니다. ‍ | '봉사도 취향이 있다'는 카피가 인상적이었어요. "유기견 봉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거야?", "자연·환경 관련 활동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봉사에도 취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취향이란 물건의 소비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마음이 이끌리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봉사도 각자가 이끌리는 선한 마음의 방향이 있다고 보고, 이를 6가지 종류로 나누어 소개했습니다. 봉사를 어렵게 생각했던 사람도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고려했어요. ‍ | ‘진지함을 우회한다’는 소개글도 봤습니다. 어떻게 덜 진지하고 더 일상적인 행위로 만들 수 있을까요? 봉사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예를 들어 ‘워컵픽업(WalK Up Pick Up)’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동네 산책 미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각자 동네에서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카카오 단체방에서 랜선으로 인증하는 방식이죠. 또한 '원 스몰 굿 액션(One Small Good Action)'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선행들을 제안했어요. 예를 들어 휠체어 사용자, 통행자를 위해서 쓰러진 공유 킥보드를 세워두는 행동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봉사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참여자가 좀 더 재밌게 활동하도록 돕는 요소도 배치했어요. ‘워컵픽업’의 경우 참여자가 도장 깨기를 하는 것처럼, 수행 판에 미션 완료 스티커를 부착할 수 있도록 굿즈를 제공했습니다. 랜선 참여자가 하루동안 함께 모여 재활용 시설을 방문하고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도 구성했습니다. | 봉사 콘텐츠 제작과 큐레이션은 어떻게 하나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해요. 첫 번째는 체험형으로, 제가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소개합니다. 두 번째는 자료 수집을 통한 방식이에요. 온라인에서 봉사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구성합니다. 마지막은 제보 형태입니다. 실제 봉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객원 에디터가 되어 내용을 제공합니다. 현재는 두 번째 방식인 자료 수집을 통한 콘텐츠 제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요. 아무래도 혼자 서비스를 운영하니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여 선별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콘텐츠 생산 속도를 높여서 좀 더 많은 활동을 소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 | 혼자서 운영하는지 몰랐어요. 별도의 조직 혹은 프로젝트 팀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마케팅 경력이 있어 웹사이트 구축부터 브랜딩, 콘텐츠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비용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대신 시간이 많이 걸렸죠. 회사 업무가 아닌 1인 사이드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하니 더 오래 걸렸어요. 장단점이 모두 있어요. 장점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초기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어요. 단점은 역시 외로움과 고립감입니다. 아이디어를 나눌 동료가 없고,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요. 또한 업무량이 많아 지치기 쉽고,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는 점도 있고요. 앞으로는 좋은 동료를 모아 함께 서비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 | 카인들리의 수익 모델은 어떻게 되나요? 아직까지는 마케팅, 브랜딩 컨설팅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카인들리> 서비스를 병행하고 있어요. 가설로 잡은 수익 모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죠. 봉사라는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이, 봉사 뿐만이 아닌 재밌고 유익한 활동을 함께하며 웰빙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할 수 있는 유료 멤버십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둘째, 굿즈 판매에요. 봉사활동에 필요한 위생 키트 같은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할 계획이에요. 마지막으로 기업과의 제휴 이벤트입니다. 기업의 CSR 활동이나 임직원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요. 기부·후원을 통해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고 합니다. ‍ | 비용을 지불하고서까지 봉사 활동에 참여할 사람이 있을까요? 일단 베타테스트를 해보려고요. 현재 활성화된 소모임, 커뮤니티 서비스가 몇 곳 있어요. 이런 곳에 봉사 활동을 같이 할 사람을 찾는 게시물이 자주 올라오고, 인기 있는 봉사의 경우 금방 마감됩니다. 단순하게 한 번의 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중심으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취미 생활을 나누는 모임과 커뮤니티라면 수익화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 | <카인들리>를 통해 구성된 커뮤니티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좋은 경험을 공유하고 성장하는 커뮤니티가 되면 좋겠어요. 봉사는 돈을 통해 얻는 효용과는 다릅니다.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어요. 경쟁이 아닌 협력의 과정과 성취를 경험할 수 있고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무한 경쟁 시대에, 봉사는 다른 관점과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단기적으로는 콘텐츠의 양을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 많은 봉사 활동을 소개하고 싶어요. 특히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을 많이 발굴하려고 합니다. 또한 앱 서비스 출시도 준비 중이고요. ‍ 장기적으로는 <카인들리>를 5년 이상 지속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봉사가 헌신, 책임, 나눔의 표상보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일상,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으면 좋겠어요. 봉사는 올드하거나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활력 있고 재밌는 일로 인식되고, 봉사를 매개로 여럿이 함께 모여서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어요. ‍ 글 | 최성욱 ‍ ‍ 인터뷰이가 추천하는 ‘1인 작업자를 돕는 도구’를 소개합니다. ‍ AI 챗GPT : 언어모델 생성형 AI / 인간스러운 어휘와 스토리텔링에 강점 구글 제미나이 : 언어모델 생성형 AI / 논리적&체계적 정보 구조화에 강점 MS 코파일럿 : 언어모델 생성형 AI / 아직 학습이 더 필요함 ‍ Image Unsplash : 무료 사진 소스 / 감각적인 무료 사진이 강점 Link Lummi : 무료 사진 소스 / AI가 제작한 무료 이미지, 생각보다 리얼함 Link ‍ Illustration Drawkit : 무료 일러스트 소스 / 세련된 스타일의 일러스트, 무료 소스가 적은 것이 단점 Link unDraw : 무료 일러스트 소스 / 일관된 스타일의 일러스트. 벡터로 지원하여 일러스트 색상 자유롭게 설정 가능 Link Blush : 무료 일러스트 소스 / 컬러풀한 다양한 일러스트가 많음, 라인 타입의 일러스트 종류가 많아 좋음 Link ‍ Editing Tools remove.bg : 배경 제거 툴 / 누끼 이미지 만들때 빠르고 편리함 Link Capcut : 무료 영상&사진 편집 툴 / 영상과 사진의 레이아웃, 그래픽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함 Link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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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은 어떻게 운동이 되는가
‍ “그래픽은 어떻게 운동이 되는가” 일상의실천 권준호 대표 저는 냉소에 그치지 않는 시도들이 변화를 이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는 더디다고 느끼는 사회변화일지라도요.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오늘은 일상의실천을 이끄는 권준호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그는 도서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을 집필했는데요. 글을 쓰는 에디터이자 사회변화를 꿈꾸는 구성원인 저에게 커다란 영감을 안겨준 책입니다. 사심을 가득 담아 진행한 그와의 인터뷰, 함께 살펴보시죠! 1.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인 ‍‍2.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를 디자인하기 ‍3. 건강한 디자인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 🌿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인 ‍ | 준호 님의 '일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고정된 루틴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가능하면 가장 먼저 출근하려 해요. 보통 10시부터 출근인데, 저는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작업실에 가요.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메일도 정리하고, 할 일 정리하는 시간이 되게 소중하더라고요. 작업하고 7시 즈음 퇴근한 뒤에는 테니스나 배드민턴 등의 운동을 하고 있어요. ‍ | '실천'은 꾸준함을 필요로 하는 일일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디자인을 해온 건데, 싫증이 나거나 지루하지는 않으세요? 올해로 11년 차네요. 길다면 길지만 한 분야를 파고드는 데 있어서 아주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30년, 40년 동안 하시는 장인분들도 계시니까요. 제게 작업하다 지루함을 느끼거나 번아웃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주시는데, 저는 다른 작업을 한다고 답변해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그래픽 디자인은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책, 포스터, 웹 디자인 모두 각기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죠. 저는 그때마다 스위치나 기어를 바꾼다고 표현해요. 운동으로 치면 수영하다 등산하는 느낌이라, 지루하지는 않아요. ‍ | 경력이 쌓인 만큼 일을 안배하거나, 하고 싶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서 그런 부분도 있을까요?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아드리아 쇼넷이라는 분이 지도 교수이셨는데요. 유학을 떠나기 전 이분께서 집필한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라는 책을 읽었어요. 핵심은 작업이 재미없다고 느끼면 그 작업은 결국 자기를 갉아 먹고, 그걸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영혼이 망가진다는 거였죠.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주변 사람들은 '일상의실천'이 이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오히려 반대였던 것 같아요. 일상의실천을 시작할 때부터 세 명이 모두 같은 생각이었어요. 월급을 안 가져가면 안 가져갔지,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은 하지 말자, 포트폴리오에 올릴 수 있는 작업만 하자고 결심했어요. ‍ 존경하던 디자이너 한 분도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수치심의 서랍’이라는 게 있대요. 돈 때문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했지만, 차마 공개하지 못한 작업물을 넣어둔 공간이 있다고요. 그 서랍을 만들지 않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부터 지금까지, 공개할 수 있는 작업만 해왔던 것 같습니다. ‍ | 협업을 진행하는 기준에도 비슷한 맥락이 있을 것 같은데요. 굉장히 맞닿아 있죠. 일상의실천을 시작할 때부터 적용한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첫 번째는 재미예요. 저는 디자이너이자 작업자이고, 무언가를 이미지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잖아요. 표현적인 측면에서 즐겁게, 재밌게 할 수 있는 작업인지가 중요해요. 두 번째는 의미예요. 저희는 초창기부터 의뢰를 기다리지 않고 시위 현장에 나갔어요. 1인 시위를 하고 계신 분, 광화문 광장에 계시던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찾아뵙고 디자인을 해드리겠다 했죠. 제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제가 만들어내는 작업이 어떤 식으로 의미를 갖고 통용될 것인지 고민해요. ‍ 세 번째는 예산인데요. 초기에 주로 함께 작업했던 비영리나 시민단체는 대체로 예산이 부족했어요. 이런단체의 작업만 계속하면 디자인 업무를 지속하기 힘들죠. 아무튼 아주 작은 금액이라도 무조건 받으려고 했어요. 재능 기부 형식으로 진행하면, 클라이언트는 무료로 받는 작업이니 디자인의 가치나 소중함을 고려하지 못하고, 디자이너도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기 어려우니까요. 세 가지의 기준 중 두 개가 충족되면 할만한 일이라 판단해요. 세 개가 모두 충족되면 좋겠지만 그런 작업은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웃음) ‍ 💨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를 디자인하기 ‍ | “진보”라는 단어를 ‘고여있음을 거부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표현하셨더라고요. 준호 님이 삶과 업을 대하는 태도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한데요. 이와 같은 가치관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와이낫어소시에이츠라는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어요. 저는 스튜디오 창업자들을 학생 때부터 존경했어요. 그들은 영국이 경제 위기를 겪던 1970~80년대 대학을 나왔죠. 마가렛 대처가 수상이던 시절이었고요. 대처가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해 경제 위기를 벗어났다고도 평가하지만,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사회적 불평등도 심화됐어요. 당시 대학생이던 이들은 정부 정책과 마가렛 대처가 불러온 변화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그래픽 작업을 했죠. 당시의 펑크 문화와 섞여서 하나의 사회적 이미지가 만들어졌어요. 제가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할 때 그분들은 50대셨어요. 한국에서 50대 디자이너는 회사의 대표나 교수로 재직하는 등 현장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분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이어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20대 때처럼 공격적이지는 않더라도, 본인이 가진 기득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녹여서 풀어내고 계셨어요. 그들은 사회적 약자, 커뮤니티 등을 위한 작업 등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가치관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며 작업해왔죠. 글과 인터뷰를 통해 상상만 했던 그들의 모습이, 30년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게 감동이었어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다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겠네요. 요즘 시선이 닿는 사회 문제가 있으세요? 특정 사회 이슈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시선이 여러 방면으로 옮겨다니는 편이죠. 최근에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분과 작업을 했어요. 본인의 경험을 담아 도서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를 집필하셨고, 저희는 책 표지를 디자인했죠. ‍ 작업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건 이분의 태도였어요. 피해자는 본인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이분은 달랐죠. 직접 사건을 공론화하고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언하면서 자신의 사건을 변호했어요. 피해자가 적극 나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죠.‍ 이분은 자신의 책이 마냥 우울하거나 피해자 보고서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셨어요. 법원에 출석할 때도 검고 칙칙한 옷이 아닌 밝고 화려한 옷을 입고 가셨는데, 책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셨대요. 그래서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화려하게 디자인했어요. 그분도 굉장히 좋아하셨고, 최근에는 책이 증쇄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어요. 이런 점들이 저에게 뿌듯함으로 다가오면서 작업의 의미를 깊게 만들어줘요. ‍ | 사회 문제와 맞닿아 있거나 비영리 단체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 작업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시나요? 사회에 의미 있고 필요한 목소리라고 판단할 때 그 작업을 맡아요. 하지만 동정이나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클라이언트가 어려운 일을 당하셨다거나, 그 일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이유로 모든 요구사항을 무조건 수용한다면, 그건 디자인 자체의 가치나 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 | 어떻게 조율하시는지 궁금해요. 디자인적인 완성도보다 메시지를 드러내달라는 작업이 있다면, 디자이너 입장에선 다른 방식으로 풀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죠. 특히 노조나 노동계 분들과 작업하면 해당 분야에서 통용되는 시각 언어가 있어요. 머리띠나 조끼를 착용하거나 강렬한 색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등이죠.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땐 이분들이 지향하는 방향이나 가치관이 의미 있다 판단하고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갈등이 생겼어요. 반드시 천지개벽체라는 서체를 사용해야 하고, 인물은 ‘투쟁’이라는 머리띠를 쓰고 있어야 한다 등 여러 제약 사항이 많았어요.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떤 지점을 설득할지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죠. 결국 머리띠를 빼고, 조끼와 평상복 사이의 절충안을 찾는 데까지 성공했어요. 그분들의 방식을 모조리 부정한 채 ‘문화예술계에서 사용하는 시각 언어가 세련됐으니 이렇게 합시다’ 강요할 수는 없어요. 이런 변화는 점진적으로 필요하다고 봐요. 클라이언트 분들은 시각적으로 너무 약해 보이지 않냐면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하셨는데요. 결과적으로 아주 잘 됐습니다. 노조 위원장 선출 포스터였는데, 그분이 위원장이 되셨거든요. (웃음) ‍‍ | ‘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대라고 느낍니다. 소통의 측면에서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디자이너다 보니 세상을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보는데요. 동물보호 단체는 동물 권리의 시각에서, 환경단체는 환경 보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죠. 그런데 자칫 어느 한 쪽의 시각에만 치우치면 소통이 단절되더라고요. 얼마 전 비영리 단체와 작업을 했어요. 1년 반가량의 기간이었죠. 그렇게 오래 걸릴 작업은 아니었는데 연락이 끊기거나 논쟁이 이뤄지면서 과정이 길어졌어요. 그분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이렇게 보일 수 있다'는 식의 피드백을 계속 주셨어요. 저는 좀 더 일반적인 기준을 갖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고요. 특정 시야를 살짝만 벗어나면 다른 면이 있음을 알리는 게 디자이너의 일인 것 같아요. 같은 작업이어도 설득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에요. 이 분야를 그래픽 디자인이라고도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고도 표현하는 이유죠. 단순 미사여구가 아니라 ‘소통’이 정말 중요한 키워드여서 그런 것 같아요.‍ ‍ 하나의 작업을 두고 단순히 외주를 맡겨 진행하는 작업이 아니라, 작업을 사이에 두고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가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느껴요. 저는 작업이라면 자연스레 참여자의 의견을 들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탄생한 작업이 좋은 작업이자 건강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 반대로 건강하지 않은 작업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디자이너를 ‘을’로 여기는 경향은 여전히 강한 것 같아요. 왜 이런 관행이 굳어졌을까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저희는 비딩*(회사가 프로젝트를 맡기 위해서 경쟁을 펼치는 일종의 공모전)은 참여하지 않고 있어요. 처음 스튜디오를 연 뒤 멋모르고 참여했다가 심사위원분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길래 반박했더니 떨어졌거든요.‍ 비딩의 초점은 말 잘 들을 것 같은 디자이너, 그중에서도 비용이 가장 낮은 디자이너를 뽑는 것에 맞춰져 있어요. 제가 얼마 전에 세탁기를 바꿨는데, 세탁기는 모델마다 품번이 있고 어떤 플랫폼에서 사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잖아요. 같은 제품을 싼 가격에 사려 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해요. 그런데 디자이너의 작업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어떤 화학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이거든요. 이걸 최저가의 가격으로 선정한다는 것에서부터 잘못됐다고 봐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거죠. 비딩에 선정돼도 함께 일할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것 또한 큰 문제 중 하나예요. 기획에 애정이 있는 기획자라면 이 디자이너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나와 어떤 시너지가 날 것인지 여러 차례 리서치를 한 상태에서 디자이너를 선정하겠죠. 이렇듯 선정 과정에서부터 절차적인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 |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가 시작되어야 할까요? 와이낫어소시에이츠에서 일할 때, 연세 지긋한 신사분이 오셔서 디자이너와 담소를 나누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의 관장님이셨어요. 박물관 시즌 디자인을 의뢰하셨고 직접 디자이너의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의견을 나눈 거죠. 어떤 기관이든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작업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디자이너와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술관을 예로 들면 전시부장이나 관장 등이 결정권을 갖고 있을 텐데, 보통 주니어 큐레이터분이 연락을 주시죠. 큐레이터의 마음에 들었음에도 올라가서 까이고, 수정하고, 까이고 하는 일이 정말 비일비재해요. 회사도 마찬가지고요. 따라서 미팅하거나 협업을 진행할 때는 결정권자, 혹은 결정권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직책의 소유자가 자리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미팅이 전혀 의미가 없으니까요. 🤝 건강한 디자인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 ‍ | 일상의실천을 막 시작했던 때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과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전히 같은 점은 친구로 시작한 저희가 지금도 여전히 친구라는 점이죠. ‍큰 변화를 꼽자면, 제가 개인 작업자에서 디렉터로 역할이 확장된 거예요. 처음 시작한 세 명의 멤버 이외에 함께하는 동료들이 생겼어요. 저는 팀원들에게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이들이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고민하고 있어요. 방향성과 완성도 측면에서는 강한 기준을 갖되 표현 방식, 스타일 등은 작업자의 특색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 | ‘제안하되 강요하지 않는다’는 그라운드 룰이 인상적이었어요.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저희 나름대로 중요한 룰로 굳어졌어요. 팀원 중에는 제가 전혀 할 수 없는, 혹은 관심 없는 표현 방식으로 작업을 만들어가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으려면 제가 시각적으로 더 열려 있어야겠더라고요.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 “내가 꾸는 꿈의 형태를 조금이라도 가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흐릿한 이상은 선명한 목표로 거듭날 수 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닿았어요. 준호 님은 이루고 싶은 꿈,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세요?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품었던 단기적인 목표나 꿈은 많이 이뤘다고 생각해요. ‘강남에 있는 40평짜리 아파트를 사고 싶다’와 같은 꿈을 꿨던 게 아니니까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작업하고 싶었어요. 꿈을 이뤘다는 표현은 너무 교만한 것 같은데, 제가 당시 생각했던 모습은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네요. (웃음)‍ 저희는 디자이너가 단순히 을이나 용역업체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온 파트너로서 인정받았으면 했어요. 그러나 클라이언트 분들은 해당 작업을 누가 디자인했는지 드러내지 않으시더라고요. 이런 부분을 바꾸고 싶어서 많은 요청을 했고, 이제는 역으로 클라이언트들로부터 요청을 받고 있기도 해요.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가 7만 명이 넘다 보니 했던 작업을 태그해서 올려달라는, 재밌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저는 오래 작업하고 싶어요. 나이와 세대를 떠나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동시대에 작업하는 작업자로서 꾸준히 작업을 해나갈 수 있었으면 해요. ‍‍ 글 | 문지원 ‍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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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마케터의 도파민 터지는 사회변화 캠페인 기획법
‍ 전직 마케터의 도파민 터지는 사회변화 캠페인 기획법 👉🏻 긴 글은 PDF로도 받아볼 수 있어요 ‍ 📣 모두가 '캠페인' 하는 시대 ‍ 캠페인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기업에서 하는 광고 캠페인이나 브랜딩 캠페인도 있고, 비영리 조직이나 공공기관에서 하는 공익 캠페인도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정당에서 하는 정치 캠페인도 있어요. ‍보통 영리 목적의 ‘마케팅 캠페인’과 공익을 위한 ‘사회변화 캠페인’이 많이 다르다고들 생각합니다. 주체나 메시지의 목적만 봐도 다른 점이 정말 많죠. 그런데 이 둘을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자동차 브랜드의 마케팅 캠페인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 캠페인은 시승 신청을 위한 개인정보 수집이 목적일 때가 많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자동차 구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쉽고 간단하게 개인정보를 입력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시승 신청 사이트와 홍보 콘텐츠를 기획했습니다. 몇년 뒤 대선을 앞두고 기후, 청년, 소수자 인권 등에 대한 대선 후보의 공약과 입장을 요약한 ‘대선 캐비닛’ 콘텐츠를 알리는 캠페인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대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쉽고 간단하게 이메일 주소를 입력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구독 페이지와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두 가지 캠페인은 운영 주체와 궁극적인 목적, 대상과 규모까지 모두 달랐지만, 소식을 받아볼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는 점에서는 아주 유사하죠. ‍ ✅ 마케팅 캠페인과 사회변화 캠페인의 공통점 1) 먼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진행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알릴지, 사회문제와 활동을 알릴지 차이일 뿐이죠. 2) 알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도 비슷해요.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캠페인이 많습니다. 마케팅 캠페인은 주로 ‘구매' 행동을, 사회변화 캠페인은 ‘참여’ 행동을 유도하죠. 3) 행동 변화를 넘어서 ‘팬’을 만들기도 합니다.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충성 고객이 필요하고, 비영리 조직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지하는 회원들이 필요하니까요. ‍ 이 공통점들은 바로 캠페인을 하는 목적이자 본질이기도 한데요. ‘캠페인’의 어원은 전쟁 용어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사회 이슈와 운동, 그리고 이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과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 이 경쟁 상황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알리고, 변화시키고, 연결되는 것이 바로 ‘캠페인’인 거죠. ‍‍ 🌊 ‘사회변화’ 캠페인 물결 속에서 ‍검색창에 ‘캠페인’을 입력하면, 초록색 이미지가 가득합니다. 연관검색어로 ‘환경’과 ‘공익’ 등이 보여요. 이제는 기업들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익 캠페인을 하고, 반대로 비영리 단체들도 브랜딩과 마케팅 전략을 시도합니다. 아예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는 소셜 섹터의 비중과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어요. ‍ ESG 경영과 가치소비, ‘브랜드 액티비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 속에서 기업과 단체는 모두 사회변화 캠페인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아직도 남아있고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캠페인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기획하는 사회변화 캠페인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고, 그들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만들고,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 🏄 ‘뼈케터’의 캠페인 기획 노하우 저는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에 매료되었어요. 그래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하고, 광고연합동아리에서 활동하고, 광고회사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디어를 만들고 파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리는 기획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왔어요. 어느새 ‘뼈케터’(뼛속까지 마케터)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사회변화 캠페인을 할 때도 마케터의 시선과 태도를 적극적으로 적용했던 거죠. 마케팅의 기본 개념인 STP 전략, SWOT 분석, 4P 기획부터 AIDMA, AISAS 등 소비자 행동 모델과 퍼널 전략까지 활용해 왔습니다. (이중 모르는 개념이 있다면, 검색해 보고 공부하며 적용해 보길 추천 드립니다.) ‍특히 캠페인의 메인 컨셉을 도출하기 위해 아이디어 발상법을 꼭 적용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크리에이티브 개발법이 있는데요. 당연히 정답은 없지만, 여러 이론을 살펴보고 실제로 시도한 결과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했어요. 정보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숙성의 시간을 거쳐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다음 구체화를 하면서 실행하는 과정이죠.‍ ‍ 기획 과정의 예시로 실제 진행했던 캠페인을 소개하려 합니다. 가장 최근에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 기후 헌법소원을 위한 국민참여의견서를 모으는 캠페인을 기획했어요. ‘말풍선 보내기’라는 컨셉을 중심으로 ‘기후대응 이의있음! 우리의 말은 헌법재판소로 간다'는 슬로건을 뽑았습니다. 이 메시지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 1) 수집과 분석 기획에 앞서 다음 세 가지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 📌 캠페인 내용과 관련된 정보 저는 기후단체에서 활동했던 경험도 있고 비건 유튜브를 운영하며 IPCC 기후보고서를 다뤄왔기 때문에, 기후 이슈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었어요. 최근 기후 이슈들을 다시 살펴보며 이해도를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기후 헌법소원 소송에 대한 자료를 공부했죠. 국민참여의견서 캠페인을 시작한 배경과 목적부터 보도자료, 변론요지서 등을 꼼꼼하게 파악했어요. 기후 이슈를 다루는 소셜 계정을 탐색하며 콘텐츠 내용과 구성을 수집했습니다. ‍ 📌 캠페인 형식과 관련된 참고 자료 캠페인 기획에 참고할 만한 국내외 캠페인 케이스와 웹사이트를 모아 서로 공유했어요. 주제와 무관하게 다양한 형식의 캠페인을 함께 살펴보며, 우리 상황에 맞게 어떤 부분을 참고하고 어떤 부분을 다르게 해야 할지 이야기했죠. ‍ 📌 관련 없어 보이지만 연결할 수 있는 것들 함께한 팀원들과 소통하는 슬랙방 중에 ‘짤방 공유방’이 있었어요. ‘짤방 공유방’에서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을 틈틈이 공유했죠. 이후 구체화 및 실행 단계에서 콘텐츠에 활용되었습니다. ‍ 광고회사에서는 마케팅 전략을 짜기 위해 자사, 타사(경쟁사), 시장 상황, 잠재 소비자 등을 분석한 팩트북을 만들곤 합니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생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조합만 있을 뿐이죠. 자료를 분석하며 어떤 전략이 필요할지 방향을 잡습니다. ‍‍ 2) 발산과 수렴 먼저 어떤 톤앤매너와 컨셉을 가진 캠페인이 필요한지 고민했습니다. 국민참여의견서를 모으는 이유는 단순히 권위 있는 전문가의 의견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함께 듣기 위한 거였어요. ‍구체적으로는 청년과 더불어 어린이, 청소년, 중년, 노년 모두 자신만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거주지나 직업, 정체성의 제한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했어요. 그러려면 이 소송의 맥락을 쉽게 전달하고, 간단하지만 솔직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라, 편안하고 재미있는 톤앤매너가 필요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착하기만 한 이미지나 투쟁적인 이미지도 지양했습니다. 대신 헌법소원까지 했고, 단순히 좋아요나 후원이 아닌 ‘의견서’까지 받기로 한 결정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광기와 진심을 담았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와 이건 함께 해야 해!’라고 느끼길 바랐습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나누었어요. “국민참여의견서를 작성해서 제출해 주세요, 하면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지잖아요. 단어도 익숙하지 않고, 나 말고 더 똑똑한 사람이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좀 있거든요. 근데 이 의견서를 글로 쓰는 게 아니라, 말로 하게 하면 어떨까요? 모든 글은 ‘말’에서 시작하니까요.” “글 대신 말이 좋겠어요.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편한 건 ‘채팅’인 것 같아요. 이 의견서를 재판장님에게 보내는 ‘말풍선’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때요? ‘아니 근데 재판장님, ~ 한데요. ~한 판결을 내려주세요’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사람들이 만든 말풍선들이 헌법재판소로 슝 보내지거나, 그 주위를 둘러싸는 이미지가 생각나요. 지도에서 헌법재판소 위로 메시지 알람이 마구 쌓이고, 의견서를 전달한 후에는 읽음 처리가 되는 거죠!” 회의 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했어요. 머릿속에 그림이 딱 그려지지 않나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이 컨셉이 뚝딱 나오지는 않았어요. 여러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발산하는 회의를 했죠. 이때 처음부터 완벽한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거나, 현실적인 조건을 생각하면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 안에서만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가감 없이 다 던질 수 있어야 새로운 생각을 연결할 수 있어요. ‍ 3) 구체화 그렇게 발산, 수렴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후대응 이의있음! 우리의 말은 헌법재판소로 간다”라는 메인 슬로건을 정했습니다. 캠페인 사이트는 메신저로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나누면 자연스럽게 헌법재판소에 보내는 말풍선 형식의 의견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덕분에 어린이부터 중년과 노년,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분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어요. ‍ 채팅과 말풍선이라는 컨셉을 살려 홍보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참여를 독려하기도 하고, 공개변론일에 정부와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나눈 대화를 채팅으로 재구성해서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참여 유도 메시지에서 기존에 공유했던 밈과 짤들을 적절히 활용했어요. ‍ 온라인 캠페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캠페인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더 긴 글을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해 글쓰기 키트를 기획하고 함께 글을 쓰는 자리도 마련했어요. 동시에 이 글쓰기 키트를 온라인에 게시해서, 어디서든 글쓰기 모임을 열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울부터 제주까지 그야말로 전국구에 있는 많은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었어요. 🌝 ‘즐겁게’ 일해야 하는 이유 ‍마케팅 캠페인과 사회변화 캠페인이 비슷하다고 했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영리 기업의 마케팅을 주로 하다가 사회변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겪은 실무적 어려움과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나눠볼게요. 우선, 예산의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기업도 ROI(광고 지출 대비 수익률)를 계산하면서 돈이 되는 마케팅만 하려고 하는데, 사회변화 캠페인의 성과는 금전적인 수익이 아니잖아요. 경제적인 부분과 더불어 인력이나 시간 등 여러 리소스가 부족한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뭔가를 만들거나 행사를 열면 필연적으로 쓰레기가 생기게 되는데, 이게 정말 큰 딜레마입니다. 많은 캠페이너가 캠페인을 물리적으로 경험하게 할 수단을 고민할 때마다 어려움을 마주합니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가 되지 않을 유의미한 굿즈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행사를 기획해야 폐기물이 덜 나올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게 되죠. 게다가 공익을 위한 캠페인임에도 보수적인 조직이 주체가 되거나 협업의 대상이 되면 처음 목표와 달리 타협을 하거나, 메시지를 둥글게 깎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후대응 이의있음’ 지하철 광고를 할 때도, 캠페인 슬로건을 그대로 쓰지 못했어요. 논쟁적인 의견광고라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죠.‍ ‍ 이런 어려움 속에서 실무자들이 지친다는 문제도 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번아웃을 겪는 활동가와 기획자, 창작자들을 봐왔습니다. 한국의 많은 사회문제는 죽음, 폭력, 차별 등의 문제를 갖고 있는 데다가, 혐오세력의 악플이나 공격에 대응해야 하는 때도 있으니까요. 그럴수록 함께하는 동료와 많이 이야기하면서 지치지 않게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돌봄과 나눔이 가능한 관계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와 가능성이 열립니다. 회의 시작 전후로 일상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서로 무엇을 바라는지 욕망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나눌 때 많은 문제가 해결되니까요. ‍ 즐겁게 해야 한다고 해서, 모두의 감정이 꼭 밝고 행복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분노로 흥분하거나, 슬픔을 나누며 기획할 때도 있고, 답답한 마음이나 불안한 마음으로 몰입할 때도 있죠.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없는 것 취급하거나 무시하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동료와 마음을 나누고 솔직한 연대를 쌓으며 일하는 거죠. 재밌다고 평가받는 캠페인과 콘텐츠 뒤에는 늘 동료와의 공명이 있었습니다. 제 2회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PM을 맡았을 때, “퀴어 퍼레이드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하라”는 정치인의 발언이 있었어요. 동료와 함께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발언을 향한 반발심으로 공명하며, 어떻게 하면 퀴퍼를 더 잘 보이게 할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에서만 하던 온라인 퀴퍼를 바깥으로 꺼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퍼레이드를 여는 공간 말고도 여기저기 마구 보이게 하고 싶은데… 하며 아이디어를 모았어요. ‘우리의 퍼레이드는 막을 수 없고, 어디서든 열릴 수 있다’는 뜻을 담아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라는 슬로건을 뽑았습니다. 지하철 광고로 마음을 표현하는 팬덤 문화와 영리기업의 온오프라인 통합 캠페인들을 떠올리며, 오프라인 연계 광고 캠페인을 제안했죠. ‍ 그렇게 옥외 광고를 위한 펀딩 사이트를 열었고, 며칠 만에 1차 목표액인 천만 원을 달성했어요. 빠르게 늘어가는 펀딩금액을 보면서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총 2천 만 원의 광고 예산으로 서울과 부산, 대구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 우리의 존재를 드러냈어요. 광고회사 업무 경험을 활용해서, 제한된 예산 내에 최대한 많은 공간에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미디어믹스를 구성하고 집행했는데요. 인스타그램에서 진행하는 퍼레이드 장면을 여러 공공장소에 내보냈을 때의 그 짜릿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이후 이 광고는 아르코미술관 기획전에 전시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었어요. ‍ 광고 매체뿐 아니라, 퀴어 퍼레이드를 지지하는 커뮤니티의 힘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퀴어 퍼레이드에 신청한 분들께 포스터를 보냈습니다. 학교 게시판부터 동아리방, 음식점과 카페, 미용실, 친구 집 대문, 국회의원실까지. 퀴어프렌들리한 공간마다 포스터가 붙었어요. 기획자로서 메시지와 매체가 일치할 때 큰 쾌감을 느끼는데요. 어디서든 길을 열겠다는 슬로건과 실제로 다양한 공간에 우리의 존재를 드러냈던 캠페인 방법이 일치해서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 🔥 캠페인 ‘성공의 기준’을 고민해야 할 때 ‍ 그렇다면 제가 했던 캠페인은 과연 ‘성공적인 캠페인’일까요?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성공일까요? 후원금을 많이 모으면 성공일까요? 재미있다고 평가받거나, 소셜 섹터에서 이야기되면 성공인 걸까요? 아니면, 법과 제도를 변화시켜야만 성공일까요? 물론 캠페인 성공의 기준은 캠페인의 목적과 규모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량적으로는 콘텐츠 도달, 캠페인 참여, 웹사이트 방문이나 팔로워 수, 관련 키워드 검색량 등을 측정할 수 있고요. 참여자들의 피드백이나 후기, 이슈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터뷰나 자체적인 회고를 통해 정성적인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회변화 캠페인이 성과 측정에 어려움을 겪어요. ‘사회변화’ 캠페인인 만큼 결국 ‘변화’를 이끌었느냐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이를 측정하기 위한 수단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보통 캠페인은 짧은 기간 진행하는 데 반해, 사회는 천천히 변화합니다. 그렇다고 기업에서 하듯이 장기간 조사를 염두에 두면서 리서치 회사에 큰 비용을 주고, 대중의 인식과 행동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경우는 드물죠. 게다가 실제로 유의미한 사회변화가 있더라도, 마케팅 캠페인과 달리 하나의 이슈에 하나의 캠페인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중 어떤 캠페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성과 측정의 어려움은 꽤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과를 알기 어려운 캠페인은 계속해서 필요한 리소스를 획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요. 사회변화 캠페인의 숫자는 늘고 있지만, 진짜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캠페인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동시에 그린워싱과 같은 ‘허울’ 뿐인 캠페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했다’는 데에만 의의를 두는 캠페인을 기획하느라, 진정한 변화를 만들 기회와 가능성은 고려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실무자로서 ‘단 한 명이라도 이 캠페인(콘텐츠)으로 삶이 바뀌었다면, 성공한 거지!’하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지만, 캠페인을 하기 전과 후의 세상이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아요. 이렇게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면 당연히 지치게 됩니다.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경우도 생겨요. 그렇게 사회변화 캠페인 실무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는 것은 점차 어려워지죠. 사회변화 캠페인이 지속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캠페인들의 성과 측정 방법을 더 고민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조사와 분석에 필요한 자원을 지원할 수도 있고, 시상을 하거나 성공 사례를 나누는 자리와 지면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더 많은 사회변화 캠페인이 가시적인 성과를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 🤝 경계를 넘나드는 ‘연결’을 꿈꾸며 ‍ 마치 사회변화 캠페인의 전문가인 것처럼 글을 썼지만요. 제목에서 밝혔듯 저는 사회변화 캠페이너로 쭉 커리어를 쌓아온 게 아니었습니다. 광고AE, 마케터, 프로젝트 매니저, 제작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여러 일을 해왔습니다. 동시에 비건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영화도 만들고, 글방에 다니면서 소설과 에세이도 썼고요. 독서모임과 회고모임도 하고, 전시와 영화제도 다니고, 그림과 타투와 타로도 배우고, 요즘엔 윤리학과 법 공부도 하고 있어요. 직장인과 활동가 사이, 기획자와 제작자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정체성의 경계에 서 있다는 감각으로 일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복합적인 정체성 덕분에, 저만의 시선을 가지고 사회변화 캠페인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었어요. 솔직히 저보다 기획 잘하는 사람, 콘텐츠 잘 만드는 사람, 사회변화 캠페인에 대한 전문 지식이 많은 사람은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광고홍보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서 여러 브랜드 마케팅을 하다가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캠페인과 콘텐츠를 만들고, 비건 지향을 하면서 오픈 퀴어로 살아가는 여성 청년 캠페이너는 많지 않죠. ‍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과 취미, 관심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직업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변화 캠페인 기획에 더 많이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 사회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고, 사회운동은 활동가들만 하는 거라는 구분 짓기를 그만두고,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을 넘어서길 바랍니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 사회변화 캠페인을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더 많은 경계에서 협업이 필요합니다. 여러 조직과 개인이  만나고 섞이기를 바랍니다. 시인이자 카피라이터인 함민복 시인은 <모든 경계에서 꽃이 핀다>고 했는데요. 우리 더  기웃거리고 딴짓하면서, 이곳저곳의 경계에서 만나요! 글 | 장은나 ‘비건먼지’ 유튜브와 팟캐스트 운영자이자, 프리랜서 캠페인 기획자.비건 퀴어 페미니스트 정체성으로 글을 쓰고 영화를 제작한다.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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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잠재후원자), 내 동료가 되어라!” 누구나데이터 김자유 대표 누구나데이터는 ‘사회혁신가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적정기술 솔루션’이라는 슬로건으로  소셜 조직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고 있어요. 최근에는 <비영리단체 성장 공식, 잠재후원자 모금>이라는 제목의 가이드북을 펴내서 무료로 공유하고 있죠. 오늘은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비영리 조직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후원자를 찾을 수 있을까?" 질문을 했습니다. 책 전체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 다운받거나 읽어볼 수 있어요. 👉 <비영리단체 성장 공식, 잠재후원자 모금> | 모금 기술에 관한 책을 집필한 배경이 궁금하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 모금의 필요성이 급증했고, 많은 비영리 조직에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모금은 쉽지 않다. 우리는 디지털 모금에 성공한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을 분석했고, 잠재 후원자 명부가 결정적 요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잠재 후원자를 만나고 관계를 맺어 후원자로 만든다는 개념은 기본적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실행하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했다. '잠재 후원자 모금 포럼'을 개최하여 성공 사례를 공유했다. 2년간 8차례 진행된 포럼의 내용을 정리해 잠재 후원자 모금 이론과 6개 적용 사례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 | '잠재후원자 모금'은 무엇인가? '잠재후원자 모금'은 '잠재후원자 데이터 기반 모금'을 줄인 말이다. 어떤 사람을 후원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의 연락처를 획득하고 지속적인 육성을 통해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후원자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먼저 잠재후원자를 만들어야 이 중에서 후원자가 나온다. 잠재후원자의 수와 이 중 실제 후원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조직의 중요한 지표다. ‍잠재후원자가 없다면 기존 후원자에게만 계속해서 후원, 증액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많은 단체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잠재후원자 확보에서부터 시작하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관심자와 잠재후원자와의 특징 비교 ©누구나데이터 ‍ | 전통적인 모금 방법과는 어떻게 다른가? 기본 골격은 동일하다. 잠재후원자를 기반으로 관계를 발전시키고 모금하는 원리는 변함없는 진리다. 다만, 디지털 시대에 맞춰 잠재후원자 모금 방법도 변화해야 한다. 과거에는 잠재후원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데 많은 비용이 발생했다. 큰 단체만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온라인으로 통해 잠재후원자를 만나고, 데이터를 모으며, 후원을 요청하는 작업을 거의 비용 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 | 보조금, 수익사업(위탁/용역 등), 기업 후원을 통한 재원 확보가 좀 더 수월하지 않나? 기업 후원으로 잘 운영되는 조직도 개인 후원자 확보에 관심이 많다. 개인 후원자 기반의 재정 자립은 조직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 문제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조직은 자신을 온전히 지지하는 후원자와 동기화되어 사회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다. ‍‍ | 가장 인상 깊은 사례를 꼽자면? 서울환경연합의 ‘플라스틱 방앗간’ 캠페인이 기억에 남는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새로운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였다. 해외 환경운동가가 개발한 오픈소스 설계도를 참고하여  플라스틱 재활용 기계를 제작했다. ‍'참새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참여자들이 플라스틱을 보내면 재활용 굿즈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캠페인이었다. 이를 통해 잠재후원자를 모았고, 뉴스레터, 전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후원을 요청하고 활동을 알렸다. 작은 관심을 점차 더 깊은 관심으로 발전시키도록 잘 설계한 모금 캠페인이다. 서울환경연합 '플라스틱 방앗간' 캠페인 사례 | 모금의 디지털 마케팅 접근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전히 비영리 조직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더디다. 젊은 층이 다수인 조직은 데이터/디지털 활용이 용이하고, 그렇지 않은 조직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상관관계는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직의 변화 수용성’이다. 나이나 세대와 관계없이,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고 최소한의 협조가 이루어지는 조직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 하에 실무자의 시도를 수용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조직 문화가 핵심이다. 이는 젊은 조직이나 오래된 조직 모두에 해당한다. ‍ | 참여연대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전화모금이 활동가에게는 인사이트와 동기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모금 효과도 높았다. 전통적인 전화모금이 효과가 좋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실제 얼마의 모금이 이뤄지는 지가 중요한데, 때로는 디지털 방식보다 전화가  비용 대비 효과적일 수 있다. 또, 후원자와 직접 대화할 수 있어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능했다. SNS, 문자 메시지, 이메일 등 활자를 통한 모금은 전화, 대면과 같은 육성을 통한 모금보다 불리하다. 전화 모금은 후원자의 반응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조직의 활동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며, 활동가에게 동기 부여와 응원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기본적인 모금 방법을 시도해보지 않은 조직이라면, 전화 모금이 효과적이고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 적극적인 모금 활동이 비영리단체의 미션을 왜곡시킬 위험은 없나? 잠재후원자 모금은 미션을 훼손하거나 후원자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이행할수록 후원자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구성원도 미션에 더 동기화된다. 모금은 단순한 예산 확보가 아니다. 특히 개인 후원자 모금은 단체의 미션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후원자와 진솔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이 과정은 자주 할수록 좋다. 후원 요청을 통해 우리의 미션과 활동을 자세히 소개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후원자는 미션을 더 깊이 이해한다. 우리의 가치를 알리는 가장 확실하고 적극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모금 활동은 우리의 사업이나 활동과 동떨어진 일이 아니며, 단순히 기부만 유도하는 활동이 아니다. 모금은 미션 실현과 후원자와의 관계 강화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 | 후원자와 더 가까워지려면 실제로 어떤 노력을 해볼 수 있을까?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온라인 활동과 콘텐츠 발행을 통해 다양한 수준의 잠재 후원자들과 초기 관계를 맺는다. 후원자가 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소통으로 사업 소식을 전하고 추가 참여를 유도한다. ‍더 깊은 관계를 위해서는 열성 후원자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자문위원회, 고문, 이사 등의 역할을 부여하거나, 자원봉사 기회를 제공하고, 재능 기부를 요청할 수도 있다. 또한, 후원자 인터뷰 진행, 후원 경험 후기 작성, 기념품 인증 요청 등의 방법도 있다. 이러한 활동은 후원자를 조직의 미션에 더 가깝게 만드는 과정이다. ‍후원자가 타인 앞에서 후원 조직을 자발적으로 옹호하는 단계까지 발전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더 이상 후원 관리가 필요 없는 동료 수준의 관계로 발전하여, 오히려 조직의 신규 후원자 발굴을 돕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후원자는 단순한 기부자에서 조직의 진정한 동료로 성장할 수 있다. 잠재후원자 모금 프로세스 ©누구나데이터 ‍| 디지털 환경에서도 대형 모금 조직과 중소형 모금 조직의 격차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큰 단체들의 모금액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고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일단, 중소형 비영리 조직은 좀 더 니치하게 단체의 미션에 공감하는 잠재 후원자를 타겟팅해야 한다. 대형 조직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기에 광고 등의 유료 마케팅은 효과가 떨어진다. 대신 이메일, 카카오톡 채널, 문자 메시지 등 직접 소통 채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러한 방법은 대형 단체보다 작은 단체가 더 능숙하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편, 생태계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비영리 섹터 전반의 기술 역량 강화와 지원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그래야 작은 조직도 디지털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사회혁신가를 위한 기술 투자를 확대해야 하며, 비영리 섹터에 특화된 기술 개발과 공급이 필요하고, 비영리 단체의 특성에 맞는 적정 기술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기술 개발과 적용을 지원하는 생태계, 자금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비영리 섹터에서 활동한 B2B 기술 기업 현황  ©누구나데이터 | 작은 단체들이 온라인에서 후원자를 모으려면 어떤 채널을 선택해야 할까? 효과적인 마케팅 채널을 선택하려면 타겟의 특성과 선호하는 매체를 파악하고, 동시에 단체의 가용 자원을 고려해야 한다. ‍홈페이지나 캠페인 페이지는 필수다. 이 채널은 잠재 후원자 데이터를 모으는 허브 역할을 한다. 단순히 팔로워 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팔로워를 뉴스레터 구독자로 유입시키는 등 단계적 전환이 중요하다. 그래야 각 단계별 액션 플랜을 수립할 수 있다. 카카오톡 채널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뉴스레터와 유사한 효과를 내면서도 1대1 푸시 메시지 전송이 가능하다. 카카오톡의 특성상 사용자 비율(99.9%)이 높고, 운영 비용도 낮다. 또 이메일보다 정보 수집이 간편해 더 쉽게 잠재후원자를 확보할 수 있다. 자원이 제한적인 비영리 조직에서는 카카오톡 채널 활용을 고려해볼 만하다. ‍ | 창업 8년 차로서, 창업 초기와 비교하여 자유 님과 조직은 어떻게 달라졌나?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혼자 시작한 회사가 이제는 팀으로 성장했고, '오늘의 리포트', '캠페이너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더 많은 조직이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 누구나데이트를 통해 디지털 전환한 국내 비영리단체 비율 ©누구나데이터‍ 그러나 중소형 비영리 조직의 디지털 모금 일상화라는 우리의 목표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별도의 학습 없이도 디지털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모금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는 전체 비영리 단체 중 약 3%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더 광범위한 확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비영리 섹터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글 | 최성욱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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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으로 장례 준비하는 법
100원으로 장례 준비하는 법 고이장례연구소 송슬옹 대표 ‍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적 있으세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이고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기 마련인데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소개할 고이장례연구소의 송슬옹 대표는 치열한 진심으로 장례를 연구하며, 이 질문에 "장례 과정에는 따뜻함 하나만 있으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장례가 단순한 의식을 넘어 고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기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현 상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장을 만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송슬옹 대표가 꿈꾸는 정직한 장례 시장과 새로운 장례 문화에 관한 이야기, 함께 살펴보시죠! 🗺️ 진심을 배우는 업(業) ‍ | 어떤 계기로 상조 산업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아버지가 장례지도사로 활동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장례에 익숙해지면서 죽음을 필연적이고 객관적인 현상 자체로 받아들였죠. 직접적인 관심을 두게 된건 저 역시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후였어요. 스무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과정에서 장례에 문제의식을 느꼈죠. 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신 분들은 누구신지 왜 오시는지조차 몰랐어요. 모든 의례가 저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형식이었죠. ‍게다가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자주 찾아뵙지 않았던 터라 당신이 돌아가신 뒤 커다란 죄책감과 우울을 마주했어요. 미안하고 고마웠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일상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처음 경험한 죽음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도 몰랐고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었던 순간은 할머니의 첫 기일이었어요. 가족과 함께 울면서 할머니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죠.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보고 느꼈던 할머니의 모습을 듣다보니 당신의 삶이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를 더 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었죠. ‘장례식 때 이랬어야 했는데’ 싶더라고요. 치유는 의미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장례식의 본질이 형식보다 의미에 가까워야 하는 이유죠. 지금의 장례식은 이와 거리가 멀고요. 장례를 더 의미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 산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 | 장례지도사를 꿈꾼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대학을 오래 다니면서 휴학을 3년 했고, 그동안 스타트업 2곳에서 일했어요.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의 순간에는 늘 고객이 있음을 체감했어요. 저의 꿈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무얼 원하고 어떤 지점에서 어려워하는지 살펴야 함을 몸으로 배웠죠. 우선 고객과 가까이에 있으면서, 내가 진심으로 해보고 싶었던 장례지도사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이후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장례지도사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는 구조라, 고객을 직접 데려오기가 참 어려워요. 어떻게 고객을 데리고 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알고 있는 장례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지식인 답변을 시작했어요. 한 달간 매일 답변을 달았죠. 그렇게 하다가 처음으로 장례 상담 요청을 받았어요.   ‍ | 첫 번째 고객을 지식인 활동 중에 만나신 건가요? 맞아요. 제가 평생 장례지도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이기도 해요. 처음 맡은 장례이다보니 마음에서 우러나 했던 일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에게도, 저에게도 정말 중요한 일인 만큼 잘 해드리고 싶었죠. 장례 전에 필요한 것, 장례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의 세세한 내용을 담은 가이드와 손편지를 전해드렸어요. 또, 제가 만약 이분들의 가족이라면 뭐가 필요할지 생각해봤어요. 빈소를 차리지 않고 가족끼리만 하는 장례였는데요. 보통의 장례에서는 가족들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입관식 때 조문객으로부터 헌화를 받아요. 그런데 ‘우리 아빠만 받지 못하면 씁쓸하겠다’고 짐작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족분들이라도 따로 헌화할 수 있도록 꽃을 한 송이씩 준비해뒀어요. 이런 작고 사소한 부분들을 알아봐 주셨고, 감사함을 표현해주셨죠. 마지막 날 화장터에서는 관이 들어가고 고인의 아내분께서 무너지셨는데, 그 감정이 저에게까지 전이된 나머지 저 또한 화장터가 떠나가도록 울었어요. 상주분께서는 오히려 저를 위로해주셨고요. 그때만큼은 저도 이분들의 가족이었고, 이 가족의 장례지도사였던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당시 여자친구이자 현 아내에게 ‘나 평생 장례지도사 해도 되겠다’고 말했어요. 서울대 출신이라는 학력 필요 없고, 이게 가장 행복하다 싶었죠. 그간 많은 걸 팔아보았음에도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판매했을 때 너무 행복했고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어요. ‍‍ |  장례지도사에서 고이장례연구소 창업으로 나아간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경험한 장례는 다른 거 필요 없이 따뜻한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되는 서비스였어요. 저도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으니 기존 회사들을 찾아가 배우려 했죠. 장례식장 알바를 뛰기도 하고, 상조 회사에도 프리랜서로 영업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당시 채용을 위해 만났던 한 상조회사의 대표님께서 ‘여기 전쟁터야. 이 시장은 저가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상조 산업은 기본적으로 하청이 반복되는 구조로, 고객을 미리 설득해 기존 상품에서 다른 옵션을 더 팔아 돈을 벌고 있었어요. 추가 옵션을 팔지 못하면 장례지도사 개인은 돈을 벌지 못했고, 마케팅비도 굉장히 많이 들었죠. 상조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어요. 제가 꿈꿨던 특별한 장례는 나중의 일이구나 싶었어요. 지금은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상태였으니까요. 장례 서비스는 따뜻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부족한데, 무언가를 더 팔려는 마음이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이걸 바로잡야겠다 결심한 뒤로는 구조 자체에 화딱지가 나더라고요. 장례지도사들이 무언가를 팔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회사로서는 디지털 혁신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잘못된 시장을 바로잡고 좋은 장례 서비스를 시장 내에 표준화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이를 실현할 수단인 비즈니스로 고이장례연구소를 시작했습니다. 🔬 본질에 집중하는 장례 ‍ | ‘고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잘 어울려요. 고이는 한글로 ‘편안하고 순탄하게’라는 뜻이에요. 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른 방식은 아니었고,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를 어떤 말로 표현할까 고민하다 자연스레 튀어나왔어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돌아가신 분을 잘 보내드리는 것, 그게 다구나, 그래서 고이구나 싶었죠. ‍‍ | 왜 ‘연구소’라는 명칭을 사용하세요?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동시에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가운을 입는다고 연구가 아니라 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연구인 것 같아요. 더 나은 장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회사였으면 해서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이름에 상조가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어요. 상조만으로는 우리의 비즈니스를 설명하기 어려우니까요. 말이 주는 힘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하는데, 상조 산업에 묶이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더 큰 꿈을 갖고 있고, 더 많은 걸 하고 싶거든요(웃음). ‍ | 지금의 장례·애도 문화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희는 지금까지 투명하고 정직한 장례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왔어요. 다른 시장은 가격을 정찰제로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례는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었어요. 노잣돈이나 수고비를 요구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잘못된 지점을 하나씩 바로잡는 일이 가장 시급했죠. 지금은 이걸 비즈니스로 해결하고 있는 과정이에요. 앞으로의 3년은 상조 산업의 더 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요. 상조 회사는 고객이 회사에 미리 맡겨 놓은 돈인 ‘선수금’을 갖고 있는데요. 올해 3월을 기준으로 상조 업계 선수금 총합이 9.5조 원에 달해요. 그런데 상조 회사는 이 돈으로 대주주 펀드에 출자하거나 관계사 대여금, 주식 매입 등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등 고객이 낸 돈을 임의로 운용해왔죠. 이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됐어요. 실제로 2022년, 업계 10위권이었던 ‘한강라이프’가 폐업, 도산하면서 위험이 현실화된 적이 있고요. 운용을 무리하게 하다가 투자 손실을 본 상조 회사도 있었어요. 고객이 서비스를 해지하면 위약금을 주거나 환급을 진행해야 하는데 지급능력을 상실한 상황이 된 거예요 지급도 못 하고 폐업한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이 떠안죠.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자 해요. ‍ | 복잡해보이는 문제 같은데요. 고이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시나요? 상조 회사의 본질은 장례 서비스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상조회사는 가전제품이나 상품을 주겠다며 미리 고객을 데려오죠. 고객은 혹해서 가입하고요. 정작 메인 비즈니스인 장례는 하청이 얽힌 구조이니 돈을 벌지 못하고 있으니, 선수금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상조 회사들은 결국 금융업을 하는 거예요. 혹은 장례 마케팅을 하는 정도거나요. 저는 이게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장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매일매일 다른 노력을 하는 게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이에서 출시한 서비스가 바로 ‘100원 상조’예요. 장례 준비에 100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었죠. 3만 원씩 낼 필요 전혀 없고, 별도의 운용 없이 100% 예치하고, 중간에 해지해도 100%를 다 돌려 드리고 있어요. 다행히도 100원 자체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도 있고, 고이가 이걸 왜 하고자 하는지까지 이해해주시고 가입한 분들도 계세요. 선한 가치가 순환한다고 믿어요. 더불어 그간 정규화되지 않았던, 오프라인에서 사람이 하던 일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자동화하고 스케일업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 결과로 정보의 데이터화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혁신을 일궈내고 있습니다. ‍ | 고이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고객이 원하는 건 제대로 된 장례예요. 그러니 서비스의 본질인 가격과 품질로 승부하고 있죠. 상조회사의 서비스 평균 가격은 500만 원인데, 저희는 가격을 50%로 낮췄어요. 고이가 싸게 파는 게 아니에요. 상조회사는 구조적인 이유로 비쌀 수밖에 없지만, 저희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비용을 줄였다는 점이 포인트죠. 가격은 따라 할 수 있어도 구조는 따라 하기 어렵다고 봐요. 서비스의 품질을 증명할 방법은 후기라고 할 수 있어요. 후기 등록률은 저희가 내세우는 지표 중 하나에요. 타 상조 회사의 고객 수 대비 후기 통계가 0.05%인 데에 반해, 고이는 30~50%를 기록하고 있어요. 후기를 요구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하는 액션은 따로 없었음에도 말이죠. 고이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장례식을 마칠 때까지, 마음이 전달되는 후기를 써주시는 거죠. ‍ 🖼️ 존재를 입체적으로 기억하려면 ‍ | 시장의 투명성 문제를 해결한 이후,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궁극적으로는 색다른 장례 문화를 제안하고 싶어요. 작년에 한 고객님께서 언니의 장례식을 특별하게 준비하고 싶다며 고이를 찾으셨어요. 한 달 동안 핀터레스트로 사진을 주고받으며 언니분이 좋아했던 꽃과 장식에 관해 이야기 나눴죠. “국화꽃은 싫다”, “언니는 이런 제단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라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어요. 교수이셨던 고인의 제자들은 고인을 기리기 위해 영상을 직접 제작했는데요. 그 영상을 커다란 TV로 재생하면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삶을 기억할 수 있게 했어요. 그분을 향한 추모의 마음을 갖고 빈소로 들어가고, 상주님과 마음을 다해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말이죠. 이야기가 깊은 장례였어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특별한 장례식의 모습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어요. 고인의 이야기가 식장에 흘러넘치는 것, 가족분들이 이분을 잘 추모할 수 있는 것. 웃긴 얘기일 수 있지만, 그 장례식은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시장은 잘못된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이라면, 문화는 개선보다 제안의 측면인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보편적으로 누렸으면 좋겠다 싶죠. 장례에 대한 개인의 니즈는 고인을 좀 더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 고이가 정의하는 진정한 추모란 무엇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제가 하고자 하는 건 고인이 잘 기억되게 하는 것, 남은 가족들이 잘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것만 생각합니다. ‍ | 슬옹님 본인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길 꿈꾸세요? 저는 제가 주인공인 장례를 생각하고 있어요. 집들이 형식이었으면 좋겠고요. 결혼 후 2개월 동안, 저와 아내가 친했던 친구들을 3~4명씩 주말마다 초대했어요. 동반자로서의 모습, 친구나 동료로서의 모습이 모두 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면서 더 풍성한 행사가 되더라고요. 각자에게 소중했던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정말 의미 있었어요. 연작처럼 이어갔던 집들이는 주인공이 우리였고, 초대받은 사람들도 모두 축하하러 발걸음 해줬어요. 얼마나 고맙고 행복해요. 장례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죠. 저는 노쇠하기 전,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요. 이번 주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놀러 가고, 다음 주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는 등 떠날 준비를 하는 거죠.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 팀 고이의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고이는 장례의 품질 개선에 집중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활동들을 기획 중이에요. 당장은 매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고요. 오늘 실패하면 내일 다르게 해보고, 또다른 도전을 하며 고이답게 나아가려 합니다. ‍ 글 | 문지원 ‍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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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하는 콘텐츠 설계하기 - 접근성을 기획하고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내서
환대하는 콘텐츠 설계하기: 접근성을 기획하고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내서 0. 개요 ‍ 최근 몇 년 사이에 문화예술계 내 접근성에 대한 관심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창작자와 연구자를 중심으로 접근성 공연에 대한 시도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여러 공공 문화시설과 행사에서 ‘장애 예술’, ‘배리어프리’, ‘접근성’을 한 해의 주요 키워드로 내세웁니다. 접근성 매니저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것도 근 몇 년 사이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예산이 대폭 삭감된 문화예술, 임팩트 영역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장애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약 16.5% 늘어난 것도 주목할 지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긍정적이고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에서는 접근성이 너무 유행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성과지표를 채우기 위해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를 내세우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에 이러한 우려도 납득이 되는데요. 접근성에 대한 관심이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례와 고민을 잘 수집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접근성 창작자들의 고민과 도전은 그 영역이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으나, 처음 시도하는 이들에게 접근성은 여전히 막막하고 어렵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금다른 주식회사를 운영하는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성 개선의 필요성부터 시작하여, 접근성의 개념과 다양한 측면, 그리고 실제 적용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순서와 내용 등을 폭넓게 다루고자 합니다. (각각의 접근성 장치, 요소에 대해 깊게 다루는 글은 아닙니다.) ‍ ‍ ‍ 1. 접근성, 왜 개선해야 할까? ‍ 최근 몇 년 사이에 주요 화두로 떠오른 접근성.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온 이슈인 만큼 여전히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방법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왜’ 접근성을 개선해야 하는지 언어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접근성 작업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주장은 주로 A. 들어가는 리소스 대비 효율적이지 않다. B. 접근성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다. 라는 것입니다. 사실 주장 A는 문화예술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화예술 또한 수많은 시간 동안 정량적 지표에 대한 증명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가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주장 B는 그들이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배제하며 살아왔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왜 접근성을 개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장애인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접근성 매니저로 활동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공연장에 장애인 관객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전 안내 음성의 내용 변경(공연장 및 안내원 위치, 접근성 매니저 상주 여부, 긴급 상황 발생 시 대처 방법) 및 접근성 매니저 자리 설치를 요청했는데요. 공연장은 이에 대해 진행이 매끄럽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거나 별도의 자리를 설치하는 것이 안전 정책을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저희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몇 차례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도 설득되지 않던 이들을 설득한 것은 결국 ‘장애인 관객의 예매 내역’이었습니다. 실제 장애인 관객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니, 공연장이 정말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한 것이죠. ‍2023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5.1%에 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접근성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노인, 아이, 임산부, 일시적 부상을 입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집니다. 인간이 다양한 만큼,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의 행복 추구 선택지는 비장애인보다 현저히 적고,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우울 정도가 3배 이상 차이 나는 주요한 원인입니다. (2020-2022 장애인 건강보건통계) ‍ ‍ ‍ 2. 접근성이란 무엇인가?_용어에 대한 이해 ‍ 접근성(Accessibility)은 모든 사람이 어떤 제품, 서비스, 환경을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성을 의미합니다. 조금다른 주식회사는 원활한 작업을 위해 접근성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나눠 분류하고 있습니다. ‍ 정보 접근성 : 다양한 이용자가 정보에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용자에게 적합한 정보의 내용, 형식, 공지 기간, 전달 방법 등을 고려하여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 접근성 : 다양한 이용자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용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사전에 갖추어 의사소통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공간/물리적 접근성 : 이용자가 공간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용자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고려하여 물리적 환경을 점검하고 필요한 시설과 안내를 제공하여 공간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접근성 : 프로그램의 특성에 따라 이용자에게 필요한 접근성 요소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이용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방법을 설계하여 프로그램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미학적 접근성 : 접근성이 기능적 역할뿐만 아니라 고유한 미적 요소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움과 접근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며 미학적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접근성 개념을 이해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위 개념들이 실제로는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접근성 향상을 위해서는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각 상황과 대상에 맞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3. 누구를 위해 접근성을 개선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이들을 환대하고자 하는가? ‍ 접근성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대상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모든 배리어를 허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이들을 뾰족하게 설정하는 일은 나아가 더욱 많은 이들을 위한 일이 될 것입니다. 휠체어 사용자를 고려한 경사로가 유아차 이용자나 짐을 운반하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처럼요. ‍ 접근성 개선의 주요 대상에는 시각, 청각, 지체, 발달 장애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이들뿐만 아니라, 고령화 사회에서 증가하는 노인 인구, 임산부 및 영유아 동반자, 언어적 소수자인 외국인이나 이주민,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취약계층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번 콘텐츠를 제작하며 만나고 싶은 이들은 누구인가요? 4. 자원과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것 ‍ 접근성 작업을 시작하는 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입니다. 이 질문을 들으면 저는 “일단 가지고 계신 자원과 상황을 모두 알려주세요.”라고 대답합니다. 접근성은 결국 사람을 만나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정해진 정답이나 끝이 없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상황과 자원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자원이란 단순히 예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데요. 인력, 시간, 기술적 역량, 그리고 조직의 의지까지 모든 것이 자원에 포함됩니다. 충분한 예산이 있더라도 접근성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가진 전문 인력이 없다면 효과적인 개선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한된 예산과 시간 하에서도 의지와 전문성, 상상력을 가진 이들이 모여 협력한다면 놀라운 변화를 만들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조직이나 프로젝트의 현재 접근성 수준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접근성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의 개선이 가장 시급한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공간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콘텐츠라면, 꼭 사전 답사를 통해 공간에 존재하는 배리어들을 꼼꼼하게 찾아야 합니다. 참여자를 모집하여 진행되는 행사라면, 현재 홍보물과 신청 방식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누구인지 짚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외부 전문가의 피드백을 수집하길 추천합니다. 특히 접근성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의 피드백은, 비당사자로서는 알 수 없는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합니다. 접근성 작업의 퀄리티는 결국 작은 섬세함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5. 범위와 예산을 결정하는 일 ‍ 자원과 상황을 진단한 후에는 구체적인 범위와 예산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적인 제약과 이상적인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 이만큼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이 정도면 아예 안 하는 것만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괜찮습니다. 충분하지 못하다고 해서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정확하게 결정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배리어를 인지하고 인정한 뒤, 그 내용을 고객에게 명확하게 전달해 주세요. ‍범위와 예산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주요한 질문과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어떤 정보를 어떠한 방식으로 언제 어디에 전달할 것인가? 정보 접근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대상이 원활하게 콘텐츠의 소식을 접하고 그 정보를 파악하게 하려면 어떠한 장치들이 필요할까요? 만약 시각장애인이 대상이라면, 주요한 시각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음성 포스터를 제작하거나, 주요한 시각 정보를 음성 안내 파일로 녹음하거나, 예매에 대한 안내 및 배리어·접근성 정보를 음성 혹은 텍스트로 안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정보들을 단순히 제작하고 배치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대상이 되는 이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잘 알리기 위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② 정보를 취득한 고객이 어떻게 신청하고, 필요한 접근성을 주최 측에 알릴 수 있을까? 위의 정보 접근성을 잘 세팅하였다면, 이후에는 대상이 원활하게 콘텐츠 참여를 신청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보통 많은 분이 기존의 예매 플랫폼 혹은 구글 독스를 통해 예매를 받는데요. 해당 플랫폼을 통해 예매할 수 없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를 대비하여 상단에 접근성 담당자의 연락처를 안내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신청 페이지 내에 관객에게 필요한 접근성 요소들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추가하여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행사 당일에 어떠한 방식으로 스태프와 소통할 수 있는지를 신청 플랫폼 내에 기재하거나, 예매 고객들에게 문자를 통해 각종 접근성 정보를 안내하는 등 다양한 의사소통 창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③ 고객이 나의 공간에 무사히 찾아오고, 내 콘텐츠를 잘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리적인 공간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운영하신다면, 이제 위 과정들을 거쳐 찾아온 고객들이 어떻게 공간까지 찾아와 원활하게 공간을 이동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 유무, 주·정차 가능 유무, 경사로 설치 여부, 장애인 화장실 유무, 휠체어석 유무, 휠체어 보관 장소 확보, 수동 휠체어 확보, 이동 지원, 로비 내 필담 및 수어통역사 배치, 접근성 스태프 배치, 텍스트 안내 POP, 다양한 이들이 고려된 안내 방송, 편한 의자와 넓은 좌석, 담요와 인형, 비건 음식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장치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나의 대상과 상황에 잘 맞도록 해야 하고, 나아가 환대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세요. ‍ 더불어 실제 행사가 진행되는 때에도 다양한 이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을 고려한 자막해설과 수어통역,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대 혹은 공간에 대한 사전 음성해설, 행사 진행 중 음성해설, 주요 소품들을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터치투어를 진행해 볼 수 있습니다. 아이나 발달장애인이 온다면 큰 소리, 밝거나 어두운 빛에 대해 사전에 잘 안내하고, 중간중간 소리를 내거나 입·퇴장이 가능하도록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④ 지금까지의 과정이 내 콘텐츠와 ‘잘’ 어우러질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위의 과정들을 준비할 때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내가 기획하는 접근성 요소가 어떻게 하면 내 콘텐츠와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접근성이 단순히 ‘서비스’의 영역을 넘어 ‘콘텐츠’의 일부가 되는 것은 다양한 대상이 콘텐츠에 몰입하는 데에 아주 중요합니다. 다만,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접근성 개선’이기에 미학적 접근성에 너무 집중하여 접근성 자체를 낮추는 경우는 유의해 주세요. ‍‍ 6. 접근성 작업 중 ‘더’ 고려하면 좋을 내용들 ‍ 지금까지 우리는 접근성의 개념, 필요성, 그리고 실제 적용 과정에서의 고민과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접근성 작업을 수행하면서 ‘더’ 고려하면 좋을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미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지만, 그럼에도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짚어보려고 합니다. ‍ 📌 당사자성에 대하여 위에 배리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결국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사자성'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실행하더라도, 실제로 콘텐츠를 이용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분명히 놓치는 부분이 생깁니다. ‍따라서 계획 단계에서부터 그들의 경험, 필요, 그리고 제안을 경청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우리의 접근성 개선 노력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과정입니다. 나아가 실제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창작하는 과정부터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접근성 작업을 진행하며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순간에서 당사자와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 📌 기획진과 창작진 전체의 기본 역량 끌어올리기 아무리 접근성 담당자가 의지를 가졌더라도, 다른 이들이 접근성에 대한 이해나 의지가 없다면 그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창작자 또는 기획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워크숍을 진행하길 추천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공통된 이해도 형성: 모든 팀원이 접근성의 개념과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기술 습득: 각자의 역할에서 접근성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나눠볼 수 있습니다. 협업 강화: 서로 다른 부서나 역할 간의 이해도가 높아져 더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해집니다. 창의적 해결책 도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이 모여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조직 문화 형성: 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조직 전체에 퍼져 문화가 형성됩니다. ‍ 📌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관점 만들기 마지막으로,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기존의 가이드라인과 사례들은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각각의 프로젝트, 각각의 공간, 각각의 고객층은 모두 고유한 특성과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여 관점과 접근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때로는 기존의 방식을 뒤집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할 수도 있겠죠.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고 그 맥락 안에서 접근성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분명 좋은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만의 관점을 만드는 일은, 제게는 접근성 기획자로서의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매번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나만의 재미난 방법들을 개발하여 숨 쉴 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지속 가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 📌 닫는 글 결론적으로, 접근성 개선 작업은 단순히 기술적인 과제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 사회를 더 포용적이고 평등하게 만들어가는 지속적인 여정입니다. 당사자성을 존중하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창의적인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모두가 문화와 예술을 동등하게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장 모든 것을 바꿔낼 수는 없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바꿔나가면 그 내용이 쌓여 큰 변화를 끌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때론 너무 지치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는 것 같고,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만 우리의 경험 하나하나가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해요. 이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이 글이 접근성 작업을 처음 시도하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글 | 이충현 조금다른 주식회사를 운영 중인 문화기획자.결과물만이 아닌 과정을 잘 만들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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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는 커뮤니티, 창고살롱
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는 커뮤니티, 창고살롱 W플랜트 창고살롱지기 소영 & 혜영 ‍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답을 찾으시나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을 물색해 보신 적이 있지 않나요? 무엇을 어떻게 하며 나로서 살 것인가가 평생 화두인 필자는 비슷한 인생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여성들의 삶과 생각이 궁금했어요. 그러다 ‘창고살롱’이란 브랜드를 만났죠.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만들고 싶은 여성들의 온라인 멤버십 커뮤니티. 영감을 주는 콘텐츠, 든든하고 멋진 동료, 따뜻하고 진솔한 대화가 가득한 모임. 창고살롱의 살롱지기 두 분을 Table Talk 인터뷰 기회를 빌려 만나보았습니다. | 작년 초, ‘창고살롱’이란 매력적인 네이밍에 이끌려 참가 신청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답니다. 창고살롱 탄생기와 네이밍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2020년 초, ‘엄마인 나’와 ‘일하는 나’ 사이에서 고민이 많던 창업가 교육 동기 두 명이 커피 한잔하던 자리에서 시작됐어요. ‘엄마가 되면서 내 커리어는 끝났다’, ‘선배 워킹맘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고민을 나누다, 우리와 같은 여성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육아 고민이 아닌 ‘엄마의 일’을 함께 고민할 커뮤니티는 당시 거의 없었으니까요. ‘창고살롱’이란 이름은 이 작당 모의가 시작된 성수동 ‘대림창고’에서 이름을 따 왔어요. 한때 버려졌던 공간이 힙한 장소로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아이, 가족 등 누군가에게 나의 시간과 수고를 내어 주느라 자아를 잠시 보관해 둔 ‘나만의 창고’란 의미에서요. 여기에 다른 이들과의 지적인 교류를 통해 에너지를 주고받는 곳이란 점에서 ‘살롱’을 덧붙인 거죠. 코로나 19로 재택 감금에 시달리던 중 일단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첫 온라인 모임을 가졌어요. 8명의 여성이 아이가 잠든 밤 캔맥주 하나씩 들고 모니터 앞에 모였죠. 영화와 책을 소재로 일과 삶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꽉 찬 2시간을 보냈어요. 5회차에 걸친 파일럿 모임을 통해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연결되어 서로 배우며 든든한 위로를 나누는 이 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바램을 확인했지요. 같은 해 말 첫 정규 시즌을 오픈, 현재 시즌 7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 | 살롱지기 두 분의 창고살롱 이전 스토리와 조인하게 된 배경도 궁금해요. (혜영) 대기업에서 재무와 브랜드전략 일을 했어요. 10년 넘게 워커홀릭으로 지내다 육아로 5년의 경력 공백을 경험했어요. 갑자기 일과 소속이 사라지자 마치 광야에 홀로 선 느낌이었죠. 엄마로서 유연한 시간 활용이 가능하면서도 어느 정도 돈도 벌고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그림책 공부, 테솔 등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러다 구글의 창업 프로그램 ‘엄마를 위한 캠퍼스’와 경력 보유 여성과 소셜 섹터 커리어를 연결하는 ‘임팩트커리어 W’에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됐어요. 엄마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은, 생계 수단을 넘어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었죠. 이를 계기로 소셜벤처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여성과 일에 대한 인터뷰집을  만드는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진저티프로젝트는 비영리조직에서 함께 일하던 경력 보유 여성 세 명의 스터디그룹으로 시작된 조직이에요. 기존 사회 구조에서 잘 작동하지 않던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와 시선에서 고민하고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죠. 책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도 미래 일 고민이 많은 6명의 대학생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여성 레퍼런스를 인터뷰한 대화집이에요. 경력 공백 이후 제 일의 여정은 어떤 스펙이나 자격보다는 사람 사이 연결에서 새로운 기회와 방법이 시작되더라고요. 정답같이 뻔한 롤모델만 추구하기보다, 더 많고 다양한 레퍼런스 서사를 구체화·확산하기 위해 사업화에 이르게 되었죠. (소영) 저는 조인하게 된 계기가 조금 달라요.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이전에 이미 15년의 조직 생활을 경험해서인지, 엄마가 되고 난 후 일에 대한 미련이나 상실감이 그리 크지는 않았어요. 되려 주위에서 교육자이자 리더로서 제 커리어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양육·가사 아웃소싱을 권하더라고요. 이 시대가, 사람을 키워내고 관계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긴 하지만 커리어는 굉장히 멋진, 놓기 아까운 것이어서 가정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압박을 가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제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단계들을 놓치지 싶지 않더라고요. ‘엄마’의 자리에 집중하면서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내 커리어를 기반으로 가치 있게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건강한 구조를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던 차, ‘19년 성수동에서 열린 한 런치 세미나에서 혜영 님을 만났어요. ‘일과 여성’이라는 공통의 키워드에서 연결됨을 느껴 메일을 썼고 창고살롱에도 참여하게 됐죠. 처음에는 한 명의 수혜자로 재미있게 출석만 하다가 혜영 님이 창업 멤버들과 헤어지며 창고살롱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서 네 번째 시즌부터 살롱지기로 조인하게 됐어요. ‍‍ | 참여자들을 ‘레퍼런서’라 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의 서사가 레퍼런스가 되는 곳" 창고살롱의 슬로건이에요.  레퍼런스(reference)는 타동사로 ~을 참고하다 혹은 인용한다는 뜻이 있잖아요. 여기에 '~하는 사람'의 접미사 'er'을 붙였죠. 누군가의 고유한 일과 삶의 여정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고하는 사람을 뜻하죠.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 레퍼런서가 될 수 있는 거고요. 나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 같은 롤모델이 아닌 다양한 레퍼런스라고 <롤모델보다 레퍼런스> 도서를 만들며 생각했거든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구불구불한 길을 걷게 되겠죠. 결혼, 출산뿐 아니라 가족 돌봄, 질병, 번아웃 등으로 커리어를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경로를 재설정해야 하기도 하죠.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 홀로 고민하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각기 다른 상황 속에 비슷한 욕구를 가진 동료들과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되어 커리어와 일상에 대한 고민을 건강한 방법으로 나누는 거예요. 한 사람의 서사가 다른 누군가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길을 모색하는 여정을 함께 하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어주면서요. | 특별한 느낌을 주는 브랜드 로고와 색감이 인상적인데요, 로고 개발 스토리도 들려주세요. 서비스 론칭 후 로고와 브랜딩에 관심을 많이 표현해주셨어요. 전직 브랜드 마케터로서 무척 감사한 일이었죠. 브랜딩 작업을 할 때, 더 많고 다양한 여성 레퍼런서를 발견하고 서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바람이 슬로건과 로고 디자인에서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랐어요. 로고 디자인은 엔터 업계와 소셜벤처에서 일하고 있던 남태리 디자이너와 작업했어요. 창업가의 브랜딩답게 린(lean) 하게 진행했는데, 창고살롱 탄생 배경과 의미, 지향하는 가치를 상세하게 정리해 전달한 후 일주일 동안 세 번의 시안 리뷰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했죠. 창고살롱 로고는 여성 생애 주기와 커리어에서 마주하는 많은 벽에 문과 길을 내고 가능성을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표현하고 있어요. 살롱 대화를 상징하는 큰따옴표를 문고리 삼아 문을 여는 거죠. 안전한 곳에서의 솔직하고 내밀한 대화를 통해 나의 스토리를 발견하고 다른 멤버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서로에게 문고리가 되어줄 수 있는 곳을 시각화하고자 했어요. 브랜드 컬러는 주로 밤에 온라인에서 만나는 창고살롱의 분위기를 담아 한밤중 나에게 빛을 비추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과 경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톤을 적용해 다크 그린을 ‘밤 컬러’이자 메인 컬러로 정했죠. 실내조명과 햇빛을 시각화하고자 밤 컬러와 대비되는 페이디드 형광 오렌지를 ‘낮 컬러’로 적용했어요. ‍ | 커뮤니티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요? 창고살롱은 줌(Zoom)으로 주 1회 만나는 온라인 밋업과 커뮤니케이션 툴 슬랙(Slack)을 통한 상시 소통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클로즈드(closed) 방식으로 운영되어 멤버들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각 시즌 정규 프로그램은 책과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스토리 살롱’과 연사의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되는 ‘레퍼런서 살롱’, 그리고 창고살롱 밖 게스트의 이야기를 나누는 ‘스페셜 살롱’ 등으로 구성돼요. 레퍼런서 살롱 연사는 셀럽이 아닌 나와 비슷한 평범한 주변 인물을 섭외해 그의 고유한 일과 삶 서사가 한 가지 주제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어요. 발표 후에는 ‘레퍼런서가 레퍼런서에게'라는 질문과 소감 나눔 시간을 갖는데 one way 강연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자리가 되도록 발표와 대화 비중을 1:1로 맞추고 있지요. 일방적인 성공사례 소개나 how to 방법론을 전달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해 자극을 주고받으며 각자가 얻어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라거든요. 이 외에 구성원의 자발적 주도로 운영되는 ‘소모임 살롱’이 있어요. 창고살롱에 참여하는 레퍼런서라면 북클럽, 워크숍, 리추얼 등 멤버들과 나누고 싶은 것, 함께 시도해 보고 싶은 어떤 것이든 개설할 수 있어요. 다양한 실험을 무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로, ‘나만의 얼라이 그룹(allies group)’을 지향하며 자체 확산 중이에요. 스토리살롱 전·후 간단한 과제가 있는데, 공지와 과제 제출 외 소통은 슬랙을 통해서 이루어져요. 각 주제와 질문에 대한 생각, 진심 어린 후기와 멤버들의 취향과 관점이 담겨있는 콘텐츠 추천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슬랙에 차곡차곡 쌓이죠. | 4년차를 맞이한 현재까지의 성과를 자평하자면? 시즌별 참여 가능 인원은 50명 이내로 정해두고 있어요. 레퍼런서 멤버 수로 외적 성장을 말하긴 어려운 구조에요. 재가입 비율은 대략 55%에 이상이고요. 신규 멤버도 꾸준히 유입되는 가운데, 시즌을 거듭하며 구성원 간 연결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껴요. 꾸준히 참여하는 분들의 피드백을 보면, ‘이곳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만남. 시공간을 초월한 다채로운 레퍼런서들과의 진짜 연결을 통해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변화를 경험했다’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창고살롱에 참여하며 이직, 커리어 전환 등 방향성의 변화를 경험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긴 호흡에서 서로의 서사를 공유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육아휴직 중 가입한 분들 중 둘째 생각을 하시는 멤버가 많아진 것도 재밌는 부분이에요. 매체에서 소비되는 워킹맘은 힘들고 소진된 민폐 캐릭터일 때가 많잖아요. 창고살롱에서는 서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과 지속 가능한 방법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성과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어요. 프로젝트 그룹을 자생적으로 형성하며 그 안에서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오프 시즌 소모임 살롱에서 시작된 굿즈 프로젝트가 그 예죠. #당신의해시태그 소모임살롱에 참여한 멤버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세 명이 모여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양한 살롱에서 나눈 대화 속 레퍼런서의 말들을 모아 엽서와 스티커 등 창고살롱 굿즈를 만들었어요. 외부에서 받은 약간의 자금으로 시작해 판매까지 이르는 과정을 기록해 남기기도 했지요. 이 외에 창고살롱 레퍼런서가 필진으로 참여하는 유료 뉴스레터, ‘레퍼런서의 글’도 런칭했어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멤버들이 모여 유료 콘텐츠 서비스를 실험해 옮겨본 거죠. 작은 도전이지만 함께 실행해보는 과정에서 얻은 배움과 자신감은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아요. ‍ | 좀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으로 대상을 확장할 계획도 있으실까요? 여성의 일과 삶이라는 주제에 유료 가입이라는 구조라, 아무래도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분들이 주로 모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멤버 구성을 보면 30~40대 유자녀 기혼 여성 중 워킹맘 또는 일을 구상 중이거나 찾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처한 상황이 달라도 공통적으로 일과 삶 두 가지 모두 잘 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도 느꼈어요. 창고살롱 2년 차에 싱글맘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 자리에 모인 싱글맘들의 스토리도 각기 다양했는데 그분들의 일과 삶에 대한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또 각자의 다름 속에 서로 어떤 불편함 없이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저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이었죠. 아이들이 기관에 가 있는 시간을 활용하고 싶은 여성들의 낮 살롱에 대한 요청도 꾸준히 있었는데, 정작 오픈해도 모집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왜 그런가 여쭤보니, 일을 온전히 쉬고 있거나 가정주부인 경우 멤버십 비용이 부담되는 거였어요. 이해가 되더라구요.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투자하기에 큰 비용으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막상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면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주부나 휴직자들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굉장히 좋은 결과물도 많이 내시는데, 이 타깃 그룹을 위해 민간/공공 기관과 B2B 형태의 일도 많이 벌여야겠다는 인사이트를 얻었죠.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더 많은 분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고 싶어요. 이외에도 기업의 육아휴직 전후 임직원, 조직 생활 이후 삶을 고민하는 4050 중장년층이 잠재 수요자로 확인되고 있고, 딸 키우는 아빠나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편과 같이 가족과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개인인 동시에 조직과 사회에 직접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존재들에게 확장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 | 사회상의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한때 새롭게 느껴지던 것들도 금세 유효기간이 다하곤 하죠. 이에 따른 운영상의 고민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시즌을 거듭하며 오프 시즌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요. (웃음) 처음 사업 구상 시점과 달리 예상치 못한 팬데믹 때문에 방구석 창업으로 플랜이 바뀌면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되었는데 이제 또 포스트 코비드 시대죠. 당시는 밤 살롱이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구멍이었는데, 일상에 복귀하고 오프라인 세상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부담이겠다 싶었죠. 무리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방식과 거리가 있으니, 시그니처 살롱과 소모임 살롱을 분리해 회차 간 간격을 충분하게 확보하도록 변화를 주었어요. 또 오프라인 밋업에 대한 니즈가 많아져 지난 시즌부터 연말 파티 등 오프라인 밋업도 추가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 입주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한 결정이었죠. 소셜 생태계 현장에 들어가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연결을 확장한다면 창고살롱 레퍼런서들에게도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여전히 해외나 지역에 거주하는 멤버들도 많아서 온라인 외에는 참여가 어려운 분들도 계세요. 온·오프 통합으로 가되, 오프라인 밋업 시 줌으로 현장 생중계를 하거나 별도 온라인 밋업을 추가로 진행하는 등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 ‍ | 두 분이 창고살롱과 함께하며 경험한 변화, 그리고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요? (혜영) 사적인 경력단절 경험과 지속 가능한 일과 삶에 대한 열망이 비즈니스의 주제가 되다 보니 이후 삶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해 매 시즌 주제가 정해지고 있어요. 어쩌면 일과 삶의 분리가 안 되는 제게 딱 맞는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 방식인 것도 같아요. 창고살롱을 시작할 당시는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억울함에 한 번 해보겠다는 마음이 컸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차 편안해지며 시야가 확장되는 것을 느껴요. 커리어와 가정이 제로섬 게임이 아닌 것을 알게 됐거든요. 삶의 단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역할과 가치에 무게감의 조정이 일어나고 시간의 단차가 생기는 것뿐이죠. 비록 사회는 아직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장기적 바람은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노년까지 현역으로 일하는 거예요. 노바디(nobody)였던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시즌1 멤버 모집 공지를 올리자마자 첫 번째로 가입해주신 지리산 산청의 레퍼런서 은진님이 계세요. 이분이 ‘돈 주고 친구를 샀다’란 제목으로 창고살롱 내돈내산 후기를 브런치에 써주셨었어요. 내향적인 이방인 성향이라 항상 외로웠는데 창고살롱에서 편견 없는 따뜻한 관심에 처음으로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쓰셨더라고요. 이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혜영 님, 노년살롱까지 하셔야죠.’ 이후 실버살롱이 장기 목표가 된 것 같아요. (소영) 혜영 님이 뚫고 나가는 과정 속에 변화를 경험했다면, 저는 느린 속도로 완만하게 삶의 전환을 받아들여 온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레퍼런서의 다양한 스토리와 실험을 바탕으로 저희 뒤에 오는 여성들이 불안해하고 버거워하는 대신 소중한 이 시간을 좀 더 행복하고 충실하게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창고살롱이 여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요. 대화와 공감도 중요하지만 현실로 이어져야 진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높은 기준이나 조바심은 조금 내려놓고 ‘자신을 진짜 살게 하는 것’을 찾도록 돕는 거울 같은 역할,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과 방법론을 탐색해 지금 나의 현장에서 시도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리턴십(returnship) 등 실행을 돕는 프로그램을 구체화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우리의 비전을 정리하자면 #지속_가능함, #실험의_다양성과_스케일업, #현실적이고_직접적인_실행, #1인1커뮤니티, #노년살롱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창고살롱이 점차 1인1커뮤니티 체제로 활발하게 굴러가게 되면 더 다양한 주제와 실험이 가능해질 테고 저희도 즐겁게 참여만 하면 되겠죠. (웃음) ‘소모임 only’로 진행됐던 시즌3.5에는 총 75건의 소모임이 개설됐었어요. 불가능한 계획은 아닐 것 같아요. 지속 가능한 여성의 일과 삶이란 워딩은 우아해 보이지만, 현실은 상시 머릿속에 캘린더가 몇 개씩 돌아가야 하는 백조 같은 것이죠. 이게 아닌 것 같은 고민의 순간들에 서로의 레퍼런스를 공유해 나다운 길을 찾고 함께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 | 김지선 ‍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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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던 어르신, 작가로 데뷔!
폐지 줍던 어르신, 작가로 데뷔! 아립앤위립·신이어마켙 심현보 대표 ‍발화자에 따라 말의 깊이와 울림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삶의 지혜를 가진 어르신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더욱 와닿기 마련이죠. 오늘은 어르신의 손글씨와 그림으로 젊은 세대에게 응원을 전하는 브랜드 '신이어마켙'의 심현보 대표를 만났습니다. ‍폐지를 수거하던 어르신들께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하는 법인 ‘아립앤위립’을 운영 중인 심 대표. 그는 ‘나를 세우고 우리를 세운다’는 법인의 이름에 걸맞게, 콘텐츠와 굿즈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고민합니다. 세대 간 소통, 노인 일자리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심 대표의 이야기, 함께 살펴보시죠!   ⛏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일 ‍ | 원래 소외계층에 관심을 두고 계셨나요? 저는 경영을 전공하고 교육 기획과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면서 일반적인 커리어를 쌓아왔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부속품일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제가 하는 일이 더 가치 있고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가까이 사는 친할머니댁에서 박스와 폐지 더미들을 발견했는데요. 의아함에 여쭤보니 할머니께서 직접 주운 것이라 하시더라고요. 무릎 수술 후 재활 운동을 하며 동네에서 폐지를 줍고, 고물상에 팔기 시작하셨대요. 우리 할머니는 생계유지에 어려움은 없으셨지만, 친구분 중에는 폐지를 줍지 않으면 안 되는 분들도 계셨어요. 폐지 수거가 불결하고 불편한 일로 여겨지다 보니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우리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분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했죠.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폐지 수거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됐어요. 폐지를 줍는 분들은 대부분 취직이 어렵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공공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셨으니까요. 이를 계기로 폐지 수거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게 필요하겠다 싶었죠. 그래서 이 모델을 비즈니스로 전환해 아립앤위립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 브랜드 ‘신이어마켙’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신이어마켙 이전에 '인생 꿀팁'이라는 브랜드가 있었어요. ‘세월의 지혜가 젊은 날에게’라는 메시지로 어르신의 격언을 통해 청년들을 위로하고자 했죠. 그러나 브랜드의 무거운 느낌 때문이었는지 200개를 만들면 100개도 팔지 못했어요(웃음). 이후 고객이 브랜드를 가볍게 느낄 수 있도록 리브랜딩을 결심했어요. 청년과 노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서로를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물리적인 접점을 생각했는데, 지하철이 떠올랐죠. 지하철에서 만나는 노인의 이미지는 왠지 드세고 이기적일 것 같잖아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은데도요. 마찬가지로 어르신들은 청년들을 두려워하고 계셨어요. 당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폭행 사건이 잦았거든요. ‍ 이렇듯 청년과 노년 세대는 서로에 대한 깊은 오해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탄생한 게 ‘신이어마켙’이에요. 가장 먼저 시작한 프로젝트가 ‘신이어 상담소’였고요. 2030세대가 고민을 보내면, 어르신들이 수기로 답변을 달아주시는 거였죠. 질문에 대한 답을 발췌해 굿즈로 제작했어요. 이 과정에서 브랜드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신이어마켙을 통해 청년과 노년이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 | 청년과 노년이 함께하는 조직인 만큼, 소통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저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지만, 조직 차원에서는 소통에 신경을 쓰고 사전에 그라운드 룰을 정해둬요. 또, 신이어 담당자를 따로 두어 소통을 돕고 있죠. 처음 오신 신이어분들께는 이렇게 설명해 드려요. “여기는 일을 하러 모인 곳입니다.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워야 해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린 직원에게 커피를 타오라거나 물을 떠 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분보다 저와 팀원들이 선배입니다.” 이렇게 웃으면서 말씀드리면, 어르신들도 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덕분에 구성원 모두가 동료로서 서로 존중하며 일할 수 있죠. 또, 최선을 다했다는 것 자체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신이어분들의 업무 효율은 각자 달라요. 어떤 분은 1시간에 10개를 만들고, 어떤 분은 3개밖에 만들지 못할 수 있죠. 그러나 중요한 건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거고, 최선을 다한 결과는 동일하게 존중받는 거예요. 저희 회사 명인 ‘아립앤위립’, ‘나를 세우고 우리를 세운다’는 것과도 이어지는 부분이에요. ‍ |  함께 일하는 신이어분들은 어떻게 만나시나요? 지역의 복지관을 통해 어르신들과 연결되고 있어요. 팀 내부 기준에 따라 사회복지사님이 인터뷰를 진행해 주세요. 기존에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제외하고, 차상위 계층과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대상으로요. 기준에 부합하는 어르신을 매칭해주시면 그분들과 함께 일해요. 현재 맨 처음 합류한 정규직 어르신 한 분, 평균 연령 84세인 파트타이머 다섯 분, 지자체 시니어 클럽으로 연계된 어르신들 다섯 분으로 총 11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어르신을 고용할 계획은 없어요. 그건 공공의 역할이니까요. 지속 가능한 인원수에 맞춰 일할 계획입니다. ‍‍ 🧓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 ‍ | 신이어분들께는 어떤 일자리가 제공되고, 수익은 어떻게 분배되나요? ‘정예 멤버 그룹’인 파트타이머 분들과 정규직 어르신 한 분(총 여섯 분)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디자인 활동을 맡고 계세요. 이분들의 작업물에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신이어마켙의 제품에 활용하거나 브랜드 콜라보 콘텐츠로 제작해요. 일반적인 임금을 드리는 제품 포장 일자리는 시니어 클럽 어르신들이 맡아주고 계시죠. ‍ | 정규직인 어르신은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어요? 저희 사업의 가장 큰 자랑인 분이에요. 사업이 7년 차에 접어들었고 정규직 어르신은 그중 6년을 함께 해오셨어요. 회사에서 정규직을 제안 드렸을 때 큰 결정을 앞두고 계셨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정부 지원금도 받고 쌀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등 혜택이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저희와 함께하기로 하셨어요. “지금까지 공공에서 받은 다양한 혜택들이 있어 살아왔는데, 만약 지금 받을 수 있게 된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지 않으면 더 필요한 누군가가 받지 않겠느냐, 난 아직 건강하니 기회가 될 때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선택을 하신 거였죠. ‍ | 다른 분들은 제안을 모두 거절하셨다고요. 전체 정예 멤버 어르신들께 정규직을 제안했지만, 모두가 하지 않기로 하셨어요. 한 분은 끝까지 고민하시다가 포기하셨는데, 그 이유는 회사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죠. “언제 아플지 모르는데 갑자기 아파서 출근하지 못하면 회사에 폐를 끼칠 수 있으니 약속한 것만 하겠다.” 이 말씀을 듣고 감사한 마음과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팀 내부에서는 가급적 어르신들께 정규직을 제안 드리지 않고 있어요. 청년들에게는 정규직 전환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어르신들께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세대에 따라 고용 형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어르신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좀 더 나은 고용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 어르신들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하고자 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저희는 폐지 수거 노인들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 마련을 목표로 했지만, 이제는 만 65세 이상 노인 누구나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노인 일자리 자체의 필요성을 실감한 거죠. 어떤 관점에서 보면 65세는 굉장히 어린 나이이기도 하거든요. 기존에 마련된 어르신 일자리 사업에는 이분들이 하기에 너무 단순하거나 루즈한 일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훨씬 액티브하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해요. 👐 나를 세우고 우리를 세우다 ‍ |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수익성은 어떻게 확보하시나요?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소셜 섹터에만 가두지 않는 거죠. 텐바이텐, 교보문고, 핫트랙스 같은 일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해요. 소셜 섹터에서는 의미가 있다면 한두 번은 사줄 수 있지만, 이건 우리끼리의 작은 파이를 더 작게 쪼개는 것과 같은 거잖아요. 경쟁력을 갖추려면 오롤리데이, 소소문구, 아날로그키퍼 등 잘 하고 있는 문구 브랜드들과 같은 필드에서 놀아야 해요. 그들을 보고 배우며 경쟁력을 키워야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셜 섹터에 너무 많은 무게를 두는 방향은 지양하되, 아예 무게를 두지 않는 것도 안 되겠죠. 소셜 섹터에서의 네트워크와 협력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메인 타겟은 일반 시장임을 늘 상기해요. 내부적으로 부딪히고 깨지고 돈을 못 벌더라도 시장으로 나가서 경쟁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 | 다양한 기업과 콜라보를 진행하셨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협업이 있으세요? 작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에어로케이와 진행했던 콜라보가 기억에 남아요. 할머니들의 메시지가 삶과 여행의 여정에 응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는데, 반응도 정말 좋았어요. 기내 헤드레스트 커버에 '젊잔애', '허허 우서요♡', '어디를 가든지 잘할 수 있다♡' 등 신이어분들의 응원을 담은 손글씨를 적었고, 정규직 어르신께서는 "목적지까지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며 기내 방송도 직접 하셨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와 손글씨로부터 따뜻함을 느꼈다는 후기가 많았죠. 소비자가 신이어마켙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경험하도록 설계할지, 개인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 | “디자인 작업 시 신이어가 디자인한 원작품을 최대한 보존한다”라는 원칙, 아주 인상적이에요. 네, 맞아요. 이 원칙 때문에 아주 많은 챌린지가 있었어요. 실제로 여러 컴플레인이 있었고요. 맞춤법 틀리는 게 말이 되느냐, 틀린 부분을 엑스자 쳐서 수정하는 게 맞느냐, 등이었죠. 그럼에도 이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어르신들이 만든 유일한 창작물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에요. 이분들은 80~90년 평생을 틀린 글자와 틀린 맞춤법으로 살아오신 거잖아요. 이걸 존중하고 그대로 보여 드리는 게 저희의 존재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당연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브랜드 콜라보의 경우 킥오프 때 말씀드리고 있고요. 다시 그려 드릴 수는 있으나 수정할 수는 없음을 미리 안내해요. 대신 브랜드 담당자분을 사무실로 초대해 작업 과정을 보여 드리죠. 저희 팀원과 어르신 한 분이 일대일로 붙어서 진행하는 과정도 보여드리고, 어르신들이 직접 싸 온 음식도 함께 나눠 먹으면서 라포도 형성하고요. 신이어마켙의 원칙은 지키되, 함께하는 분들께도 따뜻한 경험을 드리고자 노력합니다. ‍ | 브랜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따뜻함이요. 이 표현 안에 응원, 격려, 위로가 모두 포함돼 있어요. 어르신들의 경험을 통해 청년 세대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청년과 노년이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저희의 슬로건이 we live same day, we live same time이거든요. 같은 시간과 같은 날들을 산다. 저는 30페이지 언저리에 살고 있고 우리 어르신들은 70페이지, 80페이지 언저리에서 각자의 오늘을 써 내려가고 있죠. 세대와 세대가 서로 존중했으면 하고, 서로가 서로의 오늘을 응원했으면 합니다. ‍ |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공유 부탁드려요! ‘우리 엄마와 아빠의 일자리를 만들자!’를 내부 슬로건으로 삼아 아립앤위립 2.0을 선포했어요. 결국 우리의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 중 하나라고 보고, 선배 세대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거죠. 노인 일자리 창출에 개인적인 비전이 있고, 이 비전을 조직의 목표와 일치시켜 나가고 싶어요. 폐지 수거 노인들을 포함해, 일을 하고 싶은 만 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해 몇 가지 시도를 하고 있어요. 연말쯤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글 | 문지원 ‍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