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100원으로 장례 준비하는 법
100원으로 장례 준비하는 법
고이장례연구소 송슬옹 대표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적 있으세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이고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기 마련인데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소개할 고이장례연구소의 송슬옹 대표는 치열한 진심으로 장례를 연구하며, 이 질문에 "장례 과정에는 따뜻함 하나만 있으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장례가 단순한 의식을 넘어 고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기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현 상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장을 만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송슬옹 대표가 꿈꾸는 정직한 장례 시장과 새로운 장례 문화에 관한 이야기, 함께 살펴보시죠!
🗺️ 진심을 배우는 업(業)
| 어떤 계기로 상조 산업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아버지가 장례지도사로 활동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장례에 익숙해지면서 죽음을 필연적이고 객관적인 현상 자체로 받아들였죠. 직접적인 관심을 두게 된건 저 역시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후였어요. 스무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과정에서 장례에 문제의식을 느꼈죠. 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신 분들은 누구신지 왜 오시는지조차 몰랐어요. 모든 의례가 저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형식이었죠.
게다가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자주 찾아뵙지 않았던 터라 당신이 돌아가신 뒤 커다란 죄책감과 우울을 마주했어요. 미안하고 고마웠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일상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처음 경험한 죽음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도 몰랐고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었던 순간은 할머니의 첫 기일이었어요. 가족과 함께 울면서 할머니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죠.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보고 느꼈던 할머니의 모습을 듣다보니 당신의 삶이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를 더 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었죠. ‘장례식 때 이랬어야 했는데’ 싶더라고요. 치유는 의미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장례식의 본질이 형식보다 의미에 가까워야 하는 이유죠. 지금의 장례식은 이와 거리가 멀고요. 장례를 더 의미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 산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 장례지도사를 꿈꾼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대학을 오래 다니면서 휴학을 3년 했고, 그동안 스타트업 2곳에서 일했어요.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의 순간에는 늘 고객이 있음을 체감했어요. 저의 꿈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무얼 원하고 어떤 지점에서 어려워하는지 살펴야 함을 몸으로 배웠죠. 우선 고객과 가까이에 있으면서, 내가 진심으로 해보고 싶었던 장례지도사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이후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장례지도사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는 구조라, 고객을 직접 데려오기가 참 어려워요. 어떻게 고객을 데리고 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알고 있는 장례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지식인 답변을 시작했어요. 한 달간 매일 답변을 달았죠. 그렇게 하다가 처음으로 장례 상담 요청을 받았어요.
| 첫 번째 고객을 지식인 활동 중에 만나신 건가요?
맞아요. 제가 평생 장례지도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이기도 해요. 처음 맡은 장례이다보니 마음에서 우러나 했던 일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에게도, 저에게도 정말 중요한 일인 만큼 잘 해드리고 싶었죠. 장례 전에 필요한 것, 장례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의 세세한 내용을 담은 가이드와 손편지를 전해드렸어요.
또, 제가 만약 이분들의 가족이라면 뭐가 필요할지 생각해봤어요. 빈소를 차리지 않고 가족끼리만 하는 장례였는데요. 보통의 장례에서는 가족들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입관식 때 조문객으로부터 헌화를 받아요. 그런데 ‘우리 아빠만 받지 못하면 씁쓸하겠다’고 짐작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족분들이라도 따로 헌화할 수 있도록 꽃을 한 송이씩 준비해뒀어요. 이런 작고 사소한 부분들을 알아봐 주셨고, 감사함을 표현해주셨죠. 마지막 날 화장터에서는 관이 들어가고 고인의 아내분께서 무너지셨는데, 그 감정이 저에게까지 전이된 나머지 저 또한 화장터가 떠나가도록 울었어요. 상주분께서는 오히려 저를 위로해주셨고요. 그때만큼은 저도 이분들의 가족이었고, 이 가족의 장례지도사였던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당시 여자친구이자 현 아내에게 ‘나 평생 장례지도사 해도 되겠다’고 말했어요. 서울대 출신이라는 학력 필요 없고, 이게 가장 행복하다 싶었죠. 그간 많은 걸 팔아보았음에도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판매했을 때 너무 행복했고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어요.
| 장례지도사에서 고이장례연구소 창업으로 나아간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경험한 장례는 다른 거 필요 없이 따뜻한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되는 서비스였어요. 저도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으니 기존 회사들을 찾아가 배우려 했죠. 장례식장 알바를 뛰기도 하고, 상조 회사에도 프리랜서로 영업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당시 채용을 위해 만났던 한 상조회사의 대표님께서 ‘여기 전쟁터야. 이 시장은 저가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상조 산업은 기본적으로 하청이 반복되는 구조로, 고객을 미리 설득해 기존 상품에서 다른 옵션을 더 팔아 돈을 벌고 있었어요. 추가 옵션을 팔지 못하면 장례지도사 개인은 돈을 벌지 못했고, 마케팅비도 굉장히 많이 들었죠. 상조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어요.
제가 꿈꿨던 특별한 장례는 나중의 일이구나 싶었어요. 지금은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상태였으니까요. 장례 서비스는 따뜻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부족한데, 무언가를 더 팔려는 마음이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이걸 바로잡야겠다 결심한 뒤로는 구조 자체에 화딱지가 나더라고요. 장례지도사들이 무언가를 팔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회사로서는 디지털 혁신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잘못된 시장을 바로잡고 좋은 장례 서비스를 시장 내에 표준화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이를 실현할 수단인 비즈니스로 고이장례연구소를 시작했습니다.
🔬 본질에 집중하는 장례
| ‘고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잘 어울려요.
고이는 한글로 ‘편안하고 순탄하게’라는 뜻이에요. 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른 방식은 아니었고,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를 어떤 말로 표현할까 고민하다 자연스레 튀어나왔어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돌아가신 분을 잘 보내드리는 것, 그게 다구나, 그래서 고이구나 싶었죠.
| 왜 ‘연구소’라는 명칭을 사용하세요?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동시에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가운을 입는다고 연구가 아니라 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연구인 것 같아요. 더 나은 장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회사였으면 해서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이름에 상조가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어요. 상조만으로는 우리의 비즈니스를 설명하기 어려우니까요. 말이 주는 힘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하는데, 상조 산업에 묶이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더 큰 꿈을 갖고 있고, 더 많은 걸 하고 싶거든요(웃음).
| 지금의 장례·애도 문화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희는 지금까지 투명하고 정직한 장례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왔어요. 다른 시장은 가격을 정찰제로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례는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었어요. 노잣돈이나 수고비를 요구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잘못된 지점을 하나씩 바로잡는 일이 가장 시급했죠. 지금은 이걸 비즈니스로 해결하고 있는 과정이에요.
앞으로의 3년은 상조 산업의 더 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요. 상조 회사는 고객이 회사에 미리 맡겨 놓은 돈인 ‘선수금’을 갖고 있는데요. 올해 3월을 기준으로 상조 업계 선수금 총합이 9.5조 원에 달해요.
그런데 상조 회사는 이 돈으로 대주주 펀드에 출자하거나 관계사 대여금, 주식 매입 등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등 고객이 낸 돈을 임의로 운용해왔죠. 이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됐어요. 실제로 2022년, 업계 10위권이었던 ‘한강라이프’가 폐업, 도산하면서 위험이 현실화된 적이 있고요.
운용을 무리하게 하다가 투자 손실을 본 상조 회사도 있었어요. 고객이 서비스를 해지하면 위약금을 주거나 환급을 진행해야 하는데 지급능력을 상실한 상황이 된 거예요 지급도 못 하고 폐업한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이 떠안죠.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자 해요.
| 복잡해보이는 문제 같은데요. 고이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시나요?
상조 회사의 본질은 장례 서비스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상조회사는 가전제품이나 상품을 주겠다며 미리 고객을 데려오죠. 고객은 혹해서 가입하고요. 정작 메인 비즈니스인 장례는 하청이 얽힌 구조이니 돈을 벌지 못하고 있으니, 선수금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상조 회사들은 결국 금융업을 하는 거예요. 혹은 장례 마케팅을 하는 정도거나요. 저는 이게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장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매일매일 다른 노력을 하는 게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이에서 출시한 서비스가 바로 ‘100원 상조’예요. 장례 준비에 100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었죠. 3만 원씩 낼 필요 전혀 없고, 별도의 운용 없이 100% 예치하고, 중간에 해지해도 100%를 다 돌려 드리고 있어요. 다행히도 100원 자체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도 있고, 고이가 이걸 왜 하고자 하는지까지 이해해주시고 가입한 분들도 계세요. 선한 가치가 순환한다고 믿어요.
더불어 그간 정규화되지 않았던, 오프라인에서 사람이 하던 일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자동화하고 스케일업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 결과로 정보의 데이터화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혁신을 일궈내고 있습니다.
| 고이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고객이 원하는 건 제대로 된 장례예요. 그러니 서비스의 본질인 가격과 품질로 승부하고 있죠. 상조회사의 서비스 평균 가격은 500만 원인데, 저희는 가격을 50%로 낮췄어요. 고이가 싸게 파는 게 아니에요. 상조회사는 구조적인 이유로 비쌀 수밖에 없지만, 저희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비용을 줄였다는 점이 포인트죠. 가격은 따라 할 수 있어도 구조는 따라 하기 어렵다고 봐요.
서비스의 품질을 증명할 방법은 후기라고 할 수 있어요. 후기 등록률은 저희가 내세우는 지표 중 하나에요. 타 상조 회사의 고객 수 대비 후기 통계가 0.05%인 데에 반해, 고이는 30~50%를 기록하고 있어요. 후기를 요구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하는 액션은 따로 없었음에도 말이죠. 고이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장례식을 마칠 때까지, 마음이 전달되는 후기를 써주시는 거죠.
🖼️ 존재를 입체적으로 기억하려면
| 시장의 투명성 문제를 해결한 이후,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궁극적으로는 색다른 장례 문화를 제안하고 싶어요. 작년에 한 고객님께서 언니의 장례식을 특별하게 준비하고 싶다며 고이를 찾으셨어요. 한 달 동안 핀터레스트로 사진을 주고받으며 언니분이 좋아했던 꽃과 장식에 관해 이야기 나눴죠. “국화꽃은 싫다”, “언니는 이런 제단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라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어요. 교수이셨던 고인의 제자들은 고인을 기리기 위해 영상을 직접 제작했는데요. 그 영상을 커다란 TV로 재생하면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삶을 기억할 수 있게 했어요. 그분을 향한 추모의 마음을 갖고 빈소로 들어가고, 상주님과 마음을 다해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말이죠. 이야기가 깊은 장례였어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특별한 장례식의 모습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어요. 고인의 이야기가 식장에 흘러넘치는 것, 가족분들이 이분을 잘 추모할 수 있는 것. 웃긴 얘기일 수 있지만, 그 장례식은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시장은 잘못된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이라면, 문화는 개선보다 제안의 측면인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보편적으로 누렸으면 좋겠다 싶죠. 장례에 대한 개인의 니즈는 고인을 좀 더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고이가 정의하는 진정한 추모란 무엇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제가 하고자 하는 건 고인이 잘 기억되게 하는 것, 남은 가족들이 잘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것만 생각합니다.
| 슬옹님 본인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길 꿈꾸세요?
저는 제가 주인공인 장례를 생각하고 있어요. 집들이 형식이었으면 좋겠고요. 결혼 후 2개월 동안, 저와 아내가 친했던 친구들을 3~4명씩 주말마다 초대했어요. 동반자로서의 모습, 친구나 동료로서의 모습이 모두 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면서 더 풍성한 행사가 되더라고요. 각자에게 소중했던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정말 의미 있었어요. 연작처럼 이어갔던 집들이는 주인공이 우리였고, 초대받은 사람들도 모두 축하하러 발걸음 해줬어요. 얼마나 고맙고 행복해요. 장례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죠.
저는 노쇠하기 전,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요. 이번 주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놀러 가고, 다음 주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는 등 떠날 준비를 하는 거죠.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팀 고이의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고이는 장례의 품질 개선에 집중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활동들을 기획 중이에요. 당장은 매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고요. 오늘 실패하면 내일 다르게 해보고, 또다른 도전을 하며 고이답게 나아가려 합니다.
글 | 문지원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3
·
259
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는 커뮤니티, 창고살롱
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는 커뮤니티, 창고살롱
W플랜트 창고살롱지기 소영 & 혜영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답을 찾으시나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을 물색해 보신 적이 있지 않나요? 무엇을 어떻게 하며 나로서 살 것인가가 평생 화두인 필자는 비슷한 인생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여성들의 삶과 생각이 궁금했어요. 그러다 ‘창고살롱’이란 브랜드를 만났죠.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만들고 싶은 여성들의 온라인 멤버십 커뮤니티. 영감을 주는 콘텐츠, 든든하고 멋진 동료, 따뜻하고 진솔한 대화가 가득한 모임. 창고살롱의 살롱지기 두 분을 Table Talk 인터뷰 기회를 빌려 만나보았습니다.
| 작년 초, ‘창고살롱’이란 매력적인 네이밍에 이끌려 참가 신청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답니다. 창고살롱 탄생기와 네이밍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2020년 초, ‘엄마인 나’와 ‘일하는 나’ 사이에서 고민이 많던 창업가 교육 동기 두 명이 커피 한잔하던 자리에서 시작됐어요. ‘엄마가 되면서 내 커리어는 끝났다’, ‘선배 워킹맘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고민을 나누다, 우리와 같은 여성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육아 고민이 아닌 ‘엄마의 일’을 함께 고민할 커뮤니티는 당시 거의 없었으니까요.
‘창고살롱’이란 이름은 이 작당 모의가 시작된 성수동 ‘대림창고’에서 이름을 따 왔어요. 한때 버려졌던 공간이 힙한 장소로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아이, 가족 등 누군가에게 나의 시간과 수고를 내어 주느라 자아를 잠시 보관해 둔 ‘나만의 창고’란 의미에서요. 여기에 다른 이들과의 지적인 교류를 통해 에너지를 주고받는 곳이란 점에서 ‘살롱’을 덧붙인 거죠.
코로나 19로 재택 감금에 시달리던 중 일단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첫 온라인 모임을 가졌어요. 8명의 여성이 아이가 잠든 밤 캔맥주 하나씩 들고 모니터 앞에 모였죠. 영화와 책을 소재로 일과 삶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꽉 찬 2시간을 보냈어요. 5회차에 걸친 파일럿 모임을 통해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연결되어 서로 배우며 든든한 위로를 나누는 이 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바램을 확인했지요. 같은 해 말 첫 정규 시즌을 오픈, 현재 시즌 7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 살롱지기 두 분의 창고살롱 이전 스토리와 조인하게 된 배경도 궁금해요.
(혜영) 대기업에서 재무와 브랜드전략 일을 했어요. 10년 넘게 워커홀릭으로 지내다 육아로 5년의 경력 공백을 경험했어요. 갑자기 일과 소속이 사라지자 마치 광야에 홀로 선 느낌이었죠. 엄마로서 유연한 시간 활용이 가능하면서도 어느 정도 돈도 벌고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그림책 공부, 테솔 등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러다 구글의 창업 프로그램 ‘엄마를 위한 캠퍼스’와 경력 보유 여성과 소셜 섹터 커리어를 연결하는 ‘임팩트커리어 W’에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됐어요. 엄마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은, 생계 수단을 넘어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었죠.
이를 계기로 소셜벤처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여성과 일에 대한 인터뷰집을 만드는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진저티프로젝트는 비영리조직에서 함께 일하던 경력 보유 여성 세 명의 스터디그룹으로 시작된 조직이에요. 기존 사회 구조에서 잘 작동하지 않던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와 시선에서 고민하고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죠. 책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도 미래 일 고민이 많은 6명의 대학생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여성 레퍼런스를 인터뷰한 대화집이에요. 경력 공백 이후 제 일의 여정은 어떤 스펙이나 자격보다는 사람 사이 연결에서 새로운 기회와 방법이 시작되더라고요. 정답같이 뻔한 롤모델만 추구하기보다, 더 많고 다양한 레퍼런스 서사를 구체화·확산하기 위해 사업화에 이르게 되었죠.
(소영) 저는 조인하게 된 계기가 조금 달라요.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이전에 이미 15년의 조직 생활을 경험해서인지, 엄마가 되고 난 후 일에 대한 미련이나 상실감이 그리 크지는 않았어요. 되려 주위에서 교육자이자 리더로서 제 커리어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양육·가사 아웃소싱을 권하더라고요. 이 시대가, 사람을 키워내고 관계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긴 하지만 커리어는 굉장히 멋진, 놓기 아까운 것이어서 가정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압박을 가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제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단계들을 놓치지 싶지 않더라고요. ‘엄마’의 자리에 집중하면서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내 커리어를 기반으로 가치 있게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건강한 구조를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던 차, ‘19년 성수동에서 열린 한 런치 세미나에서 혜영 님을 만났어요. ‘일과 여성’이라는 공통의 키워드에서 연결됨을 느껴 메일을 썼고 창고살롱에도 참여하게 됐죠. 처음에는 한 명의 수혜자로 재미있게 출석만 하다가 혜영 님이 창업 멤버들과 헤어지며 창고살롱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서 네 번째 시즌부터 살롱지기로 조인하게 됐어요.
| 참여자들을 ‘레퍼런서’라 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의 서사가 레퍼런스가 되는 곳" 창고살롱의 슬로건이에요. 레퍼런스(reference)는 타동사로 ~을 참고하다 혹은 인용한다는 뜻이 있잖아요. 여기에 '~하는 사람'의 접미사 'er'을 붙였죠. 누군가의 고유한 일과 삶의 여정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고하는 사람을 뜻하죠.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 레퍼런서가 될 수 있는 거고요.
나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 같은 롤모델이 아닌 다양한 레퍼런스라고 <롤모델보다 레퍼런스> 도서를 만들며 생각했거든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구불구불한 길을 걷게 되겠죠. 결혼, 출산뿐 아니라 가족 돌봄, 질병, 번아웃 등으로 커리어를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경로를 재설정해야 하기도 하죠.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 홀로 고민하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각기 다른 상황 속에 비슷한 욕구를 가진 동료들과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되어 커리어와 일상에 대한 고민을 건강한 방법으로 나누는 거예요. 한 사람의 서사가 다른 누군가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길을 모색하는 여정을 함께 하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레퍼런서’가 되어주면서요.
| 특별한 느낌을 주는 브랜드 로고와 색감이 인상적인데요, 로고 개발 스토리도 들려주세요.
서비스 론칭 후 로고와 브랜딩에 관심을 많이 표현해주셨어요. 전직 브랜드 마케터로서 무척 감사한 일이었죠. 브랜딩 작업을 할 때, 더 많고 다양한 여성 레퍼런서를 발견하고 서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바람이 슬로건과 로고 디자인에서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랐어요. 로고 디자인은 엔터 업계와 소셜벤처에서 일하고 있던 남태리 디자이너와 작업했어요. 창업가의 브랜딩답게 린(lean) 하게 진행했는데, 창고살롱 탄생 배경과 의미, 지향하는 가치를 상세하게 정리해 전달한 후 일주일 동안 세 번의 시안 리뷰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했죠.
창고살롱 로고는 여성 생애 주기와 커리어에서 마주하는 많은 벽에 문과 길을 내고 가능성을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표현하고 있어요. 살롱 대화를 상징하는 큰따옴표를 문고리 삼아 문을 여는 거죠. 안전한 곳에서의 솔직하고 내밀한 대화를 통해 나의 스토리를 발견하고 다른 멤버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서로에게 문고리가 되어줄 수 있는 곳을 시각화하고자 했어요.
브랜드 컬러는 주로 밤에 온라인에서 만나는 창고살롱의 분위기를 담아 한밤중 나에게 빛을 비추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과 경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톤을 적용해 다크 그린을 ‘밤 컬러’이자 메인 컬러로 정했죠. 실내조명과 햇빛을 시각화하고자 밤 컬러와 대비되는 페이디드 형광 오렌지를 ‘낮 컬러’로 적용했어요.
| 커뮤니티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요?
창고살롱은 줌(Zoom)으로 주 1회 만나는 온라인 밋업과 커뮤니케이션 툴 슬랙(Slack)을 통한 상시 소통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클로즈드(closed) 방식으로 운영되어 멤버들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각 시즌 정규 프로그램은 책과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스토리 살롱’과 연사의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되는 ‘레퍼런서 살롱’, 그리고 창고살롱 밖 게스트의 이야기를 나누는 ‘스페셜 살롱’ 등으로 구성돼요. 레퍼런서 살롱 연사는 셀럽이 아닌 나와 비슷한 평범한 주변 인물을 섭외해 그의 고유한 일과 삶 서사가 한 가지 주제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어요. 발표 후에는 ‘레퍼런서가 레퍼런서에게'라는 질문과 소감 나눔 시간을 갖는데 one way 강연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자리가 되도록 발표와 대화 비중을 1:1로 맞추고 있지요. 일방적인 성공사례 소개나 how to 방법론을 전달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해 자극을 주고받으며 각자가 얻어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라거든요.
이 외에 구성원의 자발적 주도로 운영되는 ‘소모임 살롱’이 있어요. 창고살롱에 참여하는 레퍼런서라면 북클럽, 워크숍, 리추얼 등 멤버들과 나누고 싶은 것, 함께 시도해 보고 싶은 어떤 것이든 개설할 수 있어요. 다양한 실험을 무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로, ‘나만의 얼라이 그룹(allies group)’을 지향하며 자체 확산 중이에요.
스토리살롱 전·후 간단한 과제가 있는데, 공지와 과제 제출 외 소통은 슬랙을 통해서 이루어져요. 각 주제와 질문에 대한 생각, 진심 어린 후기와 멤버들의 취향과 관점이 담겨있는 콘텐츠 추천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슬랙에 차곡차곡 쌓이죠.
| 4년차를 맞이한 현재까지의 성과를 자평하자면?
시즌별 참여 가능 인원은 50명 이내로 정해두고 있어요. 레퍼런서 멤버 수로 외적 성장을 말하긴 어려운 구조에요. 재가입 비율은 대략 55%에 이상이고요. 신규 멤버도 꾸준히 유입되는 가운데, 시즌을 거듭하며 구성원 간 연결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껴요. 꾸준히 참여하는 분들의 피드백을 보면, ‘이곳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만남. 시공간을 초월한 다채로운 레퍼런서들과의 진짜 연결을 통해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변화를 경험했다’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창고살롱에 참여하며 이직, 커리어 전환 등 방향성의 변화를 경험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긴 호흡에서 서로의 서사를 공유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육아휴직 중 가입한 분들 중 둘째 생각을 하시는 멤버가 많아진 것도 재밌는 부분이에요. 매체에서 소비되는 워킹맘은 힘들고 소진된 민폐 캐릭터일 때가 많잖아요. 창고살롱에서는 서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과 지속 가능한 방법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성과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어요. 프로젝트 그룹을 자생적으로 형성하며 그 안에서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오프 시즌 소모임 살롱에서 시작된 굿즈 프로젝트가 그 예죠. #당신의해시태그 소모임살롱에 참여한 멤버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세 명이 모여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양한 살롱에서 나눈 대화 속 레퍼런서의 말들을 모아 엽서와 스티커 등 창고살롱 굿즈를 만들었어요. 외부에서 받은 약간의 자금으로 시작해 판매까지 이르는 과정을 기록해 남기기도 했지요. 이 외에 창고살롱 레퍼런서가 필진으로 참여하는 유료 뉴스레터, ‘레퍼런서의 글’도 런칭했어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멤버들이 모여 유료 콘텐츠 서비스를 실험해 옮겨본 거죠. 작은 도전이지만 함께 실행해보는 과정에서 얻은 배움과 자신감은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아요.
| 좀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으로 대상을 확장할 계획도 있으실까요?
여성의 일과 삶이라는 주제에 유료 가입이라는 구조라, 아무래도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분들이 주로 모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멤버 구성을 보면 30~40대 유자녀 기혼 여성 중 워킹맘 또는 일을 구상 중이거나 찾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처한 상황이 달라도 공통적으로 일과 삶 두 가지 모두 잘 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도 느꼈어요.
창고살롱 2년 차에 싱글맘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 자리에 모인 싱글맘들의 스토리도 각기 다양했는데 그분들의 일과 삶에 대한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또 각자의 다름 속에 서로 어떤 불편함 없이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저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이었죠.
아이들이 기관에 가 있는 시간을 활용하고 싶은 여성들의 낮 살롱에 대한 요청도 꾸준히 있었는데, 정작 오픈해도 모집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왜 그런가 여쭤보니, 일을 온전히 쉬고 있거나 가정주부인 경우 멤버십 비용이 부담되는 거였어요. 이해가 되더라구요.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투자하기에 큰 비용으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막상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면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주부나 휴직자들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굉장히 좋은 결과물도 많이 내시는데, 이 타깃 그룹을 위해 민간/공공 기관과 B2B 형태의 일도 많이 벌여야겠다는 인사이트를 얻었죠.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더 많은 분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고 싶어요.
이외에도 기업의 육아휴직 전후 임직원, 조직 생활 이후 삶을 고민하는 4050 중장년층이 잠재 수요자로 확인되고 있고, 딸 키우는 아빠나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편과 같이 가족과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개인인 동시에 조직과 사회에 직접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존재들에게 확장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 사회상의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한때 새롭게 느껴지던 것들도 금세 유효기간이 다하곤 하죠. 이에 따른 운영상의 고민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시즌을 거듭하며 오프 시즌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요. (웃음) 처음 사업 구상 시점과 달리 예상치 못한 팬데믹 때문에 방구석 창업으로 플랜이 바뀌면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되었는데 이제 또 포스트 코비드 시대죠. 당시는 밤 살롱이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구멍이었는데, 일상에 복귀하고 오프라인 세상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부담이겠다 싶었죠. 무리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방식과 거리가 있으니, 시그니처 살롱과 소모임 살롱을 분리해 회차 간 간격을 충분하게 확보하도록 변화를 주었어요.
또 오프라인 밋업에 대한 니즈가 많아져 지난 시즌부터 연말 파티 등 오프라인 밋업도 추가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 입주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한 결정이었죠. 소셜 생태계 현장에 들어가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연결을 확장한다면 창고살롱 레퍼런서들에게도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여전히 해외나 지역에 거주하는 멤버들도 많아서 온라인 외에는 참여가 어려운 분들도 계세요. 온·오프 통합으로 가되, 오프라인 밋업 시 줌으로 현장 생중계를 하거나 별도 온라인 밋업을 추가로 진행하는 등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 두 분이 창고살롱과 함께하며 경험한 변화, 그리고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요?
(혜영) 사적인 경력단절 경험과 지속 가능한 일과 삶에 대한 열망이 비즈니스의 주제가 되다 보니 이후 삶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해 매 시즌 주제가 정해지고 있어요. 어쩌면 일과 삶의 분리가 안 되는 제게 딱 맞는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 방식인 것도 같아요. 창고살롱을 시작할 당시는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억울함에 한 번 해보겠다는 마음이 컸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차 편안해지며 시야가 확장되는 것을 느껴요. 커리어와 가정이 제로섬 게임이 아닌 것을 알게 됐거든요. 삶의 단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역할과 가치에 무게감의 조정이 일어나고 시간의 단차가 생기는 것뿐이죠. 비록 사회는 아직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장기적 바람은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노년까지 현역으로 일하는 거예요. 노바디(nobody)였던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시즌1 멤버 모집 공지를 올리자마자 첫 번째로 가입해주신 지리산 산청의 레퍼런서 은진님이 계세요. 이분이 ‘돈 주고 친구를 샀다’란 제목으로 창고살롱 내돈내산 후기를 브런치에 써주셨었어요. 내향적인 이방인 성향이라 항상 외로웠는데 창고살롱에서 편견 없는 따뜻한 관심에 처음으로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쓰셨더라고요. 이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혜영 님, 노년살롱까지 하셔야죠.’ 이후 실버살롱이 장기 목표가 된 것 같아요.
(소영) 혜영 님이 뚫고 나가는 과정 속에 변화를 경험했다면, 저는 느린 속도로 완만하게 삶의 전환을 받아들여 온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레퍼런서의 다양한 스토리와 실험을 바탕으로 저희 뒤에 오는 여성들이 불안해하고 버거워하는 대신 소중한 이 시간을 좀 더 행복하고 충실하게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창고살롱이 여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요. 대화와 공감도 중요하지만 현실로 이어져야 진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높은 기준이나 조바심은 조금 내려놓고 ‘자신을 진짜 살게 하는 것’을 찾도록 돕는 거울 같은 역할,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과 방법론을 탐색해 지금 나의 현장에서 시도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 리턴십(returnship) 등 실행을 돕는 프로그램을 구체화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우리의 비전을 정리하자면 #지속_가능함, #실험의_다양성과_스케일업, #현실적이고_직접적인_실행, #1인1커뮤니티, #노년살롱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창고살롱이 점차 1인1커뮤니티 체제로 활발하게 굴러가게 되면 더 다양한 주제와 실험이 가능해질 테고 저희도 즐겁게 참여만 하면 되겠죠. (웃음) ‘소모임 only’로 진행됐던 시즌3.5에는 총 75건의 소모임이 개설됐었어요. 불가능한 계획은 아닐 것 같아요. 지속 가능한 여성의 일과 삶이란 워딩은 우아해 보이지만, 현실은 상시 머릿속에 캘린더가 몇 개씩 돌아가야 하는 백조 같은 것이죠. 이게 아닌 것 같은 고민의 순간들에 서로의 레퍼런스를 공유해 나다운 길을 찾고 함께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 | 김지선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4
·